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간에 제일 귀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말씀 훈독)
세상에서 지극히 귀한 것이 무엇이냐?
금은보화도 아니요, 세상의 명예나 권세도 아닙니다.
천지간에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자기 자신이 귀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할 것이냐 할 때 답변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갖추어야 할 바는 갖추지 못하고도 마음으로는 만천하 앞에 자신을 최고의 가치적 존재로 인정시키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관념을 넘어서 가장 귀한 내 자신을 남들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느냐 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면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은 얼마만한 가치의 내용을 지닌 존재냐?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내가 이 우주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보화가 되고, 진정한 보물이 되었다면, 그 보물은 하나님도 그리워 할 것이요, 왔다 가신 예수님도 그리워 할 것이요, 지금까지 왔다 간 수많은 성도, 만 역사 가운데 제 아무리 위대한 사상을 남긴 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역시 그리워할 것입니다.
지난날 뿐 아니라 현세의 이 만민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 가치를 동경할 것입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는 보화가 자기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선집 17권 13-14쪽, 1966.11.06)
출처: 세계경전 - 제1부 하나님과 창조 - 제3장 인생의 목적 - 인생의 가치 - 1. 황금보다 귀중한 인간 :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sPJ/3
<말씀 선집 본문>
가장 귀한 나 자신
세상에서 지극히 귀한 것이 무엇이냐? 금은보화도 아니요, 세상의 명예나 권세도 아닙니다.
천지간에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건 자기 자신,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귀하다는 보장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할 때는 답변을 못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갖추어야 할 바는 갖추지 못하고도 마음으로는 만천하 앞에 자신을 최고의 가치적 존재로 인정시키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관념을 넘어서 가장 귀한 나 자신을 남들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느냐 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으면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의 아들딸로 태어난 여러분은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천운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 앞에 보조를 맞추게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사명을 짊어지고 여러분이 선두에 서서 7년노정을 달음질쳐 온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민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세계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 어떠한 상대적 존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주체 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나 자신이 무한히 귀하고, 나 자신이 무한히 보배로운 것이기에 내 개체는 보배로워져야 합니다. 내 개체가 보배로워지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환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금은보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 주인이 있어야 되는 것이고, 만민이 그 가치를 인정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을 흠모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귀한 나 자신을 두고 다시 한번 여러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의 성인군자 혹은 위대한 선조들을 회상하고 있는데 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역사적인 결실체요, 시대적인 선각자로 서야 할 우리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만민이 공통으로 느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자체를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 자신들은 얼마만한 가치의 내용을 지닌 나냐?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내가 이 우주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보화가 되고, 진정한 보물이 되었다면, 그 보물은 하나님도 그리워할 것이요, 왔다 가신 예수님도 그리워할 것이요, 지금까지 왔다 간 수많은 천천만 성도, 역대에 제아무리 스스로를 세워 가지고 만역사 가운데 있어서 그 전통적인 사상을 남긴 그 누가 있다 하더라도 그도 역시 그리워할 것입니다. 지난날뿐만 아니라 현세의 이 만민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 가치를 동경할 것입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는 보화가 자기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리에서 심각히 생각했습니다. 그는 시대를 잃어 버리고 자기가 있는 지상 위의 생활에서 전부 다 배반당하는 자리에 섰어도, 무엇을 중심삼고, 즉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참을 수 있었는고? 그는 누구보다도 역사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기의 가치를 알았고, 자기가 역 사시대 앞에 지극히 귀한 보화, 보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어떤 이념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나를 숭앙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무엇을 갖추었으므로, 그 무엇이 공격하더라도 공격당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보배로운 그 가치를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는 자리에서도 자기 자체를 부정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 볼 때, 과연 나 자신은 귀한 존재냐?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냐 할 때, 여러분 얼마나 귀해요? 한 사나이면 사나이를 두고 볼 때, 그 전후좌우에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고, 친척이 있습니다. 친척을 연결시켜 민족과 국가, 국가를 연결시켜 세계 가운데 동참하게 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생활해 온 사람들은, 예를 들어 가정을 책임진 사람들은 가정으로서는 가치의 존재가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사회 앞에서는 가치의 존재가 못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 시대 앞에서는 가치의 존재가 못 되었다는 거예요. 그 세계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의 존재도 못 되었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떠했느냐? 그 시대에 있어서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척 앞에서는 가치적인 존재가 못 되었고, 그 사회와 그 시대에서는 다 부정당했지만, 후대로부터는 환영받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그것은 그때에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가 참되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정당했다고 하는 것은 긍정 받을 수 있는 인연을 내포한 부정입니다. 그러니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부정한 것은 자연히 흘러가고, 참의 가치만 남아지 는 것입니다.
