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식물인간이란 육신은 멀쩡하지만 의지와 주관성의 기능이 상실된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입니다.
대뇌(
왕님께서는 마태복음13장 13절부터 16절 말씀을
인용하시어 마음이 완악하여지고 둔하여져서 그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화를 낸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어도 들을 줄 모르는, 깨우칠 줄 모르는 심령의 소유자는 바로 영적인
식물인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영적 식물인간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주면 화를 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심령을 진단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되는 말씀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영적 식물인간은 귀한 생명의 말씀을 주면 오히려 짜증을 내고
분노하고 오히려 그 말씀을 준 상대를 비판할 생각을 먼저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처럼 자기 눈에 대들보가 있는지도 모르고 상대의 눈에 티끌까지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이렇게 심령이 완악한 자는 절대 생명의 말씀이 들어갈 수 없는 영적 식물인간입니다.
왜 영적 식물인간이 되었을까요?
원리에서 밝히 해명을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이유가 바로 종인 천사장 누시엘의 꼬임에 빠져 역 주관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즉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종의 근성인 타락성에 의해 살아가도록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타락성(종의 근성)을 벗지 못한 자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습관적으로 거역하고 반발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심령이 종의 근성인 타락성으로 꽉 차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면 그것이 귀에
거슬리고 눈에 거슬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자의 티끌을 찾아내어 깔아뭉개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칭찬하고 본받으려는 자세가 아니라 시기 질투의 타락성(종의 근성)에 꽉 차 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이런 자를 성경에서는 완악한 자라고 했습니다.(마 13:15)
완악의 성경적인 뜻은 원문인 그리스어로 'sklerokardia'이며, 마틴
루터는 이 단어를 'Herzenshaertigkeit'라고 번역을 했는데, 우리말로는 '마음이 딱딱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심령이 완악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국에 가서는 자기 가진 것까지 다 잃어버리는 불쌍한 영혼이 된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왕님께서 그것을 재차 강조하시면서 깨우쳐 주십니다.
예수님더러 참람하다고 하던 율법사 제사장들을 기억하면 쉬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버님을 대해 이단시하며 성약 말씀을 무시하고 핍박했던 것을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그 모두가 기존 성경 지식에 갇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알고 있고 배운 것이 전부라는 완고함으로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악습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식물인간이란 자기가 기존 알고 있는 것이 최고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굳게
믿고 새 말씀 앞에 그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완고함을 가진 심령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근본 이유는 원리적으로 바로 타락성(종의 근성)을 벗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돌로 쳐죽이는 무식한 방법이 있는가 하면 칼이나 총으로 죽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말이나 글로서 상대를 죽이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타락성을 지닌 자는 무식할 경우 돌이나 총 칼로 사람을 죽이겠지만 수준이 좀 높을 경우에는 말이나 글로서 상대의 심정을 유린하고 영혼을 죽입니다.
우리가 성경이나 말씀을 통해서 배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대의 타락성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품어 자연굴복시켜 상대의 타락성을 죽이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버님이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만 하지 않으시고 당신들이 대신 죽어 죽이는
그러한 절대 사랑의 길을 가셨습니다.
왕님께서도 그런 길을 가고 계십니다. 형제의 불화에 대해 용서식을 해서라도 품고 가시려는 왕중 왕님이십니다. (용서하셔야 하는 왕중 왕님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jjW/176
이렇게 상대의 타락성을 사랑으로 품어 죽여 없애고 중생 부활시켜 주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굴복의 복귀로정이니까요.
우리는 심령이 완악한 타락한 인간을 살려주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아 대신
죽으신 그 생애를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완악함은 녹아내릴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우리가 영적 식물인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을 되새기고 아버님께서
우릴 대신해서 탕감의 길을 가신 생애를 회상해 볼 수만 있다면...
대신 죽어 우리의 타락성을 죽이시려던 그 몸부림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 희생 앞에, 그 사랑 앞에서 우리의 완고함도 녹아내리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평화와 축복을 부어 주시어
넉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왕중 왕님의 말씀을 훈독하면서 나의 심령이 얼마나 넉넉한 모습이 되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봤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저절로 경배가 우러나는 시간입니다.
아버지! 감사 감사하옵니다.
하지만 아버지! 너무나 죄송합니다.
흐르는 눈물에 저의 완고함이 녹아내리고 타락성이 씻기길 바랄 뿐입니다.
보고: 무지개왕국 종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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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중 왕님께서 주신 말씀
The King's Report 11/06/2017
킹의 리포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중략)
오늘의 성구는 마태 복음 13장 13절부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사람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정이 바뀌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뀌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결국 끝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전심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서에는 말하기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지고 둔하여져서 그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화를 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한 완악하고 둔한 심장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유하기를 양날의 칼처럼 우리의 골수까지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평화를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심정이 완악하고 둔하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돌밭에 뿌려진 것처럼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떨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조차 빼앗기고 잃게 됩니다.
