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세계경전 - 제2부 죄와 구원 - 제9장 하나님의 섭리역사)

무지... | 20180515064038

야곱
  
야곱은 성서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자인 동시에 가장 많은 문제를 야기한 사람이다. 그는 영리하고 야망을 가졌지만,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으며,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챘다. 그러나 하란에서 어려움을 겪고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그는 성숙해졌다. 이로써 그는 그에게 적대적인 형을 선물과 겸손함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야곱의 인생반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야곱의 순수한 믿음과 야곱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향한 전통을 지키고 영속시키려는 열망을 각지할 수 있다.
   
문선명 선생은 야곱이 구약성서에서 가장 성공한 섭리적인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의 형 에서와 화해함으로써 야곱은 성서 역사에서 적을 사랑과 희생으로 굴복시킨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문선명 선생은 야곱의 행적을 하나님의 섭리-인간 타락으로 모든 것이 거꾸로 된 것을 바로 세우기 위한 복귀과정-로 규정하신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야곱은 섭리적인 차원에서 많은 것을 복귀한 인물이었다. 
  
천사를 굴복시킴으로써 야곱은 천사 루시엘에게 굴복한 아담의 패배를 처음으로 복귀했으며, 그의 형 에서에게 승리함으로써 야곱은 처음으로 가인과 아벨의 실패를 복귀했다. 야곱은 문선명 선생의 모델의 역할자이며, 또한 여하한 역경을 극복하고 과거의 잘뭇을 회복해야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책임을 부여하신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대부분의 섭리적인 인물에게도 모델의 역할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노력하는 사람’의 의미로써 ‘이스라엘’칭호를 그는 받을만한 인물이다.
  


1. 야곱과 에서의 경쟁
  
종교 경전 
  
리브가가 아기를 낳지 못하였으므로 이삭은 여호와께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는데, 뱃속에 든 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 하면서 여호와께 까닭을 물으러 나갔다.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달이 차서 몸을 풀고 보니 쌍둥이였다. 선둥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 몸이 털투성이였다. 그래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다. 후둥이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했다. 창세기 25.21-26 (기독교)
    
두 아들이 자라나,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질이 차분하여 천막에 머물러 살았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오는 고기에 맛을 들여 에서를 더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하였다. 하루는 에서가 허기져 들에서 돌아와 보니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었다. 에서가 야곱에게 “배고파 죽겠다. 그 붉은 죽 좀 먹자” 하였다.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고도 부르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야곱이 형에게 당장 상속권을 팔라고 제안하자 에서는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상속권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먼저 맹세부터 하라고 다그쳐 요구하였다. 에서는 맹세하고 장자의 상속권을 야곱에게 팔아넘겼다. 그리고 에서는 야곱에게서 떡과 불콩죽을 받아먹은 후에 일어나 나갔다. 이렇게 에서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창세기 25.27-34 (기독교)
    
