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메시지와 4대성인 영계세미나
제1장 천상의 비밀과 영계에서 보낸 공자의 메시지
1. 천상의 비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모두 이성(二性)으로 창조하셨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인간 아담을 창조하시고 독처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그의 대상인 해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이성성상으로 계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도록 지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 가운데 홀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 자녀를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고 귀한 자리에 세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천사들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인간을 보호토록 하고 귀하게 모시도록 했다. 인간을 천지 만물 중에 가장 으뜸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천사들은 인간의 주변에서 떨어질 수 없는 인간의 울타리가 되어 인간과 더불어 살게 하셨다. 온 천지 만물은 하나님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모습을 닮아 쌍쌍(雙雙)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성 천사의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이것은 우리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의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선 아담을 창조하신 후 해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모든 천사들이 남성이라면 남성 천사를 창조하신 후 여성 천사를 또 창조하셨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하나님께선 원래 천사를 인간이 부리는 심부름 격위(格位)로 세웠다. 남성 천사를 창조하셨지만 여성 천사는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창조된 천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직 상대를 이루지 않았는데 천사세계에서 먼저 상대를 이루어 살게 되면, 인간을 보호하는 정서와 정성이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자녀,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이 사위기대를 이루어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완성하기도 전에 천사 즉, 부리는 심부름꾼에게 먼저 대상을 맺어 살게 하시겠는가. 단적으로 말해 남성 천사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천사는 항상 남성의 모습으로 홀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인간의 상대 결정이 끝날 때, 즉 하나님께서 바라는 인간 성숙의 기준이 결정될 때, 인간의 축복식 이후에 천사도 대상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 그렇다면 그때가 언제이며, 남성 천사의 대상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오늘날까지 죄인 아닌 죄인의 모습으로 지내셨으며, 창조주이시지만 창조주로서의 빛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하셨고, 빛의 대왕이시지만 그 광채를 마음껏 발휘하시지 못한 채, 당신 자신을 스스로 가리우고 흑암 가운데서 참아 오셨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해방의 한날이 오기 전까지는 마음의 평화를 당신 스스로 나타내실 수 없었고 온전한 빛을 발휘하실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해방의 한날은 누시엘의 멸망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인 왕의 자리에 등극하셔야 비로소 맞이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누시엘이 그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도 왕의 자리에 등극하셨다. 그것이 2001년 1월 13일 하나님 왕권 즉위식이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천주의 최정상인 고귀한 자리에 등극하셨다.
이제 모든 인류는 진정한 새 시대를 맞이한 것이요, 참으로 고귀한 주인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에 있어서 지난 1월 13일과 그 이후의 모습은 눈에 현저하게 보일 만큼 새로운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전혀 다른 것이다. 그 이후의 인류의 모습은 역사적인 모든 죄악의 울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해방된 그 자체이다. 대부분의 지상인은 이러한 천주사적인 의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엄청난 천주의 개벽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조차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죄악의 세대는 우리 인류로부터 완전히 물러갔다. 이 엄청난 흑암의 역사를 지상에 계시는 문선명 선생님(천지부모님)이 청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긴 인류역사의 뒤안길에서 해방의 한 날, 문선명 선생께서 하신 이 한 날을 기다려 오셨던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왕위로 등극케 하신 일이나 하나님을 흑암의 역사에서 해방케 하신 일에 대해서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역사의 배후에 이처럼 엄청난 하늘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메시아 외에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 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여러분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지상인들이여! 그것이 다만 공상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기쁜 날이겠는가. 하물며 공상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라 할진대 이 어찌 큰 기쁨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종말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떨어지고, 불로 심판한다는 것 등등은 우리 인류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새 시대란 하나님께서 온전히 해방권을 맞이하는 시대를 말하며, 한편 그것은 우리 인류에 있어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선물인 것이다. 새 시대란 하나님을 우리 인류의 참부모로 모시고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시대요, 하나님 본연의 창조이상 세계가 시작되는 시대이다. 우리 인류에게 이보다 더 기쁜 날이 어디 있겠는가. 2001년 1월 13일은 인류를 대표하여 메시아가 비로소 하나님을 인류의 참부모의 자리에 모신 날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하나님은 기나긴 섭리역사를 경륜해 오시는 가운데 기쁜 날이나 슬픈 날이나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과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해 온 천사들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후하게 대접하시면서 천사 본연의 모습을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남성 천사의 대상은 누구일까?
인간은 천사를 부리게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천사는 인간의 주관의 대상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천사를 부리는 영으로 창조하셨기에 남성 천사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어 주게 되어 있다. 이제 하나님의 해방과 함께 하나님께서 왕위로 등극하셨으니 천사의 축복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수많은 천사들은 지상의 참부모님께서 경륜하시는 섭리와 함께 그 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상들도 지상에서 온 수많은 영인들과 함께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영인들 중에는 선한 영인들도 있고 악한 영인들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천사 세계에도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축복식은 지상의 섭리에 맞춰 참부모님께서 경륜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모든 결정은 참부모님 문선명 선생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온 인류는 누시엘이 뿌려 놓은 죄악의 씨앗을 청산하는 인류의 메시아의 섭리에 따라 악한 핏줄을 정리하여 ‘새 시대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성경 구절을 이루는 성약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는 이러한 성약시대의 의미를 깊이 명심하여 신구약의 여러 가지 문맥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고 여러분 자신의 생애에서 삶의 방향을 바로잡기 바란다. 지금은 성약시대다. 이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여러분 자신의 위상을 확인해 보라. 영원한 세계는 여러분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지상의 삶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라. ─ 2001, 2. 2 ─
2. 영계에서 보낸 공자의 메시지
(1) 인간의 흥망성쇠
인간이 지상에서 한 세상을 살다가 유명을 달리하면 지상의 삶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난 세월로 흘러가 버린다. 지상에 살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구차하게 살았는지, 행복하게 살았는지, 그 모습들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살았던지 그의 한 세대는 지나간 삶에 불과할 뿐이다.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모든 것은 그 개인과 결코 상관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고 천지 만물 조화와 인간과는 뗄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하고 고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공자)도 지상에서 한 세상을 살았던 순간 순간마다 생활 주변의 모든 존재들에게 적지 않은 신세를 지고 살아왔던 것 같다.
인간은 엄마의 뱃속에서 오직 홀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태어난 이후부터 남의 힘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왜 자기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온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흔히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은 채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상에는 이처럼 맥 놓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공자)를 소위 ‘성인’으로 불러주고 있다. 나는 지상생활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특히 인간의 윤리 도덕에 대한 문제에 심혈을 기울여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무력하고 한정적 존재임을 깨달았다. 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뻗칠 수 없는 여러 차원의 한계들이 많이 있었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실지로 체휼하여 보았다.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그러했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공자도 수 천년 전 지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곳, 육신을 가진 자는 살 수 없는 무형세계에서 나는 그렇게도 갈망해 오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후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체험했다. 그때 나의 심경은 지상에서 성인이란 칭호를 받았던 것이 너무도 송구스럽게 느껴져서 나의 정체를 깡그리 숨기고 싶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흥망성쇠의 주인이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상 생활에서 수많은 규범을 지키면서 규범이란 울타리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살았다. 말하자면 그러한 울타리에 묶이어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나에겐 더 이상 갈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 만난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셨다. 지상 생활에서 그렇게도 나 자신을 묶어 두었던 규범도 이곳 영계의 하나님 곁에서는 필요치 않았고, 그러한 울타리도 필요치 않았다. 어떤 한계도 느낄 수도 없었고,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의 작용처럼 그냥 스스로 그냥 그 대로 일정한 법도에 따라 자유롭고 화평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했다. 사실, 나는 지상에서 생활할 때 수많은 규범 속에서 갇혀 살았으며, 그리고 성인이란 이름으로 인간들을 철창 없는 감옥 같은 울타리에 가두어 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근본 속성을 알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에겐 그렇게 엄격한 규범도 무서운 울타리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방법을 나에게 한번도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곁에만 가면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것은 자연히 법도에 맞게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진리는 육신을 가진 지상 인간들에겐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설명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 공자는 이러한 진리의 내용을 지상 인간에게 전할 수밖에 없다. 성인이란 칭호를 가지고 있는 공자이지만 무형세계에서 발견한 새로운 대진리 앞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누구일까? 이처럼 엄청난 대진리를 지닌 하나님 앞에 인간의 모습은 다만 무력하고 나약할 뿐이리라. 그러나 알아야 한다.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요, 창조주요, 특히 인간 앞에는 부모이심을 알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부모인 하나님을 모르고서야 어찌 대 진리를 깨닫게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요 부모인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부모인 하나님을 시봉 하는 그 순간부터 마음의 자유함을 얻을 것이며, 지루하고 답답한 규범의 테두리에서 해방될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명적이고 최종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똑똑히 아는 것일 것이다. ─ 2001. 2. 3 ─
(2) 하나님과 인간
내가 지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 때 어느 것 하나도 섣불리 대수롭게 넘긴 것이 없었다. 매사를 순리적이며 조직적으로 치리(治理)하며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우고 생활했다. 그러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나 자신을 가꾸고 다스리고 점검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획했던 일은 반드시 성취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뒤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과 덕망을 계발하기 위하여 항상 나 자신을 엄격하게 치리하는데 치중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성인의 반열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곳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나의 지상 생활을 스스로 돌이켜 볼 때 허탈하고 허무하기 그지없다. 우리 인간이 지상에 살 때 하나님을 잘 알고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다가 이곳 무형세계로 왔다면, 하나님 앞에 떳떳한 자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며, 부자의 관계에 조금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신을 가지고 생활할 때 눈에 보이는 주위의 물질 세계와 현실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기 때문에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의 부모님으로 모시지 못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보살피는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간다. 인간의 육신은 생명 작용이 중단되면 물질로 환원되고 만다. 그러나 육신을 에워싸고 있는 영혼은 영원한 세계에서 영원히 생활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육신보다 우리의 영혼을 더 빨리 서둘러 치료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자신의 영혼의 생활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경시해 왔다.
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성인이라고 불렀던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신 적이 있었다. “공자는 지상에 육신을 가지고 살았을 때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시며 살았느냐?” 그리고 연이어 “하나님이 공자라면 성인이란 호칭은 사양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인간에게 바른 교육을 가르치고 살았다 할지라도 우주의 근본적 원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소개하고 말았다. 하나님과 인간의 분명한 관계를 밝힌 후,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고 살아야 하는 규범을 바르게 가르쳐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모른 채 인간과 인간의 규범에만 치중했던 것이다. 한 가정에서 장남이 그의 동생들에게 갖가지 생활 방식과 생활 예절을 잘 가르치고, 그들을 미래의 훌륭한 인격과 덕성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할지라도 그들의 부모를 뒷방에 모셔 놓고 그들에게 부모를 섬기는 예절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라. 이 때 그 장남은 그의 부모님 앞에 분명히 효자의 칭호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장남이 아니라 거짓 부모 노릇을 한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니, 이것은 그의 부모님 앞에 대단히 큰 불효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상의 여러분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이며,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사고방식은 하나님 앞에 대단한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며, 하나님 마음을 지극히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며, 인간의 창조주이며, 인간의 부모이시다.
그러면 인간은 뭐냐? ‘나’라는 존재는 뭐냐? ‘나’라는 개체는 하나님 앞에 지음받은 자녀의 자리에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부자(父子)의 관계’이다. 부자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이고 천륜적인 관계이다. 여러분의 지상생활에 있어서도 여러분의 부모가 잘생겼든 못생겼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학식이 많든 적든, 그 분을 여러분의 부모로 모시는 것이 보편화된 현상이 아닌가. 부모를 섬기는 일은 아무리 귀찮고 힘들지라도 그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며, 자녀는 그의 부모를 부모의 자리에 세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상 인간의 보편적인 생활양식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육신 부모의 모심의 생활도 그러하거늘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며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일에 있어서야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지상 생활을 할 때 부자유친(父子有親)이나 군신유의(君臣有義) 등은 가르쳤지만 하나님과 인간의 부자(父子)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못한 것 같다. 인류가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시는 일을 어렵고 힘들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어떤 윤리 도덕 규범보다도 우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규범이요 덕목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원하신 부모님,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을 우리의 생활 가운데 모시고 살아야 한다. 겨울이 오면 따뜻한 곳에, 여름이 오면 시원한 곳에, 봄이 오면 파릇파릇한 새싹 위에, 그리고 가을이 오면 오곡이 무르익는 들판 위에 풍요롭고 행복하게 우리들의 부모이신 하나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셔야겠다는 굳건한 각오가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성약시대의 진정한 성약인이다. 여러분은 이처럼 지상에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면 영원한 무형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내 자식아, 이제 왔느냐?”하고 반갑게 맞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이시요,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상생활에서 하나님 앞에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음을 고백하면서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이 메시지를 지상에 보낸다. ─ 2001. 2. 4 ─
(3) 공자보다 나은 지상인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시기를 잘 타고나야 하는데 이것은 인생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는 나를 낳기 위하여 정성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극한 정성을 들였지만 나는 세상에 태어날 때 가문의 혜택도 나라의 혜택도 받기 힘든 환경에서 태어났었다. 나의 부친은 나를 낳고 내가 온전히 성장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는가 하면, 나의 모친은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너무도 가난하여 무척 힘든 생활을 하였다. 여기에서 내가 가문의 이야기와 당시 ‘노(魯)’나라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상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지상생활을 할 당시의 가정적 배경과 시대적 환경이 오늘의 공자로 인도한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시대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나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그리고 깊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심으로써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게 되었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간의 근본적인 생활을 철저하게 고수했다. 그리하여 불의에 비굴하지 않고 불의에 대응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르고, 천리의 이치에 맞는 규범을 확립하고, 그것에 따라 살기 위해 적지 않게 수양을 했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근본적 삶 자체의 방향을 확실하게 몰랐기 때문에 조그마한 규범 속에 인간을 가둬 놓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였던 것 같다. 지금 여러분이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 공동체가 있고 여러 형태의 종단이 많이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어떤 것을 해서는 안 되고 어떤 것을 해야 된다’는 계명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계명들이 인간의 생활을 꽁꽁 묶어 버린 것 같다. 이러한 대부분의 계명들은 하나님이나 다른 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인간의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한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세계에는 그렇게 무섭고 고루한 계명이 필요치 않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그러한 수렁이나 덫과 같은 계명으로 인간을 묶어 두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오직 하나님 품속에서 동거동락(同居同樂)의 생활을 하기만 하면 그저 그대로 자유롭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마음의 자유 천지를 느끼면서 생활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생활에서 인간은 여러 형태의 계명이나 규범에 얽매여 살아간다. 이곳 영계에서 보면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헛되게만 느껴지는지…. 나는 성인이란 호칭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진다. 그냥 그대로 하나님의 자녀란 호칭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이름인가!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나면 무얼 하겠는가. 육신을 위한 풍요는 지상생활을 할 때만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이 계신 이곳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되고 짐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좋은 환경’이란, 물질적 번영과 풍요를 누리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부모임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지상에 ‘잠시’ 머무르다 이곳에 온 사람이다. 지상에서 70여 년을 산 내가 잠시라고 표현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를 놓고 보면 그 기간은 정말 잠시일 뿐이다. 잠시 지상을 경유하여 이곳 목적지에 도달한 것 같다. 이처럼 지상생활은 잠시 거쳐 온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지상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부모님으로 모시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천주사적 의미를 지닌 엄청난 행운이다. 이 사실을 대부분의 지상 인간들이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지상인들이여, 여러분은 육신을 가진 자로서 지상의 복된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 유교의 사상 속에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라는 가르침은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참부모님과 더불어 영생할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세계, 무형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정된 공간인 지상생활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무형세계가 여러분들을 맞이할 준비가 완료되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황홀하고 화려한 무형세계는 여러분의 궁전이요, 삶의 보금자리이다. 여러분 모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곳에 와서 여러분의 부모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사실,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계명이 아니며, 구속적인 규범도 덫도 수렁도 아니다. 지상생활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인류도 한 가정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자고 식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날 인류가 그렇게 한다면 아름다운 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지상 인간은 공자보다 훨씬 좋은 환경 속에서 시대적 혜택을 누리며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값지고 보람된 지상생활에 감사하면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여러분의 영원한 부모님으로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간곡히 부탁한다. ─ 2001. 2. 7 ─
(4) 본향인과 타락인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지금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창조하시지 않으셨다. 지금 우리 인간의 모습은 살아갈 방향도 목적도 그리고 복귀되어야 할 기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사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안식과 풍요만을 추구하며 살아갈 뿐이다.
