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1/03/16 (화)

훈독왕 | 20210317222633

The King’s Report 2021/03/16 (화) 

말씀:2대왕님
번역:이희정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킹스리포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2021년 3월 16일 화요일, 천력으로 천기 12년 2월 4일입니다.

오늘 늦은 오후에는 약간의 비가 올 예정입니다. 

비와 약간의 눈이 동반하겠습니다. 

내일은 다시 화씨 40도권으로 기온이 올라가겠습니다. 

일요일 이후로는 60도권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니 이제 곧 봄이 오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놀랍습니다. 

이제 모든 새싹들이 나오기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새싹들이 나고, 꽃과 식물들이 피어나겠습니다. 

새싹들과 꽃들이 피어나는 것은 놀랍고 위대한 일입니다. 

네, 여러분 오늘의 리마말씀으로 가겠습니다. 

그전에 #rodofironkingdom을 해주십시오.

오늘의 리마 말씀은 다니엘 1장입니다.

말씀의 배경을 먼저 보도록 합시다. 

바빌론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있는 고대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으며, 네오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명의 친구들은 유대민족을 이끄는 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B.C. 605~586년 사이에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성서 작가들은 이곳을 이교도와 우상숭배의 도시로 묘사했습니다.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 2세는 이 도시를 6제곱마일으로 확장하고 거대한 건물들로 꾸몄습니다. 

도시에는 거대한 양쪽 성벽이 있었습니다. 

유프라테스강 양쪽을 걸치는 길이였습니다. 

그곳에는 이 벽을 감싸는 8개의 주요 문이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궁전 단지 들이 있었고, 궁전 북남쪽에는 정원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그의 이방인 아내 중 한명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바빌론은 B.C. 539년에 페르시아인들에게 굴복합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바빌론의 멸망을 예측했고, 현재에는 이 도시는 이라크에 폐허가 되어있습니다. 

이 성경에는 여기에 바빌론에 대한 사진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시면 네오 바빌로니아 왕국이 예루살렘과 유다까지 맞닿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가 있고 유다 그리고 바빌론이 이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빌론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인접해 있는 도시였죠. 

그리고 막강한 악함의 씨앗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악마와 같은 이방신의 도시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다니엘 1장을 읽을 때 이것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다니엘 1장 8절입니다.

8 그러나 다니엘은 그가 왕의 음식으로나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리라고 마음에 결심하고, 내시 장관에게 요청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하였더라.

9 그때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내시장관의 호의와 은총을 얻게 하셨더니,

10 내시 장관이 다니엘에게 말하기를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내가 너희의 음식과 너희의 음료를 정해 놓으셨으니, 너희의 얼굴이 너희와 같은 또래의 소년들보다 못한 것을 그가 어찌 보셔야 하겠느냐? 그렇게 되면 너희가 왕 앞에서 내 머리를 위태롭게 만들 것이니라.” 하더라.

11 그러자 다니엘은 내시 장관이 다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라고 세운 멜살에게 말하기를 

12 “내가 당신께 간구하노니, 열흘 동안 당신의 종들을 시험하시어, 우리에게 콩죽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용모와 왕의 음식을 먹은 소년들의 용모를 살펴보시어 당신이 보시는 대로 당신의 종들을 처분하소서.” 하니라.

14 그러므로 그가 그 일에 대해 그들에게 동의하고 그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였더니,

15 열흘이 끝났을 때 그들의 용모가 왕의 음식을 먹은 모든 소년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더 살지게 보였더라.

16 그러므로 멜살이 그들의 음식과 그들이 마셔야 하는 포도주를 가져가고 그들에게 콩죽을 주니라.

17 이 네 소년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식을 주셨고 모든 학문과 지혜에 익숙하게 하셨으며, 다니엘은 모든 환상과 꿈들을 깨닫더라.

18 그때 왕이 말했던 날들의 끝에 그가 그들을 불러들이니, 내시 장관이 그들을 느부캇넷살 앞으로 데려오더라.

19 왕이 그들과 대화해 보니 그들 모두 가운데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는 아무도 찾을 수 없으므로, 그들이 왕 앞에 서게 되니라.

