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고 싶은 아버지(말씀)

훈독왕 | 20170317164116

   모시고 싶은 아버지


이제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면 무엇을 갖고 찾아오실 것이뇨?

심정을 갖고 찾아오실 것입니다.

만일 이 세계를 대표할 수 있고 전 세계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어떠한 민족일 것이뇨?

하나님의 심정을 전통으로 세워 나오는 민족일 것입니다.

 

또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문화는 어떠한 문화일 것이뇨?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심정을 통하여 나오는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나오는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최후의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심정이 통하는 세계, 심정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최후의 목적의 세계를 찾기 전에는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짐을 풀고 영원한 안식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을 갖고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정을 다하여 만나고 싶은 아버지,

정성을 다하여 만나고 싶은 아버지,

뜻을 다하여 만나고 싶은 아버지,

그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대하고,

그 아버지와 세계 이상의 가치를 즐길 수 있고,

그 아버지를 직접 대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아버지를 모시는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한번 반성해 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로 기울어지고 있으며, 여러분의 몸은 어디로 기울어지고 있으며, 여러분의 생활은 어디로 기울어지고 있으며, 여러분의 이념은 어디로 기울어지고 있으며, 여러분이 모시고자 하는 하나님은 지금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과 같이 있어야 되고,

여러분의 몸과 같이 있어야 되고,

여러분의 생활과 같이 있어야 되고,

여러분의 환경과 여러분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념과 같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같이 있다 할진대 여러분의 말은 하나님의 말을 대신할 것이며,

여러분의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을 대신할 것이며,

여러분이 사는 생활은 하나님의 생활을 대신할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다 할진대 여러분의 마음과 몸과 생활은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 계십니다, 최고의 자리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감정이건 의식이건 전체가 아버지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를 위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버지를 모시는 자는 어떠한 자냐?

아버지를 통하여서 살고,

아버지를 통하여서 죽고,

아버지를 통하여서 행동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자기를 통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셔야 할 끝날의 성도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생활해야 합니다.

밥을 먹으나 자나 깨나 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그 모든 것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해야 합니다.

이것은 관념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체휼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 그러면 아버지의 소원은 무엇일 것이뇨?

내 개체가 아버지의 소원이 되어 있습니다.

내 한 개체가 소원인 동시에 나를 중심삼은 가정이 소원이요, 가정을 중심삼은 사회가 소원이요, 사회를 중심삼은 세계가 소원이요, 세계를 중심삼은 하늘땅이 소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버지 앞에 효자가 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세밀한 분야까지 아버지와 같이 의논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아버지와 같이하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왜 불행했느냐?

지금까지 하나님이 왜 탄식했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고생할 때 같이 고생해 주는 아들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생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신이 고생할 때 같이 고생해 주는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 고생도 감사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입니다.

 

슬픔과 고통을 같이 할 수 있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들이 견디기 어렵고 넘어가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위로해 주시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사망이 부딪쳐 들어오는 고통의 자리에 동참하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사망을 초월할 수 있는, 사망의 권위를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고통받을 때 같이 고통받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붙안고 나오시는 하나님은 혼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혼자 억울함을 당하고, 혼자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이 슬퍼할 때 그 슬픔을 같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고통이 심했고, 슬픔이 심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끝날,

이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사망의 물결이 휩쓸어 친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막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사람,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고통 가운데에서 뒤넘이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 진대

그는 가치적인 존재가 될 것이요,

하나님의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될 것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낙망하거나 슬퍼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품고 그런 자리에 처해 있는 아들딸을 권고하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을 모셔야 되겠습니다.

 

모시는 데는 어디서부터 모셔야 되느냐?

기쁨의 자리에서 모실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슬픔을 붙안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자리에서부터 모셔야 됩니다.

그런 참다운 아들딸을 찾지 못하여 수고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같이 슬퍼하고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나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비로소 소망의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부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스러운 자리에 동참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자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이 땅 위에서 제일 슬픈 자리,

제일 고통스러운 자리,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자리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하나님과 더불어 고통 당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아야만,

영원한 이상세계가 이루어진 그 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영원무궁토록 아들로서 하늘땅 앞에 자랑하고,

여러분 자신들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한 여러분은 저나라에 가서도 한 면밖에 통할 수 없습니다.

천상에 가더라도 제일 어려운 자리에 갑니다.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의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소망 가운데에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 말고 슬픔과 고통이 물결치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을….

소망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아들딸은 많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아들딸은 심히 적습니다.

심히 적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모시는 자는 어떠한 자냐?

기쁨과 소망 가운데에서 모시는 자가 아니라 고통 가운데에서 모시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주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줌으로써

하나님께서 친히 붙들고 내 아들아, 내 딸아, 내가 있나니 참고 견디며 싸워라 하고 위로해 주는 자입니다.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한 하나님을 영원한 내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집 11권 9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