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0/05/08

훈독왕 | 20200508193715

The King's Report 2020/05/08

번역:Yuna Lee 


요한계시록1:5 

충성된 증인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처음 나시고 땅의 왕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분, 

1:6 우리를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나라와 제사장들로 삼아 주신 분께 영광과 능력이 세세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킹스리포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오늘은 2020년 5월 8일 금요일, 천기11년 4월 16일입니다. 

저는 천일국 2대왕 문형진입니다. 

먼저 팀과 함께 날씨를 알아보도록하죠.


팀: 안녕하세요, 오늘 천일궁 주변은 39도입니다. 

낮과 밤 비가 조금 올 예정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눈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레이더를 보면 펜실베니아의 서부와 중앙부에 비구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2대왕님: 5월에 눈이 온다니, 눈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매달리는 것 같네요. 

제 계획에도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중공코로나 현황도 알려주세요, 팀.


팀: 존스홉킨스 대시보드를 보겠습니다. 

미국에는 75,670 사망 케이스가 있습니다. 

펜실베니아는 888건의 새로운 케이스가 있고 총 51,845 양성케이스가 있습니다. 

사망자수는 3,106명입니다. 

파이크카운티만 보면 415명의 양성케이스와 17명의 사망건이 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13,742 양성, 32 음성, 625 사망건이 있습니다. 

검사를 받은 사람 중 음성반응이 32명밖에 없었다는 것이 의구심이 생기게 하네요. 

정확한 데이터가 나오기 까지는 앞으로 몇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현황 이상입니다.


2대왕님: 팀, 감사합니다. 

존스홉킨스는 빌게이츠로부터 자금을 받고 있지요. 

우리는 아주 미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리마로 가겠습니다. 

욥기 14장입니다.


14:1 “여자가 낳은 사람은 사는 날이 얼마 되지 않고 고난으로 가득해 

14:2 꽃처럼 피어났다 시들어 버리고 그림자처럼 덧없이 사라지는데 

14:3 주께서 그런 사람을 눈여겨보시겠습니까? 주께서 나를 데려가 심판하시겠습니까? 

14:4 누가 더러운 것 가운데 깨끗한 것을 낼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14:5 사람이 사는 날이 정해져 있고 그 달 수가 주께 있는 것을 보면 주께서 사람이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정해 주신 것입니다. 

14:6 그러니 그가 쉴 수 있도록 눈을 떼 주십시오. 그가 일꾼처럼 그날을 채울 때까지 말입니다. 

14:7 나무는 베일지라도 다시 싹이 돋고 부드러운 가지가 또 나오리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14:8 땅속에서 그 뿌리가 늙고 그 밑동이 흙 속에서 죽는다 해도 

14:9 물 기운이 있으면 그 싹이 돋아나고 새로 심은 듯이 가지가 나옵니다. 

14:10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사라집니다. 참으로 사람이 숨을 거두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14:11 바다에서 물이 사라지고 강이 잦아들어 바짝 마르게 되는 것같이 

14:12 사람도 한 번 누우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사라질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14:13 오, 주께서 나를 무덤에 숨기시고 주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나를 감추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께서 내게 시간을 정해 주시고 나를 기억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4:14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내게 정해진 모든 날 동안 나는 내가 회복될 날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14:15 주께서 불러만 주신다면 내가 주께 대답하겠습니다. 주께서는 손수 만드신 것을 간절히 바라실 것입니다.


14:16 주께서 지금 내 발걸음을 세고 계시니 주께서는 내 죄를 뒤쫓지 않으시고 

14:17 내 허물을 자루 속에 넣어 봉하시고 내 죄를 꿰매어 덮어 주실 것입니다.


14:18 그러나 산이 무너져 내리듯이,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 가듯이, 

14:19 물이 돌들을 닳게 하듯이, 급류가 땅의 흙먼지들을 쓸어 버리듯이, 주께서는 사람의 소망을 없애 버리십니다. 

