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계에서 보낸 공자의 메시지
(1) 인간의 흥망성쇠
인간이 지상에서 한 세상을 살다가 유명을 달리하면 지상의 삶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난 세월로 흘러가 버린다. 지상에 살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구차하게 살았는지, 행복하게 살았는지, 그 모습들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살았던지 그의 한 세대는 지나간 삶에 불과할 뿐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모든 것은 그 개인과 결코 상관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고 천지 만물 조화와 인간과는 뗄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하고 고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공자)도 지상에서 한 세상을 살았던 순간 순간마다 생활 주변의 모든 존재들에게 적지 않은 신세를 지고 살아왔던 것 같다.
인간은 엄마의 뱃속에서 오직 홀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태어난 이후부터 남의 힘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왜 자기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온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흔히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은 채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상에는 이처럼 맥 놓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공자)를 소위 ‘성인’으로 불러주고 있다. 나는 지상생활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특히 인간의 윤리 도덕에 대한 문제에 심혈을 기울여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무력하고 한정적 존재임을 깨달았다. 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뻗칠 수 없는 여러 차원의 한계들이 많이 있었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실지로 체휼하여 보았다.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그러했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공자도 수 천년 전 지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곳, 육신을 가진 자는 살 수 없는 무형세계에서 나는 그렇게도 갈망해 오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후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체험했다. 그때 나의 심경은 지상에서 성인이란 칭호를 받았던 것이 너무도 송구스럽게 느껴져서 나의 정체를 깡그리 숨기고 싶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흥망성쇠의 주인이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상 생활에서 수많은 규범을 지키면서 규범이란 울타리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살았다. 말하자면 그러한 울타리에 묶이어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나에겐 더 이상 갈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 만난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셨다. 지상 생활에서 그렇게도 나 자신을 묶어 두었던 규범도 이곳 영계의 하나님 곁에서는 필요치 않았고, 그러한 울타리도 필요치 않았다. 어떤 한계도 느낄 수도 없었고,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의 작용처럼 그냥 스스로 그냥 그 대로 일정한 법도에 따라 자유롭고 화평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했다. 사실, 나는 지상에서 생활할 때 수많은 규범 속에서 갇혀 살았으며, 그리고 성인이란 이름으로 인간들을 철창 없는 감옥 같은 울타리에 가두어 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근본 속성을 알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에겐 그렇게 엄격한 규범도 무서운 울타리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방법을 나에게 한번도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곁에만 가면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것은 자연히 법도에 맞게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진리는 육신을 가진 지상 인간들에겐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설명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 공자는 이러한 진리의 내용을 지상 인간에게 전할 수밖에 없다. 성인이란 칭호를 가지고 있는 공자이지만 무형세계에서 발견한 새로운 대진리 앞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누구일까? 이처럼 엄청난 대진리를 지닌 하나님 앞에 인간의 모습은 다만 무력하고 나약할 뿐이리라. 그러나 알아야 한다.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요, 창조주요, 특히 인간 앞에는 부모이심을 알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부모인 하나님을 모르고서야 어찌 대 진리를 깨닫게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요 부모인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부모인 하나님을 시봉 하는 그 순간부터 마음의 자유함을 얻을 것이며,지루하고 답답한 규범의 테두리에서 해방될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명적이고 최종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똑똑히 아는 것일 것이다. ─ 2001. 2. 3 ─
(2) 하나님과 인간
내가 지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 때 어느 것 하나도 섣불리 대수롭게 넘긴 것이 없었다. 매사를 순리적이며 조직적으로 치리(治理)하며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우고 생활했다. 그러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나 자신을 가꾸고 다스리고 점검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획했던 일은 반드시 성취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뒤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과 덕망을 계발하기 위하여 항상 나 자신을 엄격하게 치리하는데 치중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성인의 반열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곳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나의 지상 생활을 스스로 돌이켜 볼 때 허탈하고 허무하기 그지없다. 우리 인간이 지상에 살 때 하나님을 잘 알고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다가 이곳 무형세계로 왔다면, 하나님 앞에 떳떳한 자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며, 부자의 관계에 조금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신을 가지고 생활할 때 눈에 보이는 주위의 물질 세계와 현실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기 때문에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부모님으로 모시지 못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보살피는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간다. 인간의 육신은 생명 작용이 중단되면 물질로 환원되고 만다. 그러나 육신을 에워싸고 있는 영혼은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생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육신보다 우리의 영혼을 더 빨리 서둘러 치료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자신의 영혼의 생활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경시해 왔다.
