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1/06/08 (화)
영한번역:이희정
말씀:2대왕님
안녕하십니까, 2021년 6월 8일 킹스리포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의 리마말씀은 베드로전서 3장입니다.
1 이와 같이 너희 아내들아, 너희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아내의 말없는 행실로 인하여 그들을 얻고자 함이니,
2 이는 그들이 두려움 가운데 행하는 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봄이라.
3 너희는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거나 옷을 입는 외모로 단장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썩지 아니하는 것 곧 온유하고 고요한 영으로 단장할지니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값진 것이니라.
5 예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여인들도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자신들을 단장하였느니라.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복종했던 것과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딸들이 되느니라.
7 이와 같이 너희 남편들아, 아내들을 더 연약한 그릇으로서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서 귀히 여기되, 지식을 따라 그들과 동거하라. 이는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성경에서는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모두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남편이 믿음자가 아니거나 하나님께 신앙이 없을 때에 대한 부분도 나와있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할 때, 남성에게는 사랑에만 충실해서 증거할 수 없습니다.
여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남편으로부터도 마찬가지고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여성분들의 갈망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사랑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참아버님,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갈망하기 때문에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남성은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왕비와도 이러한 대화를 했었습니다만 고린도전서에 나온 내용 중 서로를 사랑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성이 서로를 사랑하라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성에게 있어서 사랑은 아기를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하는 그런 사랑입니다.
아기가 울고 화내고 모든 것을 해도 다 사랑해야 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특히 어린 엄마들이 아기가 크게 울고 있는 것을 그들을 싫어하거나 화내는 것으로 오해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표현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먹어야 하거나 씻어야 하거나 그런 상황에 말입니다.
그래서 왕비가 이런 것을 이야기 하면서, 사람들이 은혜와 친절을 악용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경계가 있어야 하는데 이 성경 구절의 내용에 대한 상담과 목회자로서의 인도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성경의 ‘사랑’을 여성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성이 아니고 남성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 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기와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은 즉 아버님께서는 사랑을 다른 입장에서 이해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싸우고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인간으로서 말입니다.
회개할 수 있도록 바래야 겠지요.
그러나 그 사람과 맞서싸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악을 행할 경우 막지 않는 것 아닙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악을 행했을 때 어느 정도의 포인트에서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도 말하듯이 여성은 폭력을 피하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그러나 무술을 접한 여성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폭력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남성의 지배에 대해 이해하고 큰 남성을 체력적으로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해합니다.
전문 무술가들 또한 이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이 큰 경우에 말입니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아이들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의 그러한 따듯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여성들의 사랑의 경험이 남성들의 사랑의 경험과 동일한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정의하시는 내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로 여성들의 사랑에 대한 경험은 폭력 혹은 폭력의 행사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성의 경우는 다릅니다.
남성들은 적을 사랑함에도 그와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존경할 수도 있습니다.
적을 존중하고 당신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봅니다.
죽을 정도의 레벨까지 말입니다.
한 무술가가 지하드와 무슬림 이념을 정말 싫어했지만, 그가 싸운 적들을 존중하고 사랑했습니다.
여성과 얼마나 다른지 보이십니까?
제가 설명을 드리면 여성들이 이해할 수 있지만, 본능적으로는 여성이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서구 교회들을 장악한 것입니다.
사랑의 개념을 더 여성적으로 이해하고, 더 베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에서 자란 남성들은 더욱 베타 남성들이 됩니다.
알파 남성적이 요소들을 얻지 못하는 것이죠.
알파 남성은 보호자입니다.
알파남성은 역량이 있고, 아주 강한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 시간과 투자를 합니다.
그의 삶의 큰 부분과 자원들과 돈 에너지를 투자하여 더 강한 남성 보호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남성이 목회자(pastor, priest)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들이 복음의 전도사(evangelist)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믿음이 없는 남편을 대할 때 말입니다.
우리의 일본 식구님들 또한 겪으신 일들이지요?
여성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입장에서 남편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청중을 생각하지 않았지요.
남성들에게 서로를 사랑하고 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냥 약함을 강요해서 그를 컨트롤 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여성의 사랑에 대한 강조들을 남성들은 그렇게 이해합니다.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 서로에게 친절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께서 보시는 참된 사랑의 본질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는 그냥 사회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남편을 바꾸려고 할 때 그녀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한 입장에서만 말했기 때문에 잘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서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복종했던 것과 같이’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라는 너는 사랑 사랑해야해. 라고 하며 죄의식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굉장한 공경으로 그를 존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신앙이 없는 남편을 바꾸려고 할 때 사랑을 강요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알파 남성들에게는 매우 효과가 없습니다.
그를 비틀어서 복종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종교 혹은 하나님에 대한 얘기로 그를 조종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께 자연스러운 것은 그에게 하고있는 것이겠지만,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내용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남편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는 여러분의 책임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 책임은 무엇입니까?
그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를 공경하십시오.
만약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남성은 그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 아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여러분께 익숙하지 않은 것도 같이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존경과 명예입니다.
