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부모의 날, 下 (제7회 부모의 날 말씀)

훈독왕 | 20190405102555

말씀선집 제16권 11편 



소망의 부모의 날

1966년 3월 22일(火) 오전 10시, 전 본부교회. 

* 이 말씀은 제7회 부모의 날(음력 3월 1일) 기념식에서 하신 말씀


〈말 씀〉


참부모를 중심삼은 선의 생활

참부모로 말미암아 아담과 해와가 소망하였던 역사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요, 부모의 날을 계기로 타락한 세계가 없어지고,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역적인 사탄이 차지한 세계적인 판도를 빼앗아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빼앗기 위한 싸움을 책임지고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이것을 위해 종교인들은 도를 닦아 나왔고 기도를 해 나왔습니다. 


이 땅 위에 인류의 아버지로 오셨던 메시아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했으니 다시 인류의 아버지가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종교인들은 기도를 해야 했고 도를 닦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시는 인류의 아버지를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과 대결하여 세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을 버리고 돌아섰지만, 나는 어떠한 폭풍우가 불어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세계적인 신념을 세워야 합니다. 즉 개인을 복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모든 것, 즉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 전체를 하나님편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곱가정이 하늘땅의 모든 복을 찾아올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던 심정으로, 혹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를 그리워하던 심정으로 아무리 시련과 고통이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독교가 지난날 아무리 대외적인 것을 갖추어 가지고 민족적·국가적·세계적인 터전을 닦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양자로서의 터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양자 가지고 만족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전인류는 참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입장에서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적인 것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형제들끼리 이 땅에서 하나되어 모든 것을 갖추어 나가야만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고 한 많은 역사의 모든 것을 청산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를 맞는 기쁨을 오색인종이 찬양하고 그 마음이 사랑으로 터져 나와 이 세계에 있는 수많은 고통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땅이 있다면 그 땅은 세계를 구해 낼 수 있는 곳이 될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참부모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들이 나타나서 아담과 해와로 말미암아 빚어진 한 많은 사연을 풀어 버리고 사탄권을 없애고 선의 세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언어가 통일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언어와 생활이 통일되어야 하며 문화 역시 통일되어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하고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념, 하나의 생활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 위에서 생활이 시작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통일된 생활을 해본 시대가 없었고 민족이 없었으니, 오늘날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터전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16-186)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날, 인류가 기뻐해야 될 날
  
성가 ‘하늘의 용사’ 4절에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라고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방에 있는 한국은 침략적인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유린하는 문화를 지닌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참부모는 어디까지나 역사를 보호하고 침략자를 없애는 참사랑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원래 그러한 법도를 세워서 인류 앞에 공헌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은 가인과 아벨의 원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형제가 형제를 품고, 형제가 형제를 대신하며, 친구를 위하여 죽음의 길로 나설 수 있는 마음들이 생겨나야 합니다. 만민을 구원하겠다는 박애 정신으로 세계 인류와 친할 수 있는 마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활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이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부모가 나와야만 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도 태어나는 한 날이 있듯이 이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한 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그날을 위해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부모의 날, 이 명사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이날을 맞기까지 말할 수 없는 눈물어린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민을 품어 줄 수 있는 부모지만 그런 부모의 날을 맞지 못해 역사적인 한이 맺혔으니 그날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길에서 ‘소망의 그날이 어서 오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사실상 피눈물나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 ‘아바 아버지여! 그날이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적인 사탄을 없애 버리고 역사적인 원수를 갚아 선의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그날을 그처럼 소망했던 것입니다. 그 소망의 한 날이 부모의 날인 것입니다. 그날은 하나님이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시는 날이요, 인류가 말할 수 없이 기뻐해야 될 날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슬픔을 체휼하지 않고는 기쁨을 체휼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를 역경의 길로 몰고 나오셨던 것입니다. 눈물과 고통의 길로 인도하셨으며 산골짜기로, 혹은 험산준령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러한 길을 마다했던 무리들은 전부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고이고이 받들고 걸어 나가며 본향의 땅을 찾아가는 사람, 이 길이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생활한 사람은 하나님이 이끄셨습니다. 


이러한 길을 십년을 걸었으면 그 십년이라는 세월은 한 많은 십년이요, 역사적인 해원과 더불어 동정할 수 있는 십년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를 뿌리신 것과 같은 십년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한 많은 사망길을 헤치고 나와 오늘 이날을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하고 인류가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찾아가는 것이 기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두고 가야 할 것입니다. 


