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여인들(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 제9장 하나님의 섭리역사)

무지... | 20180518083010

성경의 여인들
  
하나님의 섭리의 경륜에 여인들의 위대한 신앙과 헌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로부터 예수의 생애 중 중요한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성서는 상당한 개인적 대가를 치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노력한 여인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옛날 여자의 삶은 쉽지 않았지만 이러한 여인들은 하나님에의 강한 믿음을 유지하면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애써왔다.
  
남편 아브라함을 돕기 위해 사라는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였으며 심지어 바로의 여자가 되는 모험을 받기도 했다. 밧세바는 자기 남편을 죽인 다윗 왕의 아내가 되었는데 다윗 왕에 충성함으로써 죽은 남편을 영예롭게 해야 한다는 일관된 태도로 고통을 삼켰다. 
  
한편, 리브가는 아들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택함 받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들을 돕기 위해 남편을 거역했다. 야곱과 에서와 같은 입장에 있었던 라헬과 레아는 자매간의 경쟁관계로 서로 다투었다. 다말과 마리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혼외 자식을 낳기 위해 자기의 삶을 묵묵히 걸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에의 헌신적 모범을 보였는데 이는 열 두 제자들의 삶보다 더 나은 사례로 꼽는다.
   
문선명 선생은 이런 여인들의 각별한 삶을 관통하는 맥락을 읽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혈통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에 선택된 여인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위대한 신앙적 기반을 통해서 여자 이브의 실수를 복귀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현실을 도전할 환경에 처하게 하였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1. 사라

종교경전 
 
마침 그 지방에 흉년이 들었는데, 그 흉년이 너무나 심하여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몸 부쳐 살려고 옮겨간 일이 있었다. 이집트 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에게 당부하였다. “나는 당신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오,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당신의 남편이라고 해서 나를 죽이고 당신만 살려둘 것이오, 그러니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 덕으로 죽음을 면하고 대접도 받을 것이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들어갔다. 이집트인들이 보기에 그의 아내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집트 왕의 신하들은 그를 보고 왕 앞에 나아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고 아뢰었다. 그리하여 사래는 왕궁으로 불려들어갔다. 아브라함은 그 덕분에 대접을 받고 남종들과 여종들, 양떼와 소떼, 암나귀와 수나귀, 그리고 낙타를 여러 마리 받았다. 그러나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불러들인 벌로 온 가족과 함께 여호와께 무서운 재앙을 받았다. 왕은 아브라함을 불러 꾸짖었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을 했느냐? 왜 그를 네 아내라고 하지 않았느냐? 왜 이 여자를 네 누이라고 속여 내 아내로 삼게 하였는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데리고 당장 물러가거라.”
이집트 왕은 부하들에게 명하여 아브라함을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함께 내어보냈다.
창세기 12.10-20 (기독교)
  
말씀선집 
  
아브라함이 떠나자고 할 때 어서 가자고 했던 사라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바로 앞에서는 남매 사이라고 하자고 했을 때 사라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놈의 영감, 그렇게 고생을 시켜서 끌어내더니만 이제는 여편네는 그만두고 오빠라고 부르라네’ 이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소나기가 와도 그냥 갔을 것입니다. 집시의 무리가 된 그들에게 누가 밥 한 그릇이라도 갖다 주었겠습니까? 오늘은 이쪽으로 내일은 저 쪽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을 대해 ‘이놈의 영감, 밤에 보다 낮에 보나 아침에 보나 재수 없는 영감이 됐어.’ 그런 주제에 또 남편인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라니…. 이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난을 거쳐 나오는 가운데서도 사라는 아브라함의 소망의 길과 일치될 수 있어서, 아무런 상충도 없이 하나 될 수 있어서, 아무런 상충도 없이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주체가 있을지라도 이상적인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주체인 아브라함 앞에 이상적인 상대가 나왔는데 그 이상적인 상대를 치려고 할 때는, 완전한 이상적인 주체 앞에 완전한 이상적인 상대형이 있는데 이것을 치려 할 때는 하나님께서 ‘야 이놈!’ 하실 수 있습니다.
(49.144, 1971.10.09)
   
아벨보다 못한 노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노아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무엇이 노아보다 낫느냐? 아브라함의 아내는 아브라함이 남매처럼 행동하자고 했을 때도 ‘예!’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마누라, 당신하고 나하고 형제처럼 행동 합시다’ 할 때 그의 아내는 반대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렇게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하나 된 어머니 사라의 품에서 자란 이삭은 목이 잘리게 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왔던 것입니다.
(46.322, 1971.08.17)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서, 아담가정의 입장을 탕감 복귀하는 상징적인 조검은 세우기 위하여 이러한 섭리노정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아직 남내가 같은 입장에 있었을 때에 천사장이 해와를 빼앗아 감으로 인하여, 그의 자녀들과 만물세계까지 사탄의 주관 하에 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우려면,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매와 같은 입장에서 처 사라를 사탄의 실체인 바로에게 빼앗겼다가 그의 처의 입장에서 다시 그녀를 찾아옴과 동시에, 전 인류를 상징하는 롯과 만물세계를 상징하는 제물을 찾아오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창 14:16). 아브라함의 이러한 노정은 후일에 예수님이 오셔서 걸어야 할 전형노정이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3.1.2.1.)


