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총서
전편
제2장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제3장 인류역사의 종말론
제4장 부활론
제1절 부활의 의의
제2절 지상인의 부활
I 소생 부활섭리
II
장성 부활섭리
III 완성 부활섭리
제3절 첫째 부활
제4절
재림부활에 의한 영인들의 부활
제5절 재림부활로 본
윤회설
제6절 재림부활에 의한 종교통일
제5장 타락론
제1절 죄의 뿌리
제2절
천사장과 해와의 타락과 아담의 타락
제3절 천사장과 인간시조가 원리를
탈선하게 된 원인
제4절 자유와 타락
제5절 타락성 본성
I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함
II 자기의 위치를
떠남
III 주관성 전도
IIII 범죄행위를 전가함
제6절 사탄과 타락인간
I 천사장 누시엘과 사탄
II 인간세계에 대한 사탄의 활동
제7절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의 타락행위를 간섭치 않으신 이유
I 창조원리에 그의 절대성과 완전무결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II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III 인간을 만물의 주관위에 세우시기 위하여
제6장 복귀섭리에서 본 예정론
제1절 예정의 의의
제2절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
제3절 예정설에 근거되는 성구
제7장 엘리야로 재림한 세례요한과 예수의
재림
제1절 복귀섭리로 본 엘리야와
세례요한
I 엘리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세례요한
II 예수를 인간적으로 대한
세례요한
III 세례요한이 엘리야 된
이유
제2절 복귀섭리로 본 예수의 재림
I 재림예수는 어떻게 오실 것인가?
제8장 기독론
제1절 생명나무 복귀로 본 아담과 예수
제2절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의의
제3절 로고스의 이성성상으로 본 아담과 예수
제4절 탕감복귀원리로 본 예수와 성신과 중생의 의의
제5절 삼위일체론
후편
사위기대 복귀를 중심한 인류역사 탕감복귀 섭리노정
서론
제1장 복귀기대 섭리시대
제1절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제2절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제3절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
I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II 아브라함의 이삭 실체헌제
III 야곱과 에서에 의한 사탄 재분립
제2장 복귀섭리시대 (2000년)
제1절 애급고역시대(400년)
I 복귀섭리로 본 야곱노정의 의의
II 애급고역시대의 의의
III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
1. 모세노정의 의의
2. 예수의 복귀섭리노정으로 표시된 모세의 출애급노정
3. 40일 복귀섭리로 본 모세노정
제2절 사사시대(400년)
제3절 통일왕국시대(120년)
I 성전이상을 중심한 복귀섭리
II 복귀섭리로 본 성막의 의의
제4절 남북왕조 분립시대(400년)
제5절 이스라엘민족 포로시대(70년)
제6절 이스라엘민족 귀환시대(140년)
제7절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400년)
I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1. 예수의 40일 금식기도와 3대시험의 의의
2. 예수의 십자가의 의의
제3장 복귀섭리연장시대(예수이후
2000년)
제1절 로마제국
박해시대(400년간)
제2절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400년~800년)
제3절
기독교왕국시대(800년~918년)
제4절
남북왕조분립시대(919년~1305년)
제5절
교황포로시대(1305년~1375년)
제6절
교황귀환시대(1375년~1510년)
제7절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1517년~1917년)
I
종교개혁기(1517년~1648년)
1. 복귀섭리로 본 종교개혁의
의의
2. 복귀섭리로 본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II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1648년~1800년)
1. 가인형의
인생관
2. 아벨형의 인생관
III 정치와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1801년~1920년)
1. 정치와 경제의 성숙
1) 불란서혁명과 영국산업혁명기 (40년)
2) 열국의 강화기(40년)
3) 열국의 식민지 분할기(40년)
(1) 탕감복귀로 본 세계대전의 필연성
2. 사상의 성숙
제4장 복귀섭리
완성시대(1920~)
제1절 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과
제3차대전의 의의
제2절 6000년 복귀섭리의 최후의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풀릴 것인가
제3절 언어혼잡의 원인과 그 통일의
필연성
제4절 말세에 처한 한국민족의 사명
역사는 오늘 새 시대를 고하는 유언을 하고 있다 막달은 길에서 몸부림치는 인류죄악사를 청산하고 새 역사를 꾸며야할 선구자들의 심령에는 각일각 불안과 공포의 압박감이 짙어가고 있다.
인류역사를 꾸며내려온 선과 악의 두 주권의 세계는 이제 한 점에서 교차되어
몸서리치는 긴장속에 소용돌이치고 있으며 또한 여기에 휩쓸려 혼란에 빠진 인류는 생명과 사망의 접선에서 방황하고 있다.
