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0/05/11 (월)
번역: Lee Eun Kwon
킹스리포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호스트 천일국 2대왕 문형진님입니다.
일기예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41도이고 구름이 낀 날씨입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것이라는 경고가 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부드러운 새싹 식물은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고기온은 58도이고 비가 올 것입니다. 저녁에는 30가 될 것입니다.
겨울날씨가 2틀정도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70도가 오기까지는 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존홉킨스 지도를 보면 백삼십만명이 세계적으로 감염됐고, 미국은 8만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지사는 펜실베니아의 북서쪽과 북중앙과 남서쪽을 곧 폐쇄를 없애고 다시 열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필라델피아의 교외는 주지사가 무슨 말을 하던 자기들은 다 재개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있는 북동쪽 펜실베니아는 착한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니 자치주에서 아무런 뉴스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주지사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미친 내용입니다.
어르신 겨울은 집에 돌아가기 싫은가 봅니다. 어떤 식물도 기르기 참 어렵습니다.
오늘의 생명수 리마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가 2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식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가2장1~17절 낭독)
(제 마당에서)이번 해는 잘 크지 못한 식물과 과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sharon의 장미(무궁화)와 백합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sharond의 장미의 이미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흥미롭게도 참아버님께서도 천일국 꽃을 장미와 백합으로 정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겼습니까? sharon의 장미가 무궁화이군요.
무궁화는 한국의 국화입니다.
처녀는 자신을 무궁화와 골짜기의 백합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단지 많이 있는 들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 다른 여성들 속에 있는 그 처녀를, 가시 속의 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처녀는 답으로 솔로몬을 다른 나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경작된 사과나무로 표현하며 칭찬합니다.
사과나무는 중동에서 비싼 과일나무였습니다.
아름답고 수분이 많고 달콤한 과일이었습니다.
아가는 솔로몬과 처녀의 로맨틱한 사랑을 표현하는 정말 흥미로운 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류를 상징하는..
솔로몬이 처녀를 추구하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추구합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냐면,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는 교회를 뜻합니다.
그러나 참아버님께서 거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는 남성과 여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랑의 사랑을 느끼고, 그리고 그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신랑의 사랑 또는 로맨틱한 사랑으로 반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욕구의 요소를 봅니다.
그것은 로맨틱한 사랑을 더욱 강하게 하고 넘치도록 로맨틱한 사랑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남자입니다.
남성이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동성애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로맨틱한 욕구와 사랑을 소모하면, 이것은 동성애가 됩니다.
왜 이것이 그렇게 위험하느냐?
카톨릭교 신앙과 개신교 신앙의 전통적인 견해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하나님은 로맨틱한 카사노바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많이 목격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요소입니다. 크리스챤의 핵심적인 신분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추구하고, 그리고 남성도 신부라면, 하나님께서는 남성인 우리를 로맨틱하게 추구하고, 이것은 동성애를 만들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카톨릭 내에서 많은 동성애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개신교 목사님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특히.
신랑은 그리스도의 신분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로맨틱한 관계를 상상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이상하게 되는지 아십니까?
이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에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신부라고 가르침 받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아가에서는 로맨틱한 애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불꽃같은 욕구로 추구하는 것.
이것이 어떻게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보이시죠?
참아버님께서는 이에 대해 3일행사를 통해 명확하게 해주셨습니다.
여성이 그리스도의 신부의 입장에 서고, 여성.
이것은 하나님의 본래 목적이셨습니다.
해와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아담. 그리고 남성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닙니다.
왜냐면 그것은 여자의 역할이기 때문에.
그러나 남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들이 천사장 위치에서부터 구원 받았을 때. 타락한 인간의 입장에서부터.
이것은 성경적으로도 일관됩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의 형제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남자로서 예수님을 형으로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신부로 계속해서 자신을 반영하면 틀림없는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로맨틱으로 성적으로 자기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
물론 아가는 솔로몬이 하나님 입장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자로 은유하는, 그는 그녀를 로맨틱과 성적으로 추구합니다.
여성은 그 로맨틱한 추구를 좋아합니다.
남성이 이것을 그리스도의 신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이 내용을 명확하게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참아버님께서는 이 진실을 밝히셨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엄청난 혼돈이 왔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남자가 남자를 추구하고 로맨틱한 욕구가 그 사이에 피어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아가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로맨틱하게 추구한다는 내용을 마주하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신부라고 여긴다면 말이죠.
그리고 그저 강하게 추구하고 있다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적인 추구입니다.
구절을 직접 읽으시면, 무화과나무와 사과와 성적욕구에 관한 것입니다.
꽃과 이 모든 것은 성적인 교제입니다. 그는 그녀를 성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그렇게 추구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하나님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나 신랑이 남성을 쫓는 것은 안좋습니다. 아주 나쁩니다.
남자가 나는 신부이구나 하는 정체성에 빠지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의 용사다가 아닌.
교회들은 이 내용에 초점을 두고 싶지 않아 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용사들입니다. 누가 22장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 망토를 팔고 칼을 구입하라고 하십니다.
망토는 당시 매우 필수적인 피신처였습니다. 제가 탠트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이제야 bug-out bag(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들어 있는 가방)철학을 발달시키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이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bug-out bag을 성경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부시크라프팅 전통에서 피신처는 여러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누가 2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망토를 팔고, 망토는 피신처입니다. 그리고 칼을 사라고 하십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 자기 방어의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왜냐면 세상에서 미움 받고 사냥감으로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기독교인의 bug-out bag은 칼로 시작해야 합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방어의 요소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5C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응급세트를 준비하는 성경적이고 철학적인 방법입니다.
그저 물과 음식과 피신처와 불을 만드는 요소와 자르는 도구와 줄과 컨테이너와 덮개뿐만 아니라. 방어요소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목자를 닮아가는 자신의 책임을 해 나아가는 것.
아가에서는 하나님을 목자로 은유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추구하는 목자. 사랑하는 신부를 추구하는. 이것을 마태복음에서도 보게 됩니다. 10처녀의 성구가 있는 곳에서. 다들 여성입니다.
당신은 성별은 상관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별 혼란은 매우 심각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현대 트렌스젠더를 미는 내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매우 심각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성과 여성을 지으신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확률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류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여성이 그리스도 앞에 신부로 나타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남성은 그의 아들 또는 아들 위치에 서서 제대로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위치를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그 틀안에서 맺어나가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친구 또는 형으로 나타냈지만, 정확히는 아버지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아들과 같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그리스도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지만, 아버지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아들로서 사랑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관계입니다. 로맨틱하고 애로틱한 사랑이 없습니다.
순수히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관계입니다.
깊게 신뢰하고, 아버지께 진심으로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 이것이 남성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관계입니다.
성적인 내용으로 생각한다면 많은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을 추구하는 것. 잃었던 아들을 되찾는 것. 아버지가 그 아들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제대로 된 관계입니다.
참아버님께서는 이에 대해 아주 명확히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남성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한 점의 성적인 욕구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입니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전혀 성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신부인 것은 핵심적인 정체성입니다.
그것은 여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여성을 위한 특별한 위치입니다. 그리스도의 딸 뿐만이 아니라, 신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로맨틱하게 그리고 열정으로 그녀를 추구합니다. 아가에서는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뜻으로 해와를 대신하는 세계에 있는 여성은 하나님의 신부가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고, 결혼생활을 하나님을 중심하며 삽니다.
남편은 하나님께서 신부에게 주신 아들입니다.
참아버님 대신 사랑해 줄 수 있는 남자.
그렇기 때문에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남자 다음 여자 다음 자녀들
(통역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