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 3부 인생의 여정 - 제19장 가정

무지... | 20180517175055

세계경전

 

제 3 부 인생의 여정

 

 

19장 가정

 

1) 삶의 기본형태

 

가정은 삶의 기본 형태이다. 가정은 가족관계를 통해 자신의 성격과 가치와 정체성을 형성하며 길러내는 환경을 구성한다. 인간은 때때로 전통적인 가정을 대신할 대안들을 세우려고 노력하였지만 이 대안들은 한 두 세대를 넘어 지속되지 못했다. 가정에는 하나의 ‘형태’가 있다. 그것은 일련의 정밀한 역할의 의미라기보다, 한 부모 가정, 자녀 없는 가정, 의붓 부모와 다른 관계가 혼합된 가정들이 최선을 추구하는 일반적 원리의 의미이다. 가정의‘형태’란 무엇인가? 외견상으로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를 연대하는 관계를 말한다. 내면적으로 이러한 관련성을 지배하는 진실하고 경건한 사랑을 말한다.

 

가정이 삶의 기본형태라는 것에 다른 의미가 있다.그것은 사회관계에 대한‘교재’이다. 훌륭한 가족관계는 훌륭한 시민들을 배양한다. 그들은 가정에서 부모, 형제, 그리고 자녀와 관계를 맺으며 터득한 교훈을 사회에서 윗사람, 동료, 아랫사람과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문선명 선생은 가족형태의 양측면에 관해 광범위하게 가르친다. 가정의 구조적 유형은‘4위기대’로 표현되며 이것은 하나님을 참가정의 구성원, 곧 참가족으로 연대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가르침이다. 그는 또한 가족관계를 공간적으로 6방향으로 확장하여 설명한다. 어는 경우에는 그 형태는 구형이며 모든 위치가 동등한 가치로 나타난다. 이것은 참사랑이 모든 가족관계의 구심력이 될 때 가능하다. 가족 구성원 각각은 서로 위해주며 살아가는 미덕의 생활회로를 창출한다.그러한 가정은 이상 사회 건설의 기본적 토대가 된다.

 

(1) 가정이상

 

종교 경전  

 

아내를 나처럼 사랑하라. 아내를 나보다 더 존중하라. 자녀를 바른 길로 양육하라. 결혼 적령기에는 자녀에게 짝을 맺어주어라. 이 모든 것을 실천하는 이는 “그 가정에 평화가 있을 것이다.”     

탈무드. 예바모트 62(유대교)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하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며, 편안한 일터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수타 니타파 262(불교)

 

천하에 본편적으로 행해지는(매우 중요한) (관계)가 다섯 가지 있다. ··· 그것은 곧 군주와 신하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남편과 아니의 관계, 형과 아우의 관계, 벗들 사이의 관계이다.    

중용 20. 8(유교)

 

사람의 도의란 무엇인가? 아버지로서의 자애, 자식으로서의 효, 형으로서의 어짊, 아우로서 공경, 남편으로서의 의로움, 아내로서의 순종, 어른으로서의 은혜로움, 어른으로서의 유순함, 군주로서의 어짊, 신하로서의 충성, 이 열 가지를 사람의 도의라고 한다.    

예기 7.2.19(유교)

 

가정에서는 규율이 어지러움을 이기고, 평화가 불화를, 자비가 탐욕을, 헌신이 교만을, 진실한 언어가 성스런 질서를 깨는 거짓된 언어를 이기게 하소서.   

아베스타, 야스나 60.5(조로아스터교)

 

가정에는 자연스러운 온화함이 있어야 한다.

서원들을 굳게 지키는 것은 온화함으로 귀결된다.

가족사이에는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한다.

부정직과 기만은 가정에 불행을 가져온다.

행동과 말과 생각에서 정직과 솔직함은 가정을 행운의 길로 인도한다.

청정, 공경, 끊임없이 지혜를 추구함, 자비, 평등을 위협하는 장애들을 제거함,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 이들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든다.    

탓트바르타 수트라 6.18-24(자니아교)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다워야 집안의 (家道)가 바르게 된다. 집안을 바르게 하면 천하가 안정될 것이다.     

역경 37(유교)

 

마음과 마음이 하나되고 증오에서 벗어나는 길을 내가 그대들에게 알려준다. 서로 사랑하라, 마치 암소가 제 새끼를 사랑하듯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효도하게 하고 어머니와 한마음이 되게 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달콤하고 상냥한 말을 하게 하라.

 

아우가 형을 미워하지 않게 하고 자매가 서로 미워하지 않게 하라. 뜻으로 하나되어 만장일치로 우호적으로 말하라. 나는 가정에서 가족이 서로 화합하게 하는 기도를 마련할 것이다. 이로써 신들도 가족을 갈라놓거나 서로 미워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헤어지지 않고 늙어가며, 서로 배려하고 함께 번성하며, 같은 명에에 묶여 움직이며, 부드럽고 친근한 말로 서로 대하며, 나는 그대들이 하나의 목적, 한 마음이 되게 하리라.

 

우물을 같이 사용하고, 음식을 같이 나누어라. 나는 그대들이 같은 멍에에 묶이게 하리라. 화합하여 희생제의 불가에 둘러앉으라. 마치 수레의 바퀴살처럼.

 

공통의 바람으로써 나는 그대들이 하나의 목적을 지니게 하리라. 한 마음이 되며, 한 어른을 따라라. 마치 스스로 불멸을 보존했던 신들처럼. 아침저녁으로 그대들 안에 사랑스런 마음이 가득하여라.    

아타바 베다 3.30(힌두교)

 

말씀 선집  

 

우리의 인연이라고 했으니, 우리끼리는 특히 느끼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아내도 필요하고, 남편도 필요한 것입니다. 또 젊은이들도 필요하고, 늙은이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민의 여론이야 어쨌든 공통적인 꼴을 갖추는 일을 해 나왔습니다.

(21.120, 1968.11.17)

 

가정에는 반드시 부모가 있고 처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정이 행복의 터전이 됩니다. 신이 인류를 찾아 나오는 목적도 신 자신의 행복을 모색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신 자신이 행복의 터전을 찾아 나오는 데에는 인간을 떠난 자리에서는 그러한 이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그 일치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정서적인 모든 내용을 갖춘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서적인 모든 내용을 갖추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도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32.198, 1970.7.15)

 

남자가 남자로 태어난 것은 남자 자신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아무리 미인이고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라 하더라도 그 생긴 모양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게 될 때, 서로 위해줄 때 돌아가는 것입니다. 위하면 위할수록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게 이상형입니다. 사각형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둥글다는 것입니다. 서로 위하는 것은 서로 밀어 주는 것이니, 서로 위해 주면 빨리 돌아가고, 돌아가면 구형을 이루어 영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69.83-84, 1973.10.20)

 

부모의 참사랑, 형제의 참사랑, 부부의 참사랑, 자녀의 참사랑 이렇게 4대 사랑을 완성하고 4대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최소단위가 참된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참가정은 인간의 참사랑과 참행복의 터전이요, 참생명과 참혈통이 싹트는 곳이 됩니다. 따라서 참가정은 인간이 창조본여의 참사랑과 참인격을 길러내는 수련소요, 참사랑의 학교입니다.    

(294.65-66, 1998.6.11)

 

이상적 부부를 중심삼은 가정이 학교입니다. 이것은 교재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의 단위가 되어 가정이라는 교재를 만들어 가지고, 이 교재에 합격한 모든 존재는 세계 어디든지 공통적으로 통과할 수 있는 공식이 되는 것입니다.     

(131.112, 1984.4.22)

 

이상적 가정은 무엇이냐? ‘서로 잘 믿는 것이 이상적 가정이다. 서로 잘 아는 것이 이상적 가정이다’ 하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서로서로 심정적으로 하나되어 떼려야 뗄 수 없고, 식구의 아픔을 자기 아픔이상으로 느낄 수 있는 심정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상적 가정이 벌어집니다. 자기가 희생해서라도 모든 식구들의 고통을 대신 젊어지겠다는 정이 깃드는 곳에 이상적 가정이라는 말을 붙을 수 있습니다.     

(228.46, 1992.3.3)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났고, 사랑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도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볼 때 생명보다 사랑이 더 귀한 것일 뿐 아니라, 사랑이 생명보다도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까지 기꺼이 바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소설이라든가 시 같은 문학작품을 보더라도 전부 불변의 사랑, 영원한 사랑이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순간적인 사랑, 한시적인 사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을 원하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사랑의 전파를 따라 자동적으로 젖꼭지를 찾아갑니다. 추녀이든 미녀이든 상관없이 어머니이면 그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조화 무쌍하고도 거룩한 모습인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으면서 큽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나’라는 것은 부모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실제 열매로 보여 준 것이 ‘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에 부모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열매를 통해서 무한한 사랑이 다시 열매 맺는 것입니다. 개인적 사랑, 가정적 사랑, 종족적 사랑, 민족적 사랑, 세계적 사랑, 우주적 사랑, 그리고 본질적 하나님의 사랑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출생한 육신시대에는 나를 낳아 부모가 맡아서 올바른 사람으로 기르게 됩니다. 세계와 나라와 가정을 대표해서 부모가 모든 것을 가르치고 공급해 줍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질을 공급받고 교육받아 개체로서 완성되면 사랑을 중심삼은 횡적인 기반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결혼입니다. 부모는 결혼 할 때까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사랑하던 것을 인계 받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낳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내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길러봄으로써 알게 되고 그 사랑을 인계 받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나는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한 남성과 여성으로 성숙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종적인 사랑에서 태어나 성숙하여 횡적 사랑을 함으로써 비로소 종합적 사랑권을 찾을 있습니다. 천지는 구형세계이기 때문에 종횡과 상하·좌우·전후의 사랑이 연결되어야 그것이 주고받아 돌아가고, 모든 것이 종합되어 하나의 조화의 센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지의 종적 사랑이 안팎으로 축의 자리를 확고히 잡으면 그 다음에 횡적인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298.298-308, 1999.1.17)

 

부부가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심는 일입니다. 본래 부모는 본연의 하나님 자리를 대표하고, 여기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한 쪽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은 또 하나의 작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본체이므로 참사랑과 연결되면 모두가 같은 몸이 됩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살아 있는 하나님이요, 부부도 하나님을 대신하고, 자녀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3대가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도, 부부도, 그리고 자녀도 참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사랑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가정조직이 천국의 기반입니다. 그런 기반을 이루지 않고는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가정이란 모든 우주 현실세계의 중심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가정이 나라와 세계와 우주를 대표한 가정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중심으로서 가정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은 나라와 세계와 우주에 대한 반항이 됩니다.

 

가정완성은 우주완성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사랑하는 것과 같이 우주를 사랑하면 어디든지 무사통과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은 전체 우주의 부모로서 사랑의 복합적인 중심 자리에 계십니다.        

(298.307, 1999.17.)

 

(2) 가정은 사랑과 미덕의 수련장

 

종교 경전  

 

우리의 주님이시여, 우리의 눈이 위안이 되는 아내들과 자손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옵고 우리를 경외하는 자들의 모범으로 삼으소서.    

꾸란 25.74 (이슬람)

 

군자의 도는 비유하면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과 같으며, 높은 곳(공적 책임)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자신의 가족)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것과 같다.    

중용 15.2(유교)

 

자기 가정을 다스릴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불 수 있겠습니까?      

디모데전서 3.5 (기독교)

 

이른바‘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반드시 그 집안을 안락하게 하는 것'이라 함은 그 집안을 가르치지 못하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 밖으로 나아가지 않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루는 것이다. 효도는 군주를 섬기는 것이고 형을 공경하는 것은 장관(長官)을 섬기는 것이며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백성을 부리는 것이다.      

대학 9.1(유교)

 

가정이 파괴되면 고대의 법도가 무너진다. 가정과 법도가 무너짐으로써 삶의 영적 토대가 상실되며, 가정에는 일체감이 사라진다. 일체감이 없는 곳에서는 여인들이 타락하여, 여인들이 타락하면 사회가 무질서에 빠지게 된다. 사회적인 무질서는 가정에 대하여 지옥이며 가정을 파괴한 자들에 대해서도 또한 지옥이다.      

바가바드기타 1.40-42 (힌두교)

 

말씀 선집

 

가정은 무엇이냐? 심정적인 훈련장소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심정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정을 가지고 형제와 같이 학교에서 살아야 되고, 정을 가지고 나라에서도 형제와 같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그런 교육은 학교를 위한 교육이요, 사회를 위한 교육이요, 나라를 위한 교육이 됩니다. 부모는 정서적인 모든 것을 자식들, 후계자들 앞에 전수해 줘야 합니다. 부모가 산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사회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나라를 위해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중심삼고 정서적 바탕을 닦아야 합니다.     

(180.311, 1988.8.22)

 

가정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학교입니다.     

(271.80, 1995.8.22)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사랑이 합한 자리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합하는 자리에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영원히 같이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변치 않는 부모의 사랑, 변치 않는 부부의 사랑, 변치 않는 자녀의 사랑, 이 세 사랑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131.112, 1984.4.22)

 

가정은 천국을 이룰 있는 교재입니다. 하늘이 만들어 놓은 교재입니다. 가정은 천국과 인연 맺게 하기 위한 교재입니다. 그러니 축을 중심삼고 그것을 나라에 적용하면 애국자가 되는 것이요, 세계에 적용하면 성인이 되는 것이요, 하늘땅을 중심사고 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 성자가 됩니다. 여기서는 놈 ‘자()가’ 아니고 아들 ‘자()’ 자입니다.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137.78, 1985.12.18)

 

도덕(道德)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가정의 훈련된 평등한 가치를 도덕이라고 합니다. ‘덕()’의 십()자는 우주를 상징하지만, 통일원리를 보면 천상과 지상을 말합니다. 거기서 사위기대(), 하늘땅()이 바라는 네 패()가 한() 마음()이 되어 있는 것이 덕() 자입니다. 두 사람()이 천지의 환경 가운데에서 십(), 하늘땅에 사위기대를 완성한 하나의 마음, 할아버지의 마음이나 부모의 마음이나 아내의 마음이나 처자의 마음이나 열두 패거리 – 조상들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중심삼고 여섯인데 몸과 마음도 열두 패. – 전부가 하나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덕()이라 합니다.     

(375.59, 2002.4.13)

 

오늘날 세계에 걸쳐서 가정이 변하고 있고 전통적인 가정들은 여러 면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산업화, 현대화가 가속하면서 인류는 가치관이 붕괴되고 윤리, 도덕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개인주의, 쾌락주의, 배금주의 등으로 인해서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면서 프리섹스와 불륜이 더욱 조장되고 가정이 파탄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풍조입니까? 이대로 방치하면 인류는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사회적 조건이 바뀌어도 부모 자녀 관계의 중요성은 흔들릴 수 없으며, 가정의 귀중성 역시 변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이며 가정은 그 행복과 평화의 기대가 됩니다.      

(271.81, 1995.8.22)

 

오늘날 가정이 무너지고 청소년들이 타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 에덴동산에서 간섭할 없었던 하나님의 비참상을 해방하고 기쁨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305.272, 1998.8.21)

 

(3) 완성된 가정은 구형을 이룸

 

종교 경전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부근 다람쥐 보호구역 대나무 숲에 머무르고 계셨다. 그때 시갈라라는 장자의 아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라자가하를 나가서 옷을 적시고 머리를 적시고 합장을 하고 동쪽, 남쪽, 서쪽, 북쪽, 아래쪽, 위쪽 등 땅과 하늘의 여러 방향에 절을 하였다.

 

세존께서 이른 아침 옷을 입고 발우과 가사를 수하시고 탁발을 위하여 리자가하로 들어가셨다. 그때 세존게서 절을 하는 시갈라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는 땅과 하늘의 여라 방향에 절을 하는가?

“세존이시여, 저의 아버지께서 임종 시에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하늘과 땅의 방위들을 향하여 절을 해야 한다.’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고 공경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이와 같이 절을 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율에서는 그와 같이 절을 해서는 안 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성스러운 율에서는 어떻게 육방으로 절을 해야 합니까? 세존께서 저에게 바른 방법을 일러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장자의 아들이여, 성스러운 율에서는 어떻게 육방에 절을 해야 하는가? 육방이란 다음과 같다. 부모는 동쪽, 스승은 서쪽, 아내와 자식은 서쪽, 친구는 북쪽, 하인과 고용인은 아래쪽, 사문과 바라문은 위쪽으로 알아라.

 

아들은 다섯 가지 경우로 동쪽 방향인 부모를 섬겨야 한다. ‘그분들의 보살핌 속에 자란 나는 그들을 잘 봉양할 것이다. 나는 그분들에게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이다. 나는 가문을 잘 이어갈 것이다. 나는 그분들이 지켜온 가문의 전통을 잘 실천할 것이다.

 

그와 같이 섬겨진 부모는 다섯 가지 경우로 아들을 사랑으로 돌본다. 그들은 사악함을 멀리하게 된다. 그들은 아들이 덕을 증강하게 한다. 그들은 기술을 배우게 한다. 그들은 어울리는 아내와 맺어준다. 그들은 적당한 때에 유산을 물려준다. 이와 같이 동쪽 방향은 아들에 의하여 보호되고 안전하게 된다.

 

제자는 다섯 가지 경우로 남쪽 방향인 스승들을 섬겨야 한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고, 문안드리며, 열심히 배우려 하며, 그들을 시봉해야 한다.

 

그와 같이 섬겨진 스승들은 다섯 가지 경우로 제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그들은 합당한 방법으로 그를 훈육한다. 그들은 그가 윤리 규범을 확고히 지키게 한다. 그들은 모든 과목의 내용에서 빈틈없이 가르친다. 친구와 동료들에게 그를 잘 소개하고 칭찬한다. 모든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해준다. 이와 같이 남쪽 방향은 제자의 의하여 보호되고 안전하게 된다.

 

서쪽 방향으로서 아내는 다섯 가지 경우로 남편에 의하여 섬겨져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얕보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고, 그녀에게 합당한 권한을 넘겨주고, 장신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와 같이 섬겨진 아내는 다섯 가지 경우로 남편을 사랑으로 돌본다.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고, 바람피우지 않고, 가산을 잘 관리하고, 맡겨진 모든 일에 능숙하고, 게이르지 않다. 이와 같이 서쪽 방향은 남편에 의하여 보호되고 안전하게 된다.

