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과 우리의 생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루의 생활을 맞이하고 생애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생활 가운데서 선하고 악한 일이 결정되고, 이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과 사탄의 역사가 연결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뜻의 목적과 방향이 일치된 생활, 생애가 되어야 그러면 우리 하루의 생활에 있어서 선한 편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 과, 우리 개개인의 생활 가운데서 악을 어떻게 퇴치시켜 버리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의 길이라고 할 때 뜻은 막연한 뜻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뜻입니다.
그 뜻이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을 향해서 갈 수 있는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리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방향이 일치되지 않게 될 때 그 목적은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멀면 멀수록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대해서 우리는 더 각별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목적이 가깝다면 그 방향을 맞추기가 쉬울지 모르지만, 목적하는 바가 멀면 멀수록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 목적과 일치되는 결과를 얻기 위한 그 방향을 맞춰 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 목적이 눈 앞에 보인다면 방향을 무시하고, 방향을 생각지 않고 대번에 갈 수도 있지만 그 목적이 멀면 멀수록 그 방향이 애매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뜻 가운데는 개인적인 뜻도 있는가 하면 가정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민족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세계적인 뜻도 있을 것이고, 최후에는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천주주의라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이 하나될 수 있는 뜻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중심삼고 가고 있다면 우리 인간들도 그 목적을 달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우리가 가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바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 또 생활을 통해서 목적한 일을 성취시킬 수 있는 하루 하루를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 하는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그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에 대한 확실한 관점을 세워서 거기에 적중될 수 있는 방향,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어떻게 갖추어 나가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리 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방향이 어긋나면 그 목적과는 상관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적을 갖고 나설 때에는 언제나 방향의 일치라는 문제를 우리는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방향 일치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목적과 나는 직선상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과 나와는 언제나 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직선상에서 그 목적과 상대를 갖춘 자리에 서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오른발을 옮기고 왼발을 옮길 때, 그 목적과 직선으로 일치되는 자리를 취하지 않고는 반드시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벌써 한 발짝을 잘못 디디면 엇갈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바른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왼쪽으로 치우쳐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용을 취해 가지고 그 목적과 그어지는 직선상에서 일치화시킬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목적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직선을 무시하고 그 직선과 일치되지 못하는 시간적인 기대 위에 서게 되면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그 길은 이미 탈선이 되어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든가 혹은 보고 느끼는, 즉 오관을 통해 느끼는 데 있어서도 자기 홀로 느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 홀로 느낀다는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목적과 일치하는 방향을 가진 자리에서 느끼게 될 때, 그 자리는 공동적인 목적을 향하여 공동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방향을 취한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필코 같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엇갈리게 되면 하나님은 같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방향이 잘못되면 수고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협조하게 되면 협조한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로 소모가 되는 것입니다.
헛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서게 될 때는 하나님이 협조할 수 없고 같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난 이후 느끼는 모든 감각이나 동작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직선상에 귀일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점을 상실하게 될 때에는 뜻과 나와는 관계맺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57권 226-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