2. 리브가
  
종교경전 
  
리브가는 이삭이 아들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는 에서가 사냥하러 들에 나간 틈을 타서 아들 야곱에게 귀띔해 주었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사냥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 오라 하시면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잡수시고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겠다고 하시더구나. 그러니 야곱아!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여라. 양떼들한테 가서 살진 염소 새끼 두 마리만 끌고 오너라. 내가 그것으로 아버지 구미에 맞게 잘 요리해 줄 터이니 그것을 아버지께 갖다드려라. 그러면 아버지가 잡수시고 세상을 뜨시기 전에 너에게 복을 빌어 주실 것이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형 에서는 털이 많고 저는 이렇게 털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저를 만져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아버님을 놀리기나 한 것처럼 되어 복은커녕 도리어 저주를 받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야곱아, 네가 받을 저주는 내가 받으마.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어서 가서 염소 새끼나 끌어 오너라.”  
창세기 27.5-13 (기독교)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복을 빌어준 일로 야곱을 미워하였다. 에서는 속으로 ‘아버지 상을 입을 날도 멀리 않았으니, 그 때 동생 야곱을 없애버리리라’ 하고 마음먹었다. 리브가는 큰아들 에서가 한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놓고 일렀다. “큰일 났다. 형 에서가 너를 죽이지않고는 속이 풀리지 않을 모양이다. 그러니 야곱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곧 하란으로 몸을 피해 라반 아저씨를 찾아가거라.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잠시 외삼촌댁에 가 있거라. 네 형의 노여움이 풀려 네가 한 일을 잊을 만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마. 한꺼번에 너희 두 형제를 잃고서야 내가 어떻게 살겠느냐!” 리브가가 이삭에게 호소하였다. “헷 여자들이 보기 싫어 죽겠습니다. 만일 야곱이 이 땅에 사는 저 따위 헷 여자를 아내로 맞는다면 무슨 살맛이 있겠습니까?”
이삭은 야곱을 불러들여 복을 빌어주며 단단히 일렀다. “너는 아예 가나안 여자에게 장가들지 마라. 너는 바딴아람의 브두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라반 아저씨의 딸 하나를 아내로 삼아라.”  
창세기 27.41-28.2 (기독교)
  
말씀선집 
  
역사시대에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 재산, 역사적 전통이나 모든 것을 끊고 대대적인 혁명, 하늘의 사랑의 길을 찾기 위해서 대혁명을 하는 하나의 여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데 있어서 자기 어머니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조차, 축복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맏아들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작은 아들과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속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놀음이 세상에 있습니까? 그것을 보면 야곱도 사기꾼이요, 어머니도 거짓말쟁이입니다. 이게 왜 성경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왜 이렇게 출발해야 되느냐 이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축복을 빼앗고,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다는 것은 모든 세상을 찾아오는 조건으로 하나님이 허락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세계에 가서 공개적으로 ‘야야, 너, 내가 모든 기업을 빼앗으러 왔으니, 나한테 의논해서 싸인 해라’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네가 한 대로 나도 해야 된다. 네가 한 대로 나도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네가 한 대로 나도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빼앗아 갔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찾아온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사탄이 어떻게 빼앗아 갔느냐? 거짓말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을 속였습니다. 아들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아들과 아버지를 속였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남편까지 속였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한다, 이놈의 자식아!’ 하며 빼앗아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하늘 편이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삼고 여자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사탄과 해와가 하나 돼서 타락했으니 하나님과 여자가 하나 되어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사탄과 하나 되어 아담을 끌고 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여자가 하나 되어 남자를 끌어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리브가와 야곱이 하나 되어 여기로 끌어오는 자리입니다. 자기 아들과 남편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다 이해가 됩니다.
(105.118-120, 1979.10.04)
  
에서가 어머니와 야곱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불만을 갖는 한 그 가정은 영원히 하나 안 됩니다. 에서와 아버지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자연히 ‘찬양합니다.’하게 해야 됩니다. 아들인 에서도 , 아버지인 이삭도 찬양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본연의 자리에 못 들어갑니다.
   
