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장왕국
3장 서구사회에서의 시민전쟁
미국은 아주 깊숙이 분리되어 있는 사회다. 우리는 매번 4년마다 대통령선거라는 부르는 힘든 시련속에서 이런 극적인 증거를 목격하는데, 이것은 “청색 주들”와 “붉은색 주들” 간의 유권자 전투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런 나뉨은 정부의 역할과 정책에 관한 정치적인 논쟁이상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보다 근본적인 성질을 띤 논쟁이다. 그것은 최고의 존재 즉 신의 존재와 권위를 수용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들과 그런 신의 존재를 무지에 근거한 미성숙으로 간주하는 계몽주의적 전문가 부류와의 신념의 대립이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계몽주의는 인간이 자초한 미성숙에서 나온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미성숙은 다른 사람의 안내가 없이는 인간 자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능력부족 현상이다.
계몽주의 이후 줄곧, 많은 사람들은 우주를 “신의 섭리”가 아닌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장소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은 인류는 더 이상 우주에서 도덕적 가치 혹은 질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체적인 이유와 과학은 충분했다.
다수는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어 기뻐했다. 프래러딕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제로, ‘나이든 신은 죽었다’라는 소식을 듣고서는, 우리 철학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새벽에 빛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니체는 이런 해방감에 아주 희열을 느꼈지만, 그는 또한 어두운 아래쪽을 예견하게 되었다.
사람이 기독교인의 믿음을 포기하면, 기독교 도덕성에 관한 정당성을 끌어당겨 자신의 발아래에 두게된다. 이 도덕성은 결코 자체가 분명하지 않다... 기독교란 하나의 체제이다. 즉 더불어 사고해온 세상사에 관한 전반적인 견해이다. 그것에서 나와 하나의 주요 개념을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부수게되면, 인간은 전체를 깨게된다.
달리 말하면, 주권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실제로 기독교적인 가치나 도덕성에 관한 철학적인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이 잘못인가? 누가 그렇게 말하는가? 당신은 그것이 항상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한편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달리 생각한다. 절도가 나쁜가? 두 가지 살인, 절도에 불리한 법이 있을 수도 있으나 법이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도덕성이 법이 요구하는 것에 근거해야만 할까? 법과 인간의 실제 가치와 행위사이에서 차이가 존재하면 무엇이 발생할까?
개인적으로 니체는 무신론자였지만, 그는 기독교이후의 유럽에 대해 어려운 심지어 비극적인 미래를 예상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다가올 두세기에 관한 역사이다. 나는 다가오고 있는 것과, 더 이상은 다르게 올수 없는 것 즉 허무주의의 도래를 언급한다. 상당 기간 동안 전체 유럽문화는 대재앙 속으로 옮아가고 있다.
● 물질주의 - 사고, 선택, 양심을 포함한 모든 세상사는 단지 물질의 상호관계의 결과이다.
● 우성학 - 인간의 생명체에 유전적인 가치가 없으므로 그리 고 진화는 지배적인 종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어떤 종족은 다른 종족보다 ‘우수하다’. 그래서 ‘열등한’ 종족의 인구를 줄이고, ‘우수한’ 종족의 인구를 증가시키려는 행위는 합법적이 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인간이 결론에 이르게 되면, 그들은 세속적인 대의명분이나 제도 즉 “국가 사회주의” 즉 자신의 종족의 이익을 찬양하고 옹호하는 국가를, 숭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혹은 그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계급증오”, “계급투쟁”을 호소하는 것을 확인해주는 공산주의 즉 막스 독재국가를 예견했다.
20세기는 사람들이 신에 대한 믿음을 세속적인 이념으로 대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많은 증거를 제공했다. 1930년대에 권력을 잡은, 독일 국가사회 인민당에서 채택한 종족우월주의 이념은 1300만에서 2100백만 명의 죽음을 초래했다.
공산주의 이념은 20세기에만 1억5천만 명의 사람의 죽음을 초래했다. 국가지원 대량 살상들은 즉 대량학살은 지난 세기 국내외 전쟁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보다 6배나 많은 2억 6천 2백만명의 죽음을 가져왔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원하지 않는 인구를 제거하려 하는 정부의 욕구를 언급할 때, 시민들이 무장을 하고 있으면 그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곧바로 대량살인 즉 특정인종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총기몰수나 총기제한의 몸서리치는 사례가 존재한다.
다음 예들이 그러하다.
● 터어키 정부는 1915년 시작된 아르메니안 대량 학살에 앞서 총기 통제를 강화했다.
● 독일은 총기판매를 1938년 금지했다. 1939년 부터 1945년 까지 전체 1300만명의 비무장이거나 무장해제된 유대인과 다른 인종들은 수용소로 보내져 학살되었다.
● 소련 연합은 1929년에 총기통제를 실행하여, 항상 중무장을 하고 있었던 어떤 소련인 집단으로 부터 무기를 압수했다. 1929년부터 1953년에는, 2000만명의 반체제인사들은, 자기 방어 수단이 전혀없는 상태에서 집단으로 내몰려 학살되었다.