여러분이 ‘타락’이라는 말을 하는데 ‘타락인’이란 무엇인가. 죄 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왜 타락이란 단어를 사용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흔히 ‘타락’이란 평범한 생활을 하는 인간이 술 마시고 방탕하여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그러한 선입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타락은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간단히 말해 인간이 하나님이 구상하신 본연의 인간의 모습으로 완성하기 전,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원리적 궤도를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우리 인류는 타락의 후손이 되었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온 성인 군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혈통 속에는 한결같이 원죄가 흐르고 있다. 우리 인류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타락의 핏줄과 원죄를 지니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다. 따라서 이 원죄의 청산, 즉 혈통전환의 문제가 인류에게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타락의 혈통을 전환할 수 있으며 원죄를 청산할 수 있을까? 이 일이 불가능하면 인류 구제의 길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의 곁으로 갈 수 없으며, 하나님과 부자(父子) 관계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며, 인간과 하나님의 슬픔의 역사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대 시대마다 섭리적 중심인물을 세우고 죄악 인간을 구원할 섭리를 경륜하여 오신 것이다. 그 기다림의 역사가 6000년 인류 역사였다. 시대 시대마다 중심인물을 보내고 혈통 전환을 준비하였지만 인간들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러한 한날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복귀섭리를 경륜하면서 눈물과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 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흘러온 수많은 역사 가운데 하나님은 밀쳐버리고 쓸어버리고 싶은 죄악인간을 또 보고 기다리며 성별된 혈통 기반을 찾아 나오셨다. 그리하여 성별된 혈통 위에 중심인물을 세우고 중심인물을 통해 원죄 없는 인간으로 다시 성별하고 혈통을 전환시켜 나온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였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강림 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혈통전환의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된 터전 위에서 예수님을 맞이하여 죄악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경륜되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로써 인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으로 영적인 구원밖에 받지 못했으므로 또 다른 섭리적 중심인물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 이후 인류는 재림 메시아를 소망하게 되어 있었다. 그 메시아가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 오랜 세월 동안 혈통을 찾아 분별하고 성별하여 준비한 후 우리 인간의 구세주로 보내신 분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원죄를 청산하고 혈통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통해야만 비로소 본연의 인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닌 원죄를 청산을 하지 않고는 본연의 인간의 자리에 설 수 없다. 인류가 이러한 원죄를 청산하려면 메시아 문선명 선생님을 통하여 중생(重生), 즉 거듭나야 한다. 중생의 방법은 메시아(구세주)를 주례로 삼아 다시 축복(결혼)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원죄를 청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인류에겐 이처럼 원죄 청산의 과정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인류는 하나님 앞으로 직접 나아갈 수 있고 본연의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상 인간에겐 이것이 대단히 이상한 궤변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무형세계에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여기 4대 성인들은 이 진리 앞에 절대순종, 절대복종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결코 궤변이 아닌 진리 중의 진리이니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섣불리 생각하고 한 생애를 마치고 이곳 무형세계에 와서 후회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란다.
새로운 진리는 처음은 궤변으로 들리는 경우가 흔히 있지 않은가. 그럴지라도 진리는 영원한 것이니 지상 인간들은 이것을 명심하고 메시아를 영접할 자세를 가지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 2001. 2. 7 ─
(5) 놀라운 대진리
내가 태어난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상당히 변화했다. 나라마다 대통령이 있고 왕이 있고 총리가 있어서 국민을 잘 인도해 가며 살고 있지만 이것은 외적으로 국민을 잘 다스리고 화합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의 지도자이지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내적 지도자는 아니다. 내가 태어난 시대와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국운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백성은 먹고 자고 육체가 살아가기 위한 오직 그 방향의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외적인 생리현상에 의존하여 살아가게 창조된 것은 아니므로 항상 새 주인을 갈망하는, 내적으로 잠재한 그 무엇을 향해 알게 모르게 기대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태어나서 세상을 깨닫고 알게 된 그 시절은 가난과 싸워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쉽게 말해 당시에는 먹고 자고 배부르면 되었지 윤리 도덕이 중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물주께서는 인간에겐 아주 소중한 것을 주셨다고 깨달았다. 인간에게는 동물에게는 없는 고귀함이란 것이 있었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며 새로운 규범을 만들게 되었고 그 규범은 유교라는 종교적 형태로 발전되었다. 인간에겐 날 때부터 신을 찾으려는 본성이 있고 그 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찾으려는 그 무엇이 있다. 인간은 그 분과 더불어 살고 지도받게 되어 있었는데 그 주인을 찾아내지 못한 채 나는 여러 가지 규범을 인간에게 가르쳐 온 것이다. 나는 그것이 누군가의 힘에 의해 계시한 사실임을 몰랐다.
나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대진리 앞에, 그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살기만 하면 인간은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해 있는 모든 성품 요소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부여해 주신 고귀한 힘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됨으로써 그것이 나타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 그렇게도 힘든 규범의 울타리에서 노력하지 않아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으므로 지상의 규범에 얽매이는 노예가 되지 않길 바란다. ─ 2001. 2. 12 ─
(6) 생사화복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사화복(生死禍福)은 누구나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생’과 ‘사’와 ‘화’와 ‘복’의 근원이 문제인 것이다. 어떤 이는 화(禍)를 당해도 아주 긍정적으로 잘 넘기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만복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고민과 걱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생사화복에서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인가. 인간은 태초부터 복을 받을 수도 있고 화를 당할 수도 있게 태어났으니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지상생활이다.
이러한 기로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을 더듬어 보자. 인간이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육신을 잃게 되면 영혼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자는 지극히 드물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지상에서 살았을 때를 생각해본다. 나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은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상생활을 마감한 후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나는 육신이 노쇠하여 지상생활을 끝내고 무형세계로 왔을 때,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리고 왜 나의 차림새가 이처럼 달라졌는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곳의 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열심히 활동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자신의 주변이 정리되지 않아 무척 당황했으며 그렇다고 여기저기 자꾸 물어 볼 처지도 못 되었다. 그것은 사실 나의 체면 때문이었다. 나는 몇 날 몇 주일 동안 길을 계속 걷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상생활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찬란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서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모습처럼 아주 쉽게 어느 곳에도 걸림돌이 없는 평탄대로로 나를 인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라는 곳으로 갈 때마다 순식간에 자동적으로 문들이 차례차례 척척 열려서 여러 관문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 어느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은 주변 상황에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이곳 저곳 돌아보고 있었는데 발에 뭉클한 것이 걸리기에 주춤거리며 멈추게 되었다. 그것은 큰 솜뭉치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뭘까?’ 하고 주우려는 순간 그 솜뭉치는 하늘로 휙 올라가 버렸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그것을 따라 갔는데 참으로 신출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솜뭉치 같은 물체가 사르르 퍼지더니 주변이 마치 안개 속에 싸인 것처럼 변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러한 신출 기묘한 현상 앞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모든 위신과 체면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묻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디며, 그리고 여기는 어느 나라인가? 그리고 나는 70이 넘어서 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이곳에 와 있는지요?”를 묻고 또 물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수없이 물어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나는 답답하고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신이 몽롱하며 혼미 상태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 낯설고 이상한 것뿐인가 궁금하여 미칠 지경이었다. 몇 날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혹시 ‘여기가 죽어서 다시 산다는 곳’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상에서 보기 드문 옷차림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옷매무새를 볼 때 그는 별 어려움이 없이 지내는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그에게 “여기가 지상이냐, 죽은 사람이 오는 곳이냐?”고 물어 봤다. 그런데 그 사람 대답이 재미있었다. “당신이 살았소, 죽었소”하고 묻기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따라 오라고 해서 따라가 보았는데 그곳은 참으로 기이한 곳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식당에 빼곡이 앉아 있었고 주인은 없었다.
식당의 곳곳에는 맛있는 식사가 다양하게 호화롭게 차려져 있었다. 어느 한 자리를 정하여 앉으려고 생각하니 의자가 난데없이 나왔다. 그리고 수저를 생각하니 수저가 척척 나타났다. 무엇이든지 생각하자마자 즉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이곳의 여러 가지 신기한 현상이 너무도 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의 여러 차원의 환경을 적응하는데 참으로 많은 날이 걸렸다.
오늘 ‘생사화복’이란 제목을 정한 것은 인간은 지상에 살 때 누구나 예외 없이 갖가지 어려움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화를 때로는 복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편안한 자리에서 자기의 인격과 수양과 덕을 쌓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에 있어서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며, 그 어려움을 극복할 때 참다운 인격과 덕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감당할 수 없는 화가 올 때 원인 모를 복이 올 때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노력하라. 이러한 가운데서 인간은 완성되는 것이다. 화(禍)가 왔을 때 비굴해지지 말고 복(福)이 왔을 때 그것을 겸손하게 받고 혼자 누리지 말라. 이것이 지상 삶의 열매가 될 것이다. 인간이 추수기에 이러한 열매를 가지고 들어오는 곳이 바로 무형세계인 것이다. 내가 무형세계에 들어와서도 공자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지상생활에서 무형세계의 삶을 준비하지 않고 살았던 탓이요, 무형세계에 대한 지식이 충분치 못했던 탓이다.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그의 내세가 있다. 따라서 생사화복의 근원지는 무형세계이므로 지상생활을 할 때 생사화복을 잘 다스리고 잘 받아들여라. 그리하여 영원한 처소에 들어 올 때 모든 관문에서 쉽게 통과하길 바란다.
나는 인생을 비굴하게 보내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내세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던 것이며, 내세의 삶을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 깊이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지상의 여러분들은 내세가 분명히 있음을 명심하고 영원한 이곳 무형세계에서 나처럼 헤매지 않길 바란다.
