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1/06/29 (화)

훈독왕 | 20210708195656

The King's Report 2021/06/29 (화)

영한번역: 장수남

2대왕님: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킹스리포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화요일 2021년 6월 29일, 천력으로는 천기 12년 5월 20일입니다.  

제가 진행자고요 천일국의 2대왕인 문형진입니다.  

먼저 팀왕님의 일기예보로 가봅시다. 팀왕님. 

팀 엘더 본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기술적인 문제로 조금 달라 보일 겁니다. 

어쨌든 일기예보로 갑시다. 지금 천일궁은 71도(섭씨 22도)이고 화창합니다. 

94도(34도)까지 올라갈 것이고 체감상 105도(40도)입니다. 

또 다른 따뜻하고 습한 날입니다. 

하지만 오늘 내일까지 이어질 것 같은데 목요일에는 덜게 될 겁니다. 

오늘 밤은 71도(22도)까지 내려갈 것이고 또 따뜻하고 습할 겁니다. 

또 불편한 밤입니다. 

내일은 또 94도(34도)까지 올라갈 것이고 체감상 104도(40도)입니다. 

이제 희망적인 뉴스를 보여주겠습니다. 

이걸 여기로 옮길 수만 있다면… 됐네요. 

이거 누르고… 여기 목요일을 보면, 7월 1일, 최고 기온이 78도(25도)까지 내려갈 것입니다. 

금요일 7월 2일은 74도(23도)이고 토요일 7월 3일은 69도(20도)입니다. 

일요일 7월 4일은 최고 기온이 80도(27도)이지만 55%의 강수확률이 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월요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가질 것으로 압니다. 

최고기온은 83도(28도)입니다. 

7월 4일 주말보다는 더 보통의 기온이 될 겁니다. 

이게 좋은 뉴스입니다. 

하지만 오늘과 내일을 지나야지 맞이할 겁니다. 

오늘의 일기예보였습니다. 

2대왕님: 와, 94도(34도), 95도(35도)라니 벌써 테네시처럼 느껴지네요 (웃음). 

테네시나 플로리다나, 그 중 하나입니다. 

맙소사. 하여튼, 여러분 테네시에서의 청평 섭리 복원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세요. 

부동산 중 하나가 틀어졌습니다. 

아마도  차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공하실 겁니다. 

 

그리고 토모미상과 그레그 놀씨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레그씨는 지난 번에 병원에 갔습니다. 

하나님께 고맙게도 심장마비나 뇌출혈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의 심장과 뇌는 괜찮습니다만 라임병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나 지켜볼 겁니다. 

제 생각에 그는 오늘 집에 돌아올 겁니다. 부디 토모미상과 그레그 놀씨가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자, 요한계시록 3장, 오늘은 요한계시록 3장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알겠어요? 그리고 이것은 사데 교회입니다. 

사데 교회가 요한계시록 첫 부분에서 경고를 받는 일곱 교회에 연결돼 있기에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들은 일곱 촛대로 불려집니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에 이것에 대해 얘기했는데, 일곱 촛대는 어린 양의 촛불을 받칩니다. 

촛대 자체는 빛을 내지 않습니다. 

촛대 받침대는 빛을 내는 어린 양의 받침대가 됩니다. 

성경은 “주의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가 말하던 등잔대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일곱 교회에 대한 겁니다. 

교회들이 등잔대처럼 됩니다. 

우리는 민수기 8장에서, 어떻게 구약 시대에서 제사장 계급이 등잔대였는지, 또는 제사장 계급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장막이 등잔대 위의 등과 같았는지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민은 장막 안에 있던, 또는 같이 있던 그 등을 거의 불 기둥, 구름 기둥과 같이 계속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장막은 제사장 계급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선택된 선민 중 평범한 이들과 떨어져 중심에 있었던 제사장 계급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제사장 계급은 교회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이스라엘의 레위종… 레위 족속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 시대는 이방인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확장되고 있는 겁니다. 유대인만 포함하는 게 아닙니다. 

이방인을 포함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장 계급은 이제 유대인을 넘어 레위 족속은 커녕 유대인 혈통이 전혀 아닌 그리스도 안의 성직자, 그리스도 안의 목사들에게 갔습니다. 

신약 시대에서 제사장 계급은 교회로 확장되고 움직입니다. 

그래야지 교회가 빛을 받드는 등잔대나 촛대가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세상의 빛이 됩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교회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물론 교회의 시대는 메시아의 준비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신랑의 신부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성약 시대에 메시아가, 재림주님이 재림하실 때, 돌아오시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러면 더욱 비중앙조직화 됩니다. 

더 이상 교회만이 제사장 계급을 받드는 게 아닙니다. 그

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사람을 불러 축복중심가정이 되게 하면서 지상 목회에 동참하라 하십니다. 

축복중심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중심가정들은 하나님의 역사, 목회, 왕국 건설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됩니다. 