20 왕이 지혜와 지식에 대해 그들에게 묻는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이 자기의 온 나라에 있는 모든 마술사들과 점성가들보다 열 배나 더 나은 것을 알더라.

21 다니엘은 코레스 왕의 첫해까지 계속 있더라.

(다니엘 1:8-21, 킹제임스 버젼 KJV)

네, 다니엘은 위대한 예언가였습니다. 

B.C. 605년,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끌려갔던 시기에 다니엘은 청소년이었습니다. 

그가 예언의 비젼을 얻은 것은 80대 였습니다. 

바빌론에서의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니엘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하나님에 대한 헌신 속에 강해졌습니다. 

다니엘은 예언가였지만 이방 왕들의 궁중에서도 그들을 모셨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완강했고 이방 땅에서 하나님을 따르며 살았습니다. 

위기에 순간들에서, 그는 첫 번째로 하나님께로 가서 기도드렸습니다. 

다니엘의 예언들은 많은 종말론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B.C. 605-562년 동안 느부갓네살이 바빌론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네오 바빌로니아 왕국 시기에 가장 강한 왕이었으며 잔인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길을 막는 사람들은 굴복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성전들을 불지르고, 이스라엘인들을 바빌로니아로 망명시켰습니다. 

다니엘은 종말론적 비젼을 가지고 있었고, 느부갓네살 왕의 궁전에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느부갓네살을 자문했습니다.

여기에서 4명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세뇌시키는 것의 한 예시를 보여줍니다.
모든 4명의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유산을 상징하는 히브리 이름들이 있었는데, 다 바빌론의 신들을 섬기는 바빌론식 이름들로 바꾸어버렸습니다. 

 

보십시오. 
[다니엘] =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시다. 라는 뜻인 이름을 “벨드사살”으로 바꾸었습니다. 

벨이 보호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내어 사탄적인 이름을 준 것입니다.

[하나냐] =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라는 이름은 “샤드락” (태양의 영감) 으로, [미사엘] =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 라는 이름은 “메삭” (아쿠에게 속하는), 그리고 [아사랴] =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 라는 이름은 “아벳느고” (느고의 종) 으로 바꾸었습니다. 

보이십니까?
이 새로운 이름들은 바빌로니아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이름들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 그들을 포로로 잡은 바빌론의 권위자들이 이 4명의 히브리 유산으로부터 떼어놓았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언약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거의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결혼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이것을 반영하고 있었죠. 그렇죠?

다니엘,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 이시다. 

하나냐,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미사엘,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 

아사랴,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 

이 모든 이름들은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전통은 아이의 이름을 하나님과 연관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 그들의 근본적인 정체성, 모두가 그들을 부르는 이름에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안녕 다니엘, 잘지내니? 라고 할 때 그들은 사실 안녕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 이시다.’ 잘 지내고 있니? 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냐와 마사엘에게 인사할 때에도, 안녕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하나냐),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미사엘),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아사랴) 잘지내니? 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언약과 연결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이름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타이틀과 이름이 하나님과의 언약, 그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도 기도를 마칠 때 우리의 이름으로 보고드려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보고드린다는 것은 그냥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보고’(report)는 더 높은 권위자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군대와 같이 위계가 있는 체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지요. 

하나님의 군대라는 관점에서 보고는 정말 하나님께 상관자로, 아버지로 ‘보고’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으로 사인을 해서 하나님께 보고드리는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드릴 때 그 앞에 ‘축복중심가정’을 붙입니다. 

우리의 혈통이 하나님께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혈통이 ‘하나님과의 언약’ 속의 관계안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혈통은 하나님과의 연약 속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이 그들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적인 자비로우심은 그 하나님과의 언약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가 참부모님과 하나님을 통한 축복결혼을 받으면 그때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혈통이 하나님과의 언약이 연결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와 3대왕권을 통해서 그리고 2대왕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축복중심가정들을 올려서 2대왕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왕과 목회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참아버님, 3대왕권의 혈통과 연결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및 주요 행사들에서 왕과 왕비로 이름을 부르는 것 또한 하나님과 3대왕권과 연결된 하나님의 언약을 나타내는 중요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의 이름들에서 나타난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아무 신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아버지,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바빌론에서는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주어버린 것입니다.다니엘의 이름에 나오는 하나님이 완전히 다른 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죽이는 신입니다. 아이들을 먹어버리고 아이들을 죽음으로 희생시키고 불지르는 신입니다.

