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휼과 실천(아버님의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말씀과 요점 정리,下)

무지... | 20170902045221

체휼과 실천(말씀 요점 정리, 下)

(아버님의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말씀을 발췌해서 요점 정리를 해서 올립니다. 두 차례에 걸쳐 올리도록 합니다. 아래에 말씀 원문 첨부했습니다.)


지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


사람은 크게 지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지성적인 사람은 진리로서 뭘 탐구해 가지고 이치에 맞으면 인정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부정하는 타입의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은 이치보다는 감으로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내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외적으로 적용하는 사람이고, 지적인 사람은 외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내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지적인 사람은 기도를 싫어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미신 같고 믿을 수 없고 자기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반면에 나면서부터 ‘하나님’하는 말이 아주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 영적인 운동에 있어서 혁명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성적인 사람이 아닌 무식하고 미욱한 사람, 즉 영적인 사람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은 지성적인 사람이었는데 다메섹에서 하늘의 영적 벼락을 한 번 맞고 나서 영적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기독교의 혁명의 기수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종교적인 심령세계의 위대한 지도역할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지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조화


대개 영적인 사람은 처음에는 굵지만 나중에는 가늘어져 영원히 못 가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는 크지만 영적인 면이 작다면 이것 역시 영원히 못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을 조정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조정해야 됩니다. 

영적 세계의 중앙에 서고, 육적 세계의 중앙에 서야 중심적 자리에서 좌우로 조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체험이 있더라도 절대 말하지 않고 진리로 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언제나 하늘의 섭리관에 방향을 일치시켜야 영적 세계의 발전과 진리세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리를 반드시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신령과 진리에서 신령이 주체적 입장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영적 체험은 일생동안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지식을 중심삼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기도생활을 통해 신령을 보강해야 하고 신령한 사람은 반드시 진리를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면이 보강돼야 합니다.


혼자서 보강하기 어렵기 때문에 친구를 잘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신령한 사람이거든 진리적인 사람과 내가 진리적인 사람이면 신령한 사람과 친구가 되어 잘 협조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와 상대적인 소성을 가진 사람들을 친구로서 환영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마음의 밭을 잘 계발할 수 있습니다. 

싫은 사람을 좋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악한 내가 선하게 될 수 있는 첩경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로마 병정을 원수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입장에 세웠던 것입니다. 

그 원수를 포괄해 가지고 제일의 친구를 만들기 위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도 거기에 들어 있는 거예요.

 

절대 부정

 

사망의 세계는 원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니 세상은 부정당해야 할 세상입니다. 

부정당해야 할 세상에 있어서 긍정적인 내 입장을 세우면 그것은 영원히 이 악한 세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나옴으로 말미암아 자체를 부정하고 넘어설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적인 사람은 기도가 필요한 동시에 신령적인 친구가 필요하고 신령적인 사람은 지적인 보강이 필요한 동시에 지적인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 사람을 상대로서 소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도수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체험담을 듣고 흡수해서 자신을 보강해야 합니다. 


비판은 심령 성장에 암이다

 

그리고 남이 말한 것을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판했다 할 때에는 사탄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은 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암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절대 직행을 못합니다. 지그재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선한 선조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선조들도 전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비판했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거예요. 

상대적인 다른 사람을 소화함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할 수 있고 용서를 받을 수도 있는 거예요. 
서로 상대적인 사람을 원수처럼 취급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친구로 만듦으로 스승으로 삼아서 지도를 받고 협조를 받아 나가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어요. 

 

체휼은 실천을 통해 접맥을 시켜야 한다.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느꼈을 때 아, 알았다 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실천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깨닫고 체휼한 것을 실천을 해서 상대성을 갖고 일일 생활권 내에 접맥시켜야 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도하면 그 사람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신령적인 그 길을 통하면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위대한 신앙자이고 하나님을 대역하여 시대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체휼은 기도 생활부터

 

체휼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를 해야 됩니다. 정신 집중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선의 주체이시니 그 주체적 존재 앞에 상대적 존재로서 상대기준을 이룰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상대기준만 딱 맞으면 초연한 힘이 나타나는 거예요. 이렇게 심문을 맞추어 가지고 심전을 계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밭을 계발하고 방향 기준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모호하니까 하나님을 연결하려면 정신을 집중시켜 내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부터 마음을 맑혀 놓으면 반드시 방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남철이 자연히 방향을 따라가듯이 그런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신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벌써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기도도 잘 되는 시간이 있고 장소가 있습니다. 여러 번 체험을 하면 그런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체휼한 것을 중시하라

 

그러한 모든 암시나 몽시나 계시, 묵시가 벌어지는 것은 인간과 하늘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 개척적이고 발전적인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요건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홀히 하지 말고 여러분의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각자 소성에 따라 다르지만 자신에게 맞는 체휼적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복잡다단한 도회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생활권 내에서 스스로 싸여 자기의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체휼적인 본성의 감도라고 할까, 그러한 느낌을 언제든지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가 안다는 거예요. 지금 내가 어떠한 단계에 들어왔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지금 내가 얼마만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말씀을 해도 이것이 어느 면에 치우친다는 것을 알고 조정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길이 참 어렵다는 거예요. 


체휼의 경지는 느껴서 안다

 

여러분이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친구가 없더라도 혼자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벌써 다 알고 사람을 대할 때 척 보면 벌써 설명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느 형인가를 분석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것이 빠르다는 거예요. 
영들도 마찬가지예요. 사람 가운데도 별의 별 녀석이 다 있듯이 영들도 마음의 영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선한 신이냐 악한 신이냐 하는 것도 그런 느낌을 통해서 대번에 분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체휼적인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위대성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와 달리 방향과 목적이 확정돼 있습니다. 
기성교회에서는 10년 동안 정성 들여야 도달할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일년 이내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많이 가르쳐 주는 거예요.
선생님이 몽시라든가 꿈이라든가 혹은 기도하는 가운데서 선생님을 많이 보지요?
그런 체험이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건 100퍼센트예요.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은 통일교인이 아니예요. 