─ 2001. 2. 13 ─
(7) 천국이란 곳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이란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천국은 누가 만든 곳이며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지상에서 생활할 때 잘 살면 천국 간다는 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없었지만, ‘천국 같은 곳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나의 마음속에서 항상 메아리치고 있었다. 나의 생활 가운데 잘못 살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은 가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와 지시가 항상 들려 왔다. 그때 나는 신을 섬겼던 경험도 없고 신에 대한 일말의 추앙 의식도 없었다. 그런데 마음의 소리 마음의 지시가 나를 마음대로 살도록 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인간에겐 태어날 때부터 신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부여받았다. 그것이 소중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던 전혀 믿지 않던 하나님으로부터 본성을 공평하게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받은 달란트이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인간을 창조하셨던 조물주 곧 창조주께서는 빈부의 차이도 학벌의 차이도 인종의 차별도 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골고루 나눠주신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그 본성에 따라 살도록 창조해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삶의 환경에 따라 그의 창조주가 부여한 고귀한 본성을 흐리게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인간 내면의 근저에 깔린 본성은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 마치 순금이 불 속에서 이글이글 타더라도 꺼내 보면 그 원색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창조주가 주신 인간의 본연의 색깔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본성은 천국의 기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의 소리, 본성의 지시, 본성의 방향을 따라 지상에서 살다가 본성의 종착지, 즉 본향인 천국으로 오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상인은 육신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생활에서도 내면에서 들려 오는 본성적 마음의 소리와 메아리 때문에, 즉 육신의 족쇄가 되어 어찌할 수 없어 발버둥을 치면서도 죄짓지 않고 살려는 메아리의 호통 때문에 좀더 선하게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 인간에게 이것마저 없다면 지상 생활은 지금보다 더 사악하고 무서운 지옥의 천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인간의 본성이 엄연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그것은 육체의 안일보다 내세의 영혼의 안위를 위하여 연단하고 덕을 쌓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을 통해 천국의 기지에 안착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릇된 혈통을 전수받아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떨어질 수 없는 모질고 끈끈한 정을 지니고 있다. 그 근본적 속성이 본성의 소리요 본성의 지시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나를 떠날지라도 함부로 살지 말라. 죄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근본 속성과 창조의 본성은 불변이다. 우리 인간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의 본성마저 변하고 하나님의 속성마저 사라져 버렸다면 우리 인간은 영원한 천국 기지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천국이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천국이란 글자 그대로 하늘나라이다. 이곳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속성과 본성을 그대로 누려 가며 하나님의 지시와 방향과 말씀에 따라 살아가게 되어 있는 곳이다. 마음의 소리에 따라 살면 마음의 평화를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 그것은 오직 위하여 살고자 하는 정신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나 항상 평화와 행복이 깃드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며, 자기의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은 천국과 먼 거리에 머물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에서 자기를 해방해야 하며 하나님의 본성으로 이기적 욕망을 주관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부여하신 본성을 잘 가꾸고 다듬어서 본향 땅 천국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지상의 여러분은 본성에 따른 삶을 영위한 후, 이곳 하나님의 동산에서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뜻, 창조주의 뜻을 저버리는 지상인이 한 사람도 없길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나의 간절한 부탁이다. ─ 2001. 2. 14 ─
(8) 구원이란
구원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구해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때 흔히 ‘구해 달라, 도와 달라’고 할 것이다. 구원이란 종교인과 비 종교인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왜 구원이란 명사가 생겨났을까? 나는 지상 삶을 살 때 신앙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원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인간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항상 부족한 상태, 무언가 가득 채워지지 않은 부족한 상태, 불완전한 상태, 즉 미완성의 존재임을 항상 느끼고 살아간다. 인간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보다 완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항상 자리잡고 있으며, 자신의 생활 가운데 어떤 일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한정되고 미성숙한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완전한 가치적 존재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을 항상 추구하며 기대하며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욕망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항상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렵고 힘들 때 “자신을 도와 달라”는 요망 사항으로서의 구원의 의미를 떠나서 생각해 보자. 인간에 있어서 자기에겐 더 이상 채워질 것이 없을 만큼 어떤 것이 가득 차 있으니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 아무리 가득 차 있을지라도 우리 인간은 더 바라고 열망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살아간다. 그러나 외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위기에 직면하면 항상 자신의 한정된 모습 외에 어떤 다른 존재에 의존하고 추앙하려는 본성이 있다. 왜 인간은 자기 홀로 살지 못하고 어떤 다른 존재에 의존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본성을 기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왜 인간의 모습(마음)을 이렇게 창조하셨을까?’라는 의문도 여러분에게 생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입원 환자는 입원해 있을 동안 의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병이 완치되어 퇴원한 후에는 의사의 도움이 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겐 구원이란 용어가 왜 필요한 것인가. 이것이 문제의 요인이다. 인간은 어떤 도움이 필요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현실적 인간의 속성을 분석해 보면 거기에는 구원의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그것이 절대자를 찾는 추구욕이다. 그러나 절대자를 추구하는 본성을 모든 인간이 한결같이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는가. 그것은 인간 조상이 창조된 이후 성장과정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권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의 후손은 인간 조상의 근본적인 죄를 청산하기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 앞으로 직접 나설 수 없는 죄인이 되어 버렸다. 인간 조상의 근본적인 죄는 혈통과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조건은 인간 스스로 세울 순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특정한 인물이 나타나서 인간 조상의 근본적인 죄를 청산해야 한다. 하나님이 여러 세대를 통해 인간의 혈통을 분별하여 특정한 인물을 선택하신다. 특정한 인물의 선정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 권한이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히 선정된 인물은 인간 조상의 타락한 상태를 본연의 상태로 다시 돌려놓기 위한 여러 가지 탕감 조건을 세워야 한다. 그 후 그분은 하나님 앞에 원죄가 없었던 인간 조상 아담의 입장에 서서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수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건을 세운다.
그리하여 그분은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하나님을 천주의 왕으로 즉위케 하여 하나님을 인류의 영원한 부모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 따라서 세계 인류는 하나님을 모신 가운데 하나님의 주례에 의한 결혼식(축복식)을 올릴 때 비로소 영원한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수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조상의 타락에 의해서 더렵혀진 거짓 혈통은 하나님의 혈통으로 전수될 때 인류가 구원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축복을 통한 인류 구원이다. 그러면 이처럼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이 정하신 특정한 인물은 누구인가.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님이시며, 그분은 인간의 메시아, 구세주, 재림주이시다.
─ 2001. 2. 16 ─
(9) 메시아와 구세주
메시아와 구세주란 용어는 현대인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익숙한 말이다. 지상생활을 하는 인간은 항상 완성의 모습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나은 지도자가 없이는 전진도 발전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발전은 인간의 외적 모습의 발전보다는 내적 모습의 발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적 발전의 기준은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 완성의 기준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인간 창조이상의 완성을 의미한다.
주지한 바와 같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의 기준은 죄 없는 본래의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우리 자신의 현실적 모습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나는 죄 짓지 않고 살았으며 항상 의롭게 살았다. 나의 부모는 일생 동안 정성을 들이며 남을 위해 헌신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나는 그러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는데 왜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인간의 억울한 사정이지만 인간의 공통적인 현실이다. 이것은 어떤 한 개인의 죄가 아닌 인간 조상의 혈통의 죄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 조상 아담 해와의 혈통적 죄이기 때문에 그의 후손은 억울하게도 원죄를 가진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부분은 통일교회의 원리강론의 타락론 ‘죄의 뿌리’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참고하길 바란다. 인류의 직계 조상 아담 해와가 지은 죄는 당연히 그의 후손이 그 죄를 혈통적으로 탕감해야 한다. 그러면 잘못된 혈통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인간에겐 돌파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천년 역사가 흘러오면서 인류는 죄악의 씨앗을 청산하지 못한 채 죄악의 혈통만을 계속 번식한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지상에 즐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현실을 보고만 계셨던가. 수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은 무얼 하시고 계셨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올 때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중심인물을 세우고 그 중심인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이상 세계의 꿈을 펼치려고 복귀섭리를 경륜해 오셨다. 그러한 가운데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 유대 백성들이 예수님을 계속 불신함으로써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 대부분의 복귀섭리의 인물들도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세월이 흘러 온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초개같은 죽음의 길에 이를 때마다 긴 한숨과 슬픔의 세월을 참아오셨다. 인류가 사랑하는 자녀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라고 부를 수도 없는 현실을 맞이했다. 인류역사를 통해서 계속 죄악의 씨앗들이 나날이 번식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현실적인 죄악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창조 본연의 이상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할지라도 변할 수 없는 것이므로 새로운 중심인물을 세우며 새로운 섭리를 경륜하여 오신 것이다. 그리고 죄악 역사는 반드시 종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에게 하나님과 구세주 메시아의 존재가 절대 필요하다. 이러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인류는 머리 속에서 무의식중에 구세주와 메시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제 구세주와 메시아는 인류의 보편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죄악 역사를 종결짓고 인류를 죄악의 혈통에서 원죄 없는 모습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대의 메시아, 구세주인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이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이곳 영계, 지상인이 볼 수 없는 무형세계에서 예수님, 석가님, 무하마드님, 소크라테스님 등과 함께 매일 매일 세미나를 하며 문선명 선생께서 밝히신 원리강론을 가지고 면밀하고 세밀하게 정독하며 때로는 다독, 음독, 속독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통일원리를 통해 엄청난 천비(天秘)의 사실을 공부하고 감탄하면서 이러한 진리를 밝혀주신 하나님과 문선명 선생님께 한결같이 감사하고 있다. 지상인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원죄를 청산하고 구세주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유교도들이여! 통일원리를 정독해 보라. 그리고 이밖에도 문선명 선생께서 밝혀 놓은 여러 차원의 말씀집과 관련 서적들도 많이 있으니 그것들을 연구해 보라. 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 모두 다 통일원리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통일원리에는 유교인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유교도 여러분은 그런 부분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놓고 두문불출하며 연구해 보라. 문선명 선생님은 누구인가. 그렇지 않고 흘러가는 짤막한 세월을 기다리다 보면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후회가 여러분을 에워싸고 말 것이다. 어찌할 수 없다. 이것이 원리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다. 고루한 신앙의 구각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 누구도 여러분을 책임져 줄 수 없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 한 분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수많은 종단과 종파를 만들지 않았다. 인류는 한결같이 모두 동일한 혈통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흑인종도 백인종도 황인종도 하나님의 한 혈족이요, 기독교 천주교 유교 회회교 기타 등등도 하나님의 한 종단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의 혈족과 하나의 종단으로서 하나님을 인류의 부모로 모시고 한울타리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구세주인 문선명 선생님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범세계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주례자로 모신 가운데 축복식, 즉 결혼식을 경륜하는 것이다. 지상인 여러분은 아름다운 축복 대열의 구경꾼이 되지 말고 그 주인공이 되어 원죄 없는 자녀의 위상을 확보하여 하나님의 이상향에 골인하길 간절히 바란다. ─ 2001. 2. 20 ─
제2장 이상헌 선생의
질의 사항과 공자의 답변
(1) 공자님께서 통일 원리를 들으신 전반적인 소감은?
① 통일원리를 정독하고
② 원리강의를 청강하고
원리 강의를 처음 들었을 때 나의 마음에 변화가 특별히 일어나지 않았으며 권유하는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원리를 청강했다. 그 후 나는 강사들의 열정적이고 진지한 여러 가지의 태도와 매너에 대단히 감동을 받았다. 일단 강의 내용보다 강사의 인격에 믿음과 신뢰가 갔기 때문에 들어보자는 마음의 결단이 내려졌다. 대체로 이상헌 선생과 유효원 선생의 강의를 많이 들었고, 그 이후 얼마 전에 영계에 오신 엄일섭 선생의 강의도 조금 들었다. 그리고 그 외 몇 분의 강의를 더 청강했다.
강의는 창조원리에서부터 나의 마음에 대단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삼라만상의 자연의 이치를 누가 이렇게 조직적으로 체계화시켰을까 하는 생각과 인간 조상의 타락의 문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한 강좌가 끝날 때마다 ○△×표로 마음의 갈등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상하고 오묘한 원리였다.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앞 강의의 질문 사항이 분명히 ○표로 해명되었다. 때로는 이 원리가 무슨 요술쟁이 같은 마력이 있는가 하고 살펴가며 청강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강의 내용은 나의 마음속에 뜨거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메시아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에 있어서는 정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인간의 무지로 말미암아 이토록 섭리역사가 지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제대로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 바로 인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나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했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복귀섭리를 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비통한 심정을 느끼고 하염없이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서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효원 선생의 강의도 듣게 되고 이상헌 선생 강의도 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과 현실 앞에 나는 ‘찌잉’하는 느낌과 함께 나의 뇌리를 내리치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강사님들은 연대별로 여러 섭리적 동시성 시대를 설명했다. 또 이 시대에 한 분이 오셔야 함을 강조했고 우리들에게 스스로 그분을 찾아내기를 바라면서 문답식 강의를 여러 차례 계속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섭리적으로 인간 앞에는 누군가가 찾아와서 인간을 새롭게 구원해 줄 수 있는 한 분이 나타나야 한다는사실에 우리 모두는 다만 놀랐을 뿐이며, ‘그분이 누구일까?’에 대한 질문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대단히 심각하고 두려운 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먼저 입을 여셨다. “그분은 바로 문선명 선생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인류의 메시아요 구세주입니다”라고 조용하고 심각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다음 강의부터 유선생은 자신의 부자연스러운 시절의 지상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지상에서 처음으로 원리 강의를 들은 후 앞으로 오직 문선명 선생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결심했다면서 지상생활에서 골수에 사무친 강의를 했던 시절에 대하여 간증하였으며, 이곳에 와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문선명 선생님 앞에 효도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배고플 때 문선명 선생님도 배고프게 해 드렸고 그가 힘들 때 문선명 선생님도 힘들게 해 드렸는데 이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을 한번도 부모님으로 모시지 못한 채 불효만을 했던 아픔이 이곳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며 무척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에게 한번이라도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한한 영광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분의 강의 시간에는 심각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헌 선생은 강의 도중에 “아버님을 처음 만났을 때, 문선명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하면서 ‘아버님’이라는 칭호와 ‘문선명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바꿔 가면서 아버님에 대해 대단히 미안해했다. 또 “아버님…”하면서 강의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서 눈물과 통곡의 심정이 치밀어올랐다. 이것을 억제하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눈물과 통곡을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목을 놓아 큰 소리를 치며 울고 말았다. 이러한 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강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무척 심각해졌다.
나는 ‘아버님’의 호칭이 몸에 배어 있는 저분들은 지상의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한없이 생겼고, 한편으로 “저토록 사랑하는 지도자를 길러 낸 문선명 선생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하고 무척 궁금했다.
이제, 원리 강의를 처음으로 청강한 나의 전반적인 소감을 한마디로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나도 문선명 선생님을 나의 아버님, 부모님으로 모시겠다는 각오와 함께 통일원리를 깊이 연구 분석하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유선생이나 이선생처럼 골수에 사무치게 아버님을 부르지는 못할지라도 나도 그러한 경지에 이르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늦었다 하더라도 막내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더 받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도 하나님을 천지부모님으로 시봉하는 일에 결코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2) 통일원리 중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통일원리는 세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여러 술어 가운데 일부는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나에겐 매우 신선하고 생경하게 받아들여졌다.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부분은 기록에 남겨 두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라는 사실이며, 특히 복귀섭리를 경륜하여 오신 하나님의 심정이다.
