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강론 후편

무지개 | 20170628214550

   서 론


복귀섭리는 타락된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목적을 완성케 하기 위하여, 그들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나아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는 것이다.
전편에서 이미 논증한 바와 같이, 인간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여 사탄 주관하에 머물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을 복귀시키기 위하여는, 먼저 사탄을 분립하는 섭리를 하셔야 하는 것이다.
이미 기독론에서 상론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이 사탄을 분립하고 타락이전 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려면 원죄를 벗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원죄는 인간이 그 참 부모로 오시는 메시아에 의하여 중생되지 않으면 벗을 수 없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사탄 분립의 노정을 통하여서, 아담과 해와가 성장하였던 기준, 즉 장성기의 완성급까지 복귀한 형을 갖춘 터 위에서 메시아를 맞아 중생함으로써, 아담과 해와의 타락 이전의 입장으로 복귀된 후에 메시아를 따라 더욱 성장하여서,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는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려는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원리에 의하여 섭리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복귀원리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복귀섭리가 어떻게 하여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Ⅰ. 탕감복귀원리
1. 탕감복귀
탕감복귀원리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인간이 그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어떠한 입장에 서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원래 인간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서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루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만을 대하고 사는 입장에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하여서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사탄도 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타락직후 아직 원죄만이 있었을 뿐 다른 어떠한 선행도 악행도 하지 않았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 위치에 처하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의 후손들도 역시 이와 같이 중간 위치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타락사회에 있어서 예수는 믿지 않았어도 양심적인 생활을 한 사람이면, 그는 이렇듯 중간 위치에 있는 것이므로 사탄이 그를 지옥으로 끌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양심적인 생활을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예수를 믿지 않는 한 하나님도 그를 낙원으로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인은 영계에 가서도 낙원도 지옥도 아닌 중간 영계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같이 중간 위치에 있는 타락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사탄으로부터 분립하시는가?
사탄은 원래 혈통적인 인연을 가지고서 타락한 인간을 대하고 있기 대문에, 인간 자신이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을 세우지 않는 한 하나님은 무조건 그를 하늘 편으로 복귀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사탄도 역시 인간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타락인간 자신에게 다시 그가 침범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한 이러한 인간을 무조건 취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은 그 자신이 선한 조건을 세울 때에는 하나님 편으로, 악한 조건을 세울 때에는 사탄 편으로 분립되는 것이다.
아담가정이 이러한 중간 위치에 있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도록 하셨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제물을 뜻맞게 바치는 것으로써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도록 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살해함으로써 도리어 사탄이 그들에게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타락인간들에게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도,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늘 편에 서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 그대로 사탄 편에 머물게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수님이 구주이신 동시에 심판주가 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탕감복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무엇이든지 그 본연의 위치와 상태 등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그것들을 본래의 위치와 상태에로 복귀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어떠한 조건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세우는 것을 '탕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실된 명예나 직위나 건강 등을 원상대로 회복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노력이나 재력 등의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된다. 또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어찌되어서 미워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자. 여기에서 이들이 다시 서로 사랑하던 원상태에로 복귀하려면, 그들은 반드시 서로 사과를 하는 등의 어떠한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와 같이 타락으로 인하여서 창조본연의 위치와 상태를 떠나게 된 인간도 다시 그 위치와 상태에로 복귀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필요한 어떠한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타락인간이 이러한 조건을 세워서 창조본연의 위치와 상태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탕감복귀'라고 함, '탕감복귀'를 위해서 세우는 조건을 '탕감조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탕감조건을 세워서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를 탕감복귀섭리라고 말한다.
그러면 탕감조건은 어느 정도로 세워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들 수가 있다.
첫째는 동일한 것으로서의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본연의 위치와 상태에서 상실되었던 것과 동일한 가치의 조건을 세워서 원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보상이나 상환과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1장 23절 내지 25절에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을 지니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다 작은 것으로써 탕감조건을 세우는 경우다. 이것은 본연의 위치와 상태에서 상실되었던 것보다 작은 가치의 탕감조건을 세워 원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어떤 채무자가 빛을 많이 졌을 때, 그 채권자의 호의로 그중 일부 소액만을 반제 함으로써 부채의 전액을 전액을 청산한 것으로 매듭을 짓는 수가 있다. 이러한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우리는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다'는 극히 작은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예수님과 똑같은 죽음을 거쳐 다시 살았다는 구원의 큰 혜택을 받게 된다. 한편 또 우리는 몇 방울의 물을 머리에 떨어뜨려 세례를 받았다는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예수님과 성신에 의하여 중생된 입장을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만찬에서 한 조각의 떡과 한 잔의 포도주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성체를 먹었다는 커다란 가치의 혜택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보다 큰 것으로써 탕감조건을 세우는 경우다. 이것은 작은 가치의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실패하였을 때 보다 더 큰 가치의 탕감조건을 다시 세워서 원상으로 복귀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비둘기와 양과 소를 바치는 헌제에서 실수하였기 때문에 그와 탕감조건은 가중되어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40일의 정탐기간을 뜻맞게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탕감조건이 가중되어, 그들은 날을 해로 계수 한 40년을 광야에서 표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민수기 15장 34절).
그러면 어찌하여 탕감조건을 다시 세울 때에는 더 큰 조건을 세워야 하는가 ? 그것은 어떠한 섭리적 중심인물이 탕감조건을 다시 세울 때에는, 그가 세워야 할 본래의 탕감조건과 함께 그 앞선 인물들의 실수로 인한 탕감조건까지도 첨가하여 세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탕감조건을 어떠한 방법으로 세우느냐 하는 문제다. 무엇이든지 본래의 위치와 상태로부터 떠난 입장에서 원상으로 복귀하려면, 그것들로부터 떠나게된 경로와 반대의 경로를 취하는 탕감조건을 세워야만 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선민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벌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입장으로부터 다시 구원을 받아 선민의 입장으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앞서와는 반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누가복음 14장 27절).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된 원인은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을 서럽게 해 드렸으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는 그와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실천함으로써 창조본성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첫아담이 하나님을 버림으로 말미암아서 그 후손들이 사탄의 품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따라서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인류를 사탄의 품속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복귀시키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입장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라신 예수님을 버리셨던 것은 이러한 곡절에 기인하였던 것이다(마태복음 27장 46절{{ . 마태복음 27장 46절 :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한 국가의 형법도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어서 그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원상대로 유지하게 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탕감조건은 누가 세워야 하는가? 이미 창조원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여 완성되어 가지고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 시조는 그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야 할 입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탄의 주관을 벗어나 사탄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으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인간 책임분담으써 그에 필요한 탕감조건을 인간 자신에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2. 메시아를 위한 기대
메시아는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야 한다. 그가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야 하는 이유는, 타락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인류를 거듭나게 하여 그 원죄를 속해 주셔야 하기 때문이다(전편 제7장 제4절 Ⅰ.1). 그러므로 타락인간이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완성한 터 위에서 메시아를 맞아 원죄를 벗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면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려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가? 이것을 알기 위하여는, 원래 아담이 어떠한 경로에 의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탕감조건은 본연의 위치와 상태를 상실하게된 것과 반대의 경로에 의하여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두 가지의 조건을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는 것이었는데, 물론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는 인물이 되어야 했었고, 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조건으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이 믿음의 조건을 세우는 것으로서 그의 책임분담을 수행하기 위한 성장기간을 거쳐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 성장기간은 수로써 된 것이므로 결국 이 기간은 수를 완성하는 기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아담이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세워야 했던 두번째의 조건은 그가 '실체기대'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의 성장기간을 다 거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웠더라면, 그는 그 기대 위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실체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창조본성을 완성한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었을 것이다(요한복음 1장 14절 아담이 이와같은 완성실체가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제1축복이었던 개성완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위와같은 경로에 의하여서 창조목적을 완성하였을 것이므로, 타락인간도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그 경로에 의하여 아래와 같이 '믿음의 기대'를 세운 터전 위에서 '실체기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1) 믿음의 기대
아담은 하나님이 말씀을 믿지 않고 타락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세우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는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지못하여 창조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인간이 창조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기준을 복귀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인간조상이 세우지 못하였던 그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첫째는 그를 위한 '중심인물'이 있어야 한다.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인물이 되지못하고 타락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중심인물을 찾아 나오셨다. 타락한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로 하여금 제물을 바치게 하셨던 것도 이러한 중심인물을 찾아 세우기 위함이었고, 노아, 아브라함, 이상, 야곱, 모세, 그리고 열왕들과 세례요한 등을 부르셨던 것도 그들을 이러한 중심인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그것을 위한 '조건물'을 세워야 한다. 아담은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조건으로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타락된 인간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대신하는 조건물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타락된 인간은 만물보다 거짓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에(예레미야 17장 9절), 구약 이전시대에 있어서 제물 또는 그 제물을 대신한 방주 등의 만물을 조건물로 세워 가지고 '믿음의 기대'를 세우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대'는 인간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침범을 당한 만물을 복귀하는 기대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율법의 말씀, 또는 그 말씀을 대신한 법궤나 성전이나 중심인물 등이 이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조건물이었다. 또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복음의 말씀, 따라서 그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이 '믿음의 기대' 조성을 위한 조건물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타락된 후에 있어서의 이와같은 조건물은, 인간편에서 보면 그것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편에서 볼 때에는 어디까지나 소유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는 그를 위하여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이 섭리적인 수에 의한 탕감기간이 왜 있어야 하는가 ? 그리고 어떠한 섭리적인 수의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편의상 후편 제3장 제2절 Ⅳ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2) 실체기대
타락인간이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한 터전 위에서, 일찍이 인간조상이 이루지 못하였던 '완성실체'를 이루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나 타락인간은 어디까지나 메시아를 통하여 원죄를 벗지 않고서는, '완성실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위에서 말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터전 위에서, '실체기대'를 세움으로써 이루어지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야 비로소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것이다. 타락인간은 이와 같이 메시아를 맞아 원죄를 벗어 가지고, 인간조상의 타락 전 입장으로 복귀된 후에,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하고 메시아와 일체가 되어, 인간조상이 타락됨으로써 걷지 못하고 남아졌던 성장기간을 다 지나서야 '완성실체'가 되는 것이다.
한편 '실체기대'를 세우는 데 있어서도 타락인간이 세워야할 어떠한 탕감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인 것이다.
인간조상은 타락하여 원죄를 지니게 됨에 따라서, 창조본성을 이루지 못하고 타락성근성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맞아서 원죄를 벗고 창조본성을 복귀하기 위한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먼저 그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이 조건을 어떻게 세우는가 하는 것은 후편 제1장 제1절 Ⅱ에서 논하기로 하자.
Ⅱ. 복귀섭리노정
1. 복귀섭리노정의 시대적 단계
이제 아담이후 오늘에 이르는 전 역사노정에 있어서의 시대적 단계에 대하여 대강 살펴보기로 하자.
타락인간으로 하여금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게 하고,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게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완성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는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그 섭리의 뜻은 좌절되었고, 그 후 10대를 지나 그 뜻은 다시 노아의 가정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40일의 홍수로써 악한 세대를 심판하셨던 것은, 노아가정을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우게 하고 그 기대 위에 메시아를 보내심으로써, 복귀섭리를 완수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노아가정과 방주를 찾아 세우기 위하여 세웠던 10대와 40일을 사탄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들을 다시 하늘편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 즉 400년이 지난 후에, 뜻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옮겨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브라함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뜻맞게 세웠더라면, 이 기대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그 터 위에서 메시아를 맞이하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써 그 뜻은 또다시 좌절되고 말았다. 이에 메시아를 맞기 위한 믿음의 조상을 찾아 내려왔던 아담가정으로부터의 2천년기간은, 일단 사탄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노아의 입장과 다른 것은, 비록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는 실수하였지만 이상, 야곱의 3대에 걸쳐 연장하면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움으로써, 이 기대를 중심하고 애급에서 하나님의 선민을 번식하여 후일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민족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찾아 세워, 장차 복귀섭리를 시작할 수있는 그 기대를 조성하는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역사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인하여,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2천년기간을 사탄에게 내주었으므로, 이 기간을 다시 하늘 편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 있어야 할 것이니, 이 기간이 바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2천년기간이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았다면, 그 후손들에 의하여 세워졌을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 위에 메시아가 오셨을 것이므로, 그 때에 복귀섭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모시어서, 그를 하나님 앞에 민족적인 산 제물로서 뜻맞게 세워 드렸더라면, 그 대에도 그들이 세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 위에서, 오신 바 메시아를 중심하고 복귀섭리는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한 것과 같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그 민족적인 헌제에 실수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 이후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또다시 사탄에게 내준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내준 이 2천년기간을 또다시 하늘 편으로 탕감복귀하는 2천년기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니, 이 기간이 바로 예수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2천년기간인 것이다. 이 기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복귀섭리로써, 기독교 신도들이 '재림주님을 위한 세계적인 기대'를 세우지 않으면 아니된다.
2. 복귀섭리노정의 시대 구분
(1) 말씀에 의한 섭리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인간이 아직 복귀섭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한 시대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다만 타락인간이 헌제에 의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말씀에 의한 섭리를 하실 수 있는 다음 시대를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기 때문에 이 시대를 '말씀기대 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또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구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소생급까지 성장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소생 구약시대'라고 한다.
③ 한편 예수님으로부터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신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장성급까지 성장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장성 신약시대'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복귀섭리의 완성을 위하여 주시는 성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완성급까지 성장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완성 성약시대'라고 한다.
(2) 부활섭리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인간이 헌제로써 장차 부활섭리로 하실 수 있는 구약시대를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부활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부활섭리의 시대적인 혜택과 구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이 영형체급까지 부활하는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소생부활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과 신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이 생명체급까지 부활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장성부활섭리'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과 성약의 말씀에 의하여 인간이 생령체급으로 완전 부활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완성부활섭리시대'라고 한다.
(3)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까지의 2천년기간은, 사탄에게 내주었던 이 기간을, 아브라함 한 분으로 찾아 세움으로써, 하늘 것으로 탕감복귀할 수 있는 구약시대를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하여 사탄에게 내주었던 아담으로부터의 2천년기간을, 이스라엘민족을 중심하고 다시 하늘 것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서 사탄에게 내주었던 구약시대의 2천년기간을,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하늘 것으로 재탕감복귀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연장시대'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사탄에게 내 주었던 복귀섭리의 전 노정을 하늘 것으로 완전히 탕감복귀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섭리완성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4) 메시아를 위한 기대의 범위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헌제에의하여 아브라함가정 하나를 찾아 세움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구약의 말씀에 의하여 이스라엘민족을 찾아 세움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 기간은, 신약의 말씀에 의하여 기독교 신도들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움르로써,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세계적인 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성약의 말씀에 의하여 천주적인 섭리를 하심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천주적인 기대'를 완성해야 할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메시아를 위한 천주적인 기대섭리완성시대'라고 한다.
(5)책임분담으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다음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책임분담섭리를 하시기 위한 기대를 조성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책임분담기대섭리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바 원리적인 책임을 지심으로써, 친히 사탄을 굴복시키는 제1차의 책임을 담당하시고 선지자들을 대하시어, 소생적인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하나님의 책임분담섭리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타락의 장본인인 아담과 해와의 사명을 대신 완성해야 되었던 예수님과 성신이, 사탄을 굴복시키는 제2차의 책임을 지시고 타락인간을 대하시어, 장성적인 복귀섭리를 해 나오신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예수와 성신의 책임분담섭리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④ 예수님 재림 이후의 복귀섭리완성시대는, 인간이 본래 천사까지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에 입각하여, 지상과 천상에 있는 성도들이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굴복시키는 제3차의 책임을 지고, 복귀섭리를 완성해야 하는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성도의 책임분담섭리시대'라고 한다.
(6)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시대 구분
①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2천년기간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들을 상징적으로 세워 나온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한다.
②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2천년기간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들을 형상적으로 세워 나온 시대였으므로, 이 시대를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한다.
③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재림기까지의 2천년기간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보건을 실체적으로 세워 나온 시대이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한다.
Ⅲ. 복귀섭리 역사와 '나'
'나'라는 개성체는 어디까지나 복귀섭리역사의 소산이다. 따라서 '나'는 이 역사가 요구하는 목적을 이루어야 할 '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역사의 뜻 가운데서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는 복귀섭리역사가 오랜 기간을 두고 종적으로 요구하여 나오고 있는 탕감조건들을, '나'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복귀섭리역사가 바라는 결실체로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부름 받았던 선지선열들이 이루지 못한 시대적인 사명들을 이제 '나'를 중심하고 일대의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수한 개체가 되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는, 선지선열들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그들을 부르셨던 하나님의 근본 뜻,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졌던 섭리적인 사명들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타락인간은 그 자신으로서 이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귀섭리의 완성자로 오시는 재림주님을 통하여 그 모든 것들을 알고, 또 그를 믿고 모시어 그와 하나가 됨으로써, 그와 함께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횡적으로 찾아 세운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복귀섭리의 '뜻' 을 이루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선인들이 걸었던 길은, 오늘날의 우리들이 다시 되풀이하여서 걸어야 할 길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인간은 복귀섭리의 내용을 모르고서는, 결코 생명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복귀섭리를 자세히 알아야 하는 이유는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제1장 복귀기대섭리시대


제1절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타락은 비록 인간 자신의 잘못으로 되어진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 타락인간을 구원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데 대하여는, 이미 전편 제3장 제2절 Ⅰ에서 논한 바 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타락인간을 복귀하시려는 섭리는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미 서론에서 논한 바와같이 아담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대할 수 있는 중간우치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서론에서 논한 바와 같이 아담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위치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와같이 중간위치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와같이 중간위치에 처해 있었던 타락인간을 하늘편으로 분립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타락인간 자신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워야만 했었다. 그러므로 아담가정이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 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우고, 그로써 이루어지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Ⅰ. 믿음의 기대
첫째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어떠한 조건물이 있어야 한다. 원래 아담은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조건으로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진 타락한 아담이 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가 믿음으로써 말씀 대신의 어떠한 조건물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세워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가정에서 세워야 했던 이 말씀 대신의 조건물은 제물이었다.
둘째는, '믿음의 기대' 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 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중심인물이 있어야 한다. 아담가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했던 중심인물은 물론 아담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이 마땅히 제물을 바쳐야 하였던 것이고, 그가 이 제물을 합당하게 바치는가 바치지 못하는가에 따라 '믿음의 기대' 의 조성 여부가 결정될 것이었다.
그러나 성서의 기록을 보면, 아담이 제물을 바치지 못하고 가인과 아벨로부터 제물을 바쳤던 것이니,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한 주인을 대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주인을 대하는 처지에 있는 존재를 상대로 하여 창조원리적인 섭리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 제물을 대하신다면, 사탄도 또한 아담과 혈연관계가 있음을 조건삼아, 이것들을 대하려고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아담은 하나님과 사탄의 두 주인을 대하는 비원리적인 처지에 서게 된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비원리적인 섭리를 하실 수 없으므로, 선 악 두 성품의 모체가 된 아담을, 선 성품적인 존재와 악 성품적인 존재의 둘로 갈라 세우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의 두 아들을 각각 선 악의 표시체로 분립시킨 후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탄을 각각 대할 수 있는, 즉 한 주인 상대의 원리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제각기 제물을 바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다 같이 아담의 자식인데, 누구를 선의 표시체로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우고, 또 누구를 악의 표시체로서 사탄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야 할 것인가?
가인과 아벨은 다 함께 해와의 타락의 열매였다. 따라서 타락의 모체인 해와의 타락경로에 의하여서 그것이 결정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와의 타락은 두 가지의 불륜한 사랑의 행동으로 인하여 성립되었었다. 즉 첫째번은 천사장과의 사랑으로 인한 영적 타락이었으며, 둘째 번은 아담의 사랑으로 인한 육적 타락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똑같은 타락행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둘 가운데서 어느 것이 보다 원리적이며 보다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인가를 가려 본다면, 첫째 번의 사랑에 의한 타락행위보다는 둘째 번의 사랑에 의한 타락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번 째의 타락행위가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한, 즉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라는 과분한 욕망이 동기가 되어(창세기 3장 5절) 비원리적 상대인 천사장과 관계를 맺었던 것임에 비하여, 둘째 번의 타락행위는 첫째 번의 행위가 분륜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편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던 심정이 동기가 되어, 아직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원리적 상대인 아담과 관계를 맺었던 것이기 때문이다(전편 제2장 제2절 Ⅱ).
그런데 가인과 아벨은 모두 해와의 불륜한 사랑의 열매인 것이다. 따라서 해와를 중심하고 맺어진 두 형의 불륜한 사랑의 행위들을 조건으로 가름하여 가인과 아벨을 각각 서로 다른 두 표시적 입장에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가인은 사랑의 첫 열매이므로, 그 첫번 째 것이었던 천사장과의 사랑으로 인한 타락행동을 표징하는 악의 표시체로서, 사탄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고, 아벨을 사랑의 둘째 열매이므로, 그 두번 째 것이었던 아담과의 사랑으로 인한 타락행동을 나타내는 선의 표시체로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던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의 세계를 사탄이 먼저 차지하였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앞서 사탄이 먼저 비원리적인 입장에서 그 원리형의 세계를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이 맏이를 세워서 장자권을 계승시키려고 하셨던 원리적인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사탄도 둘째 것에보다도 맏것에 대한 미련이 더욱 컸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사탄은 그 때 이미 피조세계를 차지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보다 미련이 컸던 장자 가인을 먼저 취하려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탄이 미련을 갖고 대하는 가인보다도 아벨을 대하셨던 것이다.
이에 대한 실례를 우리는 성서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사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창세기 4장 7절)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보면, 가인은 사탄의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에 애급의 민족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생축까지도 맏것은 모조리 쳤던 것이니(출애급기 12장 29절) 그것들은 모두 가인의 입장으로서, 사탄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에는, 차자 아벨의 입장이었던 레위의 후손만이 법궤를 메고 갔었다(신명기 31장 25절).
그리고 창세기 25장 23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직도 출생전 복중의 태아들이었던 장자 에서를 미워하고 차자 야곱을 사랑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장.차자라는 명분만으로써 그들은 이미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야곱이 그의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동시에 축복할 때에, 차자 에브라임을 우선적으로 축복하기 위하여 손을 엇바꾸어서 축복하였던 것도(창세기 48장 14절) 역시 에브라임이 아벨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에 의하여서, 하나님과 사탄을 각각 한 주인으로서 대할 수 있는 위치에 아벨과 가인을 세워 놓고, 제물을 바치게 하셨던 것이다(창세기 4장 3~5절).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으니 그 이유는 어디 있었던가 ? 아벨은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제물을 바쳤기 깨문에(히브리서 11장 4절),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셨다(창세기 4장 4절). 그리하여 아담가정이 세워야 할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비록 타락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조건만 성립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용납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던 것은, 가인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가인은 사탄이 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세워졌었으므로, 하나님이 그 제물을 취하실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을 가인 자신이 세우지 않는 한, 하나님은 그것을 취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써, 사탄의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편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그 자신이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면 가인은 어떠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였던가? 그것은 바로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이었는데, 이에 관하여는 아래에서 자세히 밝히기로 하겠다.
Ⅱ. 실체기대
아담가정에 '실체기대'가 세워지기 위하여는, 가인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이 그의 헌제를 기뻐 받으실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은 어떻게 세워야 하였던가?
인간시조는 천사장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어, 그로부터 타락성을 이어 받게 되었으므로, 타락인간이 그 타락성을 벗기 위하여는 탕감복귀원리에 의하여, 아래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같이 그 타락성근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과 반대의 경로를 취하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천사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던 아담을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그러므로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하여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을 사랑하여서 하나님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취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사장이 하나님에게 더 가까웠던 아담을 중보로세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아담의 위치를 취하려다가 타락되었기 때문에, '자기 위치를 떠나는 타락성'이 생겼다. 그러므로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하여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을 중보로 세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자기 위치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천사장은 자기를 주관해야 할 인간, 즉 해와와 아담을 거꾸로 주관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주관성을 뒤집어 엎는 타락성'이 생겼다. 따라서 인간이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하여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아담의 입장에 있는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그의 주관을 받는 입장에 섬으로써 주관성의 법도를 바로 세워야 했던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선한 뜻을 하나님은 아담에게 전하고, 아담은 또 해와에게 전하고, 해와는 다시 천사장에게 전하여 선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천사장은 따먹어도 좋다는 불의의 뜻을 해와에게 전했고, 또 해와는 그것을 아담에게 전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죄를 번식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그러므로 이 타락성을 벗기 위하여는,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이 자기보다도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서 있는 아벨의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여, 아벨로부터 선의 뜻을 전해 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는 입장을 조성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인, 아벨의 헌제와 상통되는 몇 가지의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우리의 개체를 두고 생각해 볼 때 선을 지향하는 마음(로마서 7장 22절)은 아벨의 입장이요, 죄의 법을 섬기는 몸(로마서 7장 25절)은 가인의 입장인 것이다. 따라서 몸은 마음의 명령에 순종굴복해야만 우리 개체는 선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몸이 마음의 명령에 반역하여, 마치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과 같은 입장을 반복하기 때문에 개체는 악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의 생활은 마치 아벨에게 가인이 순응해야 했듯이, 하늘 뜻을 지향하는 마음의 명령에 몸을 순응케 하는 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타락되어 만물보다도 거짓된(예레미야 17장 9절) 입장에 떨어졌으므로, 만믈을 아벨의 입장에 세워 놓고 그것을 통하여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헌제였다. 인간이 항상 좋은 지도자나 친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보다 하늘편에 가까운 아벨형의 존재를 찾아 그와 하나됨으로써, 하늘 앞에 가까이 서고자 하는 천심에서 일어나는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온유겸손이 기독교 신앙의 강령이 된 것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아벨형의 인물을 만나, 그를 통하여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게 하기 위함이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반드시 가인과 아벨의 두 형의 존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같은 모든 것을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가인형의 존재가 아벨형의 존재에게 순종 굴복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 인류가 그에게 순중굴복해야 할 아벨적인 존재로서 이 세상에 오셨던 분이었다. 따라서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는 것이다(요한복음 14장 6절).
만일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더면, 그들은 이미 조성된 믿음의 기대 위에 실체기대를 세워, 이 두 기대로써 이루어지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창조본연의 4위기대를 복귀하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천사장이 인간을 타락케 하였던 타락성근성을 반복하게 되어, 아담가정이 세워야 했던(실체기대)는 세워지지 않았다.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Ⅲ. 아담가정에 있어서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와 그의 상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터 위에서 '실체기대'를 세움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헌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믿음의 기대'는 '상징헌제'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복귀되고, '실체기대'는 '실체헌제'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상징헌제' 및 '실체헌제'의 의의와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3대축복은, 아담과 해와가 각각 개성을 완성하여 부부를 이루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자녀를 번식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하며, 더 나아가 그들이 만물을 주관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그 3대 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와 반대의 경로를 따라, 먼저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워주는 '상징헌제'를 드림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한다. 다음으로는 자녀를 복귀하고 그 위에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워주는 '실체헌제'를 드림으로써 실체기대를 세워 가지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징헌제'의 의의와 그 목적을 두 가지로 잘라서 생각할 수 있다.
이미 타락론에서 논술한 바와같이, 사탄이 타락인간을 주관하게 됨을 인하여, 그는 인간이 주관해야할 만물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서의 만물이 탄식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로마서 8장 22절). 그러므로 만물로써 '상징헌제'를 드리는 첫째 목적은, 하나님의 상징적 실체상인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서 만물보다도 거짓된 자리에 떨어졌으므로(예레미아 17장 9절), 이러한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는, 창조원리적인 질서에 준하여 자기보다도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있는 존재인 만물을 통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상징헌제'를 드리는 둘째의 목적은, 실체인간을 하나님 앞에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려는데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상징헌제'는 어디까지나 내적인 헌제이므로, 만물과 인간의 창조의 순서가 그러했듯이, 외적인 '상징헌제'를 뜻맞게 드린 기대 위에서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상징헌제'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운 후에, 이 기대 위에서 다시 인간을 실체적으로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으로서, '실체헌제'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
실체헌제'는 실체인간을 복귀하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인적인 존재가 아벨적인 존재를 실체로 헌제하여 자녀를 부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게 되면, 그것이 바로 아래에 밝혀져 있는 바와같이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으로도 세워지게 되기 때문에, '실체헌제'는 뜻맞는 헌제가 되는 것이다.
아담가정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기 위하여는, 아담 자신이 먼저 '상징헌제'를 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같이 아담부터 헌제를 하지 못하였던 것은, 아담이 헌제를 하면, 그 제물은 하나님과 사탄의 두 주인이 대하게 되어 비원리적인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여기에는 심정적인 면에서의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타락한 아담은 사실상 하나님에게 천추만대에 이르는 슬픔을 안기어 드린 죄악의 장본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직접 대하시어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심정적인 대상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 대신으로 그의 차자 아벨을 세워서, '상징헌제'를 드리게 하셨다. 이렇게 하여 먼저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또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운 기대 위에서, 가인과 아벨이 '실체헌제'로써 자녀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더면, 부모된 아담은 그 실체기대 위에 서게되어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그 때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으로써 '실체헌제'를 하기 위하여서는, 그 헌제의 중심인물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벨의 상징헌제에는, 아담대신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것과, 또 아벨을 실체헌제의 중심인물로 결정하기 위한 것의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은 가인이 세워야 했는데, 이것이 어찌하여 아담가정 전체가 세우는 결과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인간조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것이었고,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졌을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 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가인과 아벨이 다 함께 자녀로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운 입장에 서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또 가인과 아벨은 선악의 모체인 아담을 분립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사탄을 분립하였더면, 그 부모된 아담은 사탄을 분립한 그 입장에서, 먼저 실체기대 위에 서게 되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이와같이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은,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로써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아벨이 뜻맞는 헌제를 함으로써, 아담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조건과 '실체헌제'를 드리기 위한 중심인물로서의 아벨의 입장은 세워졌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은 천사장이 해와를 타락시킨 것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됨으로써 '실체헌제'에 실패하여, 실체기대를 세우지 못하게 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Ⅳ. 아담가정이 보여준 교훈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첫째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 책임분담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어떠하셨던가 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원래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반드시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의 책임분담이 합하여서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인이 아벨을 통하여 헌제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분담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헌제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실 수는 없었던 것이다.
둘째,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나, 그 후 하나님이 아벨 대신 셋을 세워 새로운 섭리를 하신 것으로써,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인 것이고, 인간에 대한 그의 예정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아벨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그가 '실체헌제'의 중심인물이 되도록 예정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벨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한 입장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 대신 셋을 세우시어,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되어 있는 '뜻'을 이루어 나아가셨던 것이다.
세째, 가인과 아벨의 헌제로써, 타락인간은 항상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 그에게 순종 굴복해야만, 하늘이 요구하는 '뜻'을 자기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루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한편 아담가정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것과 동일한 섭리는, 인간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 후 계속 반복되어 내려왔다. 따라서 이 노정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들도 걸어야 할 탕감노정으로서 그대로 남아져 있기 때문에,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오늘 우리들에게까지도 전형적인 산 교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2절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창조목적을 완성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아벨이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의 터전 위에서, 그의 대신으로 셋을 세우셨다(창세기 4장 25절). 그리하여 그 후손에서 노아의 가정을 택하시사, 아담가정의 대신으로 세우시어 새로운 복귀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창세기 6장 13절에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홍수심판을 하신 것을 보면, 그 때도 말세였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홍수심판 후 노아가정을 터로하여 메시아를 보내심으로써, 창조목적을 완성하려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아가정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우고, 다음으로 그 기대 위에서 실체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아담가정이 복귀하지 못하였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Ⅰ.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노아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으로 이루시려다 못 이루신 뜻을 대신 이루시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600년을 지나 10대만에 노아를 부르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찍이 아담에게 축복하셨던 것(창세기 1장 28절)과 마찬가지로 노아에 대해서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던 것이다(창세기 9장 7절). 이러한 의미에서 노아는 제2 인간조상이 된다.
노아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 때에 부름을 받아(창세기 6장 11절), 120년간이나 갖은 조롱과 비소를 받아가며, 하나님의 명령에만 절대 순종하여, 평지도 아닌 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조건 삼아 노아가정을 중심하고 홍수심판을 감행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아는 제1 믿음의 조상인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노아가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아래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같이, 그의 아들 함의 범죄로 인하여 노아의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사명은 아브라함에게로 옮겨졌던 것이다.
아담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설명한 바와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자기가 직접 헌제를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이미 아벨이 '상징헌제'를 뜻맞게 드림으로써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의 터 위에서 부름을 받았고, 그는 또 혈통적으로 보더라도 아벨 대신 택함을 받은 셋(창세기 4장 25절)의 후손이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람됨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었기 때문에(창세기 6장 9절), 그는 방주를 지어 그것으로써 직접 하나님에게 상징헌제를 드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노아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들은 방주였다. 그러면 그 방주의 의의는 무엇이었던가 ? 노아가 아담대신 제2 인간조상의 입장에 서기 위하여는,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었던 천주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한다. 따라서 신천주를 상징하는 어떠한 조건물을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뜻 맞게 바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건물로 세웠던 것이 바로 방주였다.
방주는 3층으로 지었는데, 그 이유는 3단계의 성장기간들 통해서 창조된 천주를 상징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식구가 여덟이었던 것은, 노아가 아담 대신의 입장이었으므로, 일찍이 사탄에게 내주었던 아담가정의 여덟 식구를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방주가 천주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 주인으로 들어간 노아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 그의 식구들은 전 인류를 상징하였으며, 그 안에 들어간 동물들은 만물세계 전체를 상징했던 것이다.
이와같이 방주가 완성된 후에 하나님께서 40일간의 홍수심판을 하셨는데, 이 심판의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한 주인을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음란에 빠져서 이미 사탄을 대하고 있는 인류를 하나님이 또 하나의 주인의 입장에서 대하시어 비원리적인 섭리를 하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대하시어 섭리하실 수 있는 대상을 세우시기 위하여 사탄의 상대가 되어 있는 전 인류를 멸하시는 홍수심판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심판기간을 40일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후편 제3장 제2절 Ⅳ에서 논술하는 바, 10수는 귀일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 이후 10대 만에 노아를 찾아 세우셨던 목적은,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지 못하였던 뜻을 노아를 중심하고 탕감복귀하여, 하나님에게로 다시 귀일시키기 위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4위기대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4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써 각 대를 세우시는 섭리를, 노아에게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서 계속하여 오셨던 것이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기간은 40수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인간들의 음란으로 말미암아, 이 40수 탕감기간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 방주를 중심하고 4위기대를 완성하는 섭리를 다시 하시기 위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이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 40일 심판기간을 세워 가지고,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되어 40수는 그 후의 탕감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사탄 분립수로 필요하게 되었다. 그 예를 들면 노아심판 40일을 비롯하여,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이스라엘 민족의 애급고역 400년, 모세의 두 차례에 걸친 금식기도 40일, 가나안 정탐기간 40일,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표류 40년,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의 재위기간 각 40년, 엘리야 금식 40일, 니느웨멸망에 관한 요나의 예언 40일, 예수님의 금식기도 40일과 부활기간 40일 등은 모두 사탄을 분립하는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한편 성경을 보면 그 심판이 끝날 때에, 노아가 방주에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섭리를 어떻게 미리 보여주셨던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아모스 3장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 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방주를 하나님이 뜻 앞에 합당한 것으로 세움으로써, 천주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심판 40일기간은, 천지창조의 이상이 실현될 때까지의 혼돈기간(창세기 1장 2절)에 해당되는 기간이었다. 따라서 40일이 끝날 때에 방주를 중심하고 나타내 보이셨던 행사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료한 이후의 전 역사노정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까마귀를 방주에서 내보내어, 물이 마를 때까지 왕래하게 하신 것은(창세기 8장 6~7절) 무엇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던가? 이것은 마치 인간창조 직후에 천사장이 해와의 사랑을 노렸었고, 도 가인과 아벨이 헌제를 할 때에도 사탄이 그들에게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과 같이(창세기 4장 7절), 홍수심판이 끝날 무렵에도 사탄은 노아가정에 무슨 침범할 조건이 없는가 하고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까마귀가 어디에 앉을 곳이 없는가 하고 물 위를 찾아 헤매는 모양으로써 표시하신 것이었다.
다음으로 노아가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세 번 내보낸 것은 무엇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었던가?
성서에는 물이 준 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비둘기를 내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비둘기를 내보내지 않고 창문으로 직접 내다보아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설혹 그 문들이 모두 봉해져 있었다 하더라도 비둘기가 나갈 수 있는 구멍으로 내다 보아서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둘기를 내보냈던 목적은 물이 준 것을 알려고 했던 것보다 더욱 중요한 데 있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숨겨 있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겠다.
하나님이 노아를 통하여 홍수심판이 있을것을 선포하신지 7일 후에(창세기 7장 10절) 홍수가 시작되어, 40일 심판기간이 지난 후에 첫번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런데 이 비둘기는 물 위를 왕래하다가 발 붙일 곳이 없어서 다시 방주로 돌아가니, 노아가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창세기 8장 9절).
이 첫번 비둘기는 첫 아담을 상징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창세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던 그의 창조이상이, 아담이라는 완성실체로 실현되기를 우너하시어 그를 지상에 창조하셨던 것인데, 그가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를 중심하고는 지상에 그 창조이사을 실현할 수 없게 되어,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의 뜻 성사를 후일로 미루시고 그 이상을 일시 지상으로부터 거두어 들이셨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다음에 7일을 지나 노아는 다시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역시 물이 다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에 내려앉지를 못하고, 다음에는 앉을 수 있다는 표시로서 다만 감람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다시 방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창세기 8장 10~11절).
둘째 번으로 내보낸 이 비둘기는 창조이상의 '완성실체'로서 다시 오실 제2 아담된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이 복귀섭리를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실 것이지만, 만일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는 지상에 머무실 수가 없게 되어 그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실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그는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될 것을 예시하신 것이었다.
물론 이 예시는, 만일 그 때에 땅에 물이 말라서 비둘기가 내려 앉아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었더면 그 비둘기는 결코 방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인데, 물이 채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로 다시 돌아갔던 것과 같이, 장차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잘 믿고 모시면, 그는 결코 죽지 않고 지상천국을 이루실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불신으로 흐르지 않고 지상천국을 이루실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불신으로 흐르게 되면, 예수님은 부득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런 후 또다시 7일이 지나서 노아는 세번째로 비둘기를 내 보냈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물이 말랐었기 때문에, 다시는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창세기 8장 12절).
이 세째 번의 비둘기는 제3 아담으로 오실 재림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반드시 지상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되어 다시는 그 이상이 지상에서 거두어지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제3차의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노아는 비로소 방주에서 땅으로 내려와 신천지를 맞이하였다. 이것은 제3 아담으로 인하여 창조이상이 지상에서 이루어질때, 비로소 요한계시록 21장 1절 이하의 말씀대로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이 비둘기를 세 번 내보낸 실례로써, 예정론에서 밝혀진 바와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그 섭리의 대상인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반드시 연장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아담의 불신으로 인하여 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후아담으로 오셔야 할 것과 만일 유대인들도 불신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부득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어 제3 아담으로 재림하셔야 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기록되어있는 7일이라고 하는 기간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7일이라는 기간이 있었던 것과 같이, 그것을 다시 찾아 세우는 데에도 섭리적인 어떠한 기간이 지난 후가 아니면 아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노아가정은 심판 40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인 방주를 뜻맞게 찾아 세워 그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Ⅱ. 실체기대
노아는 방주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제물로 바쳐 '상징헌제'에 성공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이로써 노아는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동시에,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웠던 것이다. 다음엔 이 기대 위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이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헌제'에 성공하면 '실체기대'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노아가 '상징헌제'에 성공한 후에, 이 가정의 '실체헌제'가 뜻맞는 것으로 바쳐지기 위하여서는, 먼저 '실체헌제'의 중심이 되어야 할 차자 함이, 아담가정의 '실체헌제'의 중심이었던 차자 아벨의 입장을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다. 아담때에는 아벨 자신이 아담의 대신으로 '상징헌제'를 하였기 때문에, 아벨이 그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동시에 '상징헌제'의 중심으로도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 때는 함이 아니고 노아 자신이 '상징헌제'를 하였기 대문에, 함이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입장에 서기 위하여는,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와 심정으로 일체불가분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함으로 하여금 노아와 심정으로 일체적인 입장에 서게 하시기 위하여 어떠한 섭리를 하셨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창세기 9장 20절 내지 26절에 씌어 있는 기록을 보면, 함은 그의 부친 노아가 장막 안에서 알몸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부끄럽게 여겼을 뿐 아니라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 형제 셈과 야벳을 선동하였다. 이 때에 그들도 함의 선동에 뇌동되어 그의 부친의 알몸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이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그 부친의 몸에 옷을 덮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죄가 되어 노아는 함을 저주하여 이르기를 그 형제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러한 섭리를 하셨으며, 또 나체를 부끄러워한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었는가?