우리는 일요일에 이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가 축복중심가정이 되면, 우리는 왕과 제사장, 왕비와 전도사가 되야 합니다. 

더 이상 자녀들을 낳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자녀들을 목회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녀들을 전도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 일요일에 말씀을 나눴는데, 아이들은 약 10-11세까지 당신이 하라는 것을 합니다. 

그들이 어릴 때 말이에요.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특히 십대에 들어가면, 당신이 하라 해서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할 거라고 기대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나이 대에는 지능과 분석 능력이 발달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그것들을 6-9살 사이에 발달하기 시작하지만 십대에 들어서면서 그것을 더욱 쓰게 되고 그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지휘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녀들과 관여하고 자녀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냥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하면서 명령하면 안됩니다.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더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땐 뭐를 하라 하면 순순히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자라면서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노예처럼 부리거나 때리지 않고 자녀들이 기쁘게 무엇을 하게 하려면, 납득을 시켜야 합니다.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그 나이 대가 바로 전도를 시작할 때입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 가정, 자기 삶의 방향의 이것저것에 대한 큰 의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는 반대 말을 하죠. 

그냥 돈과 명예, 지식, 권력 등등을 추구하라고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따른 다른 아이들이 할리우드 스타나 이것저것 되면서 잘되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이 자라면서 그들의 분석적인 사고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들이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전도되야 합니다. 

그들의 분석적인 사고를 다루어야 하고 그들의 의심 또한 다루어야 합니다. 

그들이 약 18세(미국나이)가 되기 전, 그 중요한 나이 대에 더욱 상담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십대에 들어갈 때는 우리가 상담을 해줘야 하는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그저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상담해줘야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 뜻은 우리의 목회 수준과 전도하는 수준이 발전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일학교 선생의 수준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그 수준으로 청년목회에서 가르치려고 들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일학교 선생은 청년목회에서 잘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잘 되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4-10세 정도의 아이들을 다루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생이 무슨 말을 하든 잘 듣는 초등하교 학생들만 다루는 데 익숙합니다. 

이제 십대에 들어서면, 자녀들은 더 많은 능력을 가지게 되고 더 유혹을 당하고 더 많은 의혹도 생겨날 겁니다. 

이제 그들은 마약과 외부 친구들에 대응해야 합니다. 멋져지려고 하고 인정받으려고 하고 잘 어울리려고도 할 겁니다. 

또래압력도 더 받아야 하고 그리고… 그 나이의 자녀들에게는 그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마약의 모든 압력, 그들을 빨아드려는 프리섹스 문화의 모든 또래압력, 명예를 추구하려는 모든 또래압력, 권력의 지식의 또래압력 등등등... 지위, 권력의 지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목회 수준도 향상 되어야 합니다. 

그 자녀를 기르기 위해서는 주일학교와 청년목회 모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년목회는 십대와 젊은 아이들의 목회를 말합니다. 

그러한 능력들이 없으면, 일대일 날을 보내더라도 그들은 떨어져 나갈 겁니다. 일대일 날은 좋죠, 그러나 우리는 항상 개선되어야 하고 성장해야 하기도 합니다. 

십대에 대해서도 배워야 합니다. 

십대에 맞는 성경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에 대한 방대한 양의 자료가 기독교 세계에 있어요. 

이제 기독교 변증론에 대해 다루어야 합니다, 특히 지적 기반이 있는 사람들이 말이죠. 

의심에 대해 다루어야 하는데, 의심은 신앙이 있는 누구나 다  싸워야 할 문제입니다.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다루어야 하고, 우리는 자녀들이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가 되고 싶어하는 유혹을 100%로 받을 것이라고 이미 가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이 대에는 하나님에게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나이 대에 여성들이 이뻐지고 호르몬이 활성화 되고 섹스하고 싶고 놀고 파티하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마약도 하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지 않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은 그 나이 대에 이런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항상 무신론자가 되기 위한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항상.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유혹하려고 하죠. 

그리고 그 나이 대의 자녀들은 그들의 미모의 정점에 있습니다. 

특히, 그 때에는 “세상에, 여자…”라면서 여자를 보기 시작합니다. 

십대가 되면 “와, 진짜 이쁘다”라면서 여자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 때는 이성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유혹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그 어린 나이에 모든 변명을 찾아서 예쁜 여자와 섹스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부모로서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 아이를 이끌어주고 목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아이의 그 기간 동안 리더쉽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지 아이들이 결혼을 향해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목회가 집으로 옮겨지는데, 이것이 많은 1세들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들을 이 방향으로 이끈 지도층들도 있죠. 

 

하지만 요점은 그들은 교회가 자녀들을 기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는 2세들이 원죄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유혹을 받지 않을 것이고 타락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00% 사실이 아니었죠. 