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성인이라고 불렀던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신 적이 있었다. “공자는 지상에 육신을 가지고 살았을 때‘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시며 살았느냐?” 그리고 연이어 “하나님이 공자라면 성인이란 호칭은 사양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인간에게 바른 교육을 가르치고 살았다 할지라도 우주의 근본적 원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소개하고 말았다. 하나님과 인간의 분명한 관계를 밝힌 후,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고 살아야 하는 규범을 바르게 가르쳐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모른 채 인간과 인간의 규범에만 치중했던 것이다. 한 가정에서 장남이 그의 동생들에게 갖가지 생활 방식과 생활 예절을 잘 가르치고, 그들을 미래의 훌륭한 인격과 덕성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할지라도 그들의 부모를 뒷방에 모셔 놓고 그들에게 부모를 섬기는 예절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라. 이 때 그 장남은 그의 부모님 앞에 분명히 효자의 칭호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장남이 아니라 거짓 부모 노릇을 한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니, 이것은 그의 부모님 앞에 대단히 큰 불효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상의 여러분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이며,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사고방식은 하나님 앞에 대단한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며, 하나님 마음을 지극히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며, 인간의 창조주이며, 인간의 부모이시다.
그러면 인간은 뭐냐? ‘나’라는 존재는 뭐냐? ‘나’라는 개체는 하나님 앞에 지음받은 자녀의 자리에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부자(父子)의 관계’이다. 부자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이고 천륜적인 관계이다. 여러분의 지상생활에 있어서도 여러분의 부모가 잘생겼든 못생겼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학식이 많든 적든, 그 분을 여러분의 부모로 모시는 것이 보편화된 현상이 아닌가. 부모를 섬기는 일은 아무리 귀찮고 힘들지라도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며, 자녀는 그의 부모를 부모의 자리에 세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상 인간의 보편적인 생활양식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육신 부모의 모심의 생활도 그러하거늘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며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일에 있어서야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지상 생활을 할 때 부자유친(父子有親)이나 군신유의(君臣有義) 등은 가르쳤지만 하나님과 인간의 부자(父子)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못한 것 같다. 인류가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시는 일을 어렵고 힘들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어떤 윤리 도덕 규범보다도 우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규범이요 덕목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원하신 부모님,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을 우리의 생활 가운데 모시고 살아야 한다. 겨울이 오면 따뜻한 곳에, 여름이 오면 시원한 곳에, 봄이 오면 파릇파릇한 새싹 위에, 그리고 가을이 오면 오곡이 무르익는 들판 위에 풍요롭고 행복하게 우리들의 부모이신 하나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셔야겠다는 굳건한 각오가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약시대의 진정한 성약인이다. 여러분은 이처럼 지상에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면 영원한 무형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내 자식아, 이제 왔느냐?”하고 반갑게 맞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이시요,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상생활에서 하나님 앞에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음을 고백하면서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이 메시지를 지상에 보낸다. ─ 2001. 2. 4 ─
(3) 공자보다 나은 지상인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시기를 잘 타고나야 하는데 이것은 인생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는 나를 낳기 위하여 정성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극한 정성을 들였지만 나는 세상에 태어날 때 가문의 혜택도 나라의 혜택도 받기 힘든 환경에서 태어났었다. 나의 부친은 나를 낳고 내가 온전히 성장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는가 하면, 나의 모친은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너무도 가난하여 무척 힘든 생활을 하였다. 여기에서 내가 가문의 이야기와 당시 ‘노(魯)’나라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상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지상생활을 할 당시의 가정적 배경과 시대적 환경이 오늘의 공자로 인도한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시대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그리고 깊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심으로써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게 되었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간의 근본적인 생활을 철저하게 고수했다. 