이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미 체휼권 내에 들어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에는 종적인 면에서 하늘과 관계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웠어요?
하지만 통일교회는 횡적 기준이 돼 있기 때문에 내 위치를 희생시키고 떠나면 빠른 시일 내에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아버님이 역사하는 이유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하면 모호하지요?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 들어가 보니까 결국 선생님하고 가까워지더라. 

하나님하고 가까워지는 것보다 선생님하고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이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 땅에서, 내 환경권에서 이루어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을 지극히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욕을 먹고 얻어 맞아도 좋아하지요? 
사람(아버님)을 하나님보다 좋아하는 여러분이 됐습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은 암만 연구해도 모른다구요. 


어떤 사람이 천국 갈 수 있는 통일교인인가?


그런 체휼한 것을 세계화시키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초월하고 종족을 초월해가지고 사방으로 체휼화 시켜라. 그러면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래서 민족을 초월하고 종족을 초월해서 식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그런 체휼적인 무엇이 없어 가지고는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비약적인, 혁명적인 영적 세계의 발전을 이루어 놓은 통일교회의 체휼적인 신앙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식구라면 대개 체휼하게 됩니다. 반드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기존 기성교회에서는 수십년 정성 들여야 체휼할 수 있는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즉각적으로 체휼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약적인 혁명적인 영적 발전을 이루어 놓은 통일교회라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형제를 위하고 형제를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가능하게 되면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체휼한 것을 실천하라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활동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시될 수 있는 가치의 것으로서 확정 짓지 않는 한 환경적 절대적인 상대권은 형성 안된다 이겁니다.
통일교회는 선생님하고 여러분이 느끼는 그 심정적인 것이 핵심이 되어 상대적인 세계에서 응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 자신은 하나님하고 선생님하고 느낀 것을 여러분한테 응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 신앙세계의 마음 문을 열고 마음 밭을 계발하는 놀음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발되는 날에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대적인 세계에 적용시킬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체휼한 것을 실천 무대에 적용시키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거기에서 반드시 천국이 벌어집니다. 


우주를 대표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


나는 중심자리에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늘도 완성시킬 수 있고 세상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완성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완성을 볼 수 있고, 인간의 완성을 봄으로 말이암아 우주의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개척하는 도상에서 내가 절대 필요한 것은 이 두 세계를 조정하기 위한 체휼과 실천입니다. 

체휼이 영적인 면을 말하면 실천은 진리적인 면을 말하고 체휼이 오른쪽이라면 실천은 왼쪽입니다. 

이것이 일치되는 평행선을 그려 가지고 내 인격 기준 앞에 완결 시킴으로 말미암아 우주를 대표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기 바랍니다. (선집 76, 132-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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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말씀(하)


체휼과 실천


체휼과 실천,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은 대개 지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러면 이런 경지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개 우리 사람을 보게 되면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지성적인 사람으로 진리로써 뭘 탐구해 가지고 이치에 맞으면 인정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부정하는 타입의 사람,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이치보다는 감으로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영적이다, 지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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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의 사람, 지적인 면의 사람. 영적인 사람은 내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외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이요, 지적인 사람은 외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내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나가는 종류요, 하나는 들어오는 종류입니다. 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성적인 사람은 대개 기도를 싫어합니다.
‘ 거 기도, 기도가 무슨 필요 있느냐? 하나님 아버지, 아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을 어떻게 하노?’ 실감이 안 난다구요. 그걸 딱 생각하면 미신 같고, 믿을 수 없고 자기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고 말이에요,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이건 지성적인 사람입니다.

