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책임
책임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핵심이다. 다른 피조물에게도 생명, 의식, 심지어 지능이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삶의 방식, 곧 운명을 선택할 책임이 주어졌다. 개인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자기비판의 측면이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나의 어려움에 대해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인간 책임에 대한 정의와 그 한계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신앙과 실천의 측면을 두고 볼 때 모든 세계 종교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나 기타 유일신을 믿지 않는 종교들은 해탈의 여정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을 비춰 주는 등대’이다. 자기가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붓다와 무함마드가 자신들이 구세주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듯이, 이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구세주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반면 유일신 신앙에 의하면 은총 이전에 먼저 있어야 할 것은 개인의 책임분담이다. 개인 구원을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하나님도 그 안에서 함께하실 수 있다. 구원은 하늘로부터 오는 선물이지만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문선명 선생은 이 관계를 숫자로 표현해 95퍼센트가 하나님 책임분담, 5퍼센트가 인간 책임분담이라고 하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책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완성하기 위해서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 창조역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도 인간 자신의 책임이 요구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임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 행위를 간섭하지 못하셨던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많은 종교에서 개인의 운명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어떤 초월적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 힘은 하나님의 예정, 과거의 업, 또는 상속된 죄의 짐 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몇몇 경전에서는 이런 조건이 개인의 책임에 대한 침해라는 개념에 반대한다. 운명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순간순간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 보다 나은 기회가 자기에게 찾아온다고 믿는다. 문선명 선생은 더 나아가 한 개인은 과거 조상들의 열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조들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1. 각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책임을 짐
종교 경전
만약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않는다면 누가 날 위해 줄 것인가?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할 때에 현재의 내가 있지 않은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나 자신을 위할 것인가?
미슈나, 아보스 1.14(유대교)
오, 너희 믿는 자들이여! 너희 자신을 돌보라.
꾸란 5.105 (이슬람)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라.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라.
자신을 지키고 삼가면
오, 비구여! 그대는 행복하게 살리라.
자신이야말로 자기의 수호자요,
자신이야말로 스스로 의지할 곳이니,
장사꾼이 좋은 말을 다루듯
자기 자신을 잘 다루라.
법구경 379-380 (불교)
선을 행하는 자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요,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에 반하는 것이니, 그대 주님은 종복들에게 조금도 불공평하지 않으시니라.
꾸란 41.46 (이슬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오.
빌립보서 2.12 (기독교)
각 사람은 자신의 자아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야 하며, 남의 도움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법을 등불로 삼아야 하며, 그대들 이외의 다른 곳에서 귀의처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비구는 자신의 등불이 되고 자신의 귀의처가 되며, 끊임없이 자신의 몸과 느낌들과 지각들과 기분과 개념들을 관찰해야 한다. 범부의 욕망과 좌절을 정복한다는 신념으로, 항상 굳건하고 침착하며 바른 마음가짐으로 이와 같이 정진해야 한다.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후에 이와 같이 행하며 열심히 정진한다면, 그는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디가 니카야 2.99-100 (불교)
주 우리의 하나님은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다. 주께서 이 언약을 우리 조상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이다.
신명기 5.2-3 (기독교)
자기야말로 자신의 주인이니 어떤 다른 주인이 새삼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룸으로써 구하기 힘든 주인을 얻는다.
법구경 160 (불교)
도타카가 말했다. “샤캬족의 성인이시여! 저로 하여금 온갖 미혹에서 풀려나게 해주십시오.” 부처께서 말씀하셨다. “도타카여! 어떤 이를 미혹에서 풀려나게 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그대가 으뜸가는 가르침을 깨우친다면, 이로 인해 그대 스스로 이 미혹의 강을 건너게 되리라.”
숫타 니파타 1063-1064 (불교)
세상 끝까지 다 걸어 다닌다 해도 괴로움의 끝에 이를 수는 없다. 벗들이여! 내가 말하노니, 세계와 세계가 일어나는 원인과, 세계의 멸함과, 세계의 멸함에로 인도하는 행위가 놓여 있는 것은 한 길, 육신과 그 속에 사는 상념과 인상일 뿐이니라.
상윳타 니카야 1.62 (불교)
말씀 선집
신앙생활은 반드시 제삼자의 입장을 탈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을 따라 나가지만 선생님을 중심삼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이야 어떻든지 나 홀로 지켜 나가야 할 신앙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광야를 넘어서 가지고 이런 작은 집이라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천루같이 크지는 않더라도 여러분의 모델 형,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여러분 스스로 세워야 됩니다. 아무도 안 도와줍니다. 자립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죽을 자리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매일 하나씩 더하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지금까지 그렇게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전통입니다.
(248.134, 1993.08.01)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닙니다.
