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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에서 비둘기를 쪼개는 방법(창 15:9-17) 日常生活の中で鳩を裂く方法(創世記15:9-17)
아브라함은 비둘기를 잘 쪼개지 않아 정성 들여 바친 헌제가 솔개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アブラハムは鳩をしっかりと裂かなかったことで、精誠を込めて捧げた備え物がガラスの侵犯を受けてしまいました。 これは我々に大きな教訓として残っています。
성약 시대는 말씀을 이루는 시대이기에, 지금은 말씀으로 비둘기를 쪼개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비둘기를 잘 쪼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심사숙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成約時代はみ言を完成する時代なので、今はみ言で鳩を裂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では、我々は如何にして鳩をしっかりと裂く生活をすることができるのかを深く考えて見ることにしましょう。
원리에서 배웠듯이 쪼개는 이유는 선악을 분립하기 위함입니다. 즉 타락성을 분별해서 본성에로 다가가는 생활이 결국 쪼개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原理で習ったように、裂く理由は善悪を分立するためであります。 堕落性を分別して本性へ近づく生活が即ち鳩を裂く生活になるのです。
잘 아시다시피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는 제일 작은 제물입니다. 즉 가장 기초적인 사소한 것을 잘 분립하고 성별하는 생활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よくご存知の通り、鳩は蘇生期を象徴する一番小さい祭物です。 つまり一番基礎的な些少なことをよく分立して聖別する生活をするべきことを意味します。
아브라함은 양과 암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잘 쪼갰습니다. 그런데 비둘기는 보기에 너무 작고 하찮게 여겨, 요렇게 조그마한 거야 쪼개나 안 쪼개나 그게 그거지 하는 생각으로 쪼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탄이 침범하는 조건이 되어 후손이 400년간 고역을 치러야 하는 크나큰 탕감 조건을 제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アブラハムは羊と雌牛は神様のみ言通りにしっかり裂きました。 ところが、鳩は見るにあまりにも小さくて、大したこではないと思い、こんなに小さな物ぐらいは裂いても裂かなくても、そんな変わらないと思い、裂かなかったのです。しかし、それがサタンが侵犯する条件となって、子孫が400年間苦役に服する、大きな蕩減条件を提供してしまったのです。
이처럼 하잘 것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거역하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게 되어 섭리를 그르치게 되고, 크나큰 가중된 탕감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このように些細なことであっても、神様が下さったみ言に逆らうと、サタンが侵犯できる条件を提供するようになり、摂理を仕損ない、大きく加重された蕩減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그렇다면 사소한 것을 잘 쪼갬으로써 자신의 타락성을 자긱하고 보다 본성으로 다가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우리들은 별생각 없이 습관성에 의해 일상적인 생활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상생활 속에서 분립 생활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それでは、些細なことをよく裂くことにより、自分の堕落性を自覚して、より本性に近寄る生活をするためには、まずどういうのが必要でしょうか? 私達はあまり考えず、習慣性によって日常生活を繰り返しています。 しかしこのような日常生活の中で、分立生活をしっかり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즉 우리가 쪼개야 할 비둘기는 바로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소홀히 여기기 쉬운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중히 여기게 될 때 비로소 비둘기를 잘 쪼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둘기를 잘 쪼개려면 우선 매일 반복되는 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我々が裂くべき鳩は、つまり些細なことだと疎かにしやすいごく日常的な生活の中にあります。 これを悟って自分の日常生活を大事にする時、初めて鳩をしっかり裂くことができる道が開かれるのです。 という訳で、鳩をよく裂くためには、まず、毎日繰り返されることらを注意深く探り、黙想して見る必要があります。
그럼 일상생활에서 지극히 사소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먹고, 자고, 숨 쉬고,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등 가장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では、日常生活でごく些細なこととは何でしょうか。 まず、食べる、寝る、呼吸する、見る、聞く、話すことなど最も日常的なことです。
첫 번째 먹는 것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먹는 것을 쪼개는 것은 하나님의 실체로 생각하고 먹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一番目は食べることに対して、考えて見ることにします。 まず食べるのを裂くこととは、食べ物を神様の実体として考え、食べ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意味です。