그것은 100%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기의 자녀들이 타락하고 사탄의 자녀들이 되는 것을 보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나이 있는 분들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리는 그들의 절실한 절박함이 느껴져서 그 가족들을 불쌍히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궁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이런 말씀을 더 어렸을 때 들었기를 원합니다. 

이것에 대한 실제적인 교육을 더 어렸을 때 받았기를 원합니다. 

더 어렸을 때 힘을 받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짧게 말하자면, 그들은 아주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외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왕과 제사장 노릇에 대해서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저 자기 부모의 과거 죄들을 자녀들에게 되풀이 했을 뿐입니다. 

또는 자녀들을 방치했다거나 다른 상황에 놓여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 학교 제도에게 자기 자녀들을 기르도록 맡겼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가 그러더라고요. 

그들은 아이들을 정치적 사탄 내용이 농후한 환경에 놓아도 독실 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아이들이 완전히 좌파·정치적 사탄주의자·문화적 사탄주의자가 되는 상황이 아주 많았습니다.  

일부는 실제적인 사탄주의자가 됐죠. 

물론 자녀들은 부모들에 의해 버림받은 감정의 양에 반항하거나 반응하는 등 했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에서도 말이죠. 

“2대왕님은 자산이 있어” 또는 “참가정이 재정적으로 안정해서 잘 할 수 있었던 거야”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참가정은 온전하고 강한 가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죠?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은 완전히 엉망이 됐습니다. 그죠?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투입하는 노력에 모든 게 달렸습니다. 

제가 아버님의 자녀라서 주짓수 검은 띠를 따지 않았습니다. 

제가 얻은 겁니다. 노력했습니다. 

아이들과도 마찬가지에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목회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방치하면 안 됩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여튼, 1세들의 상황과 탕감시대는 사람들이 자기 가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들을 부스려는 사탄 세계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아직 정착시대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여튼, 요점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 자녀들은 타락했고 문화적 사탄주의자고 정치적 사탄주의자고 실제로 사탄주의가 됐을 수도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하나요?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남겼다고 생각하는 격언이 있는데, 하여튼 그는 “하나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이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떠나고 사탄을 섬기겠다고 결정했으면, 그들이 성인이 됐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많은 경우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관계를 다시 쌓으려고 노력할 수 있어요. 

그런 일은 천천히 일어나죠. 

기도는 당연히 매일 기도를 해줄 수 있죠.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당신 밑에 있는 단계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집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이제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습니다. 

그 사람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40-50년의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긴 노정에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닿을 수 없으면, 당신의 아내와의 제사장 일과 관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빛나게 하세요. 그 빛을 눈부시게 하세요. 

왜냐하면 만약에 자녀들이 하나님에게 반항했던 상황에 놓여있다면, 그들이 하나님에게 반항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들은 세상의 어둠에 들어섰습니다. 

거기에는 빛이 없습니다. 

거짓  환상밖에 없습니다. 

광명의 약속만이 있습니다만 그것마저도 가짜죠. 

 

사탄은 광명의 천사이지만 가짜 광명입니다. 

하나님의 광명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세상과 문화적 사탄주의, 정치적 사탄주의는 그 어떤 빛도 없습니다. 

전부 어둠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밝고 빛나고 반짝거리고 화려한 것처럼 보이죠. 

그리고 그들은 진심으로 기쁘게 들어갑니다. 

그들은 “그래! 빚을 지고 정부 프로그램에 들어갈래. 그냥 막대한 빚을 지고 20-30년을 일하면서 갚을 거고 실패할 성관계에 몸을 맡기면서 기쁘게 살 거야. 그리고 아이들은 절대 갖지 말아야지. 아니, 아마 40대에 낳거나 아니면 그냥 게이가 될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들어갑니다. 

불행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어둠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당신이 더 강한 빛이 돼야 합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 2, 3에서 얘기했던 겁니다. 

빛을 받드는 더 강한 등잔대가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나쁜 상황에 놓여있다고 칩시다. 

당신의 자녀들이 타락했고 사탄왕국의 일부이며 어둠 안에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들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이것저것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둠에서 나와 빛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플라톤의 동굴에 대한 비유와 같습니다. 

어둠에 살았던 사람들이 동굴 밖에 나와 자유와 빛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다면, 눈이 너무 아파 동굴로 다시 뛰어들어가고 싶을 겁니다. 

동굴이 편안해진 겁니다. 어둠이 편안해진 겁니다. 

반지의 제왕에 있는 골룸… 아니면 그렘린, “소중한 것! 소중한 것!”하는 거 있잖아요. 

그는 밖에 나오기 싫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에 익숙하고 숨는 게 익숙하고  탐내는 게 익숙하고 “내 소중한 반지! 내 소중한 반지!”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그렇게 됐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들에게 집중하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집중할수록 그들은 반감을 느낄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옳은 결정을 했고 당신이 틀렸고 당신에 대한 분노가 정당한 것이라고 증명하려고 더욱 자기 갈 길을 갈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  거라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집중하면 안 됩니다. 