한 시대에 부정을 당했던 예수님은 역사시대를 다시 점령할 수 있는 인연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참다운 가치는 무엇이냐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성공해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뭘 하겠습니까? 자기 전문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졌다고 자랑하는데 그래서 뭘 하겠습니까? 그 분야에서는 만민으로부터 영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사방팔방에서 백 퍼센트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외적인 것만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선생님은 과거에 이러한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참다운 가치, 만민의 심정과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참다운 가치는 무엇이냐? 참다운 보화라는 것은 구경만 하고 바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인이 그 속에 들어가 그 보화를 뒤집어쓰고, 그 보화 가운데 잠겨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보물이 뭐냐? 이 보물은 이 세상의 외적인, 물질적인 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도의 길이라는 것은 사랑을 표준삼고 맞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실정을 가만히 바라보면 과연 여기에서 그러한 나의 가치를 세울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면 이 세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 시대는 최선의 자리에서 공의의 법도를 가지고 정의의 공판정에서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절대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악이 만연하여 선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요,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농락하는 이런 시대요, 우리가 백 퍼센트 참다운 가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좋은 세상이냐, 나쁜 세상이냐 할 때 나쁜 세상입니다. 또 기쁜 세상이냐, 슬픈 세상이냐 할 때 슬픈 세상입니다. 또 행복한 세상이냐, 불행한 세상이냐 할 때 불행한 세상입니다. 불평불만이 가득찬 세상이지 감사와 만족과 행복 가운데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전부 다 반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듯 절망적인 현실에 반대되는 입장에서 이것을 점령할 수 있는 책임적인 권한을 이 지상에서 무엇으로 보충할 것이냐? 지금까지의 윤리, 도덕, 국가의 헌법, 어떤 국가의 체제를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역사의 변천과 더불어 새로운 목적을 향해 역사는 발전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무엇으로 이것을 정복하고, 무엇으로 이것을 점령할 것이냐?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격퇴시키고 박멸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지녀야 할 참된 본성, 보화 중에 보화인 그 자체를 지니고 있다면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불행의 조건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자기의 본성의 가치를 잃어버렸고, 하나밖에 없는 참다운 귀한 본성의 자기 인격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보충하여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살펴보면 대개의 종교가 메시아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
그러면 메시아란 어떠한 분이냐? 인간의 무한한 가치, 무한한 보화를 지닐 수 있는 그런 인격을 재현시켜 가지고 오시는 분입니다. 이분은 하늘땅 을 주관하고,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비준과 측량의 위치를 재선정 하고 나서 인간 세상에 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갖고 오는 것은 기쁜 것, 좋은 것,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슬픈 것, 나쁜 것, 불행한 것만이 있습니다.
좋은 것, 기쁜 것, 행복한 것, 감사하는 것, 만족한 것은 하늘의 것이고, 나쁜 것, 슬픈 것, 불행한 것, 불평 불만하는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지금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탄이 침범하는 거예요. 이런 자리에서 항상 주의하지 않고는 하늘 편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는 스스로 보화의 자기 자신을 찾는 것보다도, 보화 자체에 침범해 들어오는 사탄에 대한 방위 태세에 급급해야 하는 자기 자신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선집 17권 13-17쪽, 1966.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