만물은 제3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만물에 담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만물을 통해 당신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만물을 먹고 건강한 육신이 되게 하십니다 万物は第3の神様だといわれました。 神様はご自分の愛情を万物に込めて我々に下さいます。 神様は基本的に万物を通じてどれだけ人間を愛しているのかを見せて下さり、我々にしてその万物を食べて健康な肉身を持つようにします。
곧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이 실체로 변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만물을 취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것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어야 비둘기를 쪼개는 것입니다. 단순히 배고파서 먹고 맛있다고 먹으면 분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万物は即ち神様の愛が、実体として変わったものです。 従って私達が万物を取る時、神様の愛の結晶体であることを知り、神様の愛を味わいながら食べることができてこそ、鳩を裂くことになります。 単純にお腹が空いたから、おいしいから食べると分立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
다음은 만물을 위해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 지으신 목적은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인간에게 먹힘으로, 즉 인간을 위해 희생함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원리입니다. 次は万物のために食べるべきだと言われました。 神様が万物を造られた目的は人間のためであります。 ですから、万物は人間に食べられることにより、つまり人間のために犠牲になることにより自分の目的を完成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これが創造原理であります。
인간에게 먹혀 인간의 에너지가 되어 그 인간이 창조목적을 이루게 되면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데 간접적으로 공을 세우게 됩니다. 만물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으므로 인간이 그 뜻에 따라 만물을 섭취해줘야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人間に食べられ、人間のエネルーギとなって、その人間が創造目的を成就するようになると、万物は神様の創造目的を成すことに間接的に功を立てることになります。万物は人間を通じて神様のみ旨を成し遂げることになるので、人間がその意に沿って万物を摂取して上げてこそ、その目的を完成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그러므로 우리가 만물을 섭취할 때에도 내가 먹어줌으로 이 만물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동참시킬 수 있다는 심정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만물은 어린이가 미끄럼틀 탈 때 야호 하고 미끄러져 내려가듯이, 만물도 우리 식도를 통과할 때 야호하고 기쁜 심정으로 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아버님 말씀) 그러면 그 만물은 신나서 내가 인간의 에너지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従って、我々が万物を摂取する時も、私が食べて上げることによって、その万物を神様のみ意を成すことに同参させるという心情で食べ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すると、その万物は子供が滑り台を滑る時に、ヤホーと叫びながら滑るように、万物も我々の食道を通る時、ヤホーと嬉しい心情で胃の中に入っていくというのです。(お父様のみ言) となると、その万物は喜んで、私が人間のエネルーギになって神様のみ旨を成し遂げることができると喜ぶのです。
만약 그렇지 않고 그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배치된 악한 일을 하게 되면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먹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만물이 내 뱃속에서 괴로워하기 때문에 쉽게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もしそうではなく、その人間が神様のみ意に違反する悪行を行うと、嘆息するようになるのです。 我々が神様の物を食べたら、必ず神様のみ旨を成すために努力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でないと、万物が私のお腹の中で苦しがるので、病に掛かりやすいというのです。
다음으로 시간을 지켜서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수리적 하나님이시란 것을 우린 원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천리의 순리에 따라 식사시간도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합니다. 次は時間を守って食べるべきです。 神様は数理的な神様でおられることを、我々は原理を通じてよく知っています。 なので、全てのことは天理に従って、食事時間も決めた時間に食べなければなりません。
그리고 하루에 2번이나 3번 먹지 4번 5번 먹고 싶다고 자기 먹고 싶은 데로 먹으면 이 또한 원리에 위배됩니다. 더구나 야식은 불식이라는데 야식까지 챙긴다면 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혹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そして一日2回とか3回食べるべきであって、4回5回食べたいと言って食べ放題にしたら、これもまた原理に違反します。 それに夜食は禁物というのに、夜食までとなると、胃が何と言うでしょうか。 神様の聖殿を酷使してはいけません。
