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법현(法賢) 중인도 나란타사의 승려
--통일원리는 인생의 바른 길을 안내하고 있다--
여기에 참석하여 통일원리를 듣고 보니 감동과 감격과 희열과 혼동이 뒤범벅되었다. 강사들은 눈물로 통일원리를 호소하는데 어찌 우리가 그 소리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교육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다. 통일원리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문선명 선생님이 밝히신 천비라고 설명했다. 통일원리 자체가 가공할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그 논리 전개가 정연하다. 그 동안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내용들이다.
하나님은 어느 종단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부모라고 가르치고 있다. 문선명 선생님은 인류를 직접 지도하고 가르치시기 위하여 통일원리를 밝히셨으며 인류의 참부모님이라고 규명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모시고 문선명 선생님의 가르침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이 통일원리의 결론이다. 그리고 통일원리의 내세관은 너무도 명료하였다. 그리고 4위기대 부분은 다소 생소하지만 철학적 근거를 지닌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불자들에겐 참으로 치명적이며 극복할 난제가 적지 않았다. 불자들은 이런 진리와 너무도 먼 거리에서 살았던 것 같다. 새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나 법현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지만 통일원리의 모든 핵심은 이해되었고 그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더 많은 강의를 들을 것이다. 앞으로 여러 불자들의 공감과 확신을 얻은 후 이 길을 선택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문선명 선생님의 수고에 대단히 감사한다.
법 현 --2002. 2. 17--
32) 불도징(佛圖澄) 서역 구자국의 승려
--하나님의 고통은 우리 불자들의 어려움과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통일원리는 인생에 대한 근본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주체 측에 대단히 감사한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 불자들뿐만 아니라 나 불도징도 인생을 함부로 보내지 않았다. 불자의 길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험난한 길이지만 인간이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통일원리를 듣고 보니 우리 불자들은 시대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이시면서 온 천지 만물의 조화로움을 창조한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경륜하시면서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고통은 우리 불자들의 어려움과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불자들도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적지 않은 고난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통일원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인 동시에 참부모님 문선명 선생님의 가르침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통일원리로 개종할 것이다. 통일원리보다 엄청난 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이후 우리의 복잡한 어려움이 남아있지만 문선명 선생님과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이시니 우리들의 지난날을 재검토하시고 배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상향을 추구하며 나 불도징은 영원히 극락세계에서 머물기를 염원한다.
불도징 --2002. 2. 17--
33) 마하남(摩夏南) 석가의 제자로 5비구의 하나
--인류에게 통일원리를 밝혀 주신 것에 대하여 무척 감사한다--
나 마하남은 일찍부터 불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고 죽고, 늙고 병들어 죽고, 사고가 나서 죽는다. 어떻든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인생의 근본이치를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고, 죽음의 길을 막아주는 사람은 더구나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초월하기 위하여 나 마하남은 불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통일원리는 인생의 출발과 방향과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통일원리의 내용은 고민하고 의심할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 다만 지금까지 걸어온 우리 불자의 과거사가 너무도 아까울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불자의 숙명인 것을 어찌 하겠는가. 우리가 지난날 외길을 걸었기에 오늘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시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원리를 밝히신 문선명 선생님은 인류에게 새롭고 큰 경전을 주셨으니 너무도 감사하다.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할 극락세계에 대해서도 배려해 주시리라 믿는다. 부족하지만 영원을 두고 보면 지금 이 시간도 감사한다. 그리고 인류에게 통일원리를 밝혀 주신 것에 대하여 무척 감사한다. 그리고 문선명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리옵니다.
마하남 --2002. 2. 19--
34) 유마(維摩) 석가의 속제자, 불이법문의 대가
--통일원리를 새 진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불자들은 석가 세존의 가르침과 뜻을 따라 일생을 살아왔다. 따라서 석가세존은 곧 우리 불자들에 있어서 신에 버금가는 존재였다. 석가님은 일생을 수행하시며 살아오신 분이시다. 석가님이 수행생활을 통해 득도한 가르침에 의해서 우리 불자들은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조금씩 깊게 깨달으면서 성문, 연각, 불타 등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이 인간이 살아야 할 참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석가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왔던 불자들은 통일원리를 듣고 보니 많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석가님의 가르침에 따라 외길을 걸어오신 분들이다. 석가님의 가르침을 통일원리의 가르침과 비교해 볼 때 거기서는 적지 않은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다. 통일원리 자체에서 어떤 모순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지금의 나 유마의 솔직한 심경이다. 그러나 통일원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통일원리가 제시하는 인생의 근본 방향은 논리적으로 조금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진리이다.
석가 세존께서도 통일원리에 대하여 대단히 격찬하시고 계심을 알고 있다. 그러나 통일원리의 가르침에 따라 불자들이 새 출발하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전제조건이 따를 것 같다. 그 동안 불자들이 걸어온 수행생활은 헛된 것인가. 불자들의 수행생활은 통일원리의 가르침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불자에겐 너무도 생소한 존재여서 불자들은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기가 무척 서먹서먹하다. 정말 하나님과 우리 불자의 관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문선명 선생님께서 통일원리를 찾으시기까지 겪으신 수많은 고행을 우리 불자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석가님을 비롯한 불자들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불자들은 석가님을 모시고 따라왔기에 석가님이 통일원리의 가르침을 따르신다면 나 유마도 그것을 따를 것이다. 그것이 석가님을 존경하며 생활하였던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원리의 가르침에 어떤 모순이 없는 한, 우리는 그것을 새 진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나님과 문선명 선생님은 참부모님이시니 우리 불자들에게 특별한 배려가 있으리라 믿는다.
유 마 --2002. 2. 19--
35) 혜가(慧可) 선종의 제2조
--불자들이 찾고자 한 인간의 참모습을 찾았다--
일생을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지만 나 혜가의 생애엔 어려운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때 혜가에게 찾아오는 것은 대단한 희열이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처럼 찾아오는 기쁨이 불자들의 수행생활에 있어서 크나큰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의 수행생활은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불자들은 그러한 생활을 통해서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인가.여러 불자들의 견해에 따라 그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나 혜가는 인간의 참 모습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통일원리를 듣고 보니 그 동안 우리 불자들이 찾고자 한 인간의 참모습이 구체적으로 또렷하게 밝혀졌다. 이처럼 구체적인 진리가 우리의 앞날을 인도한다면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나는 통일원리를 따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
나 혜가는 나름대로 불공을 다시 드려보겠다. 통일원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머리로 깨닫고 체험하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며 부처님은 어떻게 가르치시는지 내 마음의 문이 열어지는 방향을 주시할 것이다. 통일원리는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진리요, 어느 특정 종교에 소속된 가르침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문선명 선생님에 대한 뜻도 가르침도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과 몸, 즉 진리와 실천이 하나 되지 않는 갈등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가 그 문제가 남아있다. 지금 불자로서의 괴로움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혜 가 --2002.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