그러니 아들과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정성과 수고로 눈물을 흘리고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백 번 사죄하고 천 번 사죄해서 용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야곱이 나타날 때 그 아버지의 마음, 에서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같이 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자연굴복이라는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인의 입장인 에서와 사탄편의 입장인 아버지를 자연 굴복시키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그러려면 그 어머니가 야곱의 몇 백배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야곱이 돌아와도 에서가 죽이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고, 몇 번씩 되풀이하여 맹세를 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얼마나 에서를 안팎으로 감화시켰겠습니까? 어머니는 그러한 책임을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244.240-241, 1993.02.14)
    
해와가 타락할 때 사탄을 중심삼고 하나 되었습니다. 그러면 해와는 어떤 존재로, 어떤 입장에 섰느냐? 하나님을 부정하고 남편을 부정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아가는 데는 남자가 먼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아버지와 같고 사탄 세계의 남편과 같은 이런 것을 반대하는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여자가 아니고는 이리 돌아 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공식을 중심삼고 종교는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본래의 종교는 남자의 종교가 아니라 신부의 종교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종교 생활하는데 언제나 남자들은 반대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에서는 언제나 사탄이 반대하고 남자들이 반대하기 마련입니다.
(89.208, 1976.11.22)

 
3. 라헬과 레아
    
종교경전 
  
여호와께서는 레아가 남편에게 차별 대우 받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셨다. 그러나 라헬은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였다. 레아는 마침내 임신하여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는 “여호와께서 나의 억울한 심정을 살펴주셨구나.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겠지” 하면서 아기 이름을 르우벤이라 불렀다. 레아는 또 임신하여 아기를 낳았다. 그리고 “내가 차별 대우를 받아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여호와께서 나에게 또 아들을 주셨구나!” 하면서 아기 이름을 시므온이라 불렀다. 그는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아들을 셋이나 낳아드렸으니 이제는 남편이 별수 없이 나한테 메이겠지”하면서 아기 이름을 레위라 불렀다, 그는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리라”하면서 아기 이름을 유다라 불렀다. 그 뒤 얼마 동안 레아는 아기를 낳지 못했다.
   
한편, 라헬은 야곱에게 아기를 낳아주지 못하게 되자 언니를 시새우며 야곱에게 투덜거렸다. “저도 자식을 갖게 해주셔요. 그러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어요” 야곱은 라헬에게 화를 내며 야단을 쳤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태를 닫아 아기를 못 낳게 하시는데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러자 라헬이 말하였다. “저에게 몸종 빌하가 있지 않습니까? 그의 방에 드셔요. 빌하가 혹시 아기를 낳아 제 무릎에 안겨줄지 압니까? 빌하의 몸에서라도 아들을 얻어 당신의 혈통을 이어드리고 싶어요.” 라헬은 몸종 빌하를 야곱의 소실로 들여보냈다. 야곱이 그와 한자리에 들었더니 빌하가 마침 임신하여 야곱의 아들을 낳았다. 라헬은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바로 보살펴 내 호소를 들으시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하면서 아기의 이름을 단이라 불렀다. 라헬의 몸종 빌하가 또 임신하여 야곱에게 두 번째로 아들을 낳아주었다. 
  
라헬은 “내가 언니와 겨루는데 하나님께서 편들어주셔서 드디어 이겼구나!” 하면서 아기 이름을 납달리라 불렀다. 보리를 거둘 때가 되어 르우벤이 밭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하여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드렸다. 라헬이 이것을 알고 레아에게 졸라댔다. “언니 아들이 캐어 온 자귀나무를 좀 나누어 주구려” 그러나 레아는 “네가 나에게서 남편을 빼앗고도 무엇이 부족해서 이제 내 아들이 캐 온 자귀나무마저 달라느냐?”하며 역정을 내었다. 그러자 라헬은 “언니 아들이 캐온 자귀나무를 주면 오늘 밤 그분을 언니 방에 드시도록 하리다”하였다. 저녁때가 되어 야곱이 밭에서 돌아오자 레아가 나가서 맞으며 “당신은 오늘 제 집에 드셔야 합니다.”하며 자기 아들이 캐 온 자귀나무로 치른 값을 해달라고 하였다. 야곱은 그 날 밤 레아와 한자리에 들었다. 하나님은 레아의 호소를 들으시고 레아에게 아기를 점지해 주셨다. 그리하여 레아는 야곱에게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아주었다. 레아는 “내가 남편에게 내 몸종을 드린 값을 이제 하나님께서 갚아주셨구나” 하면서 아기 이름을 이싸갈이라 불렀다. 레아가 다시 임신해서 여섯 번째로 야곱에게 아들을 낳아주었다. 레아는 “하나님께서 이렇듯이 나에게 좋은 선물을 주시다니, 내가 남편에게 아들을 여섯이나 낳아드렸으니 이제는 그분이 나를 위해주시겠지” 하면서 아기 이름을 즈불룬이라 불렀다. 그 후 레아는 또 딸을 낳고 이름을 디나라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라헬도 돌보시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셨다. 마침내 라헬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는 “하나님께서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주셨다”하면서 아기 이름을 요셉이라 부르고 “여호와께서 나에게 아들을 하나 더 점지해 주시면 오죽이나 좋으랴!”하였다.  
창세기 29.31-35, 30.1-24 (기독교)
  