다음은 양을 지켜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위의 절반 정도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3분의 2를 초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를 혹사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성전을 혹사하는 것이 됩니다. 많이 먹어서 만든 병은 하나님도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次は量を決めて、食べなさいと言いました。 胃の半分程度だけ食べて、3分2を超えるなというのです。 胃を酷使すると結局神様の聖殿を酷使することになります。 食べ過ぎて作った病気は神様も哀れに思いません。 같은 지구에서 한쪽은 많이 먹어서 다이어트 해달라고 기도하고 다른 한쪽은 먹을 것이 없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同じ地球で一方では食べ過ぎてダイエットの成功を祈り、もう一方では食べ物がないから食べ物を下さいとお祈りします。 私が神様だったら、どうしますか。
마지막 신토불이에 의해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토불이란 몸과 땅이 둘이 아니므로 그 땅에서 생산된 것을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텃밭을 일구어 손수 농사지어 먹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입니다. 最後、身土不二によって食べるべきだと語られました。 身土不二とは、体と土が二つではないので、その土から作られた物を食べるべきだという意味です。 畑を耕して、自ら農耕して食べることが一番良いとの意味です。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신토불이가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지구와 닮은 꼴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바다 것 70%, 육지 것을 30%로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채소 70%, 고기를 30% 비율로 먹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구의 구조가 바다 70%, 육지 30%이고 또 식물이 70%, 동물이 30%이니 이 신토불이 원칙에 의해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しかし、広い意味での身土不二が、もっと重要です。 人間は地球にそっくりです。 それでお父様は海の物70%、陸地の物30%の割合で食べるべき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また、野菜70%、肉30%の割合で食べるべき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 地球の構造が海70%、陸地30%で、また、植物が70%、動物30%だから、この身土不二の原則によって食べ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그러므로 채소도 육지 채소보다 바다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고, 고기도 육류보다 바닷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양 섭리를 하신 목적도 인간의 먹을거리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결하기 위한 것도 계셨음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신토불이의 원칙에 의해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비율에 맞게 모든 만물을 섭취하여 창조목적을 성취시켜주는 것이 바로 성약 시대의 비둘기 쪼갬일 것입니다. というわけで、野菜も陸地の野菜より海の野菜をもっと多く食べるべきであり、肉類も陸地の肉類より海の魚をもっと多く摂取すべきだということです。 海洋摂理をされた目的も、人間の食糧問題を長期的な観点から解決するためでもあった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のような身土不二の原則により、偏食せず割合に合わせて均等に、すべての万物を摂取して、創造目的を成就して上げることが、即ち成約時代の鳩を裂くことだと思います。
두 번째는잠자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잠자는 것을 통해 비둘기 쪼개는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잠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품속에서 잠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의 부모가 하나님이시니 당연히 하나님의 품속에서 잠들어야 하지요. 二番目は寝ることについて、考えて見ることにします。 寝ることを通して、鳩を裂く生活をしっかり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我々は神様の懐で眠るべき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 子供が親の懐で眠るのは当たり前のことです。 我々の父母が神様なので、当然神様の懐で眠るべきでしょう。
또한 하나님의 품속에서 하나님의 사랑, 즉 생소를 받기 위해 잠을 자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인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전해서 그 영인체가 육신에게 힘(생령요소)을 주어 건강하고 기쁘게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는 것은 낭비가 아니고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잠을 자지 않아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생소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그냥 아실 것입니다. また、神様の懐で神様の愛、即ち生素を頂くために必ず寝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してこそ、私の霊人体が神様の愛に充電して、その霊人体が肉身に力(生霊要素)を与え、健康かつ喜びに満ちて生きるようになっているのです。 それで寝ることは、時間の無駄ではなく、必ず行うべきことです。 人間は神様の愛無しでは生き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造られました。 寝ないで見ると神様の愛が、生素がどんなに重要なのか、その重要性が分るでしょう。