이삭은 늙어 눈이 어두워졌다. 어느 날 그는 큰 아들 에서를 불렀다. “얘야!” “예, 어서 말씀하십시오,” “너도 보다시피 내가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너는 사냥할 때 쓰는 화살 통과 활을 메고 들에 나가 사냥을 해다가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정성을 쏟아 너에게 복을 빌어 주리라.”
리브가는 이삭이 아들 에서에게 하는 이 말을 엿듣고는 에서가 사냥하러 들에 나간 틈을 타서 아들 야곱에게 귀띔해 주었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사냥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 오라 하시면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잡수시고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겠다고 하시더구나, 그러니 야곱아!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여라. 양떼들한테 가서 쌀찐 염소 새끼 두 마리만 끌어 오너라. 내가 그것으로 아버지 구미에 맞게 잘 요리해 줄 터이니 그것을 아버지께 갖다드려라. 그러면 아버지가 잡수시고 세상을 뜨시기 전에 너에게 복을 빌어주실 것이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형 에서는 털이 많고 저는 이렇게 털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저를 만져 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아버님을 노리거나 한 것처럼 되어 복은커녕 도리어 저주를 받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야곱아, 네가 받을 저주는 내가 받으마.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어서 가서 염소 새끼나 끌어 오너라.” 어머니의 말대로 야곱은 염소 새끼 둘을 어머니에게 끌고 왔다.
어머니는 남편 구미에 맞게 별미를 만들었다. 리브가는 집에 보관해 두었던 큰 아들 에서의 옷 가운에서 가장 좋은 것을 꺼내어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 가죽을 매끈한 손과 목에 감아준 다음, 장만해 놓은 별미와 구운 빵을 아들 야곱의 손에 들려주었다. 야곱은 아버지한테 들어가 “아버지!”하고 불렀다. 아버지 이삭이 “오냐, 네가 누구냐?” 하고 묻자 야곱이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님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님 분부대로 요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어서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 해다가 만든 요리를 잡수시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이삭이 아들에게 물었다. “에서야!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잡아왔느냐?” “아버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짐승을 금방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삭은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인지 만져보아야겠다.” 하면서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가까이 온 야곱을 만져보고 이삭은 중얼거렸다. “말소리는 야곱의 소린데 손은 에서의 손이라!” 그는 야곱의 손에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많았으므로 야곱인 줄 모르고 그에게 복을 빌어 주기로 하였다. 이삭은 “네가 틀림없는 내 아들 에서냐?” 하고 다짐하였다. 야곱이 “예,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이삭은 “에서야! 사냥한 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내가 먹고 정성을 쏟아 너에게 복을 빌어 주리라” 하였다. 야곱이 가져다 바치는 요리와 술을 먹고 마신 뒤 아버지 이삭은 야곱에게 “에서야. 이리 가까이 와서 나에게 입을 맞추어 다오”하였다.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삭은 야곱이 입은 옷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복을 빌어주었다.
“아! 내 아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여호와께 복을 받은 들 향기로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신 이슬로 땅이 기름져 오곡이 풍성하고 술이 넘쳐나라. 뭇 백성은 너를 섬기고 뭇 족속들은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는 네 겨레의 영도자가 되어 네 동기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복을 빌어준 일로 야곱을 미워하였다. 에서는 속으로 “아버지 상을 입을 날도 멀리 않았으니, 그 때 동생 야곱을 없애버리리라” 하고 마음먹었다. 리브가는 큰 아들 에서가 한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놓고 일렀다. “큰일 났다. 형 에서가 너를 죽이지 않고는 속이 풀리지 않을 모양이다. 그러니 야곱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곧 하란으로 몸을 피해 라반 아저씨를 찾아가거라.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잠시 외삼촌댁에 가 있으라 ”
창세기 27.1-29, 41-44 (기독교)
   
말씀선집   


본래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장자여야 되는 것입니다. 차자가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게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장자의 자리에 사탄의 아들이 먼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차자의 자리에서 장자를 바꿔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상속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야곱과 에서에게 있은 일과 같은. 역사에 없는 모순된 일을 경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102.177, 1978.12.24)
   
하나님의 세계에는 본래부터 장자가 축복받게 돼있지 차자가 축복받게 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자의 자리에서 장자권을 찾아오지 않고는 하늘나라 아들의 자리에 설 수 없을 뿐 아니라 축복 받을 수 있는 원리 기준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에…. 야곱이 지혜로운 것이 뭐냐? 형님이 사냥 갔다 온 다음에 배가 고플 것을 알고 죽과 떡을 줘 가지고 장자권을 샀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장자 권한을 찾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타락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131.180-181, 1984.05.01)
    
야곱은 ‘내가에서 형보다 몇 배 더 끈기 있고, 아버지 어머니나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모든 형제들보다도 잘하게 되면 장자가 되는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를 섬기거나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형제를 사랑하고 일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에서보다 야곱이 낫다 할 때는 모든 사람은 그 형, 에서를 집어치워 버리고라도 야곱을 형님으로 하겠다고 하는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걸 바라보았습니다. 야곱은 참 약은 사람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야곱은 출발과 끝을 바라보고 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끝을 바라보고 먼 곳을 바라보고 싸운 사람이요, 에서는 당장의 현실을 보고 싸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108.96, 1980.06.29)
  
