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 제9장 하나님의 섭리역사)

무지... | 20180517070637

모세
    
모세는 궁중의 안락한 생활에서부터 미디안 광야의 어려움까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무모한 날로부터 광야에서 오랫동안 헤매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고통스런 투쟁을 할 때까지, 모험적인 삶을 체험하였다. 이스라엘 동족에의 모세의 열렬한 사랑과 전능하신 하나님에의 확고한 믿음, 이 두가지가 항상 모세의 모든 발길을 인도하였다.

  
성서는 모세 홀로 하나님을 ‘정면으로’ 알았다고 말한다. 문선명 선생은 모세의 내적 생활을 특히 주목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곤경에 직면해 있을 때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을 모세는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그들을 해방시켜 가나안에 국가를 건설하려는 하나님의 불타는 의지도 감지하였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한 어떤 희생도 극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력하였다.
  

  
1. 모세의 민족해방 열망
  
종교경전 
  
세월이 지나 모세는 성년이 되었다. 그는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동족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때 마침 이집트인 하나가 동족인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는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는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그 이집트인을 쳐 죽여 모래 속에 묻어버렸다. 이튿날 다시 나갔다가 이번에는 히브리인 둘이 서로 맞붙어 싸우는 것을 보고 잘못한 자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오?” 하고 나무랐다. 그 사내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우두머리로 삼고 우리의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이듯이 나를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들었다. 모세는 일이 탄로 났음을 알고 두려워 하였다. 파라오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파라오의 손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달아나 그 곳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출애굽기 2.11-15 (기독교)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떨기에서 불꽃이 이는 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을 본 모세가 “저 떨기가 어째서 타지 않을까? 이 놀라운 광경을 가서 보아야겠다”하며 그것을 보러 오는 것을 여호와께서 보시고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예,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선조들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 여호와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gpt 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스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 가고자 한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어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인데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증거가 되리라. 너는 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다음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라고 하시는 그분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나님 여호와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어서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 이르셨다‘ 하며 이렇게 전하여라. ‘나는 너희들을 찾아와서 너희가 이집트에서 겪고 있는 일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너희를 이집트의 억압에서 끌어내어 가나안족, 헷족, 아모리족, 브리스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기로 작정하였다.’” 
출애굽기 3.1-17 (기독교)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이집트로 돌아가거라. 너를 죽이려고 찾던 자들이 다 죽었다.” 모세는 아내와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돌아갔다.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집트로 돌아가거든, 내가 너에게 시킨 온갖 이적을 파라오 앞에서 보여라. 그러나 나는 그로 하여금 억지를 부려 내 백성을 떠나보내지 않게 하리라.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내 아들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일렀건만 너는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들어라, 내가 이제 너희 맏아들을 죽이리라.’” 모세가 길을 떠나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묵는데 여호와께서 찾아오시어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 시뽀라가 돌칼로 제 아들의 포경을 자르고 그것을 모세의 발에 대며 말하였다. “당신은 피로 얻은 나의 신랑입니다.”그러자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주셨다. 그래서 시뽀라는 “할례를 베풀어 피 흘려 얻은 신랑”이라고 말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아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백성 앞에서 증거들을 보여주었다. 백성들은 믿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시어 자기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살펴주셨다는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출애굽기 4.19-31 (기독교)
    
그리고 그들 후에도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하나님의 징표와 함께 파라오와 그의 우두머리들에게 보내었으나 그들은 오만하게 행동하였노라. 그들은 죄스러운 백성이었노라.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에게 진리가 도래했을 때, 그들은 “이것은 분명 마술이로다!라고 말하였다.… 그 백성 중 일부 사람들 외에는 모세를 믿지 아니하니, 파라오와 그의 수장들의 박해가 두려워서였다. 파라오는 지상의 폭군이며 실로 과도한 자였다. 모세가 말하길, “나의 백성들이여, 너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한다면 그분에게 의탁하라”하니, 그들이 말하길 “하나님께 의탁하나이다. 주여, 저희를 사악한 무리의 유혹에 들디 않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로써 불신자들로부터 구하여 주소서….”
모세가 말하였다. “주여, 당신께서 파라오와 그의 무리들에게 현세의 영광과 부를 주었나이다. 주여, 그들이 참혹한 징벌을 볼 때까지 그들을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게 하시고, 주여, 그들의 부를 멸하시고 믿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의 기도에 응하니 곧은길로 가고, 무지한 자의 길을 따르지 말라.”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바다 건너 저편으로 인도하셨다. 파라오와 그의 무리들이 집요하고 맹렬한 기세로 그들을 추격했으나. 물의 재앙이 그들을 덮쳤다. 파라오가 말하길,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는 신 외에 다른 신을 믿지 않겠으며, 나 또한 순종하는 자 가운데 있겠나이다.” 하더라. 이제사? 이전에 너희는 거역했으며, 부정한 자들 가운데 있었느니라. 오늘 하나님이 너희 몸만 건져내니, 너희가 너희 이후에 오는 자들에게 징표가 되도록 함이라. 실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표에 부주의하더라.
꾸란 10.75-92 (이슬람)
  