이 말씀은 아주 잔인한 말처럼 들리지요.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살면 그 결과가 그렇습니다.
결국은 있는 것까지도 잃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고 실천하면 더 많은 복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 속에서 더욱더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하나님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상대주의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를 꼬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그것에 배를 더하여 기쁨과 평화와 축복을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혐오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오히려 화를 내고 ‘아니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ㅡ?'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상대주의적인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가득 채웁니다.
도덕적인 삶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프리섹스를 하고 살면 어떠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다시 미국의 총기 난사 참사 사건을 보면서 이 사회주의로 교육받아 자라고 사회주의가 좋다고 거기가 천국이라고 말하는 안티파 같은 조직들은 한 육 개월만 베네수엘라나 북한을 가보고 살 것을 추천을 드립니다.
그러면 아주 빨리 자신이 주창하던 패라 다이스의 모델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아주 논쟁의 쟁점의 티셔츠를 입고 길거리 설교를 하십니다.
게이 행진이라든지 안티파 행진이라든지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크게 설교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의 반응은 정말 화로 얼룩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분노로 끓게 합니다.
평화는 한 조각도 그들의 마음에 없습니다.
왜냐 하면 평화는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의 마음에 혐오나 증오가 없어지는 평화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목사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의 평화는 예수님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사슬을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진을 포토샵을 해가지고 조각조각 붙여서 자신의 행복을 가짜로 만들어서 쇼셜미디어에 올리고 그 후에는 우울증으로 절망에 빠지는 삶을 반복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고통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거의 대부분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뢰하고 믿었던 사람들 친구 가족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심정이 유린당하여 그들에게 당한 것이 그들에게 당했던 고통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눈앞에서 가족이 다 사살당하고 자신도 거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에 비하면 그들의 고통은 아주 작은 것이지요.
그래서 ‘아 그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말했는데 정말 고통스러웠어, 아무래도 스타박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내 머리를 식혀야겠어, 화를 내면 안되지'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자신이 만들어낸 나래티브를 계속 마음속에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하면서 그 이야기를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자발적으로 우리를 그 앞으로 걸어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기쁨을 가져가고 우리의 마음의 평화를 가져가고 우리의 힘과 우리가 하려는 선행까지도 다 가져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주님과의 관계를 멸망시키고 우리를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죽이고 우리의 좋은 부분이 있다면 다 훔치려고 합니다.
어제 총기 난사 사건을 했던 이 범인은 그런 마음으로 가득차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탄의 영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입니다.
데번 캘리라는 범인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안티파의 깃발이 놀랍지도 않지만 걸려있네요.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안티파 깃발을 들고 총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을 조심해야겠습니다.
이 사건은 교회의 사람들을 이 범인이 쏘고 있을 때 그 교회의 이웃이 그 총소리를 들고 그 교회의 상황을 보고 가서 그 범인을 쏘아 떨어뜨리면서 끝났습니다.
파시즘은 자신들이 극우파라고 하면서 극보수주의다 국수주의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자신들이 중앙집권으로 모든 권력을 갖기를 원하기 때문에 파시즘 국수주의는 좌파와 같은 사상을 나눕니다.
짐승의 표식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 14장에 보면 짐승의 표식을 가진 자는 그들의 머리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체 집단주의는 모든 사람들의 피와 땀을 다 권력가들 앞에 긁어모아서(세금으로) 모든 사람들을 가난으로 몰아넣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결국 전체 집단주의 사회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짐승의 표식을 받아 사탄의 영에 빠진 사람들처럼 죽이고 훔치는 것입니다.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라는 말씀은 잔인한 말씀이 아니라 현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창조의 목적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그 창조의 목적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더 기뻐하시면서 그의 평화와 축복을 부어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은 받아 넉넉하게 되게 하게 하는 것입니다.
안티파의 한 범인에게 26명이 죽고 2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까만 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보자마자 안티파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이것이 CNN이 말하는 배려심이 많은 좌파가 하는 행동입니다.
이 사람이 팔로우하고 있는 사이트를 보았더니 CNN도 있었네요.
이 범인은 까만 방탄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차 안에는 장전된 총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이 총을 방탄복 사이로 쏘아대자 그 범인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총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을 허락합니다.
목사님이 그것을 허락합니다.
물론 총은 허리춤의 총집에 넣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가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의도가 호신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저희는 한씨 어머니의 죄상을 밝히고 있지만 저희 중 그 누구도 한씨 어머니나 가정연합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상해를 입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그들과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들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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