이론을 따져 가지고 무엇을 찾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동시에 나면서부터 ‘ 하나님!’ 하는 말이 아주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설명하기 전에 막 좋다구요. ‘아버지!’ 하게 되면 밥을 안 먹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감도가 다르다는 거예요. 대개 영적인 운동에 있어서 혁명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성적인 사람은 못 합니다. 난 그렇게 봐요. 대개 신앙세계에서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은 지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미욱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느끼는 대로 해 보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라고 했으니 해 보는 거라구요. 하다 보니 그것이 실천하는 환경에 백중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럼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인물로 등장할 수 있는 일도 벌어지는 거예요. 바울 같은 사람도 지성적인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다메섹에서 하늘의 영적 벼락을 한번 맞고 나서 돌아 버렸다구요. 그러니까 외적으로 탐구하는 것보다는 내적으로 이렇게 폭발적인 느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전부를 부정하고 그것을 존중시한 거예요. 거기에서 새로운 기독교의 혁명의 기수가 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종교적인 심령세계의 위대한 지도 역할을 할 수 없다 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봅니다. 여기 박 장로 같은 사람도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생기기도 미욱하게 생겼다구요. 보게 되면 얼굴도 두텁게 생겼고 말이에요. 그거 다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두 종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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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아서 부족한 면을 보강해야 우리 사람은 이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어떠한 타입의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대개 영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크지만 진리 면에서는 뾰쪽하다는 거예요. 이것이 달라요. 처음에는 굵지만 끝이 뾰쪽해 지면 이것은 시종여일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못 가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는 반드시 굴러 떨어진다 이거예요. 또 진리는 크지만 영적인 면이 이렇게 작다면 이것이 영원히 못 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하 는 생활을 우리는 해야 됩니다. 기도와 진리, 영적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평행을 만들어 가지고 화()하는 자리에 들어가라! 우리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조정해야 됩니다. 영적 세계의 중앙에 서야 될 것이요, 진리세계의 중앙에서 가지고 중심적 자리에서 좌우로 조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되지 않고는 완전한 자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만 강하면 외적인 면은 결여되어,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이렇게 곧장 가야 할 텐데 이렇게 간다구요, 이렇게. 그럴 거 아녜요? 힘으로 본다면, 힘센 사람에게 끌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진리적인 면이 강하면, 이것이 둘이 합해서 가야 할 텐데 왼쪽으로 가 버린다 이거예요. 이런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선생님 같은 사람은 영적 체험이 있더라도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체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구요. 그걸 어떻게 하느냐? 진리로 조정해야 됩니다. 이것은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하면서 중용의 길을 가면서 언제나 하늘의 섭리관에 방향을 일치시키는 놀음을 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영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고 지상세계의, 진리세계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려면 영적 세계가 어떻게 움직여 들어오고 진리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그 사실을 생활화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리가 반드시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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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이루어야 돼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인간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체가 어디에서 행복감을 느끼느냐? 진리면에서 느끼는 행복은 방향적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거 왜 방향적이냐? 영과 육, 신령과 진리를 두고 보면 어떤 것이 주체냐? 신령이 주체입니다. 진리는 상대적이에요. 상대적이라는 것은 방향적입니다. 이건 변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신령은 변하지 않아요. 중심적이기 때문에, 사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면을 통해서 느끼는 행복이 귀하냐? 진리를 통해서 느끼는 느낌은 방향적이기 때문에 변합니다. 오래 못 간다 그 말이라구요. 그렇지 만 신령을 통해서 느낀 그 느낌은 중심적이기 때문에 오래간다는 거예요. 중심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진리는 상대적 입장이고 신령적인 면은 주체적 입장입니다. 주체란 중심자리를 말하기 때문에 중심이란 것은 둘이 있을 수 없고 하나라는 것입니다. 중심이라는 것은 사방을 대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주체적 중심적 입장의 신령면을 통한 기쁨이라는 것은 영원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체험을 통하여 느낀 그 기쁨은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당연한 결론입니다. 이렇게 돼 있는 거예요. 이러한 두 면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지식을 중심삼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실천문제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반드시 보강해야 됩니다. 보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또 기도만 하고 신령면에만 치중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드시 진리에 대해서 연구해야 될 것 입니다. 이렇게 양면이 보강돼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걸 내 자신이 혼자 조정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잘 선택하라는 거예요. 내가 신령적 이거든 진리적인 사람과 하나돼라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둘이서 ‘ 내 야! 맘은 이런데 네 마음은 어떠니?’ 이렇게 속삭이고 말이에요. ()이 달라요. 하나는 내형적이요, 하나는 외형적인 이 두 사람이 ‘ 그래?’‘ 내가 , 내가 그래?’ 이렇게 서로 의논하고 서로 협조해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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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세계에 있어서 서로서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거예요. 통일교회 믿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경험 많이 했지요. 뭐 어떻고 어떻고 그런 말을 듣고 심령에 타격을 받아 가지고는 새까매지는 거예요. 그건 자기 혼자 암만 기도로 해결하려 해도 지극히 어려운 거예요. 그렇지만 자기와 상대적인, 진리적인 외적인 사람을 중심삼고 친구가 되어 있으면 ‘야, 이 녀석아, 이렇게 해!’ 하고, 또 진리적인 면의 사람은 영적인 면의 친구가 그러면 ‘내가 기도해 보니까 이래.’ 야! 이렇게 되면 쉽게 해결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가 필요합니다. 신앙자에게는 반드시 친구가 필요하다 하는 걸 알아야 돼요. 자기와 상대적인 소성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고 나가야 여러분이 원만한 인격을 지니려면, 춘하추동 사시계절 형태의 마음의 밭, 심전(心田)이 있으면 그 마음의 밭을 계발하려면, 그런 소성의 사람을 내가 친구로서 환영할 수 있는 자격자가 돼야 됩니다. ‘아이구! 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싫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싫은 사람이 나에게 제일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싫은 사람을 좋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악한 사람이 선하게 될 수 있는 첩경을 간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반드시 제일 싫은 사람이 있다구요. 반드시 있어야 돼요.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싫은 사람이 내게 있어서 원수가 아니에요. 나와 제일 가까울 수 있는 것입니다. 참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울 수 있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로마 병정을 대해 기도한 것도 그거라구요. 로마 병정이 본래는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제일 먼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먼 원수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가까울 수 있는 입장에 세웠던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그 원수를 포괄해 가지고 제일의 친구를 만들기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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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도 거기에 들어 있는 거예요. 