어디로부터 어떻게 그리고 왜 오는지도 모르는 이 불안과 공포의 전율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심령들이 애처롭게도 한줄기 삶의 빛을 찾아 헤매는 아우성소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몸에서 몸으로 급속히 파급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꺼져가는 생에 굳이 희망의 불꽃을 돋우려다 실망해버린 심령들이면서 오히려 다시
형세 이미 기운 옛 심지를 부둥켜안고 밤새워 우는 모습이야말로 숨길 수 없는 현대인의 생태인 것이다.
새 시대를 담당해야할 끝날의 성도들이여 이제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세로운
역사의 전개를 말하는 낡은 역사의 최후의 유언)을 들으라. 낡은 역사가 축출을 당하는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돌아가고 있는 기독교를 비롯한 오늘의
모든 종교는 갈라질대로 갈라졌고 기진하여 마침내 진퇴유곡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여기 역사는 체념을 토로한다. 이제는 인간으로서 달릴 길은 다 달려보았노고.
진실로 그러하다 오늘까지 수천년동안 지상의 모든 성도들은 성서 한 권을 가지고 자기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기도의 호소도, 교리의
싸움도, 기독정신을 지향하는 어떠한 종교운동도 그리고 그 밖에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고 믿어지는 어떠한 길도 다 달려
보았다.
교단이 깨지도록 발을 구르며 외쳐온 어떠한 설교도 이제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내적 생활의 실천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으켜주지 못한다.
새로운 면을 개척하는 듯하면서도 실은 이미 선인들이 실패하고간 그 길을 한번
더 되풀이할 따름이다. 있는 힘이 다하도록 찾아온 인지의 극한은 마침내 오늘 궁경에 도달하였으니 이제는 더 이상 땅으로 쫓아오는 어떠한 말에나
글에도 이목을 기울이지는 않을 것이다.
창세시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야할 새 시대를 해산하려는 너 신부들이여 이제는 진통을 막아 주려는 어떠한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말고 어서바삐 잉태한 새 시대의 왕자를
해산하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곳은 하늘이 아니고 땅이었다.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 위에 흙과 물과 공기로써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식하라고 축복하신 것이다(창 1/28). 만약 아담과 해와가
타락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대로 죄없는 자녀들을 생육하고 번식하여 창조이상의 지상세계를 실현하였다면 이 세계는 다시 무형세계와 영원한
일체적 이상을 이루어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깃들 수 있는 에덴동산은 완전히 실현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창조의 첫 목적은 인간으로 비유하면 몸과 같은 지상의 에덴을
이루려는데 있고 (전편 제3장 참조) 다음으로는 마음과 같은 무형세계의 천국을 건설하여 마치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움직이는 마음의 명령에
의하여 몸이 순응함으로써 마음과 몸이 일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동하고 정하는 천국에 대응하는 지상의 에덴을 건설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두 세계가 유기적인 일체를 이루어야할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지상에서의 이 창조의 첫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으로 창조의 전체적인 목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음은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내가 말하였으매 또한 이루게할 것이요 내가 경영하였으매 또한 행하리라」(사
4/11)고 하신 말씀대로 예언과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인간을 창조하시고 약속하신 그 축복의 말씀을 무시하시고 말
것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창조의 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지 않는 한 창조주로서의
위신을 만우주 앞에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창조의 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려면 역시 창조의 첫 목적인 지상의 에덴을 먼저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구원의 역사는 지상에 에덴을
재건하려는 복귀섭리의 노정을 이루어나온 것이다. (전편 제3장 참조)
우리는 이제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을 찾아야 한다. 밭에서 알곡을 거두지 못하면
고간에 알곡이 있을 수 없는 것같이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하늘에 천국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땅 위에 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오셨었고 또 오셔야 하기 때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지상에 오고간 수많은 성도들이 피흘려 싸운 목적도 여기에 있었건만 그들은 이
근본 뜻을 모르고 다만 싸움의 실적만을 남기고 갔으니 그들이 남긴 유업을 이루어야할 것이 또한 끝날의 성도들에게 맡겨진 사명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기독교통일을 표방하고 나선 목적도 이 사명을 완수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라는 것은 타락되어 진리를 잃어버린 인간을 다시
진리완성체로 이루는 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그 수단과 방법을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놓아 주리라」(요 8/32)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를 사탄의 구속에서 해방해주는 섭리는 오직 진리를 알게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섭리의 대상인 인간은 항상 역사가 흐름에 따라 흐르고 있다. 과학의
발달에따라 이지와 이성의 발달이 있고 생활환경의 변천이 있으며 그에 따라 심령의 변화에도 동일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국한된 시간권내에서
어떠한 개체를 두고 생각하면 심령이 지향하는 방향은 과학의 발달이나 생활환경의 변화에 호응되지 않는 방향을 취하는 것같이도 보여질 때가
있다.