그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을 놓아야 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0살 애들이 아니에요. 

이제 그들에게 부모 수준의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것을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놓고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에 역사하시게 해줘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아니고 당신은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없어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매일 자녀들 때문에 토라지고 슬퍼하면 안 됩니다. 

교회의 목사가 할 짓이 아닙니다. 

교회를 떠나 길을 잃어 타락하는 사람을 봤다면,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위해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죠? 

그러고나서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끔 그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위해 슬퍼하거나 그 사람을 집중하는 건 당신의 일이 아닙니다. 

자유의지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나아가나요? 목회를 강화시키세요. 

목회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강화시키세요. 

전도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도와주세요. 

당신의 잘못에 대해 가르쳐주세요. 

자기 자녀에게 잘못했던 것에 대해 솔직해지면, 당신은 다음 세대를 강화시켜 같은 짓을 하지 않게 합니다. 

이런 것들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자녀들이 보고있다는 것이죠. 당신의 종교, 신앙, 교회를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의 남편과의, 아내와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당신은 외부 세상이 없는 걸 가지고 있나요? 당신의 축복이 빛이 되고 있나요?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 있는 자녀들은 어둠에 있기 때문에 음란한 성관계, 여러 사람과 파티하고 섹스하는 짓, 타락한 동성애 양성애 관계들, 모든 종류의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들은 젊을 때 그게 정상적이고 괜찮은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라면서 10년이 지나고 30세 또 10년이 지나고 40세가 되면 “세상에, 이건 내가 20대 때, 아니면 내가 반항하고 있을 적인 18세 때의 생각했던 거하곤 달라”하며 깨닫습니다.

 “이건 세상이 말하던 거하고 달라. 이렇게 살면서 나에게 행복을 주고 충족되는 척 하지만 그렇지 않아. 20년 동안에 수십 아니면 백명의 이런저런 남자들에게 몸을 내어주었지만, 나한텐 아직 남자가 없어.” 

 

제가 말하는 게 보이세요? 

외부 세상에서 그들이 가진 건 이게 전부입니다. 

문화적 가치 때문입니다. 

문화적 사탄주의의 가치 때문이죠. 

“성적으로 절제되지 말고, 아무하고나 섹스하고, 사랑은 감정적이니까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관계를 포기하고, 희생하지 말고 너의 쾌락만을 추구해, 다 너, 너, 너야.” 

그들은 이런 문화적 가치들을 배웁니다. 

이건 실패의 가치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더 어두워질수록, 더 어둠을 보게 되면, 더욱 하나님의 왕국에 있는 사람들과 대조됩니다. 그죠?

하지만 만약 당신의 결혼이 무너지고 있고 자녀들이 떠났고, 그리고 당신의 결혼이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 않다고 쳐요. 

매일 성경을 100번 읽을 수도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훈독회 같은 종교적 ‘활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모든 행동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런 과실이 없다면, 하나님의 왕국을 구체화하는 강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왕국에 대해 아무리 말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를 선생으로 만들 수 있나요? 나를 선생으로 만들 수 있나요?” 

아뇨, 아뇨, 아뇨, 당신은 과실을 맺지 않으면 선생이 될 수 없어요. 

사람들은 당신을 따르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교회는 당신 위에 선생을 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특히 과실이 없는 사람들 말이죠. 

누구나 다 아는 미성숙하고 관심만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아무도 그를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무리와 지도자를 고를 수 있게 하는 자유 시장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힘을 줍니다. 

왜냐하면 낮은 수준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강제로 잡고 자기들을 따르라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죠.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실을 맺어야 하고 높은 수준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그러한 능력들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저 강의만 하면 안 됩니다. 

실제적으로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연히 당신을 따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요점은 당신의 자녀가 그런 나쁜 상황에 있다고 칩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안 됐다 생각하지만, 하여튼 그것에 집중하지 마세요. 

그것은 더 이상 목회가 아닙니다. 

당신의 목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목회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빛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들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러한 방법이 조금도 소용 없다는 것을 봤을 겁니다. 

오히려 더 멀어지게 했겠죠. 

당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되겠어!”하며 배울 겁니다. 

그 다음에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첫째로 과실을 맺어야 한다는 걸 깨달을 겁니다. 

따라서 당신의 아내와의 관계가 개선되고 강해져야 합니다. 

당신의 남편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강해져야 합니다. 

당신은 산 위에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어둠에 있고 그들의 모든 관계가 실패하고 무너지고 있을 때 말이죠. 

 

그리고 그 프리섹스 문화가 그들을 망치고 있죠. 

그들은 당신을 보면서 “엄마 아빠가 말하는 건 안 믿고 그들의 하나님도 안 믿고 문 목사도 안 믿고 예수도 안 믿지만 그거 알아? 엄마 아빠 결혼 생활이 정말 좋은 것 같아. 대단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령 그 수준에서 시작해도 그것은 거대한 변화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그 결혼 생활이 어디서 왔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참아버님에게서부터 온 것입니다. 그렇죠? 