하나님의 창조 본연의 뜻에서 이탈한 인간 때문에 인간과 사회 환경을 복귀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사정이 너무도 가슴아팠다. 성장 과정에서 하나님 곁을 떠난 자녀를 다시 본연의 상태로 복귀하기까지 시대마다 섭리적 중심인물들이 세워졌고 그 중심인물들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의 긴장된 순간이 수천년 동안 흘러왔지만, 하나님의 그 사정을 어느 누구도 몰랐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복귀섭리 가운데 수많은 생명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아갔다는 사실은 나의 가슴을 너무도 메이게 했다. 이러한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죄악의 인간도, 선한 인간도 한결같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러한 자녀를 한없이 기다려 오신 하나님 심정이 오죽하였겠는가. 그리고 천사장의 타락 이후 죄악의 자녀의 번식은 기하 급수로 늘어나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그것을 간섭하지 못하고 보고만 계셨다. 원리의 주인인 하나님이 비원리권으로 떨어진 세계를 간섭하시지 못한 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억울함과 분함과 외로움을 어떻게 억제하며 참아 오셨을까? 그런 하나님의 쓰라림이 나의 가슴을 한없이 저미게 했다.
그러나 이제 인류의 거짓 역사가 종말을 고하는 성약시대가 선포되었고, 천사장도 본연의 위치로 돌아갔고, 복귀섭리의 총지휘관은 오직 하나님이 되셨다. 이제 인류에게는 지난날 그릇된 생활을 총정리하고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아가기 위한 전반적인 생애의 프로그램을 작성할 일만 남아진 것이다.
이제부터 인류 역사는 복귀가 아닌 정도(正道)의 자리, 바른 궤도에 서게 되었다. 지상의 여러분은 정도의 궤도에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아야 한다. 얼마나 좋은 환경을 맞이하고 있는가? 이제 지상의 여러분은 지난날 그릇된 모든 습성을 지워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억울함과 분함과 외로움 속에 한 맺힌 하나님을 우리의 부모로 모시고 기쁘게 해 드리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과 의논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라는 관념이 온전히 젖어 들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유일한 숙원은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요 인류는 그분의 자녀라는부자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자녀와 동거동락하길 원하신다. 자녀들이 밥을 먹을 때 부모도 같이 밥을 먹고, 자녀가 죽을 먹을 때 부모도 함께 죽을 먹으며, 자녀가 아플 때나 슬플 때 부모와 함께 의논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부모와 자녀의 생활이 아닌가.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심정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신다. 심정과 심정이 하나로 연결될 때 그것이 바로 부자의 관계인 것이다. 부모가 가정을 떠나 있을 때 그 부모가 가정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자녀, 자녀가 출근하여 귀가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부모, 이것은 평범한 생활 같지만 이러한 심정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고 소중하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단절된 심정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 된다.
이젠 유교도(儒敎徒) 여러분은 정말 굳건한 결심을 하고 이러한 심정관계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이러한 심정관계가 회복할 수 있다 할지라도 수 천년간 흘러온 죄악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죄악의 인종, 종파, 그리고 천사장의 잔당들이 아직도 우리의 생활 주변에 산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점에 유념해야 한다. 벌래 먹은 화초나 채소는 약을 뿌리고 벌레를 잡아 주고 썩은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가꿔야만 좋은 화초를 볼 수 있고 생생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 이 작업은 우리가 해야 한다. 어떻게할 것인가? 먼저 분명한 근거(원리적 근거)를 가지고 약을 뿌려야 할 부분과 잘라내야 할 부분과 그대로 잘 동여매야 할 부분 등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후 상황에 맞는 올바른 치료법을 사용해야 한다. 여러분은 잡초에 뒤섞여서 잡초의 무리가 되어서도 안되고, 벌레에 물려 다시 죽는 자가 되어서도 안되고, 썩어 가는 부분에 함몰되어 함께 부패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기필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라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모습을 언제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유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지켜 온 여러분의 자세가 아닌가. 지난날 유교의 가르침이 오늘날 참부모 시대, 성약시대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렇게 함으로써 종단도, 인종도, 천사장의 잔당들도 역사의 종말을 고할 것이요, 여러분 각자의 모습 앞에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님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인류의 평화가 실현될 것이요, 하나님의 세계가 실현될 것이다.
지상인들이여, 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유교인들이여, 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유교인들이여,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결의하고 맹세합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앞장서서 “영원한 인류의 부모님, 하나님 만세 만만세” 함성을 드높이 외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님, 하나님은 우리의 어머님, 만세 만세 만세 소리를 힘차게 부르면서 모든 악의 잔당에 대항합시다. 하나님, 나의 메아리를 들어주소서.
─ 2001. 2. 24 ─
(3) 통일 원리 중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통일원리를 전반적으로 볼 때 대체로 어려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접할 때 난해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통일원리를 여러 차례 접하게 될 때 마음의 문이 열리고 의심(흑암)이 줄어들면(물러가면)서 이해가 빨라지고 수학 공식처럼 풀려 나갔다. 통일원리에는 신기한 원리적 힘이 있는 듯하며, 다소 난해한 부분은 있을지라도 문제점은 없는 것 같다.
나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 세계의 주인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탈선하여 위기에 처했을 때 왜 하나님은 좀더 가혹하게 야단치거나 심하게 간섭하여 그것을 막지 못하셨을까? 그랬더라면 인간 조상의 잘못으로 오늘날 인류가 이토록 고생하거나 하나님 마음이 아픈 일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둘째로 ‘메시아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의한 어둠의 3시간이 있었는데, 그 흑암의 3시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한 시간이었다. 천사들이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십자가에 대한 뜻을 이루었다면 재림 예수는 오실 필요가 없었고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셋째로 후편의 동시성 섭리시대를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기이한 동시성의 섭리를 해 오셨다. 왜 하나님은 많은 섭리적 인물들이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뜻을 다 이루지 못하였던 그 길을 다른 인물이 또다시 걷게 하시는가. 나는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시성의 섭리를 경륜하면서 왜 인간의 책임을 종용할지라도 중심인물이 책임을 못할 때 그것을 그냥 두지 말고 강하게 진두 지휘하실 수 없었을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왜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참고 기다려 왔던가 등등의 의문이 생겼다.
이러한 의문은 나 뿐만 아니라 4대 성인 모두에게 공통적인 의문이었다. 어느 날 세미나 시간에 석가님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12제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요?”하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12제자가 나를 메시아로 완전히 100% 믿었다면 그렇게 흩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이적 기사를 보고 갖가지 행적 앞에 따라오다가 그때의 환경으로 볼 때 그들은 나를 인간적인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예수님의 이러한 답변에 나는 하나님의 섭리가 지연된 것은 오직 인간의 잘못인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왜 인간의 생각이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하였는지 답답하고 궁금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완성한 인간의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고 인간이 성장과정을 통해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책임분담을 주셨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미나는 무척 재미있고 진지했다. 수천년 동안 하나님의 섭리가 연장된 근본 요인이 인간에게 있었다는 안타까움을 깨닫게 되었을 때, 육신을 가진 지상 인간이 얼마나 소중한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점은 지상인이 깊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해야 할 인간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자의 관계인데 왜 이러한 관계가 순조롭게 풀려 가지 못하고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복귀섭리의 연장이라는 명사가 생겨났는가.
이 역사의 매듭을 풀 자는 오직 지상 인간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상 인간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못 설정하면 또 다시 하나님 앞에 돌팔매질하는 격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가슴을 또다시 아프게 하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 2001. 2. 25 ─
(4) 재림론에 대한 소감은?
재림론이란 제목 자체가 먼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 인간에게 왜 다시 오셔야 할 주님이 필요했던 것인가. 하나님의 근본 사랑이 바로 참사랑이었다면 타락한 인간의 사랑은 거짓된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참사랑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랑과 거짓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참사랑과 거짓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원죄를 가진 모습으로 태어났다. 아무리 잘 믿는 성도의 자녀라 할지라도 그 후손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닌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인간은 먼저 원죄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원죄 청산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원죄는 거짓 사랑을 중심한 혈통에 의해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원죄의 청산은 참사랑을 중심한 혈통을 통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혈통적인 문제는 인간이 하고 싶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참사랑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정한 인물이 여러 가지의 탕감 조건을 승리한 이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인간의 원죄를 청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특정한 인물이 바로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하나님은 문선명 선생님을 선택하시기까지 혈통적으로 준비하고 예비하셨다. 그리고 문선명 선생님은 재림주님으로 등극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옥고를 치르면서 인류 구원을 위한 새로운 진리를 찾아 헤맸다. 문 선생님은 성경의 신구약 외에 통일원리를 밝혀내시고 성약시대를 개문하셨다.
통일원리 중 원리강론은 성약시대에 복음서요, 우리 인간의 필독서요, 인간의 공식을 알려준 주옥같은 복음의 교과서이다. 누구든지 정독해 보라. 반드시 육신을 가진 지상인이 거쳐야 할 과제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다. 원리강론은 어떤 저자가 생각하고 공부한 내용으로 엮어진 책이 아니다. 문선명 선생께서 영계를 두루 살피시면서 하나님과 논의하고 사탄과 싸워 가면서찾아낸 복음서요, 혈투전에서 승리하여 이루어 낸 성약시대를 계시한 기록서이다. 그런 내용을 어찌 인간의 힘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지상의 여러분들은, 특히 유교도들은 그것을 여러 번 정독해 보라. 귀가 있고 지혜로운 자는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문선명 선생님은 형언할 수 없이 힘든 탕감 노정을 걸으시고 재림주님으로 혹은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셔서 천신만고의 십자가 노정을 극복하고 승리하신 후, 인류의 구세주로서 거짓 사랑을 중심한 거짓 혈통을 청산하고 오늘날 인류를 하나님이 원하셨던 본연의 모습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아마 지상인은 인간의 모습을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거짓된 인간의 모습과 참된 인간의 모습은 인간의 외형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 예수님과 우리 인간이 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같은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였다. 그러나 인간의 잘못으로 예수님은 메시아 대접을 받지 못했고 고향 땅에서도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셨다. 성약시대에 오신 메시아 문선명 선생님은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 오신 재림주님이시요, 메시아이시요, 구세주이시다.
여러분은 인류 역사를 더듬어 보고 원리강론을 통해 동시성 시대를 이끌어 오신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정독해 보라. 하나님은 얼마나 참고 기다린 후,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셨는지, 그리고 인간의 원죄를 청산 짓고 인류를 본연의 하나님 자녀로 복귀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어떻게 경륜되고 있는가를 확실히 파악해 보라.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주님을 모시고, 그분이 일구어 나가는 모든 행사 중 가장 소중한 축복 행사에 동참하면, 여러분의 원죄는 청산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시대가 펼쳐져 나가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인간의 복귀섭리의 중심이 설정되는 것이다.
거짓 사랑과 참사랑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이해가 안 되면 여러 차례 기도해 보라. 여러분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섭리가 여러분에게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 재림론의 결론적인 소감은?
나의 시대에 메시아는 오시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축복의 자리까지 허락해 주신 문선명 선생께 깊이 감사를 올립니다. 거짓된 인간 모습 앞에 주님으로 나타나기까지 생명의 고빗길을 참아 내시고 참주인으로 등극하신 주님 메시아 앞에 거듭 감사드리며, 한 스승과 한 인물을 찾아내기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초긴장의 세월을 참아 오신 하나님 앞에 정말 머리 숙여 감사 올립니다.
하나님은 한 혈통을 찾아오기까지 초죽음과 같이 긴장된 채 오랜 세월 동안 한 분을 성별하고 지키셨다. 마치 금이 간 얼음 위를 걷는 것보다 더 긴장된 모습으로 순간 순간을 참아온 하나님이시다.
이제, 가슴을 조이던 섭리적 조건을 메시아 문선명 선생께서 모두 이루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왕위에 즉위시키시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진력하시고 계시니 모든 감사와 영광을 천지부모님과 메시아 문선명 선생께 바치고자 한다. ─ 2001. 3. 1 ─
(5) 유교 창시자로서 통일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사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단절되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인간 중심 사상으로 역사가 지배적으로 흘러오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된 생활이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 속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근원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그 존재가 신은 아닐지라도 무엇인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불완전한 상태의 인간의 모습이지만 항상 갈급한 모습으로 남아져 있다. 만약 그것마저 없었다면 인간은 다시 구원의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인간은 항상 하나님 품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통로가 인간 본성을 통하여 열려 있는 것이다. 사탄이 아무리 간교한 수법으로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은 변화시킬 수는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란 엄청난 특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유교 창시자로서 원리강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지상인과 천상인의 복음서(福音書)요 구세서(救世書)이다. 이보다 더 큰 경전은 타락한 인간에게 없다고 생각한다. 창조원리에서 재림론에 이르기까지 원리 내용에 관해서 나는 여러 차례 청강하고 정독하고 묵상 혹은 명상도 하면서 깊은 사색에 잠겨 보기도 했다. 나는 나름대로 지상에 적지 않은 서적을 남긴 사람으로서 원리 내용을 접할 때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뜨겁다가 허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깝기도 한 가운데 여러 차원의 번뇌 속에 요동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통일원리의 내용은 감탄과 감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원리는 인간의 힘에 의해서 인간에게 쉽게 밝혀질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뿐이다. 나는 통일원리를 접할 때마다 그 내용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지상생활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값진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분야라도 감탄하지 않을 내용이 없지만 나는 창조원리 중 이성성상(二性性相)의 내용을 생각하면 한참 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 버린다. 이러한 경험은 한 두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대단히 조직적이고 단순하시다. 인간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어렵게 인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닮은 피조세계의 여러 차원의 존재 양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인간의 부모로 등장했는데 인간은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처음 이성성상의 강의를 청강할 때 강사는 과학자로서 자기의 학문적 이론에 도취해서 자기 학문을 자랑하는 줄로만 착각했다. 그 후, 강의를 차례대로 계속 들으면 들을수록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 때부터 나는 눈물과 통한의 심정을 체휼하여 하나님이 불쌍하여 견딜 수 없는 애절함을 느꼈다.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상대적으로 창조하신 것은 그들을 바라보고 기쁘고 즐겁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녀를 바라보며 기쁨을 누리고자 하셨지만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가 되셨다. 이러한 상태에서 외롭고 착잡한 심정을 어떻게 참아오셨을까? 그뿐이겠는가. 삼라만상의 어느 것을 볼지라도 상대성을 띠지 않은 것이 없는데 하나님의 상대는 누구였던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은 상상할 수 없이 너무도 먼 거리에 동떨어져서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살아왔던 모습이 되었다. 인간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상 인간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덧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인간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삼라만상의 상대적인 모습은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요, 하나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한 현장이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지상에는 유교인들이 요소 요소에 많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 4대 성인들의 공통된 고민은 지상인에 대한 가르침과 깨우침이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부탁해도 의심만계속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약시대, 신약시대를 지나 성약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상 인간들에게 지금까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현실화되고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상의 수많은 종교인들은 교파별 당파별로 분열되어 있지만 영계 4대 성인들을 비롯한 여러 성현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가운데 항상 세미나에 참석하여 지상인의 구원에 대해 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일부 종교인들은 이처럼 기적 같은 현상에 대해 감동도 감격도 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석가 부처님도 그의 깊은 고민과 간곡한 메시지를 보낸 바 있지만 지상인들이 그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교조로서 교단의 책임자로서 사랑하는 유교 식구들에게 영계의 실상을 바로 알려 이곳에서 어렵게 살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석가 부처님의 눈물겨운 기도를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뿐 아니다. 4대 성인의 공통 문제는 자신의 교단을 어떻게 책임지고 구원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육신을 잃은 4대 성인들은 지상인에의 영향력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 지상인들이여, 부디 성약시대에 4대 성인들을 비롯한 여러 성현들의 의미 있는 메시지에 유념하여 주길 바란다. 이러한 천운의 기회가 여러분 생애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유교 창시자로서 무슨 부탁을 해야 할까? 지금 우리 4대 성인의 일념은 인류가 하나님의 사상 아래 하나의 민족으로서 본연의 인간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따라서 지상의 유교인들도 통일원리를 정독하길 권한다. 여러분들이 나의 삶과 사상에 대해 믿고 따랐다면 통일원리의 연구에도 편견 없이 정독하며 연구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석가 부처님이나 나의 한결같은 부탁이다.
