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세 가지 유일신 종교의 원류다. 아브라함은 유대임의 조상이며, 기독교에겐 믿음의 조상이며(로마서 4.1-3), 이슬람 신자에겐 메카에 카아바 신전을 세운 사람이며 이스마엘을 통해 아랍인의 조상이 된다. 아브라함은 우상장사의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믿는 첫 유일신 신앙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고향을 떠나 전혀 낯선 땅으로 갔다. 그는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 아래 그의 생애와 미래를 하나님의 손길에 맡겼다. 그는 가나안 백성들 가운데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연민은 위대하였으며, 특히 소돔과 고모라의 문제를 중재할 때 그것이 드러났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께서 모든 섭리를 아브라함에게 맡겼으며 구원섭리를 진행하기 위한 지상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아브라함을 동반자로 삼았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모든 행위, 모든 제사, 모든 기도는 중요성을 지닌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주저하지 않고 고향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섭리는 진전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 기록된 중요한 번제에서 비둘기를 둘로 쪼개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의 섭리는 후퇴하고 연장되었다. 아브라함 가정에서 사라와 하갈사이의 반목이 오늘날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증오로 계속되고 있다. 아브람함은 자신의 신앙노정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희생시키라고 요구했을 때 그의 시련은 정점에 달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부분에서 다룬다.
1. 아브라함의 절대 신앙
종교 경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조카 롯도 함께 떠났다.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는 칠십오 세였다.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롯과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에 이르렀다.
창세기 12.1-5 (기독교)
하나님은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그의 지침서를 주었으니, 하나님은 그를 잘 아느니라. 그 때 그는 그의 아버지와 백성들에게 “여러분이 숭배하는 이 우상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이 때 그들이 “우리 선조들이 이미 그것을 숭배하고 있었음이오”라고 답하였다. 그가 말하였다.“여러분과 여러분의 선조들이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음이라.”그들이 “당신이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느냐, 아니면 우리를 조롱하고 있느냐?”라고 묻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너희의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니, 내가 그 사실의 증인 중에 한 사람이라. 하나님께 맹세하사 나는 너희가 등을 돌리고 떠난 후 너희의 우상들에 계획을 세우리라.”
그리하여 그는 가장 큰 우상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깨뜨렸다. 아마도 그들은 그 가장 큰 우상에게 의지하게 되리라.
그들이 말하였다. “누가 우리의 신들에게 이런 짓을 했느냐? 그는 분명 사악한 자임에 틀림없도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였다. “아브라함이라는 청년이 그것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그들이 말하였다. “그들이 증언하도록, 그를 사람들이 보는 대로 데려오라.” “이 신들을 파괴한 자가 바로 아브라함 당신인가?”라고 그들이 물으니, 아브라함이 답하길, “아니오, 아마도 그 우상들의 우두머리가 그랬으리라.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물어보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여 말하길, “너희가 바로 죄인이로다.”
그러자 그들은 매우 당황하여〔아브라함에게〕말하였다. “당신은 이들이 말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으리라.” 그가 말하였다. “너희는 하나님 대신에 너희들에게 유익함도 해로움도 없는 것을 숭배하고 있느냐?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는 당신들이 가련할 뿐이니, 너희는 이를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이들이 말하길 “당신이 원한다면 그를 불 태워 버리고 당신들의 신들을 보호하라.”하였다.
하나님께서 “불아 식어라. 그리고 아브라함을 안전케 하라!”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음모를 꾸몄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패배자로 만들었도다. 하나님은 그와 롯을 구하고 그들을 백성들을 위해 축복이 내린 땅으로 인도하였느니라.
꾸란 21.51-71 (이슬람)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라. 아브라함아, 나는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주며, 매우 큰 상을 너에게 내리리라.”그러자 아브라함이 말씀 드렸다. “여호와 나의 주여, 나는 자식이 없는 몸입니다. 가문의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젤밖에 없는데, 나에게 무엇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식 하나도 점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내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내 집의 이 종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여쭙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를 이을 사람은 그가 아니다. 장차 네 몸에서 날 네 친 아들이 네 대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어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많이 불어날 것이다.” 그가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창세기 15.1-6 (기독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차 분깃으로 받을 땅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마치 타국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하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8-10 (기독교)
말씀선집
아브라함도 아버지 데라의 집에 있어서 혁명적인 요소를 청구했습니다. 그랬지요? ‘이 아비야. 우상이 다 뭐야.’하면서 발길로 우상을 차고 그러지 않았겠어요? 집에 들어갈 적마다 ‘이건 언제 내 손에 의해서…’ 몇 십번 속으로 결의했다는 것입니다.