요점은 안 좋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안 좋은 상황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그 안 좋은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감정적으로 어렵지만 그게 요점입니다. 

어떤 것이든 감정적으로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가치 있다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상태에 있다면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 마저 무너뜨리는 부정적인 것에만 집중하면 안 됩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녀들이 배를 갈아탄다고 결정했으면 그들은 그 길을 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들을 쫓아가서 애원하고 애원해도-- 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자녀들은 더욱 멀어져만 갔습니다. 

왜? 무의식 세계에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그들에게 종교를 강요할 뿐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잘못했으면 그것에 대해 사과하려 하지 않고 그 상황에 대해 설명도 안하고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 않고 외적에만 집중합니다. 

“난 네가 아버님의 말씀을 알았으면 한단다. 훈독회도 했으면 해” 이러죠. 

그들은 아버님에 대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마음도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과의 관계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외치고 있지만 당신은 듣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습니다. 

정리해야 할 일이 있거나 회개해야 할 일이 있고 그런 식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것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죠? 

당신은 자녀들의 인격 형성 기간 동안에 그들을 감정적으로 때렸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화났을 때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잔소리를 쳤거나 감정을 풀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결과가 뒤따릅니다. 

그러한 행동들은 결과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도록 젊은 사람들을 훈련했습니다. 

자녀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당신에 의해 학대 받은 감정, 그리고 당신에 의해 버림받은 감정을 가질 가능성을 많이 낮출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러한 많은 상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당신의 부모들이 당신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감정적 육아라는 것을 했습니다. 

그렇게 했었다면 상처는 분명히 100% 있습니다. 

정의가 없었으니까요. 

부당하게 행동했고 감정에 따라 벌을 줬으니까요. 

때리는 것 또는 엄청난 양의 잔소리 등과 같은 부당한 벌 말이죠. 

필요없던 거 말이에요. 

어떤 아이는 자기 부모가 한 자녀를 때리고 있었는데 자신을 봤기 때문에 “너도 이리와!”하면서 자신까지 때렸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이 부모가 저지른 일은 끔찍한 잘못입니다. 

무시무시한 잘못입니다. 

아이들에게 줬던 벌은 부당했습니다. 

그것은 과도한 무력행사였고 당신은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왕국에 절대 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임의적인 법들, 임의적인 규칙들, 감정적인 지배자 때문에 그는 당신을 죽일 수 있고, 당신을 과도한 무력으로 때릴 수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느끼거나 화났기 때문에 말이죠.

당신은 그런 왕국에 절대 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요점은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그런 환경을 줬습니다. 

아마 자기 부모들에게서 배웠을 테니까요. 

그게 길인 줄 알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죠. 

육아는 통치권 행사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다스리느냐 말이죠. 

당신이 누구인지 나옵니다. 

당신은 폭군인가요? 아니면 정의를 행하려고 하고 법률을 지키려는 사람인가요? 

당신이 정의롭게 다스리는 자나 목자가 되려고 노력하나요? 

아니면 힘이 있거나 덩치가 더 컸을 때 자녀들이 굴복할 때까지 때리나요? 

그런다면 당신은 폭군입니다. 

요점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이것을 이해하고 실천하여 과실을 맺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녀들의 인격 형성 기간 동안에만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약 18살까지 말이죠. 

그 시간 뒤로는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그 다음 기간은 20이나 30년은 걸릴 겁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너무나 많은 억눌린 분노, 원한, 갈등, 부당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죠. 

이제 그들이 돈을 벌고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능력이 있으니까 그것을 되돌이키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 일을 더 일찍 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그래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기도는 중요합니다. 기도. 

또 하나님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당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세요. 

종교를 강요하거나 그 관계의 종교적인 면에 집중하지 말고 그 관계의 관계적인 면에 집중하세요. 

당신에게 열 수도 있는 마음의 접촉점을 찾으세요. 

예를 들어 당신이 부당하게 행동했다면 그것에 대해 사과하는 거 말이죠. 

기회를 찾아보세요. 

하나님이 제공할 겁니다.

그 기회를 써서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부당하게 행동했다면,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다면 말이죠. 

우리는 물론 부모들이 그것들을 하지 않도록 이끕니다. 

그것만 하지 않으면 미래에 많은 상처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무력을 행사하지 마세요. 

임의적이고 감정적으로 다스리지 마세요. (그러지 않으면) 그들을 정말 상처 입힐 거라는 걸 장담합니다. 

자신을 제어하세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세요. 

경찰은 “오늘은 정말 재수없는 날이어서 사람을 쐈습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걸 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어른입니다. 부모입니다.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겨우 재수없는 날이어서 부당하게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했다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행동을 하거나 그러한 기회를 천천히 찾아야 합니다. 

