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0/05/25
킹스 리포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기념일입니다. 특히 미국 전쟁중 죽은 미군을 위한.
그래서 오늘은 바베큐와 여러 파티와 이벤트가 있는데, 이 기념일의 본연의 의미, 본래 1970년까지 이름이 선언날이였습니다. 병역중 죽은 미군들의 무덤위에 선조기가 달려집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희생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이 사람들이 현대에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천기11년 4월3일입니다.
저번에 4월을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양력에는 거의 365일이 있습니다. 음력에는 354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 3년마다 음력에 한달이 더해집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유로 4월이 반복됩니다. 이번 해에는 13개월이 있을 겁니다.
이번주는 따뜻한 기온이 계속될 것입니다.
저는 저번과 같은 리마가 나오지 않도록, 좀더 옆으로 손가락을 넣었는데, 그럼에도 같은 리마가 나왔습니다.
오늘의 리마는 같은 챕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절이 약간 다릅니다.
저번에는 호세야 1장이었는데, 이번에는 호세야 2장입니다.
(호 2: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빠른 편이 낫습니다. 이에 대해 할말이 없습니다.
왕님께서 마크 월터씨와의 인터뷰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분은 armed America radio broadcast의 설립자 CEO 이십니다. grilling armed(?)책의 저자이시기도 합니다. 기념일의 바비큐 파티를 위해 좋은 어드바이스를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상시청)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5절로 바로 가겠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어떤 사본에, 우리 죄를 씻으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기에서 우리의 주권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종족의 제사장이 나옵니다.
우리의 인권이 나오는 곳이고, 정부나 정치인이나 헤리스버그 워싱턴디씨에서 허락하는 줄 알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주의 설계자, 모든 창조물의 건설자이십니다.
오늘은 마크 월터스씨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회사의 CEO이시고, NCEO의 설립자이시고..
마크씨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크씨: 저를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왕님: 당신과 이야기할 수 있게 돼서 축복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항상 듣고 있고, 특히 지난 2틀동안 저의 형 저스틴이 당신과 함께 했는데, 물론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브로드케스팅 네트워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고, 저스틴이 당신과 어떻게 엮이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마크씨: 저는 제 할머니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제게 입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글을 쓰지 말고 라디오를 하며 말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팀 슈미츠와 저는 함께 하마브리즈(?)에 앉아 있었는데, 2009년에 샷 쇼우가 닫히고 우리가 어떻게 은폐소지 잡지를 만들지 논의를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라디오에 하면 어떨까? 은폐소지 잡지를 라디오에 라이브 방송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어떻게 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고, 이야기하는 것을 멈췄습니다.
그런데 2주 후에 우연적으로 클리브랜드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공동사회를 봐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바로 뛰어들고, 이것이 결국 제 armed radio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4개월 후에 이 라디오 방송이 탄생했습니다.
그 후 한달 후에 35개의 방송국을 거치고, 1시간에서부터 3시간을 방송했고, 그 이후 이 나라에 폭발적인 인기가 되었습니다.
타이밍이 딱 맞았습니다.
왕님: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브로드 케스팅을 하실 때, 새로운 책, grilling ...arm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마크씨: 이것은 제가 쓴 책 3권중 3번째 책입니다. 첫번째는 lessons for armed america, 두번째는 unarmed america 그리고 grilling while armed(?)는 부분으로 몇 년 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화기 전문가가 방송에 참여했을 때 제가 그 주말에 함께 무엇을 할지, 바베큐 레시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마크씨: 그는, 회전식 연발 권총과 좋은 짝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grilling while armed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5,6년 후에는 이것이 실현됐고, 제가 만든 것 중에 아주 잘되었습니다.
최근에 출판됐고, 사실대로 말하면,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왕님: 아주 맛있게 들립니다. 지금 배고파지게 만듭니다.
마크씨: 20개의 바비큐 레시피와 함께 20개의 총기에 대해 배웁니다.
한 바베큐와 총 한 개와 짝을 지었습니다.
진보주의는 음식과 와인과 짝을 짓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희는 좋은 바베큐를..
