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 20180607065027
제3부 인생의 여정
제12장 도덕성
자제
자제력은 모든 덕목의 기본 요소이다. 정신 훈련을 소홀히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흐트러진 생각, 감각의 유혹, 욕정, 분노, 물질과 금전적 탐욕 같은 감정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우리가 악한 행동을 이끌도록 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욕망, 행동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과 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진리의 길을 따라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철학자 존 로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지 여부가 사람의 성격을 좌우한다.”
아래경구들은 두 가지 공통된 비유로 자제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로 정복 전쟁과 말과 기수의 비유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싸움이 나를 정복하는 싸움이다. 문선명 선생은 어떤 사람이 세계 변혁에 아무리 고귀한 뜻을 품었다 할지라도 그 바탕에 자아주관성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의 모든 노력은 헛될 수밖에 없다고 하신다. 자제력을 키우는 것은 야생마를 타는 기수에 비유할 수 있다. 숙련된 기수가 말을 제어하듯이, 고귀한 뜻과 양심으로 자기 내면의 괴수를 제압해야 한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듯 자신을 부정하고 금욕의 굴레에 자신을 제어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욕망에 의해 꿈틀대는 변덕스럽고 저속한 적들을 굴복시키고 길들여야 할 것이다.
어떤 이가 싸움터에서 백만적군을 이긴다 해도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가 더 뛰어난 승리자이다.
법구경103(불교)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다. 제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탈취하는 것보다 낫다.
잠언 16.32(기독교)
강한 자가 누구인가? 그는 자신의 열정을 제어할 수 있는 자이다.
미슈나, 아보스4.1(유대교)
남을 이기는 자를 유력이라고 하고, 자신을 이기는 자를 강력이라 한다.
도덕경33(도교)
사도님 선언했노라. “우리는 작은 성전(聖戰)에서 큰 성전으로 돌아왔노라.” 그들이 “오, 하나님의 사도여! 무엇이 큰 성전입니까?”라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노라. “약한 자신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니라.”
하디스(이슬람)
수천수만의 용맹스런 적을 정복함도 자기를 정복함만 못하다. 그대 자신과 싸우라. 어찌 그대 밖의 적들을 염려하는가? 자신과 싸워 이를 정복하는 자는 지복을 얻을지니, 실로 정복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다. 그러나 자신이 정복되면 모든 것이 정복되리라.
웃타라드야야나 수트라 9.34-36(자이나교)
사람은 자신의 실재를 발견해야 하며 자신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자신은 유일한 친구이자 또는 유일한 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정복했을 때 그는 자신을 친구로 지니지만, 만일 그가 자신의 실재를 거부하면 자신은 그에게 적대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바가바드기타 6.5-6(힌두교)
말씀 선집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진리도 자아주관의 기대 위에서 넓혀 나가게 된다.
(뜻길, p.193)
원수가 누구냐? 사탄이 아닙니다. 내가 원수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었습니까? 그게 얼마나 힘듭니까? 세계 통일과 하늘땅 통일, 그리고 나 하나 통일 중에 어떤 게 더 쉽습니까? 어떤게 더 어렵습니까? 나 하나 통일되면, 그것을 세계화 하면 세계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원수라고요? 이놈의 눈깔이 원수입니다. 이놈의 귀때기가 원수입니다. 이놈의 콧대가 원수입니다. 이 입이 원수입니다. 생각이 원수입니다.
(91.285-286, 1977.02.27)
타락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주주관,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일대 표어였습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를 주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아주관을 어떻게 하느냐, 이것이 수련의 절대적인 목표이며, 역사를 대표한 종교들이 지향해야 할 책임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 과제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82.281, 1976.02.01)
세계 전쟁이 휴전하는 것보다도 나를 중심삼고 몸 마음이 싸우는 이 원수관계를 해소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20.249, 2000.04.16)
2. 자기 수련 : 내부의 야수성 다듬기
종교경전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재갈이나 굴레라야 그들을 휘어잡는다
시편 32.9 (기독교)
사람은 자기의 동물과 같은 성질에 재갈을 물려야 한다. 나아가서 악마적 욕망에도 재갈을 물려야 한다.
예루살렘 탈무드, 산헤드린 10.1(유대교)
잘 길들여진 노새도 좋고 인더스 산의 순종말도 좋으며 당당한 상아의 코끼리도 좋다. 그러나 자신을 닦는 이는 더욱 좋다. 예전에 이 마음은 좋아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욕망하는 대로 따라 헤매었다. 이제 나도 이 마음을 다잡아야 하리. 코끼리 다루는 이가 발정하여 날뛰는 코끼리 다루듯 하리.
