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신앙길에 있어서 암적인 존재다.

무지개 | 20170905064638

  비판은 신앙길에 있어서 암적인 존재다.


<말씀>

그리고 남이 말한 것을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했다 할 때에는 사탄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은 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암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절대 직행을 못합니다. 지그재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선한 선조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선조들도 전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비판했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거예요. 

상대적인 다른 사람을 소화함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할 수 있고 용서를 받을 수도 있는 거예요. 
서로 상대적인 사람을 원수처럼 취급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친구로 만듦으로 스승으로 삼아서 지도를 받고 협조를 받아 나가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어요. (선집 76권 136-137쪽)


위 말씀에 비판을 하면 하늘과 사탄 편이 갈라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인 아벨로 갈라 세워 섭리를 하시는 이유는 아벨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가인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벨을 하늘 편에 세웠다고 해서 아벨만 사랑하고 가인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아벨과 가인을 통해 죽어버린 부모, 아담 해와까지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까지 구원하는데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아벨의 길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ve8/2


그런데 나 자신이 비판을 하게 되면  하늘 편과 사탄 편으로 갈라 세워 섭리하시려는(분립섭리) 상대를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상대를 비판함으로써 한쪽만 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어, 하나님이 사탄 편을 구원할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을 위한 본래의 분립섭리를 하실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아벨을 통해 가인이 하늘 앞에 가야 하는데 그 길을 차단해버리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신앙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관계 속에서 때로는 아벨의 입장에 처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가인의 입장에 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보다 아벨적인 자를 비판하게 되면 내가 가인 편(사탄 편)만 남기는 결과가 되고, 나보다 가인적인 자를 비판하게 되면 내가 하늘 편(아벨 편)만 남기는 결과가 되어 하늘이 원하시는 복귀섭리를 이루어 드릴 수 없게 됩니다. 즉 아벨만 있어도 복귀섭리는 진행하실 수 없고, 가인만 있어도 복귀섭리는 똑같이 진행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관계적인 면에서 본다면  비판은 상대적 관계인 분립을 대립적 관계로 분리시켜 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분립섭리는 둘 다(아벨과 가인) 하늘 앞에 세우기 위한 목적인데, 비판은 바로 분립섭리를 위한 상대적 관계를 대립 관계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말씀에서 비판했다 할 때에는 사탄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갈라지고 말아서 복귀섭리를 진행하실 수 없기 때문에 절대 비판을 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나보다 아벨적인 입장의 사람을 비판하게 되면 바로 내가 가인의 입장에서 아벨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나보다 가인적인 입장의 사람을 비판하게 되면 내가 아벨의 입장에서 가인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이 둘 다 분립섭리를 위한 상대적 관계를 대립적 관계로 만들어 섭리를 파괴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비판을 하면 하늘 편과 사탄 편이 갈라져서 복귀섭리를 하실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사람을 원수처럼 취급하지 말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서로 살려주기 위한 친구로 스승으로 삼아서 협조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말씀 참조)


더 나아가 나 하나의 개체는 한 사람만을 복귀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수많은 조상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상 중에는 악한 조상도 있고 선한 조상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선한 자(아벨) 입장에서 악한 자(가인)을 비판하여 부정하게 되면 악한 조상을 구원할 길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자(가인) 입장에서 선한 자(아벨)를 비판하게 되면 선한 조상을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되어 선한 조상을 구원할 수 없는 입장에 세워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복귀섭리를 통해 타락성을 벗고 수많은 조상들을 구원하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절대 상대를 적대시 하는 개념을 갖고 비판하는 자리에 가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벨적인 입장에 있으면 가인적인 존재를 악하게 여기지 말고 불쌍히 여기며 어떻게 구원해줄까 염려하고 안타까워하며 기도해주고 위로해주면서 잘못을 깨우쳐 살려주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인적인 입장에서 아벨적인 자를 대할 때는 언제나 그분을 통해 교훈을 얻고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반대로 대립적인 존재, 비판의 대상을 만들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어 절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아무리 잘나고 신앙적으로 올바로 섰다고 해도 그 누구도 비판하고 정죄하고 심판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어디까지나 구원의 대상일 뿐입니다.

구원의 대상은 오직 아벨과 가인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자연굴복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충적인 모순 대립 관계를 만들어 비판하고 미워하고 정죄하고 심판의 길을 가게 되면 영원히 복귀섭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복귀원리입니다.

복귀섭리는 창조원리에 의해 진행되는 재창조섭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아버님은 절대부정을 위해서 비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

사망의 세계는 원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니 세상은 부정당해야 할 세상입니다. 

부정당해야 할 세상에 있어서 긍정적인 내 입장을 세우면 그것은 영원히 이 악한 세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나옴으로 말미암아 자체를 부정하고 넘어설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선집 76권 136쪽)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비원리적인 사망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가 잘못된 비원리적인 길을 간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간섭) 게 되면 벌써 원리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담해와의 타락 위를 간섭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는 달리, 나 자신이 비원리적인 타락 행위를 간섭하고 비판하게 되면 나 자신이 비원리적 입장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요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원리적인 길을 가는 자가 내 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절대 비판하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복귀섭리에 있어서 아벨과 가인의 입장에서 서로 구원을 위한 상대적 관계로 대해야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비판은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에 반하는 행위가 됨으로 절대 해서는 안되는 타락 위인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늘 길을 가는 방법은 가인과 아벨을 세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순응할 때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로 갈라세워 섭리하시는 것은 절대 분리가 아닌 분립섭리로써 가인도 살리고 아벨도 살리고 그로 인해 부모도 살려내고 하나님도 해방 석방시키는 데 있습니다.(아벨의 길 참조) 

그럼으로 구원을 위한 분립의 관계를 모순 대립적 관계로 만들어 분리 분열하는 비판의 길을 가게 되면 그것이 가장 큰 범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길은 가인과 아벨의 상대적 분립 관계를 통해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악 세계를 절대부정하기 위해서는 비판은 절대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

비판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이 비원리적인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비원리적 존재는 구원과는 요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비판은 하나님의 섭리를 파괴하는 행위가 됨으로 절대 비판하지 말라고 아버님은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 아닌 천사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천성경 109-115쪽)

신약의 하나님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성약의 하나님은 아버님이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실체 하나님은 왕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고 싶으면 하나님을 닮아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