그리하여 불의에 비굴하지 않고 불의에 대응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르고, 천리의 이치에 맞는 규범을 확립하고, 그것에 따라 살기 위해 적지 않게 수양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근본적 삶 자체의 방향을 확실하게 몰랐기 때문에 조그마한 규범 속에 인간을 가둬 놓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였던 것 같다. 지금 여러분이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 공동체가 있고 여러 형태의 종단이 많이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어떤 것을 해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을 해야 된다’는 계명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계명들이 인간의 생활을 꽁꽁 묶어 버린 것 같다. 이러한 대부분의 계명들은 하나님이나 다른 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인간의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한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에는 그렇게 무섭고 고루한 계명이 필요치 않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그러한 수렁이나 덫과 같은 계명으로 인간을 묶어 두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오직 하나님 품속에서 동거동락(同居同樂)의 생활을 하기만 하면 그저 그대로 자유롭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마음의 자유 천지를 느끼면서 생활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생활에서 인간은 여러 형태의 계명이나 규범에 얽매여 살아간다. 이곳 영계에서 보면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헛되게만 느껴지는지…. 나는 성인이란 호칭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진다. 그냥 그대로 하나님의 자녀란 호칭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이름인가!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나면 무얼 하겠는가. 육신을 위한 풍요는 지상생활을 할 때만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이 계신 이곳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되고 짐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좋은 환경’이란, 물질적 번영과 풍요를 누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부모임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지상에 ‘잠시’ 머무르다 이곳에 온 사람이다. 지상에서 70여 년을 산 내가 잠시라고 표현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를 놓고 보면 그 기간은 정말 잠시일 뿐이다. 잠시 지상을 경유하여 이곳 목적지에 도달한 것 같다. 이처럼 지상생활은 잠시 거쳐 온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지상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부모님으로 모시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천주사적 의미를 지닌 엄청난 행운이다. 이 사실을 대부분의 지상 인간들이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지상인들이여, 여러분은 육신을 가진 자로서 지상의 복된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유교의 사상 속에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라는 가르침은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참부모님과 더불어 영생할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세계, 무형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정된 공간인 지상생활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무형세계가 여러분들을 맞이할 준비가 완료되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황홀하고 화려한 무형세계는 여러분의 궁전이요, 삶의 보금자리이다. 여러분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곳에 와서 여러분의 부모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사실,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계명이 아니며, 구속적인 규범도 덫도 수렁도 아니다. 지상생활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인류도 한 가정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자고 식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날 인류가 그렇게 한다면 아름다운 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지상 인간은 공자보다 훨씬 좋은 환경 속에서 시대적 혜택을 누리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값지고 보람된 지상생활에 감사하면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여러분의 영원한 부모님으로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간곡히 부탁한다. ─ 2001. 2. 7 ─
(4) 본향인과 타락인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지금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창조하시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 인간의 모습은 살아갈 방향도 목적도 그리고 복귀되어야 할 기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사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안식과 풍요만을 추구하며 살아갈 뿐이다.