말씀선집 
  
야곱이 하란에 가서 21년을 거치면서 7년 동안 라헬을 얻으려고 수고했는데 아버지인 라반이 사탄편인 레아를 갖다 품겨 줬습니다. 야곱이 복귀할 수 있는 아담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레아를 통해 타락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레아를 품고 넘어가서야 라헬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계 전체 섭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두 여자가 나타납니다. 타락한 여자와 복귀도니 여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레아가 동생 라헬의 사랑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사탄편의 대표인 라반을 중심삼고, 구원섭리에 있어서 사탄이 레아를 품고 라헬의 갈 길까지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두 여자의 사랑싸움이 야곱가정의 문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과 사탄이 출발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입장과 라헬적인 목적을 따라가는 본연의 세계에서 가인이 나타나서 자기 중심삼은 사랑은 차지하기 위한 놀음을 한 것과 마참가지의 형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이 먼저 주도권을 쥐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상을 파괴시키고…. 이것이 2천 년 후에 야곱 가정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탕감복귀입니다.
  
탕감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탄 편인 아버지가 레아 편에 서 있는데, 어머니는 사탄 편을 이기기 위해서 레아와 라헬을 하나 만드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아벨(야곱)을 세워 가지고 가인(에서)을 구슬리고 이삭을 굴복시키기 위해 내적으로 얼마나 고충을 받았겠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라헬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야곱이 라헬과 레아와 하나 된 자리에서 라헬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형님이 자연 굴복해야 됩니다. 형님 100퍼센트 굴복해서 동생을 장자와 같이 모시고 형님같이 모셔야 합니다. 거꾸로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44.239-240, 1993.02.14)
   
지금 미국 여자 가운데 행복한 여자들이 있습니까? 전부 레아와 라헬과 같은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도수를 넘어 평준화되어서 프리섹스까지 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레아와 라헬이 시기하는 것을 중심삼아 하늘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같은 자리에 서야 될 입장에 있으니, 사랑을 중심삼고 수평 기준에 놓이다 보니 프리섹스와 같은 개념이 들어온 것입니다.
   
사랑싸움 때문에 레아를 중심삼은 종들 세 여인이 10아들을 낳고, 라헬은 2아들을 낳으니 이것이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 가인세계와 아벨세계로 완전히 갈라진 것입니다. 가정에서 사랑분쟁이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10지파와 2지파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워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244.248-249, 1993.02.14)

   
4. 다말
 
종교경전 
  
유다는 맏아들 에르에게 아내를 얻어주었는데 그의 이름은 다말이었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의 눈 밖에 나서 죽었다. 유다는 오난에게 이르기를 형수에게 장가들어 시동생으로서 할 일을 하여 형의 후손을 남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고 오난은 형수와 한자리에 들었을 대 정액을 바닥에 흘려 형에게 후손을 남겨주지 않으려 하였다. 그가 한 이런 짓은 여호와의 눈에 거슬리는 일이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도 죽이셨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들 셀라가 어른이 될 때까지 친정에 돌아가 홀몸으로 기다려다오.” 그마저 형들처럼 죽을까봐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말은 친정에 돌아가 살게 되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었다. 유다는 상을 벗은 다음,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갔다. 한편 다말은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온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과부의 옷차림을 벗어버리고 너울을 써서 몸을 가리고 딤나로 가는 길가에나임 성 문에 나가 앉았다. 셀라가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기를 아내로 데려가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다는 그 여자가 얼굴을 가린 것을 보고 창녀려니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길가에 있는 여인에게로 발길을 돌리며 수작을 건넸다. “너한테 들러 가고 싶구나. 어서 가자.” 그 여인이 바로 자기의 며느리라는 것을 알았을 리가 만무하다. 다말은 화대로 무엇을 주겠느냐고 물었다. “내 양떼 가운데서 새끼 염소 한 마릴르 보내마.”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그걸 보내주실 때까지 담보물을 맡겨주세요”하고 그 여자가 말했다. 그가 물었다. “무슨 담보물을 주어야 하나?” 그 여자가 대답했다. “당신의 그 줄 달린 인장과 잡고 있는 지팡이면 됩니다.”그래서 그것을 주고 한자리에 들었는데 마침 그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는 돌아가 너울을 벗고 과부 옷차림으로 바꾸었다.
   