왕님: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훌륭한 유튜브 채널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은폐소지 잡지와 이 모든 총기 세계에서 하게 됐는데, 당신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총기가 익숙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까?
물론 당신이 폭행을 당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마크씨: 그건 2002년 11월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총을 쏘아 왔습니다.
제가 10,11살때 저희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총 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했는데, 트럭 비지니스에서 영업 사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저를 펜실베니아에서 버지니아로 옮겼는데, 저는 빨리 배우게 됐는데, 화물 운송 비지니스를 하게 되면, 울타리친 커뮤니티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간 도시중에 있기 불편한 곳도 있었습니다.
저는 판매를 하기 위해 곳곳으로 보내졌습니다.
남 필라델파아부터 케비넷 뉴저지까지 치안이 안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총기를 구매하게 되었는데, 제 첫 총은 레이벤25칼리버 반자동식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이 총은 역사로 이제 거의 사라졌습니다.
살인에 의해 판매가 중지되었는데, 그 살인은 남 플로리다에서 13살짜리가 할아버지로부터 훔친 그 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총은 제 첫 총이었습니다. 59달러에 구매했습니다. 전혀 쓸 일이 없었습니다.
총에 대해 더 빠지게 되면서 (운송회사를?) 졸업하게 됐습니다.
제가 플로리다에 이주하면서 은폐소지무기 총기면허를 받았습니다.
2002년에 일을 하러 가고 있었는데, 그때는 트럭..의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2시에 제 앞에서 2명이 지프를 세우더니, 교통을 막고, 저를 막았습니다. 저는 거의 지프를 받을 뻔했습니다. 2명이 지프에서 내리더니, 한 명은 손이 하얀 천 또는 티셔츠로 손이 감아져 있었습니다. 저를 손으로 가리키더니, 제가 다음 타겟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가 제 차에 들어오려 했지만,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날 총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행운적이게도, 그때는 아직 방어를 위해 총을 매일 지닌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만약 그날이 없었다면 범죄자가 저를 타겟으로 삼으면, 총기를 소지한 자와 마주하는 확률은 50%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100%가 되었습니다.
저는 총을 겨눴지만, 방아쇠를 당긴 적은 없습니다.
그 남자는 총을 보고 파트너에게 손을 흔든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게리 클렉스의 통계를 보면, 방어용 총의 95%는 한번도 (사람에게) 쏘지 않는 총입니다. 저는 그 안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 이후 총기소유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입했습니다.
왕님: 정말 대단한 경험입니다. 틀림없이 그날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호하신 것 같습니다.
마크씨: 그에 대해서는 저도 할말이 없습니다. 당시 제 딸은 2주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파워풀한 이유는, 이 논쟁은 어떤 사람과도 할 수 있는 논쟁이고, 몇 년 동안 걸쳐서 전국방송과 라디오 방송에 출현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과 말하기 힘듭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제 총기소유의 권리에 대해 저와 말싸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그날 곧바로 2주된 제 딸이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날 제게 총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제 어린 와이프는 오늘 과부가 되지 않았고, 제2주된 딸은 오늘 아직 아버지가 살아있습니다.
죽을만큼 제 딸을 사랑합니다. 11월에 18살이 됩니다.
그리고 아들이 2년후에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제게 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이 논쟁은 누구도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다. 누구와도 할 수 있습니다.
왕님: 그리고 NIJ통계를 보면 권총을 방어용으로 사용하는 139백만명은 목숨을 구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증언은 매우 파워풀합니다.
물론 당신은 armed american 라디오를 10년동안 해왔습니다.
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라이브때와 아틀란타 지역에 어떻게 뿌리를 박게 됐는지 이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마크씨: 정말 어렵습니다. 저는 이 코멘트로 잘 돌아갑니다.
2009년에 제 사업을 없애는 준비를 다 했는데, 엄마가 제게 말했습니다. "정말 이 주제에 대해 매주 1시간동안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우리가 오늘 어디에 있는지 보세요.
저는 2개의 다른 방송을 일주일중 6일 방송을 하고 있고, 하루에 1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고 있습니다. 해도해도 주제는 넘쳐나서 다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참 대단합니다.
(통역을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