서두르면 안 됩니다. 

그들을 18년 동안 상처입혔으니까 적어도 18년 동안 그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적어도. 

정말로 오래 걸릴 겁니다. 

최소한 당신이 부당하게 행동했던, 적어도 자녀들의 마음에서 그렇게 느꼈던 시간과 같은 양의 시간을 옛 일을 고치고 용서를 구하고 의로워지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데 투입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어떤 연구에서 누군가가 누군가와 헤어지면, 예를 들어 그 둘이 10년 동안 함께 하고 헤어졌다면, 그 관계에서 회복하려면 적어도 5년이 걸린답니다. 

5년, 그 관계의 시간의 반입니다. 

하지만 자녀들과는 아마 더 걸릴 겁니다. 

그들이 18세를 지나 그들 스스로 살고 있고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면, 빠르게 되지 않을 것이고 그저 이것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집중하면 안 됩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을 가지고 그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세요. 

많은 부모들은 이것에 대해 무서워합니다. 

그들은 18년 동안 무척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제 “이럴수가,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해야겠어” 이렇게 하면, 이제야 당신이 그들에게 줬던 것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죠. 

이제 자녀들이 당신에게 소리지르고 온갖 욕을 퍼붓고 당신이 자신을 학대했다고 말하고 당신을 이것저것 부를 겁니다. 

당신은 그것을 거쳐야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그것을 거치기 싫어서 계속 도망치죠. 

그러면서 계속 불평하죠. 

“왜 하나님이 내 자녀를 구하지 않아?” 

그야 당신이 당신의 5%를 하고 있지 않잖아요. 

그리고 주원인이잖아요. 

하나님은 당신이 그렇게 하게 만드시지 않았어요. 

아마 감정적으로 다스려서, 임의적이고 감정적으로 다스려서 당신이 주원인이었다면, 하나님에게서 배워서 그런 게 아니라 아마 당신의 부모 또는 당신을 키웠던 멘토(mentor)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그렇게 가르쳤을 수도 있죠. 

그래서 당신이 당신 자녀들에게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자녀들의 마음 속에서는 당신이 그들의 학대나 버림받은 것의 주원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직면해야 합니다. 

관계를 회복하려면 그것을 직면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소리치는 것을 겪어야 하고 자신이 얼마나 악했는지에 대해 들어야 하고 그 자녀를 어떻게 망쳤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그냥 삼켜야 합니다. 삼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난 20년 동안 아니면 그들 인생 초반 20년 동안 그것을 삼켰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작은 대가입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두려움에 살지 말고 이것저것 정당화 하지 마세요. 

저는 이러는 부모들을 보는데, 그들이 여전히 겁을 먹고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겁을 먹은 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실 관계를 회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들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기 자존심을 내려 놓고… 그 관계를 정말 소중히 여긴다면, 그걸 해야 한다면, 많은 학대가 있었다면, 당신은 크게 혼나야 합니다. 

매를 벌었잖아요. 혼나야 할 것이고 그것은 올 겁니다. 

그래서 그냥 부딪쳐 보세요.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회복과정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속도를 올릴 수도 있단 말이에요.

자녀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지배받았다고 느낍니다. 

항상 그들에게 감정을 터뜨렸고 잔소리를 했고 무엇이건 간에, 그들은 그것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그들을 못마땅해했고 항상 그들이 나빴다고 했고 그들이 한 모든 사소한 일을 심판했고 그리고 당신의 마음 속에 자신이 잘못했고 미성숙했다는 것을 알 겁니다. 알 거에요. 

하지만 당신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피해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나 교회 식구들에게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중요한 데를 해결해야 합니다. 

중요한 데를 해결해야 해요. 

당신이 자신을 학대했고 어린 시절을 앗아갔고 숨이 막히게 했다고 느끼는 아이에 대한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친구들을 설득해서 기도하게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 5%를 해야 합니다. 

해야 합니다. 

그렇게 무섭지 않습니다. 속임수를 내려놓기만 하면-- 

그리고 저는 부모들이 그러는 걸 압니다. 

제겐 보입니다. 

그냥 속임수를 내려놓고 그냥 하세요. 

2년 정도 걸릴 것이지만, 자녀들이 당신에게 소리지르게 하고 자신이 느끼기에는 자신이 삼켜야만 했던 모든 상처와 숨막힘을 분출하게 해주면, 그리고 당신에게 욕하겠지만, 그저 삼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부당하게 다스렸던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너무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종교의 외적인 것들을 강요했습니다.

강제로 따르게 했잖아요.

그런 짓을 했다면, 그들은 당신을 비난할 겁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이 모든 것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한, 그 원망, 그 상처를 삼켜야 하는 기간을 거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한은 그들의 인생을 망쳤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복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육아하는 데 나쁜 지도자였다면, 그들이 당신하게 복수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편과 싸우고 아내와 싸우는 그런 나쁜 환경에 자녀들을 처하게 했다면, 그것 또한 아이들에게 상처 입히는 일이죠. 