오늘날의 이 사망의 세계는 원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니 이 세상은 부정당해야 할 세상이라구요. 부정당해야 할 세상에 있어서 긍정적인 내 입장을 세우면 그것은 영원히 이 악한 세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돼 요. 그렇지만 이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나옴으로 말미암아 자체를 부정하고 넘어설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어렵구만, 무슨 말인지….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적인 사람은 기도가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신령적인 사람은 지적인 면의 보강이 필요함과 동시에 뭐가 필요해요? 친구가 필요합니다. 혼자 하려면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여러분이 남의 간증을 듣고 경험을 듣는 것은 신앙생활에 지극히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 그렇구나.’그렇기 때문에 아!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거들랑 통일교회 간부들의 간증을 듣고 싶어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협회장은 어떻고, 누군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전부 다르다구요. 이런 것을 내가 상대로서 소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도수가 넓어진다는 거예요, 도수가.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 심) 이 중앙선 아니면 이것은 길고 요것은 짧고, 전부 다르다는 거예요. 내 성격이 이러면, 짧은 이 면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오는 간증을 들으라는 거예요. 이것을 들어서 자기 것으로 흡수하라는 거예요. 보강해야 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체험담을 들어라! 들어 가지고 남이 말한 그것을 비판하지 말라는 거예요. 비판하는 것은 사탄 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비판했다 할 때는 사탄 편이 되든가 하늘 편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로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은 내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의 암이라는 거예요, . 사탄 편이 됐던 녀석 이 하나님 편에 갈 수 없고 하나님 편이 됐던 녀석이 사탄 편에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생활 있어서 가는 데에는 직행을 절대 못 합니다. 지그재그로 간다는 거예요. 선조도 선한 선조만 있는 게 아니라 악한 선조들도 전부 다 연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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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때문에, 내 자체가 소성적으로 볼 때 선한 선조의 소성을 많이 갖고 있을 때는 이렇게 가지만, 악한 선조의 소성을 받은 부분도 있다구요. 그런 때가 온다구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럴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하게 돼요. 비판했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다 그런 이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거예요. 신령적인 면에 자기 소성이 맞는 사람들은 그저 영적인 것에 대해 궁금해요. 선생님 같은 사람은 본래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어요.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주 궁금하다구요. 밥을 안 먹고 24시간 동안 들어도 들을 수록 재미 나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그러면 그것을 일방적으로 하 지 말고 진리로 보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면을 가려 가지고 가야 돼요. 자기의 소성, 자기가 어떠한 면의 사람인가는 각자가 알 거예요. 그러면 그 반대적인 면을 계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진리를 탐구하고 혹은 신령면에서 체휼하고 말이에요. 여기에는 반드시 뭐가 필요하냐 하면, 기도와 진리 탐구가 필요합니다. 신령한 사람은 이미 영적으로 느낀 것을 진리로 소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되고, 진리적인 면의 사람은, 지성적인 면의 사람은 그 지성적인 면에 영적인, 신령적인 면을 보강할 수 있는 체휼적인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반드시 내가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터전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 혼자서는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와 상대적인 소성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스승으로 삼아서 지도를 받고 협조를 받아 나가는 것이 제일 바른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만약에 여러분이 그러한 것을 느꼈을 때는, ‘ 이젠 나도 알았다.’ 아! 할 때는 그 알았다 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라는 거예요. 실천하라는 거예요. 자기가 해 봐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그렇잖아요? 실험을 해 보고 말이에요. 전문가는 무엇이 전문가냐? 같은 일을 많이 해 본 사람 입니다. 전문가가 따로 있지 않다구요. 그렇잖아요? 기술자는 어떤 사람이 기술자냐? 같은 일을 많이 해 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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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해 봐야 됩니다. 체휼한 모든 사실은 상대성을 갖고 일일생활권 내에 접맥시켜야 여러분, 그래요. 영적인, 정신적인 세계가 얼마나 통일권인지 몰라요. ‘ 내가 누구를 보고 싶다.’하며 24시간 기다리면 그 사람이 온다구요. 그게 실현된다구요. 오는 거예요. 집중하게 되면 나타나는 거예요. 그것은 전파가 방향성 전파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수신기와 같은 자기 마음 바탕이 있기 때문에 괜히 궁금하고 가고 싶고 그런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그 마음이 강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내가 학교에 간다고 떠났는데도 그 가는 길의 방향을 거쳐서 오게 되면 교회에 와 있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자기 의식적 기준을 넘어 가지 고 행동하는 그런 결과를 반드시 체험한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도 한창 반대 받고 핍박 받을 때는 말이에요, 이 아주머니들이 바구니 들고 시장에 간다고 갔는데 통일교회 오는 거예요. 그것은 보통지사라구요. 그건 뭐 신기한 것도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미쳤느니, 무슨 전기장치를 했느니, 뭐 어떻고 해 가지고…. (웃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거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최면술 같은 것도 말이에요, 인간이 그런 체험을 통해 가지고 그게 가능하거든요. 하나님을 중심삼고 신령적인 그 길을 통하면 가능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 거예요. 이 경지에서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체휼한 모든 사실을 실천장에 적용시키는 데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상대성을 갖고 일일생활권 내에 접맥시키느냐, 형성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신앙자입니다. 막연한 신앙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는 하나님을 대역하여 시대적인 사명을 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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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된다구요? 먼저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 정신 집중을 해야 돼요. 될 수 있으면 영점의 자리에 내려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이 자리에 가든가 해야 돼요. 그러면 제일 빠른 길이 어디냐? 이 영점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여기에 내려오는 것이 제일 빨라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무엇이냐? 참선하는 사람이 ‘ 도대체 마음이 무엇이냐?’ 문제를 놓고 하는 거예요.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이 문제는 간단해요. 마음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영원한 이상적인 선의 주체이시면 그 주체적 존재 앞에 상대적 바탕으로서 언제나 변함 없이 상대기준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마음의 중심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걸 통일 교회에서는 생심의 기원이라고 보는 거예요. 이 상대기준만 딱 맞으면 초연한 힘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신비스런 기도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면…. 석가모니 같은 양반도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그런 것을 말한 거예요. 수도하면서 정신을 통일해 가지고 신령한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체험하는 가운데, 완전히 하나님 주체 앞에 대상의 자리에 딱 들어가기 때문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내가 세상을 한번 꽉 쥐면 세상이 옴싹 이 주먹 안에서 녹아 나는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이거 들게 되면 들리는 기분이 나고 말이에요, 치게 되면 한꺼번에 녹아 나는 기분, 이런 경지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이적기사는 자동적이에요. 병 고치는 그런 일은 자연히 신앙생활의 부속물로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심문(心門)에 맞추어 가지고 심전(心田)을 계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밭을 계발하고 방향 기준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런데 주체 되시는 하나님은 모호하니까 하나님을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정신을 집중시켜 가지고 내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부터 마음을 맑혀 놓으면 반드시 방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지남철과 같이 말이에요.