그래서 형님의 장자의 기업을 떡과 팥죽을 주고 사 가지고 이것을 전부 빼앗는 놀음을 해야 되다는 것입니다. 양가죽을 팔에다 두르고 자기 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축복을 받았는데, 이것이 왜 하나님의 경륜가운데 있었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는냐? 하나님의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상속을 받으려면 장자의 자리에 나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 본래의 창조이상의 원칙인 것입니다. 창조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빼앗는데도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형님이 동생에게 팔았습니다. 팔았던 것을 동생이 찾는 것입니다. 야곱이 나쁜 것이 아니라 에서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나쁜 것이 아니라 에서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기업을 팔다니!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를 묶어 상속 받는 것을 야곱은 엄청나게 바랐었고 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장자의 자리, 장자의 자리에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한 후에 에서를 만났는데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야곱을 죽이지 않고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장자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횡적인 이스라엘권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타락세계가 어떻게 됐느냐 하면, 장자로서 타락한 세계가 태어났는데 차자인 하늘편의 야곱이 나타나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또 다른 장자가 이 땅 위에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이스라엘은 장자권 세계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또 다른 장자와 같은 입장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두 장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유대 나라, 선민권과 사탄세계의 이 로마를 중심한 전 세계가 언제나 대결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자리에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민권은 무엇이냐? 개인에서부터 ,가정에서부터, 전부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는 것입니다.   
(102.177-178, 1978.12.24)
  
장자권은 복귀되고 아버지로부터의 축복은 야곱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전에 가인이 그렇게 했듯이 야곱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55.112, 1972.04.01)


2. 삼촌 라반 집에서 야곱의 고역
  
종교경전 
  
하루는 라반이 야곱에서 물었다. “네가 내 골육이라고 해서 내 일을 거저 해서야 되겠느냐? 품삯을 얼마나 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 그런데 라반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큰딸은 레아요, 작은 딸은 라헬이었다.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지만 라헬은 몸매도 아름답고 용모도 예뻐서 야곱은 라헬을 더 좋아하였다. 그래서 그는 칠 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릴 터이니 작은 따님 라헬을 달라고 청하였다. 라반은 “다른 사람에게 주느니보다 너에게 주는 편이 낫겠다” 하면서 같이 살자고 하였다. 그로부터 야곱은 라헬에게 장가들 생각으로 일을 했다. 칠 년이라는 세월도 며칠밖에 안 되듯 지나갔다. 그만큼 그는 라헬을 좋아했던 것이다. 
  
마침내 야곱은 라반에게 기한이 다 찼으니 라헬을 아내로 맞아 같이 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라반은 그 고장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청해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밤이 되어 라반은 딸 레아를 야곱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것도 모르고 야곱은 그와 한자리에 들었다. 이 때 라반은 딸 레아에게 자기의 계집종 질바를 몸종으로 주어 거느리게 하였다. 
  
아침이 되어 야곱이 눈을 떠보니 어이없게도 그것은 레아였다. 야곱은 라반에게 항의하였다. “삼촌이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저는 라헬에게 장가들려고 삼촌 일을 해드린 것이 아닙니까? 왜 저를 속이시는 것입니까?” 라반은 “우리 고장에서는 작은딸을 큰딸보다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없네”하며 부탁하였다. “초례 기간 한 주일만 채우면 작은 딸도 주지, 그 대신 또 칠년 동안 내 일을 해주어야 하네.” 야곱은 그 말대로 한 주일을 채웠다. 그제야 라반은 야곱에게 딸 라헬을 아내로 주었다. 라반은 딸 라헬에게 자기 계집종 빌하를 몸종으로 주어 거느리게 하였다. 야곱은 라헬과도 한자리에 들었다. 그는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는 또 칠 년 동안을 라반의 집에서 일해야 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내 고향 친척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야곱은 사람을 라헬과 레아에게 보내어 그의 양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어 의논하였다. “당신들의 아버지가 나를 보는 눈이 전과 같지 않소, 그러나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서는 내 곁을 떠나신 적이 없었고, 내가 얼마나 힘을 다해서 당신들의 아버지를 섬겼는지를 당신들만은 알 것이오. 그런데 당신들의 아버지가 나에게 손해를 입히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소, 그래서 장인이 점박이를 삯으로 정해 주시면 양들이 모두 점 있는 새끼를 낳았고, 줄무늬 있는 것을 삯으로 정해 주시면 양들이 모두 줄무늬 있는 새끼를 낳았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들 아버지 가축을 거두어 나에게 주셨소. 양들이 암내를 낼 즈음에 나는 마침 꿈에, 줄무늬나 점이 있거나 얼룩얼룩한 숫염소들이 와서 교미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아.’ 하고 나를 불렀소. 내가 ‘어서 말씀하십시오’ 했더니, ‘고개를 들어 보아라. 교미하는 숫염소는 모두 줄무늬 있는 것, 점박이, 얼룩진 것들뿐이다. 나는 네가 라반에게 당한 일을 다 안다. 나는 네가 석상에 기름을 붓고 나에게 서원을 했던 베델의 하나님이다. 어서 이 땅을 떠나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셨소.”
  
