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1/03/23 (화)
말씀: 2대왕님
영한번역: 이희정
안녕하십니까, 킹스리포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2021년 3월 23일 화요일, 천력으로 천기 12년 2월 11일입니다.
여러분, 오늘 나태함을 죽일 준비가 되셨다면 이 새로운 철장왕국 머그컵을 봐주십시오.
Thou Shall Kill Sloth (나태함을 죽여라) 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오늘 아침 나태함을 죽일 준비가 되셨다면 #murdersloth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웹사이트 rodofironministries.org를 확인하셔서 이 새로운 Black Robbed Regiment (까만 옷을 입는 목사와 제사장의 부대) 후드를 확인해보십시오!
가장 애국적인 내용입니다. 참된 영적인 무사들입니다.
마침내 웹사이트에 검정색 Black Robbed Regiment 후드가 나왔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제 딸의 강하고 멋진 모습입니다.
계속 보시지요. 바이크 들이 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 사이트의 배경도 검정색으로 바꾸어서 사진들이 더 잘 보이도록 하려고 합니다.
곧 웹디자이너와 미팅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십시오.
이 애국적인 상품들을 골라주시면 되겠습니다.
Murder Sloth(나태함을 죽여라)가 적힌 머그컵과 후드들을 확인해주십시오.
오늘의 리마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입니다.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들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의 기도에 너희를 말하며, 너희 모두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은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을 아노라.
5 이는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대단한 확신으로 되었음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했다는 것을 너희도 아는 바라.
6 또 너희가 성령의 기쁨으로 많은 환난 가운데서 그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었으므로
7 마케도니아와 아카야에서 믿는 모든 자들에게 본이 되었으니라.
8 이는 주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카야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의 믿음이 퍼져있는 모든 곳에서 전해졌으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음이라.
9 그들이 우리에 관하여 스스로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너희에게 들어갔으며,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하나님꼐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의 아들, 즉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해 내신 예수꼐서 하늘로부터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1-10, KVJ 킹제임스 성경)
바울은 5절과 6절에서 성령에 대해 두 번 언급합니다.
“이는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대단한 확신으로 되었음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했다는 것을 너희도 아는 바라.” (1:5)
“또 너희가 ‘성령의 기쁨’으로 많은 환난 가운데서 그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었으므로” (1:6)
이것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얼마 전 자녀들과 훌륭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명은 신학과 변증론의 내용을 아주 잘 다루게되었는데요.
디스커션 중에 성령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특히 크리스쳔 신학과 비교해서 통일교 신학에서 다루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포괄적으로 삼위일체의 관계에 대한 내용도 나왔습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려면 원리말씀만 볼 수 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님께서는 ‘밤의 하나님’과 ‘낮의 하나님’의 신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밤의 하나님, 즉 창조 이전에 하나님 (pre-creation God)으로부터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낮의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하셨습니다.
창조이후의 하나님 이십니다.
아버님께서는 아버님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분하셨습니다.
원리말씀에는 메시아는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나와있습니다.
메시아는 사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통일교에서 전통적으로 배웠던 내용이었습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굉장히 낮은 레벨의 신학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Christianity)에서는 그리스도론(Christology)의 내용이 있었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굉장히 높은 그리스도론입니다.
사람(man)이자 하나님이시고, 삼위일체에서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하고 계셨던 존재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에서 다루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내용입니다.
삼위일체의 시스템 그 자체에서 ‘사랑’을 상호 간 응답(reciprocate)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상호 간 응답하기 위해서 인류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만드실 필요가 없으셨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인류를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신학의 주된 결론입니다.
그래서, 원리강론의 내용 자체만을 본다면 우리는 메시아에 대한 낮은 그리스도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시아를 하나님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죠.
여성에게서 태어난 사람으로는 봤지만, 하나님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밤의 하나님, 낮의 하나님의 신학 내용을 밝히셨을 때, 아버님께서는 그 그리스도론을 승격시키셨던 것입니다.
아니다, 아버님은 메시아로서 특별하시다.
그냥 인간이 아니다.
아버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셨고, 밤의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
창조이전의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즉, 그리스도께서는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크리스쳔(기독교)의 그리스도론과 가까워진 내용이었습니다.