(36.31, 1970.11.08)
직접주관권과 원리결과주관권, 그때까지 자라 올라와 성숙할 때까지 되지 않고는 사랑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137.100, 1985.12.24)
만물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하여 성장기간(간접주관권)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리 자체의 주관성이나 자율성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기간을 경과하여 완성하도록 창조되었다. 즉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보면, 인간시조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어 따먹지 않고 완성되는 것이나, 그 말씀을 불신하여 따먹고 타락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완성 여부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만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책임수행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창조주로서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성장기간(간접주관권)을 다 경과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책임분담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간섭하셔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서만 완성되도록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성까지도 닮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에 가담케 하심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창조주의 입장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의 권한을 가지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창 1:28). 인간이 만물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5.2.2)
생명길은 누가 권고해서 가는 길이 아니요, 누가 이끌어줘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이를 감당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특별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배가 고플 때면 나 자신이 먹어야 되고, 목이 마를 때면 나 자신이 마셔야 되며, 외로울 때면 이것을 풀기 위해 하나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위안이 될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적인 이치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먹고 사는 데 있어서도 자기 스스로 주체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피동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자기 스스로 다짐하면서 생명의 힘을 가해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2.90, 1971.02.28)
2. 책임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배려
종교 경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창세기 2.15-17 (기독교)
랍비 아키바는 말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이기에 사랑받는 존재이다. 그러나 특별한 사랑으로 이 사실을 알게 하셨다. 창세기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창 9:6)”
미슈나, 아보스 3.18 (유대교)
하늘 향한 두려움 외에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
탈무드, 베라코트 33b (유대교)
사탄···저가 내 앞에 와서 이르기를, ‘보소서, 내가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나는 당신의 아들이 되겠사오며, 내가 모든 인류를 구속하여 한 사람도 잃지 아니하리니, 반드시 내가 이를 행하리다. 그러므로 당신의 영예를 내게 주소서’ 하였더라. 그러나 보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 곧 태초부터 나의 사랑하는 자요 선택된 자가 내게 말하되,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는지라.
이에 사탄이 모반하여 나,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미 부여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멸하려 하였고, 나의 권능을 자기에게 줄 것을 구하였으므로··· 저는 나의 독생자의 권능으로써 던지움을 받게 하였더라.
이에 저가 사탄이 되었나니, 참으로 악마요 모든 거짓의 아비라. 인간을 미혹케 하며 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는 많은 자를 자기의 뜻대로 포로가 되게 하였느니라.
값진 진주, 모세서 4.1-4.365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말씀 선집
인간의 완성을 바라는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인간과 일체 될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시조에게 계명을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간 시조에게 계명을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성장기간을 지나가는 미완성단계에 있었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자녀인 인간에게 가장 귀한 참사랑을 상속해 주시려는 조건이 계명이었습니다.
(277.197, 1996.04.16)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성을 닮게 하심으로써 피조세계의 주인으로 세우시어 가장 사랑하시기 위한 조건으로서 인간책임분담을 세우셨다.
(원리강론, 예정론 4)
통일교회 교인들은 책임분담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간이 보다 가치있는 내용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이 책임분담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책임분담을 완수했더라면 우리에게는 한(恨)이라는 말이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에 책임분담을 완수했더라면 인간과 천사세계, 전 피조세계는 기쁨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관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63.320, 1972.10.22)
하나님은 어찌하여 인생 가운데 책임분담을 세우셨던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그 전지전능한 창조성까지 부여하고, 또 영원불변한 사랑의 주체이시니 그 사랑의 주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책임분담을 주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요,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와 같은 것이기에 이것을 안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분담이 문제가 되어서 타락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0.210, 1968.06.09)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음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시듯이 인간도 만물세계를 주관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기 위하여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을 수행하면서 성장하여 완성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성장기간을 우리는 간접주관권, 혹은 원리결과주관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권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직접적으로 주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완성된 후에야 그들을 직접 주관하시게 되어 있다.
(원리강론, 타락론 6.1)
3. 책임지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고 생활환경을 소화함
종교 경전
심지어 감로수가 독에서 나올 수 있고, 우아한 말이 심지어 적에게서도 나올 수 있으며, 불순한 것으로부터 금이 나올 수도 있다.
마누법전 2.239 (힌두교)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아비가 설익은 포도를 먹으면 아이들의 이가 시큼해진다.’는 속담이 너희 이스라엘 사람이 사는 땅에 퍼져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너희 이스라엘에게 이런 속담을 말하지 못하게 하리라. 사람의 목숨은 다 나에게 달렸다. 아들의 목숨도 아비의 목숨처럼 나에게 달렸다. 그러므로 죄지은 장본인 외에는 아무도 죽을 까닭이 없다.”