그게 바로 타락에서 사탄이 했던 것이었습니다. 

소아성애자였고 강간자였습니다. 

해와를 간통하고 파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그렇죠? 여성을 성적 무기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 모든 폭군들이 하는 것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여성을 이용합니다. 

 

CIA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들을 성적 무기로 사용하고 협박 갈취합니다. 

그게 바로 사탄이 했던 짓입니다. 

해와를 더럽히고 강간한 후 성적인 무기로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을 파괴시켰습니다. 

아담이 죄를 회개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마가 준 그 공포에 넘어간 것입니다. 

사탄이 공갈, 협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적 무기화된 해와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왕국과 결혼, 미래를 파괴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사탄주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순수함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가장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점점 살아가면서 죄를 많이 짓게 되죠.

그래서 태어난 아이들이 가장 죄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사탄주의는 그래서 항상 아이들을 파괴시킵니다. 

한 종족을 파괴시키려면 그 유전적인 선을 끊어버려야합니다. 

현대 막시즘을 통한 정치사탄주의, 좌파사상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당신의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죽이게 할 수 없다면, 배속에서 나오자 마자 죽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를 망치게 하고, 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할 모든 반대의 것들을 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합니다. 

그것이 바로 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들, 남편을 존경하지 않는 아내들을 그들의 결혼을 망칩니다. 

그리고 물론 그들의 가족을 파괴합니다. 

그들의 아이들의 삶을 망치는 것 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집니다. 

반대로 배우죠.

남자들은 아내들을 짜증나하도록 배우고, 아내들은 남편을 불존경하도록 배우는 것입니다. 

드라마와 페미니즘 등의 모든 내용들을 통해서요. 

이것은 바로 관계를 망치는 공식입니다. 

물론, 그러면 아이들이 그 모든 고통과 슬픔을 거두고 그 관계의 고문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공적인 결혼을 할 능력을 떨어뜨리지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행동하지 않고,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는 것을 행동하지 않는 가정의 많은 경우 그 아이들은 타격을 입습니다. 

사회적이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대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능이 망가진, 매우 굉장히 긴장된 상황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안정감에 대한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안정감의 기본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와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관계, 남편과 아내가 존중하는 관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 아내의 남편에 대한 존경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신적, 심리적으로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입니다. 

그 안정감이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자긍심으로 이어지고, 결혼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했다면 당신의 자녀들은 그것을 갈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만약 당신의 결혼생활이 성공적이 못하고, 비기능적이라면 당신의 자녀들은 그 언약 속의 결혼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리섹스 문화를 찾을 것입니다. 

그게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우리의 행동이 매우 중요한 것이고 아주 큰 결과들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훈련하는 것에 있어서 말입니다. 

우리의 결혼생활을 도장에서와 같이, 우리가 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사랑할 수 없는 아내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남자로서 아내가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사랑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아내로서 남편이 존경스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맞지요? 

그리고 이 사랑과 존경을 통해서 그 아내와 남편이 탈바꿈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매일매일 서로를 겪습니다. 

그래서 서로 어떻게 말하는지를 통해서 그 사랑과 존경의 관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끔은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쏘아붙입니다. 

그것이 습관이 돼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그것을 바로 알아차리고 "아, 이것은 좋지 않다. 이것은 사랑스럽지 않고 존경스럽지 않다" 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또한 삶과 죽음이 혀 끝에 달려 있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바보같은 말을 통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상 입한다는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당신을 죽이지는 않지만, 증오심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관계 속에서 날카로운 쐐기를 박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에게 로맨스를 잘하는 남편을 봅시다. 

어떠한 톤으로 아내를 대하고 말하는 지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을 존경하는 아내를 봅시다. 

말의 톤을 신경씁니다. 

무시하는 말투로 그를 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간단한 것들이 우리의 매일매일 일상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과 부딫히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서로 소통을 하면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걸으면서 신발과 발이 계속 잘못 부딪히면 발에 상처가 날 수 있습니다. 