라헬과 레아가 대답하였다. “아버지 집에서는 우리에게 돌아올 몫을 더 바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마치 남처럼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먹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도 혼자 가로채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아주신 재산은 어디까지나 우리 것이요,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십시오.”
창세기 29.15-30, 31.3-16 (기독교)
  
말씀선집 
  
야곱은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샀고,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하란 땅으로 가서 외삼촌 집에서 21년 동안 종처럼 일했습니다. 외삼촌은 그에게 라헬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7년 후에 야곱을 속여 레아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같았으면 대번에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무 소리 않고 또 7년을 더 일하여서 결국 라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외삼촌 라반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야곱을 속였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가장 외로운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지만,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1년 후에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모든 것을 도로 찾아서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52.64, 1971.12.22)
  
그러면 가족과 친척으로부터 쫓김 받고 거부당하는 입장에 선 야곱이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가? 하늘 앞에 축복받은 축복을 잊지 않고 세상이야 변하든 어떻게 되든 나는 변할 수 없다는 하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늘이 믿어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가정이 모두 믿도록 하겠다, 또 축복의 유업을 찾아 이루어 가지고 하늘이 섭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는 믿음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하여 세우려 했던 그 천륜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21년 만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139-140, 1958.03.30)
  
지금 여러분은 야곱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있다’ 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부모 형제의 반대를 받고 집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부모들이 반대하고 형제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어디로 가느냐? 어디로 가는냐는 것입니다. 여기가 아닙니다. 여긴 못 오는 것입니다. 야곱이 집 떠나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었어요? 하란에 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에 가는 것입니다.
(67.123,1973.05.27)


3. 야곱과 천사의 씨름
  
종교경전 바로 그 날 밤, 그는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넜다. 그들을 데리고 개울을 건넌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그리고 야곱은 혼자 뒤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나타나 동이 트기까지 그와 씨름을 했다. 그분은 야곱을 이겨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다치게 되었다. 그분은 동이 밝아 오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했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복을 빌어 주지 않으면 놓아 드릴 수 없다고 떼를 썼다. 일이 이쯤 되자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겨루어 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이 말을 듣고 야곱이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분은 “ 내 이름은 무엇 대문에 물어 보느냐?” 하고는,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었다. 야곱은 “내가 여기서 하나님을 대면하고도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다. 그가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브니엘을 떠나 때 해가 떠 올랐다.
창세기 32.24-31 (기독교)
  
말씀선집 
  
천사가 왔을 때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망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느냐, 아니면 복을 주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느냐? 물으니 복을 주기 위해서 왔다는 그 대답에 ‘복을 주려면 주지 왜 못 주느냐’고 하니 그것은 책임분담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냥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야곱이 씨름을 해서 이기지 않으면 복을 못 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못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걸고 나섰을 때에 야곱은 ‘오냐, 좋다. 내 손가락이 빠지고 내 팔이 빠져도 결코지지 않겠다’ 고 결심하고, 칼로 쳐도 놓지 않고 목을 잘라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씨름을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했겠습니까? 밤새껏 했습니다. 네가 죽기 전에는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도 입회하고 사탄도 입회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결정을 짓는 그 마당에서 야곱은 얼마나 안타까워했겠습니까? 천사가 환도뼈를 치고 다리를 꺾어 버려도 야곱은 놓지 않았습니다. 네가 죽고 내가 죽고 둘 다 죽는다 해도 못 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야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하나님은 ‘천사가 지금 사탄을 대표해서 싸우고 있으니 굴복하지 마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으니, 얼마나 초조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채웠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이 지나서 최후의 결단을 짓게 되었을 때 천사가 아무리 뿌리쳐도 놓지 않으니 거기서 하나님도 공인하고 사탄도 공인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그런 입장에서 서 가지고서야 천사가 공인해서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천사 앞에 승리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을 때 천상 세계에서는 어찌했느냐? 졸였던 마음을 풀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마음 가운데 쌓였던 슬픔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 하고 부르는 그 음성 속에는 2천년 동안 쌓인 사연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위해 20년 동안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목을 끌어안을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인연을 넘어설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20.229-230, 1968.06.09)
   