그리고 시간을 지켜서 자고 일어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먹는 것처럼 잠자는 것도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원리이니까요. 아버님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태양의 주인이 종보다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서 태양아 내가 일을 해야 하니 네가 와서 불을 밝혀라고 명령을 하면, 태양이 네에 주인님 잘 알겠사옵니다. 이렇게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주인님 주인님 이제 그만 일어나셔요 하면, 나는 아직 밤이다 하고 커튼 치고 잠을 자려고 하시지는 않으신지요? そして時間を守って寝て、起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いました。 食べることと同様に寝ることも時間を守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が創造原理ですから。 お父様は夜明け前に起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太陽の主人が僕より遅く起きてはいけないと... 太陽より先に起きて「太陽よ、私が仕事しようとするので、君が来て明かりをつけなさい」と命令をすると、太陽が「はい、ご主人様、かしこまりました。」 こうして宇宙の主人として生きなさいと語られました。 なのに、太陽が「ご主人様、ご主人様もう起きて下さい。」と言うと、「わたしにはまだ夜だ。」といい、カーテンをしめて、寝ようとす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밤은 잠을 통해서 섭리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밤의 정점인 0시에서 4시까지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생소를 충전해야 하니까요. 그것을 위해 11시부터 잠자리에 들고 4시에 일어나서 5시면 훈독회를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아버님께서는 그렇게 사셨습니다. 夜は寝ることを通じて摂理する時間です。 従って、夜の頂点である0~4時までは充分に寝なければなりません。 神様の愛の生素に充電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から。 そのために11時から寝床に入って4時に起き、5時に訓読会を始めるのではないですか。 お父様はそのように生きて来られました。
그리고 깊게 자야 합니다. 숙면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면을 취해야 짧은 시간 자고도 충분히 생소를 받을 수 있습니다. そして深く寝なければなりません。熟眠を取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意味です 熟眠を取ってこそ、短い時間寝ても充分な生素を受けられます。
다음으로 잠자는 위치와 방향도 중요합니다. 지구는 자석으로 되어 있어 북쪽은 S 극, 남쪽은 N 극입니다. 이 지구와 일치된 자세로 잠자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머리는 북쪽으로 다리는 남쪽으로... 그것이 도저히 안될 때에는 지구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즉 머리는 동쪽으로 다리는 서쪽으로... 次は、寝る位置と方向も重要です。 地球は磁石でなっていて、北はS極、南はN極です。 この地球と一致した姿勢で寝ることが重要です。 つまり、頭は北側、足は南側に... それがどうしても無理な場合は地球が回る方向へと、言わば頭は東側、足は西側...
차를 타고 가실 때 뒤로 앉아 가는 것 하고 정면으로 앉아 가는 것하고 비교해 보시면 쉽게 체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님은 아버님의 존영도 북쪽에 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상황이면 동쪽에... 이렇게 우린 잠자는 것도 비둘기 쪼개듯 잘 분별해서 자야 합니다. 車を乗って行く時、後ろ向けに座ることと、正面向けに座ることを比べて見ると、簡単に体験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お父様はお父様の写真も北側にかけるようにとおっしゃいました。それが難しい場合は東側に... このように我々は寝ることも鳩を裂くように、よく分別して寝るべきです。
다음으로 숨 쉬는 것도 잘 쪼개야 합니다. 숨을 쉬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늘 사랑하시고 싶어 공기를 통해 당신의 손길을 뻗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 언제나 너와 함께 하고 있다. 次は呼吸することもよく裂か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 息をするのも神様が我々をいつも愛したく空気を通してご自分の手を差し伸ばしていらっしゃるのです。 私はいつも君を愛しているよ、常に君と一緒にいるよと。