본래는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된 사랑을 품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입지조건과 환경이 좋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와 인연을 맺은, 천천만대 영원한 법도를 갖춘 그러한 나라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터전이요, 영생의 터전입니다. 그곳에서 맺은 인연은 태어나서부터 죽어서까지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참부모가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대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법도도, 하늘의 터전도 참부모가 없이는 세울 수 없습니다. 죽어서도 참부모가 없이는 하늘의 법도를 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인류는 참부모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참부모를 통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기독교도 그러하고, 불교도 그러합니다. 유교 역시 참부모를 찾아가야 할 복귀의 운세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그러한 하나의 목적 기준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6-189) 
  
효자가 되려면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은 무엇이 다르냐? 살아 있다는 것은 햇빛을 받고 그 햇빛을 통하여 자라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기쁘면 산 사람이요, 심정적인 기준이 말라비틀어지고 자유가 구속된 것과 같이 괴로운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이루어질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울어 가는 해를 따라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동녘을 향하여 새날을 맞이할 수 있는, 떠오르는 햇빛을 첫 번째로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떠오르는 해를 따라서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통일교인인 것입니다. 


오늘은 부모의 날입니다. 여러분이 효자가 되려면 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가르침을 받아서 알고 있는지, 참으로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나와서 효자 효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오줌 누고 똥 누고 하는 어린애였습니다. 어머니의 젖을 깨물고 빨고 하는 어린애였습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 나왔습니다. 


이 세상에 최고의 철학이 있다면 부모 철학일 것입니다. 부모 철학이 최고라는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린애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전부 다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의 배를 통해 태어났지만 양자 양녀들입니다. 그러니 그 부모 앞에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부모가 되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만으로는 절대로 하늘의 자녀를 두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자녀를 두기 위해서는 분명히 하늘의 부모가 먼저 나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모가 나오기 위해서는 맏아들이 먼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맏아들이었던 가인이 천도를 배반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배반했던 가인의 노정을 거꾸로 밟아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까지 여러분은 전부 다 아기입니다. 아기예요. 그러니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고 무엇이 어떻다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기와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뱃속과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여 다시 나와야 됩니다. 


아기의 씨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있지요? 아버지에게는 뼛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뼛속을 통하고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아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뼛속과 어머니의 뱃속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가 재미있습니다. (16-191) 

가인 아벨을 중심한 탕감복귀노정

가인과 아벨은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쌍태로 있을 때부터 싸웠습니다. 베레스도 세라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부터 사탄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편 인물이 먼저 나왔던 것처럼 공산주의가 먼저 나왔습니다. 먼저 나와야 쫓겨 들어가지요. 그래야 하나님편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탄의 간섭을 받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의 복중에서부터 싸워 가지고 자라나는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복중에서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하지 않아야 메시아가 될 수 있습니다. 메시아에게는 역사적인 터전이 있고, 또 복중에서 자라나는 심령 기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원래 아기 때부터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태어난 메시아는 탕감노정을 걷게 되는데 먼저 법도대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여러분도 탕감노정을 걷기 위해서는 그와 마찬가지로 법도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부모를 만나 가지고 어린애가 되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법도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을 다 찾지 못했으니 복중의 아들을 제물로 삼아 그 아들을 아벨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가인적인 입장에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1960년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해 나오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한 형제가 보리밥을 먹으면 나머지 형제들도 보리밥을 먹어야 하고, 한 형제가 고생을 하면 나머지 형제들 모두가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모의 날을 기준으로 타락된 경로와 반대되는 경로를 거쳐 탕감복귀의 노정을 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복귀의 길을 가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가 이 길을 가야만 사위기대를 중심으로 한 탕감복귀노정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종교인인 우리는 여기에서 세계적인 기반을 이루기 위한,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한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민족의 핍박을 받고 인류의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세계적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싸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여러분은 오늘 부모의 날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으며, 여기에 동참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부모를 세워 공경해 보았습니까? 언제 사랑하는 부모를 가져 보았습니까? (16-192) 

천주가 화합하는 부모의 날이 되어야

오늘날 우리 교회가 나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천륜을 기반으로 해서 우리 교회가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기초를 닦는 역군입니다. 천적인 사명을 완결하기 위한 투사들인 것입니다. 


부모의 날은 어떠해야 되는가? 부모의 날은 통일교회만을 위한 날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을 위한 부모의 날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한 부모의 날, 그것으로도 그 뜻을 다할 수 없습니다. 천상천하, 온천주가 화합할 수 있는 한 날로서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원수들이 남아 있으니 그들을 전부 다 무너뜨리기 위한 탕감 계획이 먼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부모의 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부모의 날을 발전시켜서 종족적인 부모의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던 것이고, 종족적인 부모의 날을 발전시켜서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부모의 날을 국가적인 부모의 날로, 국가적인 부모의 날을 세계적인 부모의 날로, 세계적인 부모의 날을 천주적인 부모의 날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해야 할 싸움이 아직도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7년 고비를 중심하고 가야 할 길, 즉 세계 무대로 향한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이냐? 세계적인 공산주의가 국가적인 공산주의로, 국가적인 공산주의가 민족적인 공산주의로 떨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것이 자꾸 갈라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가인형과 아벨형 국가로 나뉘었는데, 앞으로는 가인형인 공산주의끼리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편에서는 절대적인 개인주의가 벌어지게 되고, 하나님편에서는 세계주의를 부르짖게 되어 결국은 하나로 결속하게 될 것입니다. 


