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0/05/05(화)

훈독왕 | 20200505190739

The King's Report  2020/05/05(화)

  번역: 왕비님


킹의 리포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5월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경제 락다운이 불필요하다고 느끼고 이제 다시 자신들의 자영업소들을 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글에 의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자가격리를 3월이나 4월처럼 철저히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데이타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5개정도 짧은 도입영상들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7만원정도를 내면 이렇게 원하는 대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거기에 로그인을 하고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팀 본부장님 어떠신가요?

저와 저의 퀸과 함께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팀 본부장님께서도 좋다고 하시네요^^)


오늘 성구리마는 욥기 15장입니다.


2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3 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5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6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14 사람이 어찌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어찌 의롭겠느냐

15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 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


24 환난과 역경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라

25 이는 그의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에게 힘을 과시하였음이니라


33 포도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

(35절까지 읽으셨습니다.)


최근 제가 iP라는 채널의 욥기에 대한 설명을 보게 되었는데요.

욥의 신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데요.

하지만 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마치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자신은 행의로 의해서 자신이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너무나 신앙이 좋고 하나님께의 편애를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으시대었던 것입니다.


오늘 읽은 욥기 15장에서도 데만 사람 엘비바스라는 사람이 욥아 너는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의로운 자라 아니라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중국어로 설교를 하시는 중국에 사는 중국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고 있는데요.

이분은 중국(아마도 홍콩에 계시는듯 합니다)에 계시면서 중국정부를 아주 강하게 비난합니다.

그의 의하면 중국에 갔던 기독교 선교사들은 이르게는 8세기 9세기(카톨릭 선교사들)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교사들은 당나라와 명나라 때에도 아주 잘 대해졌다고 합니다.

교황과 함께 허락과 함께 사절단처럼 잘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있지요.

왜냐하면 그 당시의 선교사들은 진정한 기독교의 신학을 중국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았던 것인데요.

그 이유를 보면 중국의 역사에서는 중국의 황제를 신격화였던 것과 또한 중국사람들의 조상들을 신격화했던 것을 그 당시 선교사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지요.


이번주의 일요예배에서는 저희가 육마리아에 대해서 배웠는데요.

제가 말한 것 중에서 잘못 말한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새미박씨는 1966년에 태어났습니다. 그 생년년도를 잘못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지난주 일요일에 예배를 통해서 한씨어머니가 어떻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참아버님의 메시아의 혈통을 단절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중국 목사님의 설교의 내용으로 가면요, 그 분에 의하면 중국의 역사 믿음관에서는 중국황실이 천국이다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중국 또한 한국까지도 '개똥에서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는 낫다"라는 관념이 있지요.

어떤 짓을 해도 어떻게 살아남아도 살아남는 것이 더 낫다라는 생각관인데요, 이것은 명예로운 삶보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것을 가장 지상 과제로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자의 유교관에서 좋은 도덕관을 가르친 것도 있지요.

자신에게 충성하는 가정과 친구를 지켜라든지 등등이 있겠지요.


하지만 이것의 기원을 보면 이것은 중국의 정치사탄주의에 맞닿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절대 돈과 권력의 힘을 업고 절대로 전파되지 않습니다.

초대 중국선교사 중에 한 사람인 몰튼같은 경우에도 중국정부에서는 그를 범죄인으로 취급했었습니다.


바울 베드로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범죄인으로 정치사탄주의는 규정하였습니다.

그렇게 범죄인으로 취급을 받으면서 박해와 몰이해를 받으면서 복음은 전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5명의 여인들을 보면 다 당시의 유대교의 법의 기준에서 보면 범죄인들인 즉 간통녀들이었습니다.

다말도 창녀로 분장을 했고 라합도 그랬으며 마리아도 당시 유대 사회의 눈으로 보면 결혼전에 임신을 하였지요.

그런 여성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혈통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기준으로 좋은 여성들은 사탄의 혈통을 보호하는 여성들이 좋은 여성들이었으니까 하나님의 혈통을 보호하는 여성들은 박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간통과 몸을 파는 것을 허락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마치 한 국가 즉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가 적으로 규정되면 (이란의 탈레반기지를 폭격한 것처럼) 공격을 하는 것처럼(일반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사는 것을 폭격해서는 안되지요) 하나님의 혈통이 끊길지도 모르는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당시의 법과 도덕의 기준에서는 범죄자이고 부도덕하다고 보이는 일을 그녀들에게 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원리강론을 배울 때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세우신 법은 절대 바꾸시지 못한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면 지금 하나님께서 성적인 부정을 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십계명의 도덕법과 5명의 예수님의 계보와 연결되어있는 여성들이 해야 했던 일과는 상충이 되는 것이 아니냐 하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하나님의 혈통이 끊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비상사태로 한 나라가 전쟁중에서 다른 나라를 공격을 해야 하는 것처럼 개입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현대시대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가 욥기에서 배운 것은 그 어떠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주님의 전적인 은혜이지 절대로 행위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 찬양합니다. 홀로 영광 받으소서

(아멘 아주)


(죄송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밖에 통역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