그러나 4대 성인들의 고민과 갈등은 지상에서 육신을 가진 지상인이 어떻게 하면 고루한 사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시대의 흐름과 발전에 따라 문화와 문명이 발전하여 세계를 이웃처럼 드나들고 있는데 하나님의 인간 사랑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지상인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지상의 유교인들이여, 나의 애절한 부탁이 있다면 그것을 들어주겠는가. 여러분은 나의 부탁을 반드시 들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석가세존의 메시지에도 관심을 갖기 바란다. 부디 영계의 삶에 유념하기를 부탁한다.
─ 2001. 3. 12 ─
(6) 유교인들에게 통일원리 소개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하나님은 부자의 관계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숙명적인 관계이다. 부모와 자식의 사이는 무슨 이유와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무조건적이다. 기쁨, 슬픔, 외로움, 그리고 행복 등 모든 사정이 부모와 자녀는 일치되어야 한다.
부모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다시 말해서 배가 고픈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은지 건강한지, 어버이에 대해 항상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자식의 도리요 기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창조주요 인류의 부모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과 인간의 부자관계가 단절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인간 앞에 거짓 부모가 인간의 참부모인 것처럼 행세함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르는 가운데 생활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를 찾기 위해 수많은 세월 동안 수고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이제 하나님은 천주 앞에 왕의 자리에 등극하시고 부모의 입장으로 등극하셨지만 환경과 나라가 하나님을 온전히 해방시켜 드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통일원리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상에 수많은 서적을 남겼지만 인간의 영혼까지 구원할 수 있는 경서는 거의 없는 것같다. 그것은 인간의 두뇌로 분석할 수도 될 수도 없다.
통일원리는 하나님에게 숨겨진 천비(天秘)의 내용을 문선명 선생께서 사선을 넘나들며 밝힌 내용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코 읽으면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비일비재하다. 유교인들은 내가 남긴 서적들이 너무 어려워서 대중들에게 읽혀질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남긴 서적들을 해석하고 풀이하여 연구해 보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위로와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내세의 문제까지 책임지려는 글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지상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곳에 와야 할 길은 공인의 길이요, 천도의 길인데, 지상의 순간적인 삶을 위로하는 내용보다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내용이 훨씬 좋은 서적으로 남아질 것이다. 나는 내세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고 분석할 기회조차 없었다. 내세에 대해서 무지하였으니 어떻게 분석하며 글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지금 나는 이곳 영계에서 대진리를 접하고 보니 지상에 남긴 나의 가르침이 참으로 부족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유교에 대한 존엄성과 존귀성을 가진 유교도들은 이점을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부모요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살 진리보다 더 큰 진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내세는 영원한 세계이다. 그러니 인간이 내세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살도록 창조된 것이 하나님의 진리요, 통일원리의 근본 깨우침이다. 유교도들은 나의 이 메시지에 특히 관심을 갖길 바란다. ─ 2001. 3. 13 ─
(7) 문선명 선생님에 대한 이해와 소감은?
내가 감히 이토록 엄청난 어른의 존함을 부르며 그 어른에 대한 이해와 소감을 글로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긴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지상인이 지상에서 생활하는 문선명 선생님을 바라볼 때 그 어른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지상인이 영계의 엄청난 실상을 어느 정도만이라도 감지한다면 이미 지상천국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나는 한 여인의 힘을 빌려서 역사에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소중한 특혜를 받아 나의 메시지를 지상에 보내고 있다. 나는 이 사실에 대해 한편으로 대단히 죄송하며, 한편으로 지극히 감사하고 있다. 이처럼 한 여인이 자신의 체력과 싸우며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이다. 나는 이곳의 실상을 모두 드러내고 싶지만 지상인이 그것을 받아줄지 의문스럽다. 지상인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이다. 석가세존의 메시지도 지상에 전해졌고, 성 어거스틴의 메시지도 이미 지상에 보낸 바 있다. 그러한 메시지가 전달될 때 이곳 4대 성인들과 성현들은 진심으로 지성과 정성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이곳의 우리들이 마음놓고 지상을 협조할 수 있는 기반이 없었던 것을 아쉽게 여긴다.
나의 심정도 예외일 수 없다. 문선명 선생님은 누구이신가. 나는 그 어른을 높이 찬양하며 지상인에게 그분에 대해 알려 주고 싶다. 그러나 나의 허탈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이 마음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 4대 성인들은 ‘맡겨진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약속했다. 이후에 ‘지상인에게 원망을 듣지 말자’고 약속했다. 지상인들이여, 종교인들이여, 무신론자들이여, 지상의 생애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상은 순간이요, 하룻밤 꿈을 꾸고 깨어나면 날이 밝아 오듯이 지상생활은 하룻밤 꿈속과 같은 세계에 불과하다. 영원한 세계의 맛과 멋을 느끼고 지상을 바라보면 참으로 우습고 어리석었던 것 같다. 제발, 여러분은 순간적 지상세계의 꿈에서 깨어나 나의 메시지에 특별히 귀를 기울이고 주목하길 바란다.
문선명 선생님은 여러분과 함께 지상에 계신다. 그러나 천상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일 때 우리는 그 분의 분명한 모습을 보았다. 문선명 선생님의 보좌 위에서 하나님의 광채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우리는 분명하게 목격했다. 우리들은 눈이 부셔 그 광경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상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니까 문선명 선생님의 말씀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문선명 선생께서 움직일 때 하나님은 그 어른을 휘황찬란한 광채로 덮고 휘감은 채 일체가 되었다. 어떤 때는 둘이 되었다가 어떤 때는 밝은 빛만 찬란히 비치고 문선명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씀만 들리기도 한다. 어느 날 우리는 문선명 선생께서 공석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보좌 위에서 수 없는 땀방울과 핏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핏빛과 땀방울이 흘러내려 청중들의 좌석 위로 흘러내렸다. 그 핏빛을 밟는 자마다 흰옷을 입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그것은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 보좌의 핏빛과 문선명 선생님의 옥체는 오직 한 몸이 되어 인류를 구원하려는 일념으로 나타났다. 그때의 땀방울과 핏빛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지상인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 유엔본부에서의 축복식장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최초의 최고의 혈투전이었으며 한 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의 눈물의 장소였다. 지상인들이여, 나는 보았다. 하나님과 함께 인류를 구원하려고 80 생애를 바쳐 오신 큰 스승의 노고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하나님께서 항상 문선명 선생님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배려하시는 모습을 우리 4대 성인은 수없이 목격했다.
나의 능력으로 어찌 그 어른에 대해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에 관한 한 ‘문선명 선생님에 대한 이해와 소감’이란 표현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한 생애를 통해 하나님 앞에 홀로, 인류 앞에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심정은 어느 누구에게도 엿볼 수 없는 것이었다. 먼저 보낸 석가 세존의 메시지는 그분만의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 4대 성인들의 한결같은 메시지요, 우리 모두의 염원이요, 우리 모두의 간절한 부탁이다.
하나님 앞에 종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위대한 스승, 참된 스승, 참된 부모를 만나 그분과 더불어 살다가 이곳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본래 목적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짤막한 생애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세계를 연구하고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한 사람만이 현명한 신앙인일 것이다. 고루한 사상을 버리고 새 시대에 새 진리를 받아들이라. 그것이 천국행의 확실한 지름길이다.
─ 2001. 3. 15 ─
(8) 공자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원리를 이해하고 뜻을 깨달은 자로서의 계획은 당연히 외길뿐이다. 나는 하나님을 부모님으로 모시고 자녀의 자리에서 자녀의 도리를 다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모실 것인가? 나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살 때 관념적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통해 모시고자 한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며 모든 실생활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살고 싶다.
내가 지상에 살 때 하나님을 부모로 시봉하는 진리를 깨달았다면 부끄러울 것이 없는 멋진 경서를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깨우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회를 놓쳐 버린 것 같다. 사실, 그 분야는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 진리를 깊이 깨달았으니 이후에는 오직 이것만을 붙잡고 생활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지상을 적극 협조하고 싶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지상인의 사상은 고루하기 그지없다. 꽉 잠겨진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까 그것이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나는 지상생활을 할 때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생활을 대단히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현의 진리를 고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이제 여러 성현들이 지상인들에게 영원한 세계에 대해 여러 차원으로 가르쳐 줬고, 이 상헌 선생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이곳 영원한 세계의 여러 분야를 깨우쳐 주었다. 그것이 설사 거짓이라 할지라도 한번 귀를 기울이고 연구해 볼만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인의 최소한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고루한 사상에 몰입하면 자기 교만에 빠지게 마련이며, 자신이 스스로 쳐 놓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울타리가 너무도 탄탄하여 그 그늘에 자신이 갇혀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바깥의 찬란한 햇살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자신의 커튼을 걷어치우고 동녘에 떠오르는 찬란한 햇살을 바라보라. 그렇게 하면 찬란한 아침 햇살의 광채가 사방에서 무지개처럼 여러분을 감싸줄 것이다.
이상헌 선생처럼 공자도 영계에서 만난 여러 학자들의 고루한 생활을 알려 주고 싶지만 이번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곳의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자격이 없고 부족하지만 문선명 선생님의 가르침, 즉 통일원리를 더 자세히 연구하고 분석하고 공부하여 많은 사람에게 알기 쉽게 가르치며 그들에게 원리인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문선명 선생님도 허락하시지 않을 것 같고, 통일식구의 전문가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계획은 원리인으로 살며 원리를 가르치고 싶다. 나는 나의 입장에서 통일원리를 유교인의 사상에 맞춰서 가르쳐 보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서야 할 자리요, 그것이 영원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공자에게 바라는 소망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요, 아버지인 것을 알았고 원리를 통하여 살아가야 할 방향성도 알았으니 다른 무슨 계획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직 한길뿐이다.
그리고 이곳 황무지 개간에 있어서 공자도 한몫을 해야 할 분야가 분명히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원리를 공부하고 있다. 지상인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새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서 참된 신앙인의 자세로 돌아가 후일 하나님 앞에 참자녀의 모습으로 상봉하자는 것이다.
(9) 축복 받은 소감은?
축복이란 말은 지상에서 좋은 일이 있을 때 축복을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축복의 의미는 그것과 전혀 다르다. 쉽게 말하면 지상에서 시집가고 장가가는 혼인, 즉 결혼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상인이 아닌 영계의 사람들이 결혼을 했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상당히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오늘, 나는 유교인을 비롯한 모든 지상인에게 말하고자 한다. 공자에게 주어진 기회는 두번 다시 올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지상에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러다가 싫어지면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 지상인의 평범한 결혼관일 것이다. 그러면 여기의 축복도 일종의 결혼을 의미하지만 지상인의 결혼관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주례에 따라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축도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간 시조의 출발이 잘못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자신들 마음대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상생활에 있어서 부부는 되겠지만 영원한 세계인 이곳에서는 부부 관계가 당연히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부부가 남남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인의 결혼식은 이곳 영원한 세계에서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 주길 바란다. 여러분은 지상의 순간적 삶을 위하여 성대한 결혼식을 거행하고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며 살고 있다.
여기에서 축복이란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육신을 가지고 지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이런 눈치도 보며 저런 체면을 생각하는 등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 영계에서 공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어찌할 수 없이 솔직하게 밝힐 수밖에 없다.
나는 유교의 창시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수많은 세월 동안 삶에 대한 고민 속에서 갖가지 체험을 하며 인간의 바른 삶을 규명하기 위하여 몸부림쳐 왔던 사람이다. 우리 인간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였다.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인류역사의 흐름이 처음부터 빗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로 정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빗나간 인류역사의 방향을 바로 잡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구세주(救世主)를 보내셨다.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이것에 대해서는 석가 세존의 간절한 애원의 메시지를 통해 너무도 자세히 설명된 바 있으니 그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또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데 문선명 선생께서 지상에서 인류에게 축복을 해 주고 계신다. 나를 포함해 4대 성인, 그리고 성 어거스틴까지 모두 축복을 해주셨다. 현재 4대 성인의 부인들이 지상에 살고 있다. 여러분, 이 사실이 믿어지는가. 하지만 믿어지지 않아도 할 수 없다. 우리 4대 성인 모두는 문선명 선생님의 축복을 받아 하나로 묶어졌다. 오직 지상에서 그 어른이 하시는 일을 협조하기 위해서 우리 4대 성인들은 하나가 되었다. 문선명 선생께서 4대 성인들이 세미나를 한 것을 지상에 공포하라고 지시하셨다. 사실 우리들은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것은 세미나가 아니라 한가족이 모여서 재미있게 공부하는 한 형제가 되어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라는 주제 하에 통일원리의 이모저모를 담론했다.