그래서 형진님 가르치셨지요. 들이쉴 때 하나님의 사랑을 들이쉬고 내쉴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 숨을 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끼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숨 쉴 자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돈 한 푼 안 내고서... それで亨進様が教えて下さいました。吸う時は神様の愛を吸い取って、吐き出す時神様に感謝します。 呼吸をしながらも神様の愛を感じられず、感謝を知らない人は呼吸する資格がないのではないですか。一銭も出さないで...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숨 쉰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날강도요, 도둑놈입니다. 사탄의 자식이니 하나님 것을 마음대로 강탈하고 훔쳐다 쓰는 것 아닙니까? 神様に感謝せず呼吸をする人たちは、みんな罪人です。強盗であり、泥棒です。 サタンの子供だから神様の物を好き勝手に強奪し、盗んで使ってるのではないですか。
숨 쉬고 싶으면 하나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효도하기 싫으면 숨 쉬지 말고 코를 봉해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셨지요. 코를 막고 몇 분이나 버틸 수 있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공기가 서러워합니다. 공기가 치를 떱니다. 공기가 너무 괴로워합니다. 呼吸をしたいなら神様に親孝行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す。神様に感謝すべきです。 神様に孝行したくないなら、息をせず鼻を封じるべきです。 そしてどのぐらい持ち堪えるかテストして見て下さい。 お父様は語られました。息を止めて何分持ち堪えるかやってみろと... 神様に感謝しないと空気が悲しまれます。空気が歯ぎしりします。空気が大変苦しみます。
그리고 숨 쉬는 것도 순리대로 쉬어야 합니다. 들이쉬면 반드시 내쉬어야 합니다. 누구나 다 잘 하고 있습니다. 욕심부려 공기가 아깝다고 들이쉬기만 하는 바보가 있나요? そして息をするのも自然の原理に沿って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吸い取ったら必ず吐き出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誰でもよくやっています。 欲張って空気が勿体ないと思って、吸うばかりするアホがどこにいますか。
그런데 욕심부려 들이쉬기만 하겠다는 것이 타락인간 아닌가요? 자기를 잘 돌아볼 일입니다. どころで、欲張って吸うだけしたがるのが堕落人間ではないでしょうか。 自分をよく振り返って見るべきことです。
그리고 공기는 온 우주의 기입니다. 공기 속에는 만물의 모든 향기가 총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공기를 통해 우리에게 우주의 모든 기를 불어넣어주시려고 하십니다. 그 크신 사랑을 알고 감사히 우주의 기를 받고 우주를 잘 주관하고 다스려 하나님께 기쁨을 돌려드리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 비둘기를 잘 쪼개는 것 아니겠습니까? そして空気は全宇宙の気です。空気の中には万物の全ての香りが全部積もっています。 神様がその空気を通じて私達に宇宙の全ての気を吹き込ませようとされています。 その大きな愛を知って、有難く宇宙の気を受け、宇宙をよく主管して治め、神様に喜びを捧げる孝子・孝女になってこそ、鳩をよく裂く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
다음으로 천천히 숨을 쉬어야 합니다. 깊게 들이쉬고 끝까지 내쉬면서 공기의 맛을 음미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는 호흡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 사는 동물일수록 천천히 호흡한답니다. 복식호흡 같은 것을 하면서 되도록 천천히 숨 쉬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할 것입니다. 次はゆっくり呼吸をするべきです。 深く吸い取って、最後まで吐き出しながら空気を味わって、神様の愛を体恤する呼吸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長く生きる動物ほど、ゆっくり呼吸すると聞きました。 腹式呼吸のようなことをしながら、なるべくゆっくり呼吸する生活を習慣化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다음은 귀를 잘 분립하라고 했습니다. 듣는 것을 잘 분립해야 한다는 뜻이죠. 듣는 귀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듣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실 수가 없으니 만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상대를 통해 말씀을 내리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우칠 수 있어야 내가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次は耳をよく分立するべきだといいました。 聞くのをよく分立するべきだという意味でしょう。 聞く耳を神様が造られました。 ですから、全て聞くのも神様のみ言として聞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神様が直接おっしゃ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万物を通して我々に語り、相手を通してみ言を語られています。 その神様のみ言をよく聞いて悟ってこそ、私が神様の子女です。
사탄의 자식이면 사탄의 말로 듣겠지요. 타락한 인간은 욕을 듣더라도 하나님이 뜻이 계셔서 자신을 책망하시는 것이라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탕감이 잘 됩니다. 오히려 칭찬받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칭찬에는 쉬이 자만하고 교만에 이르러 실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サタンの子女なら、サタンの言葉として聞くでしょう。 堕落した人間は叱られても、神様がみ意があって自分を叱責すると思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うしてこそ蕩減がよくできます。 かえって褒められる時、注意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褒められることでに自慢しやすいし、傲慢に陥って過ちを起こす可能性が高いからです。