그 일을 해결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을 피해 도망치면 안 됩니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영향을 준 무의식 문제로부터 도망칠수록 더욱 갈라질 겁니다. 

그들은 당신 곁에 절대 있고 싶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녀들이 그 관계를 다시 맺는다 해도 당신이 다시 똑같은 짓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아무도 그런 걸 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인이라면 말이죠.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당신은 자신이 더 이상 부당한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방식의 죄를 깨달았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을 지고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야. 내 과실을 봐봐. 내가 어떻게 엄마와 행동하는지 봐.” 또는 “내가 어떻게 아빠와 행동하는지 봐. 나는 너를 부당하게 접하지 않을게. 과거에 상처를 입혔다면 미안해”라고 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일을 해야 합니다. 

가끔 우리가 보는 부모의 수준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대다수는 아닙니다. 

그래도 몇몇은 그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최악입니다. 

제가 아이로서 그 가정에 있었다면 100% 나가고 싶었을 겁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학대받는 것 뿐만 아니라, 부당한 것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최악인 지도력 뿐만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러한 많은 가정을 봐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대다수는 아닙니다. 

그래도 많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이 인정하기 싫은 경우에는 자녀들이 모두 원망하고 화가 나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이럽니다, “난 그저 독실한 것 뿐이야. 그저 기도가 필요해.” 

알았어요, 근데 아이들과 평화롭게 맞서고 과거의 죄들에 대한 회개를 하는 힘든 일을 하고 있나요? 

아직 거기에 가지 않았나요? 

“아니요, 아니요, 하기 싫습니다!” 

그러면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영계가 당신을 저지하는 게 아니라 100% 당신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도 그럽니다.

많은 어른들도 뇌의 95%인 무의식 세계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애처럼 행동하고 결정합니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예를 들어 같은 제품 항목이 있어도 사진을 바꾸거나 마케팅 전략을 활용하여 당신의 무의식의 마음에 영향을 줌으로써 당신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도 어린애 같은 기준으로 결정을 하기 때문이죠.

샴푸나 면도 크림만이 아니라 당신의 다른 결정에서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이것들을 밝혀야 합니다.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이것들은 괜찮은 게 아니라고 말하고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바꿔야 합니다. 

많은 경우 그 관계에서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 끔찍한 상태에 있고 자녀들을 지독하게 다스리고 억압적이었고 매우 폭군적이었던 부모라면, 당신은 그 관계를 회복하려면 자녀들이 당신에게 소리지르고 욕하고 저주하고 그리고 당신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 그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폭군적이었던 부모들이 자기가 나빴고 매우 폭군적이었다는 걸 자기 마음 속에 알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마음 속에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자신이 폭로될 거란 걸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에게서 항상 도망치고 그 상황을 피해다닙니다. 

하여튼, 요점은 그것을 한다면, 관계가 나아질 가능성이 없습니다. 

상대방 관점에서 생각해보세요. 

그 상대는 “아뇨, 전 더 이상 이것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횡포 하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더 이상 폭군이 아니란 걸 저한테 증명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제가 당신한테 고함치고 소리지르고 욕하고 그리고 당신의 횡포 아래 사는 게 얼마나 끔찍했는지 말하는 걸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이것에 대해 성숙해져서 비난하지 말고 자신을 변호하지 마세요.

 

당신이 폭군이었다면 당신은 압니다.

당신이 폭군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죄송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매년 그것을 숨기는 데 더 잘해질 뿐이죠.

하지만 당신이 폭군이었다면 그리고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다면 당신은 압니다.

당신이 부당한 통치자였다면 당신은 알고 있어요! 

저는 많은 엄마들이, 많은 경우 엄마들입니다, 자녀들과 그러한 대화를 나누기 무서워하는 걸 봤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라(여호수아 1:9)”라고 말씀하신대로 용기를 가지지 않는 한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씻어 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용기를 가져서 자신의 귀신들과 맞서야 합니다. 

당신이 죄안에 있었을 때 만들었던 문제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제 맞서야 합니다. 

이제 사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맞서야 하고 일부 경우 그들에게서 분노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경우 분노를 받을 만하니까요. 

그리고 그걸 거쳐야 합니다. 거쳐야 합니다. 

그것을 거치지 않으면 똑같은 겁니다. 

계속 계속 계속 똑같을 겁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90세일 때까지 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지만 절대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행동을 해야 합니다. 

담대해지고 용감해져야 합니다. 

폭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세요.  

당신이 폭군이었다면 당신이 폭군이었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보고 폭군이라고 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처럼 자기 자녀들을 기르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은 당신을 능가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뭐요? 그냥 감정이잖아요? 

당신이 용감해지기만 하면 그 관계를 아직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 대해 타협하자는 게 아닙니다. 