너희는 “그 아들이 아비의 죄를 쓰고 벌을 받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고들 한다. 그 아들은 내가 정해 준 규정을 지키고 그대로 바로 살았는데 왜 죽겠느냐? 죽을 사람은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아들이 아비의 죄를 받거나 아비가 아들의 죄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바로 살면 바로 산 보수를 받고, 못된 행실을 하면 못된 행실의 보수를 받는다. 나는 너희 하나하나의 행실대로 다스리리라.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에스겔 18.1-30 (유대교)
어떤 은둔자들과 바라문들이 설하기를, 즐겁거나 슬프거나 또는 즐겁지도 슬퍼지도 않은 이 모든 일들이 지난 행위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내가 그들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지난 행위의 결과로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고, 도적이 되고, 부정한 자가 되고, 거짓을 말하는 자가 되고, 허튼소리 지껄이는 자가 되고, 시기 질투하는 자가 되고, 심술궂은 자가 되고, 사된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만 지난 행위에서 구하는 자들에게는 행위 할 욕망도 없고, 애써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이것은 행하고 저것은 행하지 않아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이기 때문에 행해야 할 필연성이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금해야 할 필연성도 없으며, 그대들은 다만 스스로 제어할 수도 제어할 필요도 없는 요소들에 몸을 내맡기며 살아갈 뿐인 까닭에, 은둔하여 수행을 닦는 자라는 말이 그대들에게 합당하지 않다해야 한다.”
다른 이들이 또한 설하기를, 즐겁거나 슬프거나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 모든 일들이 지고한 신의 창조(예정)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내가 그들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신의 예정으로 인해 사람들이 살인자가 되고, 도적이 되고, 부정한 자가 되고,··· 자신의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만 신의 예정에 돌리는 자들에게는 행위 할 욕망도 없고, 애써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으며, 이것은 행하고 저것을 금해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이기 때문에 반드시 행해야 할 필연성이나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금해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는 것이며, 그대들은 다만 스스로 제어할 수도 제어할 필요성도 없는 요소들에 몸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것일 뿐인 까닭에 ‘은둔하여 수행을 닦는 자’라는 말이 그대들에게 합당하지 않다 해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I. 173-174 (불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는 군자의 도와 닮은 점이 있다. 정곡을 못 맞추면 돌이켜 허물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중용 14 (유교)
사람은 생래적으로 원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나쁜 결과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힘쓰고 사람들은 당신을 도우려고 힘쓴다. 당신과 그들은 원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쁜 일이 일어날 때, 당신도 그들도 원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당신은 결과가 되고자 원한다. 그때 당신은 나쁜 결과를 발견한다. 당신은 결과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때 당신은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을 비난한다.
프리클리어를 위한 지침서 (사이언톨로지)
말씀 선집
문제는 누구냐 하면 나입니다.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세상에 대하여 불평을 합니다. ‘망할 세상 됐어’ 라는 말은 ‘나는 망하지 않을 사람인데 나 이외의 세상만 망할 때가 됐다’는 입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나쁜 것은 전부 다 세상에 갖다 걸어 놓고 불평하고, 좋은 것은 다 자기에게 걸어 놓고 좋아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잘못된 것을 불평하기 전에 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140.25, 1986.02.01)
아버지고 할아버지고 전부 내 대열에 서고, 천의에 의한 조상의 명부를 대신해 가지고 생사지권을 쥐고 결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실수의 모든 흠을 없애고 새로운 천지에 다리를 놓을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수십만 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나라와 수억만 사람의 희생의 대가를 치른 기반 위에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원소 하나하나가 부활하여 복합적인 구성체와 같은 존재로 태어난 것이 바로 책임을 잘못하면 여러분들의 조상까지 함께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24.77-78, 1983.01.23)
여러분들이 실패자가 되게 될 때는 전부다 후퇴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지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가지고 승리자가 될 때는 여러분의 후손들도 우리 조상이 갔으니 나도 가야 되겠다고 하는 영광의 길이 닦여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98.213, 1978.08.01)
복귀섭리역사가 오랜 기간을 두고 종적으로 요구하여 나오고 있는 탕감조건들을 나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복귀섭리역사가 바라는 결실체로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았던 선지선열들이 이루지 못한 시대적인 사명들을 이제 나를 중심하고 일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수한 개체가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지선열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들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근본 뜻,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졌던 섭리적인 사명들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원리강론, 후편서론 3)
4. 공적 책임은 개인적 책임에서 시작됨
종교 경전
옛날 명덕을 천하에 밝히려던 이는 먼저 그 나라를 잘 다스렸다. 그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이는 먼저 그 집을 바로잡았고, 그 집을 바로잡으려는 이는 먼저 그 몸을 닦았고, 그 몸을 잘 닦으려는 이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이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했다.··· 천자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 수신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근본이 흐트러지고 끝이 잘 다스려지는 법이 없느니라.
대학 (유교)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 받을 일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않으며, 난폭하지 않고 너그러우며, 다투지 않으며,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로 하여금 아주 공손히 복종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가정을 다스릴 줄 모르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디모데전서 3.2-5 (기독교)
말씀 선집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주관을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사랑의 실체인 개체를 주체적인 입장에 세워 놓지 않고는 가정도 불가능한 것이요, 나라도 불가능한 것이요, 국가도 세계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완전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2.97-98, 1969.01.26)
여러분은 슬픔과 고통과 죽음의 길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광의 자리에서 승리자가 되는 것보다 그 반대의 자리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그 승리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광의 세계는 저절로 올 것입니다. 어떤 지역을 책임지면 책임진 곳에 있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은 내 것이다, 내가 아니고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책임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