그리고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듣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말만 들으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말을 하는지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하는 자의 심정을 파악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또한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심을 갖고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そして、相手が言おうとする意を聞き取れるよう力を注ぐべきです。 言葉だけ聞こうとせず、その人が何のために話しをするのかをよく言葉を噛み締める必要があります。 話をする者の心情を把握するために努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また、相手を大事にし、尊敬心を持って、聞くことを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神様のみ言が下される可能性があるためです。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소리를 아름답게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베토벤은 천둥소리를 듣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보통 천둥소리나 번개가 치면 두려워합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나요. 하지만 심령이 맑으면 천둥소리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리고 번개도 아름다운 불꽃놀이로 보일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また、この世の全ての音を美しく聞くことも知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ベートベンは雷を聞いて、美しい音楽を作ったと聞きました。 堕落した人間は、普通雷とか稲光がなると怖がります。 しかし、心霊が清ければ雷も美しいメロディとして聞こえるし、稲光も美しい花火として見えるのです。 全てが神様の愛の姿です。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소리와 악으로 인도하는 소리는 성별해야 할 것입니다. 내 귀를 성별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소리도 두려움으로 들을 수 있는데 하물며 사망의 소리에 유혹당하여 그리로 빠져들면 어찌 하나님께 갈 수 있겠습니까? 従って我々を死亡へ導く音と、悪へ導く音は聖別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わたしの耳を聖別できないと、美しい音も恐怖の音として聞くことができるのに、まして死亡の音に誘惑され、それに陥ると、どうやって神様の元へ行けるでしょうか。
사망의 소리는 선악과처럼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합니다. 너무나 달콤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정보나 지식의 홍수시대입니다. 사탄도 하나님께 배웠는지 홍수로 쓸어가네요. 그 사탄의 홍수에 쓸려가지 않으려면 우린 훈독회를 통해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입니다. 늘 말씀을 읽고 들어서 죄악을 성별하는 생활이 성약시대의 비둘기 쪼개는 모습이겠지요. 사망으로 인도하는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死亡の音は善悪の実と同じく食べるに良く、見るに美しいです。あまりにも甘ったるいです。 今日、世の中には情報や知識の洪水時代です。 サタンも神様に習ったのか、洪水で押し流しますね。 そのサタンの洪水に流されたくなかったら、我々は訓読会を通して、み言で全身甲冑を着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常にみ言を読み、聞いて罪悪を聖別する生活が、成約時代の鳩を裂く姿でしょう。 死亡へ導くのは、見ることも聞くこともしてはいけません。
보는 것은 듣는 것이랑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영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귀하게 볼 줄 알고 선하게 볼 줄 알고 아름답게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 예술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는 것도 사망으로 인도하는 것들은 철저히 성별해야 할 것입니다. 見ることは聞くことと、ほとんど変わりません。 神様の目で、神様の立場ですべてを見て、判断しようと心掛け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言い換えれば、霊の目で見ることを知るべきだという意味でしょう。 そして、尊く、善に、美しく見れるよう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愛の目、芸術の目を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聞くのと同様、見るのも死亡へ導くのは徹底的に聖別すべきことです。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말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말을 하나님 대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담아서 말씀하라는 뜻이겠죠. 그러니 당연히 상대를 위해 말씀해야 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죄악을 분립해주는 말씀을 해야 합니다. 最後に話すことに関してのことです。 話すのもやはり神様が我々に口を与えて下さったので、神様のみ言を話すべきです。 全ての言葉を神様の代わりに、神様の言葉と愛を込めて話すという意味でしょう。 なので、当然相手のために話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堕落した人間には罪悪を分立して上げるみ言を語るべきです。