즉 과학의 발달과 그에 따르는 생활환경의 변화가 역사의 전체적인 목적과
부합되지 않는 입장을 취할 때에는 역사의 목적에 순응하는 개체에 있어서는 그러한 현상이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심령의 동향은 역사가 그 전체적인 목적을 향하는 움직임에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대를 따라 변천하고 있는 인간을 진리에로 인도하는 수단과 방법이
구원의 섭리라 할진대 인간의 변천에 따라 구원의 섭리도 변천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유일이며 영원하고 불변해야할 것이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이 진리에로 인도하는 구원섭리는 시대를 따라 그 형태를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전시대에 있어서는 자연이외의 것으로는 하나님을 대하는 길을 찾지
못하던 인간이었으므로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고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율법으로써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내려온 것이며 신약시대에는 메시아를 믿는 믿음으로써 구원의 섭리를 하신 것이다. 같은 시대에 있어서 동일한 민족에 대하여 동일한 목적을 위한
예수님의 말씀도 사람에따라 그 각도를 달리하셨으니 이것은 진리자체인 예수님은 변함이 없으나 진리를 대하는 인간이 각각 다름으로 이 인간을
진리에로 이끌어가는 수단과 방법인 말씀도 따라서 달리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의 말씀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시지 않고 자기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곧 예수님 자신의 절대성과 구원섭리를 위한 말씀의 상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른바 성서는 촛불과 같은 것이니 방안의 형편과 보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크게도 적게도 적응되어야할 촛불은 아침 햇빛이 완연히 비칠 때까지 방안을 밝혀주다가 꺼지면 촛불로서의 사명은 다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숨은
진리를 캐어내기 위한 도구로 주신 성서가 의미하는 근본진리는 그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가 말하고 있는 그 뜻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자에 붙들려서 그 뒤에 숨어있는 뜻을 놓치면 구약성서의 문자에 붙들려서 예수님을 살해하던 유대인들과 똑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서의 문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범위는
구약성서로는 율법에 의하여 신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기 위한 외적 신부단장을 하는데까지요 신약성서로는 믿음에 의한 내적 신부단장을
하는데까지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있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아니된다. 신부는 결혼식상에서만 불리워지는 이름으로써 거식 도중에서도 갈라질 수 있는 불안한 운명에 처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으매 그 아내가 벌써 예비되었으니」(계
19/7)라고 기록된 말씀대로 우리는 신부의 입장을 거치어 천국생활을 영위하는 아내로서의 입장에까지 들어가야한다.
이와 같이 구원의 목적은 구원 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아내로서 천국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려는데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이에 관한 아무 말씀도 밝히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으니 (요 3/12) 이것은 인간들이 이 말씀을 감당치
못할 것을 염려함에서였으며(요 16/12) 또 아내로서의 천국생활은 신약시대의 것이 아니고 신구 약속이 이루어지는 다음시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부단장을 하여오던 신약시대는 끝나려하고 있으며 아내로서의 준비를 해야될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오늘의 모든 신도들이 자기도 모르게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새 시대를 출발해야할 아내로서의 행장을 위한 새로운 길이다.
마치 신앙으로써 내적인 신부단장을 하여 예수를 맞아야할 유대인들이 아직도
율법에 의한 외적인 신부단장을 일삼고 있는 제사장과 교법사들의 말로서는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하여 천륜의 반역자로 각인을 찍은 예수님을 따라
연일연야 먹을 것도 먹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던 것과 같이 오늘의 독신자들도 이제는 신부단장을 일삼고있는 어떤 지도자의 말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아내로 서야할 새로운 길을 찾아 산으로 들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이 길을 찾는 간절한 마음이 심각해질수록 그 결과는 교파분열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기독교의 분열은 지금까지 많은 신도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신앙생활의 잘못이나 기도생활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자체의 성격에 의하여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까지도 감당치 못할 것을 염려하여 못다 하시고 가신 말씀이
있는 것같이(요 16/12) 하나님도 무지한 인간에게 직접 교시치 못할 하늘의 비밀을 나타내실 때에는 반드시 상징이나 비유로써 하셨으니 이것은
때아닌 때에 때의 것을 암시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어느 시대의 어떤 환경의 사람에게든지 그 지능과 심령의 정도에 의하여 탐지할
수 있는 목적을 달성케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러한 목적으로 주신 상징과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그 말씀의
본 뜻을 찾고자하는 성심이 높아가면 갈수록 찾는 자들이 처한 시대와 환경과 그 지능이나 심령의 명암의 차에따라 그들이 찾아 나아가는 각도가
달라질 것은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어느 누가 성서를 떠난 신앙생활을
하려는 신도가 있으랴마는 나날이 교파가 분열되어가는 것은 성서의 말씀이 비유와 상징으로 남아있는 한 불가피한 현상이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문자에 집착된 고루한 교리에 속박을 받을 때는 반드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그 시대에 있어서 정통이라고 보여지는 교리로써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가 연속적인 형태로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분열은 반드시 두 길로 귀결되는 것이니 하나는 멸망이요 하나는 새로운 방향으로
지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서 움직이는 기독교라 할진대 그의 분열로 인하여 소멸될 수는 없을 것이니 이는 기독교의 통일을 위한
태동적 현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같이 나날이 분열되어 싸우는 교파가 통일이 되려면 마치 구약성서의 숨을
뜻을 밝히기 위한 신약성서가 나온 것같이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된 성서의 근본진리를 밝히기 위하여는 누구에게나 공인될 수 있는 진리 표현의 또
하나의 새로운 형식이 나오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니 이 것이 바로 상술한 바와같이 아내로서의 생활을 어떻게할 것인가를 밝히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때가 이르면 비유가 아니고 밝히 가르쳐 주시마하셨다(요 16/25). 그러면 이러한 근본진리라면 이것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해결해 주어야할 것인가를 알아보기로하자.
