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아브라함이 직면한 신앙의 시험 중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그는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 아들을 묶어 제단에 올린 후 막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말렸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이 아들이 이스마엘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성서는 이 아들이 이삭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리아 산으로 가는 도중 이삭의 신앙도 아브라함의 신앙처럼 시험을 받았다. 이삭은 앞으로 무엇이 일어날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자기 목숨을 바치더라도 아버지의 소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모범적인 아들이다.
문선명 선생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하나님의 재단에서 죽을 준비를 한 이삭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부모의 신앙을 협조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삭의 믿음을 가진 자녀로 기르고 있는가?
종교경전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셨다. “어서 말씀하십시오”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분부하셨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서 내가 일러 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제물을 사를 장작을 쪼개 가지고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서둘러 떠났다. 길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아브라함은 종등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거라.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저리로 가서 예배드리고 오겠다.” 하고 나서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씨와 칼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둘이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불렀다.
“아버지!”“얘야! 내가 듣고 있다.”
“아버지!불씨도 있고 장작도 있는데, 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예야!번제물로 드릴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단다.”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은 다음 아들, 이삭을 묶어 제단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아브라함이 손에 칼을 잡고 아들을 막 찌르려고 할 때, 여호와의 천사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여호와의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말라. 나는 네가 얼마나 나를 공경하는지 알았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 아브라함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수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아브라함은 곧 가서 그 수양을 잡아 아들 대신 번제물로 드렸다. 아브라함은 그 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이름 붙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마련해 주신다”고들 한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큰 소리로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은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점령할 것이다. 네가 이렇게 내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세상 만민이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창세기 22.1-18 (기독교)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으로 가는 도중에 노인으로 분장한 사탄을 만났다.
사탄은 “아브라함, 당신은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라고 물었다. 아브라함은 “나는 지금 기도하러 가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장작들과 불과 칼은 왜 가져갑니까?”
“우리는 모리아 산에서 며칠 동안 지낼 것인데 거기서 그것들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 예정입니다.”
“당신은 나이가 많고 또 당신 아내 사라가 낳은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있는데 그런데도 당신 아들을 기꺼이 제물로 바칠 작정이오?”라고 사탄이 조롱하며 물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내게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해야 하오”하고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사탄이 이삭에게 다가가서 “이삭아,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이냐?”라고 물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러 가는 중입니다.”라고 이삭이 말했다.
“너는 죽고 나서야 그런 지혜를 배우려고 하는가? 네 아버지는 너를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내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원하신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뜻을 따라야죠.”…
이들이 하늘 뜻을 따르러 가는 길에 이삭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제가 아직 어리기에, 칼을 보고 제단에서 떨려하여 혹 아버지를 심려끼쳐드릴까 걱정됩니다. 온전한 제물을 바치고 싶지만 저로 인해 제물이 온전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창세기 랍바 56 (유대교)
하나님께서 그(아브라함)에게 훌륭한 아들에 관한 소식을 주었노라.
그(아들)가 성장하여 그와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아브라함)가 말하길, 오, 나의 아들아! 너를 제물로 바치는 꿈을 꾸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아들)가 말하길 오, 아버지! 명령 받으신 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당신은 내가 인내하는 자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둘이 복종하여 그(아브라함)가 그(아들)를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불러 오, 아브라함아! 너는 꿈에 충실하였구나.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선행ㅇ르 하는 자에게 보답하느니라. 진실로 이것은 분명한 시험이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희생으로 그를 속죄해 주었노라. 그리고 하나님은 그(그의 좋은 기억)를 후손에 남겨 놓았느니라. 아브라함에게 평화 있으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선행을 하는 자에게 보답하느니라. 참으로 그는 믿음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종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올바른 사람의 하나인 예언자 이삭의 소식을 전해 주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와 이삭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노라.
꾸란 37.101 -113 (이슬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을 때에 이삭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그가 그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삭에서서 너의 자손이라 불릴 자손이 태어날 것이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비유하건대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7-19 (기독교)
아브라함은 백발이 되도록 천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막벨라 동굴에 안장하였다. 그 동굴은 헷 사람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었는데, 이 밭은 마므레 동쪽에 있었다.
창세기 25.8-9 (기독교)
말씀선집
아브라함은 축복을 이루기 위하여 백세에 만득자로 얻은 이삭까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 명령은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모험적인 조건이 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늘땅을 대신하고, 천상의 일이나 지상의 일 등 억 천만사를 좌우하는 조건이었는데 이것을 모르면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그 명령을 받은 후 아들을 제단에 놓고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삼아 칼을 들어 찌르려 했던 아브라함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의식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어느 누가 아브라함의 그런 신앙을 인정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시한 이 모험적인 행동은 곧 아브라함이 하늘에 속한 몸이고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늘에 속한 몸들이니,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 드리는 과정에서 깨닫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아들은 내가 낳았으나 당신 것이오니 당신께 드리겠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이삭을 번제하려 했고, 현실적인 환경을 타개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대 선조들의 신앙의 중심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1.265-266, 1956.12.02)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한 후,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시어(창22:2), 그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를 탕감복귀 하시려는 새로운 섭리를 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나 절대적인 그 믿음과 순종과 충성에서 나온 행동은, 벌써 그로 하여금 이삭을 죽였다는 입장에 서게 하였기 때문에 이삭으로부터 사탄을 분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탄이 분리된 이삭은 벌써 하늘 편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제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에 대한 책망과 이삭 헌제의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이 아울러 강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이삭 헌제에게 성공함으로써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3.1.2
이삭 헌제 때의 그의 연령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가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을 뿐만 아니라(창22:6), 번제에 쓰일 양이 없는 것을 염려하여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그의 부친에게 물어 봤던 것(창 22:7)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이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에 이삭 자신이 그것을 협조하였으리라는 사실도 또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뜻에 대한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연령에 도달해 있었던 이삭이, 만일 번제를 위하여 자기를 죽이려는 부친에게 반항하였다면 하나님이 그 이삭 헌제를 받으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충성과 그에 못지않은 이삭의 충성이 합동하여 이삭 현제에 성공함으로써 사탄을 분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헌제를 중심하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첫째로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그 실수 이전의 입장으로 탕감복귀 해 가지고 그 입장에서 자기의 섭리적인 사명을 이삭에게 인계할 수 있게 되었고, 둘째로 이삭으로서는 그가 뜻 앞에 순종 굴복함으로써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늘의 사명을 이어받아, 다음에 ‘상징헌제’를 드리기 위한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3.1.2.3)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쳐져야 할 저희 자신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오니, 아버지께서 몰아서라도, 끌어서라도 제물의 제단까지 저희들을 이끌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철모르는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향하여 가는 아브라함에게 그 자식인 이삭이 제물로 쓰일양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게 될 때, ‘그것은 네가 걱정할 것이 아니다’라고 하던 아브라함의 마음을 살필 적마다, 그 부모의 마음을 살필 적마다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에 그 얼마나 슬픔이 앞설 것인가를 느끼게 되옵니다.
(48.57, 197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