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선한 자란?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를 좋아해요?
선생님 주의가 아니라고요. 하나님 주의라고요.
하나님 주의인데, 무슨 주의냐?
하나님과 사랑하기 위한 주의입니다.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는 주의, 이것을 꿈꾸는 패들이 통일교회 패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통일시킬 수 있는 원칙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야 되느냐?
개인에게 나타나야 되고, 가정에 나타나야 되고 민족에 나타나야 되고, 국가에 나타나야 되고, 세계에 나타나야 되고, 하늘땅에 충만한 사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 앞에서는 덜 좋은 것을 버리고 바꿔쳐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패턴을 따라서 바꿔쳐야지 자기 멋대로 바꿔쳤다가는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칙은 그래요.
하나님의 패턴을 따라 가지고, 공식적인 원칙에 따라서 그렇게 바꿔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런 자리, 그런 환경에 서지 못했으면서도 바꿔쳤다가는 전체가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그건 자체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가정을 버리고 나와라, 나라를 버려라.’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못 가진 나라, 중심을 못 가진 가정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다! 도리어 없었던 것이 좋을뻔하였도다!
가룟 유다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가 아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나쁠 뻔하였도다? 나쁠 뻔이요, 좋을 뻔이요?「좋을 뻔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대표하여 하나의 표본적인 길, 즉 뜻의 방향과 목적을 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중심이 없고 방향을 모르는 곳에서 중심을 찾고 방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 지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는 것은 흘러가버리지만 중심이 있는 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으면 아무리 큰 환경도 흘러가버리지만 아무리 작은 개인도 중심에 방향이 일치되면 남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역사는 수습되기 때문에 수습 될 수 있는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선(善)입니다.
중심존재가 되려면 대상을 위해서 있어야 총각 처녀들의 얘기를 자꾸 하면 이상한 기분이 나는데, 할 수 없다고요.
사람은 총각 처녀부터 시작되니까 말이야.
처녀들은 참된 남자를 찾아 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요?
술 먹고 길거리에서 껄렁거리는 깡패는 싫지요?
참된 남자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참된 남자를 찾아갈 자격자가 되려면 내가 참된 여자가 되어가지고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여자가 됐어?
못 되었기 때문에 시집가려는 생각을 말라는 거예요.
남자도 참된 남자가 되어서 참된 여자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남자가 됐어?
그러니 시작부터 혼란이 벌어지는 거라고요.
‘ 아이구 나 죽는다. 내 이럴 줄 몰랐구만.’ 그런 요지경판이 사회에는 숱하게 많습니다.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의 길이 있어야 된다고요.
참된 남자와 여자들이 가는 길, 그게 있어야 될 게 아니에요?
‘참된 남자, 참된 여자가 가는 길, 그걸 부부라고 하느니라.
부부를 중심삼고 자녀를 낳아 가지고 가는 것을 가정이라고 하느니라.’
이렇게 되지요?
본래 주체라는 것은 대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것은 존재의 원칙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에 천도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제거당해야 할 운명이 되기 때문에, 그 운명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당하기 마련입니다.
쫓겨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복 받기 마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가해를 받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선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자리에 선 피해자가 악한 자리에 선 가해자에 대하여 불평하는 날에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참고 용서할 때는 악한 사람도 자기를 본받고 선하게 교육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윤리의 근본이요, 사회 질서의 원칙이 되어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고요. 그렇게 안 되어 있으면 세상은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선집 57권 249-254쪽)
(일부 중간 중간 중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