14: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시니 그가 사라집니다. 주께서 그의 낯빛을 바꾸시고 멀리 보내십니다.


14:21 그 아들들이 영광을 누려도 그는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해져도 그는 알지 못합니다. 

14:22 그는 그저 자기 몸의 고통만 느낄 뿐이요, 자기를 위해서 슬피 울 수 있을 뿐입니다.”


2대왕님: 아멘, 여기 쓰여 있는 설명을 봅시다. 

욥기 14장은 인간의 짧은 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의 관점은 전도서의 목사들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Sheol (성경 영문 버전 14:13에 등장함)이라는 단어는 구약성서의 단어로, 죽은자들이 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욥은 죽음을 지상세계의 재판으로부터 해방되는것으로 여겨 죽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는가라는 그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19:25, 26에 나옵니다. 

이 책에는 여러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 왜 자신이 태어났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런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나옵니다.


삶은 일시적입니댜. 그것은 왔다가 다시 가죠. 

우리는 죽음을 마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지상세계에서 한정된 순간들이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것을 넘어, 죽음 이후에 삶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지상세계의 삶이 일시적이고 이 삶을 최대치로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자각합니다.


자신을 위해 최대치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뜻을 위해 최대치로 사는 것입니다.


쾌락주의자들, 무신론자들도 인생의 단명함과 무상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그들의 답은 모든 순간을 최대의 쾌락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삶에는 고통이 따르죠.


"모든 순간을 최대치로 사는 것"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이죠. 

그렇지만 첫째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 삶은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동물처럼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아십니까. 

애완견에게 간식을 주면 얼마나 흥분하는지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쾌락을 위해 계속해서 그런 흥분한 텐션으로 살아야 하는것을 상상해보십시오. 

동물들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고문의 삶입니다.


쾌락에 의한 삶을 산다면 자기만족,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오만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가치가 있는것, 고통이 따르지만 자신을 뜻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살을 빼고 싶다면 먹는 것에 제한을 두어야 하죠.


흔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예 중 하나가 비만입니다. 

비만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이 쓰게되는 칼로리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면 살이 찌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하죠. 

그리고 아주 드문 질병 케이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만은 그렇게 쓰는 칼로리보다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기 때문이죠. 

그냥 팩트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일때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죠. 

건강에 무서운 해를 끼치게 되는 습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먹는 습관이라고도 하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감옥이 됩니다.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이렇게 단명한 쾌락만을 추구하면 안됩니다. 

삶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으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고통일수도 있지요. 

경영을 시작하게 되면 재정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성취하게 된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성취하기에 얼마나 많은 고통, 피와 땀이 따랐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죽음에 대한 숙고가 우리가 고통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하늘의 초월적인 보물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 보물은 당연히 하나님과 연결되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과 영광을 추진해야 합니다.


저는 최근 존재론의 주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아주 아름다운 논법입니다. 

그중 깊게 공부하고 있는 것이 양상 존재론의 주장 (modal ontological argument)입니다. 

이것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관점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과 상대할때도 아주 좋은 논법입니다.


"가능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만약 최대의 큰 존재가 있는 것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이 최대로 큰 존재다라는 논법입니다. 

어떤 세상에 최대로 큰 존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존재는 모든 세상에서 최대로 크다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한다, 라는 주장입니다.


이것말고도 많은 논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가능성을 더 높여주죠. 

그런것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대로 큰 존재가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그 다음 이 modal ontological argument를 알려주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법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크신 존재이지만, 최대치로 크다. 

하나님은 선하지만, 최대치로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도 더 풍부하게 해줍니다. 

하나님이 그냥 대단한것이 아니라 최대치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후 그의 작품인 자연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의 다양한 결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최대치로 큰 존재와 우리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의 단명적인 삶으로부터 해방시켜줍니다.


하나님의 최고로 위대한 본성에 대해 명상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힘으로 채워주고 그 힘으로 우리는 고통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1부마침. 오늘 번역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