야곱이 하란에서 그렇게 끈기 있게 21년 동아 참는 훈련을 안 했으면 얍복강에서 졌다는 것입니다. 21년 동안 싸웠던 모든 것이 오늘 이 시간에 승패가 결정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야곱은 끈기 있게 최후까지…. 저력을 거기서 길렀다는 것입니다. 그 후 에서를 굴복시키고서야 부모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입니다.
(67.126-127, 1973.05.27) 
  
타락이 뭐냐? 천사한테 굴복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천사를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 놓으면 영적 사탄의 지배를 받는 천사장의 실체도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야곱을 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씨름을 하는데 21년 한 이상의 힘을 다해서 싸운 것입니다. 21년 동안 축복받은 이상의 정력을 다해서, 히을 다해서 싸운 것입니다. 다리가 끊어지고, 죽더라도 나는 뜻을 이루어야 되겠다는, 몸뚱이는 희생시키더라도 뜻을 이뤄야 되겠다는 신념이 강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사탄이 축복해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무엇에게 이겼습니까? 천사입니다. 전 천사세계에게 이겼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제부터의 야곱이 가는 길은 하나님이 원조할 뿐만이 아니라 천사세계도 여기에 굴복하고 원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이겼으니, 영적 사탄이 지배 못하게 되었으니 에서도 굴복하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92.285, 1977.04.18)
   
그러면 천사는 왜 야곱을 축복하기 전에 그의 환도뼈를 친 것일까요? 인간의 타락행위는 몸의 그부분, 즉 환도뼈를 잘못 씀으로써 초래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죄를 범했던 부분을 침으로써 탕감은 완수되어졌던 것입니다. 즉, 구약성서에 있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라고 하는 법칙이 행해진 셈입니다. 그런 까닭에 천사는 야곱을 축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55.113, 1972.04.01)



4. 야곱과 에서의 화해
    
종교경전 
  
야곱은 에돔 벨세일 지방에 있는 형 에서에게 머슴들을 앞서 보내면서 형 에서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시켰다. “이 못난 아우 야곱이 문안드립니다. 그간 라반에게 몸 붙여 살다가 보니 이렇게 늦었습니다. 지금 저는 황소와 나귀와 양떼가 생겼고 남종과 여종까지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님께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아무쪼록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 머슴들이 다녀와서 야곱에게 고하였다. “주인님의 형님 에서께 다녀왔습니다. 에서께서는 지금 사백 명 부하를 거느리고 주인님을 만나러 오십니다.”
  
야곱은 덜컥 겁이 나고 걱정이 되어 일행과 양떼와 소 떼와 낙타 떼를 두 패로나누었다. 에서가 한 패에 달려들어 쳐 죽이면 나머지 한 패라도 피하게 해야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고 나서 야곱은 기도를 드렸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저에게 고향 친척에게로 돌아가면 앞길을 열어 주마고 약속하신 여호와여! 당신께서 이 종에게 베푸신 한결같으신 사랑을 저는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 강을 건널 때 제가 가진 것이라곤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이렇게 두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저를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 주십시오, 에서가 와서 어미들과 자식들까지 우리 모두를 죽여 버리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당신께서는 ‘네 앞길을 정녕 열어 주고 네 자손이 바닷가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불어나게 해주마’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날 밤 그는 거기서 묵으며 자기 소유 가운데서 형 에서에게 선물로 보낼 것을 골라내었다. 암염소 이백마리, 숫염소 이십 마리, 암양 이백 마리, 숫양 이십 마리, 젓을 빨리는 낙타 삼십 마리와 딸린 새끼들, 암소 사십 마리, 황소 십 마리, 암나귀 이십 마리, 수나귀 사십 마리. 야곱은 이것들을 따로 한 떼씩 떼어 종들의 손에 맡기며, 앞서 가되 떼와 떼사이에 거리를 두라고 일렀다. 야곱은 앞장설 종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너는 누구의 종이냐? 어디로 가는 중이냐? 네가 몰고 가는 이것들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여라. ‘이것들은 당신의 종 야곱의 것입니다. 형님 에서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야곱은 뒤에 오십니다.’”
   
