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선집 제16권 11편
소망의 부모의 날, 上
1966년 3월 22일(火) 오전 10시, 전 본부교회.
* 이 말씀은 제7회 부모의 날(음력 3월 1일) 기념식에서 하신 말씀
〈말 씀〉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오늘은 부모의 날입니다. 1960년 3월을 중심으로 우리는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날을 정했는데 그날이 바로 부모의 날입니다. 이날은 하늘땅이 기뻐하는 가운데서 맞이해야 합니다. (16-177)
타락으로 잃어버린 날들
우리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미 부모의 날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맞기 위해서는 먼저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와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며, 그날을 기준으로 하여 참부모로 말미암은 자녀를 갖게 된 후에야 자녀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날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날들을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인간 조상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던 부모의 날,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맞이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천지창조의 목적을 완성한 하나님으로서 기뻐할 수 있는 날과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하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것이 타락이지만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또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소망하신 모든 날들을 다 잃어버리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신 날 중에는 피조세계에 부모가 있는 날, 그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가정이 있는 날,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민족·국가, 그리고 세계가 있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날들을 맞이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인류역사는 타락의 역사로 엮어져 내려왔고, 악한 세계, 악한 나라, 악한 민족, 악한 종족, 악한 가정, 악한 개인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본래 하나님이 소망하신 창조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같은 악한 것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누구냐? 바로 사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탄세계를 다시 하나님편으로 찾아 세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이상 하시는 세계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한 세계를 끌어올리기 위한 싸움을 해야 되는데, 사탄이 악한 세계를 이루어 나온 것과 반대로 선한 세계를 찾아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년의 역사 속에서 3단계를 거쳐서 구원하는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의 시대인 구약시대와 양자의 시대인 신약시대를 거쳐서 성약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성약시대에는 자녀가 나타나 부모의 자리를 마련하여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러한 복귀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16-177)
부모의 날과 하나님의 섭리
부모의 날의 이념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념 가운데 중심 이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 만물을 주관할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목적도 바로 참부모를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원래는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날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날은 온 우주가 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송영을 드리는 기쁨의 날인 것입니다.
이날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부모의 날을 하늘도 잃어버렸고 땅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래 계획하셨던 바를 이루시기 위하여, 부모의 날을 찾으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경륜해 나오신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맞이하려면 먼저 참부모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 참부모는 역사를 심판하고, 현재를 주관하고, 미래를 개척하셔야 할 중심존재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선망해 온 것도 참부모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 나타나셔야 할 참부모는 어떤 분이냐? 만물을 대신하여 사탄세계와 싸워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을 수습하고, 인간을 대신하여 인간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을 괴멸시켜야 하며, 영계와도 대결하여 수많은 영인들까지 주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를 구축해야 할 분입니다. 참부모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복귀하기 위해, 만물로부터 인간, 하늘까지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지금까지 참부모를 보낼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복귀원리를 통하여 참부모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참된 아들딸이 있어야 하고, 참된 아들딸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참된 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귀역사노정을 보면 종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쳐서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종의 시대로부터 양자의 시대, 자녀의 시대를 거쳐 부모의 시대까지 복귀해 나오는 동안 영계에 있는 영인들도 협조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배웠습니다.
