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1장 성장, 책임, 그리고 운명)

무지... | 20180601083836

선과 악
   
선과 악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선악을 결정할 수 있는 어떤 행동에 대한 정답이나 그 자체에 내재하거나 숨겨진 보편적 지참이 존재할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선과 악은 내적, 외적으로 구별된다. 문선명 선생의 말씀을 보면 어떤 때는 동기를 통해 선악을 구분하라고 하신다. 
    
다시 말해서 선행은 양심에 따라 행하는 행위인 반면, 악행은 몸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어떤 때는 선악을 마음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구별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내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헤아릴 수 없을 때, 명백하게 드러나는 지향점이 없을 때는 선과 악을 정확히 구별하기가 어렵다. 일이 다 끝나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문선명 선생은 때로는 내 행위가 결실을 맺어 선악이 명백해지는 그 순간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고 하신다.
  
이렇듯 문 선생님은 선악을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언제나 강조하시는 객관적인 한 가지 기준이 있다. 선은 이타적이며 남을 위하는 것이고 악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1. 선은 이타적인 것이며, 악은 이기적 욕망을 채우는 것

종교 경전 
  
아르주나여, 사심 없는 모든 행위는 영원 무한한 신성에서 생겨났다. 신은 모든 봉사 행위에 함께한다. 모든 삶은 이 법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오, 아르주나여, 자신을 위해 감각을 쾌락으로 삼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무시하며 이 법칙을 어기는 자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바가바드기타 3.16 (힌두교)
  
사람들 중에 자신의 영혼을 그릇되게 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 중간 과정을 따르는 자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고의 선행은 알라와 함께 하는 자, 그것이 최고의 은총이다.
꾸란 35.32 (이슬람)
   
누구든지 온갖 수단으로 다만 윤회하는 존재의 행복을 즐거워하는 자, 그는 비천한 사람으로 알아라. 누구든지 본심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마다하고 자신의 해탈을 위해 세속적 쾌락을 돌아보는자, 그는 다만 범부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라. 누구든지 자신의 고통으로 남의 고통을 없애려 하는 자, 그는 실로 수승한 사람으로 알아라.
보디파타프라디파 (불교)
   
인간에게는 네 가지 성품이 있다.
“내 것은 내 것이며, 네 것은 네 것이다”라고 하는 자는 평균의 사람이다. 어떤 이는 이것이 소돔인의 성품이라고 한다.
“내 것은 네 것이며, 네 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는 자는 규율을 모르는 사람이다.
“내 것도 네 것이며, 네 것도 네 것이다”라고 하는 자는 성인이다.
“네 것도 내 것이며, 내 것도 내 것이다”라고 하는 자는 사악한 사람이다. 
미슈나, 아보스 5.13 (유대교)
  
라훌라야, 만일 네가 몸으로 짓는 행위를 원한다면 그것을 다음처럼 숙고하라. “내가 몸으로 짓고자 하는 행위는 나를 해롭게 할 수도 있고 남을 해롭게 할 수도 있으며, 나와 남을 모두 해롭게 할 수도 있으니, 이와 같은 행위는 서투르고 의롭지 못하여 그것을 행함도 고뇌이며 그 결과도 또한 고뇌일 뿐이다.” 만일 이와 같이 여긴다면, 라훌라야, 그 행위는 결단코 삼가야 하느니라. 
맛지마 니카야 1.415 (불교)
    
만일 내가 자신을 위해 다른 이에게 해를 입힌다면, 나는 지옥에서 고통 받아야 하리라. 그러나 만일 다른 이들을 위해 나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나는 장엄한 모든 것을 얻게 되리라.
나 자신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나는 추하고 어리석은, 불쾌한 세계에 있는 나를 보게 되리라.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진다면, 즐거운 세계에서 영광을 얻으리라.
만일 내가 자기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쓴다면, 나는 예속을 경험하게 되리라. 그러나 만일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쓴다면, 나는 다만 숭고함을 경험하게 되리라.
샨티데바, 보살행의 도 8.126-128 (불교)
  
창조자를 공동 기원으로 하는 신들과 악마들은 서로 라이벌이었다.
그래서 악마들이 잔뜩 뽐내며 말했다.
“어디에 공물을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나아가서 자신들의 입에 공물을 넣었다.
신들은 나아가서 각기 자신의 벗의 입에 공물을 넣었다.
그러자 창조주는 그들에게 몰두했다.
샤타파타 브라흐마나 5.1.1.1-2 (힌두교)
  
말씀 선집 
  
악과 선의 방향은 어떻게 틀리느냐? 선은 언제나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상대적 입장에 서는 것이며, 악은 자기를 중심삼고 주체적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선한 것은 무엇이냐? 나를 희생시켜서 전체 목적 앞에 플러스되게 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러면 악은 무엇이냐? 전체를 나에게 끌어 당기게 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16.137, 1966.01.02)
   
그러면 이제 인간들에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뭐냐 하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 기준이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알았으니 그 관계가 일치돼 가지고 악이 무엇이고 선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확실하게 근본부터 가려 놓아야 됩니다. 악이 뭐냐? 악의 정의가 뭡니까? 사탄이 참소할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악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죄가 뭐냐? 사탄이 참소해 가지고 거기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게 되면 죄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죄의 뿌리를 다 알아야 됩니다.
    
