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예정론에서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재산과 도덕성을 가지는 이유, 태어난 환경과 종교에 대한 이해가 다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이 모든 차이의 원인을 하나님에게로 돌리고 있다. 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실 수 있고, 전지하셔서 미래를 보실 수 있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해 놓았다고 설명한다. 누군가 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그리로 이끄셨기 때문이요, 신앙의 영웅이 되는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렇게 절대예정론에서는 한 인간의 영원한 숙명이 구원을 받을지 지옥에 갈지 출생 이전에 모두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앞으로 살아갈 수명과 사망 날짜가 모두 이미 하나님의 장부에 적혀 있다고 한다.
운명의 손을 믿는 사람은 인생의 사건들을 우연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명백한 기회의 만남도 오래 전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모든 인간의 계획과 설계는 열매를 맺기 마련이므로 거기에 하늘의 뜻이 있다면, 무슬림들이 말하는 ‘인샬라’ 신의 뜻과 설계는 열매를 맺기 마련이므로 거기에 하늘의 뜻이 있다면, 무슬림들이 말하는 ‘인샬라’ (신의 뜻이라면)처럼,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모든 사건들을 지켜보고 운명의 흐름에 나를 맞추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예정론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절대예정론과 관련해 오랫동안 이어진 대답은 자유를 얻으려 끊임없이 애쓴다는 맥락에서 인간의 무지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영원을 두고 전체를 아시는 하나님은 이미 우리 인생의 결과를 아신다. 하지만 그것을 알 길이 없는 우리 인간은 여전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예정론에 대한 권위 있는 몇 가지 교리가 있는데, 여기서는 인간의 자유가 예측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당신의 뜻에 따라 축복도 고난도 주실 수 있으며, 우리에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제한된 자유를 주신 분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절대예정론을 거부하시는 문선명 선생은 상대예정론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구원을 예언하셨지만 그 운명을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인간 책임분담이 필요하다고 하신다.
1. 하나님의 절대 예정
종교 경전
나는 돌보고 싶은 자는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고 싶은 자는 가엾이 여긴다.
출애급기 33.19 (기독교)
실로 이것이 하나의 교훈이거늘, 원하는 자는 누구나 주님께로 가는 길을 택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뜻 없이는 이를 이룰 수 없도다. 실로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지혜로운 분이시도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지혜로운 분이시도다.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는 자를 그분의 은총 속에 들게 하시사 사악한 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징벌을 준비하셨느니라.
꾸란 76.29-31 (이슬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함께 일하셔서 모든 것을 선하게 해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을 그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시려고 미리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을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을 부르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28-30 (기독교)
주는 행위자, 모두가 그로부터 있나니,
사람의 꾀함이 무슨 소용인가?
주가 뜻한 바, 그렇게 되리라.
전능하신 주, 막을 자가 없어라.
행하여지는 모든 것은 목적 없는 그의 유희
먼 곳에 또한 지척에 있는 그,
그가 생각하고 헤아려 굽어보는 모든 것들,
그는 하나요 전체라.
아디 그란트, 가우리 수크마니, M.5, p.279 (시크교)
그뿐만 아니라 리브가도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수태하였는데,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지속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불공평하신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로마서 9.10-16 (기독교)
은밀한 곳에서 내가 만들어질 때, 깊은 땅 속에서 내가 꾸며질 때 뼈 마디마디 당신께 숨겨진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을 보고 계셨으며, 그 됨됨이를 모두 당신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그 단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시편 139.15-16 (기독교)
알라의 사도, 진실이며 진실로 계시를 받은 이가 이르노니, “너희들 모두는 첫 40일 동안 그의 어머니의 자궁에 모아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다음 40일 동안 한 덩어리가 되었고 그러고 나서 다음 40일 동안 살덩어리가 되었다. 그 후 그에게 보내져 천사가 그의 육신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네 마디를 받아 적으라는 명을 받았다. 그의 삶, 그의 수명, 그이 행동, 그리고 그가 (종교 안에서) 비참하게 될 것인지 축복을 받을 것인지, 진실로 너희 중 하나가 천국에 있는 이들과 같은 일을 행하여, 그와 천국 사이의 거리는 단지 팔 하나 길이에 해당하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그에 대한 기록이 그를 앞지르니,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일을 행하기 시작할지라. 그리하여 그는 지옥에 가게 되리라. 또한 너희 중 하나는 지옥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일을 행하여 그와 지옥 사이의 거리는 단지 팔 하나 길이에 해당하리라. 그러나 한편으로 그에 대한 기록이 앞지르니, 천국에 있는 사람들의 일을 행하기 시작할지라. 그리하여 그는 천국에 가게 되리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4 (이슬람)
말씀 선집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과거를 보고, 현재를 토대로 미래를 봅니다.
