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성을 벗기 어려운 이유

무지... | 20170926061515

   타락성(종의 근성)을 벗기 어려운 이유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타락성을 벗기 위해 몸부림쳐 왔습니다.
하지만 그 타락성을 벗기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을 누구나 느끼실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왜 타락성을 벗기 어려운지, 그리고 타락성을 벗는 근본적인 방법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타락성은 본성이기 때문에 벗기 어렵습니다.(타락성이 왜 본성인가?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11
원리강론에서는 타락성본성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원리강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타락성은 천사장이 아담에 대하여 질투심을 갖게 된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사장도 선의 목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 질투심은 천사장도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 창조본성으로부터 유발되는 불가피한 부산물로서, 마치 빛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물체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원리강론 99-100쪽 참조)


다른 각도에서 천사장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천사장의 본성을 라디오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본성은 라디오에서 기능이 업그레이드 된 티브이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천사의 본성을 기반으로 한 터 위에서 더 우수한 참사랑의 기능이 업그레이드 된 성품을 갖도록 창조되었다고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육적 본능은 동물의 본능을 겸비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심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천사의 본성에서 유발된 타락성을 영적으로 전수받아 천사의 급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인간의 우수한 본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천사로부터 전수받은 타락성을 유발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창조본연의 본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천사, 즉 종의 근성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창조본성은 심령 속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그 본성을 계발하면 창조본성을 되살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이상에 부합된 인간의 창조본성에 의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는 타락으로 전수받은 천사의 타락성을 극복하고 인간의 창조본성을 계발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이르는 창조본연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복귀하는데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타락성은 본성이기 때문에 뿌리뽑는 것이 아니라 순화 정화하여 맑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본성에서 유발된 타락성본성이므로 보다 선의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시기질투는 본연의 방향으로 이끌면 상대에 대한 부러움을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심을 유발하게 하여 발전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보다 신앙이 우수한 자를 부러워하면서 시기질투가 아닌 선의의 경쟁심을 유발하여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시기질투가 아니라 선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동기부여를 해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결코 타락성이 아닌 본성의 발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성본성을 올바르게 유발하게 하는 것이 바로 본성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가라지를 뽑지 말라는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 볼 수 있습니다. (마 13:25-40)


타락성을 벗는 방법


먼저 타락성은 본성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은 그림자 없는 삶을 살면 타락성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림자 없는 삶을 살려면 정오정착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발광체가 되면 그림자가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상 아버님 말씀 참조)
이 두가지 그림자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모두 인간의 심령의 그림자, 즉 타락성을 유발하지 않고 본성에 의한 창조본연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늘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조건, 즉 하나님과 상대기준을 조성하면 언제든 우리의 심령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통로가 타락한 인간에 있어서는 양심이라고 했습니다. (창조본연의 인간은 당연히 본심입니다.)
하나님은 이 양심을 통하여 모든 인간에게 지시하고 명령하십니다.
이 양심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바로 정오정착의 삶을 사는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어기는 자는 절대 정오정착의 삶을 살 수 없어서 타락성에 머물러 살 수밖에 없습니다.(양심의 급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W/1


물론 양심의 급은 진리의 수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부단히 진리를 깨우쳐 진리의 급을 높이지 않으면 창조본성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 진리를 탐구해서 진리의 급을 높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림자 없는 정오정착의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통해 심령의 급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지(知)외에도 보다 주체적인 정(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오정착의 삶보다 스스로 발광체가 되면 더 확실히 그림자가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이 발광체가 되어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늘 감사함으로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늘 감사함으로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살아가려면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면 자신의 근본 죄를 깨달을 수 있고 그 죄를 대속해주신 하나님과 아버님의 피눈물어린 수고의 심정을 체휼하게 됩니다.
수많은 십자가를 지셔서 나를 살려주시고 내 죄를 대속해주신 그 은혜에 가슴이 벅차 무한한 감사함이 우러나 하나님과 아버님을 찬양드릴 수 있는 모습이 됩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함이 유발되는 자는 심령 속에 절대 타락성 같은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습니다.


남의 죄나 잘못을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이유는 내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대신 탕감하시고 대속해주신 것을 깨달아 무한한 은혜와 감사함에 충만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적으로 진리 말씀을 통해 이론적으로 자신의 죄를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나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이론을 정립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성령의 깨우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완전히 체휼하기 전에는 절대 긍휼의 심정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도 결국 성령과 진리 말씀으로 타락성을 정화하여 선의 목적과 방향을 향해 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정오정착의 삶은 진리 말씀으로 양심의 급을 높혀 그림자 없는 삶을 사는 것이고, 성령(신령)은 우리의 심령을 발광체로 만들어 그림자 없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누구나 신령(성령)과 진리로 살아야 온전한 그림자 없는 삶을 살아서 창조본성에 합당한 본연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知)를 중심한 진리의 성령도 있고 정을 중심한 심정과 사랑의 성령도 있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도 바로 성령의 양면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이나 원리공부를 통해 이론적으로 진리를 깨우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리도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깨우침을 받을 때에야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진리도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을 때 참진리를 배울 수 있고 성령을 통해서 심정의 세계를 체휼할 때 온전히 타락성을 깨닫고 근본적인 회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타락성을 벗으려면 양면의 성령을 모두 받아서 진리를 깨우치고 심정을 체휼하는 정오정착과 심령의 발광체가 되는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성은 이렇게 지(진리)와 정(심정과 사랑)의 성령 모두를 받아야 완전히 벗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기보다 더 잘났을 때 절대 질투하지 않습니다.

부모보다 더 잘난 자식을 두었을 때 오히려 대견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심에서 우러나는 참사랑으로 자녀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질투가 아닌 본심에서 우러나는 참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본성의 작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나 그런 본성에서 우러나는 참사랑의 내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참사랑을 전수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타락성이 아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위하여 사는 본성을 유발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양면의 성령을 받아야만 온전히 그림자 없는 창조본연의 삶을 살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타락성은 본성이므로 벗는 것이 아니라 선의 방향으로 이끌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두루마기는 벗어 던지는 것이 아니라 깨끗이 빨아서 입어야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천일국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계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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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정오정착의 삶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발광체가 되어 빛을 주는 삶을 산다면 그림자가 생길 틈이 없습니다.

받는 자는 빚을 지는 자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불쌍하고 가난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영원한 참사랑의 발광체 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천지인부모 시대 선포, 2010년 천력 5월 8일 새벽 2시 20분과 5월 15일 새벽 3시 25분 천지인 참부모님의 특별선포식 말씀 중)


가라지를 뽑지 말라는 성경 말씀
1. [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 [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3. [마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4. [마 13: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5.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6. [마 13: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7. [마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8. [마 13: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9. [마 13: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추수때까지 기다리라(연관 말씀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E/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