말씀선집 
  
모세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에 머무는 동안 영화롭게 입고 먹고 환희에 넘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궁중에 머무는 동안 시종일관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그 생활의 어느 한 순간에 있어서도 이스라엘민족을 염려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민족 중에서 모세 혼자서만 그 민족이야 알든 모르든 하늘을 향한 충성심은 변치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모세가 혈기 당당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급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급인을 때려죽인 모세의 의분심은 그 순간에 충격 받아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게 될 때, 모세는 40년 동안 하늘을 향하여 애달픈 마음으로 민족을 위해 호소하였던 내적 슬픔의 심정이 폭발되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선민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억제 할 수 없는 의분심이 솟아나 애급인을 때려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에 행동의 내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세의 행동에는 섭리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울분에 못 이겨 애급인을 쳐 죽인 것은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고 책임진 입장에서 죽인 것이고, 그것은 애급인이 이스라엘민족을 박해한 죄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므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민족을 위해 염려하는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를 오해하고 애급인을 쳐 죽인 것을 폭로함으로써 모세는 자기의 행동이 탄로 난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141-142, 1956.07.01)
    
미디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모세는 바로 궁중에서 호화롭게 살던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바로와의 딸이 자기를 위하여 모든 청을 다 들어 줄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았던 지난날의 부귀영화를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양치는 옷을 입고 양떼를 몰고 다니는 무명의 목동의 신세였지만 그 양떼를 바라보며 옛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그리워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양떼를 몰고 나디지만 언젠가는 양떼를 몰고 가듯이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는 사무칭 마음으로 하늘 앞에 호소했던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먹으나 굶으나 자나 깨나 노심초사 그 모든 정성을 다하여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을 위해 염려하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애급의 박해와 도탄 중에서 고역을 당하는 이스라엘민족을 바라보게 될 때 뼈가 녹는 듯한 슬픔을 느꼈으며, 하늘을 향하여, ‘여호와여! 나를 보셔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호소의 정성이 지극한 모세를 60만 대중을 애급땅에서 이끌어내는 지도자로 세웠고, 남이 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미디안 광야에서 일개 목동의 생활을 하던 모세를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숨은 뿌리의 절개를 계승받게 했고 민족의 대표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1.142-143, 1956.07.01)
  
광야의 온갖 풍우에 시달리는 서글픔을 맛본다할지라도 그것을 다 밀어제치고, 민족으로부터 몰림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붙들었던 모세의 변치않는 결심이 있었던 연고로, 민족이 어려운 사정에 처하고 모세가 그런 고난의 환경에 들어갔을지라도 민족이 단결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요, 하늘을 모세를 세워 섭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39, 1958.02.23)
  
그 뒤 모세가 옮긴 발걸음은 모두 모험적인 것이었습니다. 현실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을 품었기 때문에 그의 삶 전체도 초현실적인 것이요, 바라보는 것도, 나가 싸운 것도 초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모세가 바로 궁중으로 가게 될 때, 하나님이 가라하신 그 길을 가는 모세를 축복해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텐데,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모세의 가는 길을 막고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자신의 명령을 받고 가는 모세를 가로막고 죽이려 하셨는가?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내용이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고개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각오한 몸이었으니 죽든지 살든지 뜻 하나만 이루어지기를 비는 심정으로 하나님이 가로막고 사탄이 가로막는 시험의 조건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로 궁중에서 초현실적이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하여 10여 차례 이상의 이적 기사를 일으켰던 모세는 4천년 역사상에 없었던 우주적인 모험의 혁명가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모세는 어떤 사람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뜻을 대한 초현실적인 믿음으로 60만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모세의 생애 전체는 초현실적인 모험의 행로였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267, 1956.12.02)