 

북쪽 방향으로서 친구는 다섯 가지 경우로 섬겨야 한다. 베풀고, 친절하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하고, 자기 자신에게 하듯이 대하고,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그와 같이 섬겨진 친구는 다섯 가지 경우로 선남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술에 취했을 때 보호해 주고, 재산을 보호해주고, 위험에 빠졌을 때 피난처가 되어주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떠나지 , 그의 가족을 잘 배려해 준다. 이와 같이 북쪽 방향은 보호되고 안전하게 된다.

 

아래 방향으로서 하인과 고용인은 다섯 가지 경우로 섬겨야 한다. 각기 능력에 맞게 일을 배당해주고, 음식과 급료를 지급하고, 병이 들면 치료해주고, 특별히 맛있는 것을 같이 나누고, 적당한 때에 쉬게 한다.

 

이와 같이 섬겨진 하인과 고용인들은 다섯 가지 경우로 주인을 사랑으로 돌본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일을 잘 하고, 주인에 대한 칭송을 달고 다닌다. 이와 같이 아래 방향은 보호되고 안전하게 된다.

 

방향으로서 사문과 바라문 성직자들은 또한 다섯 가지 경우로 섬겨야 한다. , , 그리고 뜻에서 사랑으로 대하고, 그들에게 대문을 항상 열어두며, 필요한 일용품들을 제공한다.

 

이와 같이 섬겨진 사문과 바라문 성직자들은 다섯 가지 경우로 재가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사악함에서 멀어지게 하고, 선을 증장하게 하고, 선한 마음으로 자애롭게 돌보며, 배우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고, 이미 배운 것을 가르쳐 주고, 이미 배운 것을 바로잡아 주며, 천계에 이르는 길을 드러내어 준다. 이와 같이 섬겨짐으로써 위 방향은 보호되고 안전하게 된다.     

디가 니카야 3.185-191 시갈로바다 수트라(불교)

 

말씀 선집  

 

우주에서 핵과 같은 것이 가정 개념입니다. 하늘을 부모로 보게 되면 땅은 자녀입니다. 동서를 보게 되면 동쪽은 남자를 상징하고 서쪽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는 결혼함에 따라 어디든지 남편의 위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서쪽이 태양 빛을 받아 빛날 대 동쪽과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형제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자인 형님을 중심사고 역사할 때, 동생들이 협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부자관계에 있어야 되고, 부부관계, 그리고 형제관계에 있어야 횝니다. 즉 이 세 관계가 한 점에 있어야 됩니다. 그 중심점은 하나입니다. 상하 좌우 전후의 중심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점이 틀리게 되면 상하 좌우 전후 관계의 균형이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하 좌우 전후 그리고 하나의 중심점까지 모두 7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7수를 이룬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한 참사랑으로 하나되어 이 모든 전부가 완전히 구형을 이루어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럭키 세븐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280.20-21, 1997.8.10)

 

부모를 중심삼고 자식이 하나 되어야 됩니다. 또 거기에는 하나님을 반드시 모셔야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그게 이상적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된 부부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플러스-마이너스는 반드시 하나님을 중심삼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부모의 사랑이 있고, 자식의 사랑이 있고, 남편의 사랑이 있고, 부인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적입니다. 이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이 주체니 그 주체적인 입장의 하나님과 하나 되면 이 사랑과 하나 되니 영원히 깨지지 않는 이상적 가정이 성립됩니다. 이론적으로 그렇게 성립됩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위해서 집중되고, 자식의 사랑은 부모에게 연결됩니다. 남편의 사랑은 아내에게 연결되고, 아내의 사랑은 남편에게로 연결됩니다. 그렇지만 그 사라들이 어떻게 하나 되느냐하는 것입니다. 자체로써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기에 주체가 임하기 때문에 이 모든 존재는 자동적으로 하나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빼놓고는 사랑도 전부 자기 중심삼은 사랑이 되지, 하나로 묶을 수 없습니다.

 

하나 되었을 사랑의 길이나, 이 사랑의 길이나, 이 사랑의 길이나 같습니다. 평균이 됩니다. 이게 원형으로 그리는 하나의 물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하나 되고 종횡이 하나 돼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 돼 가지고 이 둘이 사랑의 힘으로 운전되는 이 세계는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디 가든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상의, 사랑의 곳이기 때문에 그런 세계가 이상세계요, 이런 세계가 지상에 벌어지고, 가정에 벌어질 때 지상천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하나님같이 생각하고 합니다. 그 논리가 여기서 나온 논리입니다. 아내를 하나님같이 생각하고 부모같이 생각하고, 남편을 하나님같이 생각하고 부모같이 생각하고, 자식을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고 남편과 같이 생각하고 아내와 같이 생각하라는 결론이 여기서 나옵니다. 또 하나님을 생각하기를 자기 아내 같이, 남편같이, 자기 부모같이, 아들딸같이 하면 모두 천국 가는 것입니다.      

(89.154-155, 1976.11.7)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울까요? 아들딸 없으면 왜 울겠습니까? 우주의 근본 원친은 동서사방을 전부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존재의 힘은 상대이상을 옹호하는 힘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전다 주고 받습니다. 남북이 주고받고 한다는 겁니다. 북극과 남극이 주고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과별이 주고받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된 이상적인 존재는, 완전히 주고받는 존재는 이 우주가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유지할 수 있게끔 그것을 옹호하는 천운이 감도는 것은 원친입니다. 전다 그것을 협조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들딸이 없어도 됩니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아들딸이 필요 없다는 주의로 나오고 있지만 필요 없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라는 겁니다. 내가 서 있는 데에는 반드시 위가 있고 아래가 있는 것입니다. 3수를 통해야 합니다. 3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70.76-77, 1974.2.8)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될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세계의 축소체와 같습니다. 거기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가정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이 공존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입장에 올라가서 아들딸을 갖게 됩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자기의 3대가 하나 되어야 됩니다. 즉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인연이 하나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은 세상이 아무리 요동한다 해도 요동하는 사회의 침범을 받지 않고 행복의 터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28.162, 1970.1.11)

 

2)

 

효는 자녀가 부모에게 존경과 영예를 보여드리는 전통적 도덕원리이다. 그것은 부모에 대한 의무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녀를 낳아주고 먹여주고 자녀에게 인생의 좋은 출발을 제공하면서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성스러운 자녀는 그들의 부모가 늙었을 때 그들을 돌보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것은 의무의 문제가 아니라 감사한 심적 자세를 유발하는 자발적이며 자연스러운 이상적 자세로 간주된다.

 

문선명 선생의 효에 관한 광범위한 가르침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효는 끊어지지 않는 혈통적 유대관계에서 세대를 연결하는 영속적인 전통으로 고무되어야 하는 것이다. 효는 자기 부모의 어려움과 고난을 동정하고 이것을 자신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통각하며, 원숙하고 이타적인 성자 성녀의 심적 자세에서 완성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대한 것은 효는 하나님, 곧 참부모와 관계를 구축하는 초석이라는 점이다.

 

(1) 효는 덕의 근원

 

종교 경전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출애굽기 20.12(기독교)

 

인간에게는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이 세분의 동반자가 계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부모를 공경할 때, 나는 내가 거기에 거하며 그들이 나를 공경하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      

탈무드, 키두신 30b (유대교)

 

신들과 조상들에 드려야 제사를 소홀히 하지마라! 신에게 하는 것처럼 그대의 어머니를 대하라. 신에게 하는 것처럼 그대의 아버지를 대하라. 신에게 하는 것처럼 그대의 스승을 대하라.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1.11.2(힌두교)

 

너의 주님께서는 ··· 너희가 그분 위에는 경배하지 말고 부모님에게 성실하라고 결정하셨느니라. 양친의 한 분 또는 두 분이 노령에 이르렀다면 그들에게 불경한 말이나 거친 소리를 해서는 아니 되며 그들에게 명예로운 말을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자비로움에서 나오는 겸손의 날개를 그들에게 내리거라. 그리고 말하라, 주여 그들이 어린 저를 양육해 주었듯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꾸란 17.23-24 (이슬람)

 

군자는 근본을 세우고자 애쓴다. 근본이 확고하게 서면 도가 생긴다. 효와 우애는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논어 1.2(유교)

 

붓다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들을 부양해야 하며, 스승과 어른들을 공경하고 시봉해야 한다.        

관무량수령 27 (불교)

 

이것을 개가 당신에게 묻습니다. 진실로 말하여 주소서, 주여! 누가 규율에 더하여  경건한 효심을 만들었습니까?  누가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며  존경하게 만들었습니까?    

아베스타, 야스나 44.7 (조로아스터교)

 

대저 ()란 덕의 근본이고 모든 가르침이 이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 우리의 몸은 머리카락과 피부에 이르기 까지 모두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이를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떨침(揚名)으로써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다. 대저 효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고,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그 다음이며, 정신을 세우는 것(立身)이 그 끝이다.  

효경 1(육교)

 

부모는 이가 때까지 너를 돌볼 것이니, 부모의 이가 빠질 때 너는 그들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아칸족의 격언 (아프리카 전통종교)

 

말씀 선집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됩니다.

(62.37, 1972.9.10)

 

효자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중심삼아 늘 생각하면서, 그 일을 행동으로 이루어 상대역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이 효자입니다.

오관이 있으면, 눈으로 보고 뭘 느낄 때 부모님이 더 좋아하시는 걸 보고 느끼고, 말씀을 듣게 될 때도 ‘아, 이런 말 좋아하겠느냐, 어떻겠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듣게 됩니다. 느낄 때도 그렇고, 모든 오관의 감정이 부모님을 중심삼고 사랑화 할 수 있는 심정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효자 입니다. 나쁜 것이 있어서는 안 되고 좋은 것만이 있기를 바라고, 더 좋은 것으로 발전하고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61.132-133, 1987.1.18)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슬퍼하는 내용을 깊이 알고 있는 자식일수록 부모의 슬픔이 해소되기를 일구월심으로 바라고, 자기가 일하고 있는 환경을 넘어서 그 근심된 사실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의 소원이 아니냐? 자기에게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슬픔보다도 부모의 슬픔이 더 빨리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효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도 근심거리가 있고 자신에게도 근심거리가 있는데, ‘부모가 내 근심거리를 생각해 줘야지’하며 부모의 근심거리보다도 자기의 근심거리를 더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부모와 하나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효의 원칙을 중심삼고 , 부모의 입장을 망각한 사람은 부모와 긴요한 자리에서 하나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요구하거나 부모의 슬픔은 제쳐두고 작의 슬픔만을 책임져 다라고 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는 효자가 못 되고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 주변에서 혹은 가정생활에서 수시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효자로서 가치는 무엇이냐? 자기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부모의 어려움을 더 염려하면서 자기의 어려움을 문제시하지 않고, 자기의 어려움 위에 부모의 염려를 더하여 염려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이것을 당연한 일로 소화시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효의 길은 시작됩니다. 자식이 부모의 어려움을 등한시하고 멀리하게 될 때, 여기서 결렬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효의 길이 아닌 불효의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62.187, 1972.9.25)

 

효자가 무엇입니까? 효자는 부모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 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열만큼 일을 하는데 자식은 열다섯만큼 노력하였다면 부모는 다섯에 해당하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를 어떻게 보충하여 부모를 위해 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24.261, 1969.8.24)

 

효자는 언제나 부모의 마음 방향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효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부모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야 되는 것이고, 부모가 서로 가면 서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다가, 가는 목적을 제시했다가 한꺼번에 뒤로 돌아서라면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열 번 가다가 열 번 돌아서라 하더라도 또 돌아서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슨 부모가 그래? 열 번 가다가 열 번 돌아서고, 열 번 이랬다저랬다 한다. ! 아버지 어머니, 나 이거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 하고 반항했다가는 끝까지 효자의 도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부모가 미친 놀음을 하면 자식도 미친 놀음을 해야 됩니다. 부모의 명령이라면 미친 놀음이라도 해야 됩니다. 미친 놀음하는 자체는 안 됐지만, 부모가 모르고 하면 모르지만 알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미친 놀음을 하느냐? 효자 가운데서 최고의 효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그 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백 명의 효자가 있다면, 그 백 명 가운데 으뜸될 수 있는 효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부모는 미친 놀음을 할 것입니다. 백 번 가다가 돌아서고, 백 번 변덕을 부릴 것입니다. 천 번 변덕을 부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변덕을 사실로 알고 생명을 바쳐서 그 부모의 명령 앞에 절대 순응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효자의 왕도 될 수 있습니다. 효자 가운데 효자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런 미친 놀음을 천직으로 알고 알아야 됩니다. ‘아! 이건 내 사리에 맞지 않으니, 그건 난 모르겠소’ 하면 여기서 효자의 도리는 막혀 버립니다. 효자의 길은 끊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어느 한 고비를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세계적인 효의 길이 있을 것입니다. (62.32-33, 1972.9.10)

 

자기 아들딸을 교육할 어머니 아버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라고 가르치면 됩니다.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다. 애국자다. 어머니로서의 애국자가 아니라 애국자로서의 어머니, 충신으로서의 아버지’라고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효도를 가르치는 데도 부모가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26.296, 1969.11.10)

 

지금까지 인간들은 자기 아들딸을 낳아 가르치는 목적을 자기 가정이 되는 두었습니다. 거꾸로 됐습니다. 오늘날은 거꿀잡이 시대입니다. 하늘이 좋고, 세계가 좋고, 나라가 좋고, 사회가 좋고 난 후에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원칙인데 타락해서 거꾸로 되었습니다. ‘나부터 좋고 다음에 우리 집이 좋고 그 다음에 우리 사회가 좋도록 하자’는 주장입니다. 거꾸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106, 1959.11.22)

 

(2) 부모와 자녀의 불가분의 유대

 

종교 경전  

 

우리(하나님)는 부모님에게 성실하라고 인간들에게 강요하였느니라. 어머니는 고통으로 잉태하고 고통으로 출산하느니라. 잉태하고 젖을 뗄 때까지 30개월이나 걸리고 마침내 성년이 되고 40세에 이르면, 그는 ‘주여 당신께서 저와 저의 부모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저의 자손이 저를 대신해서 당신을 공경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당신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진실로 저는 당신에게 귀의한 자입니다’라고 말하느니라.

이러한 자들로부터는 그들의 행위 중에서 최선의 것을 받아들이고 악행은 너그럽게 보아주느니라. 그들은 낙원의 주민들 속에 있을 것이니라. 이것 이야말로 그들에게 약속된 진실한 약속이니라.    

꾸란46.15-16(이슬람)

 

비구들이여, 두 사람의 은혜는 결코 되갚을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누가 그 둘인가?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설사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태우고, 그렇게 백년을 산다 해도, 향을 뿌리고 안마를 해드리고, 목욕시켜 드리고 몸을 문질러 드리면서 봉양한다 해도, 대소변을 받아 내더라도 그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부모님을 비록 칠보가 가득한 큰 땅을 통치하는 최고의 왕위에 모신다 해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비구들이여, 부모는 자식들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한다. 자식들을 키워주고 먹여주고 이 세상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신심이 없는 부모로 하여금 신심을 가지게 하고 신심을 확고하게 지니게 한다. 비윤리적인 부모로 하여금 윤리적이게 하고 윤리를 확고히 지키게 한다. 인색한 부모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고 보시하는 삶을 확고하게 한다. 지혜가 없는 부모로 하여금 지혜를 지니게 하고 지혜의 삶을 확고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부모에게 마땅히 보답해야 할 은혜를 그 이상으로 보답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1.61(불교)

 

교우 사람이 묻기를, “하나님의 사도여! 나에게 가장 고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고 하자, 그는 “너의 어머니이다”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고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자, 사도는 “너의 어머니이다”라고 반복했다. “나의 어머니 다음은 누구입니까?” 라는 물음에 하나님의 사도가 대답하길, “너의 아버지니라” 하였다.

붓카리 무슬림 하디스(이슬람)

 

아들아, 너는 왜 네 아비와 다투고 있느냐? 그가 여태껏 너를 키웠나니, 그와 언쟁을 벌이는 것은 죄악이라.  

아디 그란트,사랑,M.4, p. 1200(시크교)

 

너를 낳은 아비의 말을 듣고 늙은 어미를 업신여기지 마라. 진실은 팔아넘기지 말고 사들여라. 교훈과 슬기와 현명도 그리하여라. 아들이 옳게 살면 아비는 참으로 즐겁다. 제가 낳은 아들이 지혜로운데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러니 네 아비를 기쁘게 해다오. 너를 낳은 어미를 즐겁게 해다오.   

잠언 23.22-25(기독교)

 

아버지여, 나를 총애하심에 감사합니다.

어머니여, 나를 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의복보다 중요한 지혜로 나를 입혀주시니,

어버이여! 감사합니다.

노예들은 당신에게 봉사할 것입니다.

하인들이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은 당신을 돌보아 드릴 것입니다.    

요루바족의 결혼식 축가(아프리키 전통 종교)

 

말씀 선집  

 

여러분, 부모 자식의 관계를 누가 뜯어고칠 수 없어요. 설명으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힘으로 부정할 수 없고, 어떤 지식, 어떤 권력, 어떤 금력을 가지고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가지고도 이 부자의 관계를 부자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숙명적입니다. 아무리 갈라놓더라도 영원히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사랑과 생명과 핏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히 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6.235, 1990.10.14)

 

부자의 관계는 어떠한 것입니까? 아버지와 아들딸로서 영원히 떼어 낼 수 없는 사랑관계입니다. 그걸 부정할 수 있어요? 타락한 세상일망정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교육이나 혁명을 통해서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억 천만세 계속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불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성애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우주 전체가 모성애를 중심삼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143.52, 1986.3.15)

 

여러분 자신은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의 것이자 아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누구의 것입니까? 부모는 자녀의 것인 동시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체는 먼저 하나님의 것이 되고 자녀의 것이 된 후에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그 법도가 땅 위에 남아 있고 인간 생활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고아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고 자식을 사랑해 보십시요. 그래야 ‘나’라는 사람이 사방을 가릴 줄 알고, 위도 아래도 가릴 줄 아는 것입니다.