그리고 사랑의 심정으로 말씀해야 합니다. 비판이 아닌 살려주기 위한 분립의 말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대를 위해서 말씀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 말씀은 죄악을 분립해주고, 또한 아름답고 선해야 하겠지요. そして愛の心情で話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批判ではなく、生き返すための、分立の言葉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神様が我々を愛してるから、我々も神様の愛で相手のために話すべき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だからその言葉は罪悪を分立して上げ、また美しく善であるべきでしょう。
하나님께 보고하듯 늘 존경어를 쓰기에 힘쓰고 칭찬하고 선을 담아서 말해야겠습니다. 자식이라고 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반말하고 하면 그 속에 계신 하나님이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늘 하나님께 보고하는 심정으로 말을 하므로 나 자신이 말씀화되어 가도록 해야 죄악이 성별 됩니다. 神様に報告するように、常に尊敬語を使うことに心掛け、よく褒めて、善を込めて話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子女だと、目下だと思って気軽くぞんざいな言葉を使ったりすると、神様がどんなに悲しむでしょうか。 常に神様に報告する心情で話しをすることで、私自身がみ言化してこそ、罪悪が分立できます。
그리고 되도록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의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부정을 좋아하고 거역을 좋아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そしてなるべく否定的な言葉を使わず、肯定的な言葉を使うよう、心掛けるべきです。否定を好み、逆らうことを好むのはサタンです。
공산주의 이론을 보면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합니다. 정반합의 이론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혈통이 말에도 녹아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共産主義理論を見ると、否定の否定は強い肯定だといいます。 正反合の理論です。 神様のみ言に逆らった血統が、言葉にも溶け込んでいるからそうなのです。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등 일본어에도 그런 말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しなければならない (...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어에도 있더군요 긍정은 긍정, 부정은 부정으로 족합니다. 굳이 긍정을 부정의 부정으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것이 습관이 되면 내 혈통이 사탄을 닮아갑니다. 「すべきこと」という言葉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など日本語にもそういう言葉を多く見られます。 そのような言葉が中国語にもありましたね。 肯定は肯定で、否定は否定で、そのまま表現しても充分です。 必ずしも肯定を否定の否定で言う必要はありません。 このようなことが習慣になると、私の血統がサタンに似て行きます。
이렇게 우리가 언어를 잘 성별하므로 죄악을 성별 해낼 수 있으므로 언어생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고 쪼개는 생활을 잘 해야 심령이 성장할 수 있는 기대를 구축할 수가 있습니다. こうして我々が言葉をよく聖別することにより、罪悪を聖別できるので、言語生活の中でも神様のみ言を中心に裂く生活をしてこそ、心霊が成長できる基台を構築することができます。
이렇게 생활 속에서 내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잘 쪼개어 분립해야 심령이 선화되고 부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활 속에서 비둘기를 잘 쪼갠 후 양을 쪼개고 암소를 쪼개야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둘기 쪼개지 않음으로 쪼개진 양과 암소도 무위로 끝난 아브라함의 헌제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즉 소생기를 잘 다진 후에 장성 완성을 쌓아 올려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このように生活の中で、私が裂くべき鳩をしっかり裂いて分立してこそ、心霊が善化され復活できます。 我々がこのような生活の中で鳩をよく裂いてから羊を裂き、雌牛を裂いてこそ、完全な備え物になれるのです。 鳩を裂かなかったことにより、裂かれた羊と雌牛も無為に終わったアブラハムの献祭の失敗を教訓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つまり蘇生期をよく固めてから長生・完成を積み上げていくべきだという意味でしょう。
지극히 작은 것에서 우리의 심령이 악화되고 있음을 절대 명심해야겠습니다. 비둘기 하나 쪼개지 못하면서 하늘 앞에 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불성설임을 재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極めて些細なことから、我々の心霊が悪化していくことを、絶対に肝に銘じなければなりません。鳩一匹もまともに裂けないのに、天に前に行こうとするのは、話が全く理屈に合わないことを、もう一度肝に銘じなければなりませ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