그것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멍이 들거나 빨간 상처가 나고, 그대로 계속 부딪치면서 놔두면 입히면 물집이 생깁니다. 

그 상처가 커지고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부상 입은 상처가 고통을 유발합니다. 

그 물집과 상처를 그냥 두면 병균에 감염될 수 있고, 아주 심각한 경우에는 발을 잘라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물집에서 온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신경을 쓰지 않고 놔두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아프면서 눈치채고 느끼게 되고, 점점 더큰 상처, 감염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씩 얼마나 천천히 이루어지는지 보이십니까?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물집에 밴드를 빨리 붙여야 합니다. 

빨리 붙이면 상처로 인한 고통도 빨리 덜 수 있습니다.

이 비유가 맘에 듭니다. 좋은 비유이지 않습니까?

부딪칠 때마다 마찰이 이렇게 커지는 것입니다.

빨리 그 마찰을 줄어야합니다.

이 마찰을 그냥 놓아둔다면 그냥 한발짝씩 계속 내딛을 때 마다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빨리 그 마찰을 줄이지 않는다면 더 악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실패한 결혼을 몇 가지 보셨나요? 실패한 결혼중 얼마나 많은 경우에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 마찰이 있을 때 밴드를 붙이고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마찰을 줄이도록 하지 못했던 것 입니다.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 작을 마찰들이 계속 문지르고 문질러서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물집이 잡히고, 고통과 상처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한다면,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마찰을 최대한 빨리 없애야 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시크래프트에서도 처음에는 밖에서의 환경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훈련할수록 주변 환경과 기온에 예민해지고 알맞은 온도를 위한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관계에서도 더 예민하게 그 마찰을 깨우치고 느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서로에게 마찬가지입니다. 

한쪽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아내들 또한 남편에게 예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존경스럽게 대하면서 바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에게도 사랑스럽게 말하면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렵기 때문에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과 몸을 다스릴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더 많이 훈련할수록 발전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이 마찰을 빨리 줄여나가야 합니다. 

계속 이어지도록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게 바로 사탄이 침범하는 전투입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 형재 자매 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로서 그 마찰들을 줄여가야 하는 것입니다.

1;1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간의 라이벌관계를 해결해 줍니다. 

항상 부모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경쟁해야하지만 1;1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훈련들이 일상에서의 마찰을 줄여주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영특하기 때문에 이런 마찰을 주면서 천천히 가져가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좌파는 참으면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장악해온 것입니다. 

사탄은, "그래, 하나님의 언약속에서 결혼하겠다고? 그래 해봐, 내가 매일의 마찰을 줄거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타켓팅이 될 것입니다. 

이제 결혼했으니 사탄으로부터 멀어졌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젊은 사람들 특히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사탄이 겨냥해서 망치려고 할 것입니다. 

사탄으로부터 겨냥당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이 작은 것들을 이기게 해서는 안됩니다.

더 오래 놔둘수록 더 많은 상처와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아주 심각한 비기능적 결혼생활을 한 부모의 자녀의 경우, 많은 경우 그냥 같이 있기만 위해 살거나 사람들에게 망신당하지 않으려고 그냥 사는 경우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 자녀들도 그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90 퍼센트의 경우, 그 부모의 자녀들은 절대 축복받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들이 만든 결과물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 부모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들이 결혼하기를 바란다면 여러분은 결혼에 성공적 이어야합니다. 

결혼 안에 강해야합니다. 

많은 기쁨과 즐거움, 웃음이 넘쳐야 합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훈련을 하면 할수록 더 쉬워집니다. 

결혼생활이 즐겁기가 더 쉬워지는 것입니다.

1세들은 이러한 훈련과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척 시대였고 참아버님과 함께 사탄과의 전쟁을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천일국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가르침으로 축복을 받고, 결혼 하기 전에 이러한 것들을 배우는 것입니다. 

굉장한 축복입니다. 

확률적으로도 훨씬 더 공격에 대한 많은 준비를 하고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기능적 문제와 상처와 아픔이 있는 가정들에 있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러한 것들을 파괴해 주시고, 그러한 악한 습관들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님과 참아버님의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 할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훈련을 시작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여러분. 

휴식시간 이후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