진실하다는 것은 불변하는 성격을 말한다. 진실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무엇보다도 진실한 사람은 가족과 공동체에 도덕적, 영적 중심존재가 된다. 다른 이들은 그 사람에게 기대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려 한다. 문선명 선생의 말씀처럼 다이아몬드와 금이 귀한 이유가 그것의 불변하는 광택 때문이듯이, 다이아몬드 같은 가치를 지닌 사람은 불변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책임과 역경은 그 사람의 진실함을 시험한다. 안락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진실한 사람들이다. 그 한 예가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왕국을 포기해 버렸던 힌두교 라마야나의 영웅 라마이다. 때로는 내가 맡은 책임을 이용해 자기 부와 발전의 기회로 삼고 싶은 유혹이 올 때가 있다. 역경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의무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책무를 다한다. 그런 사람은 과제가 주어졌을 때 변하지 않는 자세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1.원리적 생활 종교 경전
정직하게 살면 그의 길이 안전하지만 비뚤게 살면 곧 드러나고야 만다. 잠언 10.9(기독교) 떳떳한 덕이 굽어지지 아니함은 녹을 요구해서가 아니며, 언어를 반드시 미덥게 함이 행실을 바르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다. 군자는 법을 행해 명을 기다를 뿐이다. 맹자Ⅶ.b.33(유교) 덕은 근본이고 재물은 말단이다. 근본을 밖으로 하고 말단을 안으로 하면(근본을 무시하고 말단을 중시하면) 백성들을 다투도록 하고 남의 것을 빼앗도록 인도하게 된다. 대학 10.7-8(유교) 칭찬을 듣는다고 기뻐하지 말고 비난을 받는다고 슬퍼하지 말라. 자신의 공덕과 힘을 잘 아는 것, 그것은 탁월한 사람의 특징이네. 고결한 말씀의 귀한 보배 29(불교) 마음이 편안하고 티 없이 맑으며 슬픔을 여읜다면, 세상사 변화무쌍한 일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숫타 니파타 268(불교) 공자가 말하였다. “어질지 않은 자는 오랫동안 곤궁함에 처할 수 없으며 오랫동안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어진 자는 인(仁)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자는 인(仁)을 이롭게 여긴다.” 논어 4.2(유교) 말씀 선집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력 또는 지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어떤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마음이 변함없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인 것입니다.
(19.285, 1968.03.10) 사람의 인격에 뼈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인격의 뼈를 보았습니까? ‘인격’ 하게 되면 사람의 형태, 사람의 갖추어진 모양을 말하는데, 그 가운데는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보이게 하는 근본을 보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숨어 있는 뼈 같은 형성체가 있습니다. 그 형성체로 말미암아 보이는 형체가 이렇게 있게 되는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77.315, 1988.05.22) 하나님의 정통을 인계받은 자로서 곧은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옳지 못한 것은 굴복시켜야 합니다. 힘에 대항하여 힘 아닌 다른 것으로 그것을 굴복시키려면 몇 천 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이든 수습하여 정복할 수 있는 충효의 절개를 세워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하고 확고부동한 행보로써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21.83, 1968.10.27) 변하는 선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깊을수록 잔잔하다. 태평양을 보라. 표면에는 폭풍이 일고 파도가 일지만 속 깊은 곳에는 정(靜)이다. 그것을 배워라.
(뜻길, P.198) 어떤 사랑이 귀한 보석 같은 사랑, 보물 같은 사랑입니까? 불변의 사랑입니다. 보물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힘과 가치를 가지고 상대방을 움직이게 되어 있지, 상대방이 이 보물을 움직이게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상대방에게 영향 주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영향을 받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까? 영향을 주는 사람 중에서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118.95, 1982.05.09) 역사상의 성현들은 이 땅에 왔다 간 그 누구보다도 참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참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참이라는 것은 미래에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만 성립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은 과거에도 참이어야 하고, 현재에도 참이어야 하고, 미래에도 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참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참된 사람은 과거에도 중심이요, 현재에도 중심이요, 미래에도 중심인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참된사람이 성립됩니다. 그러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참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갔지만 참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상대적으로 나타난 스승이나 부모보다도, 참의 모체를 이룰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면 자신에게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참의 상대는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 곧 양심입니다. 우리는 곧잘 ‘그 사람 양심적이다. 그 사람 마음이 곧다’고 합니다. 마음이 곧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거도 곧고 현재도 곧고 미래도 곧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8.159, 1970.01.11) 자신을 믿고 가라! 오로지 홀로 간다는 입장에서 결정체가 되어야 한다. (뜻길, P.97)
2.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진실한 사람
종교 경전
믿으며 경외하는 자들은 그들에게는 현세와 내세에서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꾸란 10.63-64(이슬람)
군자는 나라를 창건하고 전통을 전하여 계승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저 공을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맹자 I.B.14(유교)