(18.209-210, 1967.6.8)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자식에게 생명까지 줬으니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 생명이 사랑에서 생겼으니, 본질적인 사랑 앞에서 생명을 희생하며 가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모순적인 결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37.76-77, 1985.12.18)

 

부모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부모는 못 먹더라도 먹을 것이 있으면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쥐고 혀를 깨물며 굶주림을 극복해 가면서 그것을 자식에게 줍니다. 그 사랑은 부모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식으로 키우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수고의 노정을 가야 부모의 수고가 밑천이 되어 자식이 부모를 위로할 있는 수고의 노정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여러분의 아들딸들도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이요,그럴 수 있는 아들딸을 두어야 선한 혈족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주로 하고 부모님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효자라고 말하느냐? 부모가 나를 위해서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 앞에 할 수 있으면 그 자식은 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과도 통합니다. 부모는 중간에서 정성을 들여가며 키웠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은 아랑곳없다고 한다면 그 집안은 망하게 됩니다.

주고받는 이치에 있어서 상대적 기준이 조성되어야만 돌아오는 것이요, 또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그 자리에 임재하실 수 있으며 천국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 남아질 있는 자식은 어떠한 자식이냐? 부모의 사랑으로 진 빚을 자기 스스로 갚아야 합니다. 부모가 나이 들어 노망을 했을 때 자기가 어린 시절에 똥 싸고 오줌 쌌던 것을 닦아 주던 그 부모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참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부모를 모셔야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35.241-242, 1970.10.19)

 

가정에서 ‘효도해라’ 하는데, 왜 효도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가 가야 할 사랑의 길에 동참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님의 참다운 사랑의 길에는 천륜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모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종적인 천륜이 여기에 인연되어 가지고 가기 때문에 부모와 하나 되라는 것은 천륜의 역사, 보이지 않는 종적인 역사와 횡적인 역사의 양면의 심정권을 이어서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 앞에 효도하라는 이유입니다.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부모 앞에 효도할 것이 무엇이야? 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우리를 낳을 때 우리를 생각하고 낳았어? 자기들이 좋아서 낳았지’ 하는 식입니다. 그것은 이 원칙을 모르고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역사는 종적인 기준이 서야 횡적인 기준이 서게 됩니다. 빌딩을 짓더라도 먼저 수직선을 맞추어야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평선을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고층건물이라도 넘어가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세상에 서 있다는 자체가 벌써 종적 기준을 맞추는 것입니다.  

(136.203, 1985.12.29)

 

요즘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정합니다. 인륜도덕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인륜을 부정할 때는 끝 날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런 현재의 사조에 장단을 맞춰 춤춰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진실로 영원히 긍정할 수 있는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스승은 스승대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뜻에는 나이 많은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21.121, 1968.11.17)

 

3) 형제사랑

 

형제 사이의 사랑과 조화는 가정평화 구현의 본질적 요소이다. 부모에게 형제의 반목 투쟁보다 더 큰 걱정거리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향으로 볼 때, 형제 사이의 경쟁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조화가 쉽게 유지되지 않는다.

 

형제 관계는 부모의 사랑에 근거한다. 형제는 자기 부모의 생활양상을 반영한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돌보며 모범을 보이면, 자녀들은 서로서로 돌보면서 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나아가 형제 사랑은 사회의 친구와 동료 사이의 원만한 유대를 형성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다.

 

하나님을 가정의 부모로 모실 인류는 형제자매의 관계가 조성된다. 여기서 형제 사랑은 인류 차원의 사랑으로 확대된다. 그래서 자기 ‘형제’ 사이의 용서와 화해에 관한 경전의 가르침은 가정의 형제뿐만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형제자매에게,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계의 전 인류에게 적용되어야 함을 교시한다.

 

종교 경전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한데 사는 일!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타고 흐르는,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향긋한 기름 같구나.

헤르몬 산에서 시온 산줄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리는 이슬 같구나. 그곳은 여호와께서 복을 내린 곳, 그 복은 영생이로다.   

시편133(기독교)

 

믿는 자들은 형제들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의 두 형제 사이를 화해시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을 것이니라.     

꾸란 49.10(이슬람)

 

효와 우애는 ()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논어 1.2(유교)

 

시경에서 “처자와 화합함이 비파와 거문고를 타는 듯하고, 형제는 화합하여 화락하고 즐겁게 살아간다. 너의 집안을 안락하게 하고 너의 처자들을 즐겁게 하는구나”라고 노래한다. 공자가 이 글을 읽고 말하였다. “이렇게 처자 형제와 화합하면 부모님들도 마음이 더욱 편안하시겠구나.”    

중용15.3(유교)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을 것이다’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마태복음5.21-24(기독교)

 

말씀 선집

 

자녀 사이의 사랑은 어떠해야 합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사랑해야 합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듯이 형제들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누구로부터 배우느냐 하면 부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사랑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는 형제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만약 누이동생이 있다면 그 동생 사랑 하기를 자기 어머니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여자 형제는 오빠를 사랑하는 있어서 아버지와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는 서로서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이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듯이 언니는 동생을 사랑해야 됩니다.  

(66.121, 1973.4.18)

 

도대체 어떤 사람이 효자입니까?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이구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다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동생과는 싸웁니다’ 하면 이는 효자가 아닙니다. 그 어머니는 말하기를 ‘네가 날 사랑하듯이, 아니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형제를 더 사랑하는 것이 효자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 원친은 간단해요. 이 원칙만 인류가 믿고 생명을 걸고 사랑하면 지상에 천국은 안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95.189. 19977.11.13)

 

어떤 가정에 형님이 있고 동생이 있는데, 그 형님은 대통령이요 동생은 노동자라고 한다면, 형님이 동생에게 ‘야 이 녀석아 너는 노동자니 우리 집에 들어와서 노동이나 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참다운 형님이라 할진대, 그 동생이 자기와 같지 못한 것을 한하면서 높여주고 싶은 심정이 동하는 것이 참다운 형님의 마음입니다.  

(7.38. 1959.7.5)

 

형제의 어려움은 자기 어려움보다 중요시하지 않게 형제지간의 관계는 소원해집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62.188, 1972.9.25)

 

집안에서 형제가 서로 의견이 달라서 싸운다고 부모는 어느 편을 드느냐? 주먹질을 먼저 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싸우는 자식의 편을 드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역사 과정에서 교육과 인륜도덕의 표준은 ‘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31.235-236, 1970.6.4)

 

이상(理想)은 어디에 있었느냐? 남자 여자에게는 아들딸이 이상이다 이겁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는 것이 이상적인 형제자매지요? 남자들뿐이면 싸움밖에 안 합니다. 오빠가 누이동생을 때리더라도 한번 ‘애앵’ 하고 울고 나서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찾아오지요? 남자들끼리는 한번 틀어지면 일주일 이상 가지만, 여자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룻밤만 자고 나면 잊어 버리고, ‘오빠!’ 하면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가 그렇게 함께 어울려 화합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가운데서 성장하는 사람은 천주의 전시회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205.81, 1990.7.7)

 

지금까지 여러분들 형님 누나하고 싸움하고, 형제끼리 싸움하고 ‘뺑’ 해서 나왔으면 가서 잘 잔치해 가지고 흐뭇하게 해주고 나 용서해 달라고, 이제 우리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듯이 사랑하자고 그래야 됩니다. 그거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어머니 아버지 다 영계에 간 다음에 형제들이 남아진 어머니 아버지를 내가 모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형제가 어머니 아버지 대신이니까 남아진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말입니다. 형제가 못살면 내가 도와주고 어머니 위해 주던 것같이 해주는 거그 얼마나 아름다워요? 거기서부터 천국이 시작되는 겁니다.

 

할아버지 있지요? 어머니 아버지 있지요? 삼촌 있지요? 고모 누나 다 있을 것입니다. 이 삼대권 중심삼은 그 모든 친척을 중심삼고 태어난 모든 것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보여 주기 위해서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시요.···

 

이러한 것을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생각하게 , 이것을 확대한 것이 세계이기 때문에 사회를 보게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연령, 고모 연령, 삼촌 연령, 어머니 아버지 연령, 형님 연령,누나 연령, 동생 연령, 전부가 그래요.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로 모시고 위하고 그렇게 사랑하고, 그 다음엔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형님과 동생같이 위하겠다고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닙니까? 세계 사람을 보여 줘서 형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거지가 있다면 그 거지가 아버지 나이라면 아버지와 같이 위해 줄 수 있는 마음, 그거 얼마나 아름다워요? 하나님으로 볼 때 전부가 자기 아들딸인데 싸움하는 것이 좋겠어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전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찬가지 개념입니다.  

(184.65-66, 1988.11.13)

 

가인과 아벨이 하나 되지 않고 갈라져서는 됩니다. 한편은 바른손이고 한편은 왼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하나님인 동시에 네 하나님이시요,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입장에서 최대의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3.207-208, 1957.11.01)

 

4) 우정

 

형제 관계에서 익힌 교훈은 친구 관계 유지에 직접 적용된다. 우정은 형제 사랑의 사회적 확대 형태이다. 굳건한 우정은 정서적 유대를 조성하며 사회 윤리를 정착시킨다. 좋은 친구는 정직하고 신실하며 진실하다. 그리고 그것은 친구, 곧 타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원동력이다. 반면, 나쁜 친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이용한다. 경전은 무엇보다 친구 선택에 신중할 것을 권고한다.

 

(1) 진실한 친구와 거짓친구

 

종교 경전  

 

남자 신도들과 여자 신도들은 서로 상호간 보호자이니라. 그들은 선을 권하고 악을 금하며 예배를 준수하고 자카트(구빈세)를 납부하며 하나님과 그의 예언자에게 복종하노라.     

꾸란 9.71(이슬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13(기독교)

 

군자는 ()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을 돕니다.   

논어 12.24(유교)

 

나의 , 요나단, 형 생각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오. 형은 나를 즐겁게 해주더니. 형의 그 남다른 사랑, 어느 여인의 사랑도 따를 수 없었는데.    

사무엘하 1.26(기독교)

 

개가 말한다. “네가 쓰러지고, 내가 쓰러진다면 그 놀이는 즐거울 것이다.”   

누페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마리가 함께 걷는 것은 마리의 양이 다른 양의 눈에 있는 먼지를 불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카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종교)

 

남과 (同人):동인(同人)괘에 “먼저는 울부짓다가 나중에는 웃는다”고 하였다.

공자가 이것을 해설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자의 도가 나아가기도 하고 혹은 처해 있기도 하며, 혹은 침묵하기도 하고 혹은 말을 하기도 하나 두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니, 그 날카로움이 금()이라도 끊고,마음을 함께 한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   

역경, 계사전, 1.8.6(유교)

 

유익한 것이 가지 벗이요, 손해되는 것이 세가지 벗이다. 곧은 이를 벗하고, 성실한 이를 벗하고, 견문이 많은 이를 벗하면 유익하다. 편벽된 이를 벗하고 고집스런 이를 벗하고, 말만 잘하는 이를 벗하면 손해된다.   

논어 16.4(유교)

 

항상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친구,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친구, 단지 그대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발림 하는 친구, 나쁜 짓에 동무가 되는 친구, 현명한 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친구, 그들을 위험한 길로 알고 멀리 피해야 한다.

 

항상 도움을 주는 친구,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는 친구, 항상 좋은 충고를 해주는 친구, 가슴을 함께 나누며 연민하는 친구, 현명한 자는 이 넷을 가슴을 나누는 친구로 여기며 마치 어머니가 친자식에게 하듯이 전적으로 그들을 섬겨야 한다.  

디가 니카야 3.187, 시갈로바다 수트라(불교)

 

우리가 주변에 없을 우리가 부재할 우리를 위해 행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우리가 있을 때는 모든 사람들,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우리에게 사랑을 드러낸다.     

요루바족의 (아프리카 전통 종교)

 

말씀 선집  

 

세상에서 가장 좋아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좋아할 있는 친구라는 것이 천만세까지라도 너와 나의 사이를 끊을 없다 하는 그런 좋은 자리의 친구냐는 것입니다. 값비싼 어떤 것보다도, 자기 부인보다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하루의 생활 감정의 말 한마디로 버릴 수 있는 그런 인연의 자리가 아닙니다.

 

생명 자체를 거두어 가더라도 끊을 없는 자리가 이러한 친구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동정의 자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선의 모체이기 때문에 오늘날 내 본심에 같이 하던 선과 인연되었던 모든 인연들은 영원히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갈래야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42.2.18, 1971.3.14)

 

참된 친구는 어떠한 사람이냐? 나를 위해서 있어라 하는 데는 참된 친구가 없습니다. 참된 친구는 친구를 위해서 있겠다는 데 있습니다.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명의 친구를 위해서 일생 동안 봉사했다고 할 때, 그 열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너에게 있어서 일등 친구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들은 전다 다 열 친구를 위해서 일생 동안 봉사하고 희생한 사람을 꼽을 것입니다.  

(70.72, 1974.2.8)

 

인간은 사귐에 있어서, 서로서로 알 때부터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거기에는 생활적인 면도 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까지도 연결되는 것입니다.내가 살고 있는 입장, 전폭적인 분야가 관계되어 있는 상대와 더불어 일체적인 자리를 갖추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고 넓고 높을수록 그는 내 앞에서 없어서는 안 될 친구면 친구일 것이고, 혹은 가정이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59.296, 1972.7.30)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받겠다. 당신은 그 고통의 자리에 나가지 말라. 내가 대신 나가겠다’고 생명을 각오하고 나설 수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150.196, 1961.2.15)

 

친구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냥 얼굴만 알고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의 집에 가면 자유스러워요? 자유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도 반드시 서로의 심정적 유대가 있어서 내가 친구의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고, 또 친구가 내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고, 또 친구가 내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어야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적으로 가까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적인 문제는 전부 해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되는 것이 심정적인 문제입니다.     

(33.133, 1970.8.11)

 

친구가 되고 누구보다 가까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알아 그것을 붙들고 위로해 주어야 됩니다. 심정을 통하고 사랑으로 인연을 맺는다면 그 사람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나도 그 사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7.306, 1959.10.11)

 

(2) 친구 선택의 지혜

 

종교 경전  

 

악한 벗과 사귀지 마라. 천한 사람들과도 사귀지 마라. 선한 벗과 기꺼이 사귀고 고결한 이들과 사귀어라.   

법구경 78(불교)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고린도전서 15.33(기독교)

 

더러운 것을 가까이 하면 같이 더럽혀질 것이다.

순결한 것에 가까이 하면 같이 순결해질 것이다.     

미슈나, 켈림 12.2(유대교)

 

훌륭한 것은 친구를 추구하라. 그것은 그대가 몸과 영혼으로 덕을 실천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사악한 것은 거리를 유지하고 떨어져 있으라. 그것은 악이 그대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음즐문(도교)

 

정직한 자들의 무리 가운데 앉아라. 선하고 덕 있는 자들과 함께하라. 만일 적의가 불가피하다면, 사악한 자들이나 정의롭지 못한 자들과 무관한 적을 찾아내라. 속박 속에서도 그대는 덕 있는 자들, 박식한 자들, 진실한 자들과 지내야 한다. 그러나 설사 왕국을 준다 해도 사악한 자들, 정의롭지 못한 자들과 함께 머물지 말라.   

가루다 푸라나 112(힌두교)

 

누군가와 사귀거나 또는 어울린다면, 그는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된다. 사귐이란 바로 그와 같기 때문이다. 사귀는 사람과 그 대상이 되는 사람, 접촉하는 사람과 접촉되는 사람은 같아진다. 마치 독이 묻은 화살 하나가 독이 묻지 않은 화살더미를 더럽히는 것과 같다. 양편 모두가 더러워진다. 더럽혀질 것이 두렵다면, 악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   

이티붓타카 68(불교)

 

함께 기거해 후에야 비로소 어떤 수행자의 공덕이 알려지게 된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주의 깊게 지켜본 후에 알 수 있으며, 또한 지혜로운 자에 의해서만 알려지며, 무지한 자에 의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함께 기거해 후에 비로소 어떤 수행자의 청정함이 알려지게 된다. 그의 굳건함이 알려지는 것은 바로 곤경에 처한 때이며, 그의 지혜가 알려지는 것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이며,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주의 깊게 지켜본 후에 알 수 있다. 주의 깊게 지켜본 후에 알 수 있으며, 또한 지혜로운 자에 의해서만 알려지며, 무지한 자에 의해서는 알려지지 않는다.   

우다나 65-66(불교)

 

친구를 사귈 먼저 그를 시험해 일이다. 너무 서둘러 네 마음을 주지 말아라. 어떤 친구는 자기에게 이익이 있을 때에만 우정을 보이고 네가 불행하게 되면 너를 버린다.

어떤 친구는 원수로 변하여 너와 싸우며 너의 숨을 약점을 공개한다. 또 어떤 친구는 너의 식탁에는 잘 와서 앉으나 네가 불행하게 되면 너를 버린다.

네가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하인들마저 마음대로 부리다가 네가 망하게 되면 등을 돌려 앞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다.

원수들은 멀리하고 친구들도 경계하여라.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지닌 것과 같다. 성실한 친구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으며 그 우정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의 신비한 약인데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이런 친구를 얻을 수 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참된 벗을 만든다. 그러므로 그의 친구도 그처럼 참되게 대해 준다.    

집회서6.7-17(기독교)

 

말씀 선집  

 

우리의 일생의 문제를 두고 ,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그렇지만 앞으로 살아 나가는 데에도 그렇습니다. 말 한마디가 일생을 좌우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말 한마디 함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듣는 것도 그래요. 한마디, 한 번 잘못 들음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행동에 있어서도 그래요. 한 번 가는 것을 잘못 가게 되면 역시 일생을 망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들이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도 친구 한 사람을 잘못 사귐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인생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자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조심하고, 듣는 걸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친구를 조심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혹은 동양 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공식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게 되면, 자기가 불리하고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남을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을 공식적입니다. 공통적입니다. 그때 자기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친구도 이용할 수 있고, 환경도 이용할 수 있고, 말도 달리할 수도 있고, 행동도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인간 세상에서 누구를 믿겠느냐?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모든 올바른 길을 가기가 어려운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좋은 친구라고 내가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가 나를 밟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수 있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누구를 친구로 삼느냐? 누구와 더불어 좋은 계기를 갖느냐? 이런 문제가 세상의 큰 문제입니다.   