그러나 우리 4대 성인을 비롯한 여러 성현들에 있어서 가장 가슴아픈 일은 지상에 협조할 확고한 기반이 아직도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각 종파나 교파간에 신앙에 대한 고루한 아집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선명 선생께선 고령의 몸으로 마지막 인류에게 헌신적 삶의 전형을 보이기 위해 피땀을 뿌리며 메시아의 길을 걸으시고 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지상의 여러 종단 지도자들이여, 그 어른이 지상을 떠날 때 이스라엘 민족보다 더 큰 비극적 아픔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메시지의 결론은 지상은 물론 천상의 모든 사람들은 문선명 선생께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상에서 그 어른의 축복을 받은 부부는 이곳 영계에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 그러한 부부가 되어야 비로소영원한 보금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상인들이여, 영원한 사랑으로 남아지고 싶다면 이점을 다시 생각해 보라. 여러분 자신의 울타리 속에서만 생활하게 하면 천국은 여러분과 상관이 없을 것이다. 서로 서로 담벽을 헐고 참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인류의 항구적 평화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마지막 찬란한 불꽃을 태우는 문선명 선생님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라. 그분은 메시아요 구세주이다. 그분에게 축복을 받은 내가 분명히 이곳 영계에서 여러분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 2001. 3. 26 ─
(10) 공자님은 원리 강사가 되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원리 중 열강하고싶은 제목은?
내가 마음대로 원리 강사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원리 강사가 되는 것이 나에게도 허용이 된다면 혼신을 다해 해보고 싶다. 원리 강사가 되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리의 내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통일원리는 천비를 밝혀 낸 영적인 메시지요, 신약-구약-성약 등 인류의 구원문제가 전제된 말씀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표현하고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리 강의는 일반 강의와 같이 단순히 전통적 지식이나 학문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나는 원리 강의를 수차례 들어왔다. 그때마다 자신의 심령 준비와 정성에 따라 그 감성이 다르게 느껴졌다. 통일원리는 학문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서 공부를 하거나 청강을 하게 되면 지식의 양식은 될지 몰라도 영(靈)의 양식은 전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통일원리를 공부하거나 청강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됨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실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유효원 선생이 창조론의 무형세계에 대하여 열강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의 도중에 유효원 선생은 간데 온데 없고 문선명 선생께서 땀을 흘리고 계셨다. 그리고 땀방울이 변하여 이마에서 핏빛으로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그 핏빛이 마루바닥에 흩어지면서 핏빛의 길마다 사람들이 통곡을 하며 기도하는 장면을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다가 또다시 유효원 선생으로 변하여 강의가 진행되는데 그 모습이 가슴을 에여 들어서 그 시간은 청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른 진리를 전하려는 통일 식구들의 심적 자세는 혹독한 고문 아닌 고문처럼 느껴졌다.
지상인들이여, 그대들은 모를 것이다. 이곳의 삶을 짐작도 못할 것이다. 내가 어찌 원리 강사가 될 수 있겠는가? 통일 식구들의 수고와 노고를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일인가. 나의 심령기준과 그들의 심령기준의 차이가 너무도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례를 하나 더 들겠다. 어느 날 이상헌 선생이 4대 성인과 성 어거스틴이 함께 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졌다. “여러 성인들께서는 지상에서 남겨 놓은 업적과 지상인의 마음속에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진 분들이신데, 만약 다시 지상인으로 돌아가신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우리 성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 이상헌 선생의 표정이 너무도 침울하고 진지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답변을 듣고자 하는 질문이 아닌 것을 우리는 눈치챘다. 그때 이상헌 선생의 모습은 정말 불쌍해서 볼 수가 없었다. 계속 감탄하고 계속 놀라움에 쌓여 본래의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항상 눈물어린 음성이요, 항상 지쳐서 피곤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초췌한 모습이었다. 이 좋은 자리에서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가 라고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선생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안타까워하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영계에서 발견한 이러한 일들은 무형이지만 실제요 실상이다. 문선명 선생께서 지상에 머물면서 그렇게 강조하던 영계의 실상을 이제 하나의 사실로 입증할 수 있는 현실을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그 동안 여러분은 문선명 선생께서 일러주시던 말씀을 일종의 꿈의 세계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일이 아닌가. 이선생은 부모님(문선명 선생님)에 대한 불효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지상인들에게 송두리째 알려줘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선생은 “성인들께서 저를 받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천지부모님께 많은 불효를 하면서 심정을 유린한 자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이 초개같은 지경에 갈지라도 이곳에서 효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호소했다.
우리 성인들에겐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고 이선생은 오래 동안 옆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수 없이 목격했다. 사실 이선생은 우리들을 여러 번 가슴 아프게 했다. 이선생의 생활이 강의보다 우리들을 더 감동케 했다. 그리고 이선생은 원리 강의를 듣고 인생의 삶의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갖가지 생활에 관한 것을 알려 주었는데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이처럼 원리 속에 부모님(천지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던 이 분들의 삶을 보고 느낄 때 어찌 감히 내가 원리 강사가 되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통일원리 강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열강하고 싶은 강의 제목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꿈이 있고 소망은 있다. 새 진리 앞에 무용지물로 남아지고 싶지 않다. 나는 나에게 맞는 원리 강의를 해보고 싶다. 이상헌 선생이나 유효원 선생처럼 심정적인 강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나의 스타일에 맞는 강의를 개발하고 싶다. 그때가 언제일까? 문선명 선생님, 천지부모님이 이곳에 오시는 날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여 첫 강의를 부모님 앞에 선보이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주 신랄한 강평을 받아 독특한 나의 스타일에 맞는 강의를 해보고 싶다. 열강하고 싶은 강의 주제는 많지만 그것은 비밀에 붙이고자 한다. 비밀에 붙인 이 부분의 강의를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하여 부모님께 올릴 것이다. 해내고 말 것이다. 천지부모님, 기대하십시오. 내가 노련하고 능수 능란한 강사가 될 때까지 오래 장수하시옵소서.
이상헌 선생의 질문에 따라 이상헌 선생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기록하여 죄송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니 자유롭게 이용했다. 참된 교훈을 골고루 배우고 익혀 만민에게 참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 2001. 3. 27 ─
(11) 공자님은 지상에 남긴 서적이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상헌 선생이 주신 문항 중에서 오늘의 문항은 정말 답변하기 싫은 문항이다. 그것은 내가 지상에 살 때 남긴 서적이 이곳 영계, 영원한 세계를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만들 때마다 공자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고 그것은 쉽사리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항상 여러 번 반복하지만 나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깊이 알지 못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여 글을 남겨야 할만큼 충분한 지식이 없었다.
이곳 영계 하나님이 계신 곳은 지식을 가지고 오는 곳도 아니오, 재물을 가지고 오는 곳도 아니오, 얼마만큼 지상에 실적(권력)을 남겼는가도 문제가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지상에서 자신의 인격, 자신의 신앙이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았는가의 실적을 가지고 오는 곳이다.
지상에 여러 차원의 책을 남겼고 많은 이들에게 지식과 학문을 전달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소중한 자녀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유교의 창설자요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곳에서 대단히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대하여 관대하게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생활에서 나는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부자 관계의 심정을 가르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부끄러운 것은 자녀로서의 서적을 남긴 것이 너무도 내용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4대 성인의 한결같은 부끄러움은 하나님과 인간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인류에게 가르치지 못했고 따라서 하나님은 외롭고 쓸쓸한 길을 걷게 해 드렸다는 것이다.
지상생활을 할 때 나는 육신의 모습 하나를 어떻게 잘 간수하고 살아가야 할까에만 관심이 머물렀고 영원한 세계를 위하여 살아가야 할 준비를 하고 그것을 지키는 글귀를 남기지 못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아픔으로 남아지는가를 지상인은 모를 것이다. 지금 리포트 하는 순간이 나에게 있어서는 촌음의 시간처럼 아깝다. 귀하고 귀한 시간이다. 그러니 소중한 내용을 지상의 유교인들에게 교파를 초월하여 전달하고 싶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지상인에게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그것도 적지 않게 걱정이 된다. 이러한 경우가 역사이래 최초의 일이 아닌가. 그러나 구약 신약시대를 지나서 이제 성약시대 하나님 왕권 즉위식이 끝난 후 귀하고 소중한 우리의 환경이 지상에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인은 이처럼 좋은 환경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일체화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천상의 비밀이 샅샅이 알려지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심이 알려지고,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이 알려지고 지상과 천상이 하나될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덴동산에서 이루고자 했던 본연의 세계가 가시화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과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다시 연결되고 있다. 천상의 비밀을 밝히고 특별한 기간에 특별한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천운의 기회에 지상인이 믿어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상인에 남기고 싶은 것이다.
내가 남긴 서적은 지상생활을 위한 지상인에겐 소중하지만 영원한 나라에 올 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이곳 영원한 세계에서 공자와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한 사람만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인들이여, 유교도들이여, 나를 존경하고 내가 남긴 서적에 일말의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낀다면 나의 결정적인 부탁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영원한 세계를 위한 서적을 찾아 정독하길 바란다. 이곳은 누구도 빠짐 없이 와야 할 곳이다. 티끌 만한 에누리도 이곳에는 없다. 그러므로 이곳의 영생을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길 바란다. 이 메시지는 유교 창시자 내가 특별히 지상인에게 전하는 내용이다. ─ 2001. 3. 29 ─
(12) 만약 지상인으로 돌아간다면 무얼 해보고 싶은가?
나는 지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영원의 보금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현실 이상의 소원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이상헌 선생의 질문의 의도는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진심으로 답변하고자 한다.
인간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무형세계에서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을 인류의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문선명 선생께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여 항구적 평화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참사랑 운동을 범세계적으로 벌이고 계시다. 만약 내가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문선명 선생님의 참사랑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모든 지상인의 삶을 이곳 천상으로 그대로 연장하여 본연의 인간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다. 이것이 나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러나 지옥이나 저급한 영계권에서 살아가고 있는 천상인은 대체로 그것을 모르고 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천상에서 4대 성인들을 비롯한 성현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들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그 실천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들은 원리의 지향성을 알고 하나님의 방향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드시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4대 성인들은 지난날 성인으로 걸어왔던 길이나 그들의 칭호를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이곳 영계에도 지상처럼 여전히 종파적 실세가 분명하고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석가 세존이 행차하면 불자들의 환영의 분위기는 가위 놀랄 만하다. 그러나 석가 세존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후한 대접을 하고 원리와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시키며 교육시키고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영인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상의 경우처럼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여러 현상들 중에는 지상과 거의 같은 현상도 적지 않다.
이곳 우리 4대 성인들은 하나님의 이념으로 모두 하나 되어 있다. 이처럼 천상에서 하나 되는 일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 성인들이 하나의 이념으로 묶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것은 오직 지상의 문선명 선생님의 특별한 배려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축복해 주시고 새로운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지상에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왜 없겠는가. 나는 지상에서 훌륭한 통일원리 강사가 되어 주님의 모습을 높이 찬양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 참부모님을 등에 업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영접하고 싶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만 나는 나귀 대신 나의 등에 참부모님을 업고 아시아를 한바퀴 돌고 마지막으로 중국 대륙에서 큰 잔치를 열어 봉축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통일원리를 송두리째 암기한 강사로서 주님 앞에 최고의 통일원리 강사로 인정받고 싶다. 정말 해 보고 싶은 일이다. 나는 지상인으로 돌아가서 나의 염원을 이루고 싶고, 이곳 영계 하늘나라에서도 그것을 이루어 보고 싶다.
부모님, 주님, 문선명 선생님, 정말 오랫동안 장수하옵소서. 그 후 주님이 이곳에 오실 때 나는 아주 특색 있는 강사로서 그 진면목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 선생께선 미국 50개 주 순회강연을 하고 계시는데 너무도 무리하신 강행군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놓고 노심초사 정성을 들이고 있지만 그 은혜, 그 사랑을 인류가 어찌 감당하며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자리요, 메시아 구세주로서의 길이기에 우리들로서는 다만 정성과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인류의 평화는 곧 하나님의 평화임을 알고 있습니다. 옥체 보존하고 무강하시길 비옵니다.
나의 소원은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다. 나는 그 외에도 소원이 많이 있지만 아직은 다 밝힐 수 없다. 이곳에서나 자상에서의 유일한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오직 분투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인간이 육체로 살아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단 방법이 많이 있을 것이지만 이곳에 오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 오직 하나님을 우리의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지상인이 그것을 알면 지상의 삶이 복잡할 필요가 없고 여러 갈래의 길을 갈 필요가 없다. 구세주 메시아로 보내신 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님이신 것을 알고 그 메시아의 방향 따라 살다 보면 이곳으로 바로 직행하게 된다. 지상의 삶이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알면 그렇게 고달프게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메시아를 모시고 그분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면 간단하다. 나의 부탁은 당당하다. 나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인이 현명하게 처신하길 바랄 뿐이다. ─ 2001. 4. 2 ─
제3장 4대 성인 영계세미나
(주제: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
(1) 예수님의 메시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가 이 지면을 통해 지상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나 타종교인이나 신앙을 하지 않는 분들도 예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메시지를 지상에 보내는 예수의 마음은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착잡하다.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전할 수도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다. 지상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메시지를 접할 때 믿기보다는 의심을 더 많이 할 것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메시아의 사명을 갖고 왔던 예수가 인류 구원의 책임자로서 밝히지 않으면 안될 시대가 도래했기에 이 사실을 천명하는 것이다.