법구경 322, 326(불교)
자아는 마차의 주인이며 육신은 마차, 지성은 마부, 마음은 말고삐임을 알라. 현자들은 말하나니, 길길이 날뛰는 감각들은 마차를 끄는 군마요, 그들이 여행하는 길은 감각의 대상들이니라. ··· 어떤 이가 사려분별이 모자라 자기의 마음이 통어되지 못할 때, 그의 감각들은 마치 마부가 다루기 어려운 조련되지 않은 군마와도 같아 통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가 분별력을 지녀 마음이 스스로 통어될 때에는 마치 잘 조련된 군마처럼 그의 감각들도 고삐에 잘 순종하게 되느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1.3.3-6(힌두교)
물 대는 이는 물을 끌어들이고 화살 만드는 이는 화살을 고른다. 목수는 재목을 다듬고 덕 있는 이는 자기 자신을 통어한다.
법구경 80(불교)
의심의 여지없이, 마음은 산만하며 제어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련과 이욕(離慾)을 통해 그것은 정복될 수 있다. 아르주나여, 자기 제어가 부족한 사람은 명상에서 진전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른 방편으로 꾸준히 노력하며 자신을 제어하는 자는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바가바드기타 6.35-36(힌두교)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한 것은, 몸이란 마음에 분하고 노여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다. 이를 두고 몸을 닦음은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일컫는 것이다.
대학 7(유교)
자신의 육체를 떠나기 전 바로 이 세상에서 욕망과 분노에서 생겨나는 동요를 잠재울 수 있는 자, 그는 제어된 자이며 행복하다.
바가바드기타 5.23(힌두교)
말씀 선집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여기에 몸은 반항을 합니다. 몸은 자기만 편하고자 하고, 이기적이며, 본능적 요구에 따라 욕심을 부립니다.
양심은 이 몸을 질책하여 마음에 순응케 하려고 합니다. 한 몸 안에서 항상 피나는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통하여 모든 종교는 내 몸을 치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종교는 육욕을 제어하고, 몸을 마음에 굴복시키는 도장입니다. 종교는 타락한 인간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이끌어 가는 도장입니다.
(219.118, 1991.08.28)
선생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3대요건이 들어갑니다. 먹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는 것이 문제이고, 사랑이 문제입니다. 이 세 가지가 3대 원수입니다. (366.287, 2002.01.17)
아무리 도를 닦았다 하더라도 사랑 때문에 걸리는 겁니다. 나중에 미남이나 미녀가 유혹을 하게 되면 모두 다 걸려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자립권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경우에는 컨트롤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있으면 성욕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영화 같은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강간을 당하게 될 때, ‘안돼, 안돼, 안돼!’ 하다가도 그런 감정이 생기면 끌어안아 버립니다. 그런 영화를 많이 볼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이 사랑의 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06.196, 1998.09.22)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오늘날 사랑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사탄이 활동하는 곳입니다. 육체는 사탄의 무도장이요, 사탄의 정박지입니다. 정신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즉 주체의 위치가 됩니다.
그런데 정신의 대상 위치에 있어야 하는 육체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되려고 노력하며 계속해서 정신을 유혹하며 속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관계를 수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탕감복귀 시키고자 종교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를 통해 하나님 중심의 정신을 강화시키는 방법, 삶과 인격에 대한 육체의 지배를 역전시키는 방법을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종교가 종종 단식, 희생적인 봉사, 온순하고 겸손한 태도 등을 요구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데서 연유합니다. 이는 육체의 세력을 감소시키고 육체가 정신에 복종하게 하는 방법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육체 중심적인 생활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이 정신 중심적인 생활방식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통상 3년 내지 5년이 걸립니다.
(201.209, 1990.04.09)
우리는 먼저 개인으로서 완전한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은 자기를 영점에 놓고 자기를 완전 부정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라야 몸과 마음이 완전 통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6.299, 2001.10.21)
각자가 지향하는 양이 100이라 할 때, 여기서 몸과 마음이 50대50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중간 영계에 머물게 됩니다. 완충지대에 머둔다는 것입니다. 만일 몸이 60이면 틀림없이 지옥에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나’라는 존재가 선악의 모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37.122, 1970.12.23)
하나님 자신도 영적으로 보게 되면 몸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도 몸 마음이 싸우겠습니까? 싸우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게 하나 안 되면 절대 천국 못갑니다.
(305.111, 1999.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