(91.29-30, 1977.1.2)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려 때에는 발전할 있는 친구냐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는 친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소망이 없는 친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소망이 없는 친구와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자기에게 점점 무가치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친구와 관계를 맺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32.14, 1970.6.14)

 

여러분들 주에 개인주의 사상이 농후한 사람을 친구로 삼겠다는 사람 있습니까? 자기만을 위하려는 사람이 좋은 친구입니까, 나쁜 친구입니까? 나쁜 친구입니다. 왜 나쁩니까?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으로부터 모두 갈라놓습니다. 칸막이로 막듯이 막아 놓는다는 것입니다. 왜 나쁜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악은 무엇이냐? 악은 사적인 것과 통합니다. 본래부터 악을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씨알맹이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선한 친구를 원하지요? 나쁜 친구는 싫지요? 그러면 선한 친구는 어떤 친구에요? ‘밥도 먹지 말고 학교도 가지 말고 나와!”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에요? 친구가 밥을 먹을 시간에 밥을 먹지 않았으면 밥을 먹이고,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면 학교에 가게 하는 이런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나쁜 친구는 이와 반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36.69, 1970.11.15)

 

‘아, 저 사람은 내 친구 가운데 어떤 유형의 사람과 같다. 저 사람은 내가 아는 백사람 가운데 어떤 유형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비교 연구해야 됩니다. 그래서 서너 유형의 사람을 골라서 확인해보는 겁니다. 온유한 사람이냐? 교만한 사람이냐? 강렬한 사람이냐? 그 다음에 우물쭈물하는 사람이냐?

(54.177, 1972.3.24)

 

<!--[if !supportLists]-->5) <!--[endif]-->부부사랑

 

백년가약은 신성하게 허용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수반하고 있다. 부부 사랑의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부부 사랑을 통해 자녀를 양육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공동 창조자로서 우리 질서에 참여한다. 여기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부부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후, 가장 친밀하며 현실적인 방식으로 하나님 사랑을 직접 체휼하는 일정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문선명 선생은 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가르친다. 그분의 가르침에 따르면 결혼은 인간 완성의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결혼 배우자가 자신의 사랑을 강호하고 인생을 재창조하는 방법에 과내서 문 선생은 여러 차원에서 실제적인 충고를 제공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상호 애정은 그들에겐 절반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축복결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수직적 사랑이 구현된다는 점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반영하기 위해서 남자-여자 사이의 인간적 사랑을 창조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절대적이며 불면하며 유일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개별적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배우자들도 그렇게 서로 성실하게 사랑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결혼 가치에 대해 질문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신적 설계에 입각하여 결혼의 위상을 격상하기 위해 종교의 목소리에 깊이 유의하곤 한다.

 

경전의 여러 구절들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제정한 본연의 계획에 근거하여 결혼을 언급한다. 여기에는 문선생님의 독특한 기여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인간 타락의 과정을 밝히고 본연의 고귀한 부부 사랑이 어떻게 전락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해명한다. 타락의 결과, 불가피하게 전통적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에서 일탈하였고, 이로써 결혼 이상은 구현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문선명 선생의 중심적 사명의 하나는 전 인류가 본연의 부부 사랑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일환이 축복결혼의식이다.

 

(1) 부부 사랑과 애정

 

종교 경전  

 

참된 화합을 보여주는 우리의 얼굴들,

우리가 주고받는 눈길이 달콤하여라.

나를 당신의 가슴속에 간직하시고,

영혼이 우리 안에 살게 하시라.

나는 마누로부터 나에게 전해진 나의 겉옷으로 그대를 감싸니,

그대는 온전히 나의 것일지니,

결코 다른 어느 누구도 찾아 나서지 않으리라.     

아트르바 베다 7.36-37(힌두교)

 

단지 함께 있다 하여 부부가 아니다.

진실로 맺어진 사람은 하나의 빛으로 산다.    

아디 그란트, 바르 수히 키,M.3 p.788(시크교)

 

징표 중의 하나는 너희를 위해 너희 중에서 아내들을 창조하여 너희와 살게 하였으며 너희 사이에 사랑과 자비심을 만들었노라.    

꾸란 30.21(이슬람)

 

가슴에 달고 있는 인장처럼, 팔에 매고 다니는 인장처럼 이 몸 달고 다녀다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시샘은 저승처럼 극성스러운 것, 어떤 불길이 그보다 거세리오?

바닷물로도 없고 굽이치는 물살도 쓸어갈 없는 , 있는 재산 다 준다고 사랑을 바치오? 그러다간 웃음만 사고 말겠지.     

아가8.6-7(유대교)

 

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 임의 향내, 그지 없이 싱그럽고 임의 이름, 따라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아 사랑한다오. 아무렴, 사랑하고 말고요. 임을 따라 달음질치고 싶어라. 나의 임금님, 어서 임의 방에 데려가 주세요. (합창단) 그대 있기에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 포도주보다 달콤한 그대 사랑 기리며 노래하려네. (신부)    

아가.12-4(유대교)

 

보라, 수리야의 아리따운 자태를!

구슬 달린 레이스와

꽃을 감아올린 머리장식이며

겹으로 나누어진 옷자락을

사제가 그것을 거룩하게 했도다.

내가 그대의 손을 잡으니 행운이 있으리오.

낭군인 나와 더불어 년을 해로하리라.

태양신들인 바가, 아리야만, 사비트리,

푸랑디의 여러 신들이

그대를 나에게 주어

집의 안주인이 되게 하였도다.

푸샨, 그녀를 깨우라.

가장 축복받은 그녀를,

불타는 사랑으로 그녀가 나를 맞이하면

또한 그렇게 그녀를 안으리라. ···

너희 들은 여기에 살라, 헤어지지 말라.

여러 아들과 손자들을 기르며

자신의 집에서 즐기면서

받은 수명을 다하라.

프라자파티는 우리에게

자식이 생겨나게 하시라.

아리야만은 우리가 백년해로하게 하시라.

불길하지 않게 낭군의 집으로 들어가라.

사람들과 가축들에게 행복을 가져오시라.

그대, 관대한 인드라여!

그녀로 하여금 훌륭한 어머니가 되게 하시라.

풍족한 재물을 맘껏 부어 주시라.

그녀에게 아들을 주시고

남편으로 하여금 열한 번째가 되게 하시라.

시아버지에게 여왕처럼,

시어머니에게 여왕처럼,

시누이에게 여왕처럼,

그리고 시동생들에게도 여왕처럼 되어

모든 행복을 누리는 되어라.

우주의 모든 신들과 물의 아파스는

우리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소서

마타리쉬반과 다트리와 드베쉬트리는

또한 우리를 하나로 굳게 묶어주소서

리그 베다 10.85.35-47(힌두교)

 

구욱 구욱 우는 물수리는

강가 모래톱 위에 있구나.

그윽하고 고요한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들쭉날쭉한 마름 풀을

좌우로 물길을 따라 헤치며 찾는구나.

그윽하고 고요한 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깨나 찾는구나.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지라

자나깨나 생각하고 그리워하여,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이없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노라.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좌우로 헤치며 따는구나.

그윽하고 고요한 아리따운 아가씨를

거문고와 비파로 금실 좋게 벗하고 싶구나.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좌우로 헤치며 고르는구나.

그윽하고 고요한 아리따운 아가씨를 ··· 종과 북으로 즐겁게 하고 싶구나.   

시경1(유교)

 

쩔그렁 우리는 수레의 걸쇠소리여, 아름다운 막내 딸 시집을 가도다.

굶주려서가 아니면 목말라서가 아니나 덕음(德音)으로 와서 모였으면 하노니

비록 좋은 벗은 없으나, 잔치하고 또 기뻐하리.

무성한 나무 숲속에 꿩들이 모여 있네. 때에 알맞은 잘 자란 저 아가씨여,

아름다운 덕으로 와서 (나와 짝하여) 잘 가르쳐준다. 잔치하고 또 찬미하여, 너를 좋아하길 한없이 하겠노라.

비록 맛있는 술은 없지만, 마셔주길 행여 바라네.

비록 아름다운 안주가 없지만 먹어주길 행여 바라네.

비록 그대와 더불어 만한 덕이 없지만 노래하고 춤추리.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갈참나무 장작을 패네.

갈참나무 장작을 패노라니 잎사귀는 무성하기도 하네.

너를 만남이 어려웠는데 보았으니 마음이 쏟아지노라.   

시경 218(유교)

 

말씀 선집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할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사랑이요, 초월적인 사랑이지, 세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최고의 아름다운 사랑이요, 사랑 중에 대표적인 사랑이요,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 어디냐 하면 가정입니다.  

(26.154, 1960.10.25)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의 사랑은 어떤 조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영원히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112.294 1981.4.25)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가더라도 남자가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만세의 담이 막혀 있다 해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담이 있다 해도 그 담을 무난히 헤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49.52, 1971.10.3)

 

사랑하는 데는 몸이 되어서 사랑해야 합니다. 남자와 한 몸이 된 여자가 참된 사랑으로 하나되어 그 부부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을 때 영원히 공존하는 것입니다.   

(187.47. 1989.1.6)

 

결혼이 중요합니까? 사랑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생명과 남자의 생명이 일체가 되는 길입니다. 다음에 남자, 여자의 혈통이 여기서 혼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역사가 생겨나고, 나라가 생겨나고, 세계가 생겨나고, 이상세계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없으면 개인도 없고, 가정도 없고, 나라도 없고, 이상세계도 없습니다. 이것이 공식이 돼 있습니다.    

(279.114-115, 1996.8.1)

 

부부천국이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플러스-마이너스가 완전히 하나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결혼한 날부터 좋다고 하다가 몇 해 안 가서 전부 이혼하고 굿바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부부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겠어요? 어는 누구도 부부를 뗄 수 없습니다. 다이너마이트가 폭발되어 다리가 없어지더라도 꼭대기는 붙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랑을 찾아갑니까? 참사랑을 찾아갑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그런 사랑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96.29-30, 1978.1.1)

 

결혼에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이 무엇이냐? ‘남자 여자 만나서 그저 그렇게 사는 거다’ 그게 결혼의 목적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의 세계를, 남자 여자의 마음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것이요, 남자 여자의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관념이 전부 없습니다. 결혼했다 하는 것은 ‘나는 그러한 증거를 이루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통해서 이루겠다. 죽어 갈 때 나는 그것을 이루고 간다’ 한다면 틀림없이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97.277, 1978.3.26)

 

여자는 남자를, 아버지를 대신하고 남편을 대신하고 오빠를 대신하고 동생을 대신한 입장으로 사랑해야 하고, 또 남자는 여자를, 어머니를 대신하고 아내를 대신하고 누나를 대신하고 동생을 대신한 입장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4대 입장을 대신하여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서로서로 그 자극을 느끼게끔 묶어 준 인연이 부부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대신 입장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제일 기본 단위적인 기반이 부부입니다. 그 기반을 예수님이 못 세웠기 때문에 그것을 세우기 위해 세계를 대표한 인간으로 사랑할 수 있는 두 남녀가 신랑 신부의 이름으로 만나는 자리가 어린양잔치를 하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면 아내를 어머니 대신으로, 누나 대신으로, 동생 대신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남편을 아버지 대신으로, 오빠 대신으로, 동생 대신으로, 그 이상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이상 상대를 중심삼은 가정적 부부 사랑입니다.   

(37.109, 1970.12.22)

 

하나님은 편안한 것보다 자기를 죽이면서 밤낮으로 뛰는 것을 좋아합니다. ? 사탄을 멸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 잘난 미인이 잘난 남자 얻겠다고 하면 그것은 다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원친을 알게 하나의 남자로서 결혼할 여자를 진짜 위해서 한다면, 내가 미남자이지만 진짜 못난 여자라고 하더라도 미인보다 더 사랑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게 원칙적인 생각입니다. 내가 하나의 여자로 태어나서 남편을 하나님같이 사랑하고, 인류와 같이 사랑하고, 이 세계의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서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절대 못 갑니다. , 하나의 남성으로서 하나의 여성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97.321-322, 1978.4.1)

 

그러면 통일할 있는 방안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이 불쌍하게 생각되어서 사랑할 수도 있고, 좋아서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부끼리 처음부터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차차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을 보니 고집이 똥고집입니다. 그 고집 많은 영감을 누가 살아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부인은 ‘저 고집 때문에 얼마나 부딪치는 것이 많을까, 그 똥고집을 갖고 사니 얼마나 힘이 들까?’ 이러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쌍하게 생각해서 사랑해 주면, 그 영감은 제일 외롭고 슬플 때는 부인을 찾아와서 사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 그 영감이 고집 센 것을 보면, 자기는 고집이 없는데 영감의 고집이 쓸 만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아서도 사랑할 수 있고 불쌍해서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마음만 가지게 되면 통일되는 것입니다.   

(41.332-333.1971.2.18)

 

우리 통일교 식구들은 어렵게 삽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불행이 아닙니다. 빵을 하나 가지고서도 나누어 먹고 사는 생활, 그것이 얼마나 좋아요! 서로 아끼고, 서로가 안 먹고 한 끼를 굶으면서 자기 아내를 먹이려고 하고 남편을 먹이려고 하는 그 사랑의 골짜기가 얼마나 깊습니까!  

(216.270, 1991.4.7)

 

사람에게는 항상 자극이 필요합니다. 행복은 자극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이 있어야 되다는 것입니다. 항상 먹는 밥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파야 맛이 새로운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인과 남편이 서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고 온종일 함께 있고 싶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해야 됩니다.  

(23.57-58, 1969.5.11)

 

축복가정을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보면 가정이 별과 같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늘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태양같이, 달 같이 빛날 수 있는 사랑하는 커플이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파고, 파고, 파고 아직까지 10년을 살아도 그 사랑의 골짜기를 못 찾습니다. 파고, 일생 동안 파고 계속 파다가 죽어야 영원한 하늘세계에 가서 다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에 대해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을 보면, 성격이 이런 줄 알았더니 뒤로 바라보니 우주가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놀랍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위에서, 아래에서, 동서 사방에서 바라보지 않고 하나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는 ‘우리 남편이 이렇다!’ 하면 그것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사랑이상을 못 찾습니다. 여기에서 딱 방향을 돌려 가지고 위로도 보고, 아래로도 보고 전부 연구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남편에 대한 매력, 죽더라도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부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일까요? 몽뚱이 전체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싸우고 나서 여편네가 남편의 깜빡 깜빡하는 눈을 가만히 보면 자기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나를 닮았습니다. 숨 쉬는 것도, 듣는 것도, 입술도, 느끼는 것도 나를 닮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랑도 나를 닮았기 때문에 이걸 놓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마음이 늙지 않으면 사랑은 어떻겠느냐? 생명은 어떻겠느냐? 다음에 혈통은 어떻겠느냐? 하나님의 참사랑은 늙지 않습니다. 사랑이 10, 20년 깊어 갈수록 더 미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세상에 일들 미인이 되고, 일등 미남이 됩니다.

 

지상 위에서는 추녀 추남이라도, 흑인이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보면 1등 미인이 됩니다. 사랑의 빛 이상 밝은 것이 없기 때문에 저 나라에서는 불쌍한 어떤 모양이라도 최고의 아름다운 모양으로 자꾸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생각하는 미인들은 자꾸 늙어 갑니다. 세상의 미녀는 저 나라에 가면 추녀가 되고,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중심삼고 부부가 사랑하면 할수록 더 미남이 되고 미녀가 됩니다.

 

사랑의 빛은 최고로 높은 빛입니다. 최고의 빛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는 천주의 내 빛이요, 내 사랑이니, 내 꿈이요, 내 행복이요, 내 자유요, 내 평화는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마음 외에는 미인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297.168-170, 1998.11.19)

 

선생님이 축복을 해주는 있어서 원만한 가정이 되게 하려면 극과 극이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동과 동, 북과 북이 만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북과 남, 동과 서가 서로 만나게 해야 됩니다. 키 큰 남자에게 키 큰 여자를 얻어 주어야 하겠습니까, 키가 작은 여자를 얻어 주어야 하겠습니까? 뚱뚱한 남자가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 뚱뚱한 여자가 뚱뚱한 남자를 좋아하는 법이 없습니다. 호리호리한 남자가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호리호리한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자기도 훌쭉한데 여자까지도 훌쭉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산에 큰 나무만 전부 있으면 보기 싫습니다. 작은 나무도 있어야 좋지요.  

(26.333-334, 1969.10.3)

 

천국은 가정에서부터이다. 대상으로부터 선한 것을 못 찾는 사람은 천국에 못 간다.    

(뜻길, .172)

 

(2) 남자와 여자를 완전하게 하는 결혼

 

종교 경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하시고, 들짐승과 공주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게 붙여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이렇게 아담은 집짐승과 공주의 새와 들짐승의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 가운데는 그의 일을 거들 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이리하여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창세기 2.18-24(기독교)

 

결혼하지 않은 자는 기쁨도 축복도 선함도 누리지 못한다.     

탈무드, 예바모트 62b(유대교)

 

처음에 오직 유일한 자아가 있었다. 오직 혼자였으므로, ··· 그는 아무런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날도 이와 마찬가지다. 혼자 있는 사람은 아무런 즐거움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제2의 존재를 갈망했다. 그는 서로 끌어안고 있는 남자와 여자만큼 커졌다. 그는 이 자아를 둘로 나누었으며,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야갸발키야가 종종 말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은 갈라진 완두콩의 반쪽과 같다.’ 이 공간이 여자로 채워진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그는 그녀와 하나되었으며, 이로써 인류가 생겨났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1.4.171.4.3(힌두교)

 

의로운 자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그들이 남녀 함께 있을 번창할 있다.      

조하르1.82a(힌두교)

 

그는 오직 아내, 자신, 자식,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베다와 학식 있는 바라문들은 이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편은 아내와 하나라고 말해진다.”    