이 근본진리는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된 성서의 모든 미지의 사실을 명백히
들어냄으로써 암운에 싸여 진리의 근본을 찾아 헤매는 모든 인간들을 광명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성서를 인간에게 주심은 성서의
근본진리를 인간에게 알려 주시기 위함이므로 이것을 나타내어 밝히 보여주지 않는다면 성서의 목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국의 비밀을 찾으려고 어둠의 길을 헤치고 또 헤쳐나오던
모든 성도들이 한 줄기 하늘의 빛을 보면 이것이 곧 천국의 전모인 것으로 알고 고집하여 드디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분열을 일으키고 있으니 바로
이제는 수학을 푸는 공식과 같이 성서의 미지의 부분을 누구에게든지 꼭 같은 방식으로 동일한 해답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원리가 나오지 않으면
아니된다. 아직도 우리들의 하늘 가는 길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이 있다. 모르는 것을 묻어 두는 것이 신앙이라고 억제하는 덕에 그래도 불평을
품은대로 우울한 심정을 눌러가면서 그럭저럭 신앙이란 형식만을 버리지 못하고 유지하여왔다.
하나님은 천주를 어떻게 창조하셨으며 또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과 인간과 그리고
만물세계와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은 무엇이며 이 목적과 타락된 인간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인간의 타락은 어떻게 된 것이며 타락인간의 부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계시록을
이루어내려오는 인간역사는 지금 계시록의 몇장까지 이루어졌는가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역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이스라엘 선민은 어찌하여 그렇게도 비참한 민족이 되었는가 타락행동을 하는 인간을 어찌하여 모르시는 척 방임하셨다가 다 타락된 후에 다시
구원하려하시는가 삼위일체는 무엇을 의미하며 예정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투쟁역사는 왜 벌어지며 또 그의 목적은 무엇이며 따라서 역사의 종말은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하나님은 하필 외아들로 보내신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써 구원의 역사를 하셨으며 또 다시 오실 필요는 어디 있는가
십자가로써 완전한 구원을 받아 모든 죄를 벗어버릴 수 있다면 어찌하여 믿지 않고는 천국 갈 수 없는 죽은 자식을 낳으며 또 믿음으로써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어찌하여 타락성이 그대로 남아있는가 하나님은 어찌하여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고 아벨의 제물만을 받으셨는가 노아가정의 여덟식구를
택한 이유는 어디 있으며 방주는 무엇을 의미하며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모세와 같이 예수 앞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영계에 있을 것인데(마
17/11)예수께서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한 이유는 어디 있는가(마 17/12~13). 부끄러워했다는 사실 어찌하여 노아심판의 전 목적을
전복시켰는가(창 9/20~25) 노아심판 40일을 위시하여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400년, 이스라엘 애급고역 400년, 모세의 바로궁중생활
40년, 미디안 광야생활 40년, 가나안 정탐 40일, 모세의 두 차례에 걸친 40일 금식기도, 사울왕 40년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
엘리야 호렙산까지의 40일기간, 예수의 금식기도 40일, 부활기간 40일, 너느웨 멸망에 관한 요나의 40일 예언, 아담으로부터 예수까지의
4000년 등등 이 모든 40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라함이 비둘기 쪼기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애급에서
400년을 고역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모세가 반석 두 번 친 것이 어찌하여 약속된 가나안복지까지 못들어가게된 원인이 되었는가 야곱의
12자식을 중심한 40가족과 모세의 12지파를 중심한 40장로와 예수의 12제자를 중심한 70문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12소선지며
12진주문이며 12개월이며 12시간 등은 다 어떻게된 것인가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신이며 저 나라 삼층천이며 노아방주 3층이며 요나의 고래뱃 속
30일기간, 아브라함의 이삭제물 드리는 3일기간 야곱이 라반을 속이고 나오는 3일기간, 모세가 바로를 속이고 나오는 3일기간, 모세의 결례
3일기간, 예수의 무덤 3일기간, 아브라함의 세가지 제물이며 예수 앞에 3제물, 삼대시험, 십자가전 3차기도, 십자가후 3시간의 어둠, 30년
준비기간, 3년 공생애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3차거부, 예수 부활후 베드로에 대하여 사랑에 관한 3차의 연속질문 등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어찌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3대의 하나님이라고 하는가 이와같이 얼마든지 품을 수 있으니 또 당연히 풀어야할 의문들을 적확히 풀지
못하고 남겨놓은 채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전한 신앙관을 세울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근본진리가 해결해주어야할 문제는 무형세계(영계)에서 더욱이 최근에
맹렬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영적 현상에 상응하여 지상세계에 벌어지고있는 제반 신령역사를 성서를 중심한 일관된 논리로써 해명해주지 않으면