이러한 내용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어떻게 되면 죄가 되는가 하는 문제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사탄도 어떤 대상을 세워 그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주고 받는 관계를 맺지 않으면 그 존재 및 활동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존재든지 그에게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어 사탄의 상대가 됨으로써 사탄이 활동할 수 있게 될 때 거기에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찌하여 노아의 알몸으로써 함을 시험하셨던가 하는 것이다. 방주는 천주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 40일로써 방주를 뜻 가운데 세운 직후에 되어진 모든 사실들을 상장한 것이기 때문에,심판 40일로써 방준를 뜻 가운데 세운 직후에 되어지는 모든 사실들을 상징한 것이었다 함은 이미 논술한 바와같다. 그러므로 40일심판이 끝난 직후의 노아의 입장은 천지창조 후의 아담의 입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창조된 아담과 해와가 서로 얼마나 가깝고 허물할 것이 없는 사이였으며, 또한 얼마나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었던가하는 것은, 창세기 2장 25절에 그들이 서로 알몸으로 있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한 후에 스스로 하체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나무잎으로 가렸었고, 또 하나님이 보실 것을 두려워하여 나무 사이에 숨었었다(창세기 3장 7절). 그러므로 그드이 하체를 부끄러워했던 행위는, 하체로 범죄하여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다는 정념의 표시요, 하체를 가리고 숨었었던 행동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범죄의식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40일심판으로 사탄을 분립한 입장에 있었던 노아는 천지창조 직후의 아담의 입장에 섰어야 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알몸으로 있어도 그 가족들이 그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숨으려 하지도 않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것으로써, 일찍이 죄를 짓기전 어디도 가린 데 없이 들어낸 나체 그대로의 인간을 보시면서 기뻐하셨던 그 심정을 탕감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큰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나체로 누워 있게 하셨었다. 따라서 함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아무 부끄러움 없이 노아를 대했어야, 노아와 일체불가분의 뜻 가운데서 죄 짓기 전 부끄러움을 몰랐던 아담가정의 입장으로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아들들은 이와 반대로 그 부친의 나체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이를 가렸으므로, 이로써 그들은 타락 후의 아담가정과 같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은 부끄러운 몸들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미 까마귀로써 보여주신 것과 같이, 노아가정에 침범할 수 있는 무슨 조건이 없는가 하고 엿보고 있었던 사탄은 자기의 혈연적인 후손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나선 노아의 아들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가정에 다시 침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함이 그 부친의 알몸을 부끄러워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 행동은 범죄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어 함은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었으므로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 나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죄가 되는가 ? 노아는 아담의 대신으로서 아담으로 인하여 사탄이 침범한 모든 조건들을 없애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정은 나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가리지도 않는다는 감성과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써,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기 전 아담가정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체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가리지도 않는 것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은, 아담가정 대신으로 세워졌던 노아가정만이 세워야 할 조건이었던 것이다.
Ⅲ. 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노아가 120년간이나 걸려서 산꼭대기에다 배를 지었던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비난과 조소를 받은 그 일로 말미암아서 노아가정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함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 함은 설혹 노아가 알몸으로 누어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좋게만 볼 수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함은 자기를 중심하고 하늘 앞에 선 노아를 비판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표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600년이나 지나 40일 홍수심판을 행사하심으로써 찾아 세우셨던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국가는 길은 겸허와 순종과 인내를 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또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노아가정은 하나님이 1600년이나 걸려 찾아오셨고, 또 노아가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이나 이끌어 오셨으며, 뿐만 아니라 40일의 홍수로써 전 인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세우신 가정이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함의 작은 실수로 말미암아서 사탄이 침범하게 되었을때,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대상이었던 그 가정 전부를 아낌없이 쓸어버리시어,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려고 오랜 기간을 두고 애써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정이 일단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를 아낌 없이 버리시고 그 대신 아브라함을 택하셨던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3절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함의 타락행위로 말미암아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창조목적을 완성하시려는 '뜻' 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노아가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의 터전 위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다시 하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노아 가정이 이루려다 못 이루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이하여야만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고, 그 기대 위에서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Ⅰ.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노아를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뜻’을 계승하여 이루기 위한 중심인물로 세워졌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노아의 노정을 위하여 세워졌다가 함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 주게 되었던 모든 조건들을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노아를 중심한 ‘뜻’을 이어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아가 첫째로 사탄에게 내주었던 조건은,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10대와 심판 40일기간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10대와 함께, 그 10대가 각각 심판 40수를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1대를 40일기간으로써는 탕감복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후일 모세노정에 있어서 정탐 40일의 실수를 광야 표류 40년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한 것과 같이(민수기 14장 34절), 여기에서도 각 대가 심판 40일의 실수를 40년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하는 통산년수를 세우게 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노아로부터 10대에 걸친 400년 탕감기간을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노아 대신으로 아브라함을 세우셨다. 이와같이,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1600년 간에 10대를 복귀하였던 시대에서 400년 간에 10대를 복귀하는 시대로 넘어왔기 때문에 노아 이후 인간의 수명은 갑자기 짧아지게 되었다.
노아가 둘째로 사탄에게 내주었던 조건은 믿음의 조상의 입장과 아벨 대신이었던 함의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과 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노아의 입장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노아 대신 믿음의 조상의 입장에 서기 위하여는 , 노아가 믿음과 충성으로 방주를 지었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도 믿음과 충성으로‘상징헌제’를 드려야만 했었다. 한편 또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아벨의 대신이었던 함(그들은 모두 둘째 아들로서 실체헌제의 중심이었다)을 사탄에게 내주셨으므로, 탕감복귀원칙에 의하여 하나님도 그 대신으로 사탄이 가장 사랑하는 입장에 있는 존재를 빼앗아 오셔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분에 하나님은 우상장사인 데라로부터 그 아들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셨던 것이다(수 24:2-3).
아브라함은 노아의 대신이요. 따라서 아담의 대신이기 때문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축복하셨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에게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셨던 것이다(창12:2). 아브라함은 이러한 축복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하란에서 그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내 사라와 조카 롯 그리고 거기에서 취한 모든 재물과 삶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었다(창12:4-5).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노정으로써, 장차 야곱과 모세가 사탄세계인 하란과 애급에서 각각 그 처자를 데리고 재물을 취하여, 그 어려운 환경을 박차고 떠나 가나안으로 복귀해야 할 전형노정으로 삼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노정은 또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사탄세계의 모든 인간과 만물세계를 하나님의 세계에로 복귀해야 할 전형노정을 예시한 것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후편 제2장 제1절 Ⅱ 참조).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1)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써 제사를 드릴것을 명하셨던 것이니, 이것들은 바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들이었던 것이다(창 15:9). 따라서 마치 노아가 ‘상징헌제’로서 방주를 지어 바치려하였을 때 그 헌제를 위한 믿음을 세웠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도 이 ‘상징헌제’를 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위한 믿음을 세워야만 했었다. 성서에는 노아가 어떠한 방법으로 그 믿음을 세웠는가 하는 것은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가 당세의 의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방주를 지으라시는 명령을 받기에 합당한 의인이 되기까지에는 필시 어떠한 믿음을 세웠음에 틀림없다. 기실 복귀섭리는 이와 같이 믿음에서 믿음을 세워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롬 1:17).
그러면 아브라함은 ‘상징헌제’를 하기 위하여 어떠한 믿음을 세웠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아브라함은 제2 인간 조상 노아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었다. 따라서 그는 또 아담의 입장에도 서야 했기 때문에, 그는 ‘상징헌제’를 하기전에 아담가정의 입장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먼저 세워야 하였던 것이다.
창세기 12장 10절 이하의 성구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하여 애급으로 내려갔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애급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고자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그와 부부관계하고 하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미리 짠 바 계책대로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그의 처 사라를 남매의 입장에서 바로의 아내로 빼앗겼다가 하나님이 바로를 징계하시어 다시 그 아내를 찾아오는 동시에, 데리고 갔던 조카 롯과 함께 많은 재물을 취해가지고 나왔었다.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서, 아담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이러한 섭리노정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아직 남매와 같은 입장에 있었을 때에 천사장이 해와를 빼앗아 감으로 인하여, 그의 자녀들과 만물세계까지 사탄의 주관하에 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우려면,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매와 같은 입장에서 처 사라를 사탄의 실체인 바로에게 빼았기었다가 그의 처의 입장에서 다시 그녀를 찾아옴과 동시에, 전인류를 상징하는 롯과 만물세계를 상징하는 재물을 찾아오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창 14:16). 아브라함의 이러한 노정은 후일에 예수님이 오셔서 걸어야 할 전형노정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이 탕감조건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써 ‘상징헌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는, 원래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려 하셨던 노아와 그 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아담과 그 가정의 입장에도 서야했었기 때문에,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헌제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또 노아가정이 방주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물로 바쳐야 했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조건물로 바친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상징제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상징제물로 바쳤던 비둘기와 양과 암소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였던가?
이 세 가지의 상징제물은 3단계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천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그중의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섭리 완성자, 곧 소생섭리 완성자로 오셨었다. 즉 예수님은 비둘기로 표시된 소생섭리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표징으로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신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 위에 임하셨던 것이다(마3:16). 한편 또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를 복귀하려고 오신 분으로서 먼저 사탄이 침범했던 그 비둘기를 복귀한 입장에 서야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둘길써 그가 소생 구약섭리 완성자로 오셨음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양은 장성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를 복귀하려고 오신 분으로서, 비둘기로서 표시된 모든 것을 복귀한 구약섭리의 기대 위에서 양으로서 표시된 모든 것을 복귀해야 할 장성 신약섭리의 출발자이기도 하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의하여 비둘기로 표시된 소생섭리의 완성자라느 증거를 받으신 후, 어느 날 세례 요한은 또 예수님이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함으로써 예수님이 장성 사명 출발자이심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암소는 완성을 상징하였다. 사사기 14장 18절을 보면, 삼손이 수수께끼의 문제를 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로 하여금 삼손을 꼬여 그 내용을 탐지해 내게 함으로써 그것을 푼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삼손은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삼손은 아내를 암소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전인류의 신랑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가 재림하실때까지의 성도들은 오시는 신랑 앞에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부 된 성도들이 다시 오시는 신랑 된 예수님과 어린양잔치를 치른 후에는 신부가 아니고 아내가 되어 남편 된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재림 이후의 완성성약시대는 아내의 시대요, 따라서 암소의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암소는 곧 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많은 영통인들이 이때가 소의 시대라고 계시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3제물은 또 무엇을 탕감복귀하는 것인가? 아브라함은 그의 ‘상징헌제’로써, 일찍이 아담과 노아의 각 가정을 중심한 섭리에서 그들이 ‘상징헌제’로써 탕감복귀하여다가 사탄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재탕감복귀하는 동시에, 또 그들이 ‘실체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다가 실패하여 사탄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재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이렇게 3대에 걸친 종적인 섭리의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그 3제물로써 일시에 횡적으로 복귀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양과 암소를 한 제단에 버여 놓고 헌제한 것은, 마치 아담의 당대에서 3단계의 성장기간을 완성하려 했던 것과 같이 아담의 입장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소생 아담, 장성 노아, 완성 아브라함의 , 뜻으로 본 3대에 걸쳐서 탕감복귀하시려던 종적인 섭리를 일시에 횡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헌제는 사탄이 침범하였던 3수로 표시된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 함으로써, 전복귀섭리를 단번에 이루시려는 뜻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 ‘상징헌제’를 어떻게 드렸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겠다.
창세기 15장 10절 내지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다른 제물은 모두 둘로 쪼개서 제단의 좌우에 놓았으나 비둘기만은 쪼개지 않고 그대로 놓았기 때문에, 솔개가 그 고기 위에 내려왔으므로 아브라함이 이것을 쫓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 날 해질 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15:13)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에 솔개가 내렸었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들어가서 400년 간을 고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었는가? 이문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해결의 문제로서 남아져 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원리를 통하여서만 명확히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제물을 쪼개야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구원섭리의 목적은 선과 악을 분립하여 악을 멸하고 선을 세움으로써 선주권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아담 한 존재를 가인과 아벨로 분립한 후에 헌제해야 했던 것이나, 또 노아 때에 홍수로써 악을 치고 선을 분립했던 것 등의 목적은 모두 선주권을 복귀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제물을 쪼개 바치게 함으로써, 아담이나 노아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선악 분립의 상징역사를 이루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물을 쪼개는 것은, 첫째로 아담가정에 있어서 선악의 모체인 아담을 선과 악의 두 표시체로 분립하기 위하여 아벨과 가인으로 갈라 세운 것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둘째로는 노아가 홍수 40일로써 선과 악을 갈라 세웠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으며, 셋째로는 사탄 주관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선주권의 세계를 갈라 세우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네째로는 사탄과의 혈연관계를 통하여 들어온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쪼개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는가? 쪼개지 않은 것은 첫째로 가인과 아벨을 분립하지 않은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아벨적인 대상이 없었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에게 합당한 헌제가 되지 못하였으므로 결국 가인 아벨의 헌제 실패는 탕감복귀되지 않았다. 둘째로 그것을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의 홍수심판에서 선악을 분립하지 못하였던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상대하여 섭리하실 수 있는 선의 대상이 없게 되어 홍수심판에서 실패한 입장으로 되돌아간 결과가 되었다. 셋째로 그것은 사탄 주관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이 상대하실 수 있는 선주권의 세계를 분립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네째로 그것은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상대하여 섭리하실 수 있는 성물이 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바침으로 인하여 그것은 사탄 것 그대로를 바친 것이 되어, 결국 그것은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소생을 상징하는 제물인 비둘기가 사탄의 소유물로 남아지게 되었으므로, 소생의 기대위에 세워야 할 장성과 완성을 상징하는 양과 암소에게도 역시 사탄이 침범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상징제물은 모두 사탄에게 바친 결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범죄가 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상징제물에 솔개가 내렸다는 것은 (창 15:11)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인간 시조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뜻 앞에는 반드시 사탄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즉 창세기 4장 7절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헌제를 할 때에도 사탄이 그들을 엿보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노아 때에도 심판 직후에 사탄이 노아가정에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까마귀로써 보여 주셨다(창 8:7).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상징헌제’를 할 때에도 그 제물에 침범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던 사탄은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을 보고 곧 그 제물에 침범하였었다.그리하여 성경은 이 사실을 솔개가 제물위에 내린 것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헌제’의 실수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아브라함의 ‘상징헌제’실수로 말미암아 그 ‘상징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던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결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인 애급에서 400년 간 고역을 하게 되었던 것이니,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노아 때에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셨던 10대와 40수를 동시에 탕감복귀하기 하시기 위하여 400년이란 사탄 분립기간을 세우시고, 그 분립기대 위에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상징헌제’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그 제물을 또 사탄에게 바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상징헌제’로써 아브람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노아 이후의 400년 전도기간도 역시 사탄에게 내주시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기 전의 입장이며, 따라서 노아가 방주를 짓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서는 이 400년이란 사탄분립기간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고역하는 400년 기간은, 노아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출발하려 했었던 그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여 모세를 그 터전위에 세우시기 위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 고역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한 벌을 받는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위하여 사탄 분립의 터를 닦는 기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한 제단에 3제물을 동시에 드리는 ‘상징헌제’에 성공하심으로써 소생, 장성, 완성으로 표시된 모든 섭리를 동시에 이루려 하셨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를 중심한 섭리는 다시 이삭을 거쳐 야곱까지 3대에 걸친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실패는 노아의 방주를 중심한 ‘상징헌제’와 가인 아벨을 중심한 ‘상징헌제’등의 실패를 반복한 것이 되어 버렸다.
(2) 아브라함의 이삭 헌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한 후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시어(창 22:2), 그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시려는 새로운 섭리를 하셨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뜻을 위하여 예정되었던 인물이 그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 장본인을 다시 세워 쓰실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그 헌제로써 찾아 세우려던 모든 뜻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다시 세우시어 이삭 헌제로써 그의 ‘상징헌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수 있었던 것인가?
첫째로,‘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2차였고,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2차였으며,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3차였다. 그런데 3수는 완성수 (후편 제3장 제2절 Ⅳ)이기 때문에,‘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시려는 섭리가 연장되기 제3차 만이었던 아브라함 때에는 이 섭리를 완성해야 할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실체로 헌제하여 보다 큰 것으로서의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상징헌제’실수로 인하여 상징적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헌제를 드리는 아브라함의 입장은 곧 아담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그의 자식 가인에게 침범함으로써 2대에 걸친 그들을 빼았아 갔었기 때문에, 탕감복귀원칙에 의하여 하늘편에서도 아브라함과 그 자식의 2대에 걸쳐서 빼았아 올 수 있는 섭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로, 아담은 직접 헌제를 하지 못하였으나 섭리적으로 보아 노아는 아담과 같은 입장에 있으면서도 소생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심정의 터 위에 있었기 때문에 방주로써 직접‘상징헌제’를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소생,‘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터전과 장성,‘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의 기대 위에 부름받아 완성‘상징헌제’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렇듯 ‘상징헌제’에 실수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벨이나 노아가 ‘상징헌제’에 성공한 역사적인 심정의 기대를 조건으로 그를 다시 세워 한번 더 헌제를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에도 ‘상징헌제’를 하던 때와 같이 먼저 아담가정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이삭헌제를 위한 믿음을 세워야 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다시 자기의 처 사라와 남매의 입장에 서 가지고 사라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기어 일단 그의 처가 되어진 처지에서 다시 찾아오는 역사를 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때에도 사라와 함께 인류를 상징하는 노비와 만물세게를 상징하는 제물을 찾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창 20:1~16)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삭 헌제를 어떻게 하였는가? 아브라함이 그의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자식으로 받았던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죽이려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은 아노라(창 22:12)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나 그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과 충성에서 나온 행동은, 벌써 그로 하여금 이삭을 죽였다는 입장에 서게 하였기 때문에 이삭으로부터 사탄을 분리하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탄이 분리된 이삭은 벌써 하늘편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제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브라함의 ‘상징헌제’의 실수에 대한 책망과 이삭헌제의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이 아울러 강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아브라함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이 이삭을 다시 하늘편으로 분립함으로써 새로운 섭리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 모리아산상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는 데 3일 기간을 소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3일 기간은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새로운 섭리노정을 출발하는 데 있어서의 사탄을 분립하는 기간으로 필요한 것이 되었다. 야곱도 하란에서 그 가족을 이끌고 가정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때에 사탄 분립의 3일 기간을 지난 후에야 홍해를 향해 출발하였었다(출 8:27~29) 예수님도 영적으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실 때 사탄 분립의 무덤 3일 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에도, 본진에 앞서 그들을 인도한 법궤가 사탄분립의 3일노정을 걸었던 것이다.(수 3:1~6)
(3)뜻으로 본 이삭의 위치와 그의 상징헌제
아브라함은 일단 그의 ‘상징헌제’에 실패하였지만, 그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룰 수 있는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다는 데 관해서는 이미 위에서 상론한 바 있다. 그러나 예정론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한 장본인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또다시 같은 섭리를 되풀이 할 수는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상징헌제에서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던 것이고, 또 그로부터 연장된 복귀섭리를 연장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창 2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이삭)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루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4~5)고 하심으로써 이삭을 통하여 선민을 부르실 것을 약속하셨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그 약속의 자식인 이삭을 죽이려 했던 충성은,‘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과 같은 입장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입장에서,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였고, 더 나아가서 뜻을 중심하고 이삭과 일체불가분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죽음의 자리에서 같이 살아난 이삭과 아브라함은 서로 그 개체는 다르면서도 뜻을 중심하고 보면 한 몸이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심한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삭을 중심한 섭리에로 연장되더라도 그 섭리에서 이삭이 성공만 하면 이 성공은 바로 이삭과 한 몸 된 아브라함의 성공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그 섭리응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연장되었어도, 뜻을 중심하고 보면 아브라함이 실패도 하지 않았고 또 그 섭리가 연장도 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이삭 헌제 때의 그의 연장은 분명치 않다.그러나 그가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을 뿐만 아니라(창 22:6), 번제에 쓰일 양이 없는 것을 염려하여 그것이 어디에 있는 가 하고 그의 부친에게 물어 봤던 것(창 22:7)으러 미루어 보아, 그는 이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에 이삭 자신이 그것을 협조하였으리라는 사실도 또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뜻에 대한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연령에 도달해 있었던 이삭이, 만일 번제를 위하여 자기를 죽이려는 부친에게 반항하였다면 하나님이 그 이삭 헌제를 받으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충성과 그에 못지않은 이삭의 충성이 합동하여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사탄을 분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헌제를 중심하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첫째로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그 실수 이전의 입장으로 탕감복귀해 가지고 그 입장에서 자기의 섭리적인 사명을 이삭에게 인계할 수 있게 되었고, 둘째로 이삭으로서는 그가 뜻앞에 순종굴복함으로써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늘의 사명을 이어받아, 다음에 '상징헌제’를 드리기 위한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에게로 옮겨진 후,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 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를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것은 그대로 이삭을 중심하고‘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헌제'가 된 것이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던 사실로 보아 아브라함이 수양을 번제로 드리는 데 있어서도 이삭이 그를 협조하였으리라는 것은 추측하기에 어렵지 않다.따라서 아브라함이 수양으로 '상징헌제‘를 드렸다 하였지만,뜻으로 보면 그와 한 몸이 되어 그의 사명을 계승한 이삭 자신이 헌제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이와 같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사명을 인계하고 그를 대신한 입장에서 '상징헌제’에 성공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던 것이다.
Ⅱ. 실체기대
이와 같이 이삭은 아브라함을 대신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로서, 수양으로 ‘상징헌제’를 뜻맞게 드렸으므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었다.그러므로 이삭을 중심하고‘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여기에서 또 다시 그의 자식 에서와 야곱을 가인광 아벨의 입장에 분립하여 놓고‘실체헌제’를 함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실체기대’를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이삭과 그의 이복형이 되는 이스마엘이 각각 아벨과 가인의 입장에 서 가지고 가인과 아벨이 이루지 못하였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그러나 아브라함이 그 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입장에 이삭을 대신 세우시고 이스마엘과 이삭의 입장에는 각각 에서와 야곱을 대신 세우시어 그들로 하여금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는 섭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을 중심한 에서와 야곱은 아담을 중심한 가인과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노아를 중심한 셈과 함의 입장이기도 하였다.
맏아들 에서와 둘째 아들 야곱은 각각 사탄이 침범한 아브라함의 첫째 번‘상징헌제’와 사탄을 분립한 둘째 번 이삭 헌제의 상징이었으며, 또 그들은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실체헌제’를 해야 될 악과 선의 표시체들이었다.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서부터 싸운 것은(창 25:22~23)이와 같이 그들이 각각 악과 선의 표시체로 분립되었던 가인과 아벨의 입장으로서 상충적인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태중에서부터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신 것도(롬 9:11~13), 그들은 각각 아벨과 가인의 입장에서 저들의 헌제 실패를 탕감복귀해야 할 선악의 표시적인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에서와 야곱이‘실체헌제’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는 먼저 야곱이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그런데 야곱은 다음과 같이 ‘실체헌제’를 거친 후에, 아브라함의 ‘상징헌제’실수로 말미암은 400년 간의 탕감노정을 걷기 위하여 애급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첫째로, 야곱은 장자의 기업을 개인적으로 복귀하는 싸움에서 승리의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장자의 입장에서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차자의 입장에서 그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나오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장자를 미워하고 차자를 사랑하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말 1:2~3)그런데 장자의 기업을 복귀해야 할 사명을 띠고 복중에서부터 부름을 받은 야곱은 차자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떡과 팥죽으로서 에서로부터 그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던 것이다(창 25:34). 야곱은 장자의 기업을 중히 여기어 그것을 복귀하려는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삭으로 하여금 그를 축복하게 하셨고(창 27:27), 이에 반하여 에서는 그것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릴 정도로 경홀히 여겼기 때문에 그를 축복하시지 않았다.
둘째로, 야곱은 사탄세계인 하란으로 들어가 21년 간을 고역하면서 가정과 재물을 중심하고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는 싸움에서 승리해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셋째로, 야곱은 하란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어올 때, 압복강에서 천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실체로써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야곱은 이와 같이 하여 드디어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함으로써 ‘실체헌제’를 위한 중심인물이 되었었다.
이로써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이 아벨의 헌제를 받으셨을 때의 가인과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였기 때문에, 그들이‘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려면 에서와 야곱을 사랑하고, 그를 중보로 세우며, 그의 주관을 받는 입장에서 순종굴복하여 축복을 받은 야곱으로부터 선을 이어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는 입장에 서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 에서는 야곱이 하란에서 21년 간의 고역을 마치고 하늘편 처자와 재물을 취하여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그대로 그를 사랑하고 환영하였기 때문에(창 33:4)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담가정의 가인과 아벨, 또 노아가정의 셈과 함이 ‘실체헌제’에 실패하였던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에서와 야곱이 ‘실체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일찍이 아담가정으로부터 ‘실체헌제’를 탕감복귀하여 나온 종적인 역사노정을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노정 중 이삭가정에서 비로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에서를 태중에서부터 미워하였다고 로마서 9장 11절 내지 13절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와 같이 그는 야곱에게 굴복하여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였기 때문에 복귀한 가인의 입장에 설 수 있게 되어 드디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따라서 하나님이 그를 미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다만 그가 복귀섭리의 탕감조건을 맞추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사탄편인 가인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입장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Ⅲ. 메시아를 위한 기대
아담가정에서부터 세우려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3시대에 걸쳐 연장되어 아브라함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이 뜻을 완성해야 할 아브라함이 또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이 뜻은 다시 이삭에게로 연장되었었다. 그런데 이삭가정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이때에 비로소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는 응당 이때에 강림하셔야 될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중심하고 볼 때, 메시아를 맞기 위한 이 기대의 사회적인 배경은 어떠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은 이미 사탄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세계를 메시아를 위한 왕국으로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담가정이나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그 가정을 침범할 수 있는 다른 가정이 없었기 때문에,‘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만 이루어지면 그 기대 위에 메시아는 오시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 때에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한 민족을 형성하여 아브라함가정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기대 위에 바로 메시아가 강림하실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가 사탄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민족적인 판도 위에 세워진 후에야 비로소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고 ‘실체헌제’에 성공하여 그때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기대를 중심하고 그 후손이 가나안 땅에서 번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상징헌제’에 실수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벌로서,‘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조성한 이삭의 후손들은 고향을 떠나 이방에 들어가서 400년 간을 고역하면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온 후에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상징헌제’실수로 말미암아 그 후손에게 남아진 탕감노정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였던가? 그것은 이삭이 아니고 야곱으로부터였다.왜냐하면 위에서 이미 상론한 바와 같이, 모든 탕감노정을 중심적으로 걸어야 할 인물은 ‘실체헌제’중심인 아벨형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담가정에서는 아벨, 노아가정에서는 함, 아브라함가정에서는 이삭, 그리고 이삭가정에서는 야곱이 각각 그 가정의 탕감노정을 중심적으로 걸어야 했던 것이다. 특히 야곱은 ‘메시아를 위한 기대’위에 선 아벨형의 인물이었기 때문에,다음에 메시아가 걸으셔야 할 사탄분립의 전형노정을 먼저 본보기로 걸어야 했던 것이다(후편 제2장 제1절)
그리하여 야곱가정은 이삭가정을 중심하고 세워진 ‘메시아를 위한 기대’위에서, 아브라함이 지은 죄를 담담하고 400년 간의 탕감조건을 걸음으로써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이삭가정과 같은 입장에서 이 탕감노정을 출발하게 되어 있었다.
즉 이삭가정에 있어서 아벨의 입장인 야곱이 모든 탕감노정을 걸었던 것과 같이, 야곱가정에 있어서는 야곱의 하늘편 처 라헬의 소생인 요셉이 먼저 애급으로 들어가 그 탕감노정을 걸음으로써 아벨의 입장을 확립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그의 형들에 위하여 애급으로 팔려 가서 30세에 애급의 총리대신이 된 후에 그가 어렸을 때 하늘에서 몽시로써 예시해 주셨던 대로(창37:5~11), 먼저 야곱의 사탄편 처 레아의 소생인 이복형들이 그에게 가서 굴복함으로써 자녀들이 먼저 입애급노정을 걷게 되었고, 다음으로는 그의 부모가 같은 노정으로 인도되었었다. 그리하여 야곱가정은 장차 메시아를 민족으로 맞기 위한 탕감노정을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삭을 중심한 섭리는 또 야곱을 중심한 섭리노정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마치 아브라함과 이삭이 개체는 다르지만 뜻으로 볼 대 한 몸이었던 것과 같이. 야곱은 이삭가정을 중심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운 ‘실체기대’의 중심인물로서 아브라함이 지은 죄를 담당하고, 장차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 가지고 이삭의 뜻을 민족적으로 이루어야 할 탕감노정을 출발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서로 개체는 다르나 뜻으로 보면 모두 한 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의 성공은 곧 이삭의 성공이요, 이삭의 성공은 곧 아브라함의 성공이 되기 때문에 ,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되었으나 뜻을 중심하고 보면 연장되지 않고 그 당대에 이루어진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고 한 말씀은 바로 이러한 섭리노정에 입각해 볼 때, 그들은 3대이면서도 뜻으로 보면 하나의 ‘뜻’을 공동으로 이룩한 선조들로서 1대와 같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실상 하난님은 야곱가정으로 하여금 사탄세계인 애급에 들어가 400년 고역의 길을 걷게 하시면서,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말씀대로 선민을 세워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한 후‘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우시게 하심으로써, 이 기대 위에 메시아를 보내시어 복귀섭리를 완수하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가정을 중심하고 세워진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결과적으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한 탕감노정의 출발기대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2천년 기간은 결과적으로 다음 시대에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우기 위한 출발기대를 조성하는 기간이 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상징헌제’실수로 인한 탕감노정을 담당한 야곱은 하늘 뜻을 위한 지혜로써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개인적인 싸움에서 성공하였고, 사탄세계인 하란으로 들어가 그의 외숙부 라반으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가정적으로 빼았는 21년 간의 싸움에 성공하였다.그리고 그가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또 천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인간조상이 타락된 이후 타락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음으로써 선민 형성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야곱은 이러한 노정을 걸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 비로소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으므로, 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전형노정을 성공적으로 걷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전형노정을 따라서 모세도 걸었고 예수님도 걸으셨으며 이스라엘 민족도 또한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사는 사탄을 민족적으로 굴복시켜 온 그 전형노정의 사료가 되는 것이다.이스라엘 민족사가 복귀섭리역사의 중심사료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Ⅳ.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우리에게 보여 준 교훈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첫째로 우리에게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어떠하신가를 보여 주셨다. 복귀섭리는 하나님의 뜻만으로써는 이루어질 수 없고, 인간책임분다이 합해져서만 비로소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려 하셨으나, 그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로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어떠하신가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예정하셨으나, 아브라함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명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로 옮겨졌던 것이다.
셋째로 복귀섭리느 인간이 그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할 때에 그 뜻은 필연적으로 연장되고, 동시에 그것을 복귀하려면 보다 큰 것으로서의 탕감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으로서는 동물을 제물로 바쳐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뜻이, 그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서야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넷째로눈 제물을 쪼개는 것으로써, 우리들도 각자를 제물로서 쪼개어 선과 악으로 분립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신앙생활은 자신을 제물의 입장에 세워 놓고 선과 악으로 쪼개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축의 제물로 바치는 생활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자신을 쪼개지 않을 때에는 거기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다.

제2장 모세와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관한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성서를 보아도 그 숨은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성서에서는 하나의 선지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도 그것의 실상은 단순히 그의 역사에만 멎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선지자의 생애를 통하여 타락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하나님이 야곱과 모세를 세워 복귀섭리노정을 걷게 하시어, 그것으로써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걸으실 섭리노정을 어떻게 미리 보여주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제1절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
이삭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실체기대'를 세우는 중심인물이었던 야곱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여 가지고,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가던 전 노정은, 야곱에 의한 그 상징노정을 형상적으로 걸어야 할 모세노정이나, 또 그것을 실체적으로 걸어야 할 예수님의 노정에 대한 본보기 노정이었다. 그리고 이 노정은 이스라엘 민족과 전인류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면서 걸어가야 할 본보기노정이기도 하다.
Ⅰ. 예수님의 전형노정으로 야곱노정과 모세노정을 세우신 이유
복귀섭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으로서 사탄을 자연굴복시키고 주관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조상으로서 메시아의 사명을 맡고 오신 것도, 사탄굴복의 최종적인 노정을 개척하여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그 노정을 따라가게 함으로써, 사탄을 자연굴복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도 순종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인간조상으로 오시는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을 세우심으로써, 그를 통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노정을 본보기로 보여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야곱을 세우시어 사탄을 굴복시키는 본보기노정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모세는 이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그 형상노정을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야곱노정을 밟아온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그 실체노정을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으며, 한편 또 성도들도 그 노정을 따라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키고 주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을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라고 한 것은(사도행전 3장 22절), 모세와 같은 입장에서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섭리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표시한 말이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9절에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미 모세를 세워서 보여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다음에 오실 예수님의 모의자가 되는 것이다(사도행전 3장 22절).
Ⅱ. 야곱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노정과 예수노정
야곱노정은 바로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간 노정이다. 그리고 사탄을 굴복시키는 노정은 사탄이 침범했던 그 경로를 되돌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야곱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노정과 예수노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인간은 원래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었는데, 천사장으로부터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타락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야곱이 하란에서 처자와 제물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가정적으로 가나안 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사탄과 생명을 걸고 싸우는 시련에서 승리해야 했던 것이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생명을 걸고 싸워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것은(창세기 32장 25~28절) 바로 이러한 시련을 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사탄의 입장에 세워서 야곱을 시험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야곱을 불행하게 하시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는 시련을 넘게 함으로써, 아벨의 입장을 확립케 하여 가정복귀 완성자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천사가 이러한 시련의 주체적인 역활을 함으로써, 천사세계도 하늘편으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민족적 가나안 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는 시련에서 생명을 걸고 이겨내야 되었다(출애굽기 4장 24절). 만일 인간이 이러한 시험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당하지 않고 사탄에게 당하다가 그 시험에 패하게 되면, 사탄에게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편에서 시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예수님도 인류를 지상천국을 인도함으로써 세계적 가나안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광야 40일 시험에서 생명을 걸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셔야만 했던 것이다(마태복음 4장 1~11절).
② 인간의 육과 영에 사탄이 침범하여 타락성이 생겼으므로, 야곱은 이것을 벗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그러므로 야곱은 육과 영을 상징하는 떡과 팥죽을 주고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는 것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을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창세기 25장 34절). 이 노정을 위하여 모세노정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육과 영을 상징하는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여,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선민의식을 강하게 함으로써, 모세에게 순종하게 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출애굽기 16장 13절).
예수님이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한복음 6장 48~53절)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도 이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타락인간들이 세례요한의 입장에 있는(본장 제3절 Ⅱ.1)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영 육 아울러 그와 일체가 되어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그를 메시아로 모시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③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시체까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런데 야곱은 축복을 받아 성별된 몸이었기 때문에, 그의 시체도 사탄과 싸워 분립했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그 시체에 40일간 방부제를 발랐던 것이다(창세기 50장 3절). 따라서 이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에 있어서도 그의 시체를 놓고 사탄과 싸웠으며(유다서 1장 9절), 또 예수님에 있어서도 그의 시체를 둘러싸고 문제가 일어났었던 것이다(마태복음 28장 12~13절).
④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성장기간에 사탄이 침범하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그 기간을 표시하는 수를 찾아 세우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후편 제3장 제2절 Ⅳ). 즉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에, 사탄분립의 3일기간이 있었고(창세기 31장 22절), 모세가 민족을 이끌고 애급으로부터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에도, 이러한 3일기간이 있었으며(출애굽기 5장 3절), 또 여호수아도 이 3일기간을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요단강을 건넜었다(여호수아 3장 2절). 그리고 예수님의 영적인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사탄 분립의 무덤 3일기간이 있었던 것이다(누가복음 18장 33절).
사탄에게 내주었던, 노아로부터 야곱에 이르는 12대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야곱 1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야곱에게 12자식이 있었던 것이다(창세기 35장 22절). 그렇기 때문에 모세 때에도 12지파가 있었고(출애굽기 24장 4절), 예수노정에도 12제자가 있었던 것이다(마태복음 10장 1절).
7일 창조기간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야곱 때에는 70가족이(창세기 46장 27절), 모세 때에는 70장로가(출애굽기 24장 1절), 예수때에는 70문도가 각각 그 노정의 중심역활을 하였었다(누가복음 10장 1절).
⑤ 지팡이는 불의를 치고 앞길을 인도하며 강한 의지하는 뜻의 표징물로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였던 것이다(본장 제2절 Ⅱ.2.ㄴ). 따라서 야곱이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짚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은(창세기 32장 10절), 장차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받들어 불의를 치고 또 그의 인도를 받으며 그를 의지함으로써, 죄악세계를 넘어 창조이상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도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넜으며(출애굽기 14장 16절), 예수님도 자신을 표징하는 철장을 가지고, 이 고해의 세계를 건너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에로 전 인류를 인도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요한계시록 12장 5절, 요한계시록 2장 27절).
⑥ 해와의 범죄가 죄의 뿌리를 이루었고, 그의 자식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그 열매를 맺었다. 이와같이 모자로 말미암아 사탄이 침범하여 죄의 열매를 맺었으므로,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하여 모자로써 사탄을 분립해야만 된다. 따라서 야곱이 축복을 받고 사탄을 분립하였던 것도, 그 모친의 적극적인 협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창세기 27장 43절). 모세도 또한 그 모친의 협조가 없었으면, 그가 죽을 자리에서 헤어나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자리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출애굽기 2장 2절). 그리고 예수님 때에도 역시 그를 죽이려던 헤롯왕을 피하여 그를 데리고 애급으로 피난한 그 모친의 협조가 있었던 것이다(마태복음 2장 13절).
⑦ 복귀섭리의 뜻을 이루는 중심인물은 사탄세계에서 하늘세계에로 복귀하는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야곱은 사탄세계인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하는 노정을 걸었고(창세기 31장 33절), 모세는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복귀하는 노정을 걸었으며(출애굽기 3장 8절), 예수님도 이 노정을 걸으시기 위하여 출생하자마자 애급으로 피난갔다 돌아오셔야 했던 것이다(마태복음 2장 13절).
⑧ 복귀섭리으 최종적인 목적은 사탄을 괴멸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야곱은 우상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고(창세기 35장 4절), 모세는 금송아지로 된 우상을 부수어 그 가루를 물에 뿌려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시게 하였으며(출애굽기 32장 26절), 예수님은 그의 말씀과 권능으로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이 죄악세계를 진멸하셔야 했던 것이다(전편 제3장 제3절 Ⅱ.2참조).
제2절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
Ⅰ.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의 개관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이미 세워진 '메시아를 위한 기대'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된다는 원칙은 그에게 있어서도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달라졌으므로, 그 인물들 자신도 또한 그러한 책임분담을 다하지 않고는 복귀섭리의 뜻을 이어받을 수 없었으며, 또 그 섭리의 범위가 가정적인 것에서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다음의 기록이 보이는 바와같이, 이 기대의 조성을 위한 탕감조건의 내용이 전의 것에 비하여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말미암은, 그 후손의 애급고역 400년기간이 끝난 다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는 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모세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이 '믿음의 기대'를 어떻게 세웠는가 하는 것을 알기 전에, 복귀섭리로 본 모세의 위치를 상고하여 모세 이전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던 다른 인물들, 즉 아담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에 비하여, 모세의 다른점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그것은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 대신의 신으로 세워졌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기 4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선지자 아론 앞에서 신과 같이 되리라고 하셨고, 또 출애굽기 7장 1절에는 그를 바로에게 있어 신이 되게 하셨다고 하였다.
둘째로, 모세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의자였었다. 위에서 논한 바와같이, 하나님은 모세를 아론과 바로 앞에 신이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육신을 쓴 신은 예수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이 모세를 신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은 곧 모세를 출애급노정에 있어서 예수님의 모의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모세는 예수님의 모의자로서 예수님이 걸으실 노정을 그대로 앞서 걸음으로써, 마치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가실 길을 곧게 해야 했던 것과같이(요한복음 1장 23절) 모세도 예수님이 가실 길을 미리 개척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모세는 이 노정을 어떻게 걸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세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야곱의 후손으로서, 복귀섭리시대의 섭리역사를 담당한 중심인물일 뿐 아니라, 다음에 예수님이 오셔서 걸으셔야 할 야곱의 본보기 노정을 형상적으로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모세는 야곱가정의 입애급 노정에서 요셉이 세운 터전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요셉은 또 하나의 예수님의 모의자였다. 요셉은 야곱의 하늘편 처로 세워진 라헬이 낳은 아들로서, 야곱의 사탄편 처로 세워진 레아의 소생들의 동생이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아벨의 입장으로서, 가인의 입장에 있었던 그의 형들이 죽이려 했던 가운데서 겨우 죽음을 모면하고, 상인에게 팔린 바 되어 먼저 애급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30세에 애급의 총리대신이 된 후에, 그가 어렸을 때 하늘에서 몽시로써 교시한 대로(창세기 37장 5~11절) 그의 형들과 그의 부모가 애급으로 찾아와 굴복한 섭리노정의 터전위에서, 이스라엘의 사탄분립을 위한 애급고역노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요셉의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이 사탄세계에 오셔서, 고난의 길을 통하여 30세에 만왕의 왕으로 군림한 후에, 전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이 선조까지도 굴복시켜 가지고, 그들을 사탄세계로부터 분립하여 하늘편으로 복귀시킬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처럼 요셉의 전 생애는 바로 예수님의 모의자로서의 걸음이었던 것이다.