(151.62, 1962.10.07)
아브라함을 보세요. 우상장사의 사랑스러운 아들로서 어머니, 아버지의 슬하에서 잘 자라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가지고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너는 데라의 집에서 따나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예고하고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불러서 바로 내린 벼락명령인 것입니다. 청천의 벽력같은 명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물쭈물하면 안 됩니다. 떠날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떠나야 합니다. ‘아이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하며 망설이면 안 됩니다. 출발이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출발이 그릇되게 되면 천추만대의 역사에 한이 될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사탄의 참소조건이 되어 지나온 모든 역사가 부정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게 때문에 하늘의 명령을 받들고 나선 사람들은 명령을 받은 즉시 행동하는 것입니다. (43.270, 1971.05.01)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빼내려고 하는데, 만일 아브라함의 동역자가 있어서 따라 올까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아니었겠느냐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데 일반 사람도 들을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만 듣는 것입니다. 또, 자기 부모에게 ‘어머니 아버지, 하나님이 나한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는데 그러겠소!’라고 하게 되면 미친 녀석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말도 못했을 것입니다.
떠나는 데 있어서도 몇 십 리, 몇 백 리가 아닙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국경을 넘어 애급까지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부모보다도, 자기 고향보다도, 자기 친척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환경을 헤치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명령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명령을 생명보다 더 중요시했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야간 도망을 했을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아브라함은 집시와 같은 행각의 노정, 정처없이 흘러가는 생활을 계속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합은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단연히 끊고 나선 사람입니다. 완전 부정을 기초로 하고 출발한 사람입니다.
(69.95-96, 1973.10.21)
아브라함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우상 장수인 그의 부친으로부터 그를 분립시켰습니다. 그는 가족, 조국, 물질적인 부, 그리고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사탄세계로부터 그를 단절시킴으로써, 그는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단련시키고,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민족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도 울 수 있게 하시면서 섭리를 발전시켰습니다.
(52.52, 1971.12.14)
하늘은 택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내어 그런 자리로 보냈습니다.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몰아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하늘이 세우려던 하늘 주권의 나라가 세워질 한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늘이 축복한 아들딸들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여 악의 세상을 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고국산천을 버리고 나섰던 사실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원수의 날, 원수의 철망 안에 사로잡혀 있으니 지긋지긋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이 여러분도 느껴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늘 앞에 완전한 신앙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아브라함을 세운 목적은 무엇인가. 먼 거리에 있는 인간, 전직 가운데 있는 인간, 사탄세계에 있는 인간과 연락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으로 삼아, 이것을 토대로 하여 횡적으로 뻗어나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칫 잘못하면 하늘과 당의 관계가 끊어지겠으니 할 수 없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여 직계의 혈통을 통해서 움직여 나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삭과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을 때 그들이 가진 것은 무엇이었으냐. 선민이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너는 사탄세계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 화합해서는 안 된다. 너는 선민이니 생활도 다르고, 네가 꿈꾸는 이상도 다르다. 너는 나를 통해서 승리의 한날을 봐야 너의 후손이 살 수 있다’고 하는 관점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그런 관점에서 이삭을 축복해야 했고, 이삭도 그런 관점에서 야곱을 축복하여야 했으며, 야곱도 그렇게 그의 후대 앞에 축보해야 했습니다.
(7.215-216, 1959.09.13)
2.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
종교경전
“나는 이 땅르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다.” 아브라함이 “내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한 마리씩 나에게 바쳐라.” 그는 이 모든 것을 잡아다가 반으로 쪼개고 그 쪼갠 것을 짝을 맞추어 마주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만은 쪼개지 않았다. 솔개들이 그 잡아놓은 짐승들 위에 날아오면, 아브라함은 이를 쫓고 있었다. 해 질 무렵, 아브라함이 신비경에 빠져들어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데,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똑똑히 알아두어라. 네 자손이 남의 나라에 가서 그들의 종이 되어 얹혀살며 사백 년 동안 압제를 받을 것이다.…”
창세기 15.7-13 (기독교)
말씀선집
아브라함을 봅시다.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소와 양은 전부 다 쪼개고 비둘기는 안 쪼갰는데, 왜 안 쪼갰느냐 이겁니다. 한 번 더 공적으로 생각했던들…. ‘이건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요,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하고 한 번 더 생각했으면 비둘기도 쪼개야 된다는 걸 알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93.314, 1977.06.12)
아브라함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에 솔개가 내렸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 들어가서 400년간 고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었는가?