아니된다.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하여 우리의 지성이 얼마나 필요한가하는 것은 재론할 여지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라 지성을
더욱 요구하게된 현대 문명인들에게 있어서랴. 바른 지성의 터 위에 바른 신앙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는 신학을 연구하고 교리를 세우며 기독교사를
통하여 지상에 벌어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연구하는데 심혈을 경주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지각은 실증적이며 또한 논리적 형식으로 세워진 진리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기도로써 성령을 받으려는 것도 성령에 의한 영적 체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지각을 높이기 위함이니 이것이 곧 신령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요 4/23)하심은 영적 육적 양면으로 하나님께 대한 지각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적육적 양면으로 오는 지각의 정도에 따라 신앙의 도는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술한 바와 같이 인간은 시대를 따라 변동되고 있음으로 2천년 전
인간과 오늘의 인간과는 교육에 의한 이성과 지능의 정도 과학의 발달에 의한 생활환경 구원섭리에 의한 심령의 명암에 있어서 현격한 차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뇌성벽력의 소리만 들어도 이것이 하나님의 노발로 알아 자과를 통회할 정도로 무지하던 예수이전시대의 인간에게 주신 구약말씀이나 또
2천년전 예수당시의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지각을 높이게 하기 위하여 주신 신약말씀 그대로를 가지고 오늘날 20세기 문명인들로 하여금
동일한 목적을 완전히 달성케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
하나님은 진리에 의하여 우주를 창조하셨음으로 비과학적인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과학에 의한 피조물의 정수로서 창조된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의 언어형식 사고방식 생활양식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과학적인 근거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이요 논리적이요 따라서
실증적 체험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아니된다.
본론으로써 밝혀질 문제이지만 무형세계도 역시 유형세계와같이 원리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영적인 현상이 육적인 인식에 이르는 과정도 원리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무형세계로부터 영적인 현상이 원리적
과정을 통하여 생리적인 현상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이 신령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것을 논리적인 진리로 정리하여 체휼하지 못하면 과학적인
무형세계를 인식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것은 소위 신비주의로 흘러 나중에는 혼돈되어 사탄의 역사로 돌아가기 쉬우며 또 진리를 신령한 것으로
체험하여 이것을 실증하지 못하면 지적으로 신앙을 찾으려는 현대인들에게 신앙심을 높여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리는 열과 빛과 같이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목적을 위한
양면의 현상으로서 어느 하나를 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신령한 기도에 의하여 영적기준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응할 수 있는 기준에 이른
사람들은 비로소 영적으로는 신약섭리의 한계를 넘어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독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신령역사는 새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있는
진리로 정리하여 체휼하여야될 것인데 아직도 진리면에 있어서는 신약섭리의 것에 집착되어 있음으로 신령과 진리에는 시대적인 저어를 일으키게 됨으로
이것은 심신의 고민으로 나타나고 마는 것이다. 내세가 가까워짐에 따라 기도의 열이 치열하여 심령의 기준이 높아질수록 성도들의 마음은 점점 더
클클하고 안타까워지게되어 심지어는 공포증과 불안에 사로잡히게까지 되는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영계를 통하여 무형세계에 관한 것을 발표한 사람들도 적지 않으나
그들이 체험한 영계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도의 심령에 반영될 수 있는 범위내에 국한되어있으며 또 보여지는 그때의 현상만을 그대로 체험하였기
때문에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여 시대를 따라 민활히 움직이고 있는 무형세계가 전체적인 현상의 근본원리에 관하여는 언급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물론 다음 시대의 정리에 속하는 것임으로 신약성서로서도 발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울의 삼층천에 관한 체험은 그렇게 피상적인 것은 아닐 것이었으나 그 내용에 관하여는 일절 언급치 않았을 뿐아니라 그 체험조차 남의
것으로 발표한 것도 이러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대로(행 2/17~21) 지금은 영을 물부어 주시듯하여 예언과 방언을 하는
사람 영계에 입신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나 그들에게 보여지는 내용은 다음 시대에 이루어질 천륜의 비밀에 관한 것이 표징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제3자는 물론이어니와 자신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있다.