석 달쯤 지나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창녀 짓을 하여 아이까지 가졌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유다는 그를 끌어내어 화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하여 다말은 끌려 나오게 되자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이 물건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나는 그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이 줄 달린 인장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인지 보아주십시오,”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고 “그 애가 나보다 낫구나! 내가 내 아들 셀라에게 그 애를 아내로 맞게 하지 않았으니…”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몸을 풀 때가 다 되어 그의 태에 쌍둥이가 들어 있는 것이 나타났다. 그런데 몸을 막 풀려고 하는데 한 아이가 손 하나를 내밀었다. “이 아이가 먼저 나온 놈이다.” 산파는 그 손을 잡아 진홍 실을 매두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손을 안으로 다시 끌어 들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아우가 나오자 “이 밀치고 나온 놈!” 하고 산파가 말하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베레스라고 지었다. 뒤따라 손에 진홍 실을 맨 형이 나오자 그의 이름을 제라라고 지었다.   
창세기 38.6-30 (기독교) 
  
다말은 제사장의 딸이었다. 그녀의 성품이 순결하고 자제력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시아버지와 관계 맺는 것을 일부러 꾸몄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결국 다말은 덕 있는 여성이었으며 창녀가 아니었다. 그녀가 시아버지 유다에게 접근한 것은 심오한 뜻과 지혜로부터 나온 것이다. 또한 죽은 남편들을 향한 충심에서 한 행동이었다. 하늘이 그녀를 도와 곧바로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깊은 뜻을 알고서 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다윗, 솔로몬, 나아가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유대 왕국의 씨가 뿌려진 두 여인이 있다. 그들이 다말과 롯이다. 이 두여인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첫 번째 남편을 잃었고, 남편을 대신하기 위해 비슷한 길을 걸었다. 다말은 유다가 죽은 남편들의 가장 가까운 근친이었기 때문에 유다를 유혹했다…롯은 보아스를 유혹했는데, 룻기 3장 7절에 “롯이 살그머니 다가가서, 보아스의 발치를 들치고 누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여인으로부터 유대왕국의 씨가 이어졌고, 완성에 이르게 되었다. 두 여인 모두 신앙심의 발로로 한 행동이었고, 죽은 남편들을 향한 예를 지켰다. 이는 모두 혈통을 이어 앞으로 올 하늘 세상을 준비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조하르 1.188a b (유대교)

  
말씀선집 
  
야곱의 아들 가운데 유다지파가 있습니다. 유다는 넷째 아들입니다. 유다의 첫째 아들이 결혼했는데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이어받아 대를 이어주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아들이 어떻게 했느냐 하면, 형수를 이어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벌을 주어서 죽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셋째 아들은 꼬마입니다. 셋째 아들은 어리기 때문에 이 형수가 유다지파의 대를 이을 가망성이 없으니 큰일 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말이 대를 이르려면 어느 계통을 이어야 되겠습니까? 유다지파의 계통을 이으려면 갓난 애기밖에는 없으니 자기는 다 늙어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혁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무었을 하느냐? 하나님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내 집 망신이든, 내 무엇이든 생각지 않는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창녀의 옷으로 갈아입고, 자기 시아버지가 농사지으러 왔다 갔다 하는 길가에 나가서 자기 시아버지 유다를 꼬여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맺고는 기념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지팡이를 주고, 도장과 도장 끈도 주고, 염소를 주니 그 예물을 받고 아기를 베어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한 5, 6개월이 되어 다말의 배가 점점 불러 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유다에게 당신의 며느리 되는 사람이 과부인데 이렇게 아기를 배었으니 돌로 쳐 죽여야 된다고 공론을 했습니다. 그때 ‘이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니, 이 지팡이의 주인이요, 도장과 도장 끈 주인이요, 이 예물을 준 사람이라고 해서 유다에게 갖다 주어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비정상적인 길을 가는 여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새로운 혈통이 뻗어 나온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는 것입니다. 몸을 먼저 바치면, 그것은 순수하게 백 퍼센트 사탄 것입니다. 백 퍼센트 사탄 편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부정하는 입장에 서면 그것이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여자, 사탄편의 여자가 아니고 하늘편의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것을 전부 부정해 버리고 하늘 편으로 돌아올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에 일치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말을 통해 가지고…. 다말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이러한 곁갈래에 서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해와가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 남편을 속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말은 자기 아버지 유다와 자기 미래의 남편, 셋째 아들을 다 부정하고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딱 마찬가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라고….
(92.286-288, 1977.04.18)
  
‘하나님이여, 당신의 축복권을 흠모하고 또 당신의 축복의 대를 잇기 위해서 제가 이러는 것이오니, 하나님이여! 용서하십시오, 제가 비록 천만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만 이 불륜의 소행을 터로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는 기반이 유다 가문에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저는 아무런 요한이 없습니다’라고 다말은 틀림없이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절실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에 다말은 생사를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한 맺힌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그 죽음의 상황까지도 극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다말의 뜻 대한 충절은 실로 놀라운 것이지만, 바로 이러한 자리에서만이 섭리역사를 펴 나오실 수가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사정이었습니다.
(110.222-223, 1980.11.18)

사탄의 거짓 사랑의 씨가 해와의 태중에 뿌려져서 악의 생명이 태어났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태중에까지 들어가서 분별해 놓지 않고서는 하늘의 아들이 태중에서 탄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승리에 의해서도 아직 분별되지 아니한 잉태에서부터 사십대까지의 기간도 사탄 분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책임을 맡은 위대한 어머니가 다말입니다.
  