당신의 믿음에 대해 타협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폭군이었다면, 그것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그것은 죄였다. 나쁜 것이었다. 그것에 대해 날 용서해 줄 수 있겠니?”라고 하세요. 

이걸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나요?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너무 안 좋아서 자녀가 그냥 욕을 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한다고 말 안해. 넌 너무 악했고 너무 나빴어. 내 용서를 가질 자격이 없어”라고 하는 아이들이 꼭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서 용서를 받을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넘어가야 합니다. “알았어, 그걸 존경해줄게. 존경해줄게”라고 한 다음에 넘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정하면 안 됩니다, “내가 2대왕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면 이렇게 될 거야.” 아뇨, 아뇨, 아뇨. 횡포의 강도에 따라, 그 아이가 엄청난 횡포를 경험했다면 그 아이는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할 수도 있어요. 

해보지 않으면 영영 모릅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든 상관없습니다. 

여호수아 1장에서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 과거와 귀신과 맞서야 합니다.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그 관계를 해칠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특정 반응을 주게끔 강요하면 안 됩니다. 

당신이 그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화내면 안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열든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설령 그 사람이 당신을 용서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적어도 그 사람의 입장을 명확히 압니다. 

그리고 이제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밖에 없잖아요? 

적어도 이제는 압니다. 

더 이상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이 모호한 혼란, 막연한 막연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용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회개했어야 하고 그런 다음에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건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알콜중독자 치료 시스템에서도, 성공한 모든 시스템은 신앙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게 있는데, 신앙에 기반한 것만이 아니고 AAA 것도 아닙니다. 

신앙에 기반한 것만이 아니라, 해야하는 것들 중 하나는 당신이 상처 입혔던 사람들에게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AAA-- Alcohol Recovery Program(알코올 치료 프로그램)의 일부는 하나님에 기반했지만, 그래도 당신이 알콜중독자로서 상처 입혔을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과 맞서야 합니다. 

당신이 알콜중독자였을 때 학대했을 수도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실제적으로 그들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용서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당신은 그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쫓아서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바로 그 정도입니다. 

그 후로는 그들의 자유의지대로입니다. 

이건 영적 싸움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관계에서 피하는 것이 많지만, 당신은 해야 합니다. 

가서 해야 합니다. 

5% 책임분담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이 “오 내 아이들은 이러저러해요”라고 하지만 피하고 있죠. 

그건 분명한 패턴입니다. 

“오 내 아이들은 이러저러해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들, 많은 경우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피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과거의 문제와의 건강한 대치이고 용서를 비는 겁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용서한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적어도 그들은 당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을만큼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건 그들의 마음 속에 이미 성장의 신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의 문이 그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문을 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관계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빠르게가 아니고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하셨듯이 당신도 인내해야 합니다.

이것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그러한 끔찍한 상황에 있다면,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끝난게 아님을 이해하세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당신의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하세요. 

아름다운 빛이 되세요. 

그리고 과거에 폭군적으로 행동했다면, 그들에게 다가가 사과하세요.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세요. 

더 이상 당신의 자존심에 대한 게 아니란 걸 보여주세요. 

잘못을 했으면 사과하세요.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게 하세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악마가 원하는 대로 힘을 잃지 말고 힘을 가지세요.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지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예를 들어 폭군적으로 행동했다면, 그 어려운 대화를 나누고 많은 경우 분노를 받아야 하지만, 네, 거쳐야 해요.

죄송합니다, 원래 그래요.

 

수년 간 너무나 많은 분노를 아이에게, 아이의 마음에 줬으니까 분노를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과장을 가속화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마음 속에 원하는 회복과 목회의 과정의 속도를 올릴 수 있는 문일 수도 있어요. 

아버님이 가정 없이 천국에 들어설 수 없다고 하실 때 힘을 잃으면 안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인내하기 위해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인내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인내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요. 인내 인내 인내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인내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고 당신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고 당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그리고 당신이 행한 작은 용기를 쓰실 겁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쓰셔서 당신의 섭리를 나아가게 하실 겁니다. 아멘. 

오늘 용기를 가지세요.

그런 상황에 있다면 용기를 잃지 마세요.

끝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실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포기했다면 끝났지만, 당신이 강하고 담대하면 끝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용기 있는 행동을 쓰셔서 치유, 구원, 복원을 가져오시고 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실 겁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세요.

당신의 자존심을 보존하지 않는데 집중하시고 버리세요.

그리스도 안에 죽고 그리스도께서 그것들을 천천히 회복하시게 하세요.

그리스도께서 하시게 하세요. 화내지 말고 좌절하지 마세요.

하루 만에 끝나길 원하지 마세요. 하루만에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사람이고 영혼입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인내심을 가지세요.

가만히 있고 그분이 하나님임을 아세요.

불안해 할 때 숨을 들이쉬세요.

나는 살아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전 살아 있습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전 살아 있어요. 아버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살고만 있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