악의 출발은 사탄 자신도 그렇고, 해와 자신도 ‘내가 주체가 돼 보자. 내가 중심이 되자’ 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자랑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주체를 위하여 있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있어라. 나를 위해서 있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은 대상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대상을 부정하고 ‘나를 위해 있어라’ 이렇게 된 겁니다. 이걸 근본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악의 기원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악한 사람은 뭐냐 하면 ‘나를 위하라. 전부 나한테 와서 굴복해라’ 이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때려 부숴야 되고 예수님도 이것을 때려 부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하지 말라. 자기 이익을 구하지 말라.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 봉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전부 반대입니다.
(69.85.1973.10.20)
   
여러분들이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를 무엇으로 판정하느냐? 개인주의적인 존재냐 공적인 존재냐에 오늘날 인륜 도덕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요, 악한 사람은 남을 착취하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교육의 표준을 그렇게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102.234, 1979.01.01)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적인 생각 밑에서 생각을 하고, 세계적인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의 자리에서 세계고 무엇이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세계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중심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겁니다.
    
한 사람은 역사적인 세계의 성인들을 생각하고, 그 나라의 애국자를 생각하고, 현세에 사는 유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그 길을 따라가려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성인건 무슨 애국자건 이 시대의 지도자건 신경 안 쓰고 ‘나’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것을 좋아합니까? 상대를 중심한 삶이 필요합니까, 자기중심적인 삶이 필요합니까? 어떤 게 여러분들의 실제입니까? ‘상대를 중심한 것입니다.’ 대답은 맞았는데 생각은 틀립니다. ‘생각도 맞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중심삼고 나서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게 실제이고 사실입니다.   
(117.214-215, 1982.03.07)
  
세계 인류를 세 종류로 분류해 본다면 선의 기준을 표준하고 볼 때 반대되는 사람, 선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 것으로 하지 못하는 완충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선을 내 책임으로 이루려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데 뜻 앞에는 마지막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뜻길, p.191)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받은 것을 잘라먹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고, 받은 것에 대해 플러스시켜 베푸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자신보다도 낮아지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315.210, 2000.02.02)
  
미국이 말하기를, ‘아! 세계는 난 모른다. 우리나라만 위하면 된다’ 이러면 세계 공법에 걸립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세계 사람들한테 상당히 추앙을 받아 왔지만 요즘에는 전부 다 ‘미국 사람’ 하게 되면 고개를 젓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날 카터 대통령 하게 되면 카터 대통령이 진짜 미국이 원하는 대통령 하게 되면 카터 대통령이 진짜 미국이 원하는 대통령이냐, 혹은 미국이 원치 않는 대통령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카터 대통령이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느냐 미국을 중심삼고 생각하느냐, 또 자기 선거를 위해서 행동하느냐, 장래의 미국을 위해서 행동하느냐,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전부 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이 갈라집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카터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하면 그건 미국 내에서만 대통령이 되지만,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가 공인하고 세계를 이익될 수 있게 하게 되면 세계 앞에 영향 준 대통령으로서 세계가 추앙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세계의 제재를 받는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겐 반드시 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걸리는 장본인이 뭐냐? 그 근본체가 뭐냐? 자기 중심, 자기 생각입니다. 자기를 위주한 데에서 다 걸립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법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 이렇게 자신 한다면 어떻게 해야 걸리지 않느냐? ‘나를 위해 살겠다.’ 이런 사람은 가는 데마다 걸립니다. ‘나는 보다 큰 세계를 위해 살겠다.’ 이렇게 할 때는 모든 법에서 해방됩니다. 모든 법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93.302, 1977.06.12)
  
 
2. 선악은 마음의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종교 경전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오는데,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태복음 15.19-20(기독교)
  
어찌 행위 그 자체에 선악의 분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만 선한 의지로 행하여지는 행위를 선행이라 이름할 뿐이다.··· 영혼을 청정하게 하는 행위나 그로 말미암아 영혼이 청정하게 하는 행위나 그로 말미암아 영혼이 청정하게 되는 행위를 미덕이라 하니, 언제나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주느니라. 그러나 영혼이 선을 멀리 피해 달아나게 하는 행위는 악행이니, 그것은 다만 마음의 불안을 도모할 뿐이니라.
푸자파다, 사르바르타싯디 6.3 (자이나교)
  
손에 상처가 없다면
독을 손으로 만질 수 있으리라.
상처가 없으면 독이 그를 해칠 수 없는 것처럼
그릇되게 행하지 않으면 악도 그를 해칠 수 없다.  
법구경 124 (불교)
  