한편 또 모세의 생장과 서거도 예수님의 그 본보기노정이었다. 모세는 출생시부터 바로왕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으므로, 그 모친이 그를 숨겨서 키운 후에야 바로 궁중에 들어가 원수들 가운데서 안전하게 성장하였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출생하자 헤롯왕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계셨었으므로, 그의 모친이 그를 데리고 애급에 들어가 숨겨 키운 후에야, 헤롯왕의 통치권내로 다시 돌아와 원수들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성장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죽은 후 그 시체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신명기 34장 6절), 예수님의 시체의 그러한 것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모세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바로 그대로가 아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바와같이,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걸으실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모세가 예수님의 모의자였다는 사실은 신명기 18장 18절내지 19절에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예수님)를 세우실 것을 예언하시면서,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벌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도 역시 하나님이 모세를 시켜, 장차 예수님이 행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모세는 위에서 논한 바와같이, 모세 이전의 섭리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여 온 다른 중심인물들과는 다른 입장에 서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아벨이나 노아나 아브라함과 같이 '상징헌제'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40일 사탄분립기대'만을 세우면,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더 들어 보면, 첫째, 모세는 아벨 노아 이삭등 3차에 걸친 '상징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상징헌제'에 의한 섭리를 모두 마친 기대 위에 섰었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시조가 타락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게 됨으로 말미암아,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말씀 대신의 조건물로 세운 것이 제물이었다. 그런데 모세 때에 이르러서는, 제물을 조건물로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던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지나가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할 수 있는 복귀섭리시대로 들어왔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위한 '상징헌제'는 필요없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아담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연장되어감에 따라, 사탄이 침범하여 연장되었던 그 섭리적인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노아가 방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40일 사탄분립기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400년기간을 탕감복귀하여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 선 후에야,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상징헌제'를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400년간 고역하게 되었던 것도, '40일 사탄분립기대'를 탕감복귀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그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되어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는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서 제물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서기만 하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2. 실체기대
복귀기대섭리시대에 있어서는 '가정적인 실체기대'를 세우는 섭리를 하셨었다. 그러나 복귀섭리시대에 들어와서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세우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모세는 하나님 대신이었으므로(출애굽기 4장 16절, 출애굽기 7장 1절) 예수님의 입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는 부모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세는 예수님에 앞서서 그의 길을 개척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선지자로서 자녀의 입장이기도 하여다. 따라서 그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세워야 할 중심인물로서 아벨의 입장에도 설 수 있어야 하였다.
아벨은 아담 대신 부모의 입장에서 헌제를 하였기 때문에, 그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그는 아담이 세워야 할 '믿음의 기대'와 함께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 자신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과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이때에 있어서 모세도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도 역시 부모의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면, 그와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위치도 확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모세가 아벨의 위치를 확립한 후, 이스라엘민족이 가인의 입장에서 모세를 통하여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면 거기에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3. 메시아를 위한 기대
모세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고,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민족이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면, 그것이 바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그 기대 위에서, 오시는 메시아로 말미암아 중생되어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체를 이룸으로써 창조본성을 복귀하면 '완성실체'가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Ⅱ.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
모세가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이적과 기사로써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노정은, 장차 예수님이 이 죄악 세계에서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을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이 죄악세계의 고해를 건너고 생명의 물이 마른 사막을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창조본연의 에덴으로 복귀케 될 그 노정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된 것과 같이,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도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모세노정과 예수노정과의 세밀한 대조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은 본절과 다음 절을 대조함으로써 소상히 밝혀질 것이다.
1.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을 애급에서 고역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초래된 민족적인 탕감기간은 끝나게 되었었다. 여기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하여,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모세는 이 목적과 함께, 타락전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워야 했던 40수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후편 제3장 제2절 Ⅳ) 사탄세계의 중심인 바로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나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남 모르게 그의 유모로 세워진 어머니로부터 선민의식에 불타는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궁중생활 40년을 마친 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와 충절을 변치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을 받기를 잠시 바로궁중에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기뻐하여, 그 가운데서부터 뛰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히브리서 11장 24~25절). 이와같이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으로써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던 것이다.
(2) 실체기대
모세는 믿음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동시에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같이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었다. 이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이, 그들의 부모의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의 아벨의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게 되었더면, 그 때에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같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는 기간은, 바로 그들이 이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을 쳐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모세는 자기의 동포가 애급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불타는 동포애를 이기지 못하여 그 애급인을 쳐 죽였던 것이나(출애굽기 2장 12절), 실상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처참한 광경을 보시고(출애굽기 3장 7절) 울분을 느끼신 그 심정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세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모세를 따라서 사막을 횡단하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성공적으로 출발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사실을 결정짓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모세가 이와 같이 애급인을 쳐죽인 것은, 첫째로 천사장이 인간시조를 타락시켰고 또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사탄이 장자의 입장에서 인류죄악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으므로, 하늘편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편을 쳐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 궁중에 대한 미련을 끊고, 다시는 그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하시기 위함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애국심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믿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하나님이 애급인의 장자와 그 가축의 맏것을 전부 쳐버렸던 이유도 이러한 데 있었다.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모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더 존경하고 더 믿고 모시며 따랐더라면, 그들은 모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홍해를 건너거나 시내광야를 도는 일이 없이 바로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 길을 통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가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노정은 야곱의 하란 21년노정을 탕감하는 21일 노정이 되었을 것이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에는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급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보아서 하나님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블레셋 땅의 곧은 길로 통하게 하려 하셨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모세를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고,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때는 제1차 때와 같이 그들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가나안 복귀의 도중에서 애급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가도록 인도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다.
(3)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더라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애급인을 쳐죽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소문내었으므로, 바로는 이 소문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2장 15절). 이에 모세는 할 수 없이 바로의 눈을 피하여 이스라엘민족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게 되었으므로 그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며,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복귀노정은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2.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세가 그의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웠던 바로궁중 40년기간은,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모세가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는 사탄 침범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로 궁중생활 40년기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을 다시 찾아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들어가 다시 40년기간을 보내게 되었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40년기간에는 이스라엘 민족도 모세를 불신한 죄로 더욱 더 비참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으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새로이 세웠기 때문에,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급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 3장 7~10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2) 실체기대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으로써, '40일 사탄분립기대'를 다시 만들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다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였다. 따라서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경우와 같이,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잇는 모세를 절대로 믿고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므로 여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하였을 때에, 모세가 애급인을 쳐죽였던 것과 같은 목적으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때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3대 기적과 10재앙의 권능을 주시어 애급인을 치게 하심을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모세가 사탄편을 쳐야 하는 이유는 위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첫째 사탄편이 침범한 장자의 입장을 탕감복귀하고, 둘째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고, 셋째 모세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1~9절).
그리고 모세가 애급인을 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인한 애급고역 400년 탕감기간을 다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30년이나 더 고역을 당함으로써(출애굽기 12장 41절), 그들의 탄식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자아내게 되었었다는 사실이다(출애굽기 2장 24~25절).
3대기적은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무엇을 예시하셨던가?
첫째 기적은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보여주신대로(출애굽기 4장 3~9절) 모세의 명령에 의하여 아론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이것을 본 바로도 그의 술객들을 불러 지팡이를 던지게 하자 그것들도 역시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변하여서 된 뱀이 그것의 것을 모두 삼켜버렸다(출애굽기 7장 10 ~12절).
그러면 이 기적은 무엇을 에시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구주로 오셔서 사탄세계를 멸하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하나님 대신 신으로 세워진 모세(출애굽기 7장 1절) 앞에서 기적을 나타냈던 그 지팡이는, 장차 하나님 앞에서 이렇듯 기적을 나타내실, 권능적인 면에서의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또 지팡이는 대신 의지자며 대신 보호자로서 불의를 쳐서 바른 길잡이의 사명을 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전 인류 앞에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오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사명적인 면에서의 예수님을 상징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상징하는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또한 뱀의 역할도 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장 14절)라고, 자기를 뱀으로 비유하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로우라고도 하셨다(마태복음 10장 16절). 이것은 원래 인간조상이 악한 뱀에게 꼬임을 당하여 타락되었으니, 이것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예쑤님은 선한 지혜의 뱀으로 오셔서, 악한 인간들을 또여 선으로 인도해야 되기 때문에, 제자들도 선한 뱀으로 오신 예수님의 지혜를 본받아 악인들을 선도해야 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한편 또 모세의 뱀이 술객의 뱀을 삼켰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늘 뱀으로 오셔서 사탄 뱀을 삼켜 멸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둘째 기적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모세가 첫번 손을 품었을 때 그 손이 문둥병에 걸렸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그 손을 다시 품었을 때, 그 병든 손이 깨끗이 나아버렸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6~7절).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후아담으로 오셔서, 후해와의 신성이신 성신(전편 제7장 제4절 Ⅰ)과 더불어 속죄의 역사를 하시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다.
첫번 손을 품음으로써, 고칠 수 없는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은, 처음에 천사장이 해와를 품음으로써 인간이 죽음의 입장으로 타락해버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손을 다시 품어서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은 인류의 부성신 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인류의 모성신 되신 성신(전편 제7장 제4절 Ⅰ)을 복귀하여, 암탁이 병아리를 품듯이(마태복음 23장 37절) 전 인류를 다시 품어 중생시킴으로써, 완전복귀한다는 것을 표시하신 것이었다.
셋째 기적은 강물을 육지에 부어서 피가 되게 한 것이었다(출애굽기 4장 9절). 이것은 무기물과 같은 생명 없는 존재가 유기물(피)과 같은 생명 있는 존재로 복귀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물은 타락되어 생명을 잃은 세상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요한계시록 17장 15절) 이 기적은 장차 예수와 성신이 오셔서 생명을 잃어버린 타락인간들을 생명 있는 자녀로 복귀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위와 같은 3권능을 나타내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 앞에 장차 예수님과 성신이 인류의 참부모로 오셔서, 전 인류를 자녀로서 복귀하고, 사탄에게 빼앗겼던 창조본연의 4위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다음으로 모세가 하나님에게 자기의 말씀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 형 아론(출애굽기 4장 14절)과 아론의 누이가 되는 여선지 미리암(출애굽기 15장 20절)을 주셨다. 이것은 장차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님과 성신(요한복음 1장 14절)이 오셔서,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린 인간을 말씀의 실체로 복귀하실 것을 형상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론과 미리암이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입장인 모세의 뜻을 받들고, 그의 대신으로 영도의 사명을 했던 것은, 장차 예수님과 성신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대신 속죄사명을 하실 것을 형상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 앞으로 나아가는 도중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 그 때에 모세는 그의 처 십보라가 그의 아들을 할례함으로써 죽음을 모면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24~26절). 모세는 할례로써 그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그의 가족이 살아났었고, 따라서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나올 수 잇게 되었으니, 이것도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할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면 할례는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간조상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음에 따라 양부를 통하여 사망의 피를 받았었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 탕감조건으로 양부를 쳐서 피를 냄으로써, 그 사망의 피를 뽑았다는 표시의 조건으로 할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할례의 근본 의의는 첫째로 사망의 피를 뽑는 표요, 둘째로는 남자의 주관성을 다시 찾는 표이며, 세째로는 본성의 자녀의 입장을 다시 찾는 약속의 표인 것이다. 그런데 할례의 종류에는 마음할례(신명기 10장 16절), 육신할례(창세기 17장 10절), 만물할례(레위기 19장 23절) 등 세 종류가 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10재앙의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구출하셨으니(출애굽기 7장 10~12장 36절), 이것도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이적과 기사로써 하나님의 선민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야곱이 하란에서 21년간의 고역을 할 때에, 라반이 응당 야곱에게 주어야 할 푸삯을 주지 않고 열 번이나 그를 속였었다(창세기 31장 7절). 그렇기 때문에 야곱노정을 걷는 모세노정에 있어서도,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도에 넘는 고역을 시켰을 뿐 아니라, 열 번이나 그들을 놓아 준다고 하면서 매번 속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탕감으로 10재앙을 내려 바로를 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이 재앙들은 또 무엇을 예시하였는가를 알아보자.
애급 편에는 3일간의 어둠이 있었고 이스라엘에게는 3일간의 광명이 있었으니,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사탄편은 흑암이요, 하늘편은 광명으로 분기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애급의 장자와 육축의 맏것을 모조리 쳤으나 이스라엘은 양의 피로써 이것을 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탄편에 있어서의 장자는 가인의 입장이었으므로 이것을 쳐서 아벨의 입장인 차자로 하여금 장자의 입장을 복귀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 재앙도 역시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당초에 장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섭리노정을 먼저 출발한 사탄편은 망하고, 차자의 입장인 하늘 편은 예수님의 피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는 또 애급에서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왔는데(출애굽기 12장 35~36절), 이것도 장차 있을 예수님의 만물복귀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재앙의 이적을 내리실 때마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으니(출애굽기 10장 27절), 그이유는 첫째, 바로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어,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고(출애굽기 10장 1~2절), 둘째로는 바로로 하여금 있는 힘을 다하여서 이스라엘 민족을 붙잡다가 할 수 없이 단념하게 하심으로써,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고 이스라엘이 애급을 떠난 후에도 그들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로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하여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도리어 불신하였기 때문에, 이 노정은 출발도 해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보여주신 3대 기적과 10재앙을 보고, 모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도자라는 것을 믿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드디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일시적으로 이와같이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였다고 해서 그것으로 곧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섭리노정에 사탄이 침범하여, 오랜 섭리의 기간을 사탄에게 내주었던 것이므로, 모세에 대하여 가인의 입장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기간'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 광야노정의 전 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가지 않고서는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제2차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그 1차 때보다도 더 큰 은사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으므로, 제2차 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은 더 가중되었던 것이다. 즉 제1차 노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모세를 믿고 따르기만 하였더면, 블레셋의 곧은 길로 인도되어 야곱의 하란노정 기간수인 21일간이면 가나안 복지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제2차 노정에 있어서는 출애굽기 13장 17절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같이, 만일 그들이 블레셋 땅의 곧은 길로 인도되면 전쟁을 보고 두려워함으로써, 제1차 노정 때와 같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애급땅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시어, 하나님은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홍해를 건너고 시내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취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21개월 광야노정을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와같이, 이 노정이 어떻게 장차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본보기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세에게 굴복한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땅에서 희생을 드릴 것을 허락했을 때에, 모세는 그리함은 불가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급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급사람이 보는 데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대로 하려 하나이다(출애굽기 8장 26~27절)라는 말로써 바로을 속여 자유허여의 3일 간을 얻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나왔다.
이 3일기간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헌제를 위하여 사탄분립에 소요된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후 이것은 섭리노정을 출발할때마다 사탄 분립에 필요한 탕감기간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이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할 때에도, 라반을 속이고 하란을 떠나 사탄을 분립한 3일기간이 있었다(창세기 31장 19~22절). 이와 마찬가지로 모세에게도 그가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서는, 바로를 속이고 자유행동을 취하여 사탄을 분립하여 3일기간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후일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사탄분립을 위한 3일기간이 있은 후에야 영적 복귀섭리의 출발을 하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도 되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장정 60만명이 라암셋을 출발한 것은 정월 15일이었다(출애굽기 12장 6~37절, 민수기 33장 3절).
이스라엘 민족이 3일기간을 뜻맞게 세워 숙곳에 이른 후에는, 하늘이 은사를 내리시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셨다(출애굽기 13장 21절). 모세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양)의 구름기둥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으로 인도할 예수님을 표시하고, 밤(음)의 불기둥은 여성신으로서 그들을 인도할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팡이로 홍해를 가름으로써 이것을 육지와 같이 건넜으나 그들의 뒤를 추격해 오던 애급의 병거는 다 수장되어 버리고 말았었다(출애굽기 14장 21~28절).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같이 바로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출애굽기 7장 1절),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사탄은 예수님을 따라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걷는 신앙자들의 뒤를 추격할 것이지만, 지팡이의 사명자로 오시는 예수님이 철장으로(요한계시록 2장 27절, 시편 2장 9절) 그들 앞에 가로놓인 이 고해의 세상을 치면, 이 고해도 평탄한 길로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갈 길은 열리고 추격하는 사탄은 멸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전편 말세론에서 이미 밝힌 바와같이, 철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장 15절에는 이 죄악세상을 '물'로 비유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을 고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통념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서 애급을 떠난지 제2월 15일에 신광야에 이르렀다(출애굽기 16장 1절).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이셨으니(출애굽기 16장 35절), 이것은 장차 예수님의 살(만나)과 피(메추리)를 모든 인간에게 주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4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너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듬에 장막을 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어 호렙산의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먹이셨다(출애굽기 17장 6절).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으니, 이 행사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생명수 샘물로(요한복음 4장 14절) 모든 사람을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가 다음에 시내산에서 받게 되는 두 석판도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지만, 반석은 석판의 뿌리가 되므로 이것은 또한 하나님도 상징한다. 모세가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먹여 살린 터전이 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모세가 석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법궤와 성막을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르비듬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하였다. 그러므로 아론과 훌은 돌을 쌓아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그의 손을 내려지지 않도록 좌우에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싸운 여호수아는 아말렉왕과 그 백성을 쳐서 승리하였다(출애굽기 17장 10~13절). 이것도 장차 예수께서 오실 때에 되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으니, 여호수아는 예수를 믿는 신앙자를, 마말렉은 사탄세계를, 그리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고 서 있는 것은 그 앞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님과 성신의 3위신을 모신 신앙자들은 그 앞에 오는 모든 사탄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3) 성막을 중심한 복귀섭리
우리는 먼저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게 된 경위를 알아야겠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한 후 제3월 초에 시내광야에 이르렀다(출애굽기 19장 1절). 여기에서 모세는 장로 70인을 거느리고 시내산으로 올라가 하나님을 뵈었다(출애굽기 24장 9~10절). 하나님은 특별히 모세를 시내산정으로 부르시사, 석판에 기록한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40주야의 금식을 하라고 명하시었다(출애굽기 24장 18절). 모세는 시내산에서 금식을 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법궤와 성막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출애굽기 25장 31장). 그리고 40일간의 금식이 끝났을 때 모세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석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것이다(출애굽기 31장 18절).
모세가 이 석판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 앞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은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섬기고 있었다(출애굽기 32장 4절). 이것을 본 모세는 크게 노하여 손에 들었던 석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출애굽기 32장 19절).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처음것과 같은 석판을 깎아 만들어 오면 거기에 다시 십계명의 말씀을 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애굽기 34장 1절). 이 말씀을 받은 모세가 다시 40주야를 금식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석판에 다시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셨다(출애굽기 34장 28절). 모세가 이 석판을 가지고 다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모세를 받들게 되어 법궤를 만들고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35장 ~ 40장).
ㄱ. 석판 성막 법궤 등의 의의와 그 목적
석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세가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을 받았다는 것은, 타락으로 인하여 제물로만 하나님을 대해 오던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지나가고, 타락인간이 말씀을 복귀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복귀섭리시대에로 들어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후편 서론에서 밝힌 바와같이, 말씀으로 창조되었던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었더라면, 그들은 말씀의 완성실체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
이제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써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을 찾았다는 것은, 사탄세계로부터 잃어버렸던 아담과 해와를 상징적인 말씀의 실체로 복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은 복귀한 아담과 해와의 상징체로서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실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성경에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요한계시록 2장 17절) 또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린도전서 10장 4절)라고 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석판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결국 이것들은 또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것이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성막의 의의는 무엇이었던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자기의 몸으로 비유하셨다(요한복음 2장 21절). 그리고 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던 것이다(고린도전서 3장 16절). 그러므로 성전은 예수님의 형상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1차 가나안복귀에 성공하였더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곧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준비를 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제1차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 보지 못하였고, 제2차노정에서는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떠돌아다니게 되었으므로 성전은 건축하지 못하고 그 대신 성막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님의 상징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하실 때에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애굽기 25장 8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성막은 지성소와 성소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씩 들어가 헌제를 하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어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이것은 예수님의 영인체를 상징한 것이었고, 성소는 보통 제사 때에 들어가는 곳으로서, 이것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성소는 무형실체세계를, 성소는 유형 실체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둘로 갈라졌다는 것은(마태복음 27장 51절),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영적 구원섭리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영인체와 육신 또는 하늘과 땅이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법궤는 무엇이었던가?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하는 언약궤로서, 그 속에는 예수님과 성신, 따라서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두 석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거기에는 광야노정에 있어서 잇그라엘 민족의 생명의 양식이었고, 또한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만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표상하는 금항아리에 담긴 것이 들어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아론의 싹난 지팡이(히브리서 9장 4절)가 거기에 들어 있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법궤는 크게는 천주의, 작게는 성막의 축소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법궤 위에는 속죄소가 덮였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금으로 두 그룹을 쳐서 만들어 속죄소의 좌우에 덮으면, 두 그룹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시어, 이스라엘족속에게 전할 모든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셨다(출애굽기 25장 26~22절). 이것은 장차 두 석판으로 표시된 예수님과 성신이 오시어 역사하시게 됨으로써 속죄가 성립되면, 그 속죄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동시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생명나무에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던(창세기 3장 24절)이 좌우로 갈라져서 누구든지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주신 목적은 어디 있는가? 이스라엘민족은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초래된 400년 탕감기간을 마치자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민족을 치고, 추격해 오던 애급의 수 많은 군사와 병거를 수장하고서 홍해를 건너 광야길로 나섰다.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서도 그러하지만, 이처럼 원수를 맺고 떠난 애급이었기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나안 복귀는 기필코 이루어져야 하는 노정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출발을 위한 섭리'를 그처럼 기사와 이적으로 하셨고, 또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환경 가운데로 몰아넣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모두 불신으로 흘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최후에는 모세마저 불신의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는 터이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비록 사람은 변하여도 변할 수 없는 그 어떠한 신앙의 대상을 세워놓으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즉 언제나 단 한사람만이라도 이것을 절대로 믿고 받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앙의 대상을 마치 바톤과 같이 이어받게 하면서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신앙의 대상을 무엇으로 세워야 할 것이었던가 ? 석판이 들어있는 법궤를 안치함으로써 메시아를 상징하였던 성막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족이 성막을 지었다는 것은, 벌써 메시아가 상징적으로 강림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이 성막을 메시아와 같이 충성으로 받들어 가나안 복지로 복귀하면민족적인 실체기대는 그 때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더라도 모세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서 그 성막을 지키면, 그 민족은 다시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성막을 모시는 모세를 중심한 그 기대 위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설혹 모세마저 불신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민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모세를 대신하여 끝까지 성막을 지킨다면, 또 그를 중심하고 불신으로 돌아간 나머지 전민족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이었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면 모세의 가정은 성막 대신이요, 모세는 석판과 법궤 대신이며, 또 모세의 가법은 천법 대신이 되었을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석판이나 법궤나 성막이 필요 없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지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감에 따라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이었다. 성막은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표시체로서 성전을 지을 때까지 필요한 것이었고, 성전은 예수님과 성신의 형상적 표시체로서 실체성전이신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필요했던 것이다.
ㄴ. 성막을 위한 기대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맞기 위하여서도 '성막을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는,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여서 이 두 기대를 세울 수 있었던가?
모세가 성막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금식기도로서 '40일 사탄분립기간'을 뜻맞게 세우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막이상을 세워 나아가는 모세에게 믿음으로써 순종굴복하면, 성막을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성막이라 함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성판과 법궤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다.
a.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
인간은 6일만에 창조된 말씀의 실체이다(요한복음 1장 3절). 따라서 이와같이 창조되었다가 타락된 인간을 복귀하시기 위한 재창조의 말슴을 주시려는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는, 사탄의 침범을 당한 창조기간의 6수를 성별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6일 동안 여호수아의 영광의 구름으로 시내산을 덮으심으로써 성별하신 후, 제7일내에 그 구름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셨다(출애굽기 24장 16절). 모세는 이때부터 40주야를 금식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24장 18절). 그것은 이미 위에서 상세히 논한 바와같이 이스라엘민족이 홍해를 건너 후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상징적 메시아인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은, 저들이 일시적으로 모세를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계속하여 그러한 입장에 서 있어야만, 그것이 성립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논한 바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막을 세우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을 지나서 성막을 세울 때까지, 그를 믿고 모시고 순종해야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금식기도를 하는 기간에,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서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섬겼던 것이다(출애굽기 32장 4절).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하여 세워야 했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룰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주셨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말씀의 터를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으로 그것을 찾아야 할 이 기간에 있어서만은 하나님도 그들의 행동을 간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상을 만들어 놓고 춤을 추는 백성들을 보자마자 모세는 크게 노하여 손에 들었던 두 석판을 산 아래로 던져서 깨뜨렸다(출애굽기 32장 19절). 그리하여 이것은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두 석판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같이 후아담과 후해와로서 복귀될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한다. 모세가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는 두 석판을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깨뜨렸다는 것은, 다음에 예수님이 오실 때도 만약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예수님과 성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를 중심하고 행해진 이스라엘의 이와같은 불신은, 모세가 '40일 사탄분립기간'을 세운 후,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에게 순종케 하심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섭리를 좌절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시려는 섭리는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2차 또는 3차까지 연자오디어 나아갔던 것이다.
b.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석판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신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르비듬에서 석판의 뿌리 되는 반석의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서 있었기 때문에(출애굽기 17장 6절),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후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석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어 오면 처음 석판에 써주시었던 것과같은 말씀을 다시 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애굽기 34장 1절). 그러나 여기에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다시 찾아 세워,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고서는, 석판을 중심한 성막을 복귀할 수 없기 때문에, 모세는 다시 40주야를 금식한 후에 십계명의 말씀을 기록한 제2차 석판과 성막이상을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출애굽기 34장 28절).
한번 깨뜨린 석판을 40주야의 금식기도로써 복귀하였다는 것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도 저를 믿는 성도들이 40일 사탄분립기대로써 그를 맞을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면, 그 기대 위에 재림하셔서 구원섭리를 다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세가 제2차로 석판을 중심한 성막이상을 복귀하던 '40일 사탄분립기간'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성막을 건축하였던 것이니, 때는 제2년 정월 초하루였던 것이다(출애굽기 40장 17절). 이리하여 이스라엘 선민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이룸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룩한 터전 위에서 성막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논한 바와같이, 그들이 성막을 짓는 것만으로는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짓고 메시아를 맞을 때까지, 변치않고 이 성막을 자기들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였던 것이다.
제2년 2월 20일, 이스라엘 민족은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성막을 중심하고 시내광야에서 출발하였다(민수기 10장 11~12절). 그러나 그들은 다시 불신으로 흘러 모세를 원망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진노하시어 불로써 진 끝을 사르기도 하셨다(민수기 11장 1절). 이스라엘 민족은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통곡하며, 만나 외에는 생선도 외도 수박도 없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애급땅을 그리워하였다(민수기 11장 4~6절).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세우고 나아가야 할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게 되어,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는 다시 제3차로의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c.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
이스라엘 미족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한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모세의 변함없는 믿음과 충성으로 말미암아, 그 성막은 여전히 모세를 중심한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또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르비듬에서 성막의 중심인 석판의 뿌리되는 반석의 샘물을 마신(출애굽기 17장 6절) 터전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우고, 성막을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위한 조건으로서 주신 것이 40일 정탕기간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로부터 족장 한 사람씩을 모든 12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어(민수기 13장 1절) 40일 동안을 정탐하게 하셨다(민수기 13장 25절). 그러나 정탐에서 돌아온 12명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적인 보고를 하였다. 즉 그 땅의 거민은 강하고 성읍이 견고할 뿐 아니라(민수기 13장 28절),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키가 커서 자기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더라(민수기 13장 32~33절)고 하면서, 이스라엘은 그 성과 그 백성을 공격할 수 없다고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새로이 한 장관을 세워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떠들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 백성들은 이미 그 보호자가 떠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반면에 자기들은 여호와가 보호자시니 두려워 말고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자고 외쳤던 것이다(민수기 14장 9절).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도리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하였다(민수기 14장 10절). 이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시어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수기 14장 11절)고 하시면서,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한하여 그 40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민수기 14장 31~3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도 복귀할 수 없게 되어, 제2차 21개월 광야노정은 제3차 40년 광야노정으로 연장되었다.
(4)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성막을 위한 기대'가 3차나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은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제2차로 세우려던 실체기대를 조성하지 못하게 되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3.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이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웠던 미디안 광야 40년 기간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일 기간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함으로써, '날'을 '해'로 환산하여 광야를 떠돌아 다니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오는 40년 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제3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 광야 40년 기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모시고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다시 돌아온 모세는,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민족적인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도 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실체기대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일 노정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하고 불신과 반역으로써 실패하였으므로 '성막을 위한 기대'는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제2차 노정을 위한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성막을 충성으로 받들고 모셧던 모세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는 여전히 남아져 있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표류의 40년기간을, 변치않는 신앙으로 성막을 받들고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정탐 40일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기대를 세우면, 그 때에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는 동시에 성막을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받들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때에 제3차 민족적 가나안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실체기대'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야 40년 표류기간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제3차 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워가지고 제2차 노정에 그들이 모세를 받들고 성막을 건축하던 입장으로 돌아감으로써, 제3차노정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기 위한 기간이었다.
ㄱ)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받게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제2차 민족적 가나안복귀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나타내셨던 3대 기적을 불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그들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40일 시련기간을 거치게 하신 후에,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3대 은사를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하려 하였을 때, 라반이 야곱을 열번이나 속였던 것을(창세기 31장 7절)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10재앙을 내리셨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또 이것을 분신하는 입장에 섰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심으로써 3대 은사와 십계명을 지키게 되면, 그들은 제2차노정에서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을 출발하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민족이 믿음과 순종으로 모세를 따라 광야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온 후,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받을었더면, 그들은 제2차노정에서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애급을 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의 목적을 이루었던 입장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석판은 법궤의 축소체요 법궤는 성막의 축소체이므로 결국 석판은 성막의 축소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법궤나 성막은 석판이나 그의 뿌리 되는 반석으로써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가데스바네아를 출발하는 것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받들고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그 때에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짐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어떻게 이루려 하셨던가 ? 광야 40년기간을 뜻앞에 세우지 못하고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민수기 20장 4~5절) 살리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하여가지고 그들에게 마시게 하셨다(민수기 20장 8절).
만일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한 번 쳐서 샘물을 내어 먹임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권능을 새로이 깨달아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면, 그들은 모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서,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모세를 믿고 순종하여 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갔더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됨으로써, 제3차 노정의 모세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는 백성을 보자, 격분하여 치밀어오르는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수기 20장 12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이와 같이 한 번 쳐야 할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기대'도 이루지 못하게 되어, 드디어 약속받은 가나안 복지를 눈 앞에 바라보면서 끝내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민수기 20장 24절, 민수기 27장 12~14절).
우리는 이제 반석을 한 번 쳐야 하는 이유와, 두 번 친 것이 어떻게 되어 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겠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서는 예수님을 흰 돌로 상징하였고, 한편 또 고린도전서 10장 4절을 보면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그런데 타락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생명나무로 오신 분이시므로(요한계시록 22장 14절), 반석은 곧 생명나무이기도 하다. 한편 창세기 2장 9절의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어서의 장차 오실 완성한 아담을 상징한 것으로서, 이 생명나무도 또한 반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반석은 그 완성한 아담을 상징하기도 하다.
그런데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장차 반석이 될 그 아담을 쳐서 타락시켰다. 따라서 아담은 생명나무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창세기 3장 24절), 그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수 샘물을 영원히 그 자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반석도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모세가 지팡이로 치기 이전, 샘물을 내지 못하던 반석은 바로 타락된 아담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사탄이 장차 생명수를 낼 수 있는 반석으로 성장하고 있던 아담을 한 번 쳐서 타락시킴으로써, 그를 '샘물을 내지 못하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이 되게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샘물을 태게 함으로써, '샘물을 낼 수 있는 반석'으로서의 아담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한 번 쳐서 생물을 내게 된 반석은 바로 생명나무로 오셔서 타락한 인간에게 생명수 샘물을 주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나의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 1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가 반석을 한번 치는 것은 타락된 제1아담을 완성한 제2아담 예수 님으로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허락된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하늘편에서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을 또 한 번 친 행동은 장차 복귀한 반석으로 오셔서 만민에게 생명수 샘물을 먹여 주실 예수님을 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것을 목격한 모세가 혈기로써 반석을 두 번 친 행동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반석의 실체되시는 예수님 앞에 사탄이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조건을 성립시킨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석판을 한번 깨뜨린 것은 복귀할 수 있었으나, 반석을 두번 친 실수는 복귀할 수 없었으니 그 이유는 어디 있었던 것인가?
복귀섭리로 보아 석판과 반석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십계명이 기록된 석판은 모세의 율법의 중심이요, 따라서 구약성서의 중심이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이 석판이상을 믿음으로써 그 시대의 구원권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석판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외적인 표시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 말씀대로, 반석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동시에 석판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그것은 석판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뿌리 곧 하나님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판은 외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반석은 내적인 것이다. 또 석판은 몸으로 비유한다면 반석은 마음에 해당하며, 석판은 성소라고 한다면 반석은 지성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석판을 땅이라고 한다면 반석은 하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석은 석판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내적인 표시체인 것이다.
이와같이 석판은 예수님에 대한 외적인 표시체였으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상징하는 모세 앞에(출애굽기 4장 16절, 출애굽기 7장 1절), 예수님의 외적인 표시체로 세워졌던 아론을 상징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에(출애굽기 32장 4절), 아론이 깨어짐에 따라서 석판도 깨어지게 되었었다. 그러나 아론이 르비듬에서 반석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서(출애굽기 17장 6절) 회개함으로써 소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론을 상징하는 석판도 반석 샘물의 내적인 터전 위에서 다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은 그리스도와 그의 뿌리되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친 행동은 만회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모세가 반석 반석 2타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던가 ?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쳤던 것은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혈기를 참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에(시편 106편 32~33절), 이 행동은 결국 사탄의 입장에서 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반석으로 이루시려던 '출발을 위한 섭리'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이렇듯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외적인 행동은 사탄의 행동으로 돌아갔으나, 내적인 실제에 있어서는 그 반석에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을 먹여 살렸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급에서 나온 외적인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이 예정하신 가나안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모세도 120세를 1기로 소망의 땅을 눈 앞에 바라보면서 죽고 말았다(신명기 34장 4~5절). 그러나 여호수아가 모세의 대신으로(민수기 27장 18~20절), 반석 샘물을 마시고 성막을 받드는 광야노정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인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민수기 32장 11~12절).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행동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반석에서는 샘물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려면 어떻게 되어 거기에서 샘물이 나올 수 있었던가 ?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는 일찌기 르비듬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반석 샘물의 터전을 마련한 바 있었던 것이다(출애굽기 17장 6절). 그리고 이 터전 위에서 세워진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다른 모든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40일 금식기도로써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것을 굳게 지켜온 모세는 한 사람의 믿음에 의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까지 이어져 왔었다. 그 뒤에 모세마저 불신의 입장으로 돌아갔지만 하늘을 대한 그의 심정은 변하지 않았고 또 여호수아가 그의 정탐 40일로써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변치 않는 신앙으로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르비듬에서 세웠던 반석 샘물의 터전도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그대로 남아졌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모세의 외적인 불신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제2차 반석이 외적으로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나, 그의 내적인 불변의 심정과 여호수아의 믿음과 충성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내적으로는 샘물을 내어 마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결과적으로 사탄의 입장에서 친 것이 되어 그 돌은 사탄이 소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돌의 실체로 오셨던 얘수님은, 그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자, 일찍이 저들이 광야에서 잃어버렸던 이 돌을 몸소 찾으시려고 광야로 가셨었기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제일 먼저 받으셨던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외적으로는 혈기를 내어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광야에서 죽었으나, 내적으로는 그의 불변의 심정으로 인하여 반석의 샘물을 내어 먹였기 때문에, 영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장차 반석의 실체 되시는 예수님이 오실 때에도,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예수님도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받아 십자가에 달리시게 됨으로써, 영 육 아우른 세계적 가나안 복귀는 완수하지 못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영적으로만 그것을 완수 하게 되시리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후, 하나님은 불신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에게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어 죽이게 하셨다(민수기 21장 6절).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하여,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만은 구원을 받도록 하셨다(민수기 21장 9절). 이 불뱀은 해와를 타락시킨 옛 뱀 곧 사탄을 상징하였고(요한계시록 12장 9절), 장대 끝에 매단 구리뱀은 장차 하늘 뱀으로 오실 예수님을 상징했던 것이다(요한복음 3장 14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불신으로 돌아갔을 때는 그들을 사탄 뱀에게 내주셨다가, 그들이 회개하고 신앙을 돌이킬 때에는 다시 구리뱀으로 살려 주셨던 것과같이, 후일 예수님 때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그들을 사탄에게 내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과 그 때에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시기 위하여 부득이 하늘 뱀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과, 또 불신을 회개하고 그의 십자가로 인한 구속을 믿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해 주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장 14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사실은 실상 예수님을 중심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노정으로 출발하게 한 먼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민수기 20장 12절). 이에 모세는 하나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여 달라고 간곡한 애원의 기도를 올렸으나(신명기 3장 25절), 종내 그 목적의 땅을 눈 앞에 바라보면서 죽고 말았다. 이렇게 되어 그가 죽은 뒤에 그 시체를 장사하였으나,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신명기 34장 6절). 이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게 될 것이고, 또 할수만 있으면 죽음의 잔을 면하고 세계 가나안 복귀를 이루게하여 달라고 애원의 기도를 하실 것이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될 것과, 한편 그의 시체도 장사한 뒤에 간 곳을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 등을 예시하신 것이다.
ㄴ)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가나안으로 복귀하려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민수기 20장 1~13절)사탄이 외적으로는 침범했지만, 르비듬 반석 샘물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는 그대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에게 먹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위에서도 밝혀 온 바와같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서빌에 대한 또 하나의 노정을 보여주셨다. 즉 이스라엘 민족 중, 사탄 세계인 애급에서 출생하여 광야노정에서 불신으로 돌아갔던 외적인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탐 40일을 믿음으로 세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반석샘물을 마시고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만이, 모세 대신의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민수기 32장 11~12절).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잔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수기 27장 18~20절)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정탐 40일기간에 불신으로 돌아갔던 온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모세가 세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위에 굳게 서서 변함 없는 믿음과 충절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고 끝까지 그것을 받들었던 오직 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와같이 비록 모세는 불신으로 돌아갔으나, 석판과 성막과 법궤는 여전히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의 대신으로 세우시고, 그 내적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하심으로써,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고, 이 섭리에 의하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써 거기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제3차 노정의 여호수아를 중심한 실체기대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여호수아)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으로) 건너가서 네(모세)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신명기 3장 28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후수아에게도 모세와 함께 있떤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여호수아 1장 5~6절)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생활 40년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찾아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셨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3장 8~10절), 하나님은 광야에서 표루하는 40년을 오직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운 여후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부르시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여호수아 1장 2절)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을 불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뜻을 전하였을 때(여호수아 1장 10절),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여호수아 1장 16~18절)라고 대답하면서, 그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여호수아를 따라갈 것을 결의하였다. 이와같이 모세의 사명을 대신하고 나선 여호수아는 초림때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러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모세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여호수아의 노정은, 예수님의 영적 복귀의 노정을 영 육 아울러 탕감복귀해야 할 그의 재림노정에 대한 표시적인 노정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제2차 노정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으로 보냈던 열 두 사람이 있었다(민수기 13장 1~2절). 그들 중 오직 충성으로 그 사명을 완수한 두 사람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여호수아는 다시 두 사람의 정탐을 여리고성으로 보냈다(여호수아 2장 1절). 그리하여 여리고 성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던이다(여호수아 2장 24절)라고 믿음으로 보고하였던 것이다. 이 때에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의 말을 믿었으므로, 이것으로써 과거에 40일 정탐을 뜻맞게 세우지 못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내적 이스라엘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그들은 반석 샘물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로써, 제2차 노정에서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었던, 모세를 중심한 그들의 선조들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거너기 전에 3일노정을 찾아 세웠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3일 조정을 찾아 세웠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2절).
한편 제2차 노정에 있어서 3일노정을 지난 이스라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홍해까지 인도하였던 것과같이,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그들이 3일노정을 마친 후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표상된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 실체인 법궤가 그들을 요단강까지 인도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아 3장 3절, 여호수아 3장 8절).
그리고 모세를 인도하던 지팡이에 의해서 홍해가 갈라졌듯이, 여호수아를 인도하던 법궤가 요단강의 물 위에 서자 언덕에 넘치던 요단의 흐름이 갈라져서(여호수아 3장 16절), 따라온 이스라엘은 육지와 같이 강을 건너게 되었다(여호수아 3장 17절). 지팡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하나의 표시체였고, 두 석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법궤는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실체였었다. 그러므로 법궤 앞에서 요단강의 물이 갈라지고이스라엘이 평탄하게 가나안 땅으로 복귀하였다는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과 성신 앞에 몰로 표시된 이 죄악세상(요한계시록 17장 15절)이 선 악으로 분립되어 심판을 받은 후, 모든 성도들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게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여호수아 4장 2~3절)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정월 10일에 요단강에서 올라와서, 여리고의 동편 지경인 길갈에 진을 치고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거기에 세웠었다(여호수아 4장 20절).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예시한 것인가? 이미 논한 바와 같이 돌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따라서 12지파를 대표한 열두 사람이 법궤로 인하여 물이 갈라진 요단강 가운데서 열 두 돌을 받들었다고 하는 것은, 장차 12지파의 대표형으로 부름을 받을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 죄악세상이 선악으로 갈라질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들이 열 두 돌을 받들었다가 가나안땅의 안정된 진에 한데 모아 놓았을 때, 여호수아는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여호수아 4장 24절)고 말하였다. 이것은 장차 돌로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열두 제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 곳에서 하나로 뭉쳐야만,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었다.