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는 자연 히…. 누가 가라고 그래서 가나요? 자연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걸 느끼지요. 내가 동쪽을 향해서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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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는데, 신비의 경지에 들어가면 벌써 방향이 달라진다 이거예요. 또 내가 북쪽을 향해서 기도했는데 언제 이렇게 됐는지….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사실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 문이 있다 는 거예요. 기도가 잘 될 때가 있지요? 그거 다 알 거라구요. 기도가 잘 될 때가 있 다구요. 내가 아무리 목욕재계를 하고 정성을 들이더라도, ‘ 아이구…!’ 기도가 안 될 때가 있어요. 방에 따라 다르기도 해요. 방의 위치에 따라서 다 르다 이거예요. 그거 그럴 수밖에 없다구요. 하나의 중심 앞에 있어서 중심을 중심삼고 동서남북이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 따라 다른 거예요. 또 방향에 따라 달라요. 산에 가더라도 기도가 잘 되는 곳이 있습니다. 또 사 탄이 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건 음지예요. 음지와 양지라는 것이 영 적으로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여러 번 체험하면 그런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암시나 몽시나 계시나 묵시가 벌어지는 것은 인간과 하늘 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개척적이고 발전적인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요건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홀히 하지 말고 여러분의 생활에 적용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하늘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휼적 신앙을 가져야 그것은 소성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에이(A)라는 사람하고 비(B)라는 사람이 같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체험을 참조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체휼적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 신앙을 해라. 교회에 가라.’할 필요 없어요. 그런 건 문제가 아니라구요. 벌써 내가 내 갈 길을….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이 마를 때 물을 먹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그렇게 되는 거예요. 선생님 같은 사람은 자연을 참 좋아합니다. 왜 자연이 좋으냐 하면 선생님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런 신비스런 체휼을 한 그런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기분이 언제나 새롭다는 거예요. 그 기분이 아쉬웠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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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자기가 옛날에 은혜스러운 자연을 바라보고 명상하던 그런 경지, 혹은 밤이면 밤 하늘을 바라보던 그런 경지, 사시사철 그 기분이 전부 다 다르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복잡다단한 도회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생활권 내에 스스로 싸여 자기의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수택리로 갈 때도 있고 청평을 잘 갑니다. 미국 가기 전에도 매일같이 청평에 갔다 왔다구요. 어제 저녁에 갔다 왔는데 아침에 또 뭐 하러 가느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가려면 세 시간, 네 시간이 필요한 데 말이에요. 거 왜 가느냐? 자연이 아주 새롭다는 거예요. 느껴지는 무엇이…. 영적으로는 플러스된다는 거예요, 이게. 클클할 때는 메울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런 놀음 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일방적이 아니라 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을 보강해야 됩니다. 이런 체휼적인, 본성의 감도라고 할까, 그러한 느낌을 언제든지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자 기가 안다는 거예요. ‘ 지금 내가 어떠한 단계에 들어왔다.’하는 것을 아,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지금 내가 얼마만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말씀을 해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하고 나면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더욱이나 열렬히 피땀을 흘리고 하면 벌써 이것이 어느 면에 치우친다구요. 이걸 전부 다 조정해 놓아야 돼요. 그러니 신앙길이 참 어렵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친구가 없더라도 혼자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안다는 거예요, 기도하면. 그런 생활을 하게 되면, 사람을 대할 때 척 보면 벌써 설명하기 전에 그 사람이 A, B, C형 중 어느 형인가를 분석한다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이 빠르다는 거예요. 그런 체휼이 벌어져야…. 영들도 무수해요. 사람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별의별 영이 다 있다구요. 사람 가운데도 별의별 녀석이 다 있지요? 마찬가지로 영들도 그래요. 그러니 영을 감정하기 위해서는 그런 내 스스로의 척도, 마음의 영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이 왼쪽으로 가느냐 바른쪽으로 가느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것을 가릴 수 없다는 거예요. 선한 신이냐 악한 신이냐 하는 것도 그런 느낌을 통해서 대번에 분석할 수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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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체휼적인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체험이 있으면 반드시 현실과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여러분이 체휼하려면 반드시 무엇을 해야 되느냐? 마음 문을 맞추고 마음 밭을 갈고 이러면서 이것을 전부 계발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영적인 면 의 사람, 진리적인 면의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나 혼 자 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인 어떤 지도자를 따라가든가 어떤 친구를 따라가든가 해서 보강하면서 서로서로가 하나되는 입장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많 이 보필 받아야 빨리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이 있으면 반드시 현 실과의 관계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실천장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무엇을 느꼈으면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므로 ‘ 무엇이 있었다.’ 그 저 잊어버리지 말고 그것이 어디에 적중하느냐를 살펴야 됩니다. 반드시 가르쳐 준다 이거예요. 반드시 가르쳐 주는 내용으로써, 이렇게 됐다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무엇이 어떻게 맞아떨어지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찾아야 됩니다. 몽시라든가 환상 가운데서 됐던 사실들이 현실에 적중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전문적인 체험을 가져야만…. 성경의 예언서 내용에 세계의 때가 어떤 때냐 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는 거예요. , 지금 하나님의 섭리가 어떤 때로 가고 있다 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인 체휼신앙을 통해서 여러분이 실천장에서, 생활적인 환경에 있어서 선한 환경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한 생활인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앞으로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기성교회에서 십년에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일년에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이에요, 조금만 정성들이게 되면, 기 성교회가 10년 공들여서 할 수 있는 것을 통일교회는 1년만 공들이면 도 달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길이 다르다구요. 왜 다르냐? 나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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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수많은 종교들은 말이에요, 이런 원형이 있으면, 사람 사람에 따라 원형을 그리면서 이렇게 도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돌고…. 이 중심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이 방향이 있지 않다 이거예요. 위인지 아래인지 방향이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모르잖아요, 지금?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되고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제멋대로 돌고 있으니 이게 빙글빙글 제멋대로 돌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 이거 기도를 해도 중심이 어딘지 막연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전부 해 주기 전에는 체휼적 신앙 단계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딱 관이 서 있다 이거예요. 창조 목적….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기성교회 목사에게 혹은 신학박사에게
‘ 하나님의 뜻이 뭐요?’ 하고 물어보면, ‘ 아이고! 그건 지극히 쉽고도 어려운