말씀 선집 
  
본래 선과 악은 한 점에서 출발되었는데, 그 한 점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26.282, 1969.11.10)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 자기를 분별해 보면 양심은 선한 입장에 있고, 육신은 악한 입장에 있습니다.
(227.46, 1992.02.10)
 
마음의 방향과 방법에 따라 선이 생겨나기도 하고 악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바탕이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나가느냐에 따라서 선과 악이 갈라지게 됩니다.
(37.116, 1970.12.23)
  
전부 옳다는데, 그 중에 누가 선한 편이고 누가 악한 편이냐? 경계선이 있습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 이상의 것을 중심삼고 위를 위해서 보다 위하겠다는 사람은 선편의 자리에 서는 것이고, 자기를 위해 보다 낮은 것을 따라가겠다는 사람은 악 편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관직에 있는 사람이 나라를 위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선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선은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로부터 출발할 수 없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반드시 상대를 위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서부터 선이 출발된다고 보지 않은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 하게 되면 자기를 중심삼고 출발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살려하고, 남을 위하여 노력하며, 남을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생활하는 가운데서나 죽음에 임하는 자리에서 ‘저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라고 보편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은 자리를 위해서 출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출발 하는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악은 무엇이냐? ‘모든 것은 나를 위해서 있어라. 모든 것의 출발은 나를 위해서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가 악한 자리입니다. 선과 악이 어떻게 분기선을 두고 엇갈리느냐 하면, 남을 위하고자 하는 데는 선이 머무는 것이요, 나를 위주로 하는 데는 악이 머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두고 보면 그 마음은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남을 위해서 봉사해라, 남에게 자애심(自愛心)을 가져라. 남을 위해 희생하라. 남을 위해서 살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이 가는 길입니다.
(65.13-14, 1972.11.13)



3. 선악은 개인의 생활방식에서 드러남

종교 경전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거나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언제나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매지 않으면 그 나무는 찍혀 불에 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
마태복음 7.16-20 (기독교)
  
하나님께서는 정의와 선행을 명하셨고 친척에게 베풀어 줄 것을 명하시고 음란과 추행과 악행을 금지하셨노라. 너희에 대한 훈계이니 주의해야 할 것이니라. 
꾸란 16.90 (이슬람)
  
육적인 인간이 하는 일은 명백합니다.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기 맺기와 싸움과 시기와 분노와 당파심과 분열과 분파의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이제 또 경고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너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인데, 이런 것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3 (기독교)
  
하나님의 사도가 이와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천국에 들게 하는 가장 보편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좋은 성품이니라. 그러면 지옥에 들게 하는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두 개의 헛된 것이니 입과 은밀한 부분이니라.”
티르미디 및 이븐 마자흐 하디스(이슬람)
  
“백성들로서 죄를 짓고, 훔치고 약탈하고 소란을 피우고 또 살인을 하고 재화를 탈취하고, 기를 쓰고 악행을 저지르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너는 벌주고 처형하여 혼을 내주어야 한다.”
또 왕은 말했다. “봉아! 큰 죄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이며, 형제 간 우애가 없는 것이다.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지 않아 크게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으므로, 아버지도 아들을 자애할 수가 없고 도리어 아들을 미워할 것이다. 아우로서 하늘의 도리를 지키고 행하지 않아 그의 형을 존경하지 않으므로, 형도 동생을 애달프게 생각하지 않고 동생을 우애롭게 사랑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직접 우리 위정자에게 죄를 진 것이 아닐지라도, 하늘이 내려준 백성이 지킬 인륜의 질서를 크게 흩트리는 것이 된다.” 
서경 5.9 (유교)
  
말씀 선집 

선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를 위하려는 자리에서는 선한 종자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이익을 보겠다는 패들 가운데는 선한 종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남의 빚을 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41.91, 1971.02.12)
  
선과 악은 생각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 결정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여러분의 관념 세계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40.294-295, 1971.02.07)
  
악은 강제로 하는 것입니다. 순리가 아니라 역리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압이요, 공포요, 공갈이요, 협박이요, 생명을 위협하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60.61, 1972.08.06)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끝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은 역사가 길기 때문에 결말이 늦게 나타나지만 나쁜 일일수록 결말이 빨리 나타납니다. 선한 것은 영원과 보조를 맞추지만, 악한 것은 순간과 보조를 맞춥니다. 망하는 행위는 순간에 도취하지만, 흥하는 행위는 영원에 도취합니다. 영원에 취할 수 있는 행위 터전은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18.64-65, 1967.05.21)

선악을 어떻게 결정하느냐? 선은 보다 공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요, 악은 사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충신이나 열녀도 전부 다 이 기준에 의해 결정됩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 살면 살수록 더욱더 선해지는 것입니다. 악은 개인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선은 큰 것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을 위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남자면 남자로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은 다음에 그 동네에서 칭찬받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개인이 가정을 찾은 다음에 종족을 찾아야 하고, 민족을 찾아야 하고, 국가를 찾아야 하고, 세계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31.236, 197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