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하나님께 배우라(진리를 공부하는 원리적인 방법과 이유)
진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당연히 진리체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진리체가 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타락한 세계는 이러한 자신이 진리체가 되기 위해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다른 수단과 도구로 쓰려고 공부하기 때문에 타락성만 더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본인은 진리를 공부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해보고 궁극적으로 개성진리체가 되기 위한 길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심령의 급이 낮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주입식의 교육에 의존하여 배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바로 타락한 종의 문화에서 양산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심령의 급이 낮더라도 질문을 유도하여 진리를 깨우쳐 가게 인도하는 것이 원리적이라 봅니다.
특히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일방적 주입식은 종의 문화에 습관된 것으로 사탄주의 덫에 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질의 응답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바로 창조원리의 수수법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질의 응답식의 방법은 가장 원리적이며 효과적인 진리 탐구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질의 응답이라하면 토론과 논쟁을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과 비난을 위한 논쟁은 결코 진정한 질의응답이 아님으로 참진리가 발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창조원리를 흉내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의응답식의 수수법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순수하게 진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의문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이기기 위한 무기화하기 위한 진리의 습득은 지식만 쌓아서 자신을 파멸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순간 이미 사탄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사탄이 역사(수수작용)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때문입니다.(원리강론 98쪽)
그렇게 되면 상대를 논리적으로 이기기 위한 지식을 위주로 발전하여 자신도 모르게 타락성(종의 근성)만 키워 악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절대 비판을 하지말라고 하시고 아버님 역시 상대의 결점을 들추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성경과 말씀 참조)
당연히 주입식 보다는 질의 응답식이 훨씬 진리를 공부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습득한 진리의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일 뿐입니다.
이론에만 머무는 진리는 글이나 말로서 남의 단점을 잘 찾아내고 쉬이 비판하여 자신의 심령이 악화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진리를 공부하는 목적은 먼저 자신을 진리체로 만드는데 있다는 창조원리, 하나님의 뜻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인 진리만 습득하여 진리의 판타지, 즉 이론의 세상(지식) 속에만 갇혀 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탐구한 수많은 철인들이 진리의 세상 속에 갇혀 정작 자신들은 진리의 실체가 되지 못했던 점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배운 진리를 통해 내 자신이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를 배우고 깨우친 만큼 실제 생활 속에서 그 진리를 적용하여 실감하고 체험을 해서 자신을 진리체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론(지식)에 머물고 말아서 그 진리로 실족하기 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개성진리체로 창조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개성체를 진리 말씀으로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진리를 제대로 배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나아가 그 진리로 자신을 진리체로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원리는 바로 진리를 깨우치고 그 진리로 자신을 개성진리체로 완성시키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책임분담으로 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원리를 통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 책임분담 95%, 인간 책임분담 5%가 합해져서 완성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진리를 공부하는 것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진리뿐만 아니라 순혈도 하나님께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공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하나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진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께 질의하고 응답을 받아서 진리를 배우고 깨우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이미 하나님이 주신 말씀(구약, 신약, 성약 말씀)을 통해 공부해야 하고 내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자연이 진리를 배우는 가장 좋은 교재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자연 만물 세계를 진리의 교재로 해서 진리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왕님도 늘 강조하시는 부분입니다.
직접 하나님과 영적 교류를 통해 진리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심령의 급일 때는 자연 만물을 통해 하나님께 문의하고 응답을 받아서 진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실체하나님이신 인간끼리 질의응답하면서 진리를 탐구해 나갈 때 점점 진리를 체득하여 심령의 급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진리를 탐구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하나님으로 대하고 진리를 배우기 위해 교류하는 관계를 맺어야 참다운 관계가 될 수 있고 관계 속에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 심령의 급이 높아지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아서 진리를 깨우쳐 나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령의 급이 낮더라도 상징적인 하나님인 만물세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배우고, 형상적인 하나님인 인간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영적인 하나님이신 성령을 통해 진리를 배우는 단계에로 발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배우는 근본 목적은 지식을 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개성진리체로 창조하는데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진리체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진리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진리는 하나님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얻어서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가장 정통으로 진리를 배우는 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진리는 참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가운데 거하면서 진리를 탐구하고 배울 때 하나님의 진리(참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궁극으로는 하나님이 이상하셨던 개성진리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의 수수작용이 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심령을 직접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천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고 하셨으며 예수님 역시 천하를 얻고도 목숨(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복귀섭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타락한 인간은 당연히 복귀원리를 잘 배워야 합니다.
복귀원리를 잘 배우려니 당연히 창조원리와 타락론을 우선적으로 잘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운 원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복귀된 내가 되지 않으면 원리를 공부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주관하고 마음이 내 몸을 주관하고 몸이 마음의 뜻대로 순응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완성한 진리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문제점은 바로 자기 마음이 자기 몸도 제대로 주관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남을 주관하려하고 간섭하려 하고 심지어 남의 단점이나 들춰내어 비판하고 비난까지 일삼는 것입니다.
타락성(종의 근성)으로 산다는 증거이겠지요.
진리체가 되면 하나님이 내 마음을 주관하고 그 마음이 내 몸을 주관하고 몸은 그에 순응을 하기 때문에 남을 주관하려거나 비판하려는 타락성은 유발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배운 참진리(복귀원리 말씀)에 의해 본성을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개성진리체란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본성을 복귀해서 주어진 육신과 원만한 주관 관계를 이루어 하나님의 실체 분체로 실체하나님이 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마음(본심)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이 이루어진 자가 바로 개성진리체를 완성한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통해 당신의 뜻대로 내 몸을 주관할 수 있을 때 그러한 자를 완성한 개성진리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직접 주관을 받는 개성진리체를 완성한 인간은 자아주관이 되기 때문에 타락성(종의 근성)의 그림자 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공부하는 목적은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의 실체 대상이 되어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에 거할 수 있는 개성진리체가 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께 배워야 하고 하나님을 배워야 하고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보고자: 무지개왕국 종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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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순결을 누구한테 배우려고 하느냐?