야곱이 가는 곳마다 돌단을 쌓았던 것과 같이, 야곱의 열 두 아들의 후손인 열두 지파의 대표들도 열 두 돌을 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의 제단을 쌓아 앞으로 성전을 건축할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니,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열 두 제자가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성전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후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되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과연 12제자는 하나 되지 못하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므로, 성전된 예수님이 십자가로써 헐렸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어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모은 후에야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어 영적인 성전으로 모시게 되었고, 또 재림하신 후에야 실체성전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제2차노정을 출발할 때, 그 해 정월 14일 유월절을 지나고 진군하였던 것과 같이(출애굽기 12장 17~18절), 길갈에 진을 쳤던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도 그 해 정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굳게 닫힌 여리고의 성벽을 향해 진군을 하였다. 땅의 소산을 먹기 시작하자 40년간이나 내려주시던 만나도 그쳤으므로 그때부터는 인간의 땀으로 된 곡식으로 생활해야만 되었으며, 사탄 도성의 최후의 관문을 뚫는데 있어서도 인간으로서 할 책임을 다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4만의 병사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라 일곱 제사장이 일곱 나팔을 불면서 행진하고, 또 그 뒤에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멘 법궤(여호수아 3장 3절)가 따랐으며, 최후선에는 이스라엘 전군이 연달아 진군하였던 것이다(여호수알 6장 8~9절).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행군으로 하루에 한 번씩 6일이나 성을 돌았어도 그 성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그들은 인내와 복종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한 6일의 창조기간을 탕감복귀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순종으로 6일을 찾아 세운 후, 제7일에 일곱 나팔을 부는 7명의 제사장이 성벽을 일곱 번 돌면서 7회의 나팔소리를 끝내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향하여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호령하자, 백성들이 이에 응하여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치니 그 성이 곧 무너졌었다(여호수아 6장).
이러한 노정은 장차 예수님의 권능과 그의 성도들에 의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가로막혀 잇는 사탄의 장벽이 무너질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성벽은 다시 쌓아서는 아니 될 것이었으므로, 여호수아는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 계자를 잃으리라(여호수아 6장 26절)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파죽지세로 적을 공격하게 된 여호수아는 벧호론 싸움에서의 19왕과 메롬격전에서의 12왕을 합하여 모두 31왕을 멸하였으니(여호수아 12장 9~24절), 이것도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의 왕들을 전부 굴복시키시고 그 백성들을 포섭하여 통일된 지상천국을 건설하실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었다.
(3) 메시아를 위한 기대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 40일의 사탄분립 기간을 세우지 못하여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실패하고, 이 기간을 재탕감하기 위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유리하고 다시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왔다.
이때의 모세는 제3차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과 그에 따르는 모세의 반석 2타로 말미암아 이 두 기대는 모두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에서 떠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섬멸되었으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가 세웠던 제2차 노정의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정탐 40일의 사탄분립기간을 믿음과 충성으로 찾아 세웠기 때문에 '성막을 위한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를 중심한 외적 이스라엘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으나, 성막을 받드는 광야생활 가운데서 출생한 내적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신한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충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시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무찌르고 소망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이 노정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됨으로써, 아브라함 때에 이루어졌던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는 그의 제물 실수로 인하여 400년 애급고영의 탕감노정을 지나서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러나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 Ⅲ에서 자세히 논한 바와 같이, 그 때는 이미 타락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하고 애급왕국 등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하여, 하늘편의 복귀섭리에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는 세워졌을 지라도 그 터전 위에 사탄에 대결할 수 잇는 하늘편의 왕국이 건설되기까지는 메시아가 강림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또다시 불신으로 흘러, 이 섭리는 다시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밀려 나왔던 것이다.
Ⅲ. 모세 노정이 보여준 교훈
모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뜻을 받드는 수많은 성도들이 모세에 관한 성서의 기록을 읽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모세의 역사에 관한 기록인줄만 알았고,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복귀섭리에 관한 어떠한 비밀을 가르쳐주시려 하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는 정도로 말씀 하셨을 뿐 모세노정의 근본 의의를 밝히지 않고 돌아가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6장 12절).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가 어떻게 복귀섭리를 위한 공식적인, 또는 전형적인 노정을 걸었는가 하는 것을 밝혔다. 이것이 장차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그대로 예시하신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본장 제3절을 대조함으로써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세를 중심한 섭리 하나만을 보아도,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을 지향하여 인류역사를 이끌어 나오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모세 노정은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그 인간을 중심한 하나님의 예정의 성사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의 예정도 그 예정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중심하고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을 예정하시고, 그에게 이것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책임분담에 대해서는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써 이스라엘을 이끌어 주셨으나, 모세가 석판을 받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드는 행동에 대해서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셨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이 독자적으로 걸어야 할 책이분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의 절대성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뜻을 예정하시고 이루시려는 것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모세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의 대신으로 여호수아를 세워서라도 한 번 예정하신 뜻은 기필코 이루시고야 마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이 세우신 아벨적인 인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가인의 입장에서 충성을 다한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아벨의 사명을 계승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장 12절)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이다.
또 한편 큰 사명을 진 사람일수록 그에게 주어지는 시험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인간시조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배반함으로써 타락되었기 때문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은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고 버리시는 시험을 이기고 나서야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셨던 시험을 이기고 난 후에야(출애굽기 4장 24절), 이스라엘 민족의 인도자로 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사탄이 타락을 조건으로 하여 인간을 대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조건하고 인간에게 은사를 내리실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사를 내시려 할 때에는, 그 은사를 전후하여 사탄의 참소를 막기 위한 시험을 반드시 하시는 것이다.
모세노정에서 그 예를 들어보면, 모세에게는 바로궁중 40년의시련을 거친 후에야 제1차 출애급의 은사가 허락되었던 것이고, 또 미디안광야 40년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 하나님은 제2차 출애급의 은사를 내리셨던 것이다(출애굽기 4장 2~9절).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는 시험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4장 25절) 3대 기적과 10재앙의 이적을 내려 주셨고(출애굽기 7장 10절~12장 36절) 삼일노정의 시련이 있은 후에야(출애굽기 10장 22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사가 있었다(출애굽기 13장 21절). 한편 홍해의 시련을 지난 후에야(출애굽기 14장 21~22절) 만나와 메추리의 은사(출애굽기 16장 13절)가 있었고, 아말렉과의 싸움으로 인한 시련(출애굽기 17장 10절)이 있은 후에야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은사(출애굽기 31장 18절)가 있었다. 그리고 40년간 광야에서 표류한 시련(민수기 14장 33절)이 있은 후에 반석 샘물의 은사(민수기 20장 8절)가 있었고, 불뱀의 시련을 거친 후에야(민수기 21장 6절) 구리뱀의 은사(민수기 21장 9절)가 있었던 것이다.
모세노정은 위와 같이 여러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던 것이다.
제3절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천사를 주관해야 할 아담(고린도전서 6장 3절)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지옥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그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제1절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노정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인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인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그 실체적인 노정을 걸으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보시켜 나아갔던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하셔야 했던 것이다.
신명기 18장 18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가 그들의 형제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모세와 같은 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보여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상세한 것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논하였지만, 모세를 중심한 3차의 민족적인 가나안복귀노정과, 예수님을 중심한 3차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전체적인 윤곽을 비교 대조하면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노하여 보기로 하자.
Ⅰ.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세례요한이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떠한 처지에서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었던가 ?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가 석판을 깨뜨린 것과 또 반석을 두번 친 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그를 중심한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석판과 반석의 실체인 예수님의 몸도 칠 수 있다는 조건을 사탄에게 허락하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모세노정에서 논급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조건을 피하시게 되려면, 그의 강림을 위한 터전을 닦아 나아가는 선민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을 중심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은 항상 불신의 길을 걷게 되어, 장차 오실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성립시켜 왔으므로, 이러한 조건을 막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발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를 합하여 850명을 멸하는 등(열왕기상 18장 19절),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고 승천하였던 것이다(열왕기하 2장 11절). 그러나 엘리야의 전체적인 사명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는 재림해야 했던 것이다(말라기 4장 5절). 이와같이 엘리야가 다하지 못한 사탄 분립의 사명을 맡아 완수하고, 메시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요한복음 1장 23절) 엘리야로 왔던 선지자가 바로 세례요한이었다(마태복음 11장 14절, 마태복음 17장 13절).
이스라엘민족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그들을 민족적으로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메시아를 맞게 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모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말라기 선지 이후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년간, 그들을 인도해 주는 선지자도 없이 페르샤, 헬라, 애급,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들에게 고역을 당하여 오다가, 마침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 앞으로 그들을 인도해 줄 수 있는 인물로서 세례요한을 만났던 것이다.
애급고역 400년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충효의 도를 배웠던 것과같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년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하늘에 대한 충효의 도를 세웠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을 비롯한(요한복음 1장 19절)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누가복음 3장 15절). 세례요한은 이와같이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웠으므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2. 실체기대
세례요한은 모세와 같은 처지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자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2절 Ⅰ.2). 따라서 세례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년간의 탕감기간을 지나고,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 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세례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 밑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요한을 중심한 기사 이적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잉태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에 보여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고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누가복음 1장 65~66절)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민족은 세례 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목숨을 이어가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의 생애로 인하여, 제사장들과(요한복음 1장 19절) 일반 유대인들이(누가복음 3장 15절) 그를 메시아로 오인 할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궁중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애급인을 살해하였을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면, 그들은 홍해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이나 성막이나 법궤도 필요없이 불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이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를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요한복음 1장 19절, 누가복음 3장 15절), 그들은 구약시대를 청산하고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편 제4장 제2절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같이,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서도 그를 의심하는 데 이르렀고(마태복음 11장 3절), 또 자기가 엘리아로 왓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하여(요한복음 1장 21절),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는 처지에 서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세례요한은 실체기대를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이것도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Ⅱ.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1)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심
세례 요한은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그 때까지의 섭리역사 위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중심인물들이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을 완전히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믿고 따르는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기대와 함께 예수님께 인계해 드린 후, 믿음과 충성으로 그를 따르고 모셔야 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은 자기도 모르고 행한 일이었지만,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은(마태복음 3장 16절)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쌓아온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인계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세례 요한은 점점 예수님을 의심하고 배신하는데 이르렀으므로, 세례 요한을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던(누가복음 3장 15절) 유대인들은 자연히 예수님을 불신하는 처지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따라서 세례 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함으로써,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시면서 사탄을 분립하신 것은, 바로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영광의 주로 오셔으므로, 원칙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2장 8절). 그러나 그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세례 요한(요한복음 1장 23절,누가복음 1장 75절)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 례요한이 당했어야 할 고난을 예수님 자신이 당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 요한 대신으로 복귀섭리 노정을 출발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자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16장 20절).
(2) 예수님의 광야 40일 금식기도와 3대시험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와 3대시험에 대한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을 알아야겠다.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반석 앞에 섰던 모세가 불신으로 돌아가 그것을 두 번 쳤기 때문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그 반석(고린도전서 10장 4절)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후일 메시아로 오셔서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걸어야 할 예수님의 노정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오게 될 세 례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되면 반석되시는 예수님 앞에도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 되었다. 따라서 이 행동은 메시아에 앞서 올 세례 요한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반석을 두 번 친 모세의 행동은, 바로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 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광야로 나아가 40일 금식과 3대 시험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한 원인이 되었었다.
사실상 세례 요한이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전편 제4장 제2절 Ⅲ), 그가 세웠던 '믿음의 기대'에는 사탄이 침범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근인이 되어 예수님은 몸소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광야에서의 40일 금식과 3대 시험을 겪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러면 사탄이 3대시험을 하게 된 목적은 어디 있는가 ? 마태복음 4장 1절 내지 10절을 보면, 사탄은 예수님에게 돌을 보이면서 그것으로써 떡이 되게 하라고 하였고, 또 그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자기에게 경배하면 온 세상을 다 주겠다는 등 세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서 그 개성의 완성, 자녀의 번식, 그리고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 등 세 가지의 축복을 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그러므로 인간이 이것을 완성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킴으로써 이 세 가지 축복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그 창조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이 세 가지의 축복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사탄은 축복 복귀의 길을 막기 위한 그 세 가지의 시험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3대 시험을 어떻게 받으시고 어떻게 이기셨는가?
우리는 먼저 여기에서 사탄이 어떻게 되어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로 설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불신과 모세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이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하는 두 석판과 반석을 취함으로써 그는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밝혔다. 그런데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이르러,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의 갈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자로 왔던 세례요한(요한복음 1장 23절)이 그 책임을 다 하지 못하게 되자 모세 때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불신과 불순종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미 모세노정에서 미리 보여주신대로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 시험의 경위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예수님이 광야에서 밤낮 40일을 금식하시고 난 뒤, 사탄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복음 4장 3절)는 시험을 하였다.
그런데 모세가 광야에서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 섰던 석판을 깨뜨리고 반석을 두 번 쳤던 행동과, 세례요한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 돌을 사탄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예수님도 광야로 나아가 40일을 금식하여 사탄을 분립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이 돌을 찾기 위하여 광야에 나오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옛날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광야노정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불신으로 흘러 돌을 사탄이 가지게 되었던 것과 같이, 이제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노정에 있는 예수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굶주린 가운데 있으니 어서 불신으로 돌아가 그 돌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것으로 떡이나 되게 하여 주린 배를 채우면, 그 돌은 사탄이 영원히 가지겠다 하는 뜻이었다.
이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장 4절)고 하셨다.
원래 사람은 두 가지의 영양소로써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즉 자연계로부터 섭취하는 영양소로서는 육신이 살아가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는 영인체가 살아 가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그 영인체 들이 살아 간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6장 48절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한복음 6장 53절)고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떡을 먹고 그 육신이 살아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써 온전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가 석판의 뿌리 되는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그 돌은 사탄의 소유로 돌아갔었다. 이렇게 사탄의 것이 되어진 그 돌은 바로 모세가 잃어버린 그 반석이었고 또 그 석판이었으므로, 그 돌은 결국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한 것이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장 17절에 돌을 그리스도로 상징하고,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한 것을 보아서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탄의 첫째 시험에 응한 예수님의 대답은 결국 내가 지금 아무리 굶주린 가운데 있을지라도, 육신을 살리는 떡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너로부터 시험을 받고 있는 자리에서 승리하고 나서 온 인류의 영인체를 살려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이 되어야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시험을 받아 이김으로써, 개성을 완성한 메시아의 입장을 찾아 세우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원리적인 입장에서 뜻을 대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태도에 사탄은 지고 말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첫번 시험에 승리하여 개성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1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가(마태복음 4장 5~6절)고 하였다.
그런데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고 하셨고, 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성도들을 일러 하나님의 성전이라고도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본성전이요 성도들은 그 분성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공으로 오셨으므로, 사탄도 그 격위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성전 고대기에 세웠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한것은, 주인공의 위치에서 떨어져 타락한 인간의 입장으로 돌아가면 자기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주관자의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뜻이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태복음 4장 7절)고 대답하셨다.
원래 천사는 창조본연의 인간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된 것이므로 타락한 천사는 마땅히 예수님의 주관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천사가 예수님 대신으로 성전주관자의 입장에 서려 하는 것은 비원리적인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비원리적인 행동으로 원리적인 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몸되신 예수님을 시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리에 서서는 안 된다. 더구나 예수님은 제1차 시험에 승히하여 개성을 복귀한 실체성전으로서 성전의 주인공의 입장을 확립하셨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을 받을만한 아무런 조건도 없으니. 이제는 예수님 자신을 시험하지 말고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하여 둘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본성전이시고 신랑이시며 또한 인류의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을 분성전과 신부와 참자녀의 입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하나님의 제2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4장 9절)고 시험하였다.
원래 아담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만물세계에 대한 주인공의 자격을 상실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됨에 따라, 사탄이 아담의 대신으로 만물세계의 주관자로 서게 되었다(로마서 8장 20절). 그런데 완성한 아담격으로 오신 예수님은 고린도전서 15장 27절에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셨다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피조세걔의 주관자이시었다. 따라서 사탄도 이러한 원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산 위로 인도하여 만물의 주인공의 자리에 세워 놓고, 태초에 아담이 사탄에게 굴복한 것과 같이 제2 아담된 예수님도 사탄에게 굴복하라고 시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태복음 4장 10절)고 대답하셨다.
천사는 원래 부리는 신으로서(히브리서 1장 14절),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타락한 천사인 사탄도 그에게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원리요, 따라서 사탄은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몸으로 나타난 예수님에게도 굴복하고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 원리라는 것으로 예수님은 대답하셨던 것이다.. 더구나 예수님은 이미 두 번의 시험에 승리하여 하나님의 제1, 제2 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셨으므로 그 기대 위에서 하나님의 제3축복을 복귀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미 승리의 기대 위에 선 만물세계를 걸어 놓고는 더 이상 시험받을 여지가 없다는 뜻으로 원리적인 대답을 하셨다.
이렇듯 예수님은 세째 시험에도 승리하시어,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다.
(3) 40일 금식과 3대 시험으로 사탄을 분립한 결과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이 정 분 합 3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4위기대를 이루어야만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 4위기대를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복귀섭리노정도 역시 3단계까지 연장되어 내려오면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가지고, 상실되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코자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3단계의 시험에 승리하여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셨다. 이것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3단계로 연장하시면서 '40일 사탄부립의 기대'로써 찾으시려 했던, 다음과 같은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3단계로 연장하시면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로써 찾으시려 했던, 다음과 같은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즉 첫째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셨으므로, 그 때까지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찾아 세우려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즉 가인 아벨의 헌제,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헌제,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 등을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아담 이후 4천년 간의 종적인 역사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들의 실수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모든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하시었다. 즉 노아의 심판 40일, 모세의 3차의 40년기간과 2차의 40일 금식, 정탐 40일, 이스라엘의 광야노정 40년, 그리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애급고역 400년, 그리고 그 후 예수님 때까지에 있어졌던 모든 40수의 기간을 전부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서게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3대축복을 이루어 4위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헌제를 이룬 실체시요, 또한 석판과 성막과 법궤와 반석과 성전의 실체로 설 수있게 되셨던 것이다.
2. 실체기대
예수님은 인류의 참 부모로 오셔서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탕감복귀하셨기 때문에, 부모의 자리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자녀의 자리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세가 미디안광야에서 40년 탕감기간을 지남으로써,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게 되셨던 것이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3대 기적과 10재앙으로 그의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런데 그 후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무위로 돌아간 애급에서의 3대 기적과 10재앙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석판 성막 법궤의 3대 은사와 십계명을 세우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은 이미 모세노정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석판 성막 법궤의 3대 은사와 십계명의 실체이시기 때문에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예수님 자신이 말씀과 기사 이적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가인의 처지에 있었던 유대민족이,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세례요한의 사명을 가지고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르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보건'을 세워가지고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었더면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세례요한의 입장으로부터 메시아로 서게 되고, 온 인류는 그에게 접붙임을 받아(로마서 11장 17절) 중생되어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룸으로써, 창조본성을 복귀하여 지상천국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3.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세례요한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몸소 광야 40일의 고난을 당하시면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바 3대 시험에서 예수님에게 져버린 사탄은 예수님 앞을 얼마 동안 떠났다고 하였다(누가복음 4장 13절). 사탄이 얼마 동안 떠났다는 말은, 아주 떠난 것이 아니라 다시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과연 사탄은 불신으로 돌아간 제사장과 교법사 등을 중심한 유대민족, 특히 예수님을 판 제자 가룟 유다를 통하여 다시 예수님 앞에 대립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와같이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섭리를 위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어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Ⅲ.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예수를 중심한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관한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상세히 말한바와 같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대상은 메시아의 상징체인 성막이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모두 불신으로 흘러갔을 때에도, 이 성막만은 모세가 금식 40일기간으로 세웠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여호수아에 의한 정탐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 조성되었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서, 계속 그 뜻을 받들어 나온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그대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유대민족의 신앙의 대상은 성막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이었는데, 그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한복음 3장 14절)라고 하신 말씀대로, 그의 육신을 십자가에 내주시어 죽음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유대민족은 영 육 아울러 신앙의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같이 직접 실체노정으로써 출발하지 못하고,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가지고, 먼저 영적노정으로써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성전(예수님)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장 19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치 여호수아가 모세의 사명을 계승하여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였던 것과 같이,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초림 때의 사명을 이으시어,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영육 아울러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복귀섭리노정을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다시 오시지 않으면, 처음 오셨을 때에 이루려 하셨던 복귀섭리의 목적을 계승 완수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 영적인 믿음의 기대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인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40일 금식으로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에게 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의하여 그 육신을 사탄에게 내주신 후에는,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입장에서, 40일 부활기간으로 사탄분립의 영적기대를 세우심으로써,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노정을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40일의 부활기간을 세우시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어떻게 세우셨던가? 예수님이 메시아로 나타나실 때까지는 하나님은 유대선민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그들이 메시아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배반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그들 선민을 사탄에게 내주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배척당한 독생자 예수님과 함께, 선민을 버리고 돌아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은 선민을 비롯한 전 인류를 구언하시려는데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시고서라도 전 인류를 구원하려 하셨던 것이다.
한편 또 사탄은 자기편에 서게 된 선민을 비롯한 전 인류를 모두 하나님에게 내놓게 되더라도, 메시아인 예수님 한 분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4천년 복귀섭리의 제1목적이 메시아 한 분을 세우시려는데 있었으므로, 사탄은 그 메시아를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전 섭리의 목적을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되어 하나님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사탄편으로 돌아간 유대민족을 비롯한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탕감조건으로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시게 되었던 것이다.
사탄은 자기의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그가 4천년 역사노정을 두고 목적해 왔던 바를 달성한 것이 되었다. 이처럼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신 하나님은 그 대가로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시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여서 죄악인간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었는가?
사탄이 이미 그의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하여 하나님에게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실 수 있는 입장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사탄의 최대 실권행사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최대 실권행사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탄이 그의 최대 실권행사로서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한 탕감조건으로 하나님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시어 죽은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온 인류로 하여금 그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접붙이어(로마서 11장 24절) 중생케 하심으로써 구원을 받도록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아는 바와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같이 생활하시던 그러한 예수님은 아니시었다. 그는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리에 계셨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었다. 그는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는 방 안에도 문득 나타나셨는가 하면(요한복음 20장 19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갑자기 나타나시어 오랫동안 동행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으며(누가복음 24장 15~16절), 이와같이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또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도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육신을 제물로 십자가에 내주신 후 이렇듯 부활 40일의 사탄분립기간으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우심으로써, 만민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셨다.
(2) 영적인 실체기대
예수님은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처지에서, 영적인 부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조성하심으로써 영적 참 부모의입장에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또 영적인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영적인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 표류 40년의 탕감기간을 지남으로써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과 같이,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모세 때에는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우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흩어졌던 제자들을 거두어 모으시고, 자신이 석판과 성막과 법궤의 영적인 실체가 되어, 제자들에게 기사와 이적의 권능을 주심으로써(마태복음 28장 16~18절)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가인의 입장에 선 성도들은, 이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로서 영적인 아벨의 입장에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라 '타락성을 벗기 위한 영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된 것이다.
(3)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남은 열한 제자는 모두 힘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다시 한 곳으로 거두어 모으시고, 영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섭리를 시작하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가룟유다 대신으로 맛디아를 택하여 12제자의 수를 채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숨을 바쳐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조성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를 복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기대 위에서, 영적인 세례요한 사명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적인 메시아의 입장을 확립하고 성신을 복귀함으로써, 영적인 참 부모가 되어 중생의 역사를 하시게 되었다.
즉 사도행전 2장 1절 내지 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오순절에 성신이 강림하신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적인 참아버지로서, 영적 참어머니 되신 성신과 합하여 역사하심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접붙이게 하시어 영적 중생의 역사를 하시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만을 이루시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권내에는 사탄의 영적 참소조건이 청산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영적인 면에 있어서의 사탄의 불가침권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타락인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와 하나가 되어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은 여전히 사탄의 침범을 당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육적 구원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예쑤님을 믿으면 그와 함께 영적으로 사탄 불가침권내에 있게 됨으로써, 사탄의 영적인 참소조건을 면하고 영적 구원만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영적 가나안 복귀
기독교 신도들은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인 메시아로 서게 된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영적 가나안 복귀만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 가나안 복귀의 혜택권내에 있는 성도들의 육신은 십자가에 의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의 육신과 같은 처지에 서게 됨으로써,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다름 없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원죄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로마서 7장 25절), 성도들도 도한 예수 재림을 위한 사탄 재분립의 노정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모세를 중심학도 섭리하셨던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의 성막이상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적 실체성전을 중심하고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지성소와 성소는 그것들이 상징한 바 예수님과 성신, 예수님의 영인체와 육신이 영적 실체로 이루어졌고, 속죄소의 이상은 예수님과 성신의 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짐으로써, 거기에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는 그 속죄소에서, 인간시조가 타락된 후에 그 앞을 가로막았던 그룹을 좌우로 갈라 세우고, 법궤 안으로 들어가 생명나무 되신 예수님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히브리서 9장 4~5절). 이와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의 재림은 모세노정을 통하여 보더라도 그것이 밀부터 정해진 섭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2. 재림주님을 중심한 실체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과 같이 실체노정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영적노정으로 출발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위에서, 영적 메시아로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으로 출발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섭리는, 2천년의 유구한 역사노정을 지나서, 오늘날 세계쩍으로 그 영적 판도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치 모세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여호수아가 대신하여 실체노정으로 걸어서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였던 것과같이,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영적 가나안 보귀노정을 재림하셔서 실체노정으로 걸으시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하심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재림주님은 처음 오셨을 때에 실체로서 이루시려던 지상천국을 그대로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실체인간으로 지상에서 탄생하셔야 되는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Ⅱ 참조).
그러나 재림주님은 초림 때의 복귀섭리노정을 탕감복귀하셔야 하기 때문에, 마치 그의 초림 때에 유대임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영적 복귀섭리의 고난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과 같이, 재림때에 있어서도 만일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 영적인 고난의 노정을 다시 실체로써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러나 그(예수님)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누가복음 17장 25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초림 때에, 그를 위하여 소명되었던 제1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기독교 신도들을 제2 이스라엘 선민으로 세워가지고 새로이 영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올 수밖에 없으셨던 것과같이, 재림 때에도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으로 돌아가면, 그들을 버리시고 새로이 제3 이스라엘을 세우시어 실체적인 섭리노정을 이루어 나아가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도 처음 오셨을 때와 같이,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세례 요한의 사명(요한복음 1장 23절을 가지고 올 선구자들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재림주님 자신이 또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제3차 세계쩍 가나안 복귀섭리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실체적으로 만드셔야 하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림주님은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 하여도, 처음 오셨을 때와 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류의 참부모님을 세우시어(전편 제7장 제4절 Ⅰ.1) 창조목적을 이루시려는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치어 재림주님에 이르기까지 세번째인 재림 때에는 당연히 그 섭리를 이루시게 되어 있으며, 더구나 후편 제4장 제7절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 이후 2,000년의 영적 복귀섭리는, 그를 위한 사회 조성을 위하여 민주주의 시대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초림때에는 유대교의 반역자로 몰려서 돌아가셨지만, 그가 재림하시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설혹 그가 이단자로 몰리우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죽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주님이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으신다 할지라도, 그가 세우시는 실체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 그를 절대로 믿고 따라 모시는 성도들이 못여서,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실체노정을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조성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실체적인 기대'를 이루게 될 것만은 확실하다.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모세 때에는 반석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게 되어 있었고, 여호수아 때에는 반석보다 더 내적인 그 샘물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초림 때에는 기사이적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지만, 재림 때에는 그의 내적인 '말씀'을 중심하고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전편 제3장 제3절 Ⅱ에서 논한 바와 같이, '말씀'으로 창조된 인간이(요한복음 1장 3절) 타락으로 인하여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목적을 다시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의 외적인 조건을 세우시어 복귀섭리를 이루어 나오시다가, 섭리역사의 종말에 이르러는 '말씀'의 실체되신 예수님(요한복음 1장 14절)을 다시 보내시어 '말씀'을 중심하고 구원섭리를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심정의 인연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은 영적인 부모로서 인간을 실체의 자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최초로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형상적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제1 실체대상으로서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부부를 이루고 자녀를 번식하여, 부모의 심정과 부부의 심정과 자녀의 심정으로 맺어진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었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3대상 목적을 이룬 4위기대인 것이다(전편 제1장 제2절 Ⅲ 참조).
이와같이 하나님은 하늘의 혈통을 이어받은 직계의 자녀들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이미 타락론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인간시조가 천사장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 인하여, 온 인류는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서 모두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마태복음 3장 7절, 마태복음 23장 32절, 요한복음 8장 44절). 그리하여 인간시조는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입장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이것이 바로 타락이다(전편 제2장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혈통관계가 끊어진 타락인간을 복귀시켜 가지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세우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비밀을 성서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위에서 논한바와 같이, 타락되어 살육행위를 마구했던 아담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아 때에 이르러, 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벨의 입장이었던 함은 그의 실수로 인하여 비록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노아가 충성을 다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종들의 종'(창세기 9장 25절)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과 간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 전 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이르러, 그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선민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하나나미의 종의 입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니(레위기 25장 55절), 이것이 바로 구약시대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였다.
예수님이 오신 후,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세우신 그의 '믿음의 기대' 위에 섰던 제자들은, 비로소 구약시대의 종된 입장에서 양자의 입장으로 복귀되었었다. 그들이 하늘의 직계의 혈통적 자녀가 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에게 절대로 순종하여 '실체기대'를 이룸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선 예수님에게 영 육 아울러 접붙임을 받아서(로마서 11장 17절) 그와 일체를 이루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원죄 없는 독생자로 오셔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하심으로서, 타락한 온 인류를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 직계의 혈통적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과 성신이 인류의 참 부모로서, 이와 같이 타락인간을 접붙이어 원죄를 벗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창조본연의 혈통적인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한다(전편 제7장 제4절 참조). 그러므로 예쑤님은 돌 감람나무 된 타락인간으로 하여금 접붙이게 하시기 위하여 참 감람나무의 중심으로 오셨던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제자들마저 불신으로 돌아갔으므로,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자리에 서 보지도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적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부활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써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우신 후, 회개하고 돌아온 제자들의 신앙과 중절로 말미암아 영적인 '실체기대'가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영적인 기대 위에 영적인 메시아로 서신 예수님에게 영적인 접붙임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성도들은 영적인 자녀로서만 설 수 있게 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영적 복귀섭리에 의한 하나님과 타락인간과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후의 영적 부활섭리는 마치 하나님이 영계를 먼저 창조하셨던 것과 같이 그러한 형의 영적세계를 먼저 복귀하여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타락인간은 아직 영적으로만 하나님의 대상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육적으로 내려오는 원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는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이와 같이 기독교 신도들은 하나님 앞에 혈통이 다른 자녀이기 때문에 양자가 되는 것이다. 일찍이 바울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도 탄식하여 양자 되기를 기다린다고 한 이유는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로마서 8장 23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 인류를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한다. 따라서 그는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셔서 초림 때의 노정을 다시 걸으심으로써 그것을 탕감복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재림 예수님은 '말씀'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시어, 그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영 육 아울러 접붙이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의 자녀로 복귀케 하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초림 때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의 중심인물이었던 야곱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세 제자를 중심한 12제자를 세우심으로써 가정적인 기대를 세우셨고, 다시 70문도를 세우심으로써 그 기대를 종족적인 기대에로 넓히려 하셨던 것과 같이, 그는 재림하셔서도 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가정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천주적인 것으로 복귀하시어, 그 기대 위에 천국을 이루는데까지 나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차 예수님이 탄생하시어 천국 건설의 목적을 빨리 이루게 하시기 위하여, 제1차 이스라엘 선민을 세우심으로써 그 터전을 예비하셨었으나, 그들이 배반함으로 인하여 기독교 신도들을 제2 이스라엘로 세우셨던 것과 같이, 만일 재림 예수님의 천국건설 이상을 위하여 제2 이스라엘로 세워진 기독교 신도들이 또 그를 배반하면, 하나님은 부득이 그 제2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시고, 새로이 제3 이스라엘 선민을 택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천한 기독교 신도들은 예수님 초림 당시의 유대민족들과 같이, 가장 행복된 환경 가운데 있으면서도 한편 가장 불행하게 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Ⅳ. 예수님의 노정이 보여준 교훈
첫째로 여기에서도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쩡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 그의 사명을 대신하시면서까지 기필코 그 뜻을 이루시려 하셨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재림하셔서까지 이 뜻을 절대적으로 이루려 하시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택함 받은 어느 개인이나 민족을 중심한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즉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어떤 인물이나 어떤 민족을 세우셨을지라도, 그들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새로운 사명자를 세우시어 그 일을 잇게 하셨던 것이다.
즉 예수님은 그의 수제자로 세례요한을 택하셨었으나, 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신으로 베드로를 택하셨고, 또 가룟유다를 12제자의 하나로 택하셨던 것이었으나, 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의 대신으로 맛디아를 택하셨던 것이다(사도행전 1장 25절). 한편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유대민족을 택하셨었으나,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자, 그 사명을 이방인들에게로 옮기셨던 것이다(사도행전 13장 46절, 마태복음 21장 33~43절). 이처럼 아무리 뜻 성사를 위하여 택함을 받은 존재라 할지라도, 그를 중심한 뜻의 성사는 결코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인간책임분담에 대해서는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세례 요한이나 가룟 유다가 불신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모르시지 않았을 것이며, 또 그것을 못하게 하실 수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의 신앙에 대하여는 일체 간섭치 않으시고 그 결과만을 보고 주관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큰 사명을 맡은 인물일수록, 그에게 오는 시련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아담이 하나님을 불신으로 버렸기 때문에, 후아담으로 오신 예쑤님이 그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는, 아담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입장에서, 오히려 믿음을 세워 그의 타락 전 입장을 탕감복귀하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까지도 받으셔야 했었고 또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일까지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마태복음 27장 46절).

제3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연수의 형성
제1절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
동시성의 시대란 무엇인가 ? 인류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비록 그 정도와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흡사한 모양의 역사적 과정이 뒷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가들은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보고 역사노정은 어떠한 동형의 나선상을 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시대가 그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되는 경우, 그러한 시대들을 말하여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성의 시대를 일러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거니와, 이 현상이 본래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찌하여 생기게 되는가 ? 우리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되어진 모든 사실들이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가던 어떠한 중심인물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그 인물을 중심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나고 만다. 그러나 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전편 제6장),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그의 대신으로 세워,'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새 시대를 다시 세워 나아가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새 시대는 그 전시대의 역사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똑같은 노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어 섭리적인 동시성의 시대는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를 담당한 인물들은 그 전 시대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되므로, 복귀섭리가 연장되어 종적인 탕감조건이 부가되어 갈수록 횡적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도 점차 더 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도 점차로 그 내용과 범위를 달리하게 된다. 동시성의 시대의 형태가 완전한 상사형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성장기간의 3단계를 그 형으로써 분류해 본다면 소생은 상징형, 장성은 형상형, 그리고 완성은 실체형으로 나누어지게 되므로, 복귀섭리노정에서 이러한 형들을 동시성으로 반복해 온 시대들도 역시 그러한 형의 역사를 재현시켜 나왔던 것이다. 즉 복귀섭리역사의 전기간을 형으로 본 동시성의 관점에서 갈라 본다면,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요, 복귀섭리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이며, 복귀섭리연장시대는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이처럼 동시성의 시대가 반복되는 이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세가지의 조건을 들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이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과 조건물과 수리적인 기간 등이다. 그리고 그 둘째는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다.
이러한 요인들로써 이루어지는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에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성격의 것이 있다.
그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 탕감기간인 대수나 혹은 연수를 요인으로 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복귀섭리역사는 그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연장됨에 따라 상실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끝내 되풀이하여 탕감복귀해 나오신 섭리역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수리적인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도 되풀이하게 돔으로써, 결국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떠한 연수나 혹은 대수의 반복에 의하여 같은 모양을 거듭 형성해 나온 것이었다. 본장의 목적은 바로 이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는데 있다,.
둘째로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과 그 조건물, 그리고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 등의 섭리적인 사실을 요인으로 하여 동시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도 되풀이된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먼저 '상징헌제'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고 다음에 '실체헌제'로써 '실체기대'를 복귀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역사는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되풀이하여 왔기 때문에,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결국 이 두 헌제를 복귀하려 했던 섭리역사의 냉용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관한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론하기로 하자.
제2절 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수의 형성
Ⅰ.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우리는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려는 섭리가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연장되어 예수님 때까지 이르렀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다시 그의 재림기까지 연장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그러면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는가? 이것은 예정론에 의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한 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띤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라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되어 복귀섭리는 연장되어 나아간다.
다음으로 우리는 복귀섭리는 어떻게 연장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하는 모양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4위기대를 조성하여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정분합의 3단계의 작용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이룸으로써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가 연장됨에 있어서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실체헌제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연장되었으며, 또 모세나 예수님을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도 각각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건축의 이상은 사울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윗왕 솔로몬 왕에까지 연장되었고, 또 첫 아담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후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쳐 그의 재림기까지 3차로 연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격언에 '초부득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현실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Ⅱ.종적인 탕감조건과 횡적인 탕감복귀
복귀섭리의 뜻을 담당한 중심인물은, 자기가 세워질 때까지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자기와 동일한 사명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세우려 했던 모든 탕감조건들을 자기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명을 계승 완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물이 또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 그가 세우려 했던 탕감조건들은 모두 그 다음에 그의 대신 사명자로 오는 인물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으로 넘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노정에서 그 섭리를 담당했던 인물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가중되어 내려온 조건들을 종적인 탕감조건이라 하고,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어떤 특정한 사명자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을 횡적인 탕감복귀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는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이 세우려 했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다.그러므로 아브라함이 3제물을 한 제단에 놓고 일시에 헌제한 것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의 3단계로 연장되어 내려온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아브라함의 헌제를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3제물은 일찍이 아담과 노아가 세우려다 못 세운 여러 조건들과 또 아브라함이 중심이 되어 세우려 하였던 모든 조건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곱은 노아로부터 그 자신에 이르는 12대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12자식을 세워 12지파에로 번식시켜 나아갔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역시 4천년 섭리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를 담당했던 수많은 선지자들이 남겨 놓은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그 자신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셔야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12제자와 70문도를 세우신 것은, 12자식과 70가족을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야곱의 노정과, 12지파와 70장로를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모세노정 등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것은, 복귀섭리노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데 필요했던 '40일 사탄 분립'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복귀섭리를 담당한 인물은 단순히 그 한 개체로서만이 아니고 그에 앞서 같은 사명을 가지고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들의 재현체이며, 또한 그들의 역사적인 결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Ⅲ.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
다음으로는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상술한 바이지만, 아브라함 때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 있어서 제3차에 해당하는 때였다. 따라서 그 때에는 기필코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원리적인 조건 밑에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의 실수로 말미암아 거듭되어 왔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였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음으로 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이미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시고, 또 그로부터 종적으로 연장되는 복귀섭리도 연장되지 않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자리에 세우셔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상론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각각 그 개체는 서로 다르지만 뜻을 중심하고 보면 완전한 일체로서 탕감조건을 세우도록 섭리하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뜻으로 보면 완전히 일체가 되었었기 때문에, 야곱의 성공은 곧 이삭의 성공이었고, 또 그것은 곧 아브라함의 성공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보면 그것은 연장되지 않고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삭,야곱은 뜻을 중심한 면에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과 같이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 뜻은 아브라함 1대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3장 6절에 하나님을 일러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이러한 견지에서 그들 3대는 일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그의 '상징헌제' 실패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종적으로 이삭과 야곱의 3대로 연장해 가면서 세운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결국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1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셨기 때문에, 이것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라고 하는 것이다.
Ⅳ.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
우리는 이미 후편 서론에서,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면, 그를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을 논술한 바 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수리적으로도 존재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는,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수리적인 전개에 의한 실체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의 평면적인 원리를 찾아 나아가는 과학의 발달이 수리적인 연구에 의하여서만 가능한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된 인간시조는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거친 후에야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수리적인 완성실체가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피조세계가 사탄의 주관권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상징하는 어떠한 조건물을 세워놓고, 사탄의 침범을 당한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타락 전 인간시조는 어떠한 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어떠한 수리적인 완성실체가 되었어야 했던가 ?
창조원리에 의하면, 무릇 모든 존재물 가운데 사위기대를 조성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미완성기에 있었던 아담과 해와도 사위기대 조성에 의하여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위기대는 그 각위가 각각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치어 도합 12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12대상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기간이었던 성장기간은 바로 12수 완성기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12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12대상 목적을 완성함으로써 12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12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12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 120년, 모세를 중심한 가나안복귀섭리기간 120년, 아브라함이 소명된 후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울 때까지의 120년, 또 이 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구약시대에 있어서의 통일왕국시대 120년과, 신약시대에 있어서의 기독왕국시대 120년 등은 모두 이 12수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타락 전 미완성기의 아담과 해와는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쳐 제4단계인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에 들어감으로서 비로소 사위기대를 완성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나아가던 성장기간은 4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둘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4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4위기대를 완성함으로써 4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4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이미 후편 제1장 제2절 Ⅰ의 2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 노아의 방주를 중심한 심판 40일을 비롯한 모세의 금식 40일, 가나안 정탐기간 40일을 비롯한 모세의 금식 40일등은 모두 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4수 복귀의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성장기간은 21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셋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21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창조목적을 완성함으로써 21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21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21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이 21수 완성기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21수의 뜻을 알려면 먼저 3수와 4수와 7수에 대한 원리적인 뜻을 알아야 한다.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이신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다. 그리고 피조물의 완성은 곧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사 위기대를 조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개체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고, 부부로서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남성과 여성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며, 또 피조세계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인간과 만물세계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이 이와같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일체를 이루어 사위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성장기의 3기간을 거쳐서 삼대상목적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써 3수를 하늘수 또는 완성수라고 부른다.