말이오.’ 이렇게 대답해요. (웃음) 암만 목사라도 ‘ 하나님 뜻이 뭐요?’ 하고 물으면 ‘ 글쎄…’ 이러고 있어요. 글쎄가 아니라구요. 벌써 통일교회는, 하나 님의 뜻 하면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것, 딱 나왔다구요. 창조목적 완성이다! 창조목적 완성이 뭐냐? 개체에 있어서는 개인 완성이요, 가정에 있어서는 가정 완성이요, 이렇게 전체가 나온다구요. 그게 딱 확정돼 있는 것입니다. 주체관이 확립돼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대상관이 확립돼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미 결정된 방향에 대해서는 문제시할 필요가 없다 이거예요. 그러나 기성교회 신앙은 방향에 대해 모호하니까 이게 큰 문제라구요.
‘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되는 거야?’ 하면 ‘ 세상을 불로 심판한다.’ 아, 이럽니다. 거 얼마나 모호해요? 난 그런 신앙 하는 게, 어떻게 그걸 믿고 있는 지, 참…. (웃음) 그런 관점에서 방향이 있어야 된다구요. 방향이 되어 있어야 된다구요. ‘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진짜 아버지야?’ 하면 ‘ 글쎄, 아버지라고 하니까 아버지지.’ 그러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돼 있느냐? 방향이, 목적관이 확실함으로 말미암아 방향은 이미 제정돼 있다구요. 목적이 확실하고 방향이 정 해져 있어요. 지금 방향이 문제거든요. 세계가 어떤 목적을 가져야 되느냐? 인류가 어떤 목적을 가져야 되느냐? 어떤 길로 가야 되느냐? 민주주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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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공산주의냐? 목적관이 확립 안 돼 있다구요. 방향이 민주주의 방향이냐 공산주의 방향이냐가 확정 안 돼 있다구요. 그러니까 왔다갔다 혼란이 벌어지는 거예요. 제멋대로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목적이 확정돼 있고 방향이 확정돼 있기 때문에 이것은 움직이면 어디로 가느냐? 전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전진도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구요. 노력하면 방향에 있어서 발전적 결과를 이루어 놓기 때문에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그 목적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고, 혹은 목적의 가치에 대한 감응을 생활권 내에서 느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 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기성교회에서는 10년 동안 정성 들여야 도달할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일년 이내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일년 까지도 안 가지요. 일년까지 안 간다구요. 내가 알기엔 일년까지 안 간다구요. 대번에 체험한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누가 가르쳐 주느냐 할 때,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많이 가르쳐 주는 거예요. 지금 통일교회가 참 신기한 것은 선생님은 살아 있는 몸뚱이지만, 지금 미국이면 미국 식구에게, 독일이면 독일 식구들한테 영적으로 다 가르쳐 준다구요.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몽시라든가 꿈 가운데라든가 혹은 기도하는 가운데서 선생님을 많이 보지요? 그런 체험이 있는 사람 손 들어 봐요. 그건 백 퍼센트예요, 백 퍼센트. 이것이 안 되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니에요. 이렇기 때 문에 통일교회가 위대한 거예요. 통일교회가 강한 거예요. 선생님의 명령 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그런 놀음이 벌어져요. 그거 왜 그런지 모르지요? 나만 알지요. (웃음) 그런 일이 가능합니다. 이미 체휼권 내에 들어선 거예요. 이것이 과거에는 종적인 면에서 하늘과 관계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웠어요? 그러니 내 위치를 희생시키고 떠나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러니 체휼하는 것이 어렵지만, 오늘날 통일교회는 횡적 기준이 돼 있다 이거예요. 그냥 그대로 가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쉬워요? 그렇게 차원 이 다른 경지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을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의 심정하면 모호하지요?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들어가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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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들어가서 느껴 보니까 선생님하고 가까워지는 것이더라, 결론이 그렇게 된다구요. 그게 통일교회 교인들의 비결이에요.