(100.93, 1978.10.08)
레버런 문이 태어날 때, 레버런 문이 이렇게 된다하는 어떤 동기가 있어서 태어나 가지고 이렇게 자랐겠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을 적당히 왔다 갔다 하면서 원소를 흡수해 가지고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본래부터 다 결정되었기 때문에, 눈 위에 수평선상이 같고···. 레버런 문이 이렇게 생긴 것은 중간에 자기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이렇게 생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레버런 문 자신도 그 원칙에 따라서 자랐지, 원칙에 역행해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161.160, 1987.02.01)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어떤 사람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와 같이 미리 알고 계시는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만으로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어 영광을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부름 받는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도록 예정되는 것이다. 다만 성구에는 인간책임분담에 대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다.
(원리강론, 예정론 4)
로마서 9장 10절 내지 13절에는 하나님이 태중에서부터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시어 장자 에서가 차자 야곱을 섬기리라고 한 말씀이 있다.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있어서 아직 선악 간에 아무런 행동의 결과도 나타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이것은 복귀섭리노정의 프로그램을 맞추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의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설명하겠지만, 에서와 야곱을 쌍태로 세우셨던 것은 그들을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자리에 갈라 세워 놓고, 아벨의 입장에 있는 야곱이 가인의 입장에 있는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일찍이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장자기업 복귀의 ‘뜻’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에서는 가인의 입장에 있었던 것이요, 야곱은 아벨의 입장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실제로 미워하시거나 사랑하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좌우될 문제였다. 실상에서는 야곱에게 순종 굴복하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야곱과 같은 사랑의 축복을 받는 입장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던 야곱이라 할지라도, 만일 그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리강론, 예정론 4)
2. 외관상 우연적 사건도 운명의 실제 작용
종교 경전
하늘에 계신 분의 뜻에 거역하는 의도를 갖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자기의 손가락을 망가뜨릴 수 없다.
탈무드, 훌린 7b (유대교)
네가 떨어지는 곳에서 너의 신은 너를 밀어 내린다.
이보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신께서 만드신 질서를 유한한 사람이 뒤엎지 못한다.
아칸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그대의 미혹된 생각으로 인해
업의 속박에 내몰리어
그대가 원치 않는 바를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될 것이니라.
일체만물의 내밀한 곳에
오, 아르주나여! 주가 계시나니,
자신의 신묘한 힘으로
마치 돌아가는 거대한 바퀴 위에 올려놓은 듯
일체만유를 돌리고 계시느니라.
바가바드기타 18.60-61 (힌두교)
악정자가 맹자를 보고 말했다. “제가 노의 평공에게 말해 올렸고, 평공도 선생님을 만나고 했습니다. 그런데 측근자인 장창이라는 자가 방해했으므로 평공이 끝내 오지 못했습니다.”
이에 맹자가 말했다. “사람이 가는 것은 시키는 무엇이 있으므로 가는 것이고, 멈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멈추게 하는 것이 있어서 멈추게 되는 것이다. 가는 것이나 멈추는 것이나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나라의 평공을 못 만나는 것도 천명이다. 장창이라는 자가 어떻게 나를 평공에게 만나지 못하게 방해를 할 수 있겠느냐?
맹자 I. B.16 (유교)
어떤 일이든 나는 그것을 내일 하겠다고 말하지 말거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무것도 첨가하지 말라. 네가 잊었다면 너의 주님을 기억하고 말하라. 나의 주님께서 이것보다 더욱 올바른 길로 가까이 저를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꾸란 18.23-24 (이슬람)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잘 들으십시오. 여러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13-16 (기독교)
네 의지와 관계없이 너는 모습을 갖추었고, 네 의지와 관계없이 너는 태어났고, 네 의지와 관계없이 너는 살아가고 있으며, 네 의지와 관계없이 너는 거룩하신 분, 왕 중에서 으뜸가는 왕이 되시는 분 앞에서 네 행적을 평가받을 것이다. 하나님께 큰 축복이 있기를 바라노라.
미슈나, 아보스 4.29 (유대교)
시간은 우리의 적도 친구도 아니다. 현 존재가 있게 한 전생에서의 행위들의 과보가 다하면 시간은 어김없이 우리를 잡아채 가느니라, 혹 수천 개의 화살이 가슴에 꽂힌다 해도 정해진 때가 오지 않는 한 그는 죽지 않는다. 다만 가녀린 풀잎 끝에 스칠 뿐이라 할지라도 정해진 때가 지난 후에도 살아 있을 자는 아무도 없느니라. 불사의 영약도, 마법사의 주문도, 거룩한 제사도, 신통한 기도자들의 간구도···. 죽음의 굴레에 든 자를 구해내지는 못하며, 과보를 나타내지 않은 악행이 있었다면 수백의 예방조치로도 그 과보를 막을 수가 없느니라. 만사가 이와 같거늘 무슨 연유로 그대가 불평하는가?