이렇듯 어떠한 주체와 대상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합성일체화하여 삼위일체를 이룰 때에, 그 개성체는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동서남북의 4방성을 갖춘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4수를 땅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피조물이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진 존재로서 완성되면, 하늘수와 땅수를 합한 7수 완성의 실체가 된다. 천지창조의 전 기간이 7일이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창조의 전 기간을 한 기간으로 볼 때에는 7수 완성기간이 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완성되는 한 기간을 7수 완성기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을 형성하는 3기간을 각각 소생단계가 완성되는 한 기간, 장성단계가 완성되는 한 기간, 완성단계가 완성되는 한 기간으로 본다면, 그 기간들도 역시 각각 7수 완성기간이 되므로 전 성장기간은 21수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믿음의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들이 세웠던 21수 탕감기간의 예를 들면, 노아홍수의 기간에 하나님이 3단계의 섭리를 미리 보여주시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3차에 걸쳐 비둘기를 내보내게 하셨는데, 그 간격을 각각 7일간으로 하심으로써, 뜻으로 본 그 전 기간은 21일간이 되었던 것이다(창세기 7장 4절, 창세기 8장 10절, 창세기 8장 12절). 그리고 야곱이 가정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세우기 위하여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섭리의 기간을 세울 때에도 역시 7년씩 3차에 걸친 21년을 요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야곱의 이러한 21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으로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 및 귀환기간 210년이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교황 포로 및 귀환기간 210년이 있었던 것이다.
성장기간은 또한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넷째로 타락전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40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창조목적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이 40수 완성기간이 되는가를 알아보자.
이것을 알기 위하여는 먼저 10수에 대한 의의를 알아야 한다. 성장기간 3단계의 각 기간이 다시 각각 3단계로 구분되면 모두 9단계가 된다. 9수의 원리적 근거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무형의 이성성상의 수리적 전개에 의하여 그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피조물은, 성장기간의 9단계를 지나서 제 10단계인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으로 돌아가 그와 일체를 이룰 때 비로소 창조목적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10수를 귀일수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담 이후 10대만에 노아를 찾아 세우셨던 것은,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시려다가 못 이루신 뜻을 노아를 중심하고 복귀하여, 하나님에게로 재귀일하게 하시기 위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사위기대는, 그 각위는 각각 성장기간의 10단계를 거치어 도합 40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은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이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40수 탕감기간의 예를 들어보면, 노아 때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 기간, 모세의 바로궁중 40년, 미디안광야 40년,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 40년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감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의 40수는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타락인간이 4수를 탕감복귀할 때, 귀일수인 10수가 곱해져서 된 40수이고, 또 하나는 바로 위에서 논술한 바 타락전 아담이 세워야 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40수이다.
그런데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 40년은, 모세의 바로궁중 40년과 미디안광야 4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인 동시에, 정탐 40일, 따라서 모세의 금식 40일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40년 기간은 위에서 논한 바 서로 성격을 달리한 두 40수를 동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중심인물이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동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 40수를 탕감복귀하는 섭리가 연장될 때에는 그것이 10단계 원칙에 의한 탕감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40수는 10배수 배가원칙에 따라 400수 또는 4000수로 연장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애굽고역 400년,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4000년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제 위에서 논술한 바에 의하여,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을 세워야 하는가를 종합해 보기로 하자.
원래 인간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12수, 4수, 21수, 40수 등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창조목적을 완성함으로써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들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들은 12수, 4수, 21수, 40수 등을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여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세울 수 없게 되었다.
Ⅴ. 대수를 중심한 동시성의 시대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만에 노아를 택하시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중심인물로 세우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1600년과 10대는 어떠한 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바로 위에서 10수는 귀일수라는 것과 성장기간은 이 1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논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시조는 이 10수 완성기간을 그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에 의하여 통과함으로써 1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이것들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중심인물을 찾아 세워 가지고, 하나님에게 재귀일 시키는 1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0대만에 노아를 부르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셨던 것이다.
우리는 또 인간시조가 40수 완성의 성장기간을 다 거쳐야만 40수 완성실체가 될 수 있었다는 것도 바로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탕감복귀를 위한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세워야 했던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중심인물로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위기대의 각 위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되어야 하고 이것을 귀일수로서의 10대에 걸쳐서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 만에 노아를 택하셨던 것은 타락인간이 바로 이러한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간 후, 10대 400년만에 다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셨다. 따라서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시대는 아담으로 부터 노아까지의 시대를 대수를 중심하고 탕감복귀하는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 시대가 어찌하여 400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의 1에서 논술하였다.하나님이 노아로 하여금 40일 심판기간을 세우게 하셨던 것은, 10대와 1600년에 의한 수리적인 탕감복귀의 전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함의 실수로 인하여 이 40일 심판기간이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로 하여금 또 이것을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 이후, 각 대마다 160수 복귀를 위한 탕감기간을 세우는 섭리를 하시어 이것이 노아 때까지 10대를 계속하여 내려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그와 동시성의 시대인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10대도 각 대를 심판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써 세워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1대의 탕감기간을 40일로써 세울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일의 실수를 광야 표류 40년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하였던 것과 같은(민수기 14장 34절) 탕감법칙에 의하여 심판 40일의 실수를 40년기간으로써 탕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0년으로써 1대의 탕감기간으로 세우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1대 40년 탕감기간으로써 세우게 하시는 섭리가 10대에 걸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전탕감기간은 400년을 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Ⅵ. 종으로된 횡적 탕감복귀시대
위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같이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은 종적인 탕감조건을 모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섭리역사가 연장될수록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후대의 인물이 세워야 할 횡적인 탕감조건은 점점 가중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복귀섭리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종적인 탕감조건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다.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가인과 아벨이 '상장헌제' 하는 것과 같이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헌제'를 하는 것으로써 단순하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도, 그들이 상징과 실체의 두 헌제를 하는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이후의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들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바로 위에서 논한 바 12, 4, 21, 40 등의 각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아담가정의 헌제 실패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기간이 연장됨으로써, 그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이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는 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로서 방주 짓는 기간 120년, 홍수심판 40일, 비둘기를 3차 내보내기 위하여 세웠던 7일씩 3차를 합한 21일기간(창세기 7장 4절, 창세기 8장 10절, 창세기 8장 12절),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기간 등을 찾아 세워야 했던 것이다(창세기 8장 6절).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가 찾아 세웠던 이러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어, 그것들은 다시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기간들을 다시 '상징헌제'로써 한꺼번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역시 '상징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기간들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들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써 복귀하기 위하여 뜻 성사를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시켜 가면서 12, 4, 21, 40의 각 수에 해당하는 탕감기간들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그가 하란에서 떠난 후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써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 그리고 그 때로부터 야곱이 이삭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창세기 28장 10~14절)까지의 40년, 또 그때로부터 하란에서에 고역을 마치고 처자와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1년(창세기 31장 41절),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서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등은 모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들이었다. 이와 같이 되어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 기간의 연수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제3절 복귀섭리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 연수
복귀섭리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다. 이제 이 시대를 형성한 각 시대와 그 연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Ⅰ. 애급고역시대 400년
노아는 심판 40일의 '사탄 분립시대'위에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인데 함의 실수로 그것이 무너지자, 하나님을 다시 아브라함을 그와 같은 입장에 세우시기 위하여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서 그로 하여금 '상징헌제'를 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그 기대는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준 그 400년의 기대를 다시 찾아세우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을 재분립하는 애급고역 400년을 치르게 하셨던 것이니(창세기 15장 13절), 이 시대를 애급고역시대라고 한다(후편 제1장 제3절 Ⅰ).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16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Ⅱ. 사사시대 400년
열왕기상 6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 땅에서 나온지 사백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월 곧 2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 사울왕의 재위 40년과 다윗왕의 재위 40년을 지난 후, 솔로몬왕 4년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는 약 400년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로부터의 400년 '사탄분립기대' 위에 세워졌던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위에 섰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대신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이와같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사탄에게 잃어버린 이 애급고역 400년 기대를 재탕감복귀하기 위한 사탄 재분립기가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간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로부터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의 사사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통일왕국시대 120년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시대가 있게 되었으므로 이 섭리노정을 출발한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고, 모세는 노아의 입장이었으며, 사울왕은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복귀기대섭리시대의 종결자인 동시에 복귀섭리시대의 출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후에,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려 하시기 제3차로서, 그때에는 그것을 반드시 이루셔야 했던 것과 같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시려 던 섭리도 역시 사울왕 때가 그 제3차로서 그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이루셔야 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노아 때에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 40일, 21일, 40일 등을 '상징헌제'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다가 실수하여 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120년, 40년, 21년, 40년으로 다시 찾아 세웠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한 사울왕도 역시 아브라함때와 같이, 모세때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모세의 40년씩 3차의 생애), 40일(금식기간), 21일(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기간), 40년(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기간) 등을 성전을 지음으로써 그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울왕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1~23절)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브라함 때와 같이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통일왕국시대 120년,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 이스라엘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찾아 세워가지고, 마침내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는 모세가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3차에 걸쳐서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12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선 후에, 모세는 바로궁중 40년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이스라엘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모세의 미디안광야 40년, 광야 표류기간 40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시대 400년으로써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선 후, 사울이 유대민족의 첫 왕으로 즉위하여, 그의 재위 40년으로 모세의 바로 궁중생활 40년을 탕감복귀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성전을 건축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이 불신으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사무엘상 15장 11~23절), 모세 때와 같이 성전 건축의 뜻은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으로 연장되어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후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 졌던 것과 같이, 사울왕의 성전이상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 때에야 이루어졌던 것이다.
Ⅳ. 남북왕조 분립시대 400년
사울왕은 그의 40년 재위기간에 성전 건축의 이상을 이룸으로써 말씀(석판) 복귀를 위한 모세의 금식 40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기간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해야 하였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통일왕국시대가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분립된 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의 400년 남북왕조 분립시대였던 것이다.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에서로부터 떡과 팥죽으로 장자권을 빼앗는 조건을 세운 후, 다시 이삭의 축복을 받아가지고(창세기 28장 13절) 하란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북조 이스라엘이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앗시리아에 포로되어 간 후 남조 유대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되어 갔다. 이때부터 그들은 바빌론에서 70년간 포로되어 있다가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한 후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조서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 유대민족은 그 후 오랜 기간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는데, 느헤미야가 남은 유대인들을 영솔하고 환국하여 성벽을 재건한 후 그들은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말라기 4장 5절)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로 들어갔다. 이때가 그들이 바빌론에 포로된 때로부터 210년이요, 해방되기 시작하고서부터 약 140년 된 때였다. 이 시대를 통틀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가 제1차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지고 가나안 복귀를 하려 했던 21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의 21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에 대한 축복을 받은 후, 그를 죽이려 했던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서 사탄편 인물인 라반의 요구에 의하여 레아를 맞이하기 위한 7년 간과 라헬을 맞이하기 위해 7년간, 그리고 재물을 취해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해까지의 7년간을 합한 21년간(창세기 31장 41절)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Ⅵ.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귀향한 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 의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민족으로 선 때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의 400년간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그의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3차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소비한 광야 40년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의 400년 기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한 후 팔려간 요셉을 찾아 애급으로 들어가기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제4절 복귀섭리연장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의 연수
복귀섭리연장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는 복귀섭리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의 연수를 그대로 탕감복귀하게 되는 것이다.
Ⅰ.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
예수님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뜻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었다. 그러므로 마치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민족적인 것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산 제물로 바치는 헌제에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지 못하게 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기독교 신도들의 앞에도 애급고역시대와 같은 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이 시대가 바로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흑심한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 서기 313년이었고,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이 서기 392년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이스라엘 민족의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Ⅱ. 교구장제 기독교시대 400년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시대 중에 사사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나아가던 사사시대 400년이 있었기 때문에,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섭리연장시대 중에도 이 사사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있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후 서기 800년 카알대제가 즉위할 때까지 사사에 해당하는 교구장에 의하여 영도되었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400년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사사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기독왕국시대 120년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사울왕을 중심하고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 왕에 이르기까지 120년간 통일왕국시대를 이루었었다. 따라서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서기 800년 카알대제가 즉위한 뒤로부터 나중에 그의 왕통이 끊어지고 선거왕제가 되어 919년 헨리 1세가 독일 왕위에 오를 때까지, 120년간에 걸쳐 기독왕국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Ⅳ. 동서왕조 분립시대 400년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의 통일왕국시대에 성전이 뜻 가운데 서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 왕국이 남조와 북조로 분열되어 400년간의 남북왕조 분립시대가 왔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도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있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기독왕국시대가 지나간 이후 서기 1390년에 교황청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옮겨질 때까지의 동서왕조 분립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기독왕국이 처음에 분열되었을 때는 동·서 프랑크와 이탈리아의 세 왕조로 분립되었었으나, 이탈리아는 신성 로마제국을 이은 동프랑크의 지배 밑에 있었으므로 사실상 동서로 양분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Ⅴ.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남북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 북조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인하여 앗시리아에게 망하고 남조 유대마저 불신으로 돌아가 성전이상을 재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사탄세계인 바빌론으로 포로되어 갔다가 귀환하여 다시 성전이상을 세울 때까지 210년간이 걸렸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동서왕조 분립시대에 있어서, 불신으로 돌아간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서기 1309년에 로마로부터 남불 아비뇽에 교황청을 옮긴 후, 교황들이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하다가 다시 로마로 돌아와 가지고 그 후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까지 약 210년간에 걸친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가 있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Ⅵ.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 400년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민족이 예언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정교의 쇄신을 일으키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말라기 4장 5절) 메시아를 맞기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메시아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지나고 나서야 예수님을 맞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탕감복귀 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도 남불의 아비뇽에 잡혀 있었던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 서기 1517년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이 일어난 때로부터 400년을 지남으로써 비로소 재림주를 맞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새대가 바로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 중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인 것이다.

제4장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
앞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서 그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첫째로 복귀섭리를 담당한 어떠한 중심인물이 어느 기간을 두고 어떤 조건물을 통하여 하나님이 뜻에 합당한 '상징헌제'를 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하고, 둘째로는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하나님이 뜻에 합당한 '실체헌제'를 함으로써 '실체기대'를 이뤄야 한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반복하여 온 복귀섭리의 노정은 결국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탕감복귀하려는 섭리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노정의 반복으로 형성되는 섭리적 동시성이 시대는, 결국 위에서 말한 두 헌제를 탕감복귀하려 했던 섭리적인 사실로써 그 동시성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원칙하에서 각 섭리시대의 성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그 시대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그 섭리시대의 성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그 시대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그 섭리를 담당했던 중심민족과 그 중심사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복귀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과 그 사료를 상고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인류역사는 수많은 민족사로써 연결되어 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중에서 어떤 민족을 특별히 택하셔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전형적인 복귀섭리노정을 걷게 하심으로써, 그 민족으로 하여금 천륜의 중심이 되어 인류역사를 향도하도록 이끌어 나오신 것이다. 이러한 사명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민족을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선민은 본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써 이루어졌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복귀섭리시대의 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은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사는 이 시대에 있어서의 복귀섭리역사의 사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후부터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예견하신 예수님은 일찍이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그 결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태복음 21장 43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또 바울도,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뜻을 받드는 백성이라야 이스라에이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로마서 9장 5~8절).
사실상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귀섭리연장시대의 섭리를 이루어 나온 중심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그들이 다하지 못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계승한 기독교 신도들이었다. 따라서 기독교사가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의 사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약시대의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을 제1 이스라엘이라고 한다면, 신약시대의 기독교 신도들은 제2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성서를 대조해 보면, 구약성서이 율법서(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의 5권), 역사서(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의 12권), 시문서(욥기에서 아가까지의 5권), 예언서(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의 17권)는 각각 신약성서의 복음서, 사도행전, 사도서한, 요한계시록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역사서에는 제1 이스라엘의 2천년 역사가 전부 기록되어 있지만,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는 예수님 당시의 제2 이스라엘(기독교 신도)의 역사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이 구약성서의 역사서에 해당하는 내용이 되기 위하여는 예수님 이후 2천년 간의 기독교사가 거기에 더 첨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사는 예수님 이후의 복귀섭리역사를 꾸미는 사료가 되는 것이다.
상기한 제1 제2, 두 이스라엘의 역사를 중심하고 동시성으로 이루어진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연장시대를 이루고 있는 각 시대의 성격을 대조하여 봄으로써, 사실상 인류역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일관한 공식적인 섭리에 의하여 엮어져 왔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제1절 애굽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사탄 분립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으므로, 이 400년 기간을 다시 탕감복귀학기 위한 애굽고역시대에는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간 이래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애굽인들에게 처참한 학대를 받았었다.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있어서도 이스라엘 선민들이 예수님을 산 제물로 바치는 헌제에 실수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의 사탄 분립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 및 기독교 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400년 동안 처참한 박해를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애굽고역시대에 있어서는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할례를 하고(출애굽기 4장 25절), 희생을 드리며(출애굽기 5장 3절), 안식일을 지키면서(출애굽기 16장 23절)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생활을 하였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 박해시대에도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이 성만찬과 세례를 베풀고, 성도 자신들을 생축의 제물로 드리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써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애급고역시대에 있어서 400년의 고역이 끝난 후에 모세는 3대 기적과 10재앙의 권능으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제1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이와같이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있어서도, 제2 이스라엘 선민들에 대한 4세기 동안의 박해가 끝난 후에 예수님은 심령적인 기적과 권능으로써 많은 신도를 불러 일으키셨고, 더 나아가 콘스탄티누스대제를 감화시켜서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게 하셨으며,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서는, 그처럼 극심한 박해를 하던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하게 하셨었다. 이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사탄세계에서 영적으로 가나안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런데 율법에 의한 외적인 탕감조건으로써 섭리하시던 구약시대에 있어서는, 모세로 하여금 외적인 기사와 권능으로써 바로를 굴복시키셨지만, 신약시대는 말씀에 의한 내적인 탕감조건으로 섭리하시는 시대이기 때문에 심령적인 감화로써 역사하셨다.
애급고역시대가 끝난 후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말씀을 받음으로써 구약성서의 중심을 세웠고,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듦으로써 제1 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를 맞기 위한 뜻을 세워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2 이스라엘 선민들은 로마제국 박해시대가 끝난 후에, 구약시대의 십계명과 성막이상을 영적으로 이루기 위한 말씀으로서 사도들의 기록을 모아 신약성서를 결정하고, 그 말씀을 중심한 교회를 이룩하여 가지고 재림주를 맞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과 성신이 직접 성도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에, 그 이전 섭리시대와 같이 어느 한 사람을 하늘 대신 전체적인 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지는 않으셨다.
제2절 사사시대와 교구장제기독교회시대
모세의 사명을계승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옷니엘 사사를 위시한 12사사에 이어 삼손, 엘리,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도합 15사사가 이스라엘을 지도하였던 400년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그들 사사는 다음 시대에 있어 분담된 예언자와 제사장과 국왕의 사명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교의 봉건사회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신약시대의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역시 교구장들은 기독교 신도들을 영도하는 면에 있어 사사의 그것에 해당하는 직분을 띠고 있었다.
예수 이전의 시대에는 제1 이스라엘을 중심하고 영 육 아울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 나아갔었기 때문에, 정치와 경제와 종교는 하나의 지도자 밑에 통솔되어 나아갔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노정은 이미 조성된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영적인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영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신양시대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에 의한 기독교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의 국토없는 영적인 왕국인 것이다.
교구장은 이러한 영적 왕국 건설에 있어서 사사와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예언자도 되어야 했고, 때로는 제사장의 구실도 해야 했으며, 때로는 교구를 통치하는 국왕과 같은 사명도 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봉건사회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사시대에 있어서는,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출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거기에서 출생한 그들의 후손들만이 오직 남아진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함을 따라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후에, 각 지파에게 분배된 새 땅에 사사를 중심하고 새로운 선민을 형성하여, 이스라엘 봉건사회의 기틀을 잡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는 사탄세계인 로마제국에서 해방된 후, 4세기에 몽고족의 일파인 훈족의 서침에 의하여 서구로 이동된 게르만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서구의 새 땅에서 게르만 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세워 기독교봉건사회의 기틀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애급을 떠난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실체기대'를 이루기 위하여 성막을 메시아의 상징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로 세웠었다는 사실은 이미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자세히 논한 바이다.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들의 지도를 따라 성막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들은 가나안 7족을 멸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둠으로써 그들로부터 악습을 받아 우상을 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왔었다. 마찬가지로 교구장제기독교회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은 교구장의 지도를 따라 메시아의 형상체인 동시에 아벨 대신의 조건물인 교회의 뜻만을 받들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은 게르만 민족으로부터 잡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제3절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국시대
통일왕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사가 제1 이스라엘을 영도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예언자와, 성막이나 성전을 받드는 제사장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정립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각자의 지도적인 사명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교구장이 제2 이스라엘을 영도해 나아가던 시대는 지나고, 예언자에 해당되는 수도원과 제사장에 해당되는 교황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제2 이스라엘을 지도해 나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의 기독교는 예루살렘,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의 5대 교구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었던 로마교구장은 다른 교구를 통할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특히 그를 교황이라고 부르게 되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때의 모세의 성막이상은 통일왕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왕을 중심한 성전이상으로 나타나 왕국을 이루었었는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실체성전으로 오셔서 만왕의 왕이 되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의 형상노정이었던 것이다(이사야 9장 6절).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해방되었던 때 성어거스틴에 의하여 그의 기독이상으로서 저술되었던 '신국론'이 이 때에 와서 카알대제에 의하여 기독왕국(카알대제 때부터의 프랑크왕국)으로 나타났던 것인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의 형상노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국왕과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기독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예수님이후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 나왔던 국토 없는 영적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기독이상을 중심하고 하나되어야 했던 것이다. 만일 그때 그렇게 되었더면 종교와 정치와 경제는 일치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야 할 국왕이 었다. 예언자나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나서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러나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그는 어디까지나 영계를 대신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실체세계를 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국왕이 설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왕을 축복하여 세운 후에는 그 앞에 가인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국왕은 예언자의 말씀에 의하여 국가를 통치해야 되고, 예언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국왕에게 순종해야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국왕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아브라함으로부터 800년 되던 때에, 예언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함으로써 그를 제1 이스라엘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사물엘상 8절 19∼22절, 10장 1∼24절). 사울왕이 사사 400년 기대 위에서 그의 재위 40년을 탕감복귀한 입장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었를 것이었다. 따라서 사울왕이 이 기대 위에서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들었더라면, 그는 모세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든 것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선민들이 사울왕을 중심한 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전을 받들고 나아가는 이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면, 그들은 '실체기대'를 조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울왕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내리셨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23절)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사울왕은 바로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한 모세와 같은 자리에 놓여졌었다. 그리하여 사울왕을 중심한 복귀섭리도 모세 때와 같이, 다윗왕 40년을 거쳐 솔로몬왕 40년에 이르러서야 그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져서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었다.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입장이기도 하였던 사울왕의 성전 건축의 뜻은,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 때에 이르러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왕이 음란으로 흘러서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통일왕국시대에 이루어져야 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는 통일왕국시대의 모든 것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수도원이나 교황의 기독이상을 실현시켜야 할 국왕이었다. 따라서 교황은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의 예언자의 뜻을 받드는 제사장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왕이 기독이상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그를 죽복하여 왕으로 세운 뒤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해야 되고, 한편 국왕은 교황의 이상을 받들어 국민을 통치해야 될 것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교황 레오 3세는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여 금관을 씌움으로써 그를 제2 이스라엘 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
카알대제는 사사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400년 기대 위에 섰었기 때문에, 사울왕과 같이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 서게 되었었다. 따라서 카알대제가 이 기대 위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을어 기독이상을 실천해 나아가면,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상 카알대제는 교황에게 축복을 받고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 기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제2 이스라엘이 이러한 입장에 있는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라면 그 때에 '실체기대'는 세워졌을 것이요, 따라서'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이와같이 되었어야만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세워진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하나 되어, 그 터전 위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메시아왕국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국왕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함으로써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었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제4절 남북왕조분립시대와 동서왕조분립시대
사울왕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통일왕국시대는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에 이르러 그가 왕비들이 섬기는 이방인의 신을 섬겼으므로(열왕기상 10장 5∼9절), 3대 만에 가인의 입장인 10지파를 중심한 북조 이스라엘과, 아벨의 입장인 2지파를 중심한 남조 유대로 분립되었었다. 그리하여 남북왕조분립시대는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카알대제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기독왕국도 그 3대에 이르러 손자들 3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왕국은 동 서 프랑크와 이탈리아로 3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동프랑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동 서 프랑크왕국으로 양분된 셈이다. 한편 동프랑크는 오토 1세로 말미암아 크게 융흥되어 신성로마제국이라 불게 되었고, 로마황재의 이름으로 서구를 통치하여 정교 2권을 확보하려 하였었다. 이렇게 하여 동프랑크는 서프랑크에 대하여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솔로몬조의 밍명객이었던 여로보암을 중심한 북조 이스라엘은 260년 간에 19왕이 경질되었고, 그들은 서로 살육하여 왕실이 아홉차례나 변혁되었으며, 열왕중에 선한 왕이 하나도 없었다. 띠라서 남조 유대로부터 보내온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가멜산의 제단에 불을 내리심으로써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멸하셨으며(열왕기상 18장 19∼40절), 그 외에도 엘리사, 요나, 호세아, ,아모스같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목숨을 걸고 전도하게 하셨다. 그러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여전히 사신을 숭배하며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앗수르에 붙여 멸망케 하심으로써 영원히 선민의 자격을 잃게 하셨던 것이다(열왕기하 17장 17∼23절).
한편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중심한 남조 유대는 다윗으로부터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정통일계였으며, 394년간에 걸친 20인의 왕 중에 선한 왕이 많이 있었으나, 요시야왕 이후에는 악한 왕들이 속출하여 북조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어 이들도 역시 바빌로니아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었다.
이와같이 남북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민족이 성전이상에 배치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마다 하나님은 계속 4대선지와 12소선지를 보내시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 쇄신운동을 일으키셨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의 권고에도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애급, 갈대아, 시리아,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이방인들에게 부쳐 외적 확청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동서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교황청이 부패하매 토마스 아퀴나스, 성프란체스코 등 수도원의 인물들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인 쇄신운동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그들도 회개하지 않고 더욱 타락과 부패에 흘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들에게 붙여 외적인 확청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이것이 곧 십자군전쟁이었다.
예루살렘의 성지가 카리프제국에 속해 있었을 때에는 기독교의 순례자들이 후대를 받았었으나, 카리프제국이 망하고 셀죽 터어키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그들은 순례자들을 학대하였으므로, 이에 분개한 역대 교황들은 이 성지를 회복하려고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1096년에 일어난 십자군은 그 후 약 200년간에 걸쳐 7회의 원정을 하였으나 그들은 끝내 패전을 거듭하였다.
남북왕조분립시대에 있어서, 북조 이스라엘왕국과 남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이방인에게 포로가 되어 감으로써, 이스라엘의 군주사회는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서왕조 분립시대에 있어서도, 십자군이 이교도에게 패하여 교황권이 그 권위와 신망을 완전히 잃게 되자 국민정신은 그 중심을 잃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봉건사회를 유지하던 영주들과 기사들이 많이 전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기반을 잃고 말았으며,또 거듭되는 패전으로 인하여 막대한 전비를 소모하게 되어 그들은 여지없이 경제적인 곤궁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기독교군주사회는 드디어 붕괴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제5절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서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성전이상을 복귀할 수없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마치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를 탕감복귀케 하시려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세계인 바빌론으로 들어가서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처럼, 유대민족도 사탄세계인 바빌론으로 포로되어 가서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기독왕국시대를 세우신 것은 교황과 국왕을 중심하고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메시아로 재림하시는 '만왕의 왕'에게 그 나라와 왕위를 인계해 드림으로써 메시아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이사야 9장 6절, 누가복음 1장 33절). 그러나 국왕과 그를 실체기대의 중심인물로 세우기 위한 영적인 기대를 조성해야 할 교황들이 부패한 가운데서 끝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교황으로 하여금 포로가 되어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전에 여호야김왕을 비롯하여 다니엘과 기타 왕족들, 그리고 정부 대신들과 관리와 기술자 등 많은 유대인들이 비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 갔던 70년 기간이 있었고(예레미아 39장 1∼10절, 역대기하 24장, 역대기하 25절), 페르샤가 바빌로니아를 멸하고 고레스왕이 조서를 내려 그들을 해방시킨 후, 3차에 걸쳐 고향으로 귀환하여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준비를 하는 민족으로 세워질 때까지의 140년기간이 있었다.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노정을 걸어야 했었다.
교황과 승려들은 그들의 부도덕으로 말미암아 점차로 국민들의 신망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위에 십자군전쟁에 패함으로 인하여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한편 십자군전쟁 이후 봉건제도가 몰락되고 근대국가가 성립되자 점차로 왕권이 커지면서 교황과 국왕과의 충돌은 격화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불왕 필립 4세와 충돌되어, 일시 그에게 금고를 당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후 1대를 지나서 1305년에 교황으로 피선된 클레멘스 5세는, 1309년에 교황청을 로마로부터 남불의 아비뇽으로 옮기었고, 거기에서 70년간 역대의 교황들은 불왕의 구속을 받으면서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었다. 그 뒤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는 1377년 로마로 귀환하였었다.
그가 서거한 뒤에 추기경들은 이탈리아의 바리의 감독 울바누스 7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여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에 또 하나의 교황청을 세우게 되었었다. 이 분리는 다음 세기에 이르러 개혁회의에서 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즉 1409년에 추기경들은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회의를 열어 분리되어온 두 교황을 모두 폐위시키고 알렉산더 5세를 정당한 교황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폐위된 두 교황이 이에 불복함으로써 한때 세사람의 교황이 정립하게 되었었다. 그 뒤 다시 감동과 대감독 외에, 신학자 왕후 사절 등 많은 참석자로써 콘스탄트대회를 개최하여, 세사람의 교황을 일제히 폐위시키고 다시 마루티누스 5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교황선출의 권한을 추기경들로부터 빼앗아, 로마교회의 지상권을 주장하던 이 회의에로 옮겼다(1418년). 이 회는 그 뒤 스위스의 바젤에서 로마교회 기구를 입헌 군주제로 할 목적으로 열렸었다. 그러나 교황은 회중들의 이러한 주관성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회시키려고까지 하였다. 그래도 교황당 이외의 의원들은 개회를 강행하였으나, 1449년에 저절로 해산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1309년 이래 잃어버렸던 교황권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14세기의 모든 회의의 지도자들은 평신도들을 대표로 세우고, 이 회의에 최고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부패한 교황과 승려들을 제거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교황권은 그들이 포로되기 전과 같은 입장으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위클리프나 후스 같은 개혁정신을 가진 지도자들을 극형에 처하게 되었으므로, 이때부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운동은 싹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교황이 1309년으로부터 70년간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에 같혔다가, 세 교황으로 분립되었던 노정을 거쳐 다시 로마교회를 중심한 교황전제정치로 복귀된 후, 1517년에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까지의 약 210년간은,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70년간 포로되었다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말라기를 중심하고 정치와 신앙의 쇄신을 일으킬 때까지의 210년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던 것이다.

제6절 메시아강림준비시대와 메시아재강림준비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지나서야 예수님을 맞았다. 그러므로 이것을 탕감보귀하기 위하여는, 기독교 신도들도 교황이 아비뇽의 포로생활에서 로마로 돌아온 뒤, 메사아 재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지나서야 재림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가, 계속되는 사탄의 침범으로 인하여 연장을 거듭하여 내려왔던 아담 이후 4,000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메시아 강림준비시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는, 아담으로부터 6,000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가 없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민족은 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성전을 신축하고, 또 말라기선지의 영도에 의하여 사신을 숭배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면서, 율법을 공부하고 신앙의 쇄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의 중세 기독교인들은, 루터등을 중심하고 종교의 개혁운동을 일으키어, 중세 암흑시대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복음의 빛을 따라 신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던 것이다.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귀환하여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약 40년 준비기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강림준비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대를 다시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재강림준비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은, 마치 애급에서 요셉을 만날 때까지의 야곱가정이나, 또 예수님을 맞을 때까지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갖은 파란과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복귀섭리시대는 율법과 제사 등의 외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내려오던 시대였으므로, 메시아강림준비시대에 있어서의 제1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희랍, 애급,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에 지배되어 외적인 고난의 길을 밟았던 것이다. 그러나 복귀섭리연장시대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한 기도와 신앙의 내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나온 시대이므로, 메시아재강림준비시대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은 내적인 수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곧 이 시대에는 문예부흥의 주도이념인 인문주의와 그에 따라 일어난 계몽사조, 그리고 종교개혁에 따라 부르짖게 된 신앙의 자유 등에 의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종교와 사상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게 되어 기독교 신도들은 말할 수 없는 내적인 시련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강림을 위한 400년 준비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그의 재림을 위한 400년 준비기간이 있게 된 것인데, 우리는 여기에서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인 이 두 시대에 대해서, 각각 그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초림 때에는 하나님이 그의 선민을 위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시기 430년 전에 선지자 말라기를 보내시어,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예언케 하시고,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쇄신하여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선민으로서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셨다. 한편 이방인들 간에 있어서는, 이와 거의 동시대에 인도의 석가모니(B.C.565∼485)로 하여금 힌두교를 발전시켜 불교의 새로운 터전을 개척케 하셨고, 그리이스에서는 소크라테스(B.C.470∼399)로 하여금 헬라문화시대를 개척케 하셨으며, 또 동양에서는 공자(B.C.552∼479)로 하여금 유교로써 인륜도덕을 세우게 하시는 등, 각각 그 지방과 그 민족에 적응되는 문화와 종교를 세우시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는데 필요한 심령적인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와같이 준비된 터 위에 오셔서, 기독교를 중심하고 유대교(Hebraism)를 수습하고 헬라문화(Hellenism) 및 불교(Buddhism) 유교(Confucism)등의 종교를 포섭함으로써, 그 종교와 문화의 전역을 하나의 기독교문화권 안에 통합하려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을 앞도구 메시아강림에 대한 준비를 위하여 섭리하셨던 그 환경 조성의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오게 된 시대가 문예부흥시대였다. 그러므로 문예부흥시대는 메시아재강림을 위한 그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시대였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바와 같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면에 걸친 비약적인 발전은, 모두 이 문예부흥시대로부터 급격히 시작되어, 재림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성숙시켜 나온 것이다. 즉 예수님 때에는 로마제국의 발흥으로 인하여 지중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대한 정치적 판도와, 사면팔방으로 트인 교통과, 헬라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범한 문화적 판도 등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중심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중심한 로마, 로마를 중심한 세계에로, 메시아의 사상이 급속히 퍼져나갈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가 이미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재림 때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열강들의 융흥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기반으로한 민주주의의 정치적인 판도는 전 세계에 펼쳐졌고, 교통 및 통신의비약적인 발달로 인하여 동서의 거리는 극도로 단축되었으며, 언어와 문화는 세걔쩍으로 교류되어, 메시아 재강림을 위한 사조가 자유롭고도 신속하게 전 인류의 가슴 속에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이미 그 평면적인 판도가 완전히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가 재림하시면, 그의 진리와 사상을 급속도로 전파하여 단시일내에 세계화시키는데, 이것이 그대로 적절한 평면적 기대가 되어지리라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제7절 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
창조원리에서 이미 논한 바와같이, 지상천국은 완성한 사람 하나의 모양과 같은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세계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생활을 살펴봄으로써 인류죄악사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선을 지향하는 본심과 이 본심의 명령을 배반하고 악을 지향하는 사심이 있어서, 이 두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본심의 명령을 따르는 선행과 사심의 명령을 따르는 악행이, 우리들의 한 몸 가운데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그 자체 안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있는 개체들이 횡적으로 얽혀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역시 투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와같이 투쟁으로 얽히어진 사회생활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종적으로 변전하여 내려온 것이 바로 인류역시이므로, 이것은 필연적으로 투쟁과 전쟁의 역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심과 사심의 끈덕진 싸움 가운데서, 악을 물리치고 선을 따르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도 점차 악행을 버리고 선을 행해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타락된 인간에게도 이와같이 선을 지향하는 본심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맞추어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에 의하여 엮어져 내려온 역사는, 선악이 뒤섞이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해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지향하는 종국적인 세계는 바로 선의 목적이 이루어진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쟁이나 전쟁은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선과 악을 분립해 나온 하나의 과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싸움의 결과가 일시 악의 승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악의 결과로 인하여, 역사는 보다 더 큰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섭리노정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부단히 선과 악의 분립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선을 지향하고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타락된 인간을 중심하고, 장차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과 같은 형의 세계를 앞장서 이루어 나왔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류역사는 원리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기 전에, 사탄을 중심으로 한 그와 같은 형의 비원리세계가 먼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세계인 것이다. 사탄은 이처럼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항상 앞질러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노정에서는 참 것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참 것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앞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신 성서의 말씀은 이러한 원리로써만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Ⅰ.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
타락된 인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원시공동사회였다. 이 사회는 사탄을 중심하고 서로가 형편껏 도우며 살던 사회로서, 원래 하나님이 완성한 인간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공생공영공의주의사회를 사탄이 앞질러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만약 이 사회에 투쟁도 분열도 없었다면 이 사회는 그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그 개체에 있어 두 마음이 서로 싸우고, 또 이 마음의 싸움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개체와 개체가 서로 싸우게 되므로, 원시공동사회가 그대로 평화로이 유지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사회가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서로 달리하는 사회에로 발전함에 따라서, 그 사움이 더욱 크게 전개되어 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맞추려는 인간의 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사탄을 중심하고 이루어졌던 원시공동사회에는 일찍부터 싸움에 의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탄을 중심한 인류죄악사의 발전과정을 보면, 원시공동사회에서 분열된 인간을 중심하고 씨족사회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더 성장항여 봉건사회를 이루었으며, 그 판도와 주권을 더욱 확장하여 군주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이 이 죄악세계에서 선한 개체를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선의 씨족사회를 세우고, 나아가 선의 봉건사회를 이루어가지고 선의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선의 판도와 주권을 수립하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또한 이것을 먼저 알아가지고 그러한 형의 노정을 앞질러 걸어나온 것이었다.
실상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사회에서 선의 중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녀를 번식케 함으로써,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그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급에 들어가서 씨족으로부터 부족으로 발전되었으며,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에는 사사시대를 이루었던 것인데, 이 사사를 중심한 사회가 바로 이스라엘 봉건사회였다.
그러면 이 사회를 어찌하여 봉건사회라고 하는가 ? 봉건사회의 특성은 봉사와 복종을 전제로 하는 주종관계에 의한 정치제도와 봉건영토를 중심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사시대는 바로 이러한 성격의 사회였던 것이다. 즉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민족의 각 지파에게는 땅이 분배되었고, 그 지파들은 대영주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사사를 중심하고 봉건사회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스라엘 봉건사회라고 한다.
봉건사회의 백성들은 그 사회의 성격상 그 영주의 사상과 영도에 절대 순종굴복하였다. 따라서 그 영주가 하나님의뜻 가운데 서 있는 한, 그 백성들은 자연히 그를 따라서 하늘편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또 그들은 이와 같이 주종관계에 의한 봉쇄적인 정치와 경제의 사회제도 밑에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외침을 당하지 않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씨족사회가 봉건사회로 발전하게 된 것은 사탄의 소유를 하늘편으로 빼앗아 넘김으로써, 하늘편 주권에 속하는 보다 큰 판도를 이루어 가지고 사탄의 침범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또 그것을 안 사탄은 여기에 대비하여 한 걸음 앞질러서 먼저 사탄은 여기에 대비하여 한 걸음 앞질러서 먼저 사탄편 봉건사회를 이룸으로써, 사탄주권을 유지하려 하였던 것이다.
또 한편 봉건사회는, 보다 더 큰 주권과 판도의 군주사회를 이루기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봉건사회로써, 사탄편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작은 단위의 하늘편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를 만든 후에, 다시 이것들을 통합하여 보다 더 큰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로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군주사회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울왕으로 시작된 통일왕국시대였다.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었다(요한계시록 11장 15절),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군주사회를 이룩하신 것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섭리 밑에서 이스라엘 군주사회를 세우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편에서는 또다시 이것을 앞질러 먼저 사탄을 중심한 군주사회를 이룩함으로써, 하늘의 섭리를 막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가 오기 전에, 이미 사탄세계에서는, 애급왕국이 기원전 수십세기에 제1왕조를 세워 그 뒤 30왕조나 계승되었었고, 옛 바빌로니아왕국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왕 때 벌써 전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였던 것이며, 힛타이트왕국은 기원전 14세기에 시리아를 중심으로 동방의 최강국이 되었었다. 그리하여 사탄편 세계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응하는 인간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보다 선한 왕국과 보다 악한 왕국이 서로 싸우면서 왕국을 단위로 한 분립역사를 일으켜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솔로몬왕이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더면, 그는 애급, 메소포타미아, 크레타(혹은 미노아)등 3대문명을 흡수한 문화적인 사회환경에서, 그의 뚜어난 정치능력을 발휘하여 동방제국을 통일하였을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메시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왕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 군주사회를 무너뜨리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통일왕국시대의 왕들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은 이 왕국을 남북 두 왕조로 분립하셨다. 그리하여 하늘 뜻을 배반하였던 북조는 이방인 앗시리아 (에집트, 바빌로니아, 힛타이트 등의 왕국이 약해짐에 따라, 이 앗시리아 왕궁이 강대해져서 기원전 8세기에 에집트를 포함한 오리엔트의 중심부를 정복하여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하였었다)에 붙여 멸망하게 하셨고, 하늘 뜻을 받들던 남조 유대도 얼마 안 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게 되자, 신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뒤 갈대아인에 의하여 바빌론을 수도로 하여, 신 바빌로니아왕국 혹은 갈대아왕국이 창건되었었다)에 붙여서 멸망하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왕궁을 멸하신 후,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유대민족을 여러 이방들에게 속하게 하심으로써, 이 민족의 왕위를 비워 두셨다. 특히 유대민족을 민주주의의 기틀이 될 헬라문명권내에 속방이 되게 하심으로써, 장차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 유대민족이 그를 환영하기만 하면, 백성의 뜻에 의하여서 언제든지 메시아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민주주의형의 사회를 이루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민의는 예수님을 왕위에 올려 세우지 못하도록 그를 십자가에 살해하고 말았으므로, 이것으로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2000년의 복귀섭리의 목적은 영적으로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Ⅱ. 복귀섭리연장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
1. 복귀섭리와 서양사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은 4세기 말에 이르러 드디어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초에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모시어 하나가 되었더면, 로마제국을 중심하고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는 응당 살아 계신 예수님에게 감화되어, 그를 왕으로 모시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왕국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민족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메시아왕국을 위한 터전이 되었어야 했던 로마제국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서기 476년에는 서로마가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패망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원한의 땅 유대에서 서로마의 판도였던 서구로 옮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 이후에 있어서의 기독교에 의한 영적 복귀섭리는 서구를 발판으로하고 나왔기 때문에, 이 시대의 복귀섭리역사는 서구에서만 본보기노정을 따라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유물사관에서 논하고 있는 역사발전과정도 서구의 역사에서만 적응되고 있는바, 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서구를 중심한 기독교사는 복귀섭리연장시대를 만든 중시적인 역사자료가 된 것이다.