체휼한 것을 세계화시켜라


기도하다 보니, 통일교회를 믿다 보니 결국은 누구하고 가까워지느냐 하면, 누구하고 가까워진다구요? 하나님하고 가까워지는 것보다도 선생님하고 가까워진다구요. 그게 병이라구요. 그게 통일교회 병이라구요. (웃으심) 그렇다는 거예요. 하나님하고 가까워지려고 했는데 결국은 누구하고 가까워진다구요? 선생님하고 가까워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 천국은 네 마음에 있나니라, 천국은 네 환경에 있어야 된다.’ 이거라구요. 천국은 천 상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환경천국을 이루지 않으면 천상천국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극히 나빠하는 사람이다! 그래요? 생각해 보라구요. 사람을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지극히 나빠하는 사람? 「지극히 좋아하는 사람!」 지극히 좋아 하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지극히 좋아해 봤어요? 나를 속여 먹어도 좋고, 나를 잡아먹어도 좋고, 지져 먹어도 좋다, 그렇게 좋아해 봤어요? 「못 해 봤습니다.」 못 해 봤으니, 사람으로 그것을 못 해 봤으니 안됐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그런 거예요. 내가 이번에 약혼해 줄 때도 처녀들에게 ‘ 이놈의 간나들!’하며 발길로 들이차고 뺨을 갈기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맞고는 쓱 이러고 그만이에요. (웃음) 거 이상하다구요. 거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욕을 해도 복수하려고…. 암만 쥐어박아도…. 그건 뭐 잊어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구요. 잊어버린다 이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그걸 보게 되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아기와 같다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이 말을 안 듣고 꾀 부리면 ‘ 이놈의 자식아! 왜 말을 안 듣느냐?’ 하고 뺨을 때리고 몽둥이로 패기도 하지요. 그리고는 밤새껏 어머니 아버지는 ‘아이고! 그 녀석 맞았으니 내일 아침에는 부르트겠구나.’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는 ‘엄마! ’ 이런다구요. (웃음) 그런 것들이 통일교회 교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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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에요.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매 한 대 맞아도 기분이 좋지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보통 사람은 암만 연구해도 모른다구요, 우리만이 알지. (웃음) 우리는 어떻게 아느냐? 우리는 체휼하기 때문에….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그 체휼한 것을 선생님과 여러분 사이의 체휼로 남기지 말고 세계화시키라는 거예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상천국이 벌어진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건 종적인 체휼인데 횡적화시켜라! 횡적이라는 것은 사방 세계입니다. 동서남북이기 때문에 민족을 초월하고 종족을 초월해 가지고 한국 사람 뿐만 아니라 세계 만민 앞에 사방성으로 체휼화시켜라! 그러면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이렇게 딱 공식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식구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식구. 그 식구라는 말이 듣기에 참 기분 좋은 말입니다. 거꾸로 하면 구식이 돼서 안 되지만 말이에요. (웃음) 영적 지도자는 그런 체휼적 무엇이 없어 가지고는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책을 봐 가지고 설교 준비하고, 책을 봐 가지고 하늘이…. 그 책 가운데 하나님이 있나요? 그렇지 않다구요. 하나님은 신령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되겠어요. 비약적인, 혁명적인 영적 세계의 발전을 이루어 놓은 통일교회 체휼적인 신앙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식구라 면 대개 체휼하게 됩니다. 반드시 체험을 한다는 거예요. 어떤 일까지 벌어지느냐 하면 말이에요, 여러분의 현실적 생활권 내에 다 벌어지는 거예요. 진정 뜻을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 들이면 하늘이 같이해 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일본 식구들이 인삼차 팔이를 하는데, 책임량을 주고 얼마에 팔아라 하면 인삼차가 하나님 대신 놀음 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아! 선생님이 인삼차를….’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내가 힘들게 팔게 되면 선생님 이 영적으로 인삼차를 팔아 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경 지에 들어간다구요. 지금 현실에서 내가 인삼을 팔러 다니는데 눈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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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선생님이 따라다닌다구요. 아무 집이나, 들어가는 집집마다 팔린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거 이상하지요? 그것이 가능하다 이거예요. 어떤 때는 여러분이 옛날에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고생한 선생 님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나고, 밥 먹을 것을 잊어버리고 잘 것을 잊어 버리고 미치다시피 되게 된다면, 선생님이 좋은 양복을 입고 기분 좋게 쓱 나타나 가지고 위로도 해 주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런 일이 많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종교에서 체휼할 수 없는, 수십 년 정성들여야 체휼할 수 있는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즉각적으로 체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비약적인 뭐라 할까요, 혁명적인 영적 세계의 발전을 이루어 놓은 통일교회라고 나는 보는 거예요. 여러분, 다 체휼했어요? 체휼한 적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있지요? 「예.」 이건 뭐 다 있어야 된다구요. 그 체휼한 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을 위하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형제를 위하고 형제를 좋아해야 이것이 되는 거예요. 그런 것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체휼적인 하나의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거예요. 그 놀라운 체휼을 오늘날 현실적 실천 무대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현실적 무대에서 체휼이 가능하다는 것은 종교세계의 위대한 혁명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디에 있느냐 할 때, 기도 가운데서 음성을 들어 보면 ‘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라. 선생님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려라.’ 하는 거예요.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렇게 가르쳐 준다구요. 그리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잠을 안 자고 그러다 보니 영계가 열리더라 이거예요. 제일 빠른 게 그 거라구요. 영계가 열린다구요. 선생님이 미국에서 뭘 하는지 앉아서 보거든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이것은 막연하던 신앙의 주체적 대상을 현실적인 실체적 주체로서 횡적 무대에서 체휼할 수 있는 권을 형성했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실은 종교세계에 위대한 혁명을 제시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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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온 교수님도 계시구만요. 지성적인 면과 그런 면의…. 거 논산 할머니가 무식한 할머니라구요. 여기 본부에, 있는 승도 할머니도 무식한 할머니예요. 선생님이 그들을 데리고 지금까지 몇 십년 같이 나왔지만, 지금도 증거해 준다구요. 내가 뭐 어떻고 어떻고 증거하는 것보다도…. 자기 자랑하는 사람은 뭐라구요? 병신 축에 들어간다구요. 그러니까 내가 자랑 안 해도 그런 사람들이 자랑해 줍니다. 전부 다 나발 불어 줘야 된다구요. 필요하다구요. 내가 그러고 있으면 뭐예요, 그게? (웃음) 그거 안됐지요. 안됐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전부 대신해 주기 때문에…. 그런 할머니들이 앉아서…. 그거 보면 우습지요. 세상이 그럴 수 있나 말이에요. 뭐라고 할까,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새로운 창조가 벌어지는 거예요. 창조하기 전에는 뭐가 있나요? 형편이 무인지경이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힘과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가게 되면 재창조의 실적, 혹은 실체 가치가 형성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데에 관심을 가져야 돼요. 그런 할머니가 남자도 앉아서 소변을 보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거예요. 서양 사람은 걸터 앉아서 변을 보고 동양 사람은 쪼그리고 앉아서 보는데, 동양 사람도 걸터 앉아서 보라고 하면 그렇게 해야 돼요. 맨 처음엔 안 나 온다구요. (웃음) 그거 그렇다구요.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하 려면 습관화되어야 돼요. 그게 필요하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극과 극,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부정해서는 원만이라는 것이, 완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많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체휼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입니다. 체휼 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를 해야 되고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서 나타나는 계시나 몽시를 절대 무시하지 말라구요. 그것을 조정을 해서 현실적 생활권 내에, 실천 무대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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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체휼이 세계화되어 가는 데는 개체가 문제
‘ 앞으로 때가 온다. 실체적 3년노정을 가야 되겠다.’ 자, 이제부터 3년이