마누법전 9.45(힌두교)

 

말씀 선집  

 

결혼은 뭐냐 하면, 반쪽밖에 안 되는 남성 여성이 완성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완성을 위한 사랑은 자기가 자기를 위해 태어났다는 그러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사랑은 흘러가는 사랑이고 거짓된 사랑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고 상대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 상대를 위해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데서부터 참사랑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262.67-68, 1994.7.23)

 

우주의 존재 질서는 위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의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동시에 인간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기원, 행복과 사랑의 기원은 상대를 위하여 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주를 보면, 그 어느 존재물도 자기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물계는 식물계를 위하여, 광물계와 식물계는 동물계를 위하여, 또 이 모두를 합한 만물들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합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또 만물들을 위하여 그들을 있게 하시고 성장 발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하는 것이 존재세계의 기본 질서인 고로 누구도 위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지 자신만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고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할지라도 여자가 태어난 본래의 의의는 여자 때문이 아니고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남녀가 지니고 있는 소성과 감정도 모두 상대를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부의 경우 결혼 하면서 ‘아!나는 태어난 것도 당신을 위하여, 사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죽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사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죽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하게 되면 이를 이상적 부부, 행복한 부부라고 하는데, 존재세계의 기본 질서로 보아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거기서부터 참된 사랑은 시작됩니다. 이렇게 참된 것은 위하는 데에서부터 기원을 찾아야 합니다.  

(135.234, 1985.12.11)

 

오늘날 처녀 총각들은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은 가정을 이루어서 가정의 부모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훌륭한 상대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왜 입니까?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느끼는 한편 훌륭한 아들딸을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족한 면을 상대방을 통해 보충해 가지고 더 좋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나 것들을 가슴 깊이 꽁꽁 품고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26.147, 1969.10.25)

 

해와는 여성 성품, 아담은 남성 성품을 중심삼고 분립해서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갈라졌다가 합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이 내적으로 품고 있던 사랑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내게 사랑이 있지만 사랑을 몰라요. 상대를 만남으로써 알게 됩니다. 내성적인 사랑을 사람을 통해서 느껴 보는 것입니다.

(185.187, 1989.1.8)

 

남편에게 있어서는 아내 되는 사람이, 아내에게 있어서는 남편 되는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필요한 사람이다. 서로 권고해 주면서 지팡이가 되고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27.87, 1969.11.26)

 

남자들은 부인이 색시이기 이전에 인류의 여성이요, 하나님의 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류가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 이상 사랑할 수 있다면 남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자는 반대입니다. 저 사람은 내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남자라고 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남성을 대표한 남성으로 생각해 가지고, 인류가 사랑하는 이상 내가 사랑하고 많이 위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그 이상 사랑하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남자로서 하나의 발을 만들 것이고, 여자로서 하나의 왼발이 되어 가지고 인류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발짝을 이룬 가정을 이루어 행복해 질 것이다.’ 이런 부부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른 발은 남편이요, 왼발은 여자입니다. 절름발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틀림없이 잘 가겠습니다’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또 그러면서 똑바로 가야 됩니다. 이럴 수 있어야 결혼할 자격이 있습니다.

(88.318, 1976.10.3)

 

(3) 진정한 부부의 사랑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하나님이 하나

 

종교 경전  

 

남자가 집에 있을 때에도 가정의 근간은 아내이다. 아내로 인해 쉐키나(성스러운 존재)가 집안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스승들은 창세기의 이 말씀을 이해했던 것이다. “이삭이 리브가를 그녀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갔다.” 이것은 쉐키나가 리브가를 따라 이삭의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스러운 어머니는 집안이 정돈되어 있고, 남녀가 함께 할 때만이 남성에게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에 성스러운 어머니의 축복이 그들에게 내려지는 것이다.   

조하르 1.50a(유대교)

 

, 가우타마여, 여인은 제사의 불이며, 그녀의 성기는 기름이며, 머리카락은 연기이며, 음부는 불꽃이며, 성교는 타다 남은 찌꺼기이며, 향락은 섬광입니다. 이 불로 신들은 신주로서 정액을 줍니다.이 정액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납니다.    

브리하드아란야가카 우파니샤드 6.2.13(힌두교)

 

하늘과 땅의 창조자께서 너희를 위하여 부부를, 그리고 가축에게도 암수의 짝을 만드시어 너희가 그 속에서 번식하게 하였노라.     

꾸란 42.11(이슬람)

 

욕망이 남녀를 합하게 하면, 그 결과 그들 닮은 아들이 나온다. 주 하나님도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지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남편은 그때에 자신을 정결히 하여 그를 닮은 형상이 가능한 한 완벽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하르, 창세기 90b(유대교)

 

남편이 성스러운 목적으로 잠자리 전에 자신을 성별하면, 남녀 두 성으로 이루어진 성령이 그 위에 임한다. 그리고 주 하나님은 태아를 책임지는 사자에게 명령하시어, 이 특별한 영혼을 맡기시고, 태아를 어디에 놓을 것인지를 가르쳐주신다. 욥기의 “그 밤이 남자 아이를 배었다고 말하였다”(욥기3:3)가 그 의미이다. ··· 그리고 아이의 영혼은 하늘에 계시는 그분 닮은 형상을 작고 내려온다. 이 형상을 닮아 아이가 자라며 세상을 살아간다.     

조하르 3.104b(유대교)

 

주님은 번째 혼례 순행(巡行)으로 결혼 생활에서 일상의 의무에 대한 조례를 보여주신다. 경전은 주의 말씀이나, 이를 통해 옳은 것을 익히라. 그러면 주께서 너를 죄악에서 자유롭게 하리라. ···

번째 혼례 순행으로, 너희는 주께서 참된 구루를 만나게 해 주심을 알게 되리라. 네 가슴 속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네 마음속에 있던 이기심의 불결함은 씻겼나니. ···

번째 혼례 순행으로 주에 대한 열망이 자리하고 세상에 대해 무관심해지리라. ···

번째 혼례 순행으로, 마음이 신의 지식에까지 닿나니, 신이 마음속에서 느껴지도다. 구루의 영광으로 우리는 쉬이 주께 다가갔도다. 사랑의 달콤함이 우리 몸과 영혼에 충만하도다. 경애하고 즐거운 것은 우리에게 있는 주라. 밤낮으로 우리 마음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도다. 주를 찬미함으로써 우리가 주께 이르도다. 우리 마음의 열매가 바라던 것이나니, 그가 이 혼례를 주관하기 때문이라. 영혼이 배우자가 사랑하는 이름 안에서 기뻐하리라. 주께서 그의 성부와 하나되나니, 신부의 마음이 그의 이름으로 피어나도다.     

아디 그란트, 라가 수히, M.4.pp.773-774, 라반(시크교)

 

말씀 선집

 

여자로 태어난 것은 남자를 찾아가기 위해서 태어났고, 남자로 태어난 것은 여자를 찾아가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여자 남자로 태어난 것은 보다 차원 높은, 둘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기 위함입니다. 혼자는 그 사랑에 못 접한다는 것입니다. 혼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진짜 사랑에 접할 수 없습니다. 접하더라도 이것은 일방적입니다. 입체적인, 구형적인 이러한 사랑에는 접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보다 차원 높은 입체적인 사랑권 내에 점핑하기 위해서 남자 여자가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본래, 본연의 사람은 타락하지 않았으면 남자 여자가 하나되면 도리수록, 그 힘이 작용하면 할수록 여기에는 위대한 중심이 생겨나 가지고 구형이 됩니다. 횡적으로 연결되면 될수록 여기에는 종적인 힘의 사랑의 모체가 연결돼 들어오게 됩니다. 모든 마음이나 몸이나 완전히 거기에는 찰딱 달라붙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것입니다.   

(109.275, 1980.11.02)

 

이런 모든 것이 부부로서 이루어지면 부부 자체가 한마음이 됩니다. 부부 자체가 한 마음이니 한 몸이 되어야 하고, 그 한 몸이 된 것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의 빛 가운데서 전부 다 하나 되는데, 하나 되는 그 부부는 전부 하나님이 덮어서 자기도 알 수 없는 빛의 힘이 나를 품어서 동화되게 합니다. 모든 신비로운 경지에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296.33,1998.10.11)

 

하나님은 당신의 몸으로 아담을 먼저 지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체를 쓴 하나님 자신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아담의 상대자로 해와를 지어서 횡적인 사랑 즉 부부사랑 이상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해와는 하나님의 딸인 동시에 하님의 횡적 사랑이상을 실체로 완성할 신부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하나님의 축복 하에 결혼을 하고 첫사랑을 맺는 자리는 하나님이 실체의 신부를 맞는 자리인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부부 사랑이상이 횡적으로 결실되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절대사랑 이상이 종적으로 임재, 동참하시므로, 하나님의 참사랑과 인간의 참사랑이 한점에서 종횡의 기점을 중심하고 출발하여 한 점에서 결실, 완성하게 됩니다.   

(277.198-199, 1996.4.16)

 

결혼을 누구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라는 뜻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뜻은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은 자신을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심정이 주체적인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그가 동하면 내가 동하고 그가 정하면 우리도 정하여 심정적 일치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화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창조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35.231, 1970.10.19)

 

 

(4) 결혼은 두 사람을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시키는 신성한 결합

 

종교 경전

  

나는 ‘그’이며, 그대는 ‘그녀’입니다. 나는 가락이요, 그대는 시입니다.

나는 하늘이요, 그대는 땅입니다.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우리 둘이 여기서 함께 삽니다.  

아타르바 베다 14.2.71 (힌두교)

 

세상 땅과 하늘의 본을 받아서 부부를 점지하여 왔었음으로

이것이 세상의 시초이니라.   

가구라 우타(천리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가복음 10.6-9(기독교)

 

축복받으소서! 당신, 나의 주 하나님, 우주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형상대로 인류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위해 영원한 자리를 준비해 주신 분이여. 축복 받으소서! 당신, 나의 주 하나님, 인간의 창조주 이시여···.

 

에덴동산에서 태초에 당신의 피조물을 보시고 기뻐하셨듯이, 이 당신의 사랑하는 이들을 보고 기뻐하소서. 축복받으소서! 당신, 나의 주, 우주의 주인이시여. 기쁨과 환희, 신랑과 신부, 즐거움, 환호, , 즐거움, 사랑, 형제애, 평화, 동료애를 있게 하신이여. 어서 빨리, 나의 주 하나님,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유대 땅과 예루살렘 땅에 울려 퍼지게 하소서.

 

신랑 신부의 목소리, 찬양으로부터 들려오는 환희에 찬 신랑의 목소리, 노래잔치에 몰려든 청년들의 소리 모두가 이 땅에 울려 퍼지게 하소서. 축복받으소서! 당신, , 주님, 신랑 신부에게 기쁨을 베푸시는 당신이여.    

탈무드, 케투보트 8a(유대교)

 

사랑의 복음은 ··· 더 이상 결혼한 두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존재 내에 있는 두 개체적 본성으로서 남자와 여자의 일치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처럼 합쳐진 영적 개체성은 하나의 유형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하나님을 반영한다. 이 신성하게 통일된 영적 의식에서 영원한 천국의 기쁨 – 신의 창조의 완전성- 으로 나아가는 데에 장애물은 없다.     

과학과 건강, 576(크리스천 사이언스)

 

권능의 하나님의 작품인 세상의 영혼들은 모두 신기하게도 하나이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 내려올 때는 남자와 여자로 분리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남성과 여성으로 함께 나타난다. 그 뒤에 세상에 내려올 때는 분리된다는 말이다.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짝지어 주신다. 하나님 아닌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가장 잘 맞는 짝을 아는 사람이 없다. 행복한 자는 올곧고 진리의 길을 걷는 자이다. 그렇게 하여 영혼은 본연의 짝을 찾고 진실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조하르 1.85b(유대교)

 

해의 영광에는 하늘, 곧 세 가지 등급이 있느니라. 사람이 가장 높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 신권의 반차(새롭고도 영원한 결혼서약을 말함)에 참여해야 하느니라. 만일 참여하지 못하면 이를 얻을 수 없느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거듭 이르노니 어는 사람이 나의 율법이 되는 나의 말씀과 새롭고도 영원한 서약으로서 약속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내를 맞이하고 내가 신권의 권능과 열쇠를 주어 성직에 기름 부어 임명된 자가 굳게 맺어 때에 “너희는 첫째 부활에 나아오라. ··· 그 영광은 완전한 최고의 영광이요, 영원토록 그 자손이 계속 되는 것이니라.”    

교리와 성약 131.1-3, 132.19(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말씀 선집

 

사랑을 이루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오늘날 가정윤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됩니다. 지금까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의 최고 신성을 우리는 노래해야 됩니다. 남자 여자가 사랑할 수 있는 길은 결혼생활입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누구를 닮느냐?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하나돼야만 자시의 형상대로 남자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임하시게 됩니다.   

(70.76, 1974.2.8)

 

지금 자유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뭐냐 하면, 사랑의 질서 문제입니다. 사랑은 사랑인데 어떤 사랑이냐?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즐기는 것이 사랑입니까? 그런 사랑은 역사과정도 없고, 미래관도 없고, 방향도 없는 사랑입니다. 이건 자기 멋대로 이기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는 자유의 원천과 통일의 원천, 평화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오늘 좋아하다가 내일 갈라지는데 무슨 평화가 있고, 무슨 통일이 있고, 무슨 자유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자유가 있어요? 거기에 행복이 있어요? 거기에 평화가 있어요? 거기에 통일이 있어요? 전부 그 반대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은 파괴의 동기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 사랑은 파괴의 동기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사랑은 사탄이 반대로 이용해서 인류를 파괴시키고, 인류의 이상을 파괴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적인 무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진짜 평화를 빼앗아 가고, 진짜 자유를 빼앗아 가고, 진짜 통일을 빼앗아 가는 원수의 전략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04.140-141, 1979.4.29)

 

결혼을 하느냐?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신 분으로서 각 일성이 합체화한 일률적인 존재이시고, 그 하나님의 분성적 인격 자체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그들이 합성일체화하여 씨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본성의 자리에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사랑의 도리의 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면서도 사랑받고, 자라면서도 사랑을 목표로 해서 자라고, 살면서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며, 가면서도 사랑에 돌아가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138.99, 1986.1.19)

 

결혼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이성상상을 가지셨으니, 그 이성성상에 맞게 하려니 두 세계의 현상을 묶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사랑의 발전과정에서 필연적 요건이 결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지고 인간이 서로 상대역을 만들기 위해 사랑으로써 땅에서 묶어질 결혼을 합니다. 사람을 왜 지었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형으로 지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해서 만물을 창조했다는 결론은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랑은 어디서 나오느냐? 지상의 부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 결혼하는 날은 기쁜 날입니다.  

(123.217-218, 1983.1.2)

 

내가 결혼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녀가 결혼하는 것은 남자가 오른쪽에 있으면 여자는 왼쪽에 있기 때문에 우주를 위하는 것입니다. 천지이치는 상하의 조화입니다. 남자가 주체이므로, 주체인 남자가 위라면 여자는 아래이기에 상하를 갖추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후를 갖추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후를 갖추기 위해서 합니다. 남자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여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리의 법도를 맞추기 위해 하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리의 법도를 맞출 수도 있도록 남자는 그렇게 생겼고 여자는 그렇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101.38-39, 1978.10.28)

 

남자 여자가 만나는 것은 우주의 상봉입니다. 이것이 깨진다면 우주가 깨지고 종적 세계가 다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결혼은 종적인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상봉이요, 횡적인 영원한 세계와 순간적인 세계의 상봉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참사랑을 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랑이 중앙지로 자꾸 단축시켜 들어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중앙지에서 하나로 뭉치게 됩니다.   

(118.32, 1982.4.26)

 

세계, 우주를 보십시오. 광물세계도 플러스 이온 마이너스 이온, 식물세계도 수술 암술, 동물세계도 수놈 암놈 다 있습니다. 세균까지 암컷 수컷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전부다 사랑을 중심삼고 자기 나름대로 급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돼 있습니다. 이러한 쌍쌍제도의 우주를 보면 이것들은 인간의 이상적 사랑이 하늘땅을 대표해서 하나될 때 전부 같이 연결되어 받들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집을 지으려면 처음에 기초를 닦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위해 이런 쌍쌍제도를 전부 만든 것입니다. 동물도 그렇습니다. 수놈하고 암놈하고 다니다가 암놈이 피해를 보게 되면 수놈이 그저 목숨을 내걸고 사수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새끼를 보게 되면 새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입니다. 사라의 도리는 그런 것입니다. 왜 그려냐하면 근본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22.123.1991.10.28)

 

결혼은 천지의 합덕이요, 종횡·좌우·전후 전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자녀, 형제, 부부, 부모 이상의 완성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 부부는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부모요, 그리하여 제2 창조주의 자리에 섰으므로, 하나님이 제1 창조주로서 느끼는 전체를 상속하여서, 자녀·형제·부부·부모의 자리를 하나님 대신 체휼하기 위함이 자녀의 번식인 것입니다.

 

결혼하여 부부가 사랑을 하는 자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근원적 왕국의 자리요, 이상을 위한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출발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뿌리요, 생명의 뿌리요, 혈통의 뿌리요, 지상천국 천상천국의 뿌리입니다. 아담 해와 결혼 시에는 하나님이 아담 해와 마음에 들어가서 일체적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요, 아담 해와는 횡적인 참부모입니다. 그런 두 부모의 혈육을 받고 태어났으므로 마음은 종적인 내가 되고 몸은 횡적인 내가 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인·애 일체권을 형성하므로, 심신 일체애를 완성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자 왕녀가 되면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가 되어 하나님의 전체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가 참사랑을 중심한 부부 일체를 완성하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되는 것이요, 그 가정은 평화와 이상의 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반쪽 되는 남자 여자들은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상대로서 신의 이상애를 완성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254.107, 1994.2.1)

 

인간 시조 아담 해와는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날 때 그들은 자녀를 거느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쫓아낸 아담 해와를 에덴 바깥까지 찾아가서 축복하고 결혼식을 해 주셨을 리 만무합니다. 전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없이 번식한, 쫓겨난 조상의 후손입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은 하나님의 참사랑 이상을 저버린 불륜의 범죄입니다. 지켜야 할 계명이 필요했던 타락 전 아담 해와는 미완성 단계 즉, 성장기간에 타락했습니다.

