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노력의 효과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 노력의 관계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했듯이 공동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노력이 은총을 부르고, 그 은총이 또다시 우리의 노력을 자극한다. 수많은 경전이 은총을 입기 전에 먼저 이간의 선행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또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응답 이전에 있는 소명이나 부르심이라고 설명한다.
문선명 선생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은 섭리 완성에 95%를 차지한다. 나머지 5%는 인간 책임분담으로 남겨두셨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나머지를 인간의 책임으로 남겨둠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의 위업을 함께하는 공동 창조자로서 영광을 누리도록 길을 준비해 주셨다.
그러나 구원섭리역사를 바라볼 때, 인간 책임분담의 실패나 탈락으로 인해 하나님께 절망을 안겨 드린 적이 많았다. 하나님은 당신 혼자서 일방적으로 이 과업을 완수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그 책임을 다하리라 믿을 수 있는 분이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책임분담을 주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우주의 운명을 우리 손에 맡기셨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 경전
구하라 받을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마태복음 7.7
도와 일치하면 도가 좋아하여 그를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고, 덕과 일치하면 덕이 좋아하여 그를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덕화시키고, 도와 덕을 잃으면 무도실덕이 좋아하고, 모든 것을 잃고 포악한 결과만을 얻게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성화시킨다면 그는 훨씬 성화된 존재가 될 것이며, 만약 그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성화시킨다면 하늘나라에서도 성화된 자신의 모습을 갖게 될 것이며, 현재에서 자신을 성화시키는 자는 앞으로 도래할 세상에서 성화된 자신의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탈무드, 요마 39a(유대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오. 여러분 속에서 활동하셔서 자기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여러분에게 의욕을 일으켜 일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12-13 (기독교)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을 바꿀 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를 바꾸지 아니하시도다.
꾸란 13.11 (이슬람)
온 마음을 나에게 전일하라. 그대는 은총으로 모든 고난들을 이기리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아만으로 인해 듣지 않는다면 그대는 파멸할 것이니라.
바가바드기타 18.58 (힌두교)
만일 네가 바른 길을 구하려 한다면 바르게 행하라. 곧장 그곳에 이르게 되리라. 그러나 만일 네가 보리를 구하여 용맹정진하지 않는다면 다만 어둠 속을 더듬거릴 뿐 그 진면목은 보지 못하리라.
육조단경 2 (불교)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순종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신실하기 때문이다. 신실함을 이행하여 순종할 것을 생각하고 또 그것으로 어진 이를 숭상한다. 이 때문에 하늘에서 도와주니 좋아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
역경, 계사전, 1.12.1 (유교)
하나님이 선언하시길, 나는 나의 종복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가까이 있도다. 그리고 그가 나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그와 함께하리라. 그가 자신 속에 나를 기억할 때 나도 스스로 그를 기억하리라. 그가 회중 속에서 나를 기억할 때 나는 회중 속에 있는 자들보다 더욱 그를 기억하리라. 그가 한 팔 길이로 나에게 다가올 때 나는 세제곱으로 그에게 다가가리라. 그가 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올 때 나는 그에게 달려가리라.
하디스 (이슬람)
신은 각자에게 그의 과실을 딸 수 있는 갈고리를 준다.
이보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3.20 (기독교)
운동은 아래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완성된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자극을 주지 못하면 위에 있는 이들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래로부터의 열망이 위에서의 완성을 가져오는 것이다.
조하르 (유대교)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숙명의 법칙과 인간의 노력 양자에 달려 있나니, 이들 중에서 숙명의 길은 불가해한 것이며, 인간의 노력의 경우에는 헤아릴 수 있느니라.
마누법전 7.205 (힌두교)
말씀 전집
여러분이 하나님의 창조위업에 가담해야 됩니다. 원래 타락하지 않았어도 그런 책임이 있습니다. 타락해 가지고 인간 책임분담이 설정된 것이 아니고, 타락하지 않아도 인간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완성할 수 있는 하나님의 95퍼센트 창조 이상적 형태를 다 갖추었더라도 자기의 5퍼센트 창조 이상적 형태를 다 갖추었더라도 자기의 5퍼센트 책임을 완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의 완성을 하나님만이 시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거기에 보태 가지고 완성해야 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115.66, 1981.11.04)
생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영인체의 중심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양성)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음성)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한다.
앉아 자기 신세를 탄식하는 그런 방식은 안 됩니다. 발전을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협조하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것을 바라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327.48, 2000.07.24)
하나님이 95퍼센트를 창조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창조 원칙에 협조해서 100퍼센트를 완성함으로서 우리 인간에게도 하나님이 뜻을 완성하는 데 동참했다는 가치를 주시는 것입니다.
(130.19, 1983.12.11)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일까?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뜻의 성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95퍼센트의 책임분담에 그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책임분담 5퍼센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비하여 극히 작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비하여 극히 작은 것임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자신에 있어서는 100퍼센트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의 인간이 담당했던 책임분담은 하나님이 그의 책임분담으로 담당하신 수고와 은사에 비하여 얼마나 미소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 섭리적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감당치 못함으로써 복귀섭리를연장시켜 왔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경미한 책임분담이 인간 자신에 있어서는 얼마나 힘에 겨울만큼 큰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가치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원리강론, 예정론 2)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의 은사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인 믿음을 세우지 않으면 그를 찾아온 구원섭리는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부활의 혜택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었고 그것을 믿고 안 믿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인 것이다.
(요 3.16, 엡 12.8, 롬 5.1). (원리강론, 창조원리 5.2.2)
사랑이라는 말은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사랑을 하는 데는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혼자서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상으로 피조만물을 지었는데, 그 피조만물은 자신의 형상을 그대로 본따서 전개시켜서 지었고, 그중에서 자신의 인격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로서 창조적인 입장에 세워 놓기 위해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39.8-9, 1971.01.09)
하나님은 지금까지 복귀도상에서 아들딸을 책임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응당 내가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협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책임지고 나오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응당 사탄의 공격을 받아야 됩니다.
(31.50, 197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