여러분이 ‘타락’이라는 말을 하는데 ‘타락인’이란 무엇인가. 죄 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왜 타락이란 단어를 사용하는지 궁금할 것이다.흔히 ‘타락’이란 평범한 생활을 하는 인간이 술 마시고 방탕하여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그러한 선입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타락은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간단히 말해 인간이 하나님이 구상하신 본연의 인간의 모습으로 완성하기 전,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원리적 궤도를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우리 인류는 타락의 후손이 되었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온 성인 군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혈통 속에는 한결같이 원죄가 흐르고 있다. 우리 인류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타락의 핏줄과 원죄를 지니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다. 따라서 이 원죄의 청산, 즉 혈통전환의 문제가 인류에게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타락의 혈통을 전환할 수 있으며 원죄를 청산할 수 있을까? 이 일이 불가능하면 인류 구제의 길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의 곁으로 갈 수 없으며, 하나님과 부자(父子) 관계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며, 인간과 하나님의 슬픔의 역사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대 시대마다 섭리적 중심인물을 세우고 죄악 인간을 구원할 섭리를 경륜하여 오신 것이다. 그 기다림의 역사가 6000년 인류 역사였다. 시대 시대마다 중심인물을 보내고 혈통 전환을 준비하였지만 인간들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러한 한날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복귀섭리를 경륜하면서 눈물과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흘러온 수많은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밀쳐버리고 쓸어버리고 싶은 죄악인간을 또 보고 기다리며 성별된 혈통 기반을 찾아 나오셨다. 그리하여 성별된 혈통 위에 중심인물을 세우고 중심인물을 통해 원죄 없는 인간으로 다시 성별하고 혈통을 전환시켜 나온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였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강림 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혈통전환의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된 터전 위에서 예수님을 맞이하여 죄악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경륜되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로써 인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으로 영적인 구원밖에 받지 못했으므로 또 다른 섭리적 중심인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 이후 인류는 재림 메시아를 소망하게 되어 있었다. 그 메시아가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 오랜 세월 동안 혈통을 찾아 분별하고 성별하여 준비한 후 우리 인간의 구세주로 보내신 분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원죄를 청산하고 혈통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통해야만 비로소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닌 원죄를 청산을 하지 않고는 본연의 인간의 자리에 설 수 없다. 인류가 이러한 원죄를 청산하려면 메시아 문선명 선생님을 통하여 중생(重生), 즉 거듭나야 한다. 중생의 방법은 메시아(구세주)를 주례로 삼아 다시 축복(결혼)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원죄를 청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인류에겐 이처럼 원죄 청산의 과정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인류는 하나님 앞으로 직접 나아갈 수 있고 본연의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상 인간에겐 이것이 대단히 이상한 궤변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무형세계에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여기 4대 성인들은 이 진리 앞에 절대순종, 절대복종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결코 궤변이 아닌 진리 중의 진리이니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섣불리 생각하고 한 생애를 마치고 이곳 무형세계에 와서 후회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란다.
새로운 진리는 처음은 궤변으로 들리는 경우가 흔히 있지 않은가. 그럴지라도 진리는 영원한 것이니 지상 인간들은 이것을 명심하고 메시아를 영접할 자세를 가지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 2001. 2. 7 ─
(5) 놀라운 대진리
내가 태어난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상당히 변화했다. 나라마다 대통령이 있고 왕이 있고 총리가 있어서 국민을 잘 인도해 가며 살고 있지만 이것은 외적으로 국민을 잘 다스리고 화합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의 지도자이지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내적 지도자는 아니다. 내가 태어난 시대와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국운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백성은 먹고 자고 육체가 살아가기 위한 오직 그 방향의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외적인 생리현상에 의존하여 살아가게 창조된 것은 아니므로 항상 새 주인을 갈망하는, 내적으로 잠재한 그 무엇을 향해 알게 모르게 기대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태어나서 세상을 깨닫고 알게 된 그 시절은 가난과 싸워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쉽게 말해 당시에는 먹고 자고 배부르면 되었지 윤리 도덕이 중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물주께서는 인간에겐 아주 소중한 것을 주셨다고 깨달았다. 인간에게는 동물에게는 없는 고귀함이란 것이 있었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며 새로운 규범을 만들게 되었고 그 규범은 유교라는 종교적 형태로 발전되었다. 인간에겐 날 때부터 신을 찾으려는 본성이 있고 그 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찾으려는 그 무엇이 있다. 인간은 그 분과 더불어 살고 지도받게 되어 있었는데 그 주인을 찾아내지 못한 채 나는 여러 가지 규범을 인간에게 가르쳐 온 것이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의 힘에 의해 계시한 사실임을 몰랐다.