2 율법을 전수하고 히브리인의 광야노정을 인도한 모세의 고난
  
종교경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있는 이 산으로 올라와 머물러 있어라. 내가 이 백성을 가르치려고 훈계와 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너에게 주리라.” 모세는 자기의 시종 여호수아를 데리고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일러두었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돌아 올 때까지 여기 앉아 기다리시오, 아론과 후르가 그대들과 함께 여기에 남아 있을 터이니, 사건이 생기거든 그들에게 가서 판단해 달라고 하시오,”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덮었다. 여호와의 영광이 시나이 산 위에 머물러 있어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뒤덮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이레째 되는 날 그 구름 속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마치 그 산봉우리를 태우는 불처럼 보였다.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으로 올라가 사십 주야를 그 산에서 지냈다.
출애굽기 24.12-18 (기독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가 율볍을 얻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모른다. 어떤 고생, 어떤 노력이라도 나는 율법을 위해 참아내었다. 사십 주야를 나는 하나님과 같이 지냈다. 나는 살아 있는 피조물들인 천사들, 스랍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율법을 주었다. 내가 고생을 통하여 율법을 배운 것처럼 너희들도 고생을 하면서 율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고생으로 율법을 배운 것처럼 너희 후손에게도 고생 가운데 율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시프레 신명기 (유대교)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은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산 사이에 있는 씬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를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보름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은 이 광야에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여호와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서 고기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출애굽기 16.2-3 (기독교)
   
사십 주야가 끝나는 날 여호와께서 나(모세)에게 계약이 적힌 두 개의 석판을 주셨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일어나라. 속히 이곳에서 하산하라. 왜냐하면, 네가 이집트에서 데려온 백성들이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가르쳐준 길에서 벗어나서 딴 길로 가는 데는 너무나도 잽싸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었다.… 나 혼자 있게 하라. 나는 저들을 멸망시키고 하늘 아래에 저들의 이름을 지워 없애버리리라. 나는 저들보다도 훨씬 강하고 큰 한 국가를 네게 이루어 주겠노라.” 나는 산에서 내려 왔다. 산은 여전히 불길에 횝싸여 있었고 두 개의 계약 석판은 나의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보았다. 너희들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거슬러서 죄를 짓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였다. 너희는 송아지를 만들었다. 너희는 너무도 빨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길을 벗어났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안고 있던 두 석판을 너희가 보는 앞에서 내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난 후에 나는 예전처럼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나는 그 동안 한 모금의 물이나 한 조각의 빵도 먹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희가 범한 죄가 컸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해 버리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호와께 기도를 하였다. "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의 백성이요 당신의 선민인 자들을 멸하지 마옵소서. 저들은 당신의 큰 은사를 통하여 속죄 받은 자들입니다. 저들은 당신께서 놀라우신 능력의 손길로 이집트로부터 구해낸 자들입니다. 당신의 종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기억하옵소서, 이 백성의 완고함을 보지 마시고, 죄를 보지 마시옵소서, 당신께서 우리를 이끌어내었던 그곳의 사람들이 ‘여호와는 자기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갈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그는 자기 백성들을 미워하고 광야에서 살해해 버렸기 때문이야’라고 말하지 않게 하소서, 이 백성들을 당신의 백성이요, 당신의 유산입니다. 그들을 당신의 놀라우신 힘과 편 팔로 이끌어 주소서.” 
  신명기 9.11-29 (기독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나이 이제 백스무 살이 지나 다시는 일선에 나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몸소 앞장서 건너가셔서 저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없애주시고 너희로 하여금 그 땅을 차지하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너희의 앞장을 서서 건너갈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그들의 땅을 해치우시고 쓸어버리셨듯이 그들도 해치우실 것이다. 이렇게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시거든 너희는 나에게 받은 명령대로 어김없이 그들을 해치워야 한다. 힘을 내어라.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하지 마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몸소 함께 진국하신다. 너희를 포기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신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내어 온 이스라엘 앞에서 일렀다. “힘을 내어라. 용기를 가져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의 선조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이 백성을 이끌로 들어갈 사람은 바로 너다. 저 땅을 유산으로 차지하게 해줄 사람은 바로 너다. 여호와께서 몸소 너의 앞장을 서주시고 너의 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너를 포기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기도 마라.” 
신명기 31.2-8 (기독교)
 
말씀선집   


모세가 한 생명을 들어 전 민족의 생명을 구원하는 산 제물로 삼으려고 몸부림친 것을 그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친구가 되어 주셨고, 하나님만이 아버지로서 그를 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40일간 먹을 것을 잊어버리면서도 다시는 아버지께서 슬픔과 비운의 심정을 갖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책임감을 느껴, 있는 정성을 다해 호소함으로써 이스라엘민족을 부활시킬 수 있는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쁨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남모르는 가운데 배후에서 슬픔의 제물이 된 자가 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것을 알았던들 광야에서 60만 대중이 쓰러지는 일은 면했을 것입니다. 그 후에라도 그들이 모세의 십계명을 받들고 하늘의 서러운 심정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 자기들의 몸은 제물 될지라도 굽히지 않고 나가겠다는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광양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3.287, 1958.01.19)
  