우리(통일교)는 낮은 그리스도론부터 굉장히 높은 그리스도론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굉장히 놀라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갑자기 낮은 신학으로부터 높은 신학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인지적인 부조화가 있었고 그것에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아버님께서 이렇게 해주신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님께서 ‘그리스도로서의 아버님’의 고유한 특성을 명확하게 해주셨고 강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물론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항상 기독교로부터 분열되어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냥 또 다른 예언자로 보는 이슬람과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로부터 분열되어있었을 것이지요.
항상 논리적인 분열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보니 이것이 바로 우리를 기독교로부터 분열시키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매우 높은 그리스도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낮은 그리스도론을 가지고 있었지요.
아버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느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심에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마지막에는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아버님께서 메시아에 대한 그리스도론을 승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내용이 정말 한씨어머니를 폭로시켰습니다.
‘메시아는 그냥 인간일 뿐이야.
그래서 나도 메시아가 될 수 있어.’
보이십니까? 그게 바로 한씨 어머니가 한 것이죠.
그 덫에 걸려버린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절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메시아는 완전히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종족메시아가 되라고 말씀하신 내용은 그 구원자로서의 메시아가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구원자’(하나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족적 메시아로서의 출발점을 시작하는 것이죠.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명확한 차이입니다. 메시아는 특별하고 유일무이 하십니다.
아버님께서는 아버님의 그리스도론을 승격시키셨고 아버님께서는 다르다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한씨 어머니는 밤의 하나님, 즉 창조이전의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령을 보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는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시각 그리고 둘째는 그리스정교회 혹은 동방정교회의 시각입니다. 이것은 큰 분열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큰 신학적인 분열이있었습니다.
전자(로마카톡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성령’(holy spirit)은 성부(father)와 성자(son)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 모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는 다른 사람이지만, 본질(substance)으로는 같다는 것입니다.
로마카톡릭과 프로테스탄스 신학에서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정교회에서는 성령은 성부(father)로부터 비롯되지만, 성자(son)로부터 비롯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성자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원리에서 사람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원리에서 사람은 육체적인 몸과 마음 (육체, 육심) 그리고 영인체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영인체 또한 몸과 마음으로 (영체, 생심)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해가 가시나요?
간단하게 말해서 만약 여러분이 유령을 보았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그것의 영적인 몸체(영체)를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시고 나타나셨습니다.
크리스쳔들은 예수님께서 더욱 영광스러운 육체로 다시 나타나셨다고 보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부활하신 것으로 봅니다.
저는 항상 이것을 차원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높은 차원(dimension)이 낮은 차원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3D 상태에서 점(dot)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점은 1차원이지요.
그리고 한 가지의 선(line)도 존재할 수 있는데 이것은 2차원입니다.
3차원(3D)의 존재로서 저는 점을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도 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3D 사물로서 우리는 점과 선 모두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과 선을 나타내고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인체는 영적 세계에서, 특히 하나님의 영인체라면 더 낮은 차원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맞지요?
그래서 성경에서 천사들이 나타는것 또한 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천사들도 영인체이지만 모세의 앞에 나타나서 고군분투 했던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사람들은 천사와 성관계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에게 너무 현실같이 실제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의 발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벽을 통해 나타셨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성경에서는 영인체가 나타나는 내용들이 많이 나왔던 것입니다.
원리말씀에서 육체적인 몸과 마음, 그리고 영적인 몸과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아버님의 영적인 몸과 마음 (영체, 생심)과, 일반 사람의 영적인 몸과 마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버님의 영체, 생심과 예수님의 영체, 생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저는 원리적인 시각에서 본 영인체의 몸과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숨을 거두고 영계로 갔을 때 아버님과 예수님을 보게될 것입니다.
네, 물론 아버님과 예수님은 한분 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이신 것인가요?
우리는 분명 참아버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보게 될 건가요?
참아버님안에 포함이 되신 상태이실까요?
우리는 이러한 추측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추측입니다.
모두가 죽기 전까지는 완전히 모르는 내용들 이지요.
그러나 원리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참아버님과 예수님의 차이는 영적인 몸(영체)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영계에서 참아버님과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아버님과 예수님의 영적인 마음(생심)은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일반적인 사람들, 우리는 하나님과는 다른 영적인 몸과 마음(영체, 생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개별적인 영체와 생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사람의 유령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 유령은 영체와 생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는 분리된 영체와 생심입니다.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이십니까?