나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대진리 앞에, 그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살기만 하면 인간은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해 있는 모든 성품 요소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부여해 주신 고귀한 힘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됨으로써 그것이 나타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 그렇게도 힘든 규범의 울타리에서 노력하지 않아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므로 지상의 규범에 얽매이는 노예가 되지 않길 바란다. ─ 2001. 2. 12 ─
(6) 생사화복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사화복(生死禍福)은 누구나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생’과 ‘사’와 ‘화’와 ‘복’의 근원이 문제인 것이다. 어떤 이는 화(禍)를 당해도 아주 긍정적으로 잘 넘기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만복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고민과 걱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생사화복에서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인가. 인간은 태초부터 복을 받을 수도 있고 화를 당할 수도 있게 태어났으니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지상생활이다.
이러한 기로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을 더듬어 보자. 인간이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육신을 잃게 되면 영혼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자는 지극히 드물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지상에서 살았을 때를 생각해본다. 나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은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상생활을 마감한 후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나는 육신이 노쇠하여 지상생활을 끝내고 무형세계로 왔을 때,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리고 왜 나의 차림새가 이처럼 달라졌는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곳의 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열심히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자신의 주변이 정리되지 않아 무척 당황했으며 그렇다고 여기저기 자꾸 물어 볼 처지도 못 되었다. 그것은 사실 나의 체면 때문이었다. 나는 몇 날 몇 주일 동안 길을 계속 걷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상생활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찬란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서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모습처럼 아주 쉽게 어느 곳에도 걸림돌이 없는 평탄대로로 나를 인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라는 곳으로 갈 때마다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문들이 차례차례 척척 열려서 여러 관문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 어느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은 주변 상황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이곳 저곳 돌아보고 있었는데 발에 뭉클한 것이 걸리기에 주춤거리며 멈추게 되었다. 그것은 큰 솜뭉치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뭘까?’ 하고 주우려는 순간 그 솜뭉치는 하늘로 휙 올라가 버렸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그것을 따라 갔는데 참으로 신출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솜뭉치 같은 물체가 사르르 퍼지더니 주변이 마치 안개 속에 싸인 것처럼 변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러한 신출 기묘한 현상 앞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모든 위신과 체면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묻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디며, 그리고 여기는 어느 나라인가? 그리고 나는 70이 넘어서 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이곳에 와 있는지요?”를 묻고 또 물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수없이 물어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나는 답답하고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신이 몽롱하며 혼미 상태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 낯설고 이상한 것뿐인가 궁금하여 미칠 지경이었다. 몇 날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혹시 ‘여기가 죽어서 다시 산다는 곳’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상에서 보기 드문 옷차림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옷매무새를 볼 때 그는 별 어려움이 없이 지내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그에게 “여기가 지상이냐, 죽은 사람이 오는 곳이냐?”고 물어 봤다. 그런데 그 사람 대답이 재미있었다. “당신이 살았소, 죽었소”하고 묻기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따라 오라고 해서 따라가 보았는데 그곳은 참으로 기이한 곳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식당에 빼곡이 앉아 있었고 주인은 없었다.
식당의 곳곳에는 맛있는 식사가 다양하게 호화롭게 차려져 있었다. 어느 한 자리를 정하여 앉으려고 생각하니 의자가 난데없이 나왔다. 그리고 수저를 생각하니 수저가 척척 나타났다. 무엇이든지 생각하자마자 즉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이곳의 여러 가지 신기한 현상이 너무도 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의 여러 차원의 환경을 적응하는데 참으로 많은 날이 걸렸다.