비쉬누 법전 20.43-46 (힌두교)
말씀 선집
한국에서는 10월 달에 주님이 온다고 야단하는데, 주님이 오기는 뭘 옵니까? 벌써 주님이 와서 잔치하고, 나발 불고, 피로연 다 했는데 누가 또 온다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행차 후에 나발 분다는 한국 속담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볼 때 선생님이 지금 하는 일들이 우연히 아닙니다. 섭리의 프로그램에 의해 세계사적인 의미에서 종결짓고 넘어가는 시대가 되고, 지금은 이런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천지합덕’ 이라는 과제를 내세울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228.68, 1992.03.15)
여러분의 가정에 이게 모토 입니다. 오늘 선생님이 말씀한, 복귀역사는 재창조역사이고 환경 가운데 주체 대상이 있어서 상대적 대응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 가지고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플러스·마이너스 투입해야 됩니다. 가인적 입장을 구원하기 위해서 투입해야 됩니다. 가인적 입장을 구원하기 위해서 투입해 나가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개인은 가정을 위해,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투입하고 희생하라는 이런 논리가 공식에 의한 논리지, 적절히 적용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공식적인 논리라른 걸 알아야 됩니다.
(267.154, 1995.01.04)
우루과이를 중심삼게 되면 아르헨티나도 우루과이를 못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스페인계로서 제일 순종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브라질 사람하고 결혼 안 하겠다고 야단입니다. 우루과이가 그러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혈통을 존중합니다. 그것을 보면 한국 사람하고 딱 맞습니다. 우루과이 역사에도 33인의 애국자가 있고···. 백 년 전의 역사가 한국 역사하고 맞먹습니다. 기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우연지사가 아닙니다.
한국 사람은 순종을 바랐습니다. 순결을 지켜 나왔습니다. 핏줄을 지켜 나온 것입니다. 서자를 사람 취급 안 했습니다. 그런 역사는 세계에 없는 것입니다. 서자가 있고, 직계 자녀가 있었습니다. 서자는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거지보다도 더 천대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거 왜 그랬느냐 이겁니다. 지금까지 서자를 대해 나온 하나님의 슬픔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서자의 입장을 찾아 나가는···. 서자가 장손이 된다는···.
(302.55, 1999.05.18)
3. 운명과 자유의지의 관계
종교 경전
랍비 아키바가 말한다. “모든 것은 다 예건되어진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 세상은 은총에 의해 심판된다. 그러나 심판은 세상을 위해 봉사의 업적을 남긴 비중에 따라 진행된다.”
미슈나, 아보스 3.19 (유대교)
어떠한 재앙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나지 않느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인도해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아시는 분이시니라.
꾸란 64.11 (이슬람)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들 중에 누구든 잘못을 저지른 자는 내게 인도해 준 자를 제외하고는 나의 인도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인도하리라.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 중에 굶주린 자는 누구든지 내가 양육한 자를 제외하고는 나의 양식을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양육하리요.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 중에 헐벗은 자는 모두 내가 옷 입힌 자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옷을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입히리라. 오, 나의 종복들이여! 너희가 밤낮으로 죄를 짓게 될 때, 나의 용서를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용서해 주리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24 (이슬람)
모든 것이 그대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나니,
권능은 그대의 것.
장기판 위의 온갖 말들을 움직이듯,
그대는 스스로 만든 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도다.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은 또한 떠나야 하리.
모두가 가야 하리.
어찌 생과 사의 주인이신 주를 망각하려 하는가?
아디 그란트, 아사 키 바르, M.1, pp.473-474 (시크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셨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들을 놓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까지나 이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뜻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절대자이시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역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목적을 다시 이루시려는 복귀섭리의 뜻도 유일하고 불변하며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뜻에 대한 예정 또는 절대적일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사 46:11). 이와 같이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기 때문에 만일 이 뜻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이 그것을 이루어 드리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은 그의 대신 다른 인물을 세워서라도 끝까지 이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아담을 중심삼고 창조목적을 이루려 하셨던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후아담으로 보내시어 그를중심하고 그 뜻을 다시 이루시려 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뜻도 역시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재림하셔서까지 이 뜻을 기필코 완수하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일까? 이미 위에서 논급한 바와 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뜻의 성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95퍼센트의 책임분담에 그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책임분담 5퍼센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비하여 극히 작은 것임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 자신에 있어서는 100퍼센트에 해당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아담 해와를 중심한 ‘뜻 성사’는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되어지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노아가 방주(方舟)를 제작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섭리도 타락인간이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비로소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요 3:16). 그러나 인간들은 이 작은 책임분담마저 감당치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연장케 하였었다.
(원리강론, 예정론 1)
되어지는 모든 것은 인간이 아무리 주장하고 아무리 야단할지라도 이 우주의 천운이 원하는 대로 박자는 맞아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는 한 여기에 순응하기 마련이고, 여기에 순응하는 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우주의 운세와 더불어, 맥박과 더불어 발전해 나갑니다. 영원히 존속할 것입니다. 서양 사람 마음대로 아무리 했댔자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 사람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의 법도를 따라 거기에 박자를 맞추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원칙적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은 다시 연장되어 아시아, 세계의 문화권으로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나 혹은 개인이나 무엇을 막론하고 망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망합니까? 그건 누가 망하게 합니까?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우주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있는 인간들은 천운의 법도에 따라 박자를 맞춤으로 남아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영웅이 안 되고 싶고 성인이 안 되고 싶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94.19-20, 1977.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