구원섭리의 목적은 선과 악을 분립하여 악을 멸하고 선을 세움으로써 선주권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아담 한 존재를 가인과 아벨로 분립한 후에 헌제해야 했던 것이나, 또 노아 때에 홍수로써 악을 치고 선을 분립했던 것 등의 목적은 모든 선주권을 복귀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제물을 쪼개 바치게 함으로써, 아담이나 노아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선악 분립의 상징역사를 이루려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바침으로 인하여 그것은 사탄 것 그대로를 바친 것이 되어, 결국 그것은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3.12)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에 상징적 제물 조건을 세워서 전환하려던 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삭을 통해서 야곱을 통해서 3단계를 거쳐 가지고 상징, 형상, 실체적 과정을 통해서 전환시점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81.96, 1975.12.01)
3. 아브라함, 이스마엘 그리고 이슬람의 뿌리
종교경전
아브라함의 아내 가래의 아직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마침 사래에게는 하갈이라는 이집트인 몸종이 있었다.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시니. 내 몸종을 받아 주십시오, 그 몸에서라도 아들을 얻어 대를 이었으면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이집트인 몸종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소실로 들여보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지 십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아브람이 하갈과 한자리에 들었더니, 하갈의 몸에 태기가 있게 되었다. 하갈은 그것을 알고 안주인을 업신여기게 되었다. 그러자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호소하였다. “내가 이렇게 멸시를 받는 것은 당신 탓입니다. 나는 내 몸종을 당신 품에 안겨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몸에 태기가 있는 것을 알고는 저를 업신여깁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사래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몸종인데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 좋을 대로 하시오.” 사래가 하갈을 박대하자 하갈은 주인 곁을 피하여 도망치는데, 여호와의 천사가 빈들에 있는 샘터에서 하갈을 만났다. 그 샘터는 수르로 가는 길가에 있었다. 그 천사가 “사래의 종 하갈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하고 물었다. “나의 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 하갈이 이렇게 대답하자, 여호와의 천사는 주인 곁으로 돌아가 고생을 참고 견디라면서 이렇게 일러주는 것이다. “내가 네 자손을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어나게 하리라.” 여호와의 천사는 다시 “너는 아들을 배엇으니 낳거든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네 울부짓음을 여호와께서 들어주셨다.”
창세기 16.1-11 (기독교)
아브라함이 말하길, 나의 주님이시여 이 도시(메카)를 평안하게 하여 주사옵고 저와 저의 아이들이 우상숭배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주님이시여, 인간 중에 실로 많은 자가 방황하나이다. 그러므로 저를 따르는 자는 실로 저와 같으며 제게 복종하지 않는 자 또한 저와 같으니, 당신께서는 실로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시나이다. 우리의 주님이시여, 저는 당신의 신성한 집근처 경작되지 않은 계곡에 나의 자손 일부가 살게 하였나이다. 우리의 주님이시여, 그들이 예배를 근행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을 좋아하도록 만들어 주사옵고 그들에게 과실을 제공해 주시옵소서. 아마도 그들은 감사해 할 것이나이다.
꾸란 14.35 -37 (이슬람)
말씀선집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이삭과 그의 이복형이 되는 이스마엘이 각각 아벨과 가인의 입장에 서 가지고 가인과 아벨이 이루지 못하였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 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입장에 이삭을 대신 세우시고 이스마엘과 이삭의 입장에는 각각 에서와 야곱을 대신 세우시어 그들로 하여금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을 중심한 에서와 야곱은 아담을 중심한 가인과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노아를 중심한 셈과 함의 입장이기도 하였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3.2)
아브라함의 첩을 통해서 태어난 이스마엘을 중심삼고 반대적인 입장에서 가인 아벨과 같이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첩인 하갈이 사라와 싸워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하나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 되었으면 하나님도 그 일을 안 했을 거라는 겁니다. 첩과 본처와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가 하갈을 쫓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갈라진 것이 예수시대에 와서도 하나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로 말미암아 좌우는 좌우대로, 전후는 전후대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나라로 말하면 좌익적인 나라가 생겨났고, 종교적인 면에서는 기독교와 반대적인 종교가 나와 가지고 중동세계를 인도해 나온 것입니다.