군자는 언제나 그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행동하고 그의 분수에 벗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 자신이 부귀하다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 자신이 빈천하다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 자신이 오랑캐들 사이에 처한다면 오랑캐들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 자신이 위험과 어려움에 처한다면 위험과 어려움을 당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디를 들어가도 득의(得意)하지 않는 일이 없다. 군자는 윗자리에 있더라도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 자신의 행위를 바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서로 원망하는 일이 없게 된다. 군자는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이하게 처신하며 천명을 기다리고 반면에 소인은 위험하게 처신하며 요행을 바란다. 중용 14(유교)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에게 존경받지 못한다. 사람의 고결함이나 천함을 드러내는 것, 정직한 사람이냐 부정한 사람이냐를 구별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비천한 자가 고귀한 사람과 유사할 것이며, 명예롭지 못한자가 고결한 사람과 비슷할 것이다. 가치 없는 사람이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며, 타락한 사람이 덕 있는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민일 의무를 빙자하여 내가 사회적 역할의 혼동을 야기하도록 의도된 이 부당한 길을 택하고 경전에 의해 인정된 행위들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선을 부정하면서 다만 악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만일 내가 사악하게 그리고 명예롭지 못하게 행동한다면, 의와 불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과연 누가 이 세상에서 나를 존경하겠는가?··· 나, 라마는 어찌 진리의 숭배자였던 내 아버지의 명을 완수하지 않아야 하겠는가? 야망도 망각도 자부심도 나로 하여금 도덕의 다리를 부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라마야나 아요드야 칸다 109(힌두교)
섭공 자고(葉公子高)가 사신으로 제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중니에게 물었다. “왕이 내게 내린 사명은 매우 중대합니다. 제나라는 사신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중하지만 교섭에는 빨리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움직이기가 힘든데, 하물며 제후야 어떻겠는가! 나는 이 일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중니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천하에는 크게 경계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운명이고 또 하나는 의무이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으로, 마음에서 그것을 풀어 버릴 수는 없다.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일은 의무로, 어디를 가나 군주는 군주이다. 천지간에 어디를 가나 이 두 가지로부터 떠날 수는 없다. 이를 두고 크게 경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어버이를 편하게 모시는 것이 최고의 효행이다. 대저 군주를 섬기는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군주를 편하게 모시는 일이 최고의 충성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마음을 섬기는 자는 슬프고 즐거운 감정이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으로 변하지 않으며,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음을 알고 마음 편하게 운명이라 여기고 따르는데, 이것을 덕의 지극함이라고 한다. 남의 신하와 자식으로서, 본래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 충실히 일하며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한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할 여유가 어찌 있겠나?··· 그저 사물의 흐름을 타며 마음을 유유히 자유롭게 한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몸을 맡긴 채 중도를 지켜 가는 것이 최상이다. 더 무엇을 작위해서 보고할 필요가 있겠나? 군주의 명령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이 좋지만,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장자4(도교)
말씀 선집
충신과 간신은 본래 동급의 인물에 속한다. 다만 충신은 왕의 뜻에 순종하나 간신은 자기를 내세운다. 충신은 항상 직선을 걸으며 하는 일은 시작과 끝이 같다. (뜻길, P.15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변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인격자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자란 일생을 통해서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고, 의의 수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무엇이 결정된 후에는 이런저런 변명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우주의 법칙이 변할지언정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23.100, 1969.05.14)
천륜에 대해 인간의 절개를 지켜서 천상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고, 인륜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으며, 우주의 인연을 대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세워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영원히 위하여 사시는 그 분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자체가 전체와 인연을 맺어 그 인연의 실천상이 하나님의 창조의 미를 완전히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생의 가치를 찾아 나가게 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최고 목표입니다. (2.336-337, 1957.08.04) 통일교회 문선생은 하나님이 왜 필요로 하느냐? 왜 필요로 합니까? 얼굴이 잘나서 입니까? 무엇 때문에? 지식이 뭐 세계적인 게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권력이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해드리겠다고, 그것을 생명을 다해서 한번 이루어 드리겠다고 하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붙드는 것입니다.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돈을 먹겠다는 것입니까? 내가 권력을 얻겠다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겠다는 실낱같은 조그마한 그 마음이 어떤 미국권력보다도 필요하고, 어떤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내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77.16-17, 1975.03.23)
3. 환경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진실한 사람 종교 경전
베데히카 부인은 온화하고 겸손하며 정숙하다는 평판을 받았다. 그녀에게 칼리라른 하녀가 있었는데, 영리하고 부지런하며 맡은 일을 잘 처리했다. 그런데 칼리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나의 안주인에 대해서 좋은 평판이 있는데, 과연 그녀는 본성적으로 선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일을 잘 처리하니까 그녀가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디 한 번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다음날 아침 칼리는 늦게 일어났다. 그러자 베데히카 부인은 하녀에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애야 칼리야” “예, 부인,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늦게 일어나다니,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습니다. 부인” “아무 일도 아니라니, 이 못된 하녀야, 이렇게 늦게 일어나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이냐?” 그녀는 화가 나서 불쾌한 얼굴을 했다. 그러자 칼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잘 처리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을 뿐이지, 속에는 화를 내는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하다. 