영통하는 사람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조소와 비방을 받아 억울한 은퇴의 생활로
떨어지게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계를 통하고 있는 성도들 끼리도 서로 상충을 일으키어 대립되고있다. 시대를 따라
움직이는 굉대무변한 영계를 대하고 있는 성도들은 그의 심령의 형과 명암의 심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영계의 부분적인 사상을 전체로 오인하기
때문에 각기 자기의 것을 중심하고 보면 다른 사람이 체험하고있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서를 중심한 현교계가 혼란중에 있는 것같이 영계를 통하고있는
성도들도 혼돈중에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을 모두 하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는 무형세계의 전모와 이에 대응되어 움직이는 복귀섭리의
전모를 밝혀주어야 그들이 지향할 수 있는 공통한 목표를 세우고 같은 공식에 의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섭리노정을 따라가게될 것이다. 이와같이
오늘의 성도들이 자기도 모르게 요구하고있는 것은 하나님의 실존과, 무형세계와 유형세계에 관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를 성서를 중심하고 과학적인
논리로써 해명하여 이것을 다시 체휼로써 실증케하는 진리일 것이다.
다음으로 이 근본진리는 역사이래에 양심의 도리를 세워나온 어떠한 종교라도 전부
포섭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는 진리가 아니면 안된다. 물론 참길이요 참진리요 참생명은 오직 한분 예수님뿐임으로 그로 말미암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의 전체적인 섭리를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이외의 민족에 있어서는 그 시대와 그 환경에
처한 그 민족에게 적의한 종교를 두어 양심의 터를 넓혀가면서 장차 메시아의 도를 받을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신 것이다. 모든 종교의 목적은
전인류를 그리스도 앞으로 몰아내어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건설되는 창조이상세계를 실현하여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하려는데
있는 까닭이다.
오늘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는 한 인류의 평화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대양으로 흐르는 본류에서 보면 지류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으나 그것은 모두 본류에로 합하여 대양으로 들어가기
위함인 것과같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관계도 그러한 것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성서를 중심하고있는 지금까지의 기독신자들의 시야는 그렇게 넓은
범위에까지는 미칠 수 없는 것임으로 그들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진리가 나와야할 것이다.
기독교는 오늘 명실 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통일이
없이 어찌 종교통일이 있을 것이며 종교통일이 없이 어찌 인류를 하나의 뜻 가운데 세울 수 있으며, 인류를 하나의 뜻 앞에 세우지 못하고 어찌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질 것인가? 그러므로 기독교의 전교파를 통일할 수 있는 교리이면서 바로 다른 종교의 교리의 핵심으로서도 세워질 수
있는 하나의 근본진리가 나타나지 않으면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을 다시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만일 타락되지 않았더면 각자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종적 관계를
갖게됨으로써 인간사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동일한 명령에 의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횡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기체가 될 것이었는데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종적관계가 끊어졌으므로 한진리로써 맺어져야할 횡적관계에는 전체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통일성을 상실하게된 것이다.
인간사회의 비애는 이렇게 되어 빚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을 다시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근본진리라면 이것은 반드시
신령의 역사를 유발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무형세계와 교통케하여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데까지 이끌어 올릴 수있어야하며 따라서
이 진리에 의한 신령의 역사는 타락인간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근본적인 인격변화의 힘을 갖추게하여 모든 인간들을 한 뜻가운데서
얽히어질 수있도록 횡적인 관계를 맺어줄 수있어야한다. 이러한 의식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면 어떠한 신령과 진리라 할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섭리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못할 것이다.
오늘에 있어 많은 기독신자들이 불신자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되는 것은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바른 진리에 입각한 신령역사로써 일어나는 인격변화의 힘을 결하였기 때문이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마 26/41)고
하셨으니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인류를 하나의 뜻 앞에 통일할 수 있는 근본진리라면 이 진리는
전인류의 마음을 하나님의 한 명령에 움직일 수 있는 입장에 세워줄 수있어야하며 또 그들의 몸으로 하여금 그 마음의 명령에 순응케하여 몸과 마음이
아울러 하나님의 한뜻을 지향하여 나아가게할 수 있는 힘을 줄 수있어야한다. 의무를 실천할 수 있는 단순한 의지의 힘도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끝까지는 믿을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여 아니가려야 아니갈 수없이 우리를 몰아내는 위로부터의
다른 힘을 누구에게나 부여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면 하나의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구비한 근본진리를 중심하고 일어나는 운동은 의전이나 조직이나
어떠한 형식에도 구애될 바가 아니다. 생명있는 운동이라면 조직없는 조직과 형식을 초월한 형식에 의하여 명령도 권유도 요치 않고 자율적인 질서가
이심전심으로 정연하게 잡혀질 수 있어야하며 가슴에서 가슴에로 말없이 흐르는 지극한 하늘의 사랑 가운데서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전개가
있어야한다. 우리들은 신령으로 열하고 진리로 조절하며 생활로 실천하여 한몸의 지체와같이 말없이 화동할 수 있는 원화의 세계로 옮겨져야
한다.