즉 이렇게 세워진 하늘편의 세계에서는 이 세계는 내 세계요, 이 땅의 나라는 내 나라요, 이 인류는 내 인류라고 하며 전체의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주의의 세계가 가까워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탄에게 잃어버린 것을 반대의 경로를 밟아서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이루게 된 개인에서부터 종족·민족·세계까지 순서를 거꾸로 해서 찾아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세계적인 것을 준비해서 사탄세계와 싸워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이러한 것이 출발되었느냐? 196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중국과 소련이 분립하기 시작하여 세계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이념은 공산주의 이념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으로 이 이념적인 세계의 승패를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람을 중심삼고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복귀되어야 합니다. (16-194)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 서려면

부모의 날, 이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또한 이 한 날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해 왔습니다. 인간이 이런데 하나님은 이날을 얼마나 기다리셨겠습니까! 이날을 맞이한 승리한 아들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까지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형제까지 잃어버리게 되었기에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부모를 찾아야 되고, 아벨을 찾아야 됩니다. 어떠한 아벨을 찾아야 되느냐? 가인에게 매맞아 죽은 아벨은 안 됩니다. 살아서 사탄과 싸워 승리한 아벨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 가정의 아들로서 설 수 있는 것이며, 그래야만 악과 선을 심판할 때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여 심판의 권한을 갖는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부모를 찾았습니까?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 섰습니까?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된 부모가 여러분 앞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여러분이 참된 자신을 찾아 세울 수 있습니다. 축복권 내에 들어가 있는 축복가정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통일교회의 축복을 받아야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종적인 인연을 갖추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부모가 나와야 됩니다. 맨 처음에 그런 부모를 거치고 그 다음에는 부모가 사랑하는 식구를 거쳐야만 됩니다. 앞으로 때가 오면 모든 것이 원리원칙대로 시행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러한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능력을 알아야 됩니다. 형제들을 알기 전에 부모를 알아야 됩니다. 그런 다음 동생을 사랑해야 됩니다. 동생은 아벨이 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모든 아벨적인 사람들을 기쁨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형제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어려운 모든 것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 부모에 대한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불원간 이에 대한 것을 밝혀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원리원칙적인 기준에 입각해서 볼 때에 오늘날 이 세계는 단순한 세계가 아닙니다. 이 세계는 복귀해야 될 세계인 것입니다. 원래는 하늘 부모로부터 인연이 맺어져 가지고 시작된 문화세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사탄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날을 맞이하는 가운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고, 기쁨을 느끼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날은 자녀가 태어날 날을 하늘땅 앞에 공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로서 아담과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만물을 주관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심정적인 인연에 의해 복귀의 노정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부모를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선 다음에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축복을 받는 자녀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날은 참으로 의의가 깊은 날입니다. 부모의 날이 세워짐으로써 자녀의 날이 있게 되고, 자녀의 날이 있음으로써 만물의 날이 있게 됩니다. 부모의 날을 기준으로 하여 3대 날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16-196) 

하나님의 날까지 찾아 세우자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슨 날이 있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날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했으니 이젠 하나님의 날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부모의 날과 더불어 하나님의 날은 그때부터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모두 하나님의 심정을 부모의 심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네 것이자 내 것이다’ 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에서는 ‘네 것이자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것이자 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어서 아담으로부터 부모의 날이 세워졌더라면 그날이야말로 천하가 기뻐할 날이요, 온 천하만상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을 모셔 놓고 부모의 날과 만물의 날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영광스러운 하늘의 날들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천상천하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합니다. 한 많은 역사의 끈을 끊어 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출발할 수 있는 그날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쌍수를 들어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권 내로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통일교회 교인 여러분이 져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싸울 것이냐? 따뜻한 심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피와 땀과 눈물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일년간 더 싸웁시다. 일년간 이 나라 이 민족에게 편만해 있는 악의 세력을 제거하기에 전력을 다합시다. 오늘 이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고 하나님이 영원히 축복할 수 있는 천상천하의 기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다합시다. 


그래야만 전체의 뜻이 이루어져서 하나님께 승리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고, 또 그 영광을 여러분이 상속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6-199, 6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