 

인류 조상의 첫사랑의 결합은 하나님 자신의 사랑의 완성이기도 하므로 마땅히 하나님도, 아담, 해와도, 우주 만상도 환희와 축복 속에 취하는 행복한 잔치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인간 속에서 시원을 이루면서 정착하는 행복한 의식이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은 하체를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 불안에 떨었습니다. 천도를 거역하는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혈통의 근원을 만든 불륜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288.127, 1997.11.26)

 

하나님이 창조 당시 이상으로 바랐던 참된 사랑, 위대한 참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의 참사랑 관계를 맺어 이루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천국이니 지옥이니 염려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 되는 것은, 하나님의 참사랑과 참인간이 참사랑이 주체적 참사랑과 상대적 참사랑으로 하나 되어서 한 점에서 출발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참사랑과 인간의 참사랑이 다른 두 사랑의 출발이 되어지기 때문에 두 사랑의 방향과 목적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절대적 이상세계는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점에서 출발할 있기를 바랐던 하나님의 뜻은 타락으로 완전히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사탄의 사랑을 중심으로 거짓 부모가 생겼고, 인류는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혈통을 이어받은 이런 후손이기 때문에 이건 전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천국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275.55,  1995.10.31)

 

타락으로 인하여 거짓 부모로부터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혈통을 받아 거짓된 결혼식을 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비롯된 더럽혀진 것들을 완전히 청산하고 복귀하여, 참된 하나님과 참된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 참사랑의 씨, 참생명의 씨, 참혈통의 씨를 접붙여 주어 큰 축복을 전수해 주는 부활의 예식이 바로 국제합동결혼식인 것입니다. 세계 전 인류가 큰 축복을 받아 천국가정으로 전환하여 지상천국에 입적하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275.59, 1995.10.31)

 

6) 결혼 생활의 윤리

 

결혼의 사랑은 감정의 절제가 요구된다. 그 사랑은 결혼생활의 연단을 통해 생존하고 번창한다. 결혼 생활은 약속을 공유하는 부부에게 특별한 도전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도전은 인견 정련의 도가니로서, 사랑 완성의 학교로서 봉사한다.

 

경전들은 세대를 통해 결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통적 윤리적 규칙의 일부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경전들은 부부가 집안일에서 서로 다르지만 보완적인 역할을 설명한다. 남편은 아내를 공경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두 배우자는 신실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결코 이혼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때때로 이러한 전통적인 역할은 이중적인 기준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왔으나, 바르게 이해된다면 그 역할들은 상호 호혜적인 책임을 서술한다(사회적 양성평등을 논의하는, 20장 ‘여성의 권리’ 참조). 문선명 서생은 결혼의 이상은 남편이 아내를 하나님의 딸로서 존경하고, 아내가 남편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경하면서 배우자들이 서로 위해 살 때 천국이 실현된다고 가르친다.

 

(1) 부부 사랑의 핵심 윤리: 부부는 서로에게 복종해야 함

 

종교 경전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이신 여러분, 주님께 순종하는 것 같이,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구주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같이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이신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내주신 것같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육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기르시고 돌보시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육신을 가꾸고 보살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각각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중하십시오.   

에베소서 5.21-33(기독교)

 

아내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비록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아내의 말없이 행하는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경건하고 순결한 행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남편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도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기보다 약한 그릇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사람으로 알고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막히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2, 7(기독교)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 하도록 하십시오. 아내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합니다.   

고린도전서 7.3-4(기독교)

 

너의 아내는 너의 대한 권한이 있다.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남편은 아내에게 부부로서 의무를 억지로 강요하면 된다.       

탈무드, 에루빈 100b(유대교)

 

너희의 아내들은 너희의 밭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원하는 때 혹은 원하는 방법으로 너의 밭에 가까이하며 네 스스로 (좋은 행동 등을) 먼저 보내라.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꾸란2.223(이슬람)

 

말씀 선집

 

사랑의 길은 남편과 아내를 , 만 배의 절대적 높은 기준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에 대해 그런 절대순종의 자리를 거쳐 그러한 대상권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랑으로 결혼한 부부는 그런 높은 수준을 고대합니다. 하나님 또한 이런 높은 기준의 대상을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들은 절대 순종의 자리에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부간의 사랑이 꽃피는 것입니다.   

(288.68-69, 1997.10.31)

 

내가 하나의 여자로 태어나서 남편을 하나님같이 사랑하고, 인류와 같이 사랑하고, 이 세계의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서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절대 못 갑니다. 또 하나의 남성으로서 하나의 여성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해요? 인류를 사랑할 수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97.321-322, 1978.4.1)

 

남자 앞에 있는 여자는 하나님의 딸이요, 인류의 여성인 것을 남자들은 알아야 됩니다. 내 색시이기 이전에 인류의 여성이요, 하나님의 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류가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 이상 사랑할 수 있다면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는 반대입니다. 저 사람은 내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남자라고 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남성을 대표한 남성으로 생각해 가지고, 인류가 사랑하는 이상 내가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상 내가 사랑하고 많이 위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그 이상 사랑하기 위해서···.

 

그래서 ‘내가 남자로서 하나의 발을 만들 것이고, 여자로 하나의 왼발이 되어 가지고 인류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발짝을 이룬 가정을 이루어 행복해질 것이다!” 이런 부부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른 발은 남편이요, 왼발은 여자입니다. 절름발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틀림없이 잘 가겠습니다’ 그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똑바로 가야 됩니다. 이럴 수 있어야 결혼할 자격이 있습니다.

(88.318, 1976.10.3)

 

이제 여러분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희생해야 되고, 절대 복종해야 되고, 절대 사랑을 해야 하는 일만이 여러분들에게 남은 것입니다. 선생님을 잃어버리고 다 잃어버려도 좋지만, 내 자체 내에서 하늘을 대해 절대 복종이요, 절대 희생이요, 절대 사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해서 하기 전에 여러분 아내를 대해서 하고 남편을 대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97.312, 1978.3.26)

 

사람에게 제일 귀한 곳은 사랑의 기관입니다. 사랑의 기관이란 생식기입니다. 생식기가 내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누구 것입니까? 아내의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어요? 누가 그렇게 정했어요? 하나님입니다. 천지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전부 사랑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을 위한 존재는 자기를 위해서 생식기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연결하지 않고는 참사랑을 완성할 없습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이 참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참사랑이 필요해요? 참사랑에 연결되어야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남자 혼자 사랑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식기의 주인인 상대와 연결될 때 완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에 연결되어야 여자가 완성하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남자의 생식기를 완전히 점령하는 그 자리에서 완성이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297.156, 1988.11.19)

 

여자 , 오목은 볼록 거예요, 오목 거예요? 남자 것입니다. 그건 남자 것입니다. 남자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남자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남자 것은 여자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 이것이 천법입니다.  

(130.126, 1984.1.1)

 

남자, 여자가 자기의 생식기의 주인이 자기 것이 아니고 상대의 것이라고 할 때 사랑의 상대에 대해서는 공손히 머리 숙이고 받아야 됩니다. 사랑은 상대로 얻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가 없으면 오지 않습니다. 상대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대 앞에 공손해야 됩니다. 위하지 않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 위해야만 절대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279.123, 1996.8.1)

 

부부끼리도 사랑한다도 해서 남편 있는 벌거벗고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없습니다. ‘나 이러는데 괜찮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고 움직여야 됩니다. , 여편네는 쿨쿨 자고 있는데 남편이 ‘아이고, 여보!여보!’ 그래요? 자는 시간에도 규범이 있는 것입니다. 소리가 날 때는 두드려도 괜찮습니다. 또 사랑할 때도 남자가 여자에게 매달리면 됩니까? 여자가 남자에게 매달려야지요.   

(225.161, 1992.1.12)

 

(2) 양성 관계: 책임은 다르지만 사랑에서 동등함

 

종교 경전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여자보다 우수하게 만드셨고 또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들의 재산을 사용하므로 남자들은 여자들의 보호자이니라. 그러므로 정숙한 여자는 순종적으며 하나님이 지키도록 명령한 것을 남편의 부재 시에도 잘 지키고 있노라.    

꾸란 4.34(이슬람)

 

여자는 안에서 바른 위치에 있고 남자는 밖에서 바른 위치에 있으니, 남녀가 바름이 천지의 대의이다.   

역경 37(유교)

 

너희 모두는 보호자이고, 너희의 피보호자에 대한 채임을 가진다. 통치자도 한 사람의 보호자이고, 남자는 가족의 보호자이다. 아내도 역시 한 보호자로서 남편의 집과 자식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 따라서 너희 모두는 보호자이고, 너희의 피보호자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     

부카리 하디스(이슬람)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시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다음,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창세기 2.21-23(기독교)

 

베다의 거룩한 구절에 따라 혼인한 남편은 아내가 가임기에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항상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설사 그가 덕이 부족하거나 다른 곳에서 욕망을 채우거나 또는 장점이 전혀 없을지라도 정숙한 아내는 그를 신처럼 섬겨야 한다.

여자는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고 서원을 필요도 없으며 단식을 필요도 없다. 만일 그녀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만 한다면, 단지 그 이유만으로 천계를 얻게 될 것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결코 바깥주인을 멸시하지 않는 여자는 죽은 후에 남편과 함께 천계로 가려, 정숙한 여자로 일컬어진다.     

마누법전 5.153-166(힌두교)

 

아내를 학대하지 말라. 여성은 신성하다. 만일 네가 아내를 고통 받게 한다면 너는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우리의 할머니, 대지는 여성이다. 네가 네 아내를 학대하는 것은 대지를 학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돌보는 우리의 할머니를 학대하는 너의 행위에 의해 실제로는 네가 너 자신을 죽일 것이다.    

위네바고족 아버지의 훈계(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남녀평등이라는 말은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자가 힘에 있어서 남자를 당하겠어요? 뜀뛰기에 남자를 당하겠어요? 옷 만드는 데 남자를 당하겠어요? 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여자가 남자보다 나아서 그것이 평등권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남녀가 사랑을 중심삼고 평등권이지, 그 외에는 평등이 아닙니다.   

(209.208, 1990.11.29)

 

여자의 행복한 대는 어느 때냐? 남자의 행복한 때는 어는 때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렇게 볼때에 둘이 서로 좋아할 때다 이겁니다. 그런 결론밖에 내릴 수 없습니다. 뭣 중심삼고? 주먹 갖고? 그걸로 남편한테 이길 수 있어요? 여자는 한번 주먹을 꼭 쥐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주먹 싸움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힘 가지고, 힘 싸움 가지고 되겠어요? 힘 싸움하게 된다면 이건 언제든지 밀려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도 사랑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힘이 있는 남자도 서로 맞부딪쳐서 밀고 당기고 이렇게 해서 사랑의 품에 품기게 되면 여자를 들고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땐 기분이 좋지요? “아이고 나를 왜 들고 돌아가?” 하면서도. 그때는 내 발도 무시하고 말입니다, 자기 몸뚱이 전체를 무시해도 사랑의 자리에 품겨서 돌아가는 그 시간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137.217, 1986.1.3)

 

남편과 아내에 대한 공적인 사랑의 길을 가지 않고 사적인 사랑의 길을 가다가 깨져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 가정의 부모들이 자기 중심삼은 사랑은 하면 할수록 깨져 나갑니다. 사회를 망치고 세계를 망치는 것입니다.   

(111.257, 1981.2.22)

 

아내란 남편에 대하여 순응하고 그를 위하여 도울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남편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81.318, 1975.12.29)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올라가도 좋고, 내려가도 좋고, 가운데 있어도 좋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자기보다 높다고 해서 싫어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자기보다 낮다고 해서 그걸 미워하나요? 하나예요, 하나. 하나가 되면 마음대로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올라갈 수도 있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올 수도 있고, 중간에 있을 수도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여기는 제재가 없습니다.  

(91.141, 1977.2.6)

 

집에서도 아버지는 좋고 어머니는 있으나 없으나 하는 존재입니까? 아버지 생일은 성대하게 차려 주면서 어머니 생일을 기억도 하지 않습니까? 부모라는 인연은 천지조화라는 것을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전부다 상대적입니다. 무엇이든 합해져야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도 코도 귀도 입술도 모두 서로 합하는 데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머니 아버지 둘이 합해야 세상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암만 해봐야 안 됩니다.

 

숨을 들이쉬기만 가지고는 없습니다. 들이쉬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쉬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소를 마시고 사니까 숨을 들이쉬는 것만 필요합니까? 세 번을 계속 들이쉬기만 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도리어 내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숨을 내쉬어 탄산가스를 몸밖으로 내보내야 산소가 많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만 나와 가지고는 됩니다. 요즈음 세상은 남자를 위주로 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을 해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3년 이상을 남자가 여자한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개체가 복귀하는 데는 정도(正道)대로 거쳐 가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 해와가 둘이서 떨어졌으니, 올라갈 때도 둘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것은 재창조와 같은 것입니다. 창조할 때 아담을 먼저 만들고 해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재창조할 때도 아담을 만들어 놓고야 해와를 만드는 것입니다.    

(21.194, 1968.11.20)

 

(3) 부부의 좋고 나쁨

 

종교 경전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 남편은 넉넉히 벌어 들이는 아내를 믿고 마음이 든든하다. 백 년을 한결같이 속 썩이지 않고 잘해 준다. 양털과 모시를 구해다가 손을 놀리니 즐겁기만 하구나. 마치 상선과도 같아 멀리서 양식을 구해 온다.

 

아직 어두울 일어나 식구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여종들에게 일을 맡긴다. 밭을 사도 잘 생각해서 사고 제 손으로 벌어 포도원을 장만한다. 허리를 동인 모습은 힘차고 일하는 두 팔은 억세기만 하다. 머리가 잘 돌아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밤에 등불이 꺼지는 일도 없다.

 

손수 물레질을 해서 손가락으로 실을 탄다. 불쌍한 사람에게 팔을 벌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뻗친다. 온 식구를 두둑히 입혀서 눈이 와도 걱정이 없다. 손수 이부자리를 만들고 모시와 붉은 털로 옷을 짜 입는다. 남편은 지방 어른들과 함께 성문에 앉아 존경을 받는다. 모시로 옷을 지어 팔고 띠를 만들어 상인에게 넘긴다. 몸 매무새에는 힘과 위엄이 나타나고 앞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입을 열면 지혜로운 말이 나오고 혀를 놀리면 친절한 가르침이 나온다. 항상 집안 일을 보살피고 놀고 먹는 일 없다. 그래서 아들들이 일어나 찬양하고 남편도 칭찬하기를, "살림 잘하는 여자가 많아도 당신 같은 사람은 없소" 한다. 아름다운 용모는 잠깐 있다 스러지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은 칭찬을 듣는다. 그 손이 일한 보답을 안겨 주고 그 공을 성문에서 포상해 주어라.

잠언 31.10-31(기독교)

 

부유한 상인 아나타핀디타의 장남의 젊은 아내 수자타는 교만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았으며, 남편과 시부모의 훈계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가정에 분란이 잦았다. 어느 날 세존께서 아나타핀디카의 가정을 방문하고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존께서 젊은 아내 수자타를 불러서 자상하게 말했다. 수자타야, 일곱 가지 유형의 아내가 있다.

 

몰이정하고, 타락한 마음을 지니면, 남편을 무시하고 상냥하지 않으며, 다른 남자를 보고 욕정을 일으키는 아내, 사람 잡는 창녀, 그런 아래를 살해자라고 부른다!

 

남편이 손재주로 벌거나 장사를 하여 또는 쟁기질 하여 소득, 설사 그것이 아무리 쥐꼬리만큼 작아도 그것을 강탈하려드는 아내, 그런 아내를 도둑이라 부른다!

 

게으르기 짝이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며, 수다를 떨거나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잔소리나 하면서 남편의 열성과 근면을 하찮게 여기는 아내, 그런 아내를 머슴을 부리는 주인이라 부른다! 마치 어머니가 외아들을 대하듯 자애와 연민을 가지고, 남편을 보살피고, 그를 존중하며 재물을 잘 간수하고 지키는 아내, 그런 아내를 어머니라 부른다!

 

누이동생이 오라버니에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대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기꺼이 남편을 시봉하는 아내, 그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 부른다!

 

친한 벗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며 온화하고 상냥한 마음을 지닌 아내, 그런 아내를 친구라 부른다!

 

만일 채찍이나 매를 두려워하지 않고, 꿈쩍 않고 모든 것을 인내하며, 침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며, 화내는 일 없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 그런 아내를 하녀라고 부른다.

 

이제 머슴을 부리는 안주인, 살해자, 도둑이라 불리는 아내, 거칠고, 부도덕하며, 존경할 줄 모르는 아내는 죽음에 이를 때 지옥의 고통 속에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가르침과 훈계를 잘 받아들이고 자제하는 어머니, 누이동생, 친구, 하녀라 불리는 아내는 죽음에 이를 때 행복한 천계에서 자유로이 다니다. 수자타야, 이 일곱 가지는 남자가 맞이할 수 있는 아내의 유형들이다. 너는 어떤 유형의 아내냐? 수자타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 시간부터 저를 하인으로 생각하여 주십시오.”              

앙긋타라 니타야 4.91 (불교)

 

만약 네가 남자와 결혼하고 그를 놓치지 않고 항상 확실히 붙들어 두고자 한다면, 그를 위해 일해라. 글 위해 일함으로써 너는 항상 그를 붙들어 둘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네가 네 남편이 만족할 만큼 일을 한다면, 그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남편에게 신뢰 받도록 해라. 네가 여러 남자와 동시에 결혼한 것처럼 행동하지 말아라. 순결한 삶으로 나아가라.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네 남편에게 신뢰받지 못한다면, 모든 남자들이 너를 비웃을 것이다. 그들은 내키는 대로 말할 것이고 아무도 이를 막지 않을 것이다. 네 남편에게 도도하게 굴지 말아라. 그가 네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 네가 네 남편에게 순종하면, 그도 같은 방식으로 너를 대할 것이니 친절이 네게 되돌아올 것이다.         

위네바고족 선조의 가르침(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미국의 가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대방에게 늘 나만을 위해 달라, 나만을 사랑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한 것은 사탄의 본성이니 거기에는 하나님이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딸을 길러 가지고 ‘너는 나를 위하라’고 하고, 아들딸은 ‘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위하라’고 하며 서로 자기만을 위하라고 하니 깨지는 것입니다.    