다말은 선민의 혈대를 이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매춘부로 위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를 맞아 쌍태아기를 가졌습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먼저 손을 내밀고 나오려던 장자 아기가 다시 들어가고, 동생이 되어야 할 차자 아기가 형이 되어 먼저 태어났으니 그가 베레스입니다. 다말의 태중에서 장자와 차자가 싸워 분립되는 태중복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 위에 선민의 혈족을 보아 2천년 후에 로마 제국의 국가기준을 대치할 이스라엘 국가적 터 위에 메시아가 잉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씨가 준비된 어머니의 태중에, 사탄의 참소 없이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된 국가적 승리의 터전이 조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성모 마리아가 섭리의 주류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277.205-206, 1966.04.16)


 
5. 라합
    
종교경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이러하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니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 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태복음 1.1-6 (기독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시띰에서 정탐원 둘을 밀파하며 예리고 지역을 살펴보고 오라고 일렀다. 그의 지시를 따라 그들은 예리고로 가서 라합이라는 창녀의 집을 찾아가 거기서 묵었다. 누군가가 예리고 왕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아룁니다. 이스라엘 사람 몇이 이 땅을 정탐하러 오늘 밤 이리로 왔습니다.” 예리고 왕이 라합에게 전갈을 보냈다. “너를 찾아 네 집에 온 자들을 내놓아라. 그들은 이 온 지역을 정탐하러 온 자들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두 사람을 숨겨두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저에게로 오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는 몰랐습니다. 어둑어둑해져서 성문이 닫힐 때쯤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급히 쫓아가시면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그들을 지붕으로 데리고 올라가 지붕에 널어놓은 삼대 속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정탐원들은 아직 자지 않고 있었는데 라합이 지붕 위로 올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겁에 질려 있습니다. 내가 당신들을 잘 봐드렸으니, 당신들도 내 가문 사람들을 잘 봐주겠다고 이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해 주십시오,…라합은 그들을 창문에서 밧줄로 내려주면서 일렀다.
여호수아 2.1-15 (기독교)
   
말씀선집 
  
어머니가 둘째 번 되는 것도 원리적 입장에서 타당하다는 이론이 성립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책임을 못 하니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다말이 나오고 롯이 나오는데, 다말도 첩 행동을 했고 롯도 첩 행동을 했다는 것니다. 그 다음에 기생 라함은 창녀입니다. 창녀와 같은 부류가 역사적 배후에 이런 파국이 돼 있다는 사실을 마태복음 1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92.292, 1977.04.18)
  
마태복음에 라합이 나옵니다. 라합이 어떤 사람입니까? 기생이지요? 그런데 그녀가 누구를 도와주었습니까? 정탐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원수의 국가를 위한 일인데, 모험을 한 것입니다. 하늘의 공의의 뜻을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과 모든 환경, 그리고 자기의 특권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할 때 역사는 거기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30.196, 1970.03.22)

  
6. 밧세바
  
종교경전 
  
어느 날 저녁에 다윗은 침대에서 일어나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다윗이 사령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니, 사령은 돌아와서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 밧세바인데 남편은 헷 사람 우리야라고 보고하였다. 다윗은 사령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다가 정을 통하고는 돌려보냈다. 여인은 마친 부정을 씻고 몸이 정결한 때였다. 밧세바의 몸에 태기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자기가 임심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자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헷 사람 우리야를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우리야가 당도하자 다윗은 요압과 병사들의 안부를 묻고 싸움터의 형편도 알아보고 나서 집에 돌아가 푹 쉬라고 하였다. 우리야가 어전에서 물러나올 때 왕은 술상까지 딸려 보냈다. 그러나 우리야는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대궐 문간에서 근위병들과 함께 잤다. 다음날 다윗은 우리야가 집에 돌아가 자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우리야에게 물었다. “그대는 먼 길에서 돌아온 몸이 아닌가?‘ 우리야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온 이스라엘 군과 유다 군이 야영 중입니다. 법궤도 거기에 있습니다. 제 상관 요압 장군이나 임금님의 부하들도 들판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집에 가서 편히 쉬며 먹고 마시고 아내와 더불어 밤을 지내다니,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날이 밝자 다윗은 요압 앞으로 편지를 써서 우리야에게 주어 보냈다. 다윗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써다. “우리야를 가장 전투가 심한 곳에 앞세워 내보내고 너희는 뒤로 물러나서 그를 맞아죽게 하여라.” 요압은 성을 지켜보고 있다가 강병이 지키고 있는 데를 알아내어 그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그러자 그 성에서 적군이 나와 요압의 군대를 쳤다. 다윗의 부하들은 쓰러지고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우리야가 전사했다는 전갈을 받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곡을 했다. 곡하는 기간이 지난 다음, 다윗은 예를 갖추어 그 여인을 궁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그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다윗이 한 이일이 여호와의 눈에 거슬렸다.
   