당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지상에 왔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갈등을 모두 성경에 기록할 수 없었다. 사실, 성경에 다 밝힐 수 없는 숨겨진 섭리적 내용이 많이 있었다.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기독교인들이나 메시아를 기다리는 수많은 성직자들에게 숨겨진 섭리적 내용의 일단을 분명히 전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육신을 가진 인간은 지상에 살 때 필요하였고 육신을 잃으면 그 영혼은 영계에서 영존하도록 창조하셨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성도들이여. 성경에 표현된 구절구절의 양면적 예언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는가. 나는 신약시대에 인류 구원을 위하여 메시아로 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십자가 문제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인간의 실수인가. 여러분은 예수의 생애를 면밀히 검토해 보았는가? 예수의 잉태와 탄생에 대한 것도 생각해 보았는가. 그 시대 나는 틀림없는 메시아의 사명을 갖고 왔지만 육신을 가진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서 먹고 입고 잠자면서 생활했다. 그러나 나의 사명은 일반인과는 달리 메시아의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메시아의 십자가 대속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아니었다.
지상인들이여, 기독교인들이여, 이 사실의 여부를 놓고 금식하며 기도해 보라. 그렇게 하면 내가 나타나서 분명하게 알려 줄 것이다. 그러나 금식하고 철야할 때 순수한 기도와 정성만을 들여야 한다. 소위 이단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라. 이 시대 통일교 문선명 선생님은 십자가 대속으로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재림 메시아로 현현하신 분이며, 성약시대를 마무리하기 위한 참부모의 사명을 가지고 현현하신 분이다.
신약시대에 메시아 사명을 갖고 온 나를 당시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고 말았다. 그래서 지상에는 하나님이 이루셔야 할 뜻이 남아졌기 때문에 재림 메시아가 필요했던 것이다. 신약시대의 메시아는 영적 구원밖에 이루지 못했기에 육적 구원은 숙제로 남아진 채 역사가 흘러왔다. 그러기에 한 많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으시면서 하나님은 다시 메시아를 지상에 보내기 위하여 기다려 오셨다. 문선명 선생님의 혈통을 분별하고 성별하여 메시아로 보내기까지 하나님은 초긴장의 세월을 보냈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던가? 마구간 아니었는가. 당시 마리아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기독교인들이여, 성경을 읽을 때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던가. 풀리지 않은 문제,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여 여러분은 괴로워해 본 적이 없었는가. 천비(天秘)를 다 밝히지 못했던 예수의 심정을 이해하겠는가. 성경에 기록할 수 없었던 오묘한 섭리 내용을 여러분이 어떻게 알겠는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의 배가 왜 불러왔는가. 복귀섭리 역사상에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천비가 배일에 감춰져 있음을 여러분은 모를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를 찾아와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은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시대 지상에 현현하신 문선명 선생님은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재림 메시아이다. 문선명 선생님은 16세 때 나의 메시아 사명을 인수했다. 기독교인들이여, 아직도 구름을 쳐다보면서 구름 속에 나타날 재림주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문선명 선생님은 수만 번의 구름 속을 헤치며 세계를 순회하며 인류 평화 구현에 혼신을 다하고 계신다. 오늘도 그분은 80세가 넘은 고령으로 인류 구원의 최전선에서 고투하고 계신다.
신약시대 예수를 핍박하던 로마인들처럼 이 시대 여러분도 그분을 다시 십자가에 매달 것인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여러분은 알지 않는가. 하나님은 사랑이다. 기다리고 계신다. 성약시대에 강림하신 메시아를 영접하라. 그분의 업적과 인류 구원의 섭리적 경륜을 배척하지 말고 진심으로 영접하면서 기도해 보라. 여러분의 진실한 기도 속에 예수가 함께 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나의 생애와 하나님의 구원관에 대하여 깊이 기도하면서 신약시대 메시아로 왔던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그 시대적 상황을 다시 새겨 보길 간절히 바란다.
내가 33세가 되도록 장가 들지 못했고, 나를 따라 다니던 12제자들과 함께 배고팠다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나는 한이 많았다. 기독교인들은 메시아 예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만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인류가 해야 할 도리와 책임은 없겠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라. 메시아로 왔던 나는 인자(人子)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메시아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혼신을 다했지만 그 꿈과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 그 뜻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면 재림주님이 오실 필요가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이여, 그리고 여러 종교인들이여! 당시의 메시아는 예수였었다. 틀림없는 메시아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메시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다시 오신 분은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그분이 바로 재림주님이시다. 2천년 전 이단의 괴수로 몰렸던 나에게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하고 물었던 세례요한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지금 문선명 선생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시대의 흐름을 생각해 보고 문선명 선생께서 이룩한 업적을 상기해 보라. 인간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셨다.
죽은 내가 다시 살아서 여러분에게 나타날 수 없다. 인간의 육신은 영인체와 분리되면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것이 진리요 천도이다. 무덤에서 일어난다는 성경 구절을 다시 보라. 하나님은 과학적이며 수리적인 하나님이며 원리의 하나님이시다. 사라진 시체의 모든 기관이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합되어 부활한다는 논리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전제한 것인데 그것은 지극히 모순된 것이다. 문제가 그렇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계를 보라. 인간의 성장 과정과 구조를 보라.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이다. 이제 여러분은 자녀를 기다리고 참아 오신 하나님의 섭리와 심정을 체험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우상 숭배자로 알고 있는 불교의 교조 석가님과 내가 마주 앉아 서로 담소하고 있다면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
여러 기독교인들이여, 불교인들이여, 그리고 여러 종교인들이여! 예수, 석가, 공자, 무하마드 등 4대 성인과 소크라테스, 성 어거스틴 등 성현들, 그리고 그 외 종교 지도자들이 여러 차례 세미나를 했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세미나의 주제는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라는 주제이며 지상에 강림하신 문선명 선생께서 밝혀 놓으신 원리강론을 놓고 분석하며 토론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려 주신 숙제이기도 하며, 지상에 문선명 선생님의 활동을 샅샅이 관여하고 관찰하시며, 우리들에게 인류 해방을 위해서는 이곳 종단 대표들이 먼저 하나 되어 지상을 협조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우리(4대 성인)들에겐 종파의 장벽이 없다. 우리 모두는 하나 되어 지상에 현현하신 성약시대의 메시아를 통하여 인류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발표하며 담소하고 있다. 지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교인들의 대립과 갈등은 이곳에서는 모두 해소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인간의 창조주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궁극적 진리를 밝히는데 그만한 시간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도 모든 종교의 장벽이 무너져야 인류의 평화가 실현될 것이다.
각각의 종교 교리의 공통성과 차이성을 밝히고 상호간의 장단점을 취사선택하면서 온유 겸손의 미덕을 보인다면 비종교인들도 그 모습을 따라 바른 길로 인도될 수 있지 않겠는가. 여러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 모두가 하나 되어 이곳 무형세계의 한 자리에서 함께 만나기를 부탁한다.
유대 베들레헴의 출신인 내가 지상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과 혜택이 주어진 것은 다름 아닌 성약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이며, 성약시대의 주인공은 문선명 선생님이시며, 그분이 재림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그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비판의 자리에 세울 것인가. 신약시대의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 것인가.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문의할 것인가. 여러분은 가장 현명한 신앙인의 모습을 선택하길 바란다. 이곳 영계에서라도 신약시대의 메시아 예수의 책임을 깨우쳐 주고 싶어서 이렇게 지상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2001. 4. 4∼5-
(2) 석가 세존의 메시지
지상에서 신앙하는 신앙인들 특히 불교인들에게 석가의 마지막 글을 전하고자 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우리 4대 성인들은 각 종단의 대표자로서 인류 평화와 구원에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고 있다. 지상에서는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이곳 영계에서 우리 4대 성인과 성현들은 항상 자리를 함께 하여 세미나를 하지만 의견의 대립이나 충돌은 전혀 없다.
우리가 한자리에서 세미나를 하기까지 각자마다의 원리 교육과 다른 교육도 있었고 나름대로의 수련도 있었다. 각 종단을 책임진 자로서 하루아침에 이러한 자리가 이루어졌겠는가. 기도하고 정성들여 보고 여러 차례 분석하고 검토한 후 이러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세미나를 통해 우리들은 한가족처럼 항상 서로 의논하기 때문에 종파적 편견에 따른 갈등은 야기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모임을 가지고 세미나가 진행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불꽃과 찬란한 빛으로 감싸주시고 우리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시고 유유히 떠나신다.
불자들이여, 예수님께서 신약시대에 메시아 사명을 지니고 오셨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거하셨다. 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거쳐 성약시대가 도래했다. 하나님은 한 시대가 지날 때마다 새로운 인물을 중심삼고 섭리를 이끌어 오셨다.
이처럼 나도 당시에 하나님 앞에 방향은 다르다 할지라도 인류를 선행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진력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 시대는 결혼하지 않고 한 때를 기다리며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가는 길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역사의 구약시대가 불교인들에겐 생소하겠지만 그 시대엔 인류 구원의 혜택이 그 단계까지 이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시대에 나의 생애가 한 때였으며 나의 가르침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다.
불자들이여,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석가였던 나도 예수님처럼 인류를 선도하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러나 섭리가 흘러와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가 시대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불자들의 수행의 결실을 새로운 시대의 섭리 앞에 접목시키자는 것이다. 통일원리를 연구해 보라. 불자들에게 같은 맥이 흐르고 있는 새로운 진리가 적지 않게 발견될 것이다. 너무 고루한 생각에만 젖지 말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여 우리 불자들의 진리를 새 시대의 진리에 접목시켜 보라. 그렇게 하면 멋진 신앙의 길이 여러 불자들에게 전개될 것을 확신한다.
지금 이 시대에는 문선명 선생께서 여러분의 석가요, 미륵불이다. 불공을 드려 보라. 성약시대 새로운 미륵불과 그의 진리를 배척하는 일에 앞서지 말고 진정한 불교인의 인격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겸손하고 침착하며 남의 허물을 보지 않고 갈고 닦아 온 여러 불자들의 자비의 미덕을 보여주고 행동하라. 참된 진리란 무엇인가. 시대에 따라 살아갈 인간의 방향성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계를 바라 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피조물이 환경에 따라 종류는 그냥 있다 할지라도 크기와 색깔은 얼마든지 변화하지 않는가. 신앙을 하는 인간의 본심의 소리를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인간 본성의 소리에 따라 인간 삶의 방법은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쁨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루하게 한곳에만 의존하지 말고 생각과 사고를 넓혀 보라. 예수님과 석가가 한 형제처럼 지낸다면 여러분 불자는 석가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어 일하기를 원하시고 예수님은 석가를 부르실 때 어떻게 부르실 것 같은가. 항상 겸손하고 조용하게 미소를 지으시며 ‘석가님’ 하고 부르신다. 이야기가 시작하면 매우 밝은 표정을 지으시며 ‘그렇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하십시다’라고 하시며 인자한 어조로 말씀을 하신다.
불자들이여, 기독교인들이여, 천상이 하나 되어 평화의 세계가 이루어졌으니 지상에서도 화합해야 하지 않겠는가. 새 시대 새 진리로 하나 되자. 인류 평화 운동에 혼신을 다 바치시는 문선명 선생님은 성약시대의 메시아요, 미륵불이시다. 이것은 4대 성인들의 세미나의 한결같은 결론이다. 불교, 기독교가 서로 하나 되어 하나님을 해방하자. -2001. 4. 6-
(3) 공자님의 메시지
인간은 육신을 가지고 지상에 살 때 눈에 보이는 현실을 생각하며 육신이 살아가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규범을 정해 놓고 그 규범 속에 살아간다. 인간의 육신은 어떤 한정된 울타리 속에서 보고, 듣고, 해결하는 방법밖에는 더 이상의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지상인은 4대 성인과 성현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한 내용을 자세히 밝혀 줘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성인들과 성현들은 육신 생활할 때 메시아는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보다 먼저 안락한 가정 생활을 떠나서 육신의 쾌락보다 인류 구제를 위하여 고민했다. 우리들은 인생 자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좀 더 바르고 선하게 살아가도록 진리를 선포해 오던 분들이다. 이러한 분들이 함께 모임을 가졌다.
육신을 벗었다 할지라도 지상인이 남겨 둔 교우와 신도를 내 몸같이 생각하며 좀 더 나은 길을 이끌기 위하여 정말 노력하고, 노력하고 애쓴 가운데 이러한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예수님도 석가님도 앞에서 말씀하셨지만 하늘나라 이곳은 정말 화목하기 그지없다. 예수님께서 불교도들 앞에 당신 자신을 소개하시고 “한자리에서 모여서 예배도 보고 불공도 들이자, 그리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근본을 이야기하자”고 하셨으며, 석가님은 불교도를 떠나서 기독교인 모임에서 큰절을 올리시고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겸손한 자태로 말씀하시면서 함께 화해하기를 제의하자, 일부에서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예수님께서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요, 한 형제 자매로서 하나님께 화목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라고 인자한 모습으로 말씀하시자 분위기가 숙연하게 변화되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조용한 불빛으로 빙글빙글 두루 도시니 온 천지가 환한 불빛으로 변했다. 모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황홀해 하면서 자세를 가누지 못했다.
우리들의 세미나 기간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가 많이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모임은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 4대 성인과 성현들이 자주 모임을 가짐으로써 종단의 파벌이 없어질 것이며 서로의 진리의 문도 개방될 것이라 생각한다.
유교도들이여, 내가 무슨 말을 해야 믿을 것인가. 전 세계에는 인종도 많고 종파도 많고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도 적지 않고 그 풍습도 각각 다르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오직 한가지 공통점은 인간의 모습이다. 흑인, 황인, 백인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인간의 모습이다. 백인, 흑인, 황인 등을 구분할 것 없이 병원에 가면 의사는 그들에게 동일한 치료 방법을 사용한다. 인간의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치료의 정도는 다르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류의 주인은 오직 창조주 한 분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창조주는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님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그것으로 만사 형통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복잡한가. 인류의 시발이 잘못되어 여러 갈래의 종교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지상에 문선명 선생님을 보내셨다. 그 스승은 모든 종교의 교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 되자는 진리를 내 놓으셨는데 종단마다 자기 것만 붙들고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하다. 조금씩 양보하여 타종교를 받아들일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지상에서 아무리 복잡하게 떠들어도 이곳 천상 세계의 종단 대표들은 하나로 뭉쳤다. 무엇으로 뭉쳤는가? 하나의 진리를 중심하고 하나 되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살아가자고 굳게 결의했다. 이렇게 되면 지상의 유교도들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불자들이여, 그대들의 최고의 스승 석가님께서 하나님을 인간의 부모님으로 모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최고의 미륵불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사심에서 떠나 이곳에서 지낼 여러분들의 모습을 점검하면서 지상에서 생활하라. 인류는 하나요, 한 겨레요, 한 혈족이다. 하나뿐인 하나님을 모시기 위하여 그 법도를 가르치기 위하여 문선명 선생님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내셨다. 그 분이 80 고령의 몸으로 인류 해방을 위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확인해 보라.
