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더불어 상관되게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식을 가져라(말씀)
절대자의 사랑을 체득할 수 있는 그런 경지가 있다면 그 경지는 둘의 경지가 아니라 하나의 경지일 것입니다. 동이라든가, 서라든가, 남이라든가, 북이라든가 하는 방 향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것을 찾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 스스로 빈 것을 느끼고 나 스스로 충만되지 못한 사실을 느끼던 마음을 가득 채워 줄 뿐만 아니라 넘쳐흘러서 우주와 더불어 상관 되게 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런 무한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닌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절대적인 사랑과 일 대 일로 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 우주를 바라보게 될 때 그 우주는 자기 품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서로 먼 거리에 있다 하더라도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상관관계에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무한한 사랑이 이 땅 위에 있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 사랑은 역사가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시대가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올 미래도 그 사랑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경지가 우리에게 필히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흔히 말하기를 자아 완성이라고 합니다. 즉 인생을 완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을 완성해서 뭘 할 것이냐? 완성한 사랑과 접해야 됩니다. 완성한 사랑과 접한 다음에는 뭘 할 것이냐? 자신이 무한한 행복의 요인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무한한 행복의 요인을 나 자신이 갖는다는 것은 무한한 사랑과 끊을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자 하나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식은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환경에 가거나, 아무리 극한 기 쁨의 자리에 가더라도 그 사랑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한 그 자식의 마음은 딴 데로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항상 그 부모의 품에 있는 것이요, 그 부모의 자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어떠한 자리에 가더라도 단 하나밖에 없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모체로 삼고 일생을 살아간다 할진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선집 33, 7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