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계발(세계경전 - 제3부 인생의 여정 - 제11장 성장, 책임, 그리고 운명)

무지... | 20180530080548

선의 계발

선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악이 지배하고, 우리 몸 마음을 오염시키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성품을 계발하는 것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과 같다고 보았다. 오랫동안 지속적인 노력으로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은 선한 습관을 형성하게 된다. 수년간 길러진 선한 습관은 선한 성격 형성으로 이어진다. 인간의영혼은 좋은 작물을 얻기 위해 씨 뿌리고 경작하고 매일매일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 들판과 같다.

선을 추구하는 대신에, 작은 잘못이라고 취급해 자기의 과오를 하나씩 묵과하고 지나가다 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쁜 습관들이 서서히 몸에 배게 된다. 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낳는다. 문선명 선생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악은 타락 인간 안에서 번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선하게 살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아주 작은 과오가 우리를 몰락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1. 실천적 생애를 통한 선의 개발

종교 경전 

악한 일 멀리하고 선한 일 두루 증장하여 청정한 마음을 닦으라. 이것이 부처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법구경 183 (불교)

더욱 더함(益): 군자가 볼 때 선함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역경 42 (유교)
항상 토라와 자선에 힘써라. 심지어 다른 저의가 있을 때조차도, 선행의 습관이 쌓여 결국 동기까지 선하게 될 것이다.
탈무드, 페사힘 50b (유대교)

지혜로운 사람은 차례차례 조금씩 자기의 때를 없앤다. 금 세공장이가 은의 때를 벗기듯이. 
법구경 239 (불교)
꿋꿋한 인내와 다함없는 열망으로 참아 견뎌내며 자기를 닦는 지혜로운 이는 큰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는 섬이 된다. 
법구경 25 (불교)

토라를 연구하면 정확한 사람이 된다. 다음은 열정을 갖게 되며, 열정을 넘어 청결함으로, 청결을 넘어 자제력으로, 자제력을 넘어 순결함으로, 순결함을 넘어 고귀함으로, 고귀함을 넘어 온순함으로, 온순함을 넘어 죄를 경계하는 사람이 되며, 다음은 숭고함으로, 숭고함을 넘어 거룩한 영혼으로, 거룩한 영혼 이후에는 영원한 삶으로 들어간다.
탈무드, 아보다 자라 20b (유대교)
청정한 제자들이 육신 안에 거하면서 바라보는, 눈부시게 빛나며 순수한 이 아트만은 진실, 고행, 바른 지식, 금욕의 끊임없는 실천에 의해 얻어진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3.1.5 (힌두교)
여러분은 열심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도록 하시오.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풍족해진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있어서 쓸모없는 자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5-8 (기독교)
들어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다. 그런데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 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별로 없는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났지만 흙이 깊지 않아 해가 뜨자 싹은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 말라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자라 그 기운을 막아버리니 열매를 맺지 못했다. 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씨들은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가 삼십 배도 되고, 육십 배도 되고, 백배도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느냐? 씨를 뿌리는 사람은 곧 말씀을 뿌리는 사람이다. 길가에 뿌려진 씨라는 것은 말씀을 뿌리는 사람이다. 길가에 뿌려진 씨라는 것은 말씀이 뿌려지기는 하나 그들이 그 말씀을 듣자마자 사탄이 와서 그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돌밭에 뿌려진 씨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긴 하나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후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라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나 세상살이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라는 것은 계속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더러는 삼십 배, 더러는 육십 배, 더러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가복음 4.3-20 (기독교)

말씀 선집 

선과 악은 미래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하루하루 시간에서 결정된다. (뜻길, p.36)
마음, 생각 가지고는 선악이 결정 안 됩니다. 행동을 해야 선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행동 안 하는 열정 가지고는 죄로서 규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무엇을 하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결정을 못 하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적 결과로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생각만 가지고 다 안다고 해야 그 세계와 나는 아무 관계없습니다.
(359,166, 2001.11.07)
여러분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그냥 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보는 연습을 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한 번 들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음악에 대해 깊고 세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적 과정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말하는 것이 남보다 드러나고 특출하기 위해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훈련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 쓰는 것,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다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명상이니 기도니 하는 것도 그것을 위한 하나의 수양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7.178, 1973.06.10)


