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탕감복귀의 소원의 한계점이 어디냐? 어디예요?
개인을 중심삼고 복귀하는 거예요? 개인복귀예요?
개인복귀 했더라도 가정을 못 넘으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120년 동 안 수고한 노아도 일시에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
걸려 넘어갔다구요.
아브라함도 일생 동안 수난의 국경을 넘으면서 집시의 조상이 된 입 장에 섰지만, 한번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
넘어갔다구요.
모세가 반석을 잘못 침으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갔어요, 안 넘어갔어요?
그걸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알지 못해도 걸리는 것이요, 알고도 행치 못하면? 걸려요, 안 걸려요? 「걸려요.」
알고 행치 못해도 걸리는 것이요, 알지 못하고 행치 못 해도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행치 못해서 걸리는 것보다도 모르고 행치 못해서 걸리는 것이 못하다?
「낫다!」 그건 아는구만.
그러니 ‘ 차라리 원리를 몰랐으면 좋을 뻔했다.’ 거예요, 행치 못할 때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성경 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했습니다.
‘ 따르려면 자기를 이기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했습니다다.
자기를 이기라는 것이 뭐예요?
뭐 밥 먹는 것을 이기라는 거예요? 고통의 길을 이기라는 거예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생명을 이기고 나서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타락한 세계에서 이어받은 생명을 이기고 나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생명을 죽이는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거라구요.
그거라구요. 그거라구요. 그러지 않고는 가지 못한다구요.
그런 진정한 의미의 내용에 입각한 참다운 신앙자를 하나님이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수천년의 한스러운 역사를 연장시켜 나왔던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4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그러한 사상을 갖고, 그러한 심정과 일치된 사상을 가지고 실천하면서 당당코 자신 있게 갔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영적이나마 하나님의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개인의 길, 가정의 길, 국가의 길, 세계의 길을 맞이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것이 영육을 중심삼고 완전히 완결 짓지 못했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재차 전개해 가지고 이것을 탕감복귀하고 책임분담을 하라고 세계 완성을 표준해서 보낸 것이 재림주님입니다.
이것이 사명이 아니겠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 많은 책임분담의 노정을….
통일교회를 믿는 여러분들이 ‘ 책임분담을 완수하겠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 아!, 5퍼센트의 책임 완성이다.’ 하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해요?
5퍼센트의 책임 완수하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 전에 그것을 하려면 반드시 탕감 복귀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탕감복귀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물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문 선생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역사적인 내용 이 그렇게 돼 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 아니냐는 거예요.
자, 이 나라가 망하게 될 때, 망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는 무리가 없어 가지고는 망하는 나라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있어요?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망하는 인간이 다시 회생되기 위해서는,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의 과정을 기어이 거쳐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는 그런 역사가 없어 가지고는 되짚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법도라구요.
물에 빠진 자가 나오려면 빠질 때의 힘 이상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려면 누군가 대신 죽는 이상의 힘을 투입하지 않는 한 살릴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정성이 있어야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탕감복귀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하나도 없나?
툭하면 탕감복귀예요?
그런 시시한 탕감복귀가 아닙니다.
그저 허허 웃으면서 하는 탕감복귀가 아니라구요.
눈을 부릅뜨고 생명을 가름하는 여기서 죽느냐 사느냐, 칼을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입장에서의 탕감복귀입니다.
보라구요.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이삭이 칼을 받는 자리에서 탕감복귀의 제물이 되었지요?
전부 그랬다구요.
양도 제물 되기 위해서는 칼을 받는 자리에서 탕감복귀했지요? 그렇지요?
예수님도 인류를 대신해서 속죄의 탕감복귀의 역사를 남기려니 십자가의 피 흘리는 자리에서….
그렇기 때문에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한 그게 뭐예요?
품는 거야, 버리는 거야?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는 데는 어디에서 버리느냐?
뭐, 길 가다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구요.
피 흘리는 자리에서 버리는 거예요.
원수도 그 이상의 원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가깝던 친구라도 죽을 자리에서 차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되면 그것이 친구요, 원수요?
그러면 당장에 원수가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죽을 자리에서 버렸으니 하나님과 예수님은 원수지요?
원수 중에서도 용서하지 못할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부활이 생겨났습니다.
그 원수를 원수시 않고, 죽을 자리에서 버리는데도 ‘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그것을 붙들었습니다.
그것을 붙듦으로 말미암아, 세상 같으면 원수로서 끝날 것인데 불구하고 붙들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원수가 아닌 새로운 차원의 길이 개척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만 어려우면 교회 불평하고, 협회장이 어떻고, 누가 어떻고 어떻고….