나단은 이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배옷을 걸친 채 밤을 새우며 어린 것을 살려달라고 맨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애원하였다. 늙은 신하들이 둘러서서 일어나라고 했으나, 그는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더불어 음식을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기는 마침내 칠 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신하들은 다윗에게 아기가 죽었다는 것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수군거렸다. “아기가 살아 있을 때에도 우리말을 듣지 않으셨는데,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면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른다.” 

  
다윗이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여 잠자리를 같이 하니 밧세바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 여호와께서 그 아이를 사랑하셨다. 
사무엘하 11.2-27, 12.15-18, 24 (기독교)
  
말씀선집 
  
밧세바는 솔로몬의 어머니인데, 그 밧세바가 끝까지 다윗 왕을 미워했느냐/ 만일 그랬다면 그녀는 솔로몬의 어머니가 못 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로 내쫓고 계획적으로 자기를 점령했지만, 그렇게 된 것을 운명으로 돌림과 동시에 그것을 도리어 하늘의 크나큰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이렇게 하는 것은 나쁜 의미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크나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하고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자기 남편이 희생되더라도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고 기도한 열녀였다는 것입니다.
   
밧세바는 자기 남편이 죽었지만 그 남편이 충신되기 위해서는 그 일신이 망하는 것은 물론이요, 아내인 자기까지도 군왕을 위해서 바쳐지는 것을 기쁨으로 알아야 한다는 고차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밧세바는 남편이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군왕을 위해 일신을 다 바치고, 정성과 절개를 다 바치고 가는 것이 본 남편에 대한 의리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다윗 왕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솔로몬 왕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40.97, 1971.01.24)
   
솔로몬의 어머니는 누구였던가?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어떠한 여자였던가?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다윗 왕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은 것입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해서 솔로몬이 되었는가? 우리야의 아내는 어떠한 입장인가 하면 둘째 부인입니다. 이들을 타락하기 전의 에덴동산의 그 위치에 세워 놓고 볼 경우, 다윗은 아담의 입장, 우리야는 천사장의 입장이 됩니다. 
   
천사장의 아내는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해와의 입장입니다. 천사장이 아담의 상대자인 해와를 타락시켜 끌고 갔습니다. 사랑으로 점령하여 훔쳐 간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하려면 그러한 삼각관계에 다시 돌아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원리적 기준에 입각한 조건을 세운 기대 위에서 태어난다면 그 아이는 하늘의 사랑을 받는 영광의 아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영광의 아이인 것입니다.
(35.168, 1970.10.13)

  
7. 마리아
  
종교경전 
  
여섯 달 만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께로부터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로 보내심을 받아서,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천사가 그 집 안에 들어가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입은 이여, 기뻐하라. 주께서 너와 같이 계신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몹시 놀라 이 인사가 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다시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한 분이 될 것이요, 지극히 놓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이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며, 그는 영원하도록 야곱의 후손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요,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그때 마리아가 “나는 남편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보아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하였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라는 소문이 났으나, 그는 임신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 한 일이 없다.“ 그래서 마리아가 ”보십시오, 저는 주의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갔습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가 일어나, 유대 산골에 있는 한동네로 서둘러 가서,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 아기가 그의 뱃속에서 뛰놀았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큰 소리로 외쳐 말하였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고, 그대의 태속에 있는 열매도 복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누가복음 1.26-42, 56 (기독교)
   
천사들이 말하길, 오 마리아여! 하나님께서 말씀의 기쁜 소식을 네게 주시노라. 그의 이름은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 예수이며 현세와 내세에서 빛날 것이고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니라.
그는 요람에 있으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고 의로운 인물이 될 것이니라.
그녀가 말하길, 주여! 저에게 손을 댄 남자가 없는데 어떻게 아들을 가질 수 있나요, 그가 말하길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을 창조하신다. 어떤 것을 결정하시고 되라 하면 되는 것이니라.꾸란 3.45-47 (이슬람)
   
이므란의 딸 마리아의 그녀의 정절을 지켰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그 속에 불어 넣었느니라. 그녀는 주님의 말씀과 성서들을 믿었으며 신앙심 깊은 자이었느니라. 
꾸란 66.12(이슬람)
  