(69.87, 1973.10.20)

 

여자는 남편에게 여러 가지의 거짓말도 하고 무엇이든지 숨기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자기 자신이 주체성을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축복가정이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탄세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96.257, 2002.11.10)

 

남자와 여자간에 부인이 남편에게 '이래 주소' 하면 '' 하고, 남편이 부인에게 '이래 주소' 하면 '' 하고, 서로서로가 '' 하면 하나되나요, 안 되나요? 그렇게 되면 사랑이 점점 도망가나요, 사랑이 더 커 가나요? 그래서 어떻게 돼요? 무엇이 중심 되느냐? 남자가 중심 되나요, 여자가 중심 되나요, 사랑이 중심 되나요? 사랑입니다. 사랑이 중심돼야 됩니다.    

(91.221, 1977.2.20)

 

남편 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해서 부인에게 책임이 없는 게 아닙니다. 어렵다고 해서 부인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부인에게 책임이 더 있는 것입니다. 피곤한 자리에 있지만 부인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라구요. 좋다고 해서 남편의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예요. 나쁘다고 해서 남편의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예요. 공동책임이 원칙입니다. 그 남편 앞에는, 그 아내 앞에는 이 나라의 누구보다도, 이세계의 어떤 사람보다도 하나님 대신 이 땅 위에 살게끔 배치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여기 어머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아들 딸 앞에 일생 동안 '우리 엄마 아빠 싸움했다' 이런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잘 싸웠다' 이런 말 듣게 되면 암만 잘해도 지옥 가는 거예요. 그 아들딸이 말할 때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 대신이야. 우리집의 하나님이야. 우리 아버지는 우리집의 대통령이야. 우리 아버지는 우리집의 성인이야. 우리 어머니도 그래' 그래야 됩니다. 옛날에 성인들이 말하기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지요? 우리 통일교회서 주장하는 것은 가화가 아니예요. 천화입니다. 천주를 중심삼고 하늘과 화합하라는 겁니다.  

(101.41-42, 1978.10.28)

 

여자가 신경질을 내고 있는데, 남자는 그 여자보다 더 신경질을 내면 어떻게 돼요? 여자가 신경질을 내는 것을 보고도 '! 그런 것도 있구나' 하고 감상할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여자는 신경질을 내는데 남자는 히히히…. 신경질적으로 '' 하고 남자를 부르면 ', 예스'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 할 때 '예스! (빨리)' 이러지 않고 '' 할 때 '예에에에스' 이래야 됩니다.

 

산울림은 산이 험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산이 험하고 클수록 굉장합니다. '삐익' 하면 '부웅' 합니다. 산울림이 좋은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얼굴이 못생겼지만 울림이 있어야 됩니다. 여자가 '와아' 할 때, '웅웅웅웅' 이래야 됩니다. 진짜라면 그런 뭐가 있어야 됩니다. 달라야 되고 같을 수 없습니다.   

(118.225-226, 1982.6.6)

 

아내의 지갑이 따로 있고 남편의 지갑이 따로 있어 가지고 '당신 돈이요, 내 돈이요' 하는 그것이 완전한 사랑입니까, 그러한 것을 초월하여서 '당신 돈이자 내 돈이고,내 돈이자 당신 돈이요' 하는 것이 완전한 사랑입니까?

 

여러분 자신이 결혼한다 하면 조건, 혹은 권리 조건 등 자기 조건을 앞에 내세우겠습니까, 사랑 조건 하나만을 내세우겠습니까? 이런 조건을 앞에 내세우는 사람이 진짜 사랑하겠다는 사람입니까, 가짜 사랑하겠다는 사람입니까? 사랑을 이용하겠다는 사람입니까, 사랑을 위해 살겠다는 사람입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위해 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시집갈 때 ',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것을 더하고,  그 다음에 자기까지 더해 가지고 바꾸는데, 남편 사랑하고 바꾸자 이것입니다.    

(92.192. 1977.4.10)

 

참된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냐? 참된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냐? 창조원칙을 세우신 하나님같이 백년 투입해 살고도 남편을 위해서 더 투입하고 싶어하는 아내가 참된 아내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아이고, 저놈의 영감 때문에 내가 망했구만'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충성을 다 못 했기 때문에 남편을 행복하게 못 해줬구만'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생활하는 그것이 참된 여인상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참된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204.4.1, 1990.6.29)

 

참된 부부는, 참된 아내는 어떤 아내냐? 남편을 위해서 태어났고, 남편을 위해서 살고, 남편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자리에서만이 참된 아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참된 남편은 어떤 자리에서 성립되느냐 하면 아내를 위해서 태어났고, 아내를 위해서 살고, 그 아내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이상적 기원을 여기에 설정했다 하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몰랐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 우리는 하나의 공식을 알았습니다. '위하여 존재 한다' 하는 공식에서만 참된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위하여 존재하는 거기에만 참된 이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원칙을 세웠으니 인간의 행복과 희망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77.293, 1975.4.25)

 

(4) 이혼은 하나님의 저주: 부부는 죽음 이후까지 신실해야

 

종교 경전

 

합법적인 중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이혼이다.   

아부 다우드 하디스(이슬람)

 

바리새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께 다가와서 그를 시험하려고 물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하신 것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해 준 것이지.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까닭이 아닌데도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9.3-9(기독교)

 

이러시느냐고 묻는다. 그 까닭을 말해 주랴? 네가 배반한 너의 조강지처, 약조를 맺고 혼인한 아내, 너의 짝과 너 사이에 야훼께서 증인으로 나서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몸과 마음을 묶으실 때, 무엇을 바라셨겠느냐? 하느님께서는 후손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 변심하여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도록 하여라.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이르시는 말씀이다. "조강지처가 싫어져서 내쫓는 것은 제 옷을 찢는 것과 같다. 나는 그러한 자들을 미워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변심하여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도록 하여라."   

말라기 2.14-16(기독교)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일로 너와 논쟁하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여인의 말을 들으셨느니라. 하나님은 너희 둘 사이의 논의를 들으셨노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들으시고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시니라. 너희 가운데 지하르로 너희의 아내들과 이혼하는 지들이 있으나 그녀들은 너희의 어머니가 아니노라. 그들의 어머니란 그들을 낳은 자를 말함이니라. 그들은 하지 말아야 할 거짓말을 하고 있노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그러우시며 관대하신 분이시니라.    

꾸란 58.1-2 (이슬람)

 

남편은 신으로부터 자신의 아내를 받는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그녀와 결혼하지 않는다. 항상 신이 기기뻐하는 것을 행하며, 그는 그녀를 부양해야 하며 그녀는 정숙해야 한다. “죽는 날까지 서로에게 충실해야 한다.” 이것은 부부에 대한 최고 법칙의 핵심이다.       

마누법전 9.95, 9.101(힌두교)

 

두둥실 있는 잣나무 황하 가운데 있네. 늘어진 저 양모머리를 한 총각이

실로 배필이니 죽을지언정 마음 갖지 않으리라.

어머니는 하늘 같으신 이처럼 저를 몰라주신가요!

두둥실 있는 잣나무배 황하 가에 있네. 늘어진 저 양모 머리한 총각이

실로 나의 배필이니 죽을지언정 마음 갖지 않으리라.

어머니는 하늘같으신 이처럼 저를 몰라주신가요!    

시경 45(유교)

 

남편이 죽은 후에도 계속하여 정절을 지키는 아내는 설사 아들이 없어도 천계에 간다. 그녀의 삶은 마치 금욕을 지키는 남자의 삶과 같기 때문이다.        

마누법전 5.160(힌두교)

 

말씀 선집

 

부부가 이루어졌으면 너와 나와의 상응관계가 일시적이어야 됩니까, 영원이어야 됩니까? 영원해야 됩니다. 처음이 좋았으면 끝에도 좋아야 합니다. 그 시종일관이라는 것이 ‘시’에 기뻤으면 ‘종’ 에도 좋아야 됩니다. 이혼하는 게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다.  

(86.109-110, 1976.3.14)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하려고 , ‘아,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하면 했지 우리 집이야 뭐, 그까짓 것 관계 없다' 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도 내 말 들어야 돼요. 이혼하지 마소!' 하는 것과, ‘이혼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좋겠어요? 어떤 걸 취해야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운동을 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단결해서 어머니 아버지가 불의의 이혼을 하는 것을 이제 전부 용서할 수 없다며, ‘나는 어머니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가 이혼하겠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을 수 있는 효자입니다.  

(95.50-51, 1977.10.23)

 

미국 젊은이들은 ‘내가 싫으면 내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다’하는데, 우주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귀하면 사랑도 귀한 줄 알고, 한번 맺으면 영원을 표준하고 그렇게 가야 됩니다. 그게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117.292, 1982.4.11)

 

하나님은 유일(唯一), 절대 무이(絶對無二)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아담도 그 속성이 현현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적인 속성이고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적인 속성으로 현현했는데, 그 속성 자체가 절대적입니다. 그 내적인 속성과 외적인 속성을 갖춘 그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인데, 그 사랑은 하나님까지도 절대 복종할 수 있는 절대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사랑 앞에 부부로 오시는 분은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것입니다. 절대적인 동시에 영원 불변입니다. 가를 수 없습니다. 이런 논리적 이론 기반을 모르니, 부부가 마음대로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론적인 기반이 있는 한, 절대 이혼할 수 없습니다.   

(226.171, 1992.2.4)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느냐?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패들은 오래 갑니까, 못 갑니까?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오래 가면 그것은 원리가 아닙니다. 서로가 사랑을 받겠다고 하는 가정은 깨집니까, 안 깨집니까? 깨집니다. 그럼 서로가 사랑하겠다고 하는 가정은 어떻습니까? 서로가 상대를 더 사랑하겠다고 야단하는 가정은 깨지라고 제사를 지내도 안 깨집니다. 서로가 위해 주려고 하는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36.76, 1970.11.15)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를 자랑하고 남자를 무시하면 지옥 가는 것입니다. (hell;지옥)이 뭡니까? 헬이 뭐냐 하면 쓰레기통입니다. 여자가 지옥 가더라도 남자가 '아이고 안돼! 못 가, 못 가! ' 하면 할 수 없이…. 사랑의 힘이 제일이니까 지옥으로 안 간다는 겁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우주적 최고의 복음입니다.  

(161.324-325, 1987.3.8)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있어서 어느 때까지 사랑하겠느냐고 묻게 , 젊었을 때까지만 사랑하겠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어느 때까지 사랑하기를 바라느냐? `영원히' 이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 다음에 영원히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영원은 미래를 중심삼고 전체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것을 몽땅 주어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영원히'는 전체적이요, `죽을 때' 까지는 몽땅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37.24, 1970.12.22)

 

(5)일부다처제의 문제

 

종교 경전  

 

누구든지 아내를 많이 거느린 자는 때문에 근심에 빠질 것이다.

아내들과 동거하기 위해 그들 명을 기만하고 거짓말하며 속일 것이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가 평안을 얻을 있을 불확실하다.   

요루바족의 (아프리카 전통종교)

 

너희는 아내들을 공평하게 다룰 없을 것이니라. 아무리 너희가 갈망한다 하더라도     

꾸란4.129(이슬람)

 

여러 아내를 가지는 것은 남자의 도덕적 본성을 갉아먹는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11.3(힌두교)

 

말씀 선집

 

여자가 결혼하면 남자관계를 사람하고 해야 되겠습니까, 백사람, 천 사람하고 해야 되겠습니까? 한 사람입니다. 왜 한 사람입니까? 참사랑을 위해서 입니다. 절대적 참사랑을 위해서 오직 한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122.234, 1982.11.14)

 

자기가 결혼하는 사람은 우주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남자하고 여자 둘밖에 없습니다. 첫사랑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의 남자 하나의 여자가 하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265.251, 1994.11.23)

 

7) 부모 사랑

 

부모의 위상에는 최상의 고결성과 극대의 이타적 정서가 요청된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 자체를 한결같이 희생한다. 자녀 소유의 의미는 고양된 인생의 경험으로서 도덕적인 힘을 발휘하여 무절제한 생활방식을 청산하고 자녀를 위한 책임적 모델의 역할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양육의 필수조건은 희생·인내·용서로서 그것은 거의 신적 경지에 가까운 사랑을 계발하는 것이다.

 

부모 사랑은 가정의 최상의 단계이다. 부부단계에서 부모단계로 격상하려면 부부는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또한 인간 완성을 위한 필수적 의무이다. 나아가 부모의 기본적인 과제와 책임은 자녀 교육이다. 문선명 선생은 이것을 심정교육가 규범교육으로 설명하신다. 이런 일련의 교육에는 각 단계별로 다루어지는 3측면을 지닌다. 도덕적 교육, 연대적 훈련, 전형적 생활 설정이 그것이다.

 

세계경전의 지혜는 자녀의 적절한 성장을 위해서 사랑과 배려의 교육을 부모의 본질적 의무라고 간주한다. 한편 부모 사랑이 남용되면 자녀교육에 실패한다. 사랑의 남용은 그릇된 성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의 본보기는 하나님을 향한 부모 자신의 특별한 신앙과 헌신의 본보기와 관련된다. 그것은 자녀 자신의 신앙을 발달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는 해악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는 최대 수호자이다. 십대의 딸을 가진 부모라면 어느 누구도 자녀의 안전보호 방안을 걱정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인지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문장들은 자녀를 위한 희생적 사랑, 부모의 심정에 대해 기술하고, 자녀가 실수할 때,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한 최선의 무엇인가를 기술한다.

 

(1)자녀의 본질적 가치

 

종교 경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주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28(기독교)

 

출산을 일부러 억제하는 이는 하나님의 신성한 형상에 해를 끼치는 것과 같다.   

창세기 랍바 34.14(유대교)

 

자식은 여호와의 선물이요, 태중의 소생은 그가 주신 상급이다. 복 되어라, 전동에 그런 화살을 채워 가진 자,      

시편 127.3-5(기독교)

 

아이는 남자의 옷이다.      

요루바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 종교)

 

국민의 미래는 국민의 어린이들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그리고 여성을 ‘하찮은 용도’ 로서 규정하거나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성의 경쟁이 미래 세대의 창조보다 더 가치 있는 노력이라고 믿는 국민은 죽어가는 국민이다.       

허버드, 생존의 과학(사이언톨로지)

 

말씀 선집

 

결혼하게 되면 아들딸 낳아야 되겠나, 안 낳아야 되겠나? 안 낳아도 되고 낳아도 되고 그거 마음대로 하면 좋지만 말이에요, 그렇게 안되어 있기 때문에 낳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안 낳으면 안됩니다. 왜 안 낳으면 안될까? 낳지 않으면 사랑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랑도 동서남북이 있고 중앙의 사랑이 있는데, 딱 중앙을 중심삼아야 그 뿌리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쳐서 큰 나무를 지탱할 수 있는 것입니다.  

(214.12, 1991.2.1)

 

자식들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부모의 사랑을 알고 부모를 모실 줄 알고, 남편의 사랑을 알고 남편을 모실 줄 알고, 자식의 사랑을 알고 자식을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자식에게 명령만 할 것이 아니라 모실 줄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있습니다. 교재로서 필요합니다. 자식이 없어 가지고는 미완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식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남편이 안 되어 보고는 아내 사랑을 모르고, 아내가 안 되어 보고는 남편 사랑을 모릅니다. 자기가 또 부모가 안 돼 가지고는 부모의 사랑이 어떤 줄 모릅니다. 다 그것을 연대 연대에 알게 하기 위한 교재로서 지었으니, 여러분들이 아들딸 없으면 참된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133.138-139, 1984.7.10)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이 없이는 하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사랑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서로 사랑하는 힘이 개체를 위하는 힘보다 강할수록 더 이상적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완전히 하나로 얽어매는 그것은 사랑의 밧줄입니다. 쇠로 만든 줄을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어 끊어지지만 사랑의 밧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는 밥으로도 돈으로도 얽어맬 수 없습니다. 오직, 부자 관계의 사랑으로만 얽어맬 수 있습니다.  

(18.329, 1967.8.13)

 

그러면 결혼해서는 하자는 것입니까? 가정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자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못 낳으면 그 가정은 가정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아들딸을 못 낳으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들딸을 낳아 놓고서야 가정이 확실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색시가 미워서 내친 걸음에 이혼하고 싶어도 아들만 낳아 놓으면 그 신랑도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꼼짝없이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을 이루는 데에는 자식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3.25, 1969.5.11)

 

자기 아들딸을 자기 남편보다, 아내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130.165, 1984.1.8)

 

신랑이 좋으냐 아들딸이 좋으냐 , 신랑보다는 아들딸이 더 좋은 것입니다. 부부는 갈라질 수 있으나 아들딸과는 갈라질 수 없습니다. 족보에서 파낸다 하더라도 핏줄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갈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는 이혼하고 헤어지면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아들딸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그립고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녀를 가져 본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18.112, 1967.5.28)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 그 사랑하는 자식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하여 첫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애기의 얼굴이 부모의 얼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자기 생기고 싶은 대로 생긴 얼굴이지만 그 아기의 얼굴을 보고 '당신의 아기는 당신보다도 얼마나 잘났는지 모를 정도로 훌륭하게 생겼다'고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그 부모는 입이 해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식 잘났다고 칭찬 하는데 '거 아버지와 어머니를 놓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77.102, 1975.4.1)

 

내가 우리 어머니께 들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애기를 많이 낳았습니다. 자그만치 열 고개를 넘고도 세 고개를 더 넘었으니 열셋을 낳았습니다. 열 세 명 낳았으니 예수의 일당파를 다 갖춘 셈입니다. 열두 제자와 예수까지 합하게 되면 열 세 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 세 명을 낳으셨는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재미재미 해도 딴 재미는 없어요. 애기 낳아서 젖먹이고 키울 때의 그 이상 재미는 없어요. 늙어서 애기 못 낳으니 매사에 재미 없어 못 살겠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44.200, 1971.5.7)

 

영계에서는 아들딸을 낳을 없습니다. 이 지상에서밖에 아들딸을 낳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서는 아들딸을 낳을 수 없습니다. 천국의 백성을 낳을 수 있는 곳은 이 땅 위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 아들딸을 많이 낳아야 됩니다.  