그렇게 입을 벌려 가지고 지껄이는 이런 아가리를 가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도 아니 라구요.
그런 것들은 통일교회 교인도 못 된다구요.
탕감복귀를 하는데 남을 비방해 가지고 탕감복귀의 길이 있어요?
남을 잡아 죽여 가지고 탕감복귀의 길이 있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내가 하나에서 백까지 희생해야….
그래서 어린양, 어린양…. 예수님은 어린양을 상징합니다.
양은 털을 깎더라도 가만히 있다구요.
딴 짐승 잡아다가 털 깎아 봐요, 가만히 있나.
그놈은 털 깎더라도 가만히 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목을 자르더라도 ‘ 음매! ’하고 죽는다 이거예요.
내가 보지는 못했으니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뭐, 다리야 버둥거리겠지요.
그렇지만 ‘ 왜 날 잡아!’하며 물겠다고 덤벼들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동물 중에 순하기로 대표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탕감복귀는 제물 없이도 된다? 「안 된다!」 왜 안 돼?
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무슨 죄?
본연의 아버지 어머니를 잡아먹은 죄다! 그런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다음에는 본연의 아버지 어머니의 살림살이할 수 있는 그 집을 파탄시킨 죄다!
사탄이 그랬다구요.
본연의 인류의 참다운 조상의 살림살이를 전부 다 근본적으로 파탄시킨 죄다!
그다음에는 그 후손, 그 나라를 파탄시킨, 본연의 나라를 망하게 만든 죄다!
그다음에는 본연의 세계를 파탄시킨 죄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고생하게 만든 건 둘째 치고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전부 다 유린해 버린 죄다!
그게 누구라구요?
타락한 천사장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타락한 천사장의 후손입니다.
늑대의 후손은 무엇이 된다구요? 「늑대 새끼요.」
새끼 늑대가 크면 늑대가 되지요.
새끼 늑대나 늑대나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니 자, 이놈들을 잡아다가 제사를 드리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나라를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려면 나라를 전부 다 잡아 죽여야 됩니다.
세계를 대신해서 탕감하려 면 세계를 전부 다 잡아 죽여야 됩니다.
전부 다 잡아 죽이면 어떻게 되느냐?
사람 종자가 없어집니다.
없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뜻이고 뭐고 못 이 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탕감조건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조건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조건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그냥 ‘ 하나님! 이것을 오늘의 탕감 아, 조건으로 드립니다.’ 해서는 안 된다구요.
조건물을 드릴 때에는 조건은 작지만 대등한 가치 이상이 되어야만 조건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참소합니다.
제물도 함부로 드리게 되면 지고지성(至高至聖)하신 하나님이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생명보다 더 정성을 들여 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은….
여러분, 세상에도 그렇잖아요?
서낭당에 제사할 때에도 소를 사러 간다 면 목욕재계하고 말이에요, 여러분은 그런 것 모르겠지만….
그 소는 무슨 소?
황소보다는 암소를, 암소도 새끼 낳지 않은 암소, 그것도 흠이 있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또 아무리 모양이 좋더라도 설사한 소는 안 되는 거라구요.
암만 잘생겼다 하더라도 병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입니다.
소 사러 간다 하게 되면 동네방네 전체의 사람이 다 기억이라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정성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한국 민족이 옛날 서낭당에서 제사하는 풍습이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것과 딱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소 잡아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에는 전 동네가 하나 되어서 정성을 모아 야….
사탄한테 제사를 바치는데도….
탕감법이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조건이라는 것은 그냥 그대로 함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노아가 방주를 조건물로 세우기 위해 120년 동안 정성을 들인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3대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유랑의 집시 생활을 수십년 동안 했습니다.
나그네 생활 방랑객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제물 되는 노정을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는 40년 동안 애급 궁중에서 생활을 했으며, 그것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미디안 광야에서 또 40년 동안 정성을 들이면서 오로지 민족만을 생각하고 민족을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자리에서 제물 된 입장에서 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조건물로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생명을 바치는 조건물이 제일 귀한 것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탕감복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탕감복귀 하기 위해서는 제물적인 조건이 필요한데,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들였어요?
정성들인 생각 나요? 생각 나?
엉터리들만 모여 있다는 거라구요.
생각대로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생각대로 한다고 하나님이 받아 줄 수 있나 이거예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조건물은 내 생명 대신입니다.
나 대신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조건물과는 완전히 하나되어야 되고 완전히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의 대상으로 대해 가지고 그것이 죽음을 당할 때, 같이 아픔을 느껴 가지고 속으로 울면서 제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잡아 제사 드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심정적으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갖춘 자리에서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제물을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선집 63권 326-3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