애급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야 했던 모세도 바로궁중에서 40년 동안 남이 모르는 심적인 고민을 하면서 민족을 사랑하는 민족정신에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애급사람을 때려죽인 것이 광야에서 처량한 목자의 생활을 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처한 모세는 애급 궁중의 호화로웠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더리어 미디안 땅에서의 고역생활이 닥친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마음을 품고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광야의 온갖 풍우에 시달리는 서글픔을 맛본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밀어제치고, 민족으로부터 몰림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붙들었던 모세의 변치않는 결심이 있었던 연고로, 민족이 어려운 사정에 처하고 모세가 그런 고난의 환경에 들어갔을지라도 민족이 단결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요, 하늘은 모세를 세워 섭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38-39, 1958.02.23)
 
모세가 하늘로부터 허락하신 바의 약속을 받고 애급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는 기쁨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그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겠다고 하늘 앞에 호소하던 그 뜻이 이루어져 민족의 살길을 개척하게 되었지만 그러한 기쁨에만 만족해 있지 않고, 이제부터 제2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않았고, 조그만 일이나 큰일이나 어느 한 가지 일이라도 하나님과 인연을 맺지 않고 수행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가 포악한 바로 궁중에 들어가 그들의 신 앞에 10회 이상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이스라엘민족을 험난한 광야로 이끌어 나오게 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민족은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데 있어서 모세의 마음이 곧 자기들의 마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바로 궁중으로부터 구출해 준 모세와 마음이 달라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하나 되지 못하여 천륜에 어긋나는 길을 감으로써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멸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모세가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하늘 앞에 호소했던 숨은 정성의 발판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한 그 날로부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자기들을 위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세의 수고와 고생을 알아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모세는 광야에서 갈라졌고,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불신했던 역사적인 사실이 오늘날 끝 날의 성도들에게도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민족과 자신이 하나 되지 못하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때 모세는 불신하는 민족을 책망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부족을 하늘 앞에 호소했습니다. 즉, 그는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 기도하면서 ‘아버지여, 이 민족이 어찌하여 허락하신 땅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를 제물삼아 민족의 멸망의 길을 막아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숨은 정성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의 모세가 남모르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금식하는 것이 모세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는 것임을 알았던들 그들은 모세의 40일 금식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불신의 놀음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이 민족의 축복을 대신한 모세가 하나의 숨은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쳐지게 될 때 모세의 마음을 동정하고 그의 수고를 염려해 앞에 호소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홀로 민족을 대표하여 외로운 길을 갔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그러한 길을 가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적인 희생과 모세의 민족을 대표한 제물의 노정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가정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고 모세가 민족을 대표하여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대신해서 홀로 사탄의 모든 참소조건을 막아야 했고 승리적인 탕감의 발판을 닦아야 했습니다.  
(1.143-145, 1956.07.01)
  
가나안땅에 들어가야 될 텐데, 요단강가에서 천막을 치고, 이제는 다 왔으니 여기서 천년만년 살아야 할 텐데 하고 있으니 이 천막을 깨뜨리고 밟아 치우고, 강으로 처넣어야 됩니다.
   
그럴 때에는 모세가 와서 불을 사르고 전부 다 차 버려야 됩니다. 처넣어야 됩니다. 물을 처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단강 물이 깊은 줄 알았더니 눈을 뜨고 보니 깊지 않습니다. 무르팍밖에 안 올라 오는 것입니다. 시내를 건너가서 죽어야 됩니다. 3분의 2의 몸뚱이가 땅을 붙들고 거기서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거 사탄이 못 가져갑니다. 죽어도 괜찮습니다. 죽어도 성공입니다. 우리 땅에 들어서서…, 그게 길고 긴 40년간 노정의 목적입니다.
  
요단강도 안 보이는 광야 복판에서는 모세보다 먼저 가면 죽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나를 따라오라고 했지만, 요단강이 보일 때는 ‘먼저 가라’하는 것입니다. 이게 멋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다 건너가고 모세만 못 건너갔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모세가 ‘아, 저주를 받을 무리야! 나를 버리고 갔구나, 죽을 것들! 멸망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 나는 죽어도 좋으니 너희들은 영원히 축복 받으라’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 나보다 용맹한 저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저들의 장래를 보호하소서! 얼마나 희망찬 저들이오!’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 훌륭한 지도자로다! 네 기도대로 해주마! 너는 편안히 영면 할지어다’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죽음입니까!
(189.249-250, 198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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