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20/05/01

훈독왕 | 20200501201926

The King's Report  2020/05/01

 번역:Yuna Lee


킹스리포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오늘은 2020년 5월 1일 금요일, 천기 11년 4월 9일입니다.

천일국 2대왕님을 대신할 팀엘더 입니다.


바로 날씨를 보겠습니다.

현재 55도입니다. 

천일궁은 많이 비가 오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어제 교회 주변에는 꽤 많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오늘 낮에는 조금의 소나기와 구름이 낄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 천둥번개가 온다고 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레이더를 보면 비구름이 해안선을 지나 대서양으로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날씨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현황을 보겠습니다.

오늘 오전 3:32에 업데이트 된 존스홉킨스의 대시보드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63,000명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뉴욕시에서만 18,000명 정도입니다.

올랐다 내렸다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감염자수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펜실베니아에서는 현재까지 2,292명의 사망자가 있었으며, 필라델피아가 가장 많습니다.

펜실베니아의 주지사 울프(Tom Wolf)는 오늘 어떤 카운티가 5/8일부터 락다운이 풀릴지 발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렇지만 펜실베니아의 동북지역은 풀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의 성구리마를 보겠습니다. 시편 3장입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아버지로서 당신의 아들이 당신을 살해하려 찾아다닌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지요. 상상할 수 없습니다.


3:1 여호와여, 내게는 적들이 어찌 이리 많습니까! 나를 거스르고 맞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3:2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두고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얻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셀라)

3:3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내 방패이시며 내 영광이시며 내 머리를 드시는 분이니

3:4 내가 여호와께 큰 소리로 부르짖을 때 주의 거룩한 산에서 내게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셀라)

3:5 내가 누워 잠들었다 깨어나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시는 것이니

3:6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거슬러 둘러싼다 해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3: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내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주께서 내 모든 원수들의 턱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숴 주소서!

3:8 구원이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셀라)


아주 짧은 시편입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왕님께서 저번주 다른 시편에 대해 일요일 예배때 말씀하셨지요.

그때도 다윗은 압살롬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는데요, 왕님께서는 다윗이 감정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다윗과 압살롬의 이야기에 대한 요약을 한번 훝어 볼 생각입니다.


이 요약을 쓴 사람은 구약성경의 몇개의 이야기들은 정말 실제적이고 지혜로 가득하다, 현대의 시대에서도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들을 통해 더 드러내시도록 기도한다면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리마를 하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직접적으로 우리와 소통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약부분 번역)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중 한명입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이복여자형제를 강간한 자를 살해한 후 추방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압은 한 지혜가 많은 여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다윗에게 압살롬을 다시 부를 것을 설득했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께서는 추방된 사람이 주(하나님)로부터 떨어진 채로 살아가지 않도록 방법을 궁리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추방된자를 복귀시키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가 하신 일입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은 그것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정치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자신의 아버지를 상대로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압살롬을 따돌렸고, 그를 살리고 싶어했으나 조압이 끝내 그를 살해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내용이 있습니다만 성경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시편 3장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제 왕님께서 녹화하신 인터뷰영상을 보겠습니다.

Dr. 'Chuck' Baldwin과 인터뷰한 영상인데요, 그는 Liberty Fellowship의 창설자이자 목사입니다.

그리고 또 헌법제2조의 운동가입니다.


2대왕님: 닥터벌드윈, 오늘 저희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예수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야기, 구원받은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To Keep or Not to Keep" 이라는 책을 쓰게 됐는지 말씀해주세요.


닥터벌드윈: 제가 아주 어릴때 저의 어머니께서 저를 무릎 위에 앉혀 복음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수의 길에 의해 자라게 되었습니다.


2대왕님: 그리고 원래는 해병대에 갈 예정이었지만 하나님에 의해 진로가 바뀌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닥터벌드윈: 네 맞습니다. 해병대를 마친 후 법진행관이 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의 마지막 해 여름, 교회의 청소년 모임에 갔을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사를 하라고 부르신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성직자의 길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후 성직자가 되어 그 후부터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2대왕님: 성경공부를 마치고 성직자가 되셨을 때 무엇에 의해 기독교인의 헌법2조 운동 분야에 들어가게 되셨습니까?


닥터벌드윈: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저의 아버지도 2, 3개정도 총기를 소유하셨지만 특별히 총에 열광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총을 쏘는 법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헌법에 대해 강한 믿음을 가지고 계셨고, 그와 그의 형제들은 2차세계대전의 베테랑이고 대단한 애국가입니다.


그는 저에게 애국을 가르쳐줬고, 자유를 사랑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총에 열광하지는 않았지만 나라와 자유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을 읽고 자연의 법에 대해 배운 후 우리가 총기소유를 할 수 있는 권리는 정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많은 목사들과 성직자들이 이 주제를 기피하거나 아예 모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많은 현대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자신을 보호할 권리에 대해 무심합니다.

그래서 제 변호사 아들과 함께 이 책을 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소유자산을 보호할 권리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To Keep or Not to Keep, 왜 기독교인들이 총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책을 저의 아들과 함께 썼고 이 책을 기독교인들에게 쓴 책이고 하나님의 말씀 구절로 가득한 책입니다.


2대왕님: 네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 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성경의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무기를 허락하신 부분이 없고 예수님께서는 평화주의자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그가 총기 소유를 허락할 수 없다; 또는 미국 건국아버지들은 사실 복음에 대해 믿지 않았다, 기독교인 척하는 혁명가들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데요.

이것에 대한 당신의 답변은 무엇인가요?


닥터벌드윈: 최적의 답변은 책에 나와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평화주의자가 아닙니다. 신전의 상업가들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죠.

그리고 누가복음 22장의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옷을 팔아 칼을 사라고.

그리고 이때 말씀하신 "칼"은 로마의 칼과 같은 것입니다.

그때 당시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무기였던 셈이죠.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의 5장인가요?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바울이 가정을 위해 공급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가정에게 공급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의식주를 마련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안전하게 해주는 것도 포함합니다.


바울은 한 남자가 자신의 가정에게 그런 것들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기독교인의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며 불신자보다도 못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이 원리로부터 멀어진 데에는 목사들의 탓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번역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