(215.253, 1991.02.20)
4. 소돔과 고모라를 위함 아브라함의 타원
종교경전
여호와께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내가 장차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아브라함은 강대한 민족이 되고 세상 민족들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 복을 빌 것이 아닌가? 나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자손과 그의 뒤를 이을 가문에게 옳고 바른 일을 지시하여 이 여호와의 가르침을 지키게 하려고 그를 뽑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그대로 이루어주어야 하리라.’
창세기 18.17-19 (기독교)
이렇게 생각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나는 차마 들을 수가 없다. 너무나 엄청난 죄를 짓고들 있다. 내려가서 그 하는 짓들이 모두 나에게 들려오는 저 아우성과 정말 같은 것인지 알아보아야 하겠다.” 그 사람들은 걸음을 옮겨 소돔 쪽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냥 여호와 앞에 서있었다.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물었다. “당신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죄인과 함께 기어이 쓸어버리시렵니까? 저 도시 안에 죄 없는 사람이 오십 명이 있다면 그래도 그 곳을 쓸어버리시렵니까? 죄 없는 사람 오십 명을 보시고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죄 없는 사람을 어찌 죄인과 똑같이 보시고 함께 죽이시려고 하십니까?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라면 공정하셔야 할 줄 압니다.”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에 죄 없는 사람이 오십명만 있으면, 그 죄 없는 사람을 보아서라도 다 용서해 줄 수 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시 말했다. “티끌이나 재만도 못한 주제에 감히 아룁니다. 죄 없는 사람 오십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때문에 온 성을 멸하시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저 곳에 죄 없는 사람이 사십오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사십 명밖에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여쭙자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사십 명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이 또 여쭈었다. “주여,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십 명밖에 안 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삼십 명만 되어도 멸하지 않겠다.”하고 대답하시자 그가 또다시 여쭈었다. “죄송하오나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이십 명밖에 안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이십 명만 되어도 그들을 보아서 멸하지 않겠다.”하고 대답하셨다. 아브라함이 다시 “주여, 노여워마십시오. 한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열사람밖에 안 되어도 되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사람을 보아서라도 멸하지 않겠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랗마과 말씀을 마치시고 자리를 뜨셨다. 아브라함도 자기 고장으로 되돌아갔다. 창세기 18.20-33 (기독교)
말씀선집
소돔과 고모라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곳이었고 아브라함이 있는 곳과는 상관계도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늘의 뜻을 알든 모르든, 그 민족이야 당하게 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늘 앞에 섭리적인 사명감을 가져서만이 아니라,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내적 심정이 나타나 있는 것이 여기에 쓰인 말씀입니다.
6천년 역사의 종결 시기를 맞이한 오늘날, 여러분들이 편한 잠을 자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라도 지탱해 나가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숨은 뿌리가 되어 피눈물 나는 호소의 재단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 성중에 아브라함의 간절한 기도가 천상에 사무쳐 하나님과 일문일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무리가 있었다면, 또 그 무리 가운데 아브라함을 알아보는 의인 몇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간절히 호소하여 소돔과 고모라성이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의인이 있었다는 것을 조건삼아 하나님께 ‘공의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아버지시여, 의인과 악인을 함께 불로 심판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호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이, 자기 혼자만이 소돔 고모라를 대표하여 기도하게 되는 것을 느꼈을 때 아브라함의 서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1.139-140, 1956.07.01)
이놈의 소돔과 고모라 같은 지옥! 이것을 손대 가지고 이것을 다 해결 못하는 날에는 지상천국은 망치는 것니다. 현재의 세계의 젊은이들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이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약의 소굴이요, 음란의 소굴이요, 모든 부패의 소굴입니다. 그걸 내 손으로 수습하려고 합니다.
(105.324, 1979.10.28)
이제는 일기책에 선생님이 나를 몇 번 푸쉬했는지 적어놓으세요, 백, 2백, 2천, 2만, 이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생님과 같은 역사가 이어질 것입니다. 선생님이 역사하는 위에 여러분의 이름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일을 하면서, 많은 미국 사라들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발전을 하면 미국의 복이 되는 것이요, 미국이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못한 것을 종식시킬 수 있는 하나의 탕감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 사람들을 보고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미국은 망하더라도 이드을 보고 망하지 않게…’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 의인 열 사람만 있으면 용서하겠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미국은 망해야 당연하지만 이런 이들을 중심삼고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3.200, 1979.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