곤충도 빛을 찾아 모이거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진정한 화평과 행복과
희락과 만족의 고갈을 느껴 이를 찾아 헤매는 것이 타락된 인간의 모습이어늘 어찌 이렇듯 진리로 세워진 위대한 사랑의 힘에 감촉을 받아 끌리지
않을 것인가.
이와같이 진리를 찾아 헤메는 성도들이 마치 강한 자석에 끌려들어가는 철분과
같이 한곳으로 모여드는 데서 자율적으로 이 운동은 전개되어야한다. 주검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하셨으니(눅 17/37) 생명있는 곳으로 생명을
찾아 허덕이는 성도들이 아니 모일 것인가.
제물시대에서 구약시대로
바꾸어질 때에는 아브라함 한사람을 중심하고 형태가 다른 새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새 언약을 이루기 위한 선민을 불러세우는 역사는 아브라함
개체)의 사건으로 멎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바뀌어질 때에는 이스라엘의 한 민족을 중심하고 섭리하시던 시대가 세계인류를
중심하고 섭리하시는 시대로 옮겨졌기 때문에 모든 변혁은 민족적인 것이었다. 예수 이후 지금까지의 기독교를 중심하고 세계적인 복음운동의 시대는
천국건설의 시대로 옮겨져야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변혁은 복귀섭리로 보아 필연적인 현상으로 있어야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낡은 시대가 다 끝나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 속에서
새로운 것이 싹이 터서 그와 더불어 싸우면서 자라 꽃이 피고 열매 맺어야함으로 그 입장에서 보면 전혀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한 시대가 다른 시대로 전환될 때에는 반드시 혁명의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구약시대로 바뀌어질 때 그러했듯이 이제 신약시대가 종결되고 신구약속을 이루어야할 새 시대가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기 위하여는 종교의
일대변혁이 있어야한다는 것은 지난날의 복귀섭리노정이 말하여주는 필연적인 결론인 것이다. 이러한 섭리의 시대적인 혁명을 갖고 이제 6천년죄악사의
썩은 거름 위에 하나님이 천지창조 시에 인간에게 축복하셨던 약속을 이루기 위한 세 시대를 약속하는 종교혁명의 봉화는
들리었다.
이에 하늘과 땅에 사무친 유구한 역사의 설움을 거두려고 팔방으로 들어오는 모진
화살을 받아가며 역사상의 모든 선지선열들이 피흘린 자국을 터삼아 혈혈단신 신개지를 역보하시는 열혈청년이 있으니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하늘의 뜻을 받들고 나선 후 수십성상을 성서의 문자 뒤에 감추인 숨은 진리를
찾으시려고 예수님을 비롯한 낙원의 뭇 영인들과 또는 역사이래에 지상에 왔다간 모든 성현들과 자유로 접촉하시었고 때로는 하나님과 친히 교통하시어
하나님의 품 속에 감추인 천륜의 비밀을 찾아내기에 온갖 심혈을 경주하셨으며 때로는 억만의 사탄들과 혈투전을 겨루어 나오신
것이다.
극히 부분적인 것이나마 이 진리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이후의 일이며
더욱이 본서에 기록된 범위의 것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이에 발표되는 것은 지금까지 그의 제자들이 듣고 본 범위내에서 현재 그의
제자들이 매일 강의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분이 발표하시지 못하고 계시는 부분이 어느 정도이며 또 그것이
어떠한 것인가는 측량할 길이 없다.
그러나 기독신도들이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앞으로 새로운 말씀이 더
많이 발표될 것만은 확신하고 있다.
필자의 표현력의 부족으로 이 진리의 내의를 충분히 들어내지 못했음은 실로
유감된 일이다.
그러나 진리는 어디까지나 진리로서 표현의 부족으로 진리의 빛이 어두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같이 새 시대의 말씀은 이 한민족 가운데 던져져 낡은 역사를 청산하고 새 세계의 도래를 고하며 또 싸워 이루어야할 공전절후의
대사건은 이 한반도 위에 폭발되었다.