(218.200, 1991.7.28)

 

 

(2)견실과 사랑으로 자녀 양육하기

 

종교 경전

 

아버지이신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에베소서 6.4(기독교)

 

버릇 여든까지 간다. 마땅히 따를 길을 어려서 가르쳐라.     

잠언 22.6(기독교)

 

자식이 미우면 매를 들지 않고 자식이 귀여우면 채찍을 찾는다.     

잠언 13.24(기독교)

 

고기는 신선할 사리를 틀어야 한다.      

누페족의 격언(아프리카 전통 종교)

 

부모가 훈련하지 않는 자녀가 무슨 자녀이겠습니까? 모든 자녀가 받는 훈련을 여러분이 받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참자녀가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의 부모도 우리를 훈련하는 분으로 모시고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훈련은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생각나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연단 받은 사람들에게 의로움이 깃든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히브리서 12.7-11 (기독교)

 

어린아이가 , 더러운 것, 기와, 돌조각, 오래된 뼛조각, 나무토막을 집어서 입에 넣는다면, 거기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아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른 왼손으로 아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입에 든 오물들을 꺼낸다.

외아들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나 깨나, 걷거나 서나 앉으나 쉬거나 항상 그 아들을 생각한다. 만일 그가 그릇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상냥하게 타일러서 그 아이가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인도한다.      

대반열반경 471(불교)

 

아이가 천성에 따라 온갖 잘못을 저지를 , 아버지는 그를 훈계하며 모욕하리라.

그러나 그는 다시 그를 품에 안게 마련이라.        

아디 그란트, 소라트 M.5 (시크교)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명령하였다. 어서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 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렸다.      

누가복음 15.20-24(기독교)

 

딸은 아비에게 남모르는 근심거리여서 걱정에 이루는 적도 많다. 딸이 젊을 때는 시집을 못 갈까 걱정이고, 시집을 가면 소박을 맞을까 근심이다. 처녀 때에는 혹시 유혹에 빠질까 걱정, 출가 전에 아기를 가질까 걱정, 출가 후에는 빗나갈까 걱정, 시집가서도 자식을 못 낳을까 근심한다.    

집회서42.9-10(기독교)

 

말씀 선집  

 

세상이 그렇습니다. 잘한 것도 자꾸만 잘했다고 하면 싫어하고, 못한 것을 못했다 하면 더 싫어합니다. 못했지만 잘했다고 하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수습방법이 다릅니다. 못한 것도 잘했다고 추켜 세우면서 달래야 합니다. 철이 없는 어린애들은 추켜세워 줘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보게 되면 전부 자기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가지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36.73, 1970.11.15)

 

어머니 아버지가 채찍을 가지고 '이 자식아, 공부해! 나가 종이 돼, 이 자식아' 하면서 욕을 하고 그저 시켜 먹는 것은 다 자식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 아버지는 그 자식 때문에 울면서 기도하고 가슴이 아파서 밤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이게 참입니다.

(102.253-254, 1979.1.14)

 

참된 부모의 사랑은 무엇이냐? 자식을 사랑할 때, '아이고, 내 이거 전부 다 이자 쳐서 받겠다' 하는 마음을 가진 부모는 참부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밤낮으로 희생을 하면서도 위하여 사랑하고, 또 하고, 또 하려고 하고, 시장에 나갈 때에 거기에서도 잊지 않고 더해 주려 하며, 24시간 거리를 초월하여 그를 위하려고 할 수 있는 사랑이 본질적인 사랑의 거리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도할 수 있고, 구원할 수 있는 기초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42.35, 1986.3.3)

 

부모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먼저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주지 못하는 것은 관리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주면, 그것을 받은 자가 해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썩 잘 드는 칼을 주고 싶더라도 잘못 주었다가는 그 자체가 망하고, 집안이 망하고, 전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주는 것입니다.  

(29.108, 1970.2.25)

 

한국의 격언 중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채찍을 주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밥을 주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의 채찍을 통하여 아픔을 느끼고 그 사랑 앞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95.81, 1977.10.23)

 

부모가 자식을 대해 성이 나서 손으로 때리면 어떻습니까? 부모가 곧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 그저 자식이 불쌍해서 어머니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사랑하면 도리어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잖아요? 그렇게 하면 어머니는 굴복하지 않고 언제든지 승리자로서 그 아들딸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때리면 효과가 적다는 것입니다.  

(41.333, 1971.2.18)

 

여러분들의 아들딸이 있으면 아들딸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말다툼하는 것을 보여서는 됩니다. 절대 그것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약속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 가정, 어머니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들이 지금까지 컸지만 ‘우리 엄마 아빠는 절대 싸움하지 않아. 우리 엄마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 아빠야’ 그러는 것입니다. 어떠한 나라의 왕보다도, 누구보다도 희망봉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게 교육을 해야 됩니다. 아들이 있으면 ‘나는 아빠 닮을래?’하고, 딸이 있으면 ‘나는 엄마 닮을래. 엄마 같은 여자가 될래’할 수 있게끔 되어야 합니다. 그게 교육입니다.  

(90.123-124, 1976.10.21)

 

부모로서 자식을 키울 때는 눈물이 나오고 괴로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물이 나오려하고 괴롭더라도 자식이 엄마 아빠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때는 씻은 듯이 괴로왔던 일들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오냐' 하면서 어젯날 기뻐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지 못하면 자식을 교육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23.184, 1969.5.18)

 

사랑의 본질은 무엇이냐? 남을 위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주적인 본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이렇게 , 부모의 사랑이 그 본질에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자식을 대해서 항상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식이 받지 않더라도, 아무리 불한당 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옛날에 사랑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랑을 갖고 나타나서 사랑을 하게 되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놈의 자식아,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했는데, 과부의 몸으로서 너를 늙도록 허리가 굴어가면서 사랑했는데 그 사랑을 몰라? 이 망할 자식아?' 하며 담뱃대로 이마를 때린다 할 때, 세 번만 그렇게 하면 그 자식은 보따리를 쌀 것입니다.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내 사랑이 부족하여서 그렇다. 모든 것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지 못한 탓이다' 하면서, 그 자식의 뼛골이 녹아나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식 앞에 나서게 될 때에, 그 자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사랑은 약한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주관성이 있는 것입니다.

(48.182-183, 1971.9.12)

 

영계에 가면 중에 제일 무서운 법이 무엇이냐? 자식을 죽는 자리에 내세운 죄를 다스리는 법 이상 무서운 게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못 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할 법이 없어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할 수 있는 일 권내는 용서할 수 있는데 이건 하나님도 할 수 없으니 하나님 자신도 용서 못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서운 죄입니다. 이건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 대신 자식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부모는 하나님이 옹호해 줍니다. ' 나 같구나!' 하며 말입니다. 자식을 위해 죽는 부모는 천국 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93.335, 1977.6.17)

 

<!--[if !supportLists]-->(4) <!--[endif]-->조상의 전통으로 자녀의 교육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내가 장차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강대한 민족이 되고 세상 민족들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복을 빌 것이 아닌가? 나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여호와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 그를 뽑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루어 주어야 하리라.’   

창세기 18.17-19(기독교)

 

루크만이 교육의 지침으로 그의 아들에게 이야기를 기억하라. , 나의 아들이여! 예배를 준수하고 선을 권하고 악을 멀리하며 너에게 닥치는 어떤 것에도 인내하여라. 이것은 굳은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니라.        

꾸란 31.17(이슬람)

 

어떤 사람이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것은 배움이다. 다른 것들은 진정한 재물이 아니다.   

날라디야르 134(자니나교)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을 너희의 마음에 간직하고 골수에 새겨두어라. 너희의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라. 이것을 너희의 자손들에게 깨우쳐 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신명기 11.18-19(기독교)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지키고 어미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마라. 그 말을 언제나 네 가슴에 달아두고 네 목을 걸어두어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이끌어주고 자리에 누우면 보살펴 주며 눈을 뜨면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 훈계는 횃불이 되고 그 가르침은 빛이 된다. 타이르며 교육하는 것이 곧 생명의 길이다.    

잠언 6.20-23(기독교)

 

자녀에게 주기로 약속한 것을 어기지 마라. 그것은 자녀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무드, 수타 46b(유대교)

 

나는 그대의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그대의 어머니 유니게에게 깃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디모데후서1.5(기독교)

 

말씀 선집

 

부모가 아들딸을 불러 놓고 `너는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고, 또 어떠어떠한 일을 하라'고 가르친다 해도 `너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만 못합니다.  

(11.308, 1962.3.5)

 

여러분 아들딸 앞에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전통을 남겨야 됩니다.   

(71.19, 1974.3.24)

 

가정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랑의 학교입니다. 자녀들은 가정권에서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교육, 정서교육을 통해 심정의 깊이와 폭을 키웁니다. 이것이 자녀의 인격을 만드는 주춧돌이 됩니다. 또한 가정은 자녀에게 미덕과 규범을 교육하는 학교입니다. 사람은 이와 같은 정서교육과 규범교육을 받은 터 위에 지식교육, 체육, 기술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천도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참사랑을 베푸는 참부모가 되는 동시에 참스승이 되어 심정교육, 규범교육을 바로 시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록 부모가 참스승임을 자각 못 할지라도 자녀는 부모로부터 있는 그대로를 닮고 배우게 됩니다. 부모의 역할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베푸는 참사랑과 부모의 사랑의 생활을 닮으면서 사랑의 인격이 형성되고 영성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서 가정이 변하고 있고 전통적인 가정들은 여러 면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산업화, 현대화가 가속하면서 인류는 가치관이 붕괴되고 윤리, 도덕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개인주의, 쾌락주의, 배금주의 등으로 인해서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면서 프리 섹스와 불륜이 더욱 조장되고 가정이 파탄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풍조입니까? 이대로 방치하면 인류는 미래에 희망을 걸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사회적 조건이 바뀌어도 부모 자녀 관계의 중요성은 흔들릴 수 없으며, 가정의 귀중성 역시 변할 수 없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사랑은 사람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이며 가정은 그 행복과 평화의 기대가 됩니다.  

(271.80-81, 1995.8.22)

 

아버지는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되느냐? 친구 중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친구하고 놀다가도 아버지가 나타나면 친구를 다 버리고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승 중의 스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정에 있어서는 언제나 지주, 즉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57.282-283, 1972.6.4)

 

부모들이 뜻생활에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의 기도생활이라든가, 가정예배라든가 어떤 면으로든지 기성교회에 지지 않는 신앙생활을 자녀들에게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실천해야 됩니다. 부모가 본이 되어 뜻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녀들이 일언반구도 대꾸하지 않고 부모를 경외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자녀들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1.268, 1970.6.4)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들에게 '내가 살인강도였으니까 너희들도 살인강도가 되어라' 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자기는 악하더라도 자식에게 교육을 시킬 때는 절대 나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식에 대해 '너는 나쁜 사람이 되지 말라' 하는 것은 부모된 자신은 나빴다는 말입니다. '너는 잘 되어라' 하는 것은 나는 못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자기를 잊고 완전히 투입시키는 것이 선이요, 그래야만 남아진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육의 만고의 원칙입니다. 이것을 사회화시키고 세계화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부모가 자녀들을 고아원에 보내 놓고 세계 유람에 나섰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 자식들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어디 가든지 부모가 자식과 함께 다니는데 자식이 나쁘게 되는 것 보았어요?  

(36.73, 1970.11.15)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내 아들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이 지구성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만 이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애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장에는 안 되더라도 12대를 거쳐 나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물이 탄생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31.168, 1970.5.24)

 

인간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일생 동안 살다가 남겨야 일이 있다면 그것은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원리의 길입니다. 원리의 길대로 갔다는 사실. 뜻대로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다음엔 뭐냐? 좋은 후손을 남기고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뭐냐 하면 이 땅에 살 때, 그 후손들이 출세할 수 있게끔 세상의 인재로서 기르는 것,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3대 책임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101.201-202, 1978.10.30)

 

8)조부모 사랑

 

조부모는 가족에게 지혜, 경험, 손자녀에 대한 환희의 사랑을 베푼다. 3세대가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전통적인 문화에서, 자녀는 그들의 조부모를 영예롭게 하고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서 병약한 상태에 있는 그들을 돌본다. 자녀는 그 과정에서 사랑과 존경에 대한 교훈을 배운다. 조부모는 도덕적인 닻이다.

 

부모들이 약물과 범죄로 부패하고 자녀를 돌보기에 부적합한 상대가 되는 사례들이 너무 많이 있다. 그때 조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대역을 한다. 문선명 선생은 이기심에 기여하고 도덕을 추락시키면서 도시화하고 산업화한 사회에서 3세대 가족이 소멸됨을 비판한다.

 

종교 경전

 

많은 전통에서 부모와 조부모에게 주어진 영예는 헌신의 수직적 연쇄에 있는 조상과 하나님에게 바친 영예와 연결된다. 이러한 면에서 문선명 선생은 조부모를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신자라고 표현한다. 그들을 영예롭게 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가장 위대한 조부모,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는 길이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 앞에서 일어서고 나이 많은 노인을 공경하여라. 너희 하나님을 경외하여라. 나는 여호와이다.     

레위기 19.32(기독교)

 

손자들에 대한 조부모의 감정은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에게 사랑스럽다. 그러나 손자들이 생겼을 때 그들은 우리의 자녀들보다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너는 그 할머니가 그녀의 손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푹 빠져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은 그녀들이 어린 소녀였을 때 그녀들에게 형성되었던 소망으로 돌아간다. 그 소망이란 그녀들이 살아가다가 어느 날 할머니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가 되어 할머니가 되면 그녀들의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가외의 드문 임무를 수행한다.    

헨리 올드 코요테(미주 원주민 종교)

 

신들과 조상들에 드려야 제사를 소홀히 하지 마라! 신에게 하는 것처럼 그대의 어머니를 대하라. 신에게 하는 것처럼 그대의 아버지를 대하라. 신에게 하는 것처럼 그대의 스승을 대하라.     

타잇티리야 우파니샤드 1.11.2(힌두교)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의 신들이다.

심지어 그와 같으므로, 지극한 효성으로 그들을 신처럼 공경해야 한다.        

모토오리 모리나가, 고귀한 창에 관한 백편의 시(신도)

 

너는 아비가 늙었을 보살피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말라.

그가 설혹 노망을 부리더라도 참고 받아주며, 네가 젊고 힘 있다고 해서 그를 업신여기지 말라. 아비를 잘 섬긴 공은 잊히지 않으리니 네 죄는 용서받고 새 삶을 이룰 것이다.    

집회서 3.12-14(기독교)

 

아버지가 나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셨다. 나는 그의 임종을 보았다. 나는 그를 물굽이치는 그 아름다운 계곡에 묻었다. 나는 세상의 어느 곳보다 그 곳을 좋아한다. 자기 아버지의 무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보다 더 못한 것이다.   

네즈 퍼스족의 전승(미주 원주민 종교)

 

말씀 선집

 

여러분들은 자녀의 자리에 있는데, 무슨 운세를 받느냐? 조부모와 부모의 운세, 이 두 운세를 이어받아야 됩니다. 조부모는 왜 필요하냐? 과거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조부모는 과거의 산 역사를 대표합니다. 그 다음에 부모는 무엇이냐? 현재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 자녀들은 미래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다 들어가 있어요. 거기엔 동서도 들어가 있고, 남북도 들어가 있습니다. 다 들어가 있어요. 전체의 중심입니다. 전체의 중심, 조부모의 중심, 부모의 중심, 자녀의 중심, 하나님의 중심, 전부가 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생각할 때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과거를 전부다 이어받고 과거 세상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는 현재를 배우는 것이요,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미래를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의 셋을 , 그것은 우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입니다. 할머니가 없으면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없어도 불안정하고, 어느 분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162.140-141, 1987.4.5)

 

할아버지, 할머니,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손자까지 같이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 3대가 정착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만 사랑하지 말고 할아버지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위에 할아버지를 놓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28.18, 1983.5.29)

 

조부모는 영계의 하나님을 대신한 것입니다. 조부모의 자리는 하늘나라입니다. 가정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로 하늘나라의 자리입니다. 하늘나라를 열 수 있는 대표적 실체 존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자로 모셔야 된다구요. 하늘나라의 왕을 대표했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그 자리에 모셔야 됩니다. 이것이 가정의 전통적 교훈입니다. 이게 창조이상적 모델입니다.  

(251.219, 1993.10.17)

 

부처끼리 싸우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으로 '야야, 그러지 말아라' 하고, 또 아들딸이 싸우고 손자들이 싸우면 '야야, 그러지 말아라' 이렇게 사랑을 가지고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네가 높다. 네가 훌륭하다' 하면서 위해 줍니다. 사랑의 종노릇을 최대로 하는 분이 할아버지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남편도 아내가 앵앵앵앵 하면 '여보, 그러지 마! 내가 다 안다구. 당신 원하는 것 다 해줄께'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제일 위대하고 놀랍고 제일 권세를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사랑의 종의 길을 간 사람입니다.   

(135.121-122, 1985.10.4)

 

아름다운 며느리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스런 마음 가지고 자기 사랑하는 남편보다 좋은 것을 사주려고 하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예쁜 며느리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쭈글쭈글한데도 불구하고 무엇을 사는데 자기 사랑하는 남편에게 사다 주는 것 이상의 기쁨으로 사다 주는 그 장면이 얼마나 멋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감추어 둔 모든 것,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전부 다 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이 많이 먹은 할아버지가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그 할아버지를 위하는 사랑을 자기 할아버지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 전통을 배우면 하나님 할아버지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 전통을 배우면 하나님 할아버지의 비밀 창고에 있는 모든 사랑의 보물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107.329, 1980.6.8)

 

할아버지 지팡이나 할머니 지팡이를 손자 며느리들은 보기 싫어합니다. ? 빨리 죽으라 그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가진 손자 며느리는 `아이고, 저 지팡이가 없어지는 날 내 눈에서 빗줄기 같은 눈물이 흐르겠구나. 아이고, 천년 만년 있으면 좋겠다' 합니다.   

(184.270, 1989.1.1)

 

나이 많은 사람들을 필요없다고 했다가는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을 전부 다 외면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나라의 국민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되면 그 민족의 전통성을 중심삼고 볼 때, 민족성을 팔아먹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1.120. 1968.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