지상인들이여, 여러분들이 머무를 곳, 영원의 처소는 천상이다. 지상은 순간적 삶의 훈련소에 불과하다. 결실기에 곡간에 알곡만 들어간다. 여러분들은 성숙된 삶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유교도들이여, 최근의 예수님의 메시지, 석가세존님의 메시지, 나의 메시지, 그 외 성현들의 메시지를 참고하고 현명하게 판단하고 태도를 분명하게 하길 바란다. -2001. 4. 7-
(4) 무하마드님의 메시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모습 하나 하나가 모두 하나님의 기쁨의 실체 대상으로 지으셨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래의 뜻과는 달리 인간의 시조가 잘못됨으로써 인류의 출발부터 하나님을 떠난 빗나간 역사로 흘러가고 말았다.
여기에서 인종이 갈라지고 종파도 생겨나고 문화도 갈라지고 지역마다 각양 각색의 생활 양상으로 갈라지고 변화하게 되었지만, 우리 인간의 창조주로 계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셨다. 인간을 창조하신 주인공은 한 분인데 종단과 인종들은 수없이 많으니 지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경은 어떠하겠는가.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님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서로 매일 싸움이나 하고, 내 것 네 것을 가리면서 옳고 그름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바라보실 때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랴. 지상인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역사의 방향과 흐름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자세히 잘 모르기 때문에 오랫동안 종교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님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교리나 진리는 근본을 따져 보면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 어떤 종교 집단에서 악을 추앙하라는 종단이 있던가. 방법은 다르지만 근본은 모두가 선을 지향하는 진리요, 교리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절대 선과 절대 사랑의 본체이기 때문이요, 각 종단의 교리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함께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근본 교리는 모두 동일하다. 그러므로 종교마다 근본을 모두 한 곳에 묶어서 하나의 종교로 통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뜻이요, 하나님을 편히 모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수많은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상에 문선명 선생님을 보내시고 그분의 가르침과 지시를 받아 하나의 종교로 통일하기 위하여 통일원리를 밝혀 내신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이여, 그대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이제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하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크신 신께서 하나로 통일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모하멧 시대의 하나님과 이 시대의 하나님은 변함없는 우리의 신이며 우리의 부모님이다. 지금은 온 인류가 하나의 형제애를 누리며 평화 세계를 구현해야 할 시대이다. 하나님은 항상 그것을 원하신다.
종교 통일이 없이 인류 평화 실현은 요원하다. 이슬람교도들이여, 모하멧은 부탁하노라. 독특한 우리의 신앙과 교리를 가지고 타종교에게 아픔을 주지 말고 모든 마음을 활짝 열고 두 팔 벌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라. 그리하여 대화의 문을 열고 교리의 문을 열어젖히고 하나로 묶어 버려라. 예수님도 석가님을 받아들이고, 석가님도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4대 성인 성현들 모두가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했다. 이러한 세미나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들은 체험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들은 서로 다짐하고 결의했다.
지상에 오신 문선명 선생님은 하나님의 뜻을 대신 전달하고 인류 앞에 참부모로 현현하여 흩어지고 갈라진 인류를 통일하기 위하여 메시아로 오신 분이다. 우리 교도들도 겸허한 자세로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섬겨 오던 신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후 하루 속히 다른 종단의 교도들과 하나 되어 일할 때 하나님도 나도 그대들을 높이 찬양할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차근히 통일원리를 정독하고 분석해 보라. 나도 원리 세미나에서 통일원리는 인생의 참다운 지침서임을 깨닫고 마음을 활짝 열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지름길을 택하여 짧은 인생 길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1. 4. 9-
(5) 소크라테스님의 메시지
내가 원로들로부터 배신을 받게 되고 내가 주장하던 모든 이론이 그들 시민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하더라도 한 인간의 생명을 좀 더 소중하고 고귀하게 여겼더라면 하는 생각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그것은 인간의 한 생명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갓 미물까지도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거친 창조물인데 인간은 하나님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온갖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던가.
하나님의 자녀로 지음 받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지상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부모와 자녀는 항상 그리움 속에서 서로의 만남과 이별에 대하여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가. 부모와 자녀는 한 집안에서 사랑을 나누며 대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도 그렇게 살기를 원할 것이다. 인간의 창조주로 계신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요 정의 덩어리 자체인데 인간 창조 이후 잘못된 역사가 흘러오는 가운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지성인들이여! 나는 아테네 배심원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배신당한 사나이였다. 당시의 억울함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곳 하나님 곁에 와서 보니 더욱 슬프고 억울하고 분한 것이 하나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보다 더 슬프고 억울한 사정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부모를 몰라보았고 인간을 지극히 끔찍이 사랑해 오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고, 유구한 세월 동안 자녀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픔을 우리 인류가 몰랐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소크라테스의 아픔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지성인들이여!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지식과 학문을 자랑하며 살아가던가.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부자의 관계를 회복하며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학문의 발견보다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서 지상에서는 모든 지성 사회의 중심의 자리가 대단히 소중한 것임을 내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자신의 부모를 소중하게 모셔야 하는 것은 어느 것에도 비길 수가 없음을 명심하라. 이곳 하나님 곁에서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은 나의 부모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혈통의 자리가 최고 순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성인들이여! 육신은 지상에 있을 때만 필요하며 여러분의 가지고 있는 지식과 학문 또한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입적할 내세의 준비를 위해서도 내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너무 무지하여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신의 학문에만 집착되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었다면 그 영혼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문제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내세는 틀림없이 존재하며 우리 영혼은 이곳에서 영존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영혼은 이곳에 머물 곳이 없다. 지상에서 길거리의 걸인을 보았는가. 걸인은 자기의 처소가 없기 때문에 길거리가 자기 처소인 것이다. 여러분의 영혼은 머물 처소를 지상에서 준비해야 한다.
나의 지상생활에 있어서 인간의 외적 학문과 지식도 소중하였지만 그보다 인간의 내적 양식과 진리, 소위 철학을 항상 추구했다. 이것을 밝히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모른다. 지상에서 순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진리를 추구하다가 지성인의 자리까지 골인했다. 어찌 영원한 처소까지 오는데 수고와 노력의 대가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 수고와 노력과 투자의 결실이 이곳에서 영원한 행복의 자리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지성인들에게 이렇게 부탁할 수 있기까지는 여러 번의 쓴 고비를 통과했다. 그것이 뭐냐. 이곳도 지상과 같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종단들이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지성인들의 모임 좌석에서 인생이 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원리강의를 듣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새로운 진리를 접하였는데, 그것은 인간의 근본 삶을 깨우치는 진리였다. 이 진리에 의해서 참으로 놀라울 만큼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여러 차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이 진리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것이 진리가 아니길 바랬다. 이 엄청난 원리가 어디서 나왔는가를 알게 되면서 여러 차례 마음의 갈등이 일어났다. 지성인으로서 위신과 체면이 송두리째 달아나 버리는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 진리가 사실인데 어찌하겠는가. 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 지성도 자존심도 모두 버렸다. 그리고 이 진리 앞에 모든 것을 투자하기로 작정하고 지상의 여러분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지성인들이여! 내가 가지고 있는 지성을 총동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성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아무런 생각과 계획 없이 만물이 뚝딱 생겨났겠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성과 능력을 모두 팔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지성을 살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의 힘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 있겠는가. 과학의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이다.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뿐인가. 지금 리포트 하는 여인은 지상인이요, 나는 영인이다. 이 사실을 지상인은 이해하겠는가. 이 사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때가 되었으니 하늘의 천비를 지상인에게 알리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함이다.
이 곳 영계는 하나님의 사정을 확인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간단하게 해결된다. 방향도 한결같이 동일하다. 그러나 지상인에 있어서 모든 것이 대단히 복잡할 것이다. 그것은 방향 설정이 바르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성인들이여! 하나님은 자녀를 바르게 세우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애쓰고 계신다. 여러분, 하나님을 보았는가. 하나님은 무형이며 체가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자녀를 찾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념은 수천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지상에 문선명 선생님을 보내고 인간이 걸어가야 할 방향 설정을 위하여 통일원리를 우리 인류에게 밝혀주셨다. 그 원리는 인간의 지성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고 문선명 선생께서 하나님과 논의하며 사탄과 혈투전을 벌이며 찾아내신 인간의 구세서이다. 그것을 정독해 보라. 그곳엔 인생의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을 정독해 보라. 그렇게 하면 여러분의 지성이 여러분의 영혼을 어느 정도 일깨웠는지 분석할 수 있을 것이며 여러분의 생활을 어떻게, 삶의 방향을 어디로 정해야 할까를 깨닫게 될 것이다.
지성인들이여! 여러분들이 생각한 위대한 인물, 위인이나 존경의 대상은 누구인가. 자문자답해 보라. 그들의 대부분은 지상 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남긴 위인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내세의 삶까지 책임져 주려는 위대한 스승은 아직 찾지 못했을 것이다. 문선명 선생님은 우리들의 내세의 영존을 깨우쳐 주시고 우리들의 영혼까지 책임지려는 하나님의 대신 사명을 가지고 인류 앞에 영원한 평화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
그분을 연구해 보라. 그리고 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 있는가를 비교하고 찾아 보라. 만약 지상에 오신 위대한 스승으로서 이보다 더 큰 스승이 없었다고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심각한 자리요, 심각한 시간이요, 여러분의 인생에 중대한 결단을 요하는 시간이다. 인생은 길지 않다. 내세는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참 스승을 만나서 내세를 연구하고 준비함이 현명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여러분의 학문도 지성도 하나님에겐 필요하지 않다. 겸허한 자만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 수 있다. 그분의 위대한 진리를 배우고 내 것으로 소화시켜 영원한 이곳에 올 때 무지한 걸인의 신세는 면해야 할 것이다. 최고의 지성인은 하나님을 자신의 부모님으로 모시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만이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2001. 4. 10-
(6) 성 어거스틴님의 메시지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알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고 어리석은 자리에 서고 말았다. 나는 하나님을 부모의 자리에서 모시지 못하고 다만 최고의 신으로 모셨으며 부자의 관계는 염두에도 두지 못했다. 나의 신앙과 사상은 하나님 앞에 지극히 작은 가치로 남아 있을 뿐이다.
지상에서 열심히 신앙하는 기독교인들과 여러 종교인들이여, 여러 차례 4대 성인들이나 성현들의 글을 읽고 많은 각성이 있었으면 한다. 우리 성현들과 4대 성인들의 모임은 주기적으로 열린다. 이곳 영계에서 종단의 모임을 갖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여러 차원으로 분열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상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지상인들은 예수님은 기독교인만을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종단의 대표자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각 종단의 교리와 가르침에 대하여 각자의 견해를 교환한다. 결국,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각 종단을 두루 다니면서 신도들과 대화를 하고 함께 예배를 본 후, 상호간 경험한 사실을 중심하고 4대 성인들과 성현들은 세미나를 갖는다. 그때 다양한 주제들이 상정되지만 우리는 서로 화기 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주제들을 논의한다.
여기에서 참으로 흥미로웠던 일이 있었다. 예수님이 석가님의 말씀에 흠뻑 빠져서 열심히 들으신 후 그 말씀을 불교인들이 모인 다른 장소에서 그대로 전달했다. 이때 불교인들은 “예수님은 기독교의 교조인데 우리 스승의 가르침을 전달하느냐”고 질문을 했다. 예수님의 대답이 아주 재미있었다. “나도 석가 부처가 될 수 있는지 시험해 봤다”고 하셨다. 이 때 여기에 모인 여러 영인들은 함께 웃었다. 예수님은 정말 아무런 욕심도 사심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만 바라시는 순진무구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태도에 여러 불교인들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종교인들이여!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진리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분뿐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요 우리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수많은 종파들이 존재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각 종교마다 갖고 있는 진리의 핵심을 요약해 보라. 궁극적인 종착지는 한 방향뿐이다. 각 종파의 장점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공통 목적 아래 통일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 자녀들을 바라보고 기뻐하시겠지만 그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지 않겠는가. 자녀들이 서로 화목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한다.
우리 4대 성인들과 성현들은 세미나에서 마지막 결론을 얻었다. ‘우리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자’고 결의했다. 먼저 천상의 종단 대표자들이 하나될 때 비로소 지상도 하나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종교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도 편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평화는 하나님의 이념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종교인들이여! 여러 성현들과 4대 성인들의 메시지를 명심하길 바란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황금 시대는 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지상인에게 천상의 비밀을 계속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에 의하여 내려진 이 황금기를 여러분은 잘 맞이하여 신앙의 본질과 근본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바르게 서라.
어거스틴의 마지막 부탁이 있다. 수많은 기독교인과 지상의 종교인들이여, 지상에서 인류 평화를 위하여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는 한 스승이 계신다. 그 분은 문선명 선생님이시다. 그러니 그분을 진심으로 영접하라. 4대 성인들과 성현들 모두는 그분의 메시아 사상을 굳게 믿고 그 스승의 길을 같이 갈 것을 굳게 다짐하였으며, 이곳에서 오직 하나의 방향을 설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랑하며 존경하며 모든 종파를 초월하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문선명 선생님의 사상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인류 평화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이여, 다투지 말라. 서로 하나로 화합하라. 하나 된 곳에 하나님은 함께 할 것이다.
-2001.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