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Report 2019/12/05

訓讀王 | 20191205202913

The King's Report  2019/12/05

      번역: Lee Eun Kwon


좋은아침입니다. 

킹스리포트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여러분의 호스트 천일국 2대왕 문형진입니다. 


날씨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화씨 31도이고 구름이 꼈습니다. 

최저 기온은 22도까지 내려갈 것입니다. 

1인치의 눈이 쌓일 것입니다. 

이번 해에 가장 춥지만, 아직 최고기록은 깨지 않았습니다.


팬실베니아는 4월까지 눈이 옵니다. 

오늘 목소리가 안좋습니다. 

어제 아이들과 함께 왕비를 위해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생일이었거든요. 


오늘의 리마는 사도행전 19장입니다.


이 부분은 몇 주 전에 본 구절입니다. 

몇 가지 볼 점이 있습니다. 

2절에 신앙자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성령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요한으로 세례는 받았지만, 회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성령이 뭔지도 몰랐고, 받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했을 때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이 구절에는 성령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바울이 손을 얹었을때 성령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회당에서 3개월동안 담대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 저항자들을 항상 마주했습니다. 

이름은 얘기하지 않지만, 생츄어리교회를 지지해주는 일반사람이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듣습니다. 

왕국은 피나콜로다를 해변에서 마시는 책임없는 좌파주의 사탄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잘못된 시각은 마치 퇴직자 전용 아파트와 같은 모습입니다. 

잘못된 모습니다. 

성경적인 제대로된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곳에는 영광과 통치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만드십니다. 

왕은 외적인 정치적인 힘과 파워를 나타냅니다. "철장으로 다스리는.." 시민에게는 정치적인 왕의 능력이 있고, 동시에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용사적인 왕과 용사적인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양치기개의 이미지로. 양치기가 어떻게 통치하느냐? 

양을 착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호합니다. 

양과 함께 걷고, 인도합니다. 

계곡과 언덕을 이끌며. 그것이 왕과 제사장입니다. 

그러니 왕은 철장으로 보호받아야 하고, 동시에 용사의 제사장이여야 합니다.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미지로요. 뭐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독재자로서가 아닌. 사탄의 역사로 우리도 모르게 왕과 제사장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에는 왕들이 이 세상에 심판을 가져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나라를 통치하고, 그래서 자녀들을 미래 왕과 제사장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포식자의 정치시스템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탄적인 정치적 이념을 폭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무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 말은 화와 분함등을 극복하고, 의심을 극복하는 것. 왜냐면 젊은이들은 신앙을 스스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세가 신앙이 있다고 해서, 2세에게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가정맹세를 외고, 훈독회를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누군가가 신앙을 얻게 하려면 전도해야 합니다. 

왜 정부 복지가 안좋은지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자녀와 멀어지는 이유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분이 제게 말하길, '감정이 지를 넘으면 컨트롤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양곡을 만드는 한 유명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신앙을 잃었습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좌파가 되었습니다. 

몇 십년 동안 작곡을 해온 분입니다. 

왜 이렇게 됬냐면, 감정적으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지적인 면으로 예수님과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아버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하고, 마음속에서 다시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려운 시기에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내용을 망치는 이유는, 1세들이 심정과 지 정 의를 배우기 때문에, 정은 항상 감정을 뜻하지 않습니다. 

정은 많은 경우 관계에서 미운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군과와 관계를 갖는데 나쁜관계입니다.


그러나 연결되어 있고,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관계입니다. 

감정은 항상 관계를 뜻하지 않습니다. 

정은 항상 관계를 뜻합니다. 참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는 감정이 아니라 정입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그리고 잘못된 번역으로 배워왔습니다. 

정은 마치 이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혼인한 남녀가 성관계를 할때, 그 중에 감정도 일어나지만, 심리와 호르몬도 일어납니다. 

여성이 더 감정적인 것은 갓난 아기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요소입니다. 

아기가 울면 바로 달려가고, 아기의 위생에 항상 예민하고, 그러나 감정이 자기 지적인 면을 지배해도 된다는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면, 인생을 망칠 것입니다. 

자녀들의 인생도 망칠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내용에 기울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블렉벨트가 되지는 않습니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여성은 아이가 크면 이 내용은 좋지않습니다. 

왜냐면 아이는 우는것을 배우고 싶지 않기 떄문입니다. 

사건이 있을때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하나님을 알고, 영광을 올리는 방법을 알고 싶어합니다.


우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자녀는 없습니다. 

바리새인이 되고 가짜가 됩니다. 

아빠는 로봇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힘듭니다. 

그러나 항상 자기연민을 동정해주는 아빠는 좌파입니다. 

감정이 지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심정 지 정 의는 감정이 아닙니다. 

물론 관계속에서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따로따로 되어있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슬픔과 고난의 과거에 머물지 않으십니다. 

왜냐면 승리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승리했기 때문에, 신부를 되찾았기 때문에, 참아버님께서 슬프지 않는데, 슬픔을 이용하며 동정하는 척하며 가까이 가려한다면,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 기술을 사용합니다.


동정하며 친해지려 합니다. 

기쁨과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가 항상 우울하면, 자녀들을 망칩니다. 

자녀에게 어마어마한 짐을 지어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지옥의 환경입니다. 

슬픔과 고난의 내용은 가끔은 괜찮지만, 항상 이런 환경이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이유는 참사랑을 하고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막내로서 참아버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우울한 내용으로 끌어내리려 하지만, 저는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참아버님께서도 오래 머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울에 빠지면 리드하고 싸우는 능력을 죽여버립니다. 

승리하고 기뻐하는 능력을 죽여버립니다. 

우리는 항상 슬퍼하고 고통받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느끼지만, 앞으로 전진하고, 훈련하고, 전도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이 이야기 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9장와 같이 성령이 우리에게 왔을때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저 느끼는 뿐만 아니라, 지적인 이해도 있어야 합니다.


(통역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