하나님한테 배우려고 하지, 내가 순결을 하나님에게 가르쳐주려고 생각 안 해요.
순혈을 누구한테 배우느냐?
하나님한테 배워요.(말씀선집 608권 286-292쪽)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 온 성경을 보면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알아요? 그것은 점장이들이 점하는 것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사실의 내용을 판단하고 전후사정을 가려내려면 힘이 들기에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선집 20권 271쪽)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있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자라나는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선집 135권 12쪽)
맨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커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피조세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 교육해 나오는 것입니다. 피조세계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우리 인간 시조, 본래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교재였습니다. 완성된 아담과 해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 표본이요,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만 됩니다. (선집 137권 128쪽)
종교는 진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도는 진리만이 아닙니다. 주의와 사상은 진리를 중심삼고 나아가지만, 종교는 진리 외에 심정이
내포되는 것입니다. 주의와 사상에는 심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자식과 부모가 말없이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무엇이 얽혀 있습니다.
논리적인 조건을 넘어 움직이는 내용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의는 심정적인 결합이 아니고 조직적인 결합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표를 향하여 달리는 경주자의 태도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역사적인 그 코스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되고, 시대적인 실정을 잘
파악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미래적인 계획을 어느 정도까지는 알아야만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경주자가 가져야 할 상식입니다.
이렇게 하늘을 향하여 내 생명을 걸고 나아가는 데 있어서 하늘의 역사적인 심정, 시대적인 심정, 미래적인 심정까지 갖춘 자가 있다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 코스를 세워 나오고 닦아 나오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쳐도 무난히 뚫고
나갈 것입니다.
다음에는 그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데 있어서 싸움의 심정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지식이 있는
어떠한 원수를 대하여 싸우더라도 이기고야 말겠다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싸움에 져서는 안됩니다. 실천분야는 싸움입니다. 이 땅 위의 무엇과도
싸워서 승리하고 맨 나중에는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 나를 들이치시더라도 나는 굴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는 용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집 7권
139쪽)
인간들은 타락성을 다 청산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침으로써 우주 만상과 통할 수 있는 사랑과 선의 본질과 선의 요소를 갖추고, 하나님과 심정일체를 이루어 사랑과 선의 요소를 한꺼번에 뜻 안에서 작용시킬 수 있는 한때를 고대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의 생애에서 사랑의 이상을 완성하여 하나의 진리 앞에 인격완성자가 되기를 고대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흔히 이 넓고 큰 우주를 주관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부터 ‘천주주관(天宙主管)바라기 전에 자아주관(自我主管) 완성하라’ 표어를 는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아왔습니다. 알고 보면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이 표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갖추어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진 성도가 있을 때, 즉,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주관성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밟고 넘을 수 있는 지름길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완성할 때 비로소 창조본연의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런 가치를 지닌 참된 사람이 나와야 할 역사적인 때라는 것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선집 2권 139쪽)
인간이 태어난 근본원칙이 무엇이고, 왜 태어났느냐? 남자는 여자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체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입니다. 여자 앞에 이상적인 남자는 최고의 진리입니다. 우주 전체를 완성한 이상의 진리의 본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자 앞에 그런 여자도 우주의 진리의 본체 중의 본체입니다. 절대적인 진리체입니다. (267-230)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는 진리의 왕이요, 진리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 연고로 이 세계의 인류는 사조나
주의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진리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유일이요, 영원이요, 불변입니다. 그렇지만 이 하나의 진리, 만인류가
화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인륜도덕 혹은 사회질서를 세워 나오면서 제시된 것이 무엇이냐? 양심기준에 응할 수
있는 진리의 표준을 찾아 나왔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지을 수 있으리라고 알고 있지만 아닙니다. (7-183)
진리의 내용이 무엇이냐?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할 수 없고, 진리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남편을 대신할 수 없고, 또 자기의 처나 아들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진리 중의 최고의 진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부모요, 부부요, 자녀입니다.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중심은 뭐냐? 사랑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최고의
진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하나님은 진리의 본체요, 선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같은 말입니다. 진리가 성립되려면 사랑과 생명이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생명 안에 진리에 대한 의욕과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욕망은 자신의 인격 기준과는 상대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핵심이 무엇이냐? 생명의 본체, 사랑의 본체, 진리의 본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인간의 아버지인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핵심은 부모입니다. (선집 21권 178-183쪽)
하나님은 진리의 대왕이요, 선의 대왕입니다. 참의 대왕입니다. 사랑의 대왕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개재시키지 않은 데는 선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빼 버리고 하는 것은 사기판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개재시킴으로 말미암아 참의 기준, 영원한 기준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301권 39쪽)
우주의 진리, 천리의 대도의 원칙은 뭐냐 하면 부자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 부자의 관계는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관계가 아닙니다. 횡적인 부부의 사랑이 하나님의 이상적 사랑으로 완전히 꽃피워서 그 사랑의 향취가 온 천지에 진동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해져서 아버지와 아들딸의 자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선집 101권 35쪽)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하여는, 첫째로 기도에 의한 신령(神靈)으로 하나님과 직접 영교(靈交)해야 되고, 다음으로는 성서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진리(眞理)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요 4 : 24)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원리강론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