오늘 ‘생사화복’이란 제목을 정한 것은 인간은 지상에 살 때 누구나 예외 없이 갖가지 어려움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화를 때로는 복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편안한 자리에서 자기의 인격과 수양과 덕을 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에 있어서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며, 그 어려움을 극복할 때 참다운 인격과 덕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감당할 수 없는 화가 올 때 원인 모를 복이 올 때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노력하라. 이러한 가운데서 인간은 완성되는 것이다. 화(禍)가 왔을 때 비굴해지지 말고 복(福)이 왔을 때 그것을 겸손하게 받고 혼자 누리지 말라. 이것이 지상 삶의 열매가 될 것이다.인간이 추수기에 이러한 열매를 가지고 들어오는 곳이 바로 무형세계인 것이다. 내가 무형세계에 들어와서도 공자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지상생활에서 무형세계의 삶을 준비하지 않고 살았던 탓이요, 무형세계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못했던 탓이다.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그의 내세가 있다. 따라서 생사화복의 근원지는 무형세계이므로 지상생활을 할 때 생사화복을 잘 다스리고 잘 받아들여라.그리하여 영원한 처소에 들어 올 때 모든 관문에서 쉽게 통과하길 바란다.
나는 인생을 비굴하게 보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내세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이며, 내세의 삶을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 깊이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지상의 여러분들은 내세가 분명히 있음을 명심하고 영원한 이곳 무형세계에서 나처럼 헤매지 않길 바란다.
─ 2001. 2. 13 ─
(7) 천국이란 곳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이란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천국은 누가 만든 곳이며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지상에서 생활할 때 잘 살면 천국 간다는 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없었지만, ‘천국 같은 곳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나의 마음속에서 항상 메아리치고 있었다. 나의 생활 가운데 잘못 살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은 가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와 지시가 항상 들려 왔다. 그때 나는 신을 섬겼던 경험도 없고 신에 대한 일말의 추앙 의식도 없었다. 그런데 마음의 소리 마음의 지시가 나를 마음대로 살도록 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인간에겐 태어날 때부터 신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부여받았다. 그것이 소중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던 전혀 믿지 않던 하나님으로부터 본성을 공평하게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받은 달란트이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인간을 창조하셨던 조물주 곧 창조주께서는 빈부의 차이도 학벌의 차이도 인종의 차별도 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골고루 나눠주신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그 본성에 따라 살도록 창조해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삶의 환경에 따라 그의 창조주가 부여한 고귀한 본성을 흐리게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인간 내면의 근저에 깔린 본성은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 마치 순금이 불 속에서 이글이글 타더라도 꺼내 보면 그 원색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창조주가 주신 인간의 본연의 색깔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본성은 천국의 기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의 소리, 본성의 지시, 본성의 방향을 따라 지상에서 살다가 본성의 종착지, 즉 본향인 천국으로 오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상인은 육신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생활에서도 내면에서 들려 오는 본성적 마음의 소리와 메아리 때문에, 즉 육신의 족쇄가 되어 어찌할 수 없어 발버둥을 치면서도 죄짓지 않고 살려는 메아리의 호통 때문에 좀더 선하게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인간에게 이것마저 없다면 지상 생활은 지금보다 더 사악하고 무서운 지옥의 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의 본성이 엄연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그것은 육체의 안일보다 내세의 영혼의 안위를 위하여 연단하고 덕을 쌓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을 통해 천국의 기지에 안착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릇된 혈통을 전수받아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떨어질 수 없는 모질고 끈끈한 정을 지니고 있다. 그 근본적 속성이 본성의 소리요 본성의 지시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나를 떠날지라도 함부로 살지 말라. 죄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근본 속성과 창조의 본성은 불변이다. 우리 인간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의 본성마저 변하고 하나님의 속성마저 사라져 버렸다면 우리 인간은 영원한 천국 기지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천국이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천국이란 글자 그대로 하늘나라이다. 이곳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속성과 본성을 그대로 누려 가며 하나님의 지시와 방향과 말씀에 따라 살아가게 되어 있는 곳이다. 마음의 소리에 따라 살면 마음의 평화를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 그것은 오직 위하여 살고자 하는 정신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항상 평화와 행복이 깃드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며, 자기의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은 천국과 먼 거리에 머물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서 자기를 해방해야 하며 하나님의 본성으로 이기적 욕망을 주관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부여하신 본성을 잘 가꾸고 다듬어서 본향 땅 천국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지상의 여러분은 본성에 따른 삶을 영위한 후, 이곳 하나님의 동산에서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뜻, 창조주의 뜻을 저버리는 지상인이 한 사람도 없길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나의 간절한 부탁이다. ─ 2001. 2. 14 ─