예수님이시라면, 하나님과 같은 생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심은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아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님께서 나타나실 때 영적인 몸(영체)가 있으시겠지만, 아버님의 영적인 마음(생심)은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참아버님과 예수님을 동시에 같이 뵙게 되더라도, 참아버님과 예수님의 생심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라는 것입니다.
더 높은 차원의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추측하기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점에서 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지요. 혹은 점이 3D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원리말씀이 더 깊은 영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 대한 더욱 깊은 영역입니다.
이것들은 정말 흥미로운 주제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대상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체이시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셨지만, 주체와 대상의 위치로 보내신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이끄는 아버지의 위치에 계시다면 성령은 어머니처럼 교회에 사랑을 주는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침입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성령을 여자로 바꾸려고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이단적 내용이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파괴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물론 여성신 숭배와 성적인신매매 등의 길을 터주는 내용이 됩니다.
성령은 여자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 대상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예수님의 아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죠?
가인과 아벨 또한, 가인이 아벨의 대상에 입장에 있는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의 아내가 아니지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결혼하지 않는 관계에서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을 헷갈려하시는데요. 다시 한번, 성령은 여자가 아니고, 예수님의 아내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영인체의 대상의 입장으로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예수님의 영인체와 성령에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의 영인체 안에서도 영적인 몸과 마음(영체와 생심)이 있고, 예수님의 생심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기에, 그 성령은 성부(father)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정교회 시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는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분리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person)”이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아주 조심해야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사람”을 다루는 인류학적인 관점, 원리말씀에서 네 가지로 나뉘는 – 육신(1.육체, 2.육심) 그리고 영인체(3.영체, 4.생심) 이 네 부분이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훨씬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신학을 전공했기에 이 내용들과 많이 고군분투했습니다만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설명한 내용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이지만 또 동시에 각각 고유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원리에서 보는 ‘사람’에 대한 인류학적 관점이 그 해답에 대한 통찰력을 줍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3D차원을 넘어가는 높은 차원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직 제한된 내용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 그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영광스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위대할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내용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신비로움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울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리적인 관점, 육신과 영인체 그리고 육신의 몸과 마음, 영인체의 몸과 마음 – 그 관점이 성령, 예수님, 참아버님,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가 어떠한 관계인지 더욱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모두 죽고 영계로 간 이후에 모든 것을 확실히 알 게 될 것입니다.
원리말씀에서 많은 내용들을 정의하고 있지만, 현재는 3차원 세계에서 더욱 높은 고차원의 세계를 완전하게 이해 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우리의 생심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리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성령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대상의 입장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절대, 예수님의 아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혼돈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대상의 입장이라면 아내인가? 아닙니다.
가인은 아벨의 대상의 입장이었습니다. 아내가 아닙니다.
성령은 아주 큰 폭발적인 힘으로 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적인 힘과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하얀 비둘기(dove)와 같이 예수님을 비추는 빛과 같이 온다고 말씀하신바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세례요한은 성령을 비둘기(dove)의 이미지로 보았었지요. 그렇죠?
그 비둘기는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영인체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그 성령은 예수님과 다른 사람(person)이지만,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풍부한 내용들이고, 하나님아버지, 참아버님, 예수님의 관계를 원리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과 아버님은 다른 시대에 이 지상에 계셨었기에 명백히 두 개의 다른 육체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리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류학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육체를 만드셨다면 영체 또한 만드셨을 것입니다.
영인체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원리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육신이 있다면 영혼 또한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창조하셨을 때 영인체도 같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아주 깊은 내용이고, 계속해서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리말씀에서 영인체를 영혼(spirit)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몸과 마음 (영체와 생심)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훨씬 더 깊은 신학적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고차원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영적세계에서만 머물기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손과 발이 이 지상에 닿아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저 영적인 세계에만 있기를 바라셨다면 우리를 영인체로만 만드셨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과 현실로도 돌아와야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보호해야 하는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공부하고, 영적인 심사숙고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영적 삶의 한 부분이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과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리라”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와 공의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내용을 심사숙고하기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지요.
마지막에는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뜻의 효력을 발생시켜야하는 것입니다.
훈련해야하고, 하나님의 왕국에서 평화군경찰로서 서로를 지키는 방어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 여러분! 이것을 아셨다면 #God is great을 해주십시오!
우리는 아주 깊은 신학적인 전통이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땅의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일으키는 전통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참아버님께서 정치사탄주의와 싸우시며 크게 강조하시고 만들어가셨던 내용들이지요!
킹스리포트에 계속 함께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