좀 더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그녀는 더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베데히카 부인이 하녀에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애야, 칼리야.” “예, 부인,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늦게 일어나다니,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습니다. 부인” “아무 일도 아니라니, 이 못된 하녀야, 이렇게 늦게 일어나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이냐?” 그녀는 화가 나서 하녀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러자 칼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잘 처리하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을 뿐이지, 속에는 화를 내는 기질이 있는게 분명하다. 좀 더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그녀는 더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베데히카부인이 하녀에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얘야, 칼리야.” “예, 부인, 무슨 일이냐?” 그녀는 화가 나서 문간의 돌쩌귀를 집어서 하녀의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하녀의 머리가 찢어졌다. 그러자 칼리는 찢어진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이웃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험담했다. “부인, 그 온화하다던 숙녀의 행동을 보세요. 부인, 그 겸손하다던 숙녀의 행동을 보세요. 부인, 그 정숙하다는 숙녀의 행동을 보세요. 어째서 그녀는 내가 늦게 일어났다고 하나뿐인 하녀인 나를 때려서 머리가 찢어지게 만듭니까 그래서 그 부인은 좋은 평판을 잃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 있는 어떤 수행승이 불쾌한 일을 당하지 않는 한 그는 지극히 온화하고 지극히 겸손하며 지극히 정숙한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실제로 온화하고 겸손하고 정숙한가 하는 것은 오직 그가 불쾌한 일을 당했을 때만 알 수 있다. 맛지마 니카야 1.123-124(불교) 잘 배운 고결한 제자는 고통스런 느낌에 닿았을 때 흐느끼지 않으며, 울부짖지도 않으며, 가슴을 치지도 않으며, 어쩔 줄 몰라 하지도 않는다. 그는 육체적으로 느낌을 받지만, 정신적으로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는다···. 더욱이 그는 고통스런 느낌에 대해 강한 반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그것에 전혀 반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런 느낌에 반발하는 잠재성향은 그를 잡아 가둘 수 없다.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잘 배운 고결한 제자는 감각적인 편안함 외에 고통스런 느낌에서 벗어나는 의지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각적인 편안함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감각적 편안함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감각적 편안함에 대한 잠재 성향은 그를 잡아 가두지 않는다. 만일 그가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만일 그가 고통스런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만일 그가 고통스런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만일 그가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는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그것을 속박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느낄 것이다. 상윳타 니카야 36.1.1.6(불교) 말씀 선집
금덩어리의 가치는 불속에 들어가도 그 본질이 변하지 않는 데 있다. 인간의 가치도 어떤 고생길에 부닥쳐 그 뜻이 변질한다면 인격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뜻길p200)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요, 가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목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져 가지고는 어떤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하나 되어도 목적을 이루기 힘든데 두 마음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성사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일에는 한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침의 마음과 낮의 마음과 저녁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하고, 초년 시대의 마음과 중년 시대의 마음과 말년 시대의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누구든지 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고, 한 마음으로 그 과정을 개척하고, 한 마음을 중심하여 결과를 추구한다면,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사람의 바라는 목적도 클 것입니다. 우리는 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한 마음을 떠나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도 두 마음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향을 갖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한 마음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28.155, 1970.01.11) 타락 이후의 인간을 보게 되면 얼마나 마음의 세계가 변하는지, 천태만상입니다. 마음의 본성이 절대로 변하지 않고, 몸이 원래의 영원한 형태를 지닌다면, 그런 남자 여자는 거룩한 남자 거룩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백인 컬러는 유일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흑인 컬러도 유일하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이 뭔지 알고 있습니까? 아무리 백인이라도 마음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세속적이고 사탄 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백인이 훌륭한 입장에서 그들의 역할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마음이나 행동이 변하게 되면 세속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모든 것은 언제 어디서나 성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위치가 다르다할지라도 이 역사에서, 이 세계에서 거룩한 사람입니다. 손 모양이나 얼굴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서 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변하기 때문에 바로 여기가 악마의 무도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 자신이 완전한 여자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 거룩한 커플이란 어떤 커플입니까? 한 번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세월이 그 커플을 따라가지, 그 커플이 세월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그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의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수천 년을 컨트롤하는 중심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 같은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천년 동안 우주를 컨트롤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절이 바뀌고 지구가 변하고 우주가 변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걸 따라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명백한 결론입니다. (217.303-304, 199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