(8) 구원이란
구원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구해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때 흔히 ‘구해 달라, 도와 달라’고 할 것이다. 구원이란 종교인과 비 종교인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왜 구원이란 명사가 생겨났을까? 나는 지상 삶을 살 때 신앙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원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인간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항상 부족한 상태, 무언가 가득 채워지지 않은 부족한 상태, 불완전한 상태, 즉 미완성의 존재임을 항상 느끼고 살아간다. 인간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보다 완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항상 자리잡고 있으며, 자신의 생활 가운데 어떤 일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한정되고 미성숙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완전한 가치적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항상 추구하며 기대하며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욕망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항상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렵고 힘들 때 “자신을 도와 달라”는 요망 사항으로서의 구원의 의미를 떠나서 생각해 보자. 인간에 있어서 자기에겐 더 이상 채워질 것이 없을 만큼 어떤 것이 가득 차 있으니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 아무리 가득 차 있을지라도 우리 인간은 더 바라고 열망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살아간다. 그러나 외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위기에 직면하면 항상 자신의 한정된 모습 외에 어떤 다른 존재에 의존하고 추앙하려는 본성이 있다. 왜 인간은 자기 홀로 살지 못하고 어떤 다른 존재에 의존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본성을 기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왜 인간의 모습(마음)을 이렇게 창조하셨을까?’라는 의문도 여러분에게 생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입원 환자는 입원해 있을 동안 의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병이 완치되어 퇴원한 후에는 의사의 도움이 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겐 구원이란 용어가 왜 필요한 것인가. 이것이 문제의 요인이다. 인간은 어떤 도움이 필요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현실적 인간의 속성을 분석해 보면 거기에는 구원의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그것이 절대자를 찾는 추구욕이다. 그러나 절대자를 추구하는 본성을 모든 인간이 한결같이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는가. 그것은 인간 조상이 창조된 이후 성장과정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권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의 후손은 인간 조상의 근본적인 죄를 청산하기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 앞으로 직접 나설 수 없는 죄인이 되어 버렸다. 인간 조상의 근본적인 죄는 혈통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조건은 인간 스스로 세울 순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특정한 인물이 나타나서 인간 조상의 근본적인 죄를 청산해야 한다. 하나님이 여러 세대를 통해 인간의 혈통을 분별하여 특정한 인물을 선택하신다. 특정한 인물의 선정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 권한이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히 선정된 인물은 인간 조상의 타락한 상태를 본연의 상태로 다시 돌려놓기 위한 여러 가지 탕감 조건을 세워야 한다. 그 후 그분은 하나님 앞에 원죄가 없었던 인간 조상 아담의 입장에 서서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을 세운다.
그리하여 그분은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하나님을 천주의 왕으로 즉위케 하여 하나님을 인류의 영원한 부모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 따라서 세계 인류는 하나님을 모신 가운데 하나님의 주례에 의한 결혼식(축복식)을 올릴 때 비로소 영원한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수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조상의 타락에 의해서 더렵혀진 거짓 혈통은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수될 때 인류가 구원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축복을 통한 인류 구원이다. 그러면 이처럼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이 정하신 특정한 인물은 누구인가.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님이시며, 그분은 인간의 메시아, 구세주, 재림주이시다.
─ 2001. 2. 16 ─
(9) 메시아와 구세주
메시아와 구세주란 용어는 현대인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익숙한 말이다. 지상생활을 하는 인간은 항상 완성의 모습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나은 지도자가 없이는 전진도 발전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발전은 인간의 외적 모습의 발전보다는 내적 모습의 발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적 발전의 기준은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 완성의 기준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인간 창조이상의 완성을 의미한다.
