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혁명은 심정 혁명이다(말씀)

무지개 | 20170507124851

    마지막 혁명은 심정 혁명이다(말씀)

심정의 세계는 설명을 초월하고 견해를 초월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거기에는 무슨 관이 없습니다. 
관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조건이 있을 때, 즉 원인과 결과가 상대적인 위치에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세계에서의 원인이 되는 주체는 영원한 주체요, 결과가 되는 대상은 영원한 대상으로서 둘인 동시에 하나이니 관이 있을 수 없지요. 
심정을 통해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런 심정의 세계가 이 땅 위에 벌어지는 날에는 천지가 되살아날 것입니다. 

인류 앞에 남아 있는 최후의 혁명 

하나님이 이상적인 창조주요, 인간을 대해서 만우주와 결탁한 영원불변의 발판을 만들고자 하신 창조목적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은 목적일 것이뇨? 심정입니다. 

보고 또 보고 영원히 봐도 좋은, 싫다는 말을 생각할 수도 없는, 눈 하나를 보고도 영원히 좋아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인간을 지었어야 멋진 하나님 아닙니까? 
이러한 심정으로 충만된 세계가 천국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어떠한 곳인지 알아요? 

나의 존재를 대하여 천년을 감상해도 다 감상할 수 없는 곳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본연의 동산에서 본연의 주인을 맞이하여 본연의 심정을 통하고 천정과 인정으로 결속하였더라면 세계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도 사랑 때문에 죽고 살고 야단인데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맺으면 어떻겠습니까? 
죽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원칙과 기준을 잃어버린 인류는 허덕이게 되고 통곡하게 되며 방황하고 유린당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망하면 하늘 원망, 땅 원망, 역사 원망, 시대 원망…. 

만사를 원망으로 시작하여 원망으로 끝맺게 됩니다. 

그러나 목적을 가진 천륜이 남아 있고 우리가 모르는 깊은 심정의 기반 위에 천도를 세워 나가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접촉할 수 있는 그 면이 동에 있느냐 서에 있느냐, 남에 있느냐 북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환경적인 차이, 혹은 거리가 멀어서 지금 당장은 접할 수 없지만 세계적인 끝날에는 만민이 공동으로 찬양할 수 있고 공동으로 접할 수 있는 한 때가 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전부 불심판으로 죽여 버린다고요? 
죽여 버리려면 벌써 죽였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 둘만 있을 때 죽여 버렸으면 오죽 좋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시대적인 각성을 하고 미래적인 소망을 품고 각성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가만히 보면 철학도 종교도 예술도 과학도 다 끝까지 왔습니다. 

이제 인류 앞에 최후의 혁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혁명일 것인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의 양심 혁명, 심정 혁명입니다. 
이것을 제시할 수 있는 천지운세가 반드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 행차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선집 10권 170-1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