야곱은 둘째, 셋째, 그리고 나머지 떼를 몰고 가는 자들에게도 에서를 만나면 꼭 같은 말을 하도록 일렀다. 특히 “당신의 종 야곱은 뒤에 오십니다”라는 말을 잊지 말라고 일렀다. 선물을 먼저 보내어 에서의 마음이 풀어진 다음에 만나면 행여 자기를 반겨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야곱은 선물을 먼저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을 천막에서 묵었다.
   
야곱이 고개를 들어 보니 마침 에서가 사백 명 부하를 거느리고 오는 것이었다. 그는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자녀들을 나누어 맡긴 다음,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자녀를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에게서 난 자녀를 다음에, 그리고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서 따라오게 하였다. 그리고 야곱은 앞장서서 걸어가다가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형에게 나갔다. 에서는 마주 뛰어 와서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들은 너와 어찌 되는 사람들이냐?” 야곱이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과분하게도 이 못난 당신의 종에게 주신 자식들입니다” 하고 대답하는데,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자식들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절했다. 또 레아와 그의 자식들도 앞으로 나와서 절하고 요셉과 라헬까지 나와서 엎드려 절했다.
에서가 물었다. “내가 오다가 만난 가축 떼들은 웬것들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아! 내 살림도 넉넉하다. 네것은 네가 가져라.” 하고 굳이 사양했지만, 야곱은 야곱대로 받아 달라고 사정하였다.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저를 아우로 여기시거든 제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형님이 저를 이렇듯이 사랑으로 맞아 주시니 형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32.3-33.10 (기독교)
  
말씀선집 장자의 자리, 장자의 자리에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한 후, 에서를 만났는데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야곱을 죽이지 않고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장자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횡적인 이스라엘권이 성립된 것입니다.
(102.178, 1978.12.24)
  
그는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의 모든 종들과 재산을 형 에서에게 주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벌어 모았던 모든 것을 형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형 에서를 벌하지 말고 자기에게 축복하신 것처럼 형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해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에서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52.65, 1971.12.22)
   
아벨이 가정에 돌아와서 장자의 직분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누가 공인해야 되느냐? ‘네가 장자의 기업을 내 대신 들고 나갔으니, 네가 하늘이 축복을 받아야 된다’는 이런 싸인을 누가 해줘야 되냐 하면 가인이 해줘야 됩니다. 가인이 싸인 하지 않고는, 가인이 인정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에서가 인정하지 않고는 야곱이 축복을 못 받는다 그 말입니다.
  
야곱이 나가서 21년 동안 뭘 했느냐? 자기편을 만들었습니다. 종족을 만들고…. 이것을 만약 안 하면 안 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가인보다 우세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가인을 소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이라고 축복해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계속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도 많고, 양(洋)도 많고, 모든 면에서 가진 것이 가인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어머니한테 인연을 두고, 아버지한테 인연을 두고 물건도 보내고 자꾸 그랬다는 것입니다. 형님한테 자꾸 물건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이 ‘동생이 무섭구나. 하나님이 동생을 진짜 축복하셨구나. 장자의 기업을 내가 판 것이 잘못했구나. 그렇지, 내가 잘못했으니 내가 동생보다 못했구나. 이제 동생이 오게 되면 내가 반대해서 안 되겠다. 환영해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벨과 같이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전통의 길입니다. 이와 같은 공식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되는 것입니다.
(106.183-184, 1979.12.30)
   
에서는 야곱이 하란에서 21년 동안의 고역을 마치고 하늘 편 처자와 재물을 취하여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그대로 그를 사랑하고 환영하였기 때문에(창33:4)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담가정의 가인과 아벨, 또 노아가정의 셈과 함이 실체헌제에 실패하였던 것을 탕감복귀 할 수 있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에서와 야곱이 실체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실체기대를 탕감 복귀하여 나온 종적인 역사노정을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노정 중 이삭가정에서 비로소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에서를 태중에서부터 미워하셨다고 로마서 9장 11절 내지 13절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와 같이 그는 야곱에서 굴복하여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였기 때문에 복귀한 가인의 입장을 설 수 있게 되어 드디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를 미워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다만 그가 복귀섭리의 탕감조건을 맞추어 나아가는데 있어서 사탄편인 가인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입장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기대 3.2)
   
야곱이 소망의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서 평화의 이상을 찾아나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와 같은 세계적인 이상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 가인 아벨을 복귀하기 위한, 혹은 에서와 야곱이 하나 되는 노정을 거쳐서 부모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서 세계적인 주권국가의 세계로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67.136, 197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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