● 중국의 총기제한 프로그램은 1938년 중화민국 공화국에 의 해 시작됐다. 1948년부터 1959년 까지, 2000만명의 자기방어 수단이 전혀없는 반체제 인사들은 공산정권에 의해 대량학살됐다. 추가로 5300만명이 대량 굼주림 상태를 야기시킨 정부정책에 의해 살해됐다.
● 캄보디아는 총기제한 법안을 1956년에 실시했다. 1975년에 서 1977년까지, 서양의 가치나 문화를 접하거나 교육을 받아 “오염되었다”고 간주된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제거되었다.
● 과테말라는 10만명의 마야계 인디언들을 살해하기 앞서서, 총기제한 규정을 1964년에 실시했다.
● 우간다는 총기제한 프로그램을 1970년에 제정했는데, 이 시 점은 8년간의 공포정권이 수천명의 기독교인을 죽인 직전이었다.
그런 공포는 후기 기독교 이념과 정치적 운동에 깊이 뿌리내려, 그것은 다른 종족, 종교 혹은 계층 구성원들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몰아갔다. 이런 이념들은 국가를 악마로 규정된 사람들을 제거하는 적절한 대리자로 간주했다. 주류 언론들은 정부주도하의 대량 살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미 국가의 이념과 대의명분에 동의한 언론인들은 긍적적인 측면에서 그들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냈디.
한 악명높은 예는 월터 듀란티라는 뉴욕타임즈 기자인데, 1932년 소련연합의 진보성향의 지도자들을 찬양하는 시리즈 기사로 명성있는 퓨리처상을 수상했다. 그의 기사들은 거의 400만명의 우크라이나 농부들에 대한 강압적인 굶주림에 관한 기사로 뉴욕타임즈 독자들을 속였다.
불행히도, 그러한 전체주의 대의명분과 정부의 거짓 보도가 널리 퍼져있다. 최근의 한 예는 이전에 번영했던 베네주엘라라는 국가에서 발생한 대량 기아와 영양실조로 인해 발생한 다수의 고통과 사망이다.
민주측 반대자들이 투표 인명부 감사를 청원했지만, 사회주의 대통령 후고 차베스는 헤지볼라 테러조직 뿐만아니라 이란과 시리아 정부의 도움으로 비밀 네트웍을 형성했다. 그는 또한 베네주엘라인을 감시하기 위해 쿠바 비밀 경찰을 국내로 데려왔다.
차베스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정권은 쿠바, 이란, 시리아 그리고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그 정권은 민주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공산정권 지지자들에만 식량을 제공하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가격통제 정책들은 극단적인 물품 부족현상을 초래했다. 기본적인 의약품은 가게의 선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파시스트들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간이하의 존재로 취급했다. 한편 반파시스트라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적들 즉 그들의 정책에 협력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난했다. 이 두종류의 이념주의자들이 무시하고 소홀히하는 것은 이것이다. 즉 그들은 극단적인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포용력은 모든 인종과 계층에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무리, 계층 그리고 인종만을 숭상하는 것은 다음의 문제점을 지닌다. 즉 윤리 도덕적인 사람이 피하고 싶어하는 피비린낸 나는 행위를 내포하는 신에 대적하는 세계관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한편, 2018년 초에 발행된 한 보도기사는 “기독교인들은 이제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더욱 악화된 박해를 받고있다”라는 것을 경고한다.
「박해받고 잊혀진」이란 이 기사는 여러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폭력행위가 계속되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 기사는 신도들이 강압적인 굶주림 사태, 낙태를 접할수 있는 북한을 포함하여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잔혹행위를 특집으로 보도했다. 불꽃 위의 십자가에 메달려 있는 신자들, 증기 롤러기계 아래서 압사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도했다.
그 기사는 또 추가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이 다른 신앙인들보다 박해받고 있을 뿐만아니라, 점차로 많은 일반 사람들도 최악의 박해를 경험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수중에 있는 중동지역에서의 박해뿐만 아니라 그 기사는 이스람 ISIS 와 보코 하람 제휴세력이 거의 200만명을 강제 추방시킨 나이지리아에서의 학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널리퍼진 학대의 본질은 - 서구사회가 긴밀한 무역이나 전략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정권과 관계하고 있는 증거 - 그것은 우리정부가 소수집단 특히 기독교인을 지지하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마땅히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들은 전략적인 편의주의와 경제적 이익의 제단위에서 더 이상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
한편, 미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행되고 있는 이런 잔혹 행위와 자유의 상실 특히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것을 거의 혹은 전혀 듣지 못하고 있다. 대학 교내에서는 기독교인들과 다른 소수자 믿음에 대한 대량 학살을 반대하기 보다는, 많은 학생들은 그들을 불편하게 느끼게 하는 어떤 “극소집단 공격”에 대해 싸우고 있다.
사람들이 실질적인 선과 악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들은 싸우기 위해서 최초의 세상 즉 작은 환상적인 대의명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끈질긴 시위 행진은 전세계의 유대인과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유대 기독교 사상을 제거하기 위한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전체주의자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번역: 손병룡 종족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