중요합니다. 대한민국도 이 3년노정에 걸려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세계도 이제 3년노정의 한계선을 넘어야 할 때에 들어와요. 기독교와 통일교 회도 이 3년노정의 한계선을 넘어야 할 때에 들어와요. 기독교와 통일교회 도 이 3년노정에…. 조수가 들어갔다가 나오고 나갔다가 들어오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나가던 것이 들어오는 단계로 교차될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 세계사적인 시대를 어떻게 아느냐? 공식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개인의 사정은 가정에 반영되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높아지는 거라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건 같은 원형이에요. 이렇게 발전되는 거예요. 결국은 이것은 뭐냐? 커진다는 거예요. 퍼진다는 거예요. 이 모양은 마찬 가지라구요. 결국은 개인의 체휼은 가정의 체휼로 나타나야 되고, 가정의 체휼은 종족의 체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커질 뿐이라는 거예요. 개인천국은 가정천국, 가정천국은 종족천국, 종족천국은 민족천국, 민 족천국은 국가천국, 국가천국은 세계천국으로 이렇게 발전해 나가야 된다 는 거예요. 그 공식은 변함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이 기점이 어디냐 하면 나입니다, . 여러분 개 인이다 이거예요. 개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 자체가 하나님을 중심 삼 고…. 이 가는 길은 전부 다 90도입니다. 모두 90도라는 거예요. 이것도 전부 마찬가지라구요. 결국은 이것도? 90!」 전부 90도라는 거예요. 이 점은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누가 중심이 돼 있느냐? 전부가 내 개인이 중심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런 의미에서 우주를 얻는 것보다 도 내 한 생명을 얻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말은 그런 관점에서 하는 말 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저울대가 돼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틀리면 세상이 다 틀어진다구요. 그러므로 비판이라는 것은 내가 옳은 자리에서의 비판이 아니에요. 하나 님이 아니고는 참다운 판정을 할 수 없다, 이렇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런 데 기독교에서는 통일교회에 대해서 잘 판정해 버립니다. 그 녀석들,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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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이 틀리는 날에는 내가 최후의 판정을 해 버린다구요.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문제는 나입니다. 그러면 내 자체에서 그것이 벌어지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늘이 있으면, 통일교회 선생님을 통해서 여러분과 관계 맺는 데서는 일대 일이라구요. 그렇지요? 그것이 내 자체만으로, 축소된 내 개인 자체만으로 종결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확대해서 전체를 대표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 아야 됩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공식은 언제나 적용해야 된다는 말이라구요. 내가 기뻐야 상대도 기쁘다는 거예요. 설교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반드시 내가 은혜 받고 눈물을 흘린 그 체휼적인 사실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 그 환경은 은혜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이 없이, 체휼적인 그 내용이 없이는 아무리 외치더라도 그 환경은 전부 다 따로따로 돌아갑니다. 공식에 들어맞으면 하나에서 열, , 전부 다 맞아떨어지지만, 공식에 안 맞으면 전부가 틀어져 알알이 놀아난다 이거예요. 냉랭하고, 도리어 안 왔던 것만 못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 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통일교회는 체휼과 실천이 겸해진 무서운 곳이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통일교회 활동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내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외적인 관계로 확대시키기 위한 모델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시될 수 있는 가치의 것으로서 확정 짓지 않는 한 환경적 절대적인 상대권은 형성 안 된다 이겁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교회생활에 있어서 가장 귀한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그렇다구요. 여러분, 주일날 아침에 다섯 시 면 다섯 시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몇 시간 전부 터 잠을 못 자고 피곤한 몸으로 전차를 타고 오게 되면 전차 간에서 다 가르쳐 준다구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오늘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 한 다.’ 하고 말이에요. 와 보면 그 이야기 한다구요. 그 체휼과 실천이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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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맞아떨어져 들어가는 것을 체험하는데 누가 부정해요? 그 나라 국민이 거국적으로 반대하고 대통령이 뭐 전부 다 말살하라는 선포령을 내리더라도 그걸 부정할 수 없다구요. 통일교회에서 그런 체험을 한 사람은 나갔다가는 사고라구요. , 이거 반대를 했으니 들어오려니 들어올 수도 없고 안 들어가려니 안 되겠고…. 그래서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뭐 어떻고 어떻고 이런다구요. 그럼 어디 로 갈 거예요? 파산하든가 자체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구요. 그거 불쌍하니까 내가 포섭운동도 해 주지요. 아무리 딴 데 교회, 기성교회에 가 봐야…. 이거 술로 말하면 위스키 먹다가 사이다 먹는 맛이거든요. (웃음) 이거 그렇다고 올 수는 없고…. 그런 사람이 참 많다구요. 그러다 보니까 마음이 동요되니 병이 나고 몸의 병까지 나 가지고 전부 다 불우한 운명에 부딪히는 경우를 내가 참 많이 봤다구요. 통일교회 반대하다 잘되는 녀석은 내 하나 못 봤다구요. 내가 보기에는 통일교회는 참 무서워요. 내가 그걸 알아요. 통일교회는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느껴요. 내가 만일에 분해 가지고 이를 악물고 이를 갈면서 기도하는 날에는 옥살박살되는 걸 봤다구요. 그렇지 않아도 마음으로 ‘ 이놈의 자식! 고약한 자식!’ 이러면 벌써 몇 개월 못 가서 전부 창이 나 버리는 거예요. 그런 것을 참 많이 봤어요. 통일교회는 무서운 곳이라구요. 난 그렇게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거망동할 것이 아니요, 자기 마음대로 세상에서 생활하던 그런 습관성으로 대할 수 없는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내가 잘 알아요. 그 대신 선생님이 그런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심각한 사람이라구요. 원리원칙에는 일보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공산당이 반대하고 민주세계가 반대하더라도 일보도 양보하지 않는다구요,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네지(ねじ; 나사)를 더 틀면 틀었지.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너 반대해라, 반대하면 난 더 들어간다 이거예요. 더 들어가니, 너하고 나하고 비교해서 네가 약하게 될 때는…. 네지가 빠가(ぼか) 된다는 말이 있지요? 네지가 넘지 않기 위해서는 네가 후퇴해야지. 너트와 볼트를 맞추어 조이는데 볼트가 돌든가 해야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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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휼과 실천


움직이는 날에는 반대하더라도 틀어 들어간다 이거예요. 내가 빠가 되지 않으려면 네가 후퇴해야지. 그런 작전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 통일교회에서는 실제 어떻게 움직이느냐? 선생님하고 여러분이 느끼는 그 심정적인 그것이 핵심이 되어 가지고 상대적인 세계에 응용해야 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예.」 또 선생님 자신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하고 선생님하고 그 느낀 것을 여러분한테 응용해야 되는 거예요. 마찬 가지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아는 것은 여러분이 모르지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해서 느낀 것은 여러분의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 신앙세계의 마음 문을 열고 마음 밭을 계발하는 놀음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계발되는 날에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대적인 세계에 적용시킬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체휼과 실천은 두 세계를 조정하기 위해 절대 필요 여러분이 영적으로 체휼하지요? 선생님을 통해서 체휼하지요? 「예.」 그 체휼한 것을 실천 무대에 적용시키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거기에서 반드시 천국이 벌어집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둘째 번이면 실천 환경은 셋째 번입니다. 소생장성완성입니다. 나는 중심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늘도 완성시킬 수 있고 세상도 완 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이 벌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더라도 언제나 둘째 번이 문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둘째 번 자리는 어떤 자리냐? 천지 만물 가운데 하나님과 우주를 두고 볼 때, 사람은 둘째 번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보면 3점을 연결한 것이에요. 이 지점이 인간입니다. 사람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완성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완성을 볼 수 있고, 인간의 완성을 봄으로 말미암아 우주의 완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가 지금 개척하는 도상에서 절대 필요한 것은 이 두 세계를 조정하기 위한 체휼과 실천입니다. 체휼이 영적인 면을 말하면 실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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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적인 면을 말하고, 체휼이 오른쪽이라면 실천은 왼쪽입니다. 이것이 일치되는 평행선을 그려 가지고 내 인격 기준 앞에 완결 시킴으로 말미암아 우주를 대표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기 바랍니다. (선집 76권 13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