주지한 바와 같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의 기준은 죄 없는 본래의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우리 자신의 현실적 모습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나는 죄 짓지 않고 살았으며 항상 의롭게 살았다. 나의 부모는 일생 동안 정성을 들이며 남을 위해 헌신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나는 그러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는데 왜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인간의 억울한 사정이지만 인간의 공통적인 현실이다. 이것은 어떤 한 개인의 죄가 아닌 인간 조상의 혈통의 죄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 조상 아담 해와의 혈통적 죄이기 때문에 그의 후손은 억울하게도 원죄를 가진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부분은 통일교회의 원리강론의 타락론 ‘죄의 뿌리’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참고하길 바란다. 인류의 직계 조상 아담 해와가 지은 죄는 당연히 그의 후손이 그 죄를 혈통적으로 탕감해야 한다. 그러면 잘못된 혈통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간에겐 돌파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천년 역사가 흘러오면서 인류는 죄악의 씨앗을 청산하지 못한 채 죄악의 혈통만을 계속 번식한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지상에 즐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현실을 보고만 계셨던가. 수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은 무얼 하시고 계셨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올 때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중심인물을 세우고 그 중심인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이상 세계의 꿈을 펼치려고 복귀섭리를 경륜해 오셨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을 계속 불신함으로써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 대부분의 복귀섭리의 인물들도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세월이 흘러 온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초개같은 죽음의 길에 이를 때마다 긴 한숨과 슬픔의 세월을 참아오셨다. 인류가 사랑하는 자녀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라고 부를 수도 없는 현실을 맞이했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계속 죄악의 씨앗들이 나날이 번식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현실적인 죄악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창조 본연의 이상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할지라도 변할 수 없는 것이므로 새로운 중심인물을 세우며 새로운 섭리를 경륜하여 오신 것이다. 그리고 죄악 역사는 반드시 종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에게 하나님과 구세주 메시아의 존재가 절대 필요하다. 이러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류는 머리 속에서 무의식중에 구세주와 메시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제 구세주와 메시아는 인류의 보편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죄악 역사를 종결짓고 인류를 죄악의 혈통에서 원죄 없는 모습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대의 메시아, 구세주인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이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이곳 영계, 지상인이 볼 수 없는 무형세계에서 예수님, 석가님, 무하마드님, 소크라테스님 등과 함께 매일 매일 세미나를 하며 문선명 선생께서 밝히신 원리강론을 가지고 면밀하고 세밀하게 정독하며 때로는 다독, 음독, 속독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통일원리를 통해 엄청난 천비(天秘)의 사실을 공부하고 감탄하면서 이러한 진리를 밝혀주신 하나님과 문선명 선생님께 한결같이 감사하고 있다. 지상인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원죄를 청산하고 구세주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유교도들이여! 통일원리를 정독해 보라. 그리고 이밖에도 문선명 선생께서 밝혀 놓은 여러 차원의 말씀집과 관련 서적들도 많이 있으니 그것들을 연구해 보라. 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 모두 다 통일원리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통일원리에는 유교인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유교도 여러분은 그런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놓고 두문불출하며 연구해 보라. 문선명 선생님은 누구인가. 그렇지 않고 흘러가는 짤막한 세월을 기다리다 보면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후회가 여러분을 에워싸고 말 것이다.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이 원리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다. 고루한 신앙의 구각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책임져 줄 수 없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 한 분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수많은 종단과 종파를 만들지 않았다. 인류는 한결같이 모두 동일한 혈통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흑인종도 백인종도 황인종도 하나님의 한 혈족이요, 기독교 천주교 유교 회회교 기타 등등도 하나님의 한 종단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의 혈족과 하나의 종단으로서 하나님을 인류의 부모로 모시고 한울타리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구세주인 문선명 선생님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범세계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주례자로 모신 가운데 축복식,즉 결혼식을 경륜하는 것이다. 지상인 여러분은 아름다운 축복 대열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그 주인공이 되어 원죄 없는 자녀의 위상을 확보하여 하나님의 이상향에 골인하길 간절히 바란다. ─ 2001. 2.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