외적으로 한 국가의 기준을 넘어서 세계적인 발판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참부모가 이 땅에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와 아브라함을 거치는 2천년의 섭리역사 기간이 있은 후 야곱으로 하여금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형성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까지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하나님 대신 사탄과 대결하여 이겨야 하고,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 대신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하고, 직계 아들딸의 입장에서도 하나님 대신 사탄세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부모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역사는 구약시대로부터 신약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의 입장을 복귀하고, 양자의 입장을 복귀한 터전 위에서 직계 아들딸의 입장을 복귀하여, 즉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은 후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시려는 것이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신 목적이었습니다. (13-280)
부모로서의 구주
2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최고 목적은 종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자를 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목적으로 오셨던가? 피조만물을 구하기 위한 최고의 목적을 갖고, 구주로서 부모의 심정을 갖고 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으면 먼저 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물에 빠졌는데 어느 부모가 종을 시켜서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라고 하겠습니까? 만일 그런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참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또 자기의 막내아들이 물에 빠졌는데 그의 형을 시켜서 동생이 물에 빠졌으니 건져내라고 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 역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부모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물에 빠진 상태와 같은 이 타락한 인류에게는 어떠한 구주가 필요한가? 부모로서의 구주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타락한 인류를 사랑하신다면 어떠한 입장에서 그들을 구하고 싶으실 것인가?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에서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메시아를 세워서 구원섭리를 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출발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부모의 입장이었습니다.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대리하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부모의 입장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위한 참된 시조, 참된 부모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참된 부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거짓된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은 참부모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참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는 것입니다. (16-178)
먼저 신부를 찾아야 했던 예수님
이처럼 다른 혈육으로 태어난 사람들, 즉 참부모의 혈육을 통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직계의 자녀로 세우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해야 할 혈통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혈통과 인연되어졌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정성을 들인다 하더라도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나가면 참된 아들딸이 아닌 양자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러운 사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는 양자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으로 인해 그렇게라도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 땅에 오셨다 가셨지만 오늘날 수많은 인류가 구원을 받을 때는 그 최고의 기준이 양자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란 무엇이냐? 양자는 핏줄이 다른 자식입니다.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거짓부모와 인연을 맺었으니 밑둥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진짜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타락 이후 4천년 역사가 지난 뒤 예수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중생을 하려면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없이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메시아로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오셔서 무엇을 하셔야 했느냐?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셔야 했느냐?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12제자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신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1차, 제2차, 제3차의 노정을 걸었지만 예수님은 신부를 찾지 못했기에 할 수 없이 자식 입장에 세운 것이 12사도였습니다. 이런 내용은 성경에 없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류를 다시 낳기 위해 예수님은 신부를 반드시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성신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장 3절)”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한복음 3장 4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3장 10절)” 하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을 중심하고 인류는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사탄이 다 빼앗아 갔으니 하나님을 중심삼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혈연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서 심정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는 천륜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원칙적인 기반, 즉 부모의 터전을 닦아야 했던 것입니다. 부모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신부를 찾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12제자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꾸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몇백 배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아담 대신 온 후아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인 후해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부모의 자리를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 하겠으니 하나님을 위하여 함께 일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6-179)
신부의 사명
남자는 하늘을 대신하고 여자는 땅을 대신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남자를 대신하여 신랑으로 오셨기에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제자들 역시 이 뜻을 몰랐기 때문에 협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요셉가정에서 이것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함으로써 예수님은 참부모가 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가정은 하나님이 4천년의 역사를 두고 섭리하신 끝에 자신의 가정을 축복하였다는 사실을 알아 가지고 시대적인 총책임을 지고서 그 책임을 완수해야만 되었습니다. 또 그러한 요셉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 차례나 그의 부모를 추궁했습니다. 그러나 뜻을 알지 못하는 부모는 끝내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집으로부터 배반당하고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예수님은 다시 가정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민족마저 예수님을 불신하자 예수님은 요셉가정과 유대 나라에 뜻을 펼치지 못한 채 그들에게 몰리고 쫓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데려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신부를 찾아 참된 부모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세상과 하나님 앞에 부모의 날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에 따라 부모는 꼭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예수님이 총각 된 신랑의 입장에서 처녀의 입장에 있는 신부를 찾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탕감복귀노정에서 이루어야 할 소생·장성·완성의 단계를 이루지 못한 입장에서 오셨기 때문에 이것을 전부 넘어서서 승리의 터전을 닦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승리의 기반을 갖추려니 해와로 말미암아 타락했던 반대의 경로를 거쳐서 먼저 죄를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은 신랑방을 준비해야 했고 신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금식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인류를 살리는 것이 소망이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재림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느냐? 