이름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많이 닦고 만지고 수많은 연습을 했기 때문에 그 바이올린 통의 음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알고 하기 때문에 화음이 될 수 있는 음의 구조가, 그 자체의 세포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소리가 신비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기도는 뭐냐?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안테나를 꽂고 있어야 됩니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41: 179, 1992.12.24)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선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느냐? 먼저 양심을 통하여 본체의 선을 닮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여 하나님의 본체의 선과 말씀의 가치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피조만물을 지으시던 선의 이상인 기쁨을 찾으실 것이요, 선의 목적을 지향해온 인간들도 하나님의 선의 가치를 느끼는 선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전부 좌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320, 1957.07.21)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양성)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음성)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성장한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으로부터 생력요소를 받는 반면에 그가 육신에게 돌려보내는 요소도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생령요소라고 한다. 인간이 신령에 접함으로써 무한한 기쁨과 새로운 힘을 얻어서 고질(痼疾)이 물러가는 등 그 육신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그 육신이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을 터로 하여서만 성장한다. 그러므로 영인체와 육신과의 관계는 마치 열매와 나무와의 관계와 같다. 생심(生心)의 요구대로 육심(肉心)이 호응하여 생심이 지향하는 목적을 따라 육신이 움직이게 되면 육신은 영인체로부터 생령요소를 받아 선화(善化)되고 그에 따라 육신은 좋은 생력요소를 영인체에 다시 돌려줄 수 있게 되어 영인체는 선을 위한 정상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심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리로 생심이 요구하는 것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해야만 생령요소와 생력요소가 서로 선의 목적을 위한 수수작용을 하게 된다.

그런데 생령요소와 생력요소는 각각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악인에 있어서도 그의 본심이 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그 생령요소가 항상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그 요소도 육신의 선화를 위한 것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따라서 생령요소와의 사이에 있어 올바른 수수작용을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창조원리 6.3.2)
몸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교만하지 마십시오.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전부 몸뚱이를 치는 것입니다. 3년 이상 희생 봉사하라, 금식하라 하는데, 그거 인간이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245.58, 1993.02.28)
  

2. 선은 더 나은 선을 인도하지만, 선을 무시하면 악으로 빠짐
  
종교 경전 
  
선한 일은 서둘러 행하고 악한 일에서는 마음을 삼가라.
선한 일 행함에 나태하면
그는 이미 악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법구경 116 (불교)
  
작은 가르침이라도 행하려 노력해라. 죄로부터 도망가라.
교훈은 또 다른 교훈을 낳고, 죄는 또 다른 죄를 낳는다.
교훈의 보답은 또 하나의 교훈이며, 범죄의 보상은 또 하나의 죄이다.
미슈나, 아보스 4.2 (유대교)
   
내게 업보가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말하며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비록 작아도
점차 큰 물병을 채우나니, 
어리석은 이도 이와 같아
작은 악이 쌓여 그를 죄로 채운다.
내게는 과보가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말하며
선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비록 작아도
점차 큰 물병을 채우나니
지혜로운 이도 이와 같아
작은 선이 쌓여 그를 복으로 채운다.  
법구경 121-22 (불교)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복음 13.12 (기독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요한복음 8.34 (기독교)
  
검은 염소는 어두워지기 전에 일찍 붙잡아야 한다.
이갈라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맹자가 고자에게 말했다. “산중에 있는 오솔길도 사람들이 줄곧 밟고 다니면 큰 도로가 되지만, 한동안 내버려두면 다시 띠풀에 막히고 만다. 지금 그대의 마음도 띠풀로 막히고 말았으니라. 
맹자 VII. B. 21 (유교)
  
또 하늘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 그는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주인님, 주인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네가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다가와서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나아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너는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받았을 것이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5.14-30 (기독교)
 
선이 쌓이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이 쌓이지 않으면 몸을 망치게까지 이를 수 없으니, 소인은 조그마한 선을 무익하다 하여 행하지 않고 조그마한 악을 무방하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서 숨길 수 없게 되고 죄가 커져 해소할 수 없게 되니, 역(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목에 채우고 귀를 자른다. 흉하다” 하였다.
역경, 계사전, 2.5.7-8 (유교)

말씀 선집 

몸은 마음의 명령에 순종 굴복해야만 우리 개체는 선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몸이 마음의 명령에 반역하여, 마치 가인이 아벨의 죽인 것과 같은 입장을 반복하기 때문에 개체는 악하게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1.2)
  
습관적으로 어정어정 왔다 갔다 하고 주일날도 왔다 갔다 하는, 진전도 없이 그저 그냥 정지 상태에서 따라 나온 사람들은 뜻을 위해서 무엇을 의욕적으로 실천한 경력이 없기 때문에, 남이 좋다 나쁘다 해도 좋은지 나쁜지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10년을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러한 자리에 있구나’ 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89.231-232, 1976.12.01)
  
사람은 본래 악을 피하고 선을 추구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선한 세계를 세우고 악한 세계를 제거하기 위하여 언제나 달려가고 있지만, 그 반면 내 자신 속에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을 향하여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잘 느끼고 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강하게 들고 나오면 나올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악한 마음이 언제나 대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선한 마음은 어떤 목적을 향하여 나가더라도 그 목적하는 바를 확실히 알 수 없고, 목적하는 그 세계를 향하여 가는 데 있어서도 선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과정이라든가 인연을 발견하기 어려운 반면에, 악한 것은 그 과정에 꽉 차 있고, 그 과정을 거쳐 끝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라볼 때 참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고독한 생활, 슬픈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물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36.51-52, 1970.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