말씀선집 
  
리브가와 다말의 전통을 이어가지고… 그리고 2천 년후에 그 뜻을 이어받은 것이 누구냐 하면, 마리아입니다. 성모 마리아입니다. 뜻을 위해서 혁명하는 여자가 나와야 합니다. 천사로 말미암아 타락된 것이니 천사장이 와서 해와를 협조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믿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사탄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타락했으니, 이 천사장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잉태할 것이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는 그 말을 믿고 모험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마리아의 입장은 요셉과 약혼한 입장이었는데,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약혼한 입장에 있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오누이지만 앞으로 결혼할, 약혼 관계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사가 끌고 가서 타락했으니 천사가 끌고 가 하나님 앞에 복귀하는 것입니다. 딱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전통을 어어받았으니 해와가 타락할 때 행동한 그 내용과 마찬가지로 자기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 남편을 속이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남편한테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모르게 했습니다. 그때에는 처녀가 아기를 베면 돌무더기 돼 가지고…. 생명을 내 놓고 아기를 배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브가로부터, 다말로부터 이어받은 심정적 터전을 중심삼고 예수를 베었으니 역사적 모든 탕감 기원을 완성한, 그 복중에서 태어나는 아들에 대해서는 사탄이 아무리 참소하려 해도 참소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92.289-290, 1977.04.18)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자기의 몸을 통하여 메시아가 태어난다는(눅1:31) 가브리엘 천사장의 놀라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처녀의 입장에서 아가를 가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시의 규례였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면서 절대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친족이요 존경받는 대제사장 사가랴에게 상담했습니다. 사가랴 가정에서는 그 부인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임신한 세계요한을 태중에 지닌 채, 마리아에 대하여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눅 1:42-43)하고 예수님의 잉태를 증거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사갸랴와 엘리사벳으로 하여금 메시아의 탄생을 제일 먼저 알게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잘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할 중대한 사명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마리아를 자기들 집에 머무르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가랴 가정에서 잉태했습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 사이는 어머니 쪽으로 종자매관계였지만 섭리 상으로는 언니(가인)와 동생(아벨)의 관계였습니다. 사가랴 앞에서 엘리사벳의 도움을 받은 마리아는 레아와 라헬이 야곱 가정에서 모자가 일체 되지 못했던 것을 국가적 기준에서 사가랴 가정을 통하여 탕감하는 조건까지 세우면서 예수님을 탄생시켜야 했습니다. 역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씨, 참 아버지가 되어야 할 씨가, 준비된 어머니의 태중에 사탄의 참소조건 없이 착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첫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독생자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법에 의해 용인될 수 없고 또 상식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마리아가 해내야 했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영적으로 감동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에 따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소원임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77.206-207, 1996.04.16)
  


8. 막달라 마리아
  
종교경전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로 가셨다. 그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어있었다. 그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장차 예수를 넘겨 줄 가룟 사람 유다가 말하였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요한복음 12.1-5 (기독교)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는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라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4.6-9 (기독교)
    
주간의 첫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문을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뛰어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로 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려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인아.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분이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 갔거든, 어디에다 두셨는지를 말해 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모시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너는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내가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자기가 주를 보았다는 것과 주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였다.
요한복음 20.1-18 (기독교) 
  
말씀선집 
  
어찌하여 기독교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남아졌는가? 천추만대에 그의 이름이 전하여 내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소개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엔 한낱 천한 여자의 몸으로서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총각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로 닦았다는 사실을 어느 누가 용납하겠습니까?
  
제자들까지 비웃고 가롯 유다가 항의하고 전체가 반대하는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복음이 소개되는 곳에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기념될 것이라 하셨던가? 예수님에게는 사랑하는 제자 또는 수많은 사람보다도 그 시간에 있어서 막달라 마리아의 정성이 자신이 하나님께 있는 정성을 다 바친 것과 같은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따르던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친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가정과 남편이 있었고, 고유한 구약사상을 중심한 유대교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을 다 도외시하고, 즉 자신의 사회적인 위신이나 체면을 생각지 않고 죽은 총각 예수의 무덤을 찾아 헤매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4.107, 1958.03.16)
   
예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하늘을 향해 호소할 때,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졸고 있던 세 제자의 모습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친적인 천적인 가치를 알고서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드림으로써 부활하실 주의 영광을 확인해 드릴 때, 그 마리아의 행위를 비웃고 막아선 제자들의 모습을 대하신 그 심정이 예수님의 원한이 되었음을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가시면서 서러운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만은 그런 예수님을 위로하고 염려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한 예수님의 천적인 내적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축복을 내리셨고, 환희의 은사로 그녀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2.212, 1957.05.26)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 사람은 비록 인간들이 보기에는 미약한 존재였지만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 고을에서 쫓기고 저 고을에서 비난받고, 가는 곳곳에서 조소를 일신에 받고 다니던 총각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따르던 마리아였습니다. 이런 간곡한 마리아 앞에 예수님은 부활의 몸으로써 나타났으니 이는 끝 날에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보여준 표상인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생활을 했던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입을 것, 먹을 것 전부를 잊어버리고 일편단심 그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따르던 그녀의 행로는 끝 날의 성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지금도 이 땅 위에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심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을진대 그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6년천 섭리에 어린 눈물이 감돌 것이요, 하늘 앞에 무한히 빚진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4.258-259, 1958.06.29)


출처: http://cafe.daum.net/THEKINGDOMofGOD/Tgmb/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