제자들을 만나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신부가 오늘날 전인류를 대신하여 신부 된 입장에서 신랑이 오기를 고대하여 준비해 온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에 대한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4천년 역사는 2천년이 연장되어 다시금 세계적인 탕감노정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 노정 역시 세계적인 신부의 터전을 준비해 나가는 노정이기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후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성신도 이 땅 위에 와서 신부의 체(體)를 쓰지 못했습니다. 영계에 가 보면 성신은 어머니 신(神)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서 실체를 갖추면 신부는 천도의 모든 내용을 알고, 즉 진리 가운데 신부의 자격을 완수해 가지고 신부로서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하며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 가정을 준비하고, 한 국가를 준비하고, 세계를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가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에 들어와서 여성운동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가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두 악한 혈통을 받고 태어난 타락의 후손이기 때문에 어머니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참여성이 나와야만 합니다.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런 대표적인 존재가 나올 수 있는 때가 가까워지는 것이므로 세계적인 여성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뺨을 갈기는 경우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많은 여자가 남자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기는 타락한 것을 여자가 복귀할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종말인 지금, 여자는 천적인 해와를 대표하여 나설 수 있는 혜택권에 있는 것입니다. (16-181)
부모의 날은 인류가 소망하는 날
오늘날 여성들이 해방과 더불어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러한 때에 참된 어머니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머니를 땅 위에서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류는 이러한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을 찾아 나오기 때문에 땅 위에 신부가 세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모가 없으면 자녀가 있을 수 없고, 자녀가 없으면 가정이 있을 수 없고, 가정이 없으면 종족이, 종족이 없으면 민족이, 민족이 없으면 국가가, 국가가 없으면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모셔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지으신 바의 세계와 만민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아담가정에서도 못 하고 요셉가정에서도 못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다시 수습해서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념을 통해서 메시아를 맞이해야 하는데 이 세계는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각각 두 가지의 이념으로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땅 위에 메시아를 위한 모든 것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남자 된 예수님, 신랑 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들도 사랑할 수 있겠어요? 남자들에게 어떻게 신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랑 신부의 인연을 거쳐서 만민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구원섭리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남자나 여자나 주님 앞에 신부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 전부가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라톤경기에 나가는 사람들 전부가 일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뛰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일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만 마지막에 일등으로 골인한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 같이 신부 될 수 있는 허락은 받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못 받으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신부로 택정을 받아야 비로소 신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수많은 신부 후보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을 찾아오시느냐? 오시는 주님을 모시는 사람을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무엇입니까? 나는 신부라는 말이 기분 나쁩니다. 신부라는 말은 타락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생겼어요. 타락하지 않았으면 신부라는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며 무엇을 하러 오시느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기 위해서, 인류를 사망에서 구해 주기 위해서 인류의 어머니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셔야 합니다. 기독교 사상의 중심이 사랑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신부와 인연을 맺어야 할 신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6천년을 지나 다시 찾아야 할 날이 무슨 날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성사하시는 날이며, 인류가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찾는 날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모를 찾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날부터 인류는 하늘의 법도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떠한 비참한 운명 하에서 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 부모와 같은 입장에서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서 그 나라의 운명을 타개하여 다시 국권을 세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인류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되는 날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피조만물이 고대하는 날은 없었습니다. 인류가 참부모를 맞는 날, 이날이 바로 피조만물이 고대하는 날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류는 타락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영원히 불행한 자리에서 신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행복과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소망 중에 최고의 소망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부모의 날을 맞는 것입니다. 부모의 날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이요, 또 하나님을 찾아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어린양 잔치를 할 날을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바라고 있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모의 날은 전인류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할 여러분은 언제 세계 인류를 위해, 민족을 위해 제물이 되어 보았으며, 언제 하늘을 위해 몸부림쳐 보았습니까? 여러분 전부가 나 하나 잘되고 편안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았습니까? 나 하나 잘되기 위해 연보를 하고, 내 아들 딸 잘살게 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습니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6-183)
참부모가 필요한 타락 인간
지금 이 세계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민을 해방시키고 만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땅이 바라는 날이 바로 부모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기독교가 퍼져 있는데 그들이 소망하는 날은 무슨 날인가? 어린양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그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부모의 날입니다. 이미 다 컸다 하더라도 다시 태어나 부모를 맞이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날을 맞지 못한 지금까지는 여러분이 아무리 잘 믿어도 하나님 앞에 양자로밖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아버지로, 아버지의 사명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종과 민족은 많은 명절들을 맞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모의 날은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을 중심하고 이 땅 위에서, 우리 한국에서 부모의 날이 설정되었습니다. 이날은 한국이 해방되던 그날보다도, 세계가 기뻐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날보다도 더 기쁜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부모의 날이 몰리고 쫓김 받는 통일교회의 무리들로 인해 세워진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날이 없고서는 천주의 한을 풀 수 없습니다. 이날이 오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없습니다. 이날이 세워지지 않고서는 사탄세계인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승리의 발판을 닦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의 날을 결정하는 날도 이날이요, 성도들이 해방될 수 있는 날도 바로 이날입니다. 천주간에 소원과 이념이 하나되는 날도 이날이요, 천지가 개벽하는 날도 이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오늘날 이 땅에 참부모가 계신다면 그 부모는 어느 개인을 위한 부모가 아닙니다. 그 부모로 말미암아 모든 가정이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그 부모로 말미암아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모의 날과의 인연으로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부모를 몽땅 차지한 사람은 전세계를 차지한 사람과 같으며, 어떠한 국가의 주권자같이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은 천지가 찬양하고 기념해야 할 날인 동시에 만민이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인 것입니다. (16-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