남편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남편이라고 할 지라도 여러분은 그를 대가없이 존경하고 공경하도록 하나님께 명령받고 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이러한 책임에 대한 이야기 없이 사랑에 대해서 잔소리 하는 것은, 그래 이 여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뭘해야 하는지 항상 지시하고 있어. 나는 인내해야하고, 사랑해야하고, 인내해야하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아니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아.’ 라고 말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복종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어. 라고 남성들은 느낄 것입니다.
그렇죠?
만약에 남편이 아내에게 가서, 당신은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복종해야해. 무조건적으로 나를 존경해야 해. 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만을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것은 여러분을 매우 화나게 할 것입니다.
100퍼센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남편이 그렇게 존경만을 이야기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그의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남성의 마음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대해서도 말해야겠지만,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주신 책임도 함께 이야기해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를 무조건적으로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주여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남편을 목회자로서 힘을 실어주는 것 이아니라, 하나님을 무기로 그의 목회를 뺏어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카톨릭에서 자라셨다면 이러한 경향이 더 큽니다.
이것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교회 또한 여성으로부터 크게 지배되어 있고 페미니즘이 깊이 침투되어 있다면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의 엄마가 어떻게 하셨는지 잘 보아야합니다.
엄마가 아빠를 영적으로 지배하려고 했나요?
영적으로 집안의 머리가 되려고 했나요?
그리고 아빠가 가정의 목회자가 되도록 힘을 실어주지 않았나요?
여러분의 엄마가 그러셨다면, 여러분 역시 여러분의 남편에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것을 다시 보고 그것이 나쁜것임을 알야합니다.
목사님을 도와드린다고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과 믿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목사님이 더 잘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저는 목사님을 믿습니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굉장히 온화하게 대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편에게 대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조심하게 아주 젠틀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를 조종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기로 남편의 목회를 뺏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것들을 안내받지 못하고 이것에 많이 실패합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경우를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일본 식구님들 일본여성분들이 한국남편에게 이렇게 해서 그들의 결혼이 무너지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
많은 미국 식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우 슬픈 일이지만, 저는 사랑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해 드릴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여성이 첫 번째 데이트를 나갈 때 여성의 마음속에서는 그들이 데이트하는 상대와 완전히 솔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솔직하게 그녀의 문제점에 대해서 다 말합니다.
나는 이러한 문제가 있고.. 솔직하게 계속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상대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점들을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데이트에게 남성에게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즉, 그래 너는 이런 것 이런 것 이런것들을 겪어내야되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것 이것과 겪어야되고 나는 바꾸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나는 성숙해지지 않을거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남성이라면 그냥 갈 것입니다.
아주 미성숙한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교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대할 때 이렇게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똑같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우리 커뮤니티를 사랑하기를 원해서 그럴수 도 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너무 빨리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참아버님에 대한 모르는 경우에도 그냥 선포해야한다고 생각이 들어 나는 참아버님을 사랑합니다, 참아버님은 예수님이십니다. 라고 첫 미팅에서 이야기 한다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통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예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바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 초창기에도 원리 강론 강의를 먼저 들어야 했고, 2일 7일 21일 이렇게 통해서 아버님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셨을 것입니다.
갑자기 하루 아침에 듣고 깨달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리 강론을 배울 충분한 시간에 걸쳐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냥 첫날에 바로 와서 모든 것을 알수 없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정직해야 한다 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정직한 것이 아니라, 바보같은 것입니다.
그 상대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여성들이 믿음이 없는 남편들에게 했던 것과 같습니다.
나는 솔직해야 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솜씨있게 숙련되게 전해야 합니다.
속임수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미 사회에 나가 믿음을 잃은 경우에 다시 신앙을 되찾게 하고 싶을 때, 자녀들에게 특히 아들들에게 얘기할 때 얼마나 조심스럽고 주의깊게 이야기 하십니까?
자녀들이 아버님을 믿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솔직하게 아버님이 예수님이신 것을 아니? 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그 자녀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반대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뭐야 나는 그냥 여기 떠날거야 라고 할 것입니다.
이미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민하게 조심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똑같이 남편에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신나간 일입니다.
그것을 무신론자인 아들에게 해야한다면, 남편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증거할 다른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어느 단계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가 소화하지 못한다면 솔직한 것이 아니라 바보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랬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어떤 믿음도 없고 하나님을 싫어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냥 계속 여러분을 때리기만 하고 여러분이 더 하나님을 싫어하게끔 하는 일만 하셨다고 해 봅시다.
아니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솜씨좋게 능숙하게, 다시 여러분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왕비들과 전도사들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망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을 파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미성숙함과 자기를 돌아보지 못함으로 인해서 말합니다.
상대방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예민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어느 단계에 있고, 어느 정도로 소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을 기억하십시오.
특히 교회를 나간 경우라면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하게 대하셨는지 기억해보십시오.
그들에게 하나님을 강요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나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셨다면, 그 반응을 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