2. 종교사와 경제사와 정치사의 상호관계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유형 무형의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육신과 영인체의 두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셨다 함은 이미 창조원리에서 논술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더면 그의 영인체와 육신이 함께 성장하여 완성됨으로써, 영 육 양면의 지성이 동시에 지상의 육신생활 가운데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됨으로 인하여 영 육 양면의 무지에 빠지게 되었었다. 여기에서 인간의 영적인 무지는 종교에 의하여, 그 육적인 무지는 과학에 의하여 일깨워져 나왔던 것이니, 이에 관해서는 이미 전편 제3장 제5절 Ⅰ에서 논하였다.
그런데 영적인 무지는, 종교로써 타락인간 가운데 잠재해 있는 그 본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그들이 보이지 않는 원인적인 세계를 찾아 나아감에 따라 점차 일깨워져 왔다. 그러나 종교는 누구나가 다 긴절한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인 면의 깨우침은 어느 특수한 인간에 있어서는 비약적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느린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영적인 면에서는 고대인이나 큰 차이가 없는 인간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육적인 무지는,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결과의 세계 즉 자연계(육계)에 대한 대한 것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으로써 일깨워져 왔다. 그리고 과학은 현실을 타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매우 필요하다. 그러므로 육적인 무지에 대한 계발은 급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이렇듯 찾아가는 대상이, 종교의 경우 그것은 보이지 않는 원인의 세계여서 초현실적인 것인데 반하여, 과학에서는 보이는 결과의 세계 즉 물지세계를 다루므로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와 과학은 이론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상충되어 왔다. 그뿐 아니라 피조세계의 주권을 갖고 있는 사탄이 현실생활을 통하여 인간에게 침범하는 관계로, 지금까지 종교의 길은 현실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기 때문에, 현실을 추구하는 과학과 서로 조화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다음 장 제1절에서 상세히 논급하겠거니와, 하나님이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에(창세기 2장 7절), 재창조원칙에 의한 복귀섭리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러한 섭리적 원칙으로 보더라도 과학과 종교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발전과정을 밟아 나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부조화는 종교와 경제의 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경제도 역시 과학과 같이 현실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더우기 과학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에 의한 종교사와 그 외적인 섭리에 의한 경제사는, 그 발전에 있어서 서로 방향과 진도를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본보기노정을 밟아온 서구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을 섭리적인 면에서 이해하기 이하여는, 기독교사와 경제사를 따로 갈라지고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런데 종교와 과학이 그러하듯이, 종교와 타락인간의 내 외 양면의 생활을 각각 분담하여 복귀해야 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혀 관계없이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 따라서 종교와 경제는, 그 발전과정에 잇어서 서로 상충적인 면을 지니면서도, 우리의 사회생활과 결부되어 각각 기독교사와 경제사를 이루어 온 것이다.
그러면 그것들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어떻게 결부될 수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정치에 의해서였다. 기독교화했던 서구에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서구에 있어서의 정치는 급진적인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과, 복귀섭리의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맸던 기독교의 움직임을 사회생활 가운데서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정치사는 종교와 경제를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를 위한 역사의 발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는, 정치사도 역시 별도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한 실례로서, 17세기 말엽에 있어서의 서구의 역사를 놓고 그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종교사의 면에서 살펴보면, 이 시대에는 이미 기독교민주주의사회가 이룩되어 있었다. 즉 1517년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교황이 독재하던 영적인 왕국이 무너짐으로써, 중세인들은 교황에 의해 지배받던 신앙생활에 해방되어, 누구나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정치사의 면에서 보면 이 시대에는 전제군주사회가 나타나 있었고, 경제사의 면에서는 아직도 장원제도에 의한 봉건사회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같은 시대의 같은 사회가 종교면에서는 민주주의사회가 되고, 정치면에서는 군주주의사회가되며, 경제면에서는 봉건주의사회가 되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그 발전과정을 각각 별도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복귀섭리시대(구약시대)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은 어찌하여 그러한 과정을 밟아 나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고대사횡 있어서는 과학의 발달이 거의 정돈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경제발전도 역시 그러하였다. 아직도 생활양식이 분화되기 전인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민족은 지도자들의 명령에 의하여 엄격한 율법에 따르는 주종관계의 사회제도 아래서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생활은 곧 그들의 사회생활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씨족사회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복귀섭리연장시대(신약시대)에 있어서의 종교와 정치와 경제 등의 각 부면으로 본 역사발전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탄을 중심한 원시공동사회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호응하는 인간의 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분열되어, 그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인간이 분립됨으로써, 하늘편 씨족사회가 이룩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살해한 유대민족은, 이미 사탄편 계역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사회를 그대로 두시고는 복귀섭리를 할 수 없으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사회를 분열시켜 그 가운데서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을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기독교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야곱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이스라엘씨족사회를 이룩하여 섭리노정을 출발했던 것과 같이, 신약시대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가 기독교 씨족사회를 이룩하여 섭리노정을 출발했던 것이다. 기독교씨족사회는 원시기독교사회였기 때문에, 그때는 아직도 정치나 경제 에 있어서의 어떠한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립된 발전을 할 수 없었다.
기독교씨족 사회는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고대 통일세계 안에서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받아가면서 번성하여 기독교부족사회를 형성하는데 이르렀었다. 그리고 4세기 후반으로부터 시작외었던 민족들의 대이동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은 드디어 476년에 쇠망하였고, 그 판도 안으로 이동해 온 게르만민족에게 기독교가 침그들을 중심하고 광범한 기독교사회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4. 봉건사회
다음에 오는 것은 봉건사회인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왕권이 약해지고 국가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졌을 때, 봉건사회는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서구의 기독교사회는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분화되어, 각각 서로 다른 발전을 해 나아가게 되었다.
봉건사회는 대·중·소의 영주와 기사들 사이에, 복종과 봉사를 전제로 하고 맺어진 주종관계에 의한 정치제도와, 장원제도에 의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제도로써 이루어졌었다. 국토는 많은 영주들에 의하여 분활되었고, 국왕은 사실상 영주 중의 하나였으므로 국왕의 권력도 지방분권적이었다. 영주들은 상부로부터 은대지로 토지를 분배받아 그들의 독립영지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재판권까지 행사하였었다. 따라서 이 영지는 거의 국가 권력을 떠난 개인 영토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어진 개인의 영토를 장원이라 한다.
자작농의 하인들이 주권자들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지를 영주 또는 사원에 바치고, 그 토지를 다시 은대지로 대여받아서 된 장원도 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장원은 전국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최하급의 기사는 하나의 장원을 나누어 받아 영주에게 사병으로서 종사하였지만, 국왕이나 영주는 수백 수천의 장원을 소유했던 것이다.
종교면에서도 그것은 기독교를 중심하고 위에서 말한 봉건사회와 똑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기독교봉건사회라고 한다. 즉 교구장, 대주교, 주교는 대·중·소의 영주에 해당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국왕이 영주 중의 하나였던 것과 같이 교구장 중의 하나였다. 거기에도 절대적인 주종관계에 의한 종교적인 정치제도가 있었고, 주교들은 신자들로부터 바쳐진 봉토를 가지게 되어, 그들은 봉건적 계급층들 중에서 유력한 지위를 가지고 있던 영주들이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경제면에서 이 시대를 살펴 본다면, 이 시대는 고대 노예제도에서 장원제도로 옮겨진 시대였다. 따라서 평민들이 이 때부터 토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토지제도에 의한 신분은 대체로 지주, 자작농, 농노(반자유신분), 노예(부자유 신분) 등의 네 계급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게르만민족을 새로운 선민으로 교화하여 봉건사회를 세움으로써, 쇠망한 서로마의 터전에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의 3면으로 소단위의 하늘편 판도들을 강화하여, 장차 하늘편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5. 군주사회와 제국주의사회
역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봉건사회 다음에 오는 것은 군주사회인 것이다. 그러면 이 때의 서구에 있어서의 정치면에서 본 군주사회는 어떻게 이루어졌었는가 ?
서구에 이동된 게르만 민족이 세웠던 국가들은 모두 그 존립기간이 짧았으마, 프랑크왕국만은 오래도록 존속되었다. 프랑크는 서게르만의 한 부족이었는데, 그가 메로빙왕조를 세운 후, 기독교와 결합하고 로마문명을 흡수하여, 서구에다 게르만적인 로마풍의 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 왕조가 몰락한 후 촬스·마르텔은 서쪽에서 침입한 아라비아인을 물리쳐 세력을 폈고, 그의 아들 피핀은 카롤링왕조를 세웠다. 피핀의 아들 카알대제는 일찍부터 성어거스틴의 '신국론'을 숭상하였었는데, 왕위에 오르자 그는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국가이념으로 하는 군주국가를 세우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카알대제는 주우유럽을 통일하고, 민족대이동으로 혼란된 서구를 안정시켜서 강력한 프랑크왕국을 확립하였었다.
다음으로 종교면에 있어서 기독교봉건사회에 뒤따라 온 기독교군주사회는 <메시아를 위한 영적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세워졌던 국토없는 영적왕국사회 였다. 그리고 교황 레오3세가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고, 그에게 황제의 관을 수여하여 천적인 기업을 상속함으로써,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영적인 왕국과 정치적으로 형성된 프랑크왕국이 하나되어 기독왕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기독왕국시대는 구약시대의 통일왕국시대와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처럼 봉건시대에 뒤따라 왕국시대가 왔던 것은 봉건사회를 통합함으로써 더욱 큰 하늘편의 주권과 백성과 판도를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천사장의 입장에서 실체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 온 교황은 국왕을 축복한 뒤에 가인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하고, 또 국왕은 교황의 이념에 따라 메시아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하여 기독왕국을 완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웠더면, 그 시대가 바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말세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그 때까지 서로 타협을 보지 못하고 상충되어왔던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과제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왔더면, 그 때 바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하나의 이념을 중심하고 완전히 일치된 방향으로 발전함으로써, 이 터전 위에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왕국시대가 옴으로써 봉건시대는 그 때에 완전히 끝나야만 할 것이었다. 그러나 교황이나 국왕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됨에 따라서, 카알대제의 본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완강한 봉건제도의 기틀은 무너지지 ㅇ낳고 그 뒤 오래도록 존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와 경제가 여전히 서로 분립됨으로써,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도 여전히 분립되어 상충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되어 카알대제는 원숙한 봉건제도의 터전 위에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그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실상 일개 대영주의 입장에 불과하였다. 기독왕국이 이렇듯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봉건제도는 점점 더 강화되어 정치면에서의 봉건계급사회는 전제군주사회가 일어날 때가지 번성하였다.
17세기 중엽부터 봉건계급이 몰락됨에 따라, 지방으로 분할되었던 영주들의 권력은 국왕을 중심하고 중앙으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권신수설을 정치이념으로 하고 군림한 국왕은 절대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같이 국왕이 봉건계급사회의 영주의 입장을 벗어나, 정치면에서의 군주사회를 사실상 이룩하였던 것은 17세기 중엽으로부터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날 때까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종교사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군주사회의 귀추는 어떠하였던가 ?
이 시대의 교황들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고 세속화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심령적인 면에서 쇠퇴의 길을 밟아 가게 되었었다. 더구나 십자군 전쟁에 패함으로 말미암아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한편 또 교황이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 갇힘으로써, 그들은 허명무실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이었던 기독교군주사회는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경제면에서의 발전과정을 보면, 봉건적 경제제도는 봉건적인 정치제도가 몰락되고 중앙집권화한 전제군주사회에 있어서도, 의연히 존속되어 프랑스혁명 때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농업경제의 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본주의화해 가던 다른 경제면에 있어서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넘을 수 없었다. 즉 자영농민들도 봉건영주의 지배에 맞서기 위하여 국왕의권력에 의뢰하였으나, 그들도 봉건제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또 메뉴팩처의 경영자들도 봉건적인 분열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중앙집권의 국왕과 결탁하였으나, 결국 그들도 역시 봉건화한 상업자본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이 군주사회라면, 경제면에 있어서 봉건사회에 뒤이어 오는 것은 무엇일것인가 ?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사회와 그 뒤에 따라오는 제국주의사회인 것이다. 국정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 특색인 것 같이, 금융자본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국정에 대한 독재가 군주주의의 특색인 것 같이, 금융자본에 대한 독점이 자본주의, 특히 제국주의의 특색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17세기 중엽 전제군주사회가 시작될 무렵부터 싹이 터, 영국의 산업혁명기로부터는 점차 원숙기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가 오게 된 것은, 봉건적인 경제제도에 의하여 확보된 작은 단위의 경제기대를 더 큰 기대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본보기노정은 서구를 중심하고 이룩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논하는 제국주의도 서구를 중심하고 전개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서구에서 팽창된 제국주의사상은, 서구의 각 기독교국가로 하여금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지구의 전역에 걸쳐 식민지를 획득하게 하였다. 이렇게 되어 세계는 급진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6.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군주주의시대에 뒤이어 온 것은 민주주의시대였다. 그런데 군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이유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차 메시아를 왕으로 모실 수 있는 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가 그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이 사회를 깨뜨리고 메시아의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세우신 것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을 인민에게 둠으로써, 인민이 그 민의를 따라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주의를 말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메시아왕국을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군주주의의 독재를 깨뜨리고, 메시아를 왕으로 모시기 위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제도를 세우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 심령이 점차 밝아지게 되므로, 이 섭리에 대응하는 인간의 본심은 자기도 모르게 종교를 찾게되고, 또 종교를 찾는 그 본심은 결국 하나님이 최종적인 종교로 세우시고 섭리하시는 기독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하나의 기독교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는 원인은 실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역사가 종말에 가까워 갈수록, 백성의 뜻은 점차 기독교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백성의 뜻에 따르는 민주정체도 또한 기독교적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되어 기독정신으로 원숙한 민주정체의 사회로 메시아가 재림하시면, 그는 민의에 의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지상에 세워 지상천국을 복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결국 사탄편의 독재를 없이하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의 주권을 백성의 뜻을 따라 복귀하시려는 최종적인 섭리에서 나온 주의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전제군주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민주주의는, 영국·미국·프랑스에서 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키어, 군주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사회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우리는 위에서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고찰하였거니와,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의 섭리적인 흐름으로 본 민주주의에 대하여는 다음 장으로 미루기로 한다.
다음으로 종교면에서의 역사발전과정에 있어서도, 1517년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교황을 중심한 국토없는 영적인 왕국이 무너진 뒤에 기독교민주주의시대가 왔다. 기독교민주주의는 종교개혁을 일으킴으로써, 교황이 독재하여 내려오던 영적인 왕국을 무터뜨렸다.
원래 교황을 중심한 이 왕국은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 같이 교황이 국왕고 하나가 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왕국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치 전제군주사회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교황의 독재적인 주권을 깨뜨리기 위하여, 기독교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이후에는, 교황이나 승려를 통하지 않고 각자가 성서를 중심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독교민주주의시대가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면에 있어서도 신도들이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의지에 의하여 신앙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왔다. 이리하여 기독교민주주의는 장차 메시아가 어떠한 모습으로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그를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잇는 기독교적인 사회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경제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도, 그 발전법칙에 의하여 제국주의를 깨뜨리고 민주주의적인 경제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사회주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 획득을 위한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는, 제국주의의 식민정책을 깨부수기 위한 국가적 민주주의가 나타나, 열강들은 식민정책을 포기하고 약소국가들을 해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경제시대는 제국주의의 붕괴를 전기로 하여 사회주의적인 경제시대에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공산주의사회를 자향하는 사탄편의 세계에서 이 사회주의를 부르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방향과 내용은 전혀 다르나 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에로 나아가려는 하늘편의 노정을 사탄편에서 앞질러 먼저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보면,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본연의 가치에 있어서는, 그들 사이에 서로 어떠한 차이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마치 우리 인간의 부모가 그 자식을 대하듯이, 누구에게나 균등한 환경과 평등한 생활조건을 주시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과 분배와 소비는 마치 사람의 몸에 있어서의 위장과 심장과 폐장과 같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므로, 생산과잉에 의한 판로경쟁이나 편파적인 분배로 인하여 전체적인 생활목적에 지장을 가져오는 축적이나 소비가 있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치 사람의 몸에 있어서의 간장과 같이, 기능 전체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마땅한 저축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이상으로써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복귀할 수 있는 섭리역사의 종말기에 이르러,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찾아, 인간의 본성을 더듬어 나아가게 되면, 결국 누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생활체제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의가 이러한 것을 요구하게 되면, 민의에 의한 정치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최후에 가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사회주의사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고대 기독교사회에서도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찾아 볼 수 있고,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도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것이었으며, 한편 또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일어났던 오웬의 인도주의에 입각한 사상도 그러했으며, 또는 19세기로 들어오면서 영국의 킹스리의 기독교사상에 의하여 가톨릭사회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사회주의 등이 나오게 되었던 것은, 모두 창조이상을 지향하는 인간본성의 자연적인 발로에서 일어났던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7. 공생공영공의주의와 공산주의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은 사탄의 침범으로 말미암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던 인간의 창조본성을 계발하여 나아가므로, 인간은 이와같은 창조본성의 욕구에 의하여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창조이상의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찾아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편의 사회주의사회를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은 마침내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블짖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이상세계를 이루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없는 것이니, 이 세계가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중심한 지상천국인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므로, 사탄편에서는 먼저 유물사관에 입각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를 부르짖어 공산주의세계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역사발전관에 입각하여, 인류역사는 원시공산사회에서 다시 공산주의사회에로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 원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지상천국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 인간과 혈연관계를 먼저 맺은 사탄이 타락인간을 중심하고 원리형의 비원리세계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복귀하시려는 지상천국을,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놓은 원리형의 비원리세계가 바로 공산세계인 것이다.
마치 군주주의의 정치적인 독재를 막고 그 주권을 인민의 것으로 돌리려는데서 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것과 같이, 국가의 재산이 어느 특수한 개인이나 계급에 독점을 당하는 제국주의적인 경제체제를 타파하고 인민들이 그것을 균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수립하기 위하여, 사회주의를 거쳐서 하늘편에서는 공생공영공의주의를 지향하고, 사탄편에서는 그것을 앞질러 먼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경제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서구를 중심하고 이루어진 복귀섭리역사가 종교사와 정치사와 경제사의 3면으로 분립되어, 각각 공식적인 노정을 통하여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하여서, 서로 동일한 역사노정에서 융합되는 섭리역사로 종결을 지어, 재림이상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이미 위에서 우리는 인간의 영 육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발전이 3분되어 발전하여 왔다는 것을 밝혔다. 따라서 이렇게 3부면으로 발전해 온 역사가 하나의 이상을 실현하는 초점으로 귀결되기 위하여서는, 종교와 과학을 완전히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진리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에 입각한 종교에 의하여 온 인류가 하나님의 심정에 귀일함으로써 하나의 이념을 중심한 경제의 기대 위에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정치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생공영공의`주의에 입각한 메시아왕국인 것이다.

제5장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는 서기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때부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400년간을 말한다.
이 시대의 성격에 관한 대강은 동시성으로 본 메시아 강림준비시대와의 대조에서 이미 논술되었으나, 여기에서 좀 더 상세한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런데 복귀섭리로 보아 이 기간은 종교개혁기,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 정치와 경제 및 사상의 성수기 등 세 기간으로 구분된다.

제1절 종교개혁기(1517∼1648)
서기 1517년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든 때부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구 종파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의 130년 기간을 종교개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간의 성격은 중세 봉건사회의 소산인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써 형성된다. 하나님이 중세사회를 통하여 이루려 하셨던 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이것을 새로운 섭리역사의 방향으로 전환시켜서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나아가는 중추적인 사명을 한 것이 바로 문예부흥(Renaissance)과 종교개혁이었다. 따라서 이에 관한 것을 알지 못하고는 이 시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중세 봉건사회의 소산이라면, 이 사회가 중세 인간들의 본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서 그것들을 해산하게 하였는가?
중세는 봉건제도와 로만 카톨릭의 세속적인 타락으로부터 오는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본성이 억압되어 그 자유로운 발전을 기할 수 없게 된 때였다. 원래 신앙은 각자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직접적으로 맺어지는 종적인 관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과 승려들의 간섭과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그 규범은 당시 인간들의 신앙생활의 자유를 구속하였고, 그 엄격한 봉건계급제도는 인간의 자주적인 신앙활동을 속박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승려의 승관 매매와 인민에 대한 착취로써, 그들의 생활은 한층 더 사치와 향락으로 흘렀었다. 따라서 교황권은 일반사회의 권력기관과 다름없이 비신앙적인 입장에 서게 되어, 그들은 국민의 신앙생활을 지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되어 중세 봉건시대의 사회환경은 인간이 그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환경 가운데 구속되어 있었던 중세인들은 본성적으로 그 환경을 타파하고 창조본성을 복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본성은 뚜렷이 내 외 양면의 성향을 가지고 나타났던 것이니, 그의 창조원리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에 대한 형상적인 실체대상이므로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을 닮았다. 그리고 그 성상과 형상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내적인 성상과 외적인 형상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와같이 창조된 인간은 본성도 내 외 양면의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에 대한 복귀섭리를 하심에 있어서도 인간 본성의 양면의 추구에 대응하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래 인간의 외적인 육신을 먼저 창조하시고 다음으로 내적인 영인체를 창조하셨기 때문에(창세기 2장 7절), 재창조를 위한 복귀섭리도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복귀해 들어가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미 후편 제1장에서 논한 바와같이, 타락인간은 외적인 '상징헌제'를 한 터전 위에서야 내적인 '실체헌제'를 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성공함으로써만 보다 내적인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지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타락인간을 복귀하심에 있어서도, 구약전 시대에는 헌제에 의하여 '종들의 종'의 입장(창세기 9장 25절)을,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써 종의 입장(레위기 25장 55절)을,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써 양자의 입장(로마서 8장 23절)을, 성약시대에는 심정으로써 참자녀의 입장을 복귀하는 순서로 해 나오시는 것이다(후편 제2장 제3절 Ⅲ.2).
또 과학에 의하여 먼저 외적인 사회환경을 복귀해가면서, 종교를 세워서 내적인 인간의 심령을 복귀하는 섭리를 해 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천사와 인간이 창조된 순서를 보더라도 외적인 천사장이 먼저였고 내적인 인간이 나중이었다. 따라서 천사와 타락인간을 복귀함에 있어서도,먼저 외적인 천사세계를 세우시어 역사케 하심으로써, 인간의 육신을 중심한 외적인 실체헌제를 복귀하신 다음, 이어서 영인체를 중심한 내적인 무형세계를 복귀하시는 순서로 섭리해 나오시는 것이다.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내적인 사명을 다해야 했던 교황들을 윤락으로 말미암아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고, 창조본성을 되찾으려는 중세 인간들은, 그 본성의 내 외 양면의 추구에 의하여 중세적 지도정신을 가인 아벨 두 형의 사상에 대한 복고운동등으로 분립하였던 것이니, 먼저는 가인형인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이요, 다음은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은 신본주의의 부활을 위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면 먼저 헬라사상과 히브리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교류되어 이 시대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기원전 2천년대에 에게해의 크레타섬을 중심하고 미노아문명권이 형성되었었다. 이 문명은 그리이스로 흘러 기원전 11세기에 이르러, 인본주의의 헬라사상(Hellen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가인형의 헬라문명권을 형성하였고, 한편 이와 거의 동시에 서아시아에서는 신본주의의 히브리사상(Hebraism)을 지도정신으로 하는 아벨형의 히브리문명권을 형성하였으니, 이 때가 바로 통일왕국시대였었다.
당시의 이스라엘왕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인민들과 함께 성전을 받듦으로써 이루어지는 '실체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서 메시아를 맞았더라면, 그때에 히브리 문명권은 헬라문명권으로 흡수하여 하나의 세계적인 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뜻 가운데 서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빌론으로 포로 되어 갔다가 귀환한 후 후, 기원전 333년 그리이스에 속방된 때로부터, 기원전 63년 헬라문명권내에 있었던 로마에 속방되어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기간은,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에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 처하였던 시대이다.
전 장에서 이미 논술한 바 있거니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신봉하여 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면, 당시의 로마제국은그를 중심하고 하나가 되었더면, 당시의 로마제국은 예수님을 중심한 메시아왕국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써 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히브리사상은 그대로 헬라사상의 지배 밑에 머물러 있게 되었었다.
서기 313년에 이르러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는, 점차 히브리사상이 헬라사상을 극복하기 시작하여, 서기 700년대에 이르러서는 희랍정교문명권과 서구문명권을 이룩하게 되었었다.
중세사회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이었던 교황과 국왕들이 타락되지 않았다면, 그 때에 '재림하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히브리사상은 헬라사상을 완전히 흡수 융합하여 세계는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그들의 윤락으로 인하여 히브리사상을 중심한 중세적 지도정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이에서 하나님은 사탄분립의 성립을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마치 아담에게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시기 위하여, 그를 가인과 아벨로 갈라 세우셨던 것과 같이, 이 때에도 그 지도정신을 두 사상으로 다시 갈라 세우는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가인형의 헬라사상 복고운동과 아벨형의 히브리사상 복고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마침내 각각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인본주의를 주도이념으로 하여 문예부흥이 일어남에 따라서,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는 메시아 강림준비시대에 있어서 유대민족이 그리이스에 속방됨으로써, 헬라사상이 히브리사상을 지배하던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굴복함으로써만, 아담에게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메시아를 맞기 위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가인형인 헬라사상이 아벨형인 히브리사상에 완전히 굴복함으로써, 비로소 중세적 지도정신에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하여, 재림 주님을 맞기 위한 '실체기대'가 세계적으로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Ⅰ. 문예부흥(Renaissance)
중세 사회인들의 본성의 외적인 추구에 의하여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이 제기되었고,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문예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이다. 그러면 그 본성의 외적인 추구는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되어 인간이 그것을 추구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을 그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완수함으로써만 완성되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된다. 또 인간은 자유의지로써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인격의 절대적인 자주성을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 인격의 자주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계시를 받지 않아도 그의 이지와 이성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고 생활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또한 본성적으로 이지와 이성을 추구하게된다. 인간은 또 자연계를 주관하도록 창조되었으므로, 과학으로써 그 속에 숨겨진 원리를 찾아 현실생활의 환경을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연과 현실과 과학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세 사회인들은 그 봉건제도에 의한 사회환경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본성이 억압당하고 있었기 대문에, 그 본성의 외적인 욕망에 의하여 위와 같은 것들을 더욱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같이, 중세인들은 십자군 전쟁이래 동방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헬라사상의 고전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헬라의 고대정신이 바로 인간의 자유와 인격의 자주성과 이지와 이성의 존엄성과 자연을 숭상하고 현실에 치중하며 과학을 세우는 것 등 인간 본성의 이적인 추구에 의한 것이어서, 이것들이 그대로 중세인의 본성적인 욕망에 부합되었으므로,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은 불길 같이 일어나 드디어 인본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서, '재생' 또는 '부흥'이라는 뜻이다. 이 르네상스는 14세기 경부터 헬라사상에 관한 고전 연구의 본산인 이탈리아에서 태동되었었다. 이 인본주의운동은 처음에는 중세인으로 하여금 그리이스의 고대로 돌아가 그 정신을 모방케 하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더 나아가 이 운동은 그 고전문화를 재생하여 중세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개혁운동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또 이것은 비단 문화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운동으로 확대되어 사실상 근대사회를 이루는 외적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본성의 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사조였던 인본주의(혹은 인문주의)로 말미암아, 봉건사회 전반에 대한 외적인 혁신운동으로 전개된 현상을 르네상스(문예부흥)라고 부른다.
Ⅱ. 종교개혁
중세사회에 있어서의 교황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교황과 승려의 세속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룰 수 없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중세인들이 인본주의를 부르짖게 됨에 따라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규범에 반항하게 되었고, 인간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봉건계급제도와 교황권에 대항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또 인간의 이성과 이지를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교황에 예속시키는 데서만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고루한 신앙생활에 반발하게 되었으며, 자연과 현실과 과학을 무시하는 둔세적, 타계적, 금욕적인 신앙태도를 배격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되어 마침내 중세 기독교인들은 교황정치에 반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세 사회인들이 그 본성의 외적인 욕망을 추구함에 따라서 억압되었던 그 본성의 내적인 욕망도 추구하게 되어, 드디어 사도들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기에 열렬했던 초대 기독정신에로의 복고를 부르짖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중세에 있어서의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이다.
그리하여 14세기에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신학교수 위클리프(Wycliffe, John 1324∼1384)는 성서를 영역하여, 신앙의 기준을 교황이나 승려에게 둘 것이 아니고 성서 자체에다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교회의 제도나 의식이나 규범은 성경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승려의 윤락과 그들의 민중에 대한 착취 및 남용을 통박하였다.
이와같이 종교개혁운동은 십자군전쟁에 의하여 교황의 위신이 떨어진 후 14세기부터 이미 영국에서 움텄고, 15세기 말엽에는 이탈리아에서도 이 운동이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여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517년 교황 레오 10세가 성베드로 사원의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사후에 구원을 받는 속죄의 표라고 선전하면서 면죄부를 팔게 되자, 이 폐해에 대한 반대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독일에서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로 있던 마르틴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운동은 폭발되었다. 그리하여 이 혁명운동의 불길은 점차로 확대되어 프랑스에서는 칼빈, 스위스에서는 쯔빙글리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전되어 갔고, 그것은 영국,화란 등 여러 나라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되어 신교운동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국제간의 싸움은 백여 년간이나 계속되어 오다가, 마침내 독일을 중심하고 일어났던 30년전쟁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인하여 끝나면서, 신·구 종파의 싸움은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그 결과 북구는 게르만민족을 중심한 신교의 승리로 돌아갔고, 남구는 라틴민족을 중심한 구교의 판도로서 나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30년전쟁은 독일을 중심하고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교도간에 일어났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단순한 종교전쟁에 그치지 않고 독일제국의 존폐를 결정하는 정치적인 내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전쟁을 종식시킨 베스트팔렌강화회의는, 신·구 교파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종교회의인 동시에 독일, 프랑스, 스페인,스웨덴 등 제국간의 영토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인 국제회의이기도 하였다.

제2절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1648∼1789)
이 기간은 서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교운동이 성공한 이후 1789년 불란서혁명이 일어날 때까지의 140년 기간을 말한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에 의하여 인간 본성의 내 외 양면의 욕망을 추구하는 길을 개척하게 된 근세인들은, 신교와 사상의 자유로부터 일어나는 신학및 교리의 분열과 철학의 싸움을 면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후편에서 논해 온 바와 같이, 복귀섭리는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개인에서 세계에 이르기까지 가인 아벨 두 형의 분립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도 이 타락세계는 가인형의 공산세계와 아벨형의 민주세계로 분립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만 '실체기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이때에도 가인형의 세계가 아벨형의 세계에 굴복함으로써만 재림 주님을 맞기 위한 세계적인 '실체기대'기 이루어져서, 하나의 세계를 복귀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가 이루어지려면 그를 위한 두 형의 인생관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기실 이 두 형의 인생관은 이 기간에 확립되었던 것이다.
Ⅰ. 가인형의 인생관
인간 본성의 외적인 추구는 헬라사상의 복고운동을 일으키어 인본주의를 낳았고, 인본주의를 뒷받침으로 하여 일어난 반중세적인 문예부흥운동은, 신에의 귀의와 종교적인 헌신을 가벼이 하고, 모든 것을 자연과 인간본위로 대치시켰다. 즉 신에 복종한 나머지 자연이나 인간의 육신을 천하게 여겨 죄악시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중세적인 인생관에서, 이성과 경험에 의한 합리적인 비판과 실증적인 분석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을 인식함으로써, 그들의 가치를 높이는 인생관을 확립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생관은 자연과학의 발달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인하여, 인생에 대한 인식 사유의 방법론에 두 가지 형식을 밟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근세철학의 2대조류를 이루게 되었으니, 하나는 연역법에 의한 이성론이요, 또 하나는 귀납법에 의한 경험론이다.
불란서의 데까르뜨(Descartes, 1596∼1650)를 비조로 하는 이성론은, 모든 진리는 인간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잇는 이성에 의하여서만 탐구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역사성이나 전통을 타파하고 연역법을 근거로 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는 명제를 세우고 이로부터 연역함으로써 비로소 외계를 긍정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신이나 세계나 자기까지도 부정하는 입장에 서려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영국의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을 비조로 하는 경험론은, 모든 진리는 경험에 의하여서만 탐구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마치 백지와 같아서 새로운 진리를 체득하려면, 모든 선입관을 버리고 실험과 관찰에 의하여 인식해야 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을 떠나서 이성을 존중하는 합리주의사상과, 경험에 토대로 둔 인간 중심의 현실주의사상은 한 가지로 신비와 공상을 배격하고, 인간생활을 합리화하며 현실화하여 자연과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문예부흥은 인문주의로부터 흘러온 두 사조를 타고, 인간이 그의 내적인 성향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자하는 길을 막고 외적인 성향만을 따라서 사탄편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인생관을 낳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가인형의 인생관이었다. 이 가인형의 인생관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역사와 전통을 타파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이성적 또는 현실적으로만 판단하며, 불합리한 것이나 비현실적인 것을 철저히 배격하여, 이것이 바로 계몽사상이었다. 이와같이 경험론과 이성론을 주류로 하여 피어 오른 계몽사상은 프랑스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가인형의 인생관의 영향을 받아, 영국에서는 허버트(Herbert 1583∼1648)를 시조로 하여 초월신교(Deism)가 생겼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 하나님의 계시와 이성의 조화에 기초를 두고 발전한 신학에 대하여, 초월신교는 단순히 이성을 기초로한 신학을 세우려한 것이다. 그들의 신관은 단순히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였다는 뜻에만 국한시키려 하고, 인간에게 있어 신의 계시나 기적은 필요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세기 초엽 독일의 헤겔(Hegel, Georg Friedrich Wilhelm 1770∼1831)은 18세기 이후에 일어난 관념론 철학을 대성하였다. 그러나 이 헤겔 철학도 계몽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프랑스에서 일어난 무신론과 유물론의 영향을 받아, 그를 반대하는 헤겔 좌파의 파생을 가져 왔다. 그리하여 이들 헤겔좌파는 헤겔의 논리를 뒤집어서 오늘의 공산세계를 이룩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철학을 체계화하였다. 헤겔좌파인 슈트라우스(Strauss, David Friedrich 1808∼1874)는 '예수전'을 저술하여 성서에 나타난 기적은 후세의 날조라고 부정하였고, 포이에르바하(Feuerbach, Ludwig Andreas 1804∼1872)는 그의 저서인 '기독교의 본질'에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여건이 종교 발생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그들의 학설은 유물론의 뒷받침이 되었다.
마르크스(Marx, Karl 1818∼1883)와 엥겔스(Engels, Friedrich 1820∼1895)는 슈트라우스나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보다도 불란서의 사회주의사상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아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창함으로써, 문예부흥 이후에 싹트기 시작하여 계몽사조로 발전해 온 무신론과 유물론을 집대성하는데 이르렀다. 그 후에 가인형의 인생관은 더욱 성숙하여 오늘의 공산주의세계를 이루게 된 것이다.
Ⅱ. 아벨형의 인생관
우리는 중세사회로부터 근대사회에로의 역사의 흐름을 신이나 종교로부터 인간간을 분리 혹은 독립시키는 과정으로만 보기 쉽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중세 사회인의 본성의 외적인 추구에 의하여 일어났던 가인형의 인생관에 입각해서만 보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중세인들의 본성적인 추구는 이러한 외적인 것에만 멎어졌던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그들의 본성의 내적인 추구가 히브리사상의 복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철학과 종교는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인생관을 수립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우리는 아벨형의 인생관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인형의 인생관은 중세인을 신과 신앙으로부터 분리 혹은 독립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지만, 이 아벨형의 인생관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고차적으로 신을 지향하여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독일의 칸트(Kant, Immanuel 1724∼1804)는 서로 대립하여 나왔던 경험론과 이성론을 흡수하여 새로이 비판철학을 세움으로써, 내 외 양면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의 욕망을 철학적으로 분석하여, 철학적인 면에서 아벨형의 인생관을 개척하였다. 즉 우리의 다양한 감각은 대상의 촉발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인식의 내용만 주어질 뿐이고 인식 자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 인식이 성립되기 위하여는 다양한 그 내용(이것은 후천적이며 경험적인 것이다)을 일정한 관계에 의하여 통일하는 형식이 없어서는 아니된다. 그 형식은 바로 나의 주관이다. 그러므로 사유하는 능력 즉 나의 오성의 자발적인 작용에 의하여, 나의 주관적인 형식(이것은 선천적이며 초경험적이다)을 가지고 대상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감각을 통합하고 통일하는데서 인식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칸트는 대상으로 인하여 주관을 형성한다는 종래의 모사설을 뒤집어, 주관이 대상을 구성한다는 학설을 세우게 되었다.
칸트의 학설을 받아, 그의 제1후계자인 피히테(Fichte, Johann Gottlieb 1762∼1814)를 비롯하여, 셸링(Schelling,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1775∼1854) 헤겔등이 배출되었던 것인데, 특히 헤겔은 그의 변증법으로 철학의 새로운 면을 개척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관념론은 철학적인 면에 있어서의 아벨형의 인생관을 형성하였다.
종교계에 있어서는, 당시의 사조인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고있던 종교계의 경향을 반대하고, 종교적 정열과 내적 생명을 중요시하여, 교리와 형식보다도 신비적 체험에 치중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면 첫째 경건주의(Pietism)로서 이것은 독일의 스페너(Spener, Philp 1635∼1705)를 중심하고 일어났던 것인데, 정통적 신앙을 따르려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고, 신비적인 체험에 치중하였던 것이다. 이 경건파의 운동이 영국에 파급되어 영국민의 생활속에 스며있던 종교심과 융합하여, 웨슬레(Wesiey) 형제를 중심한 메소디스트(Methodist)파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교파는 침체상태에 빠져 있던 당시의 영국 교계에 크게 부흥의 기운을 일으켰었다.
또 영국에는 신비주의자 폭스(Fox, George 1624∼1691)를 원조로 한 퀘이커(Quaker)파가 일어났다. 폭스는 그리스도는 신자의 영혼을 비치는 내적인 빛이라고 주장하면서,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하여 내적 광명을 체휼하지 않으면 성서의 참 뜻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교파는 미대륙에서도 많은 박해를 받으며 포교하였다.
다음으로 스웨덴보리(Swedenborg, Emanuel 1688∼1772)는 저명한 과학자이면서 영안이 열려서 영계의 많은 비밀을 발표하였다. 그의 발표는 오랫동안 신학계에서 무시를 당하여 왔으나, 최근에 이르러 영계에 통하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점차 그 가치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아벨형의 인생관은 무르익어 오늘의 민주주의 세계를 이루어 놓게 된 것이다.
제3절 정치와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1789∼1918)
전 시기에 있어서 종교 및 사상의 투쟁은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을 수립하였고,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이 두 형의 인생관은 각자의 방향대로 성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숙에 따라서 가인 아벨의 두 형의 세계가 이룩되어 갔으며, 사회의 구조도 이 두 인생관에 입각한 사회형태에로 정리되어 가면서, 정치와 경제와 사상도 이상사회에로 전환될 수 있는 전단계에까지 진전하였다. 불란서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 있은 후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가 바로 이러한 섭리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Ⅰ. 민주주의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본 민주주의에 관하여는 이미 전장에서 논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외적인 경위였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역사의 굽이침 속에서, 어떠한 사상의 흐름을 타고 오늘의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내적인 경위를 알아야 한다.
이미 후편 제4장 제7절 Ⅱ에서 논한 바와 같이, 기독왕국시대에 있어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의 왕국이 하나 되어 메시아왕국을 위한 군주사회를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더라면, 그 때에 봉건시대는 끝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대는 연장되어 정치사와 종교사와 경제사가 서로 분립된 노정을 따라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세 봉건시대에 있어 지방 제후에게 분산되어 있었던 정치권력은 십자군전쟁 이후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을 거쳐 계몽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쇠미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제후들은 민족을 단위로 하는 통일국가를 세워 국왕 밑에 집중함으로써, 중앙집권에 의한 절대주의국가(전체주의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는 왕권신수설 등의 영향으로 왕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전제군주시대였다.