우리는 여기 4천년 구약시대와
2천년 신약시대를 합한 6천년 신앙의 터를 발판으로 하여 천륜의 채찍을 받아 선각자로서의 대명을 받고 일어난 것이다.
믿음에는 반드시 그 목적이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 이 목적이 이루어질 때를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목적이 이루어 질 때까지는 바라보면서 믿고만 있는 입장을 취해도 좋지만 그 믿음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는
믿고만 있는 입장을 떠나 그 목적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의 목적을 이루실 실체로 오실 메시아가 현현하실 때에는 어떠한
예배나 단식기도보다도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의 음성 한마디를 듣는 것이 더 귀중한 일이었던 것이다.
메시아를 알아차리는 데는 그를 맞기 위하여 머리가 반백이 되도록 성전을 지키며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하던 제사장이나 교법사가 아니었고 마음의 명령에 응하였던 세리와 창녀와 고기낚던 어부였으며 택하지도 않은 이방의
점성술자였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마음의 명령은 어떠한 교리나 전통보다도 앞선다. 교리와 전통에 붙들렸던
제사장과 교법사들은 메시아를 학살하였으나 이스라엘 선민의 반역자로 몰려 방랑객이 되어버린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를 순종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명령에 순응한 세리와 창녀와 어부들은 예비하신 하늘나라를 차지하였다. 복귀섭리의 나선형을 되풀이하여 돌고
있는 역사는 마침내 오늘 예수 당시의 시대적 환경을 다시 되풀이하게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다시 오실 메시아를 믿고 바라고만 나가던 2천년 역사는 이제 종말을
지으려하고 있으니 이제는 단식의 기도도 필요할 것이나 보다더 중한 것은 엘리야로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세례요한의 음성이 어디서 들리지
않는가고 찾는 그것이다.
메시아를 맞어야할 이스라엘 선민이 그러했듯이 메시아의 재림을 고대하는 오늘의
기독신자에게도 이제는 누구의 말도 들어서는 아니될 때가 왔다. 만일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에 관한 판단을 제사장이나 교법사에게
구하였다면 그는 메시아를 맞지 못하였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성전을 지키고 밤을 새우며 기도를 올리며 들에 심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까지도 십일조를
바쳐 교회를 받들며 주야로 남을 가르치다가 지옥에 가버린 제사장이나 교법사가 되지말고 어리석고 무식하고 못나서 천대를 받으며 죄인이라고 밝히워
살다가 하늘의 보좌를 차지한 어부가 되며 세리가 되며 창녀가 되며 죄인이 되어보자.
지난 역사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했듯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새 시대를 알려줄 수
있는 은사는 어떠한 신학자도 설교자도 수도자도 아닐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연해줄 수 있는 사다리는 오직 우리들의 속임없는 바른 마음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마 5/8). 이제 우리는 하늘 앞에 부끄럼없는 정결한
마음을 가졌는가 반성하자. 만일 그렇다면 기도로써 하늘을 대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에는 이에 발표되는 말씀의 진부가 알려질 것이다.
끝으로 독자에게 한말씀 부탁이 있다. 그것은 이 글의 내용을 중도에서부터
읽지말고 처음부터 순서있게 읽으시라는 것이다. 한 단계씩 오르면 반드시 다 올라갈 수 있는 것을 뛰어오르다가 중도에서 떨어져 상처를 입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보아서 일어나는 의문은 전체를 열독함으로써 반드시 해명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기도로써 해결하시라는 것이다.
시대는 바뀌어 누구나 영통할 수 있는 시대로 옮겨지고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진정 믿는다는 자신만 있다면 식음을 폐하고 꼭 들어앉아
결사적인 최후의 단식기도를 올려야할 것이다.
사심을 버린 공정한 입장에서 특히 이 원리에 관한 문제를 걸고 기도하면 반드시
누구에게나 상세히 계시하여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이라할진대 그에 대한 간곡한 판단의 기도에 응답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
수많은 성도들이 직접 영계와 통하는 가운데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한곳으로 착착 모이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자신의 영력이 없다면 영통하는 사람을
통하여서라도 응답을 받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책일 것이다.
이제 새 역사를 꾸미는 역군들이 부르는 힘찬 음성을 뚜렷이 들려온다. 하늘이
찾고있는 양심적인 인사는 일어나 동원하라 그리고 낡은 역사를 청산하는 횃불을 들고 선두에 서라 하늘의 천군천사와 천천만 성도들이 응원의 소리는
드높이 들려온다.
새 시대 새 뜻의 목메인 외침소리에 남먼저 감응하고 일어나 정성으로 닦아놓은
푸른 대지 위에 머지않아 심판의 손길을 들고 영광과 권위로 찾아오실 주님의 영원한 나라는 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