이 시대가 오게 되는 원인을 사회적인 면에서 보면, 첫째로, 시민계급이 국왕과 결합하여 봉건계급과 대항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로 경제적인 활동에 있어 무역경제의 지배를 위하여 봉건제도를 벗어난 강력한 국가의 배경을 필요로 하였으며, 아울러 국민의 전체적인 복리를 위하여 강력한 국가의 보호와 감독에 의한 중상주의 경제정책이 요망된 데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대의 교황과 국왕이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사회는 완성되지 못하고, 교황을 중심한 그 사회는 도리어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나온 노정을 따라 사탄편 전제군주사회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제 가인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공산세계와,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민주세계를 이루어 나아가고 있는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전제군주사회의 귀추를 고찰하기로 하자.
마치 중세 봉건사회가 히브리사상에도 헬라사상에도 한가지로 배치되는 사회였기 때문에, 이 두 사상이 함께 그것을 타파하여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에 입각한 두 형의 사회를 수립하였던 것처럼, 전제군주사회도 역시 종교개혁 이후의 기독교민주주의에 의한 신앙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아벨형 인생관의 목적 달성에도 배치되는 사회였었고, 또그 사회는 그 안에 의연히 남아있던 봉건제도가 무신론자와 유물론자들이 지도하는 시민 계급의 발전을 막고 있어서 가인형 인생관의 목적 달성에도 배치되는 사회였었기 때문에, 이 두 형의 인생관이 함께 이 사회를 타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드디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산과 민주 두 형의 사회를 형성한 것이다.
1. 가인형의 민주주의
가인형의 민주주의는 프랑스혁명으로 인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하여는 먼저 프랑스혁명에 관한 것을 논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당시의 불란서는 가인형의 인생관으로 말미암아, 무신론과 유물론으로 흘러가던 계몽사상이 팽배한 시대에 있었다. 따라서 이렇듯 계몽사상에 붙들어 있던 시민계급은, 절대주의에 대한 모순을 자각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서 절대주의사회 안에 아직도 깊이 뿌리박고 있는 구제도의 잔해를 타파하려는 생각이 높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시민들이 1789년 계몽사상의 큰 조류에 의하여, 절대주의사회의 봉건적 지배계급을 타파하는 동시에, 제3계급(시민)의 자유평등과 해방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일어난 혁명이 곧 프랑스혁명이었다.
이 혁명으로 인하여 인권선언이 공표됨으로써 불란서의 민주주의는 수립되었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으로 인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가인형의 인생관을 세우기 위하여 유물사상으로 흘러간 계몽사상이 절대주의사회를 타파하면서 출현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인형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몽사상의 주요인물들도 그러하지만, 불란서혁명의 사상가 디드로(Diderot. Denis 1713∼1784)나 달랑베르(d'Alembert. Jean Le Rond 1717∼1783)등도 무신론 또는 유물론계의 학자들이었다. 이 혁명의 경위를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개성의 자유와 평등보다도 전체주의에로 바뀌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와 같이 가인형의 인생관은 계몽사상을 세워 프랑스혁명을 일으킴으로써 가인형의 민주주의를 이룩하였고, 이것이 신에게로 돌아가려는 인간 본성의 내적인 추구의 길을 완전히 막고 외적으로만 더욱 발전하여, 독일에서의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에서의 레닌주의로 체계화됨으로써 마침내 공산주의세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2. 아벨형의 민주주의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혁명으로 인하여 실현된 민주주의와 그 발단부터가 다르다. 후자는 가인형 인생관의 소산인 무신론 및 유물론의 주창자들이, 절대주의 사회를 타파하는 것으로써 실현한 가인형의 민주주의였음에 반하여, 전자는 아벨형 인생관의 결실체인 영광적인 기독교 신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실현한 아벨형의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그러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여 아벨형의 민주주의를 수립하였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영국에서는 찰스 1세가 전제주의와 국교를 강화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내의 타국 또는 신대륙으로 이동하였고, 일찍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종교적인 압박을 받던 일부의 청교도들이 국민맹약을 결의하고 국왕에 항거하였던 것이다(1640년).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의회의 핵심이었던 청교도들이 크롬웰(Cromwell, Oliver1599∼1658)을 중심하고 청교도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1642년). 그뿐 아니라 제임스 2세의 전제정치와 국교의 강화가 극심하여지자, 그의 사위로서 홀랜드총독으로 있었던 오렌지공 윌리암(Wiliam Ⅲ 1650∼1702)은, 1688년에 군대를 거느리고 신앙의 자유와 민권의 옹호를 위하여 영국에 상륙하여 무혈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윌리암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의회에서 상신한 '권리의 선언'을 승인하여 의회의 독립적인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이것이 영국헌법의 기본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 혁명은 무혈로 성공하였기 대문에 이것을 명예혁명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영국에 있어서의 이 혁명은 외적으로 보면 물론 시민계급이 귀족 승려 등 대지주계급으로부터 정치적인 자유와 행방을 얻으려고 한 데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보다 더 주요한 원인은 그러한 혁명을 통하여 내적인 신앙의 자유와 해방을 얻으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전제주의 왕정하에서 탄압을 받고 있던 청교도들이 신교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아메리카 신대륙을 찾아가서 1776년에 독립국가를 수립함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를 수립하게 된 것이다.
이와같이 영국과 미국에서 수립된 민주주의는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하고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사회를 개혁하려는 혁명으로써 수립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아벨형의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되어 아벨형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세계를 형성하는데 이르렀다.
Ⅱ. 삼권분립의 원리적 의의
삼권분립사상은 절대주의의 정치체제로 인하여, 국가의 권력이 특정한 개인이나 기관에 집중하는 것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계몽사상과의 중진이었던 몽케스키외(Montesquieu, 1689∼1755)에 의하여 제창되었던 것인데, 이것은 프랑스혁명 때 '인권선언'의 선포로써 실현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3권분립은 하늘편에서 이루려 했던 이상사회의 구조로서, 복귀섭리의 전 노정이 그러하듯이, 이것 또한 사탄편에서 앞질러 비원리적인 원리형으로 먼저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상사회의 구조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에서 밝힌 바와같이, 피조세계는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를 본으로 하여 창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완성한 인간들로써 이루어지는 이상사회도 역시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와 기능을 닮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체의 모든 기관이 두뇌의 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의 모든 기관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에 의하여 영위되어야 하며, 또 두뇌로부터의 모든 명령이 척수를 중심한 말초신경을 통하여 온 몸에 전달되는 것과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은 척수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와, 그를 중심한 말초신경에 해당되는 성도들을 통하여 사회 전체에 빠짐없이 미쳐져야 한다. 그리고 인체에 있어서의 척수를 중심한 말초신경은 한 국가의 정당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상사회에 있어서의 정당에 해당한 구실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이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폐장과 심장과 위장이 말초신경을 통하여 전달되는 두뇌의 명령을 따라 서로 상충이 없이 원만한 수수의 작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3장기에 해당되는 이상사회의 입법 사법 행정의 세 장기에 해당되는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서로 원리적인 수수의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팔 다리가 두뇌의 명령을 따라 인간의 생활목적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지에 해당되는 경제기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상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체에 있어서 간장이 전신을 위하여 영양을 저축하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에 있어서도 항상 전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저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인간의 사지백체가 두뇌와 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체들 사이에 자동적으로 횡적인 관계가 맺어져서, 불가분의 유기체를 이루고 잇는 것처럼, 이상사회도 모든 사회인들이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횡적인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에,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 있어서는 남을 해치는 것이 바로 자기를 해치는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범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또 복귀섭리가 이 사회구조를 어떻게 복귀하여 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서구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의 과정을 보면, 입법 행정의 3권과 정당의 기능을 통틀어 국왕 한 사람이 전담하여 오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변천하여 국왕이 3권을 장악하고, 교황을 중심한 교회가 정당과 같은 사명을 담당하던 시대로 바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정치제도는 다시 불란서혁명에 의하여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으로 분립되었고, 정당이 뚜렷한 정치적인 사명을 가지게 되어 민주주의 입헌정치체제를 수립함으로써, 이상사회 제도의 형만은 갖추게 되었다.
이와같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내려오면서 정치체제가 변천해 온 것은, 타락된 인간사회가 복귀섭리에 의하여 완성된 인간 하나의 구조와 기능을 닮은 이상사회로 복귀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체는 3권으로 분립되고 또 정당이 생겨남으로써 드디어 인간 하나의 구조를 닮기에 이르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귀되지 않은 타락인간과 같은 것이어서 창조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곧 정당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으므로, 그것은 두뇌의 명령을 전달할 수 없게 된 척수와 그를 중심한 말초신경과같은 것이라 하겠다. 즉 헌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입법 사법 행정의 세 기관은 마치 신경계통이 끊어져 두뇌로부터 오는 명령에 감응할 수 없게 된 3장기와 같이 되어서, 그것들은 상호간에 질서와 조화를 잃어버리고 항상 대립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이상의 목적은, 예수님이 오셔서 타락인간 하나의 구조를 닮고 있는 현재의 정치체제에, 완전한 중추신경을 이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그 본연의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도록 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Ⅲ. 산업혁명의 의의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단지 죄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대로(창세기 1장 28절), 피조세계에 숨어 있는 원리를 찾아 과학을 발달시킴으로써, 행복한 사회환경까지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전편에서 논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의 영육 양면의 무지에 대한 극복은, 종교와 과학의 각각 담당해 가지고 이상사회를 복귀해 나왔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는 영적인 무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말씀이 나와야 하고, 육적인 무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도록 과학사회를 건설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 영국의 산업혁명은 어디까지나 이상사회의 생활환경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서 일어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상사회의 경제기구도 완성된 인체의 구조와 같아야 하므로, 위에서도 말한 바와같이 생산과 분배와 소비는 인체에 있어서의 오장과 심장과 폐장과 같이 유기적인 수수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지나친 생산으로 인하여 파괴적인 판로경쟁을 하거나, 편파적인 분배에 의하여 전체적인 생활목적을 그르치는 축적이나 소비를 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사회의 경제구조도 완성된 인체의 구조와 같아야 하므로,위에서도 말한 바와같이 생산과 분배와 소비는 인체에 있어서의 위장과 심장과 폐장과 같이 유기적인 수수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생산과잉으로 인하여 파괴적인 판로경쟁을 하거나, 편파적인 분배에 의하여 전체적인 생활목적을 그르치는 축적이나 소비를 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정하고도 과부족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산업혁명에 의한 다량생산은 영국으로 하여금 상품시장과 원료 공급자로서의 광대한 식민지를 급속도로 개척케 하였었다. 그리하여 산업혁명은 이상사회를 위한 외적인 환경 복귀뿐만 아니라, 복음전파를 위한 광범한 판도를 이룸으로써 내적인 복귀섭리의 사명도 하게 하였던 것이다.
Ⅳ. 열국의 강화와 식민지 분활
문예부흥 이후 가인 아벨의 두 형으로 갈라져 성숙하여온 인생관은, 각각 두 형의 정치혁명을 일으키어 두 형의 민주주의를 수립하였고, 이 두형의 민주주의는 다 같이 영국의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강화되어 민주와 공산 두 계열의 세계를 이루어가게 되었다.
즉 산업혁명에 뒤이어, 비약적인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일어난 공업의 발달은 생산과잉의 경제사회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과잉한 생산품의 판로와 공업원료의 획득을 위한 새로운 지역의 개척을 요하게 되어, 마침내 세계열강은 식민지 쟁탈전을 계속하면서 급속도로 강화되어 갔다. 이와 같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의 흐름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은 정치적으로 이 세계를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분립케 하였다.
v. 문예부흥에 따르는 종교 정치 및 산업의 혁명
가인형인 헬라사상의 반중세적 복고운동은 인본주의(Humanism)를 낳아 문예부흥(Renaissance)을 일으켰고, 이것이 더 사탄편으로 발전하여 제2의 문예부흥사조라고 볼 수 있는 계몽사상을 낳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 계몽사상이 더욱 사탄편으로 성숙하여 제3의 문예부흥사조라고 볼 수 있는 유물사관을 낳아 공산주의 사상을 성숙케 하였다.
이와같이 사탄편에서 하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감에 따라 종교, 정치, 산업 각 방면에 있어서도 3차의 혁명이 따라오게 된다. 즉 제1차 문예부흥에 뒤이어 루터를 중심한 제1차 종교개혁이 있었으며, 제2차 문예부흥에 뒤이어 종교계에서는 웨슬레, 폭스, 스웨덴보리 등을 중심한 새로운 영적 운동이 말할수 없는 박해 가운데서 일어났던 것이니, 이것이 제2차 종교개혁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제3차 문예부흥에 뒤이어서 제3차 종교개혁이 있게 될 것은 역사발전 과정으로 보아 필지의 사실이라 하겠다. 사실상 오늘의 기독교의 현실은 그 개혁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도 3단계의 변혁과정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즉 제1차 문예부흥과 제1차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중세 봉건사회가 무너졌고, 제2차 문예부흥과 제2차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전제군주사회가 무너졌던 것이다. 그리고 제3차 문예부흥에 의한 정치혁명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사회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장차 올 제3차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하늘편의 민주세계가 이념적으로 사탄편의 공산세계를 굴복시킴으로써, 이 두 세계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지상천국으로 통일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종교와 정치의 변혁에 따르는 경제개혁도, 3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증기에 의한 공업발달로 제1차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났고, 이어서 전기와 가솔린에 의한 제2차 산업혁명이 선진제국에서 일어났었다. 이제는 원자력에 의한 제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상세계의 행복된 사회환경이 세계적으로 건설될 것이다. 이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에 있어서의 3차의 문예부흥에 따르는 종교 정치 및 산업 등 3분야에 걸친 3차 혁명은 3단계의 발전법칙에 의한 이상사회 필연적 과정인 것이다.

제4절 세계대전
Ⅰ. 탕감복귀섭리로 본 세계대전의 원인
전쟁이란 언제나 정치, 경제, 사상 등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반드시 또 내적인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행동에 내 외 양면의 원인이 있는 것과 같다. 즉 인간의 행동은, 당면한 현실에 대응하려는 외적인 자유의지에 의하여 결정됨은 물론이어니와, 복귀섭리의 목적을 지향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려는 내적인 자유의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선악을 그 외적인 원인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일어나는, 행동과 행동의 세계적인 부딪침이 곧 세계대전이기 때문에, 여기에도 내 외 양면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세계대전을 정치, 경제, 사상등 그 외적인 원인만을 중심하고 다루어 가지고는 그에 대한 섭리적인 의의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탕감복귀섭리로 본 세계대전의 내적인 원인은 무엇일 것인가 ?
첫째, 주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탄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하여 세계대전은 일어나게 된다. 위에서도 이미 보아 온 바와 같이, 인간시조가 타락됨으로 인하여, 원래 하나님이 이루시려던 원리세계를 사탄이 앞질러 원리형의 비원리세계로 이루어 나왔고,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나오시면서 사탄이 주관하고 있는 이 비원리세계를 빼앗아 선의 판도를 넓히심으로써 점차적으로 원리세계를 복귀하는 섭리를 해 나오셨다. 따라서 복귀섭리노정에는 언제나 참 것이 오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나타나게 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먼저 오리라 하신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런데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의 역사는 재림주님이 나타나심으로써 그 종말을 짓고, 하나님을 중심한 선주권의 역사로 바뀌게 되는 것이므로, 그 때에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하게된다.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애급을 떠나려는 이스라엘 선민에 대하여 사탄은 바로를 시켜서 최후의 발악을 하였기 때문에, 하늘편에서는 3대 기적으로써 그를 치고 떠났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의 종말기에 있어서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는 하늘편에 대하여 사탄이 최후의 발악을 하기 때문에, 이것을 3차에 걸쳐 치는 것이 3차의 세계대전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이룬 형의 세계를 사탄이 앞서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왔으므로, 이것을 복귀하는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개성을 완성할 것과 자녀를 번식할 것과 피조세계를 주관할 것 등의 3대 축복을 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따라서 인간은 이 축복을 이룸으로써 지상천국을 세워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러한 축복을 하셨던 것이므로, 그 인간이 타락되었다고 해서 이 축복을 파기하실 수는 없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사탄을 중심하고 그 축복형의 비원리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는 사탄을 중심한 개성, 사탄을 중심한 자녀 번식, 사탄을 중심한 피조세계 주관 등 3대 축복 완성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는 사탄을 중심한 개성, 사탄을 중심한 자녀 번식, 사탄을 중심한 3대축복 완성형의 비원리세계를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에 걸쳐서 치는 3차의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예수님의 3대 시험을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예수님의 노정은 바로 성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이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당하신 3대 시험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전 인류가 예수님의 이 3대 시험을 3차에 걸쳐 세계적으로 넘어가는 것이 바로 이 3차에 걸친 세계대전인 것이다.
넷째, 주권 복귀를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인간이 타락되지 않고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쳐서 완성되었다면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타락세계를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로 분립한 다음, 아벨형의 하늘세계가 가인형의 사탄세계를 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세계적으로 탕감복귀하여, 하나님 주권의 세계를 찾아 세우는 최종의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3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3차의 세계대전이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대전은 종적인 섭리노정에서 주권복귀를 위하여 있었던 모든 싸움의 목적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하는 최종적인 전쟁인 것이다.
Ⅱ. 제1차 세계대전
1.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섭리적인 개요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주주의혁명으로 인하여 전제군주정체는 붕괴되었으며, 이에 다라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봉건주의사회를 자본주의사회로 이끌어, 마침내 제국주의사회가 오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은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아벨형의 민주주의에 의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정치체제와, 가인형의 민주주의에 의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반하는 전체주의정치체제와의 전쟁이었으며, 한편 또 경제적인 면에서보면 하늘편 제국주의와 사탄편 제국주의와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대전은 일면 구미 제국 중의 선진 자본주의국가들과 후진 자본주의국가들이 식민지 쟁탈을 위하여 벌인 전쟁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 제1차 세계대전을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당시의 기독교를 박해하던 회회교 국가인 터어키 및 이것을 지지하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가인형의 국가군과 주로 기독교를 신봉하던 영, 미, 불 등 아벨형의 국가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1차 대전은 아벨형 인생관의 목적을 실현해야 할 민주주의가, 소생적인 승리의 기반을 조성하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2. 하늘편과 사탄편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하늘편과 사탄편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방향을 기준으로 하여 결정된다.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방향과 동일한 방향을 취하거나 간접적으로나마 이 방향에 동조하는 입장을 하늘편이라하고, 이와 반대되는 입장을 사탄편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늘편이냐 사탄편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나 양심의 판단과 반드시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모세가 애급인을 죽인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악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선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아무 이유도 없이 가나안 땅을 침입하여 수많은 이방민을 전멸시킨 사실도,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자리에서 보면 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보면 선이었던 것이다. 가나안 민족 중에 이스라엘 민족보다 훨씬 더 양심적인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당시의 그들은 일률적으로 사탄편이었고, 이스라엘은 일률적으로 하늘편이었던 까닭이다.
더 나아가 이 예를 종교면에서 들어보기로 하자. 모든 종교는 그 목적이 동일하게 선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모두 하늘편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가 사명적으로 보아 그 보다 더 하늘앞에 가까운 종교가 가는 길을 방해하게 될 때 그 종교는 사탄편에 속하게 된다. 또 각 종교는 시대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교가 그의 사명기가 지난 후, 다음 시대의 새로운 사명을 담당하고 나타난 종교의 길 앞에 장애가 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종교는 사탄편이 된다.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유대교나 그 민족은 모두 하늘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오셨던 예수님을 박해하게 되었을 때에는,그들은 과거에 아무리 하나님을 잘 섬겨왔다고 하더라도, 그 날부터 사탄편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근세 이후에 있어서는 아벨형의 인생관의 계통은 모두 하늘편이요, 가인형의 인생관의 계통은 모두 사탄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물론자는 가인형의 인생관의 결실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양심적이고 남을 위해 헌신을 한다고 해도 그는 사탄편이다. 따라서 공산세계는 사탄편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는 민주세계는 아벨형의 인생관으로 존립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하늘편이 된다.
전편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기독교는 모든 종교의 목적을 일기 위한 최종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는 중심종교로 세워졌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섭리의 목적을 지향하는 기독교의 길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탄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를 박해하거나 또는 그의 발전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방해하는 국가는 모두 사탄편이 된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에 있어서 영, 미, 불, 로 등 연합국 측의 주동국가들은 기독교국가일 뿐 아니라, 회회교국인 터어키 내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기독교도를 해방하려 했던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하늘편이 되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동맹국측의 주동국가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이슬람 국가였던 터어키를 지지하였으므로 그것들은 모두 터어키와 함께 사탄편이었던 것이다.
3. 복귀섭리로 본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
복귀섭리로 보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내적인 원인의 그 첫째는, 하나님의 3대 축복을 복귀하는 소생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우려는 데 있었다. 이미 위에서 밝힌 바와같이, 사탄은 하나님이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시려던 세계와 비슷한 형의 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왔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서는 한 때 반드시 사탄편 아담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3대축복의 소생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가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하늘편에서는 이 세계를 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 축복을 완성한 원리세계를 복귀하는 소생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카이젤은 사탄편 아담의 소생급 개성완성형의 인물로서,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함으로써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제패의 정책을 세움으로써 만물 주관의 형을 이루어, 사탄을 중심한 3대축복의 소생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늘편이 이러한 사탄편을 치고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는 소생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우기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첫째 시험을 하늘편 지상인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을 중심하고 보면, 하늘편에서는 제1차 대전에 승리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첫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돌로 표시된 자신을 찾아 세워 개성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셨던 것과 같이, 하늘편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사탄편 세계와 그 중심이 망한 반면에, 하늘편 세계가 세워지고 그 중심인 재림주님이 탄생하시어 개성을 복귀하실 수 있는 기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주권 복귀의 소생적인 기대를 만들기 위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후편 제4장 제7절 Ⅱ.6에서, 전제주의사회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하기 위한 최종적인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정치체제가 나오게 되었다고 논하였거니와, 결과적인 사실이 보여준 바와 같이 제1차 대전에서 하늘편 국가가 승리하여 정치판도를 크게 넓힘으로써 세계를 기독교화하고, 하늘편의 광범하고도 확고한 정치 및 경제의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소생적인 기대를 확립함과 동시에 하늘편 주권복귀의 소생적인 기대를 이룩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4. 복귀섭리로 본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하늘편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3대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하기 위한 소생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시험을 세계적으로 넘는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제1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웠으며, 여기에서 민주주의가 소생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어 하늘편 주권 복귀의 소생적인 기대를조성하였다. 그리고 사탄편 세계와 그 세계의 왕으로 군림했던 카이젤이 패망한 반면에 하늘편 세계의 소생적인 승리의 기대가 세워짐으로써, 하늘편 세계의 왕으로 오실 재림주님이 탄생하실 수 있는 기대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에 뒤이어 사탄편의 재림주 상징형인 스탈린 을 중심한 공산세계가 일어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재림주님은 공생공영공의주의의 지상천국이상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시므로, 사탄편에서는 하늘편의 이러한 이상을 앞질러 먼저 이루기 위하여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지상천국형의 세계를 이루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이 하늘편 승리로 끝남으로써 메시아 재강림의 기대가 조성되었고, 그 때부터 재림역사의 소생기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Ⅲ. 제2차 세계대전
1.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섭리적인 개요
이미 중세 이후의 역사에서 보아 온대로,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은 아벨형 인생관의 목적을 이루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인본 본성의 내 외 양면의 성향을 따라 필연적으로 창조이상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2차 세계대전은, 제1차 대전으로 인하여 소생적인 승리의 기대 위에 서게 된 민주주의가, 인간 본성이 지향하는 길을 막는 전체주의와 싸워서 그 장성적인 승리의 기반을 조성하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2. 전체주의란 무엇인가
1930년대에 있어서 경제공황이 세계적으로 휘몰아쳤을 때, 특히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기 어려운 고립된 환경에 처해 있었던 독, 일, 이 등의 국가들은 그 난경을 타개하는 길을 전체주의에서 찾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이 전체주의란 무엇인가 ?
전체주의는 근대국가의 민주주의 정치사상의 기본인 인간의 개성에 대한 존중과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 및 의회제도 등을 부정하고, 민족 국가의 '전체'만을 궁극의 실재로 봄으로써, 개인이나 단체는 민족 국가 '전체'만을 궁극의 실재로 봄으로써, 개인이나 단체는 민족 국가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이념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하에서의 자유는 개인이 주장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고 전체 앞에 바쳐야 할 하나의 의무요 또한 회생으로 정의된다.
전체주의의 지도원리는 모든 권위를 다수에 두지 않고 한 사람의 지배자에게 둔다. 그리하여 그 지배자의 의지를 국가 민족의 이념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지도이념에 의한 전체주의 정치체제의 실례를 들어보면,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뭇솔리니, 독일에 있어서의 히틀러, 일본에 있어서의 군벌에 의한 독재정치체제들이 각각 그것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3.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하늘편 국가와 사탄편 국가
제2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로 결탁된 미, 영, 불의 하늘편 국가와 전체주의로 결탁된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사탄편 국가와의 대전이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전자는 하늘편이고 후자는 사탄편인가? 전자는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으로 하여, 복귀섭리의 최종단계의 정치이념으로 세워진 민주주의를 근본이념으로 하는 국가들이었기 대문에 하늘편이었고, 후자는 그 정치이념이 가인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반민주주의적인 전체주의국가들이었기 때문에 사탄편이었다. 그리고 또 전자는 기독교를 지지하는 국가들이었고, 후자는 반기독교적인 처지에 섰었던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각각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구별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 내용을 좀더 밝혀 보기로 하자. 당시대에 있어서 추축국의 중심이었던 독일은 인간의 기본 자유를 박탈하였고, 그의 사상통제는 종교분야에까지 미쳤던 것이다. 즉 히틀러는 로마교황과는 별도로 협약을 맺고, 엄중한 게르만의 원시적 종교사상을 도입하여 민족적 종교를 창설한 후, 그 전국주교 밑에 모든 개신교를 통할하려 하였기 때문에, 개신교는 물론 구교까지 이에 강력한 반대운동을 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600만의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그리고 대전 당시의 일본의 군벌은 한국의 각 교회에 일본 신도의 가미다나를 강제로 설치케 하는 한편, 이에 따르지 않는 신도들을 투옥 학살 하였다. 특히 일본의 속박을 피하여 자유를 찾아 만주에 이민한 한국 기독교인들을 도처에서 집단 학살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대전 말기에 이르면서 그들이 강행하였던 한국 기독교 말살정책은 실로 극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태리는 사탄편에 섰던 독일과 하나 되어 추축국가가 되었으며, 뭇솔리니는 국민사상을 통합하기 위하여 고의로 구교를 국교로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역행하는 길을 걸었다. 이러한 근거에서 당시의 독, 일, 이는 함께 사탄편의 국가들로 규정되는 것이다.
4. 하늘편과 사탄편이 각각 3대국으로 대립한 이유
상세한 것은 다음 항목에서 논술될 것이나,제2차 세계대전은 예수님을 중심하고 이루려다가 이루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3대 축복을 복귀하는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기 위하여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3대축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담 해와 천사장의 3존재가 타락된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3대축복의 복귀에도 그것들을 탕감하기 위한 3존재의 관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후아담으로 오셨던 예수님과 해와의 신성으로 오신 성신과(전편 제7장 제4절 Ⅰ) 천사장의 3존재가 합하여서 비로소 영적 구원섭리를 이루시어, 하나님의 3대축복을 영적으로 복귀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중심한 3대 축복을 영적으로 복귀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중심한 3대 축복을 복귀하기 위한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워야 할 제2차 세계대전도, 아담 해와 천사장을 상징하는 하늘편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동일한 형을 갖춘 사탄편 국가들과 싸워 이겨서, 그것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고 있는 사탄은 이 섭리에 앞질러 사탄편 아담 해와 천사장형의 국가들을 먼저 단합하게 하여, 하늘편의 그러한 형의 국가들에게 공세를 취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남성국가로서 하늘편 아담을, 영국은 여성국가로서 하늘편 해와를, 그리고 불란서는 중간적인 국가로서 하늘편의 천사장을 각각 상징하였고, 독일은 남성국가로서 사탄편 아담을, 일본은 여성국가로서 사탄편 해와를, 그리고 이탈리아는 중간적인 국가로서 사탄편의 천사장을 각각 상징하였던 것이다. 그 앞서 제1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미, 영, 불과 독, 오, 터어키도 역시 각각 이러한 유형으로 편성된 소생적인 상징형으로서의 하늘편과 사탄편의 국가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제2차 대전에 있어서 사탄편 국가인 소련은 왜 하늘편에 가담하게 되었던가? 교황을 중심한 서구의 중세사회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것을 가인 아벨 두형의 인생관의 세계로 분립하여 공산과 민주의 두 세계를 이루어 나아가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런데 봉건사회나 전체군주사회나 제국주의사회는 모두 이러한 섭리를 이루는데 있어서 하늘편이 가는 길을 막는 동시에, 사탄편이 가는 궁극의 길도 막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하늘편과 사탄편이 합하여 그 사회를 타파하게 되었던 것이다.
복귀섭리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발전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는 비원리세계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사탄의 목적을 지향하여 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사탄세계에 있어서도 낡은 사회는 진보적인 사회를 이루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청산하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추세에 의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전체주의는 하늘편에 있어서 그러한 것처럼 사탄편이 가는 길에 있어서도 역시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탄편이 공산주의세계를 이루는 것을, 탕감복귀섭리상 일시적으로나마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소련이 하늘편 국가와 협력하여 전체주의국가를 타도함으로써, 공산세계가 조속히 그로서의 결실을 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는 물과 기름길이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5. 복귀섭리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
복귀섭리로 보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내적인 원인의 그 첫째는. 하나님의 3대 축복을 복귀하는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우려는데 있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제2차로 후아담된 예수님을 보내시어 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3대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이것을 영적으로만 이루셨던 것이다. 한편 사탄은 또 예수님이 이루시려던 그 세계와 비슷한 형의 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사탄편 예수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3대축복의 장성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 세계를 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그 축복을 완성한 원리세계로 복귀하는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 사탄편 예수형의 인물이 바로 히틀러였다. 그러므로 히틀러는 그 사상이나 그 독신생활이나 그의 비참한 죽음이나 또는 행방불명된 그의 시체 등 모든 면에 있어서, 그 뜻을 반대로 했을 뿐 예수님의 그것들과 비슷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는 사탄편 아담의 장성급 개성완성형의 인물로서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함으로써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적화의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만물 주관의 형을 이루어 사탄을 중심한 3대 축복의 장성급 완성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는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둘째 시험을 하늘편 지상인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을 중심하고 보면, 하늘편에서는 제2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둘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자녀 복귀의 기대를 마련하셨던 것과 같이, 하늘편 세계가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민주주의의 장성적인 기대를 조성하여 하늘편 인간들이 그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주권복귀의 장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오게 되었던 것이다. 제1차 대전이 하늘편의 승리로 돌아감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세계는 그 소생적인 기반을 가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가인형의 세계를 이루어 나오던 사탄편에서도 제1차 대전이 끝나자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공산주의세계의 소생적인 기반을 닦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제2차 대전은 그 결과적인 사실이 보여 준 바와 같이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를 완전히 분리시켜 각각 그 장성적인 기반을 닦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세계가 이와같이 그 장성적인 기반을 가지게 됨에 따라서 하늘편 주권복귀는 그 장성적인 기대를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6. 복귀섭리로 본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하늘편의 승리로 끝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하기 위한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시험을 세계적으로 넘는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제2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웠으며, 또 민주주의세계가 장성적인 기반을 닦게 됨으로써 주권 복귀의 장성적인 기대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탕감복귀의 원리로 보아, 사탄편 예수형의 인물인 히틀러와 그 나라가 망하고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인 스탈린을 중심한 공산세계가 세계적인 기반을 가지고 나타나게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영적인 왕국을 건설해 나아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재림하신 예수님을 중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요한계시록 21장 1∼7절) 건설할때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같이 2차대전이 끝난 뒤부터는 재림역사의 장성기로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예수 재림에 관한 계시를 받아 신령역사는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모든 기성종교는 더욱 혼돈되고 분열됨으로써 세속적으로 흘러, 종교적인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최종적인 새 진리에 의하여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하나님의 종국적인 섭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하나의 말세적인 현상인 것이다.
Ⅳ. 제3차 세계대전
1. 제3차 세계대전은 기필코 일어나게 될 것인가
하나님은 원래 인간시조를 창조하시고 그에게 세계를 주관하라고 축복하셨기 때문에(창세기 1장 28절), 사탄의 타락인간을 앞세워 가지고 먼저 이 축복을 완성한 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반면에 하나님은 복귀섭리에 의하여 그 뒤를 따라 나오시면서 그것을 하늘편으로 빼앗아 넘기는 역사를 해오셨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류역사의 종말에는 사탄편도 하늘편도 모두 세계를 주관하는데 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가 양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두 세계의 최종적인 분립과 통합을 위하여 세계대전은 오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제1차,제2차의 대전은 세계를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분립하기 위한 싸움이었으므로, 다음에는 이 분립된 두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싸움이 와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제3차 대전이다. 그러므로 제3차 대전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 싸움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무기로써 사탄편을 굴복시켜 통일하는 길이다. 그러나 통일된 후에 와야 할 이상세계는 온 인류가 다 같이 기뻐하는 세계여서, 이 세계는 원수를 무기로써 외적으로만 굴복시켜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내적으로도 굴복시켜서 충심으로 기뻐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전무결한 이념이 없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의 둘째 길은 무기로 인한 외적인 싸움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이념에 의한 내적인 싸움으로써 곧장 사탄세계를 굴복시켜 통일하는 길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이성으로 굴복하고 이성으로 하나될 때에만 완성한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싸움의 길 중에서 어느 길에 의하여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이다. 그러면 이 길에 필요한 새 세계의 이념은 어디서 나오게 될 것인가?
인류를 하나의 이상세계에로 인도할 수 있는 이념은 가인형의 인생관으로 세어진 공산주의세계에서 나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왜냐하면 가인형의 인생관은 인간 본성의 내적인 성향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이념은 반드시 아벨형의 인생관으로 세워진 민주주의세계에서 나와야 할 것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 민주주의세계의 어떠한 기존 이념도 공산주의의 이념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이념은 기필코 민주주의세계에서 새로이 나오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새로운 이념이 나오기 위하여는 새로운 진리가 나와야 할 것이니, 이 새로운 진리가 바로 아벨형의 인생관의 근본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의 근본이 될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시대를 따라, 보다 더 새로운 진리를 찾아 나온 역사발전 과정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이러한 새로운 진리가 나오게 되면 그것은 많은 인간들이 지금까지 진리라고 믿어온 낡은 것과 상충하게 될 것이므로, 오늘의 민주주의세계에 있어서도 또다시 가인 아벨이 두 입장으로 분립되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진리가 민주주의세계에서 승리의 기반을 가지게 되고 더욱 나아가 공산주의의 이념을 굴복시킬 때에 마침내 하나의 진리에 의한 하나의 세계는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이 새로운 진리를 주시어 온 인류를 하나의 이념으로 통합하시려는 섭리를 사탄이 먼저 알고 자기를 중심하고 인류를 통합하려고 거짓 것을 참 것인 양 내놓은 사탄편 진리가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론적인 근거를 세워 영적인 존재를 말살하려 한다. 이러한 유물론의 입장은 신이 없다는 것을 증거 하려 하다가 결과적으로 사탄 자신도 없다는 논리를 스스로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는 자멸의 경지에 빠지고 말았다. 더욱이 사탄은 역사의 종말을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멸망할 것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결국은 사탄 자신이 섬김을 받지 못할 때가 올 것을 상정하여,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신을 부정하고 나선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세계에서 그 이론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진리를 내놓지 못하는 한, 하늘편은 언제나 사탄의 이론적인 공세를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하늘편에서 새로이 완성적인 진리를 선포하지 않으면 안되는 복귀섭리사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2. 제3차 세계대전에 대한 섭리적인 개요
제3차 대전은 복귀섭리를 시작하신 이래, 최종적으로 민주세계로 하여금 공산세계를 굴복시킴으로써 이상세계를 복귀하게 하시려는 전쟁이다. 복귀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제1차 대전까지 하늘편 세계에서는 식민지를 세계적으로 확보함으로써 복귀섭리를 위한 정치와 경제의 판도를 넓혀 민주주의의 소생적인 기대를 세웠고, 제2차 대전으로는 민주주의의 장성적인 기틀을 세계적으로 수립함으로써 민주세계의 판도를공고히 하였다. 이제 제3차 대전으로는 새로운 진리에 의하여 완전한 아벨형의 인생관을 세움으로써 민주주의의 완성적인 기대를 조성해야되며, 이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하나의 세계에로 이끌어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3차 세계대전은,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3단계까지 연장하면서 역사의 종말기에 이르러 하늘편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최종적인 전쟁인 것이다.
3. 복귀섭리로 본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제3차 대전이 무력에 의하여 끝날것인가, 혹은 이념의 싸움으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받드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 여하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이지만, 여하간 어떠한 길로든지 세계적인 싸움이 한번 더 있어야 할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 복귀섭리로 보아 제3차 세계대전이 오게 되는 내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그 첫째는 하나님의 3대 축복을 복귀하는 완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우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결국 영적으로만 이루어졌으므로, 예수님은 다시 지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영 육 아울러 복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사탄은 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루시려는 세계의 비슷한 형의 비원리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는 반드시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3대축복을 복귀한 형의 비원리세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편에서 사탄을 중심한 이 세계를 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는 완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이 바로 스탈린이었다. 따라서 스탈린은 사탄편 개성완성형의 인물로서, 민주세계에 대항하여 농어민, 노동자의 대동단결을 주창함으로써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 적화의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만물 주관의 형을 이루어 3대 축복을 완성한 형의 공산세계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세계는 장차 올 하나님 중심의 공생공영공의주의세계를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놓은 비원리세계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셋째 시험을 하늘편 지상인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제3차 대전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을 중심하고 보면, 하늘편에서는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세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만물에 대한 주관성 복귀의 기대를 조성한 것과 같이, 하늘편이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만물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주권복귀의 완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제3차 대전이 있어야 한다. 하늘편에 서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공산주의세계를 괴멸하고 모든 주권을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여 천주주의의 이상세계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4. 복귀섭리로 본 제3차 세계대전의 결과
하나님은 일찌기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세워 복귀섭리를 완성하려 하셨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인하여 인류죄악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시려는 선 악의 분립역사는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가정, 종족, 사회, 민족, 국가적인 것을 거쳐서 세계적인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내려오셨다.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최종적 역사인 3차의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3단계까지 연장을 거듭하여 온 섭리노정의 전체를 탕감복귀하시려는 것이다. 태초에 인간조상은 사탄의 유혹의 말에 끌려 넘어감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심정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한 내적인 영적 타락과 외적인 육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는 타락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에 대한 심정을 복귀하고, 영 육 아울러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혈통을 다시 이어받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후편 제2장 제3절 Ⅲ.2 참조).
이제 3차에 걸친 세계대전에서의 하늘편 승리는 이러한 복귀섭리의 모든 기대를 완전히 탕감복귀함으로써, 인간이 타락된 이후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나님이 이루려 하셨던 창조본연의 이상세계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제6장 재 림 론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6장 27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천사도 예수님도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마태복음 24장 36절). 그러므로 지금까지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어디로 오실 것인가 하는 데 대하여는 알려고 하는 것조차 무모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속하여 말씀하신 바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신 사실과,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신 말씀을 종합하여 보면, 그 날과 그 때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재림에 관한 모든 비밀을 반드시 어떤 선지자에게 알려 주시고야 역사 하시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도둑 같이 오시겠다고(요한계시록 3장 3절) 말씀하신 바 있지만, 그 반면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을 보면, 빚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도둑 같이 임하지 못하시리라고 하신 말씀도 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되어진 일을 보아도 예수님은 어둠 가운데 있었던 제사장 교법사들에게는 도둑 같이 임하셨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빛 가운데 있었던 세례요한의 가정에게는 그의 탄생에 관한 것을 미리부터 알려 주셨고, 또 그가 탄생하셨을 때에는 동방박사와 시므온, 안나, 그리고 목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21장 34절 내지 36절에 예수님께서 그의 재림하실 날이 뜻밖에 덫과 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항상 기도함으로써 이것을 피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도,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 재림의 날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실 것이 분명하다.
복귀섭리노정에 나타난 예를 보아도, 하나님은 노아의 심판 때나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나 혹은 메시아의 강림때에 있어서 매양 그 사실을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야 행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주의 재림에 관하여도,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을 물 붓듯 부어 주시마고 약속하신대로(사도행전 2장 17절), 빚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들을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듣고 볼 수 있도록 계시하여 주실 것이 분명하다.

제1절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를 우리는 말세라고 한다. 그런데 현세가 바로 말세라는 사실은 이미 전편의 인류역사 종말론에서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세가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역사에서 보면, 예수님은 탕감복귀섭리시대(구약시대)의 2천년이 지난 후에 강림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의 원칙에서 볼 때에, 전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재탕감복귀섭리시대(신약시대)의 2천년이 끝날 무렵에 주께서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항목에서 상론한 바와 같이,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함으로써, 사탄편 아담형의 인물인 카이젤이 망하고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 스탈린이 공산주의세계를 이루었던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공생공영공의주의세계를 탕감복귀하실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재림기가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2절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Ⅰ. 성서에 대한 관점
하나님은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암시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의 사람이든지, 자유롭게 그 지능과 심령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모든 천륜의 중요한 문제들을 상징과 비유로써 교시해 나오셨다(요한복음 16장 25절). 그러므로 성서는 각각 그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해석자들에게 서로 다른 관점을 세워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교파가 분열되는 주요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그 관점을 어디에다 두는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례요한에 관한 문제만 하여도 그 하나의 예가 되는 것으로서(전편 제4장 제2절 Ⅲ), 우리는 예수님 이후 2천년간이나, 세례요한이 그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선입관으로써 성서를 보아 왔기 때문에, 성서도 또한 그렇게 보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관점에서 성서를 다시 상고할 때, 세례요한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2절 Ⅲ).
이와 같이 우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단정하는 입장에서 성서를 보아왔기 때문에, 성서도 또한 그렇게만 보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현대인의 지성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우리는 성서의 문자가 말하고 잇는 그 참 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종래와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번 성서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의 세례요한에 관한 부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였다. 예언자 말라기는 메시아의 강림에 앞서 이미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고 예언한 바 있었다(말라기 4장 5절).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승천한 바로 그 엘리야가 재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이라고 믿고 그 날만을 고대하였었다. 그러나 의외에도 예수님은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난 세례요한(누가복음 1장 13절)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11장 14절).
우리는 여기에서 엘리야의 재림이 당시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듯이 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써 이루어지지 않고,지상에서 세례 요한으로 출생하는 것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바로 예수님의 증언에 의하여서 알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신도들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으로 믿어 왔으나, 일찍이 엘리야 재림의 실제가 우리에게 보여준 대로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리라는 것을 부정할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지상에서의 육신탄생으로 재림하시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관점에서, 이에 관한 성경의 많은 기록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많은 학자들은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마태복음 2장 5∼6절). 그러나 한편 다니엘서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다니엘 7장 13절)라고 기록된 말씀에 의하여, 메시아가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으로 믿은 성도들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추단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도 유대인들 중에는,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태어난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반기독교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랬기에 사도 요한은 이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요한2서 1장 7∼13절)라고 하여, 육신탄생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다니엘서 7장 13절의 말씀은 예수 재림 때에 되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마태복음 11장 13절)라고 하신 말씀이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로마서 10장 4절)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구약시대에는 메시아의 강림으로써 복귀섭리의 전 목적을 완성하시려는 섭리를 해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한번 오셨던 메시아가 재림하시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누구도 다니엘서 7장 13절의 말씀이 메시아의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의 초림 때에 되어질 현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성서적인 근거에서 메시아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으로 믿은 신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에 있어 땅 위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셨으므로, 재림하실 때도 그와 같이될는지 모른다는 입장에서, 우리는 성서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Ⅱ. 예수의 재림은 지상탄생으로 이루어진다
누가복음 17장 24절 내지 25절을 보면, 예수님은 장차 그가 재림하실 때에 되어질 일들을 예상하시면서,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님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구름을 타고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 중에 재림하신다면(마태복음 24장 30∼31절), 아무리 죄악이 가득찬 세대라 할지라도 이러한 모양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받들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다면, 고난을 당하신다던가 이 세대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 같은 일은 절대로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재림하실 때에 그와 같이 불행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셨을 것인가 ?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선지자 말라기가 예언한대로(말라기 4장 5절), 메시아에 앞서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재림하여 메시아의 강림에 관한 것을 가르쳐 줄 것으로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엘리야가 왔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미미한 존재로서 도둑같이 메시아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천대하였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Ⅱ). 예수님은 이러한 자신을 살펴볼 때, 재림하실 때에도 또한 초림 때와 같이 하늘만을 쳐다보며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을 기독교 신도들 앞에, 지상에서 탄생하시는 몸으로 도둑같이 나타나시면(요한계시록 3장 3절), 다시 그들에게 이단자로 몰리어 고난을 당하시게 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이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 성구는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재림하셔야만 이루어지지, 그렇지 않고 구름을 타고 오셔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8절에는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있다. 끝날이 가까워 올수록, 잘 믿으려고 애쓰는 성도들은 점차 늘어가고 있는데, 구름을 타시고 천사와 나팔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는 주님을 어찌하여 신앙이라는 말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도들이 불신하게 될 것인가 ?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셔서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당시의 모든 사정을 회상해 보면, 유대인들은 장차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후에야,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시리라고 믿고 있었다(마태복음 2장 6절). 그런데 아직 엘리야도 나타나지 않았던 때에 뜻밖에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난 한 청년이 메시아로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니, 저들 유대인 가운데서 죽음을 각오하고 그를 따르려는 독실한 믿음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실정을 서럽게 생각하시면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도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시 땅 위에 육신을 쓰고 나타나시게 되면, 그들도 필시 이 유대인들과 같이 믿음이란 말조차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신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상하시고, 그와 같이 탄식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구도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시지 않고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이 성구를, 끝날의 신도들이 당할 환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복귀과정에 있어서도 환란이 능히 성도들의 신앙의 길을 막을 수 없었거든, 하물며 성도들이 신앙의 최후의 관문으로 돌아가는 끝날에 있어서랴 ! 환란과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늘로부터의 구원의 손길을 더욱 열망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누구에게나 공통된 신앙생활의 실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다시 우리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 22절 내지 23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볼 수 있다. 주의 이름으로 기사 이적을 행할 정도로 잘 믿는 성도라면, 영광 가운데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을 그 얼마나 잘 믿고 모시고 따르게 될 것인가 !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들이 주님에게 그처럼 배척을 당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셨는가 ? 그렇듯 잘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면, 끝날에 구원을 받을 성도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셔 가지고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기사와 이적을 행할 정도로 잘 믿는 성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에 앞서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믿고 있던 그들은 세례요한이 바로 그들이 고대하던 엘리야임을 몰랐었고(요한복음 1장 21절), 따라서 오신 메시아까지도 모르고 배척해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으로서도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와 같이 그가 재림하실 때에도 지상에서 탄생하시게 되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기필코 주님을 배척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던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로서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토로하신 것이었다.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관도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면 그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따라서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신다는 전제 밑에서만 이 성구들은 완전히 풀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유리는 여기에서 이 성구들을 하나하나 들어 가지고 그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장 20절) : 만일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초림 때에도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써, 이미 그 나라가 임하였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엘리야가 공중에서 재림할 것으로 알고 고대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되었었기 때문에,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임할 것이나,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지상으로 재림하신 주님을 불신하게 되어 모처럼 임한 그 나라를 볼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나니라(17장 21절) :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그를 먼저 메시아로 믿고 따라서 모신 사람들은 벌써 그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재림하실 때에도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그를 먼저 알고 모시는 성도들을 중심하고 보면 천국은 먼저 그들의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개인이 점점 많아져서 사회를 이루고 국가를 형성하게 되면 그 천국은 점차로 볼 수 있는 세계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셔서 일시에 볼 수 있는 천국을 이루어 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17장 22절) : 만일 예수님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면 누구나 다 같이 그를 볼 것이기 때문에 그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게 될 리가 없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자의 날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가 ? 초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심과 함께 인자의 날은 이미 임하였던 것이나 불신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은 이 날을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재림 때에도 예수님이 지상에 탄생하시는 날로 인자의 날은 오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예수님을 보아도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자의 날은 이미 와 있을지라도기실 그날을 그날로 보지 못하게 될 것임이 사실이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17장 23절): 이미 부활론에서 논한 바와 같이, 말세에는 심령이 어느 기준에 달한 성도들은 '너는 주라'는 계시를 받게 되는데, 그럴 때에 그들이 이러한 계시를 받게 되는 원리를 모르면 스스로 재림주로 자처하게 되어 오시는 주님 앞에 적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미혹당할 것을 염려하여 이런 권고의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17장 24절) :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은 사탄세계의 헤롯왕에게까지 들려,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장 2∼3절). 재림 때에 있어서는 교통과 통신기관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재림에 관한 소식은 마치 번갯불과 같이 빠르게 동서간에 왕래하게 될 것이다.
17장 25절에 관해서는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이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17장 26절) : 노아는 홍수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백성들에게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있다가 모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지상으로 재림하셔서 진리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성도들은, 땅에서 들려오는 이 말씀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도리어 그를 이단자로 배척하다가 노아 때와 같이 모두를 섭리의 뜻을 받들지 못하는 입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자는 살리리라(17장 33절) : 구름을 타고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믿는데 죽음을 각오해야 할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상 탄생으로 재림하시기 때문에,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가 이단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그를 믿고 따르려면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각오를 하고서라도 믿고 따르면 그 결과는 살게 될 것이나, 현실적인 환경에 영합하여 그를 이단으로 배척하고 살겠다고 뒷걸음을 치다 보면 그 결과는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17장 37절) : 예수님은 그 제자들이 그의 재림하실 장소를 묻는 말에 이같이 대답하셨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단에 놓였던 쪼개지 않은 비둘기 위에 솔개가 내렸던 사실을 알고 있다(창세기 15장 11절). 이것은 성별되지 않은 것이 있는 곳에는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사탄이 따른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마지막 대답은 주검이 있는 곳에 그 주검을 취하러 사탄이 모이는 것 같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은 생명이 있는 곳으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 말씀은 주님은 독실한 성도들 가운데 나타나실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미 부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기에는 많은 영인들의 협조에 의하여, 독실한 성도들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생명있는 곳으로서 주님이 나타나실 곳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초림 당시에도 하나님을 가장 잘 받들어온 선민 가운데서 탄생하셨고, 선민 중에서도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서, 비로소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여기의 철장은 죄악세계를 심판하고 지상천국을 복귀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인류역사 종말론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불심판은 곧 혀 심판이요 따라서 말씀 심판이다(야고보서 3장 6절).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던 그 말씀이 저들을 심판한다고 하셨고(요한복음 12장 48절),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불살라 심판한다고 하셨으며(베드로후서 3장 7절), 주께서 입의 기운으로 불법한 자들을 죽인다고도 하셨다(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님의 입의 막대기, 곧 혀와 입술의 기운, 곧 그의 말씀이 바로 철장인 것이다(이사야 11장 4절).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27절에는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분명히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신다고 하였고, 또 그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분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누구시겠는가? 그는 바로 지상에서 만왕의 왕으로 탄생하시어 지상천국을 이루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이 첫머리를 보면 예수님의 조상에 4음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만민의 혈통을 가진 후손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위의 성구의 '여자'를 교회로 해석하는 성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전제 밑에서 이 성구를 해석하려니까 교회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자의 남은 자손'은 그 아래 씌어 있는 바와 같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의 양자 격으로(로마서 8장 23절) 선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어떤 학자들은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사도행전 8장 16절) 예수님이 각자의 마음 속에 계시게 되는 것을(요한복음 14장 20절) 그의 재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직후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때부터(사도행전 2장 4절) 오늘에 이르기까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의 마음 속에 언제나 내재하시게 된 것이므로, 이런 것이 재림이라면 그 재림은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 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직후에, 그의 생시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으며(마태복음 28장 9절), 그 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령기준이 높은 신도들에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오셔서 모든것을 지시하여 오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림도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니,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새삼스럽게 그 재림의 날을 역사적인 소망의 날로 고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체와는 수시로 만나고 있으면서도 재림하실 날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제자들이 고대한 것은 영체로서의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예수님은 영적으로 항상 만나고 잇는 사도요한에게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이 말씀을 들은 요한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도 영체로써 찾아오시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셨으며, 사도요한도 또한 예수님이 영체로써 나타나시는 것을 그의 재림으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잇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초림시와 같이 육신을 쓰고 재림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극히 자명한 사실이다.
창조원리에 상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대로 이 세계를 주관케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시되 영인체와 육신의 두 부분으로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이 두 세계의 주관자로 설 수 없게 되었으므로, 주관자를 잃어버린 피조물은 탄식하며 자기를 주관해 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게 되었다(로마서 8장 19∼22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성한 아담으로서 이 두 세계의 완전한 주관자로 오셔서(고린도전서 15장 27절), 모든 성도들을 그에게 접붙이어(로마서 11장 17절) 그와 한몸 되게 함으로써, 그들도 모두 피조세계의 주관자로 서게 해 주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자, 그들과 전 인류를 하나님 앞에 복귀하시기 위한 대속의 조건으로, 예수님의 몸을 사탄에게 내주시어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육적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아 후일 재림하셔서 그것을 이루시기로 약속하고 가셨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1절 Ⅳ). 그러므로 지금까지 지상에서 영 육 아울러 완성되어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함으로써, 그것들을 하나로 화동시켜 준 존재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준의 완성실체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영체로 오셔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초림때와 같이 영 육 아울러 완성한 존재로 오셔서, 온 인류를 영육 아울러 그에게 접붙이어 일체가 되게 함으로써(로마서 11장 17절), 그들로 하여금 영 육 아울러 완성하여,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주관하도록 하시지 아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복귀하시어, 복귀된 전 인류의 참 부모가 되시고, 그 나라의 왕이 되셔야 할 것이었다(이사야 9장 6절, 누가복음 1장 31절~33절). 그러나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므로, 장차 재림하셔서 이루실 것으로 약속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따라서 그가 재림하시어서도 초림 때의 사명이었던 지상천국을 이루시고, 거기에서 인류의 참부모가 되시고 또 왕이 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시고 지상에서 탄생하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또 인간의 속죄는 그가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전편 제1장 제6절 Ⅲ.3).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육신을 쓰시고 오셔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어서 아직도 우리의 육신을 통하여 유전되어 온 원죄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속죄하시어 인간의 육적 구원까지 완성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셔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셔서는 이 목적을 달성하실 수 없기 때문에, 초림때와 같이 육신을 쓰고 오시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영체 재림이 아니라 초림때와 같이 육신 재림이라는 것을 여러 모로 밝혔다. 예수님이 설혹 영체로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안으로만 볼 수 있는 영체가, 물질로 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더구나 그의 재림이 영체로써 공중의 어디에 가 계시다가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이 무슨 기적인들 행치 못하실 것인가 하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세우신 법도를 스스로 무시하는 입장에는 서실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와 주금도 다름없는 육신을 쓰고 재림하셔야 할 예수님이 구태여 지구 아닌 다른 어떤 천체의 공간 속에 계시다가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도록 하시는 그러한 비원리적인 섭리는 하실 필요도 없고 또 하실 수도 없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온 모든 논증에 입각해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는 것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Ⅲ. 구름 타고 오신다는 성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 탄생으로 이루어진다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알기 위하여서는 먼저 구름은 무엇을 비유하였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스덴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본 사람은 영안이 열린 성도들뿐이었다(사도행전 7장 55절). 따라서 영계에 계시는 예수님이 영체 그대로 재림하신다면 그는 영안이 열린 사람들에게만 보여질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각인의 눈이 다 영체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각인의 눈이 다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다고 한 것은, 그가 육신을 쓰고 오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한편 육신을 쓴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의 구름은 분명코 무엇인가를 비유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또 같은 성구 가운데, 저를 찌른 자도 볼 것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 예수님을 찌른 자는 로마병정이었다. 그러나 로마병정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죽어 버린 로마병정이 지상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으려면 부활해야 될 터인데, 요한계시록 20장 5절의 기록에 의하면 에수님이 재림하실때 부활될 사람은 첫째부활에 참여할 사람들 뿐이요, 그 밖의 죽은 자들은 천년왕국시대가 지나간 후에야 부활할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한 '찌른 자'는 부득이 비유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다가 뜻밖에 그가 지상에서 육신 탄생으로 재림하시게 될 때, 그를 몰라보고 핍박하게 될 무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찌른 자'를 비유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 같은 구절 안에 있는 '구름'이라는 어귀 역시 비유로 해석해서 안 될 리는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 구름은 지상에서 더러운 물이 증발되어 올라간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7장 15절을 보면 물은 타락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름은 타락한 인간이 중생하여 그 마음이 항상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독실한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구름은 성서나 고전에서 군중을 표시하는 말로 씌어졌다(히브리서 12장 1절).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양의 언어생활에 있어서도 그렇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세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의 구름기둥은, 앞으로 같은 민족의 인도자로 오실 예수님(+)을 표시하였고, 밤(-)의 불기둥은 예수님의 대상존재로서, 불의 역사로써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성신(-)을 표시한 것이었다.
우리는 위의 설명에 의하여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뜻은 중생한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서,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무리 가운데서,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인도자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도상고한 바와같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에(누가복음 17장 37절), 예수님이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신 말씀의 본 뜻도, 독실한 성도들이 모이는 곳으로 오시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구름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같은 내용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구름을 이와같이 비유로서 해석하고 보면, 예수님은 초림시에도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셨던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5장 47절에 첫 사람(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셨으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요한복음 3장 13절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예수님은 사실 지상에서 탄생하셨어도, 그 뜻이나 가치로 보아서는 분명히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 7장 13절에 초림 때에도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오실것으로 보여주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Ⅳ. 예수님은 왜 구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예언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막기 위함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서 육신 탄생에 의하여 재림하실 것으로 밝혀 놓았더라면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의한 혼란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미천한 가운데서 메시아로 나타나셨던 것이었으므로, 어떠한 미천한 사람들일지라도 영적으로 어느 기준에 달하게 되면, 제각기 재림주로 자칭하고 나서서 세상을 현혹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줄로 알고, 하늘만을 우러러보고 나왔기 때문에 이 혼란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지상에서 탄생하실 것을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둘째로는, 어려운 신앙노정을 걷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이 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속히 이룰 수 있도록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하여, 전후가 잘 맞지 않는듯한 말씀을 하신 사례가 적지 않다. 그 실례를 들어보면, 마태복음 10장 23절에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믿게 하시기 위하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또 요한복음 21장 18절 내지 21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베드로가 순교 당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를 받아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묻자 베드로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고 응수하셨다. 이 말씀에 의하여 요한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지나 않을까 하고 고대한 제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또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곧 재림하실 것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는 일념에서, 로마제국의 압정과 유대교의 핍박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신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서(사도행전 2장 1∼4절) 초대교회를 창건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천사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강림하셔서 번개 같이 모든것을 이루실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많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시기 위함이었다.

제3절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영체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육신을 쓴 인간으로 탄생하신다면, 그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어느 곳의 택함 받은 어떤 민족 가운데서 탄생하실 것이다. 그러면 예정된 그곳은 어디이며, 또 택함을 입은 그 민족은 어느 민족일 것인가?
Ⅰ.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인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맨 처음으로 구원의 인을 맞을 자가 14만 4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10장 23절)고 하신 말씀이나, 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에 살아 있다가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볼자가 있다(마태복음 16장 28절)고 하신 말씀 등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은 유대민족 가운데 재림하실 것으로 알고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33절 내지 43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그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는 재림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선민을, 종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그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후손에게 재림하실 것으로 말슴하셨던가?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이스라엘이란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기 위하여,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함으로써 '승리했다'는 뜻으로 받은 이름이다(창세기 32장 28절). 야곱은 이와같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후 '실체헌제'에 성공함으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었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대 위에서 그 뜻을 이어받은 후손을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서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야곱의 혈통적인 후손이라고 해서 그들을 전부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조상이라고 생각치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태복음 3장 9절)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로마서 2장 28∼29절)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로마서 9장 6절)라고 증언하였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란 사실만을 가지고서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들이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인들과 싸우면서 그 땅을 떠날 때는 이스라엘 선민이었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광야에서 쓸어버리고, 모세를 따른 그 후손만을 이스라엘 선민으로 삼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가나안땅에 들어간 후손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10지파로 된 북조 이스라엘은 벌써 이스라엘 선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멸망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2지파로 된 남조 유대만이 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예수님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이스라엘 선민의 자격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위에서 예거 한 것과 같은 말씀으로써 선민에 대한 의의를 밝혔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선민은 누구일 것인가 ? 그는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아, 그 후손이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하여 온 기독교 신도들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11절에 저희(유대인)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이 이스라엘 민족에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졌음을 밝혔다(사도행전 13장 46절). 그러므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기독교 신도들을 이르신 것임을 알 수 있다.
Ⅱ. 예수님은 동방의 나라로 재림하신다
마태복음 21장 33절 이하에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신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의 입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면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 열매 맺을 나라는 어느 나라일 것인가 ? 성서는 그 나라가 동방에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안팎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쥐어져 있는데, 하늘 위에서나 땅 위에서나 땅 아래에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으므로, 요한은 통곡을 하였다. 그 때에 어린 양(예수님)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여(요한계시록 5장 7절), 그 인을 하나씩 떼기 시작하였다(요한계시록 6장 1절).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 예수님이 여섯째 인봉의 개봉을 마치신 것을 기록하고, 최후의 인봉을 떼기 전의 중간 광경으로 제7장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그 7장 2절 내지 3절을 보면, 해 돋는 곳 즉 동방으로부터부터 천사가 올라와 최후의 심판에서 택함을 받은 자에게 인을 쳤는데, 그 인 맞은 자의 수가 14만 4천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그 14만 4천 무리와 함께 어린 양 즉 예수님이 계시더라고 씌여 있다.
우리는 이 성구들로 미루어 예수님은 해 돋는 곳, 곧 동방나라에 탄생하시어 그 곳에서 먼저 택함 받은 14만 4천 무리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인을 치신다는 것을(요한계시록 14장 1절)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열매를 맺을 나라는(마태복음 21장 43절 동방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방의 여러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바로 이 나라가 될 것인가 ?
Ⅲ.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이제까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에 재림하시지 않고, 그들의 유업을 상속하여 열매 맺는 나라에 재림하실 것을 우리는 알았고, 또 그 열매 맺는 나라는 동방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았다. 자고로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런데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천조대신을 숭배해 온 나라로서, 더구나 전체주의국가로서 재림기를 당하였었고, 또 앞에 논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를 혹독히 박해한 나라였던 것이다(후편 제5장 제4절 Ⅲ.3 참조) 그리고 중국은 공산화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모두 사탄편 국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한국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는 연유를 원리에 입각하여 다각도로 논증해 보기로 하겠다. 메시아가 강림하시는 나라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1. 이 나라는 탕감복귀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한국이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는, 원리적으로 보아 천주적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그러면 한민족이 이 기대를 세워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신다면 한국 민족은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애급에서 받아 나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제1 이스라엘이었고, 제1 이스라엘선민에게 이단자로 몰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받들고 제2차로 복귀섭리를 계승해 나온 기독교 신도들이 제2 이스라엘 선민이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7장 25절이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노아 때와 같이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실 것으로 예언하신 것과 같이, 그는 제2 이스라엘 선민된 온 기독교 신도들에게도 이단자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에 의하여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마치 하나님이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버리셨듯이, 재림하신 예수님을 핍박하는 기독교 신도들도 버리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마태복음 7장 23절). 그렇게 되면 재림주님을 받들고 하나님의 제3차 섭리를 완수해야 할 한국민족은 제3 이스라엘 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1 이스라엘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애급에서 400년간을 고역하였다. 그와 같이 제2 이스라엘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세계였던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 이겼다. 따라서 한국 민족도 제3 이스라엘선민이 되어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편의 어떠한 국가에게서 40수에 해당되는 연수의 고역을 당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본제국에 속방되어 박해를 당한 40년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한민족은 어떤 경위로써 일본제국 밑에서 40년간의 고역을 당하게 되었던가 ?
1895년 황궁에 침입하여 왕비를 학살하는 등 잔학무도한 일을 자행하기도 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인 침략의 손길을 을사보호조약에 의하여 뻗쳐졌었다.즉 1905년에 일본의 이등박문과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하여서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본제국의 외무성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한국에 그 통감을 두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들을 두어 일체의 내정을 간섭함으로써, 일본은 사실상 한국으로부터 정치, 외교, 경제등 주요 부문의 권리를 박탈하였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을사보호조약이었다.
서기 1910년, 일본이 강제로 한국을 합병한 후로는 한국민족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투옥 학살하였고, 1919년 3월1일 한국 독립운동시에는 전국의 도처에서 수많은 양민을 살육하였다. 더구나 1923년에 일어났던 일본 관동대진재시에는 그들이 터무니없는 모함을 조작하여 동경에 거주하던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하기 부지기수였다.
한편 수다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학정을 견디지 못하여 기름진 고국산천을 일본인들에게 내주고, 자유를 찾아 황막한 만주벌판으로 이민하여 와신상담의 시련을 쌓으며 조국 광복에 진력하였었다. 일군은 이러한 한민족의 여러 부락을 찾아다니며 노인에서부터 유아에 이르기까지의 전동민들을 한 건물 안에 감금하고 방화 몰살하였다. 일본은 이와 같은 학정을 그 제국이 멸망하는 날까지 계속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3·1독립운동에서 혹은 만주벌판에서 쓰러진 민중은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거니와, 더구나 제정 말기에는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신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죽이었다. 이뿐 아니라 8·15해방 직전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기독교 탄압정책은 실로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천황이 제2차 대전에서의 패전을 선언함으로써 한국민족은 드디어 그 굴레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한국민족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 이스라엘 선민이 애급이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 않는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독립운동이 주로 국내외의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므로, 박해를 당한 것이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조세계를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으므로, 사탄이 타락한 아담과 그 후손을 앞세우고 그 축복형의 비원리세계를 먼저 이루어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뒤를 따라 이 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여 나오셨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면 이 세계는 틀림없이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된다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타락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복귀하시려고 재림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가 재림하실 나라를 중심하고 공산세계를 하늘편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한국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일선인 동시에 사탄이 가장 미워하는 일선이 되어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은 여기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니,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이다. 즉 한국의 삼팔선은 이러한 복귀섭리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치선에 그 판가리의 조건으로 놓여지는 것이 제물이다. 그런데 한국민족은 천주 복귀를 위하여 이 일선에 놓여진 민족적인 제물이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야 했듯이 이 민족적인 제물도 쪼개야 하므로, 이것을 삼팔선으로 쪼개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족으로 갈라 세운것이다. 따라서 이 삼팔선은 민주와 공산의 최일선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의 최일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팔선에서 일어났던 6·25동란은 국토 분단 기인한 단순한 동족상쟁이 아니라 민주와 공산 두 세계간의 대결이었고,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6·25동란에 유엔의 여러회원 국가들이 동원되었던 것은, 이 동란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한 세계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 섭리의 뜻에 맞추어 조국 광복의 역사에 가담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인간시조가 타락될 때에 하늘편과 사탄편이 한 점에서 서로 갈렸기 때문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도 또한 한 점에서 갈라져서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부디쳐 내려왔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세계의 것으로 각각 분리됨으로써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결실되었고, 이것들이 다시 한국을 중심하고 세계적인 것으로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사상, 정치와 경제 등 모든 것이 한국에서 마찰되고 충돌되어 큰 혼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것이 세계에로 파급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영계에서 벌어진 이러한 현상이 복귀섭리의 주체인 한국을 중심하고 실체적으로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더 나아가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해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말씀하신대로, 이러한 혼란이 오는 것은 새로운 질서의 세계가 올 것을 보여주는 전조임을 알아야 한다.
일찍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그 재림하실 곳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고 대답하셨다(누가복음 17장 37절). 하나님의 일선이요 또한 사탄의 일선인 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이 맞부딪치게 되므로, 사망의 무리를 찾아서 독수리로 상징된 사탄이 이 땅으로 모이는 동시에 생명의 무리를 찾는 주님도 이 땅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3. 이 나라는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기 위하여는 먼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사탄이 인간을 주관하게 됨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대립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서러워하시며, 패역무도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악세계를 해매셨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하늘을 반역하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원수 사탄에게 희생시켰으며, 나중에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내주시는 설움을 당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하루같이 서러워하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사탄세계와 싸우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민족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서러워하시는 부모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어 충효의 길을 가는 자식이 어떻게 그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민족은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으로 섬으로써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1 이스라엘도 고난의 길을 걸었고, 제2 이스라엘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 나왔으니, 제3 이스라엘 된 한민족도 응당 그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한민족이 걸어 나온 비참한 역사노정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걷지 않으면 안 될 마땅한 길이었던 것으로, 실상 그 고난의 길이 결과적으로 한민족을 얼마나 큰 행복으로 인도한 것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이 되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선한 민족이어야 한다. 한국민족은 단일 혈통의 민족으로서 4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졌고, 고구려 신라시대 등 막강한 국세를 자랑하던 때에도 침공해 온 외세를 밀어내는 데 그쳤을 뿐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었다. 사탄의 제1근성이 침략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한민족은 하늘편인 것이 분명하다. 하늘의 작전은 언제나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서 승리를 거두어 나온다. 그러므로 역사노정에서 수 많은 선지자들과 선인들이 희생을 당하였고,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나, 결과적으로 승리는 하늘 것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도 공격을 한 것은 사탄편이었으나, 매양 승리는 하늘편으로 돌아갔다. 이와 같이 한민족도 역사 이래 수 많은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민족이 하늘편에 서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함이었다.
한민족은 선천적으로 종교적인 천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종교적인 성향은 언제나 현실을 떠난 곳에서 현실 이상의 것을 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민도가 대단히 낮던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천사상이 강하여, 부질없이 자연을 신화함으로써 거기에서 현실적인 행복을 구하는 따위의 종교는 숭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민족은 자고로 충·효·열을 숭상하는 민족성을 가지고있 는 것이다. 이 민족이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거족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충·효·열을 숭상하는 민족성의 힘찬 저류에서 나온 성향인 것이다.
4. 이 나라에는 예언자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한민족에게 내린 뚜렷한 예언자의 증거로서, 첫째 이 민족은 계시에 의하여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1이스라엘 선민이 예언자들의 증언을 따라(말라기 4장 2∼5절, 이사야 60장 1∼22절) 장차 메시아가 왕으로 오셔서 왕국을 세우고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을 믿고 있었으며, 제2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의 재림을 소망으로 하고 어려운 신앙의 길을 걸어나온 것과 같이, 제3 이스라엘 선민된 한민족도 이조 500년 이래, 이 땅에 의의 왕이 나타나서 천년왕국을 건설하고 세계만방의 조공을 받게 된다고 하는 예언을 믿는 가운데서 그 때를 바라보며 고난의 역사노정을 걸어 온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정감록 신앙에 의한 한민족의 메시아사상이다.
한국에서 새로운 왕이 나온다는 예언이기 때문에 집권자들은 이 사상을 막아 왔고, 더구나 일제시대의 집권자들은 이 사상을 말살하기 위하여 그 책들을 불태우는 등의 탄압을 가해 왔으며, 또 기독교가 들어온 후 이 사상은 미신으로 몰려 왔었다. 그러나 한민족의 심령 속에 깊이 박힌 이 메시아사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면하게 흘러 내려온 것이다. 이제 알고 보니 한민족이 고대해 온 의의 왕 정도령(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라는 뜻)은, 바로 한국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한 한국식 이름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 한국 안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장차 메시아가 한국으로 재림하실 것을 정감록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 책의 많은 예언이 성서의 예언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수 많은 학자들이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이 민족이 믿고 있는 각 종교의 도주들이 모두 한국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계시를 그 신도들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전편 제3장에서 자세히 말한 바이지만, 문화권 발전사로 보아도 모든 종교는, 하나의 기독교로 통일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므로, 끝날의 기독교는 지금까지의 수 많은 종교의 목적을 완성해 주는 최종적인 종교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중심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그 모든 종교의 교조들이 지상에서 이루려 하였던 도의 목적을 일괄하여 완성하기게 되기 때문에, 재림주님은 사명으로 보아 그 모든 교조들의 재림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전편 제5장 제2절 Ⅳ). 따라서 여러 종교에 있어서 계시에 의하여 한국에 재림할 것으로 믿겨지고 있는 그들의 교조는, 각각 다른 분들이 아니라 사실은 장차 오실 재림주님 한 분일 뿐인 것이다. 즉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불교에서는 미륵불이, 유교에서는 진인이, 천도교에서는 최수운이, 그리고 정감록에서는 정도령이 나타나는 것으로 교단마다 각각 다른 계시를 받아 왔던 것이다.
셋째는, 예수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영통인들의 신령역사가 우후의죽순과 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을 물 붓듯 하시마고 약속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그대로 오늘의 한민족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수도자들이 잡영계로부터 낙원급 영계에 이르기까지의 여려 층의 영인들과 접촉하는 가운데서, 각기 주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명확한 계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잠들고 있는 것은 현 기독교계의 지도층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 당시에 전성술자들과 목자들은 계시에 의하여 메시아강림에 관한 소식을 알고 있었던 반면에, 누구보다도 먼저 이것을 알았어야 할 제사장들과 교법사들은 영적인 무지로 인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복음 11장 25절)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시 유대교계의 지도층의 영적인 무지를 개탄하시는 동시에, 무식하나마 어린이들 같이 순진한 신도들에게 하늘의 일을 교시하여 은혜를 내려주신 것을 감사하는 말씀이었다. 그 때와 동시성의 시대인 오늘의 한국 교계에 있어서도 그와 동일한 사실들이 더 고차적인 것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하나님은 어린이같이 순진한 평신도층을 통하여 끝날에 관한 하늘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계시로써 알려주시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내용을 발표하면 교직자들에게 이단으로 몰려 추방을 당하게 되므로 그에 관하여는 일체 발표하지 않고 비밀에 붙이고 잇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계의 실정이다.
마치 제사장과 교법사들이 그러했듯이 오늘의 많은 기독교 지다자들은 성서의 문자를 풀이하는 지식을 자랑하고, 많은 신도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것으로 낙을 삼으며, 그 직권행사에 만족하고 있을 뿐, 끝날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전혀 모르고 있으니 실로 이보다 더 통탄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5. 이 나라에서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한다.
위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전편 제3장 제5절 Ⅰ), 인간의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하여 나온 종교와 과학 또는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하나의 과제로서 해명되어야만, 인생의 근본문제가 모조리 풀려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루셔야 할 세계는 과학이 최고조로 발달된 세계이어야 하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종적인 역사노정에서 발달해 온 모든 문명도, 재림하시는 주님을 중심한 사회에서 횡적으로 일시에 모두 복귀되어 최고도의 문명사회를 이루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유사이래 전 세계에 널려서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 따라서 정신과 물질 양면의 문명이 한국을 중심하고 모두 하나의 진리 밑에 흡수되고 융합되어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상세계의 것으로 결실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육지에서 발달한 모든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애급에서 발생한 고대의 대륙문명은 그리이스, 로마, 이베리아 등의 반도문명으로 옮겨졌고, 이 반도문명은 다시 영국의 도서문명으로 옮겨졌으며, 이 도서문명을 다시 미국의 대륙문명을 거치어 일본의 도서문명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이 문명의 순례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한국에서 반도문명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둘째로, 하천과 해안을 중심한 문명도 한국이 있는 태평양문명으로 결실해야 된다. 나일강,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등을 중심하고 발달한 하천문명은 희랍, 로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지중해를 중심한 문명으로 옮겨졌으며, 이 지중해문명은 다시 영국, 미국을 중심한 대서양문명으로 옮겨졌고, 이 문명은 또 미국, 일본, 한국을 잇는 태평양문명으로 결실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기후를 중심한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되어야 한다. 기후를 중심하고 보면 모든 생물의 활동과 번식은 봄에서부터 시작되어, 여름에는 무성하고 가을에는 결실하여 겨울에는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춘·하·추·동의 변전은 해(년)를 두고만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보더라도 아침은 봄, 낮은 여름, 저녁은 가을, 밤은 겨울에 각각 해당되는 것이며, 인생 일대의 유년·청년·장년·노년도 그렇다 하겠으며, 또 역사의 전 기간도 이렇게 짜여 있는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이 이러한 절후적인 조화의 원칙으로써 피조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남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한 시대는 봄 절기와 같은 때였다. 따라서 인류의 문명은 에덴의 온대문명으로 시작되어 여름 절기와 같은 열대문명으로 옮겨지고, 다음으로는 가을 절기와 같은 양대문명으로 옮겼다가, 마지막으로 겨울 절기와 같은 한대문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야만인으로 떨어지면서 온대문명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열대에서 원시인의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애급대륙을 중심한 열대문명을 먼저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문명은 대륙에서 반도와 도서로 옮겨져서 양대문명을 이루었고, 이것이 다시 소련으로 넘어가 한대문명까지 이루게 되었다. 이제는 새 에덴의 온대문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니, 이것은 응당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할 한국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제4절 동시성으로 본 예수님 당시와 오늘
예수님의 초림시와 재림시는 섭리적인 동시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정은 예수님 때에 유대교를 중심하고 벌어졌던 모든 사정들과 흡사하다.
이러한 실례를 들어 보면, 첫째로 오늘의 기독교는 유대교와 같이 교권과 교회의식에 붙들려 있는 한편 내용이 부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과 교법사들을 중심으로 한 지도층은 형식적인 율법주의의 노예가 되어 그 심령생활이 부패하였으므로, 양심적인 신도들일수록 심령의 갈급을 채우기 위하여 이단자로 몰리던 예수님을 벌떼 같이 따라다녔던 것이다. 이와같이 오늘의 기독교에 있어서도 교직자를 비롯한 지도층이, 그 교권과 교회의식의 노예가 되어 심령적으로는 날로 암매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독실한 기독교 신도들은 이러한 환경을 벗어나 신앙의 내적 광명을 체휼하려고 참된 길과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 산과 들로 헤매고 있는 실태인 것이다.
다음으로 오늘의 기독교인들도 예수님 초림 때의 유대교인들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들이 먼저 주를 핍박하게 되리라는 것은 위에서 이미 상론한 바와 같다. 예수님은 예언자들에 의한 구약성경의 말씀을 이루시고 그 터전 위에서 새 시대를 세우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는 구약말씀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시지 않고, 새 시대를 위한 새 말씀을 주셔야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제사장과 교법사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모두 구약성경의 문자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비판하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차질로 인하여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는 결과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목적도 기독교 신도들이 닦아놓은 신약시대의 영적 구원섭리의 터전 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시려는 데 있는 것이기 때문에(요한계시록 21장 1∼4절), 장차 그가 재림하시면 이미 2천년전 옛날에 주고 가셨던 신약의 말씀을 되풀이하시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새 말씀을 주실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성서의 문자에 붙들려 있는 오늘의 기독교 신도들은 초림 때와 같이 재림주님의 언행을 신약성경의 문자가 보여주는 범위 안에서 비판하게 될 것이니, 결국 그를 이단자로 몰아 핍박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예수님이 그가 재림하실 때에 먼저 많은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누가복음 17장 25절).
한편 또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계시나, 재림하셔서 주실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초림 때와 똑같은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초림 때에 있어 하나님은 메시아가 오셨다는 소식을 제사장이나 교법사들에게는 주시지 않고 이방의 점성술자와 순진한 목자들에게 주셨던 것이니, 마치 친 자식이 무지하기 때문에 의붓자식에게 뜻을 준 것과 같은 격이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도 진부한 신앙태도를 묵수하고 있는 오늘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보다는 도리어 평신도들이나 그들이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이교도 혹은 양심적으로 사는 불신자들에게 먼저 계시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초림 때에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이 선민인 유대교의 지도층이 아니고 그 하민이나 이방인들이었던 것과같이, 예수님의 재림시에도 선민 된 기독교의 지도층들보다 평신도나 비기독교인들이 먼저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예비한 잔치에 참석할 자는 미리 청함받은 손님들이 아니고, 행길에서 만나는대로 불러들여진 사람들일 것이라고 개탄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마태복음 22장 8∼10절).
다음으로는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천국을 바라고 나선길로 해서 지옥으로 가게 될 신도들이 많을 것이다. 제사장과 교법사들은 하나님의 선민을 지도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오신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 가지고 솔선하여 그 선민을 메시아 앞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 사명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먼저 성전을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던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갈릴리 바닷가를 헤메시어 어부로써 제자를 삼으셨고, 또한 주로 죄인과 세리와 창녀 등 미천한 사람들을 대하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사장과 교법사들은 예수님을 살해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역적을 처단한 줄로만 알고 여생을 성직에 충성하여 경문을 외우고 십일조를 바치며 제사를 드려 곧장 천국에의 길로 달렸다. 그러나 결국 육신을 벗고서 다다른 곳은 뜻밖에도 지옥이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그들은 천국을 바라고 나선 길을 통하여 지옥으로 빗나가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끝날에도 그대로 일어날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누구나 다시 한번 자기 스스로를 심각히 되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 신도들은 저마다 천국에의 길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잘못하면 그 길이 바로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일찍이 끝날에 있어 주의 이름으로 사귀를 쫓고 모든 기사를 행할 정도로 잘 믿던 성도들을 대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장 23절)고 책망케 될 것으로 말씀하셨다.
알고 보면 오늘날과 같은 역사의 전환기에 살고 있는 성도들처럼 위험한 입장에 잇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만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같이 그 신앙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은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다니엘 12장 10절)고 하였던 것이다.
제5절 언어 혼잡의 원인과 그 통일의 필연성
인간이 타락되지 않고 완성되어 하나님을 머리로 하고 모두 그 지체가 되어 한 몸과 같은 대가족의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이 땅 위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생겨났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언어가 달라서 서로 통할 수 없게 된 것은, 결국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가 끊어지면서 인간들 상호간의 횡적인 관계도 끊어지게 됨으로써 오랫동안 서로 떨어진 지리적 환경 가운데서 서로 갈리어 다른 민족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당초에 같은 말을 쓰던 노아의 후손들이 갑자기 서로 말이 통할 수 없게 되어 혼잡을 일으켰던 성서의 기록이 있는데, 그 경위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손인 가나안족들이 사탄의 뜻을 높이려고 바벨탑을 높이 쌓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하늘편에 있었던 셈과 야벳의 족속들이 이 공사를 협조하였기 때문에, 저들이 서로 의사를 상통하지 못함으로써 사탄의 일을 돕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던 것이다 (창세기 11장 7절).
한 부모의 같은 자손으로서 똑같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름으로 인하여 서로 그것을 통할 수 없게 된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부모로 모시는 하나의 대가족의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언어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의 뜻을 높이려던 바벨탑으로 인하여 언어가 혼잡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탕감복귀 원칙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하늘탑을 중심하고 모든 민족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면 그 언어는 어느 나라 말로 통일 될 것인가 ?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배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부모되신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한국말을 쓰실 것이므로 한국어는 바로 조국어가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민족은 이 조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온 인류는 한 나라 말을 사용하는 한 민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