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과 본향 땅
일반적으로 본향과 본향 땅은 같은 개념으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본향과 본향 땅의 개념을 확실히 구분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향이라 함은 내가 태어난 근본 고향을 말합니다.
이전 기고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태어난 육적인 고향은 엄마의 자궁입니다.
(본체론적 입장에서 분석한 본향 땅의 의미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53
우리는 그 자궁에서 착지 되어 10개월 간 자라서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자궁에 착지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정자가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궁은 본향 땅이라고 하고 정자가 만들어진 아버지의 뼛속을 본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 참조)
이렇게 우리는 본향과 본향 땅을 더 세부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정자 씨가 착지되어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향은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의 정자 씨가 만들어진 곳이 바로 근본적인 본향이 되는 것입니다.
무형이신 순수 영의 하나님이 어떻게 정자 씨를 만들었을까요?
이는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게 된 근본 원인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근본은 심정입니다.
심정은 하나님의 근본이며, 생명과 사랑과 혈통의 본향입니다.
심정은 사랑하고픈 정적 충동이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 자꾸 커 나온 것입니다.(말씀 참조)
이 심정과 사랑이 주체와 대상, 종과 횡,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의 입장에서 서로 수수작용하여 탄생시킨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자 씨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정자 씨의 근본적 본향은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이며, 엄밀히 따지면 본향은 하나님의 심정이요, 본향 땅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물론 이 정자 씨는 영적이며 성상적인 것은 당연합니다.
이 영적인 정자 씨를 실체적인 정자 씨로 만들지 않고서는 실체를 창조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체를 창조할 수 있는 실체적 정자 씨를 만들기 위해 실체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고픈 충동의 심정이 부단히 작용하여 점점 사랑이 커져
나와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무한히 커 나오신 것은 사랑을 이루시기 위함이고 그 사랑을 실체적으로 이루시고자 실체세계를 창조하셨는데, 그 피조세계가 바로 유.무형실체세계였다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유.무형실체세계의 중심은 바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를 쓰기 위해 실체적인 하나님의 정자 씨를 먼저 만들어야 했습니다.
창조는 단번에 이룰 수 없었기에 수많은 단계를 거쳐 점진적인 창조를 통해 최종적으로 인간 아담해와를 창조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심정과 사랑을 심을 수 있는 실체 아담 해와를 만드신 후에야 비로소 당신의 생명과 사랑과 혈통의 근본인 실체 정자 씨를 만드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담해와 중에 하나님의 실체 정자 씨를 가진 자가 아담이며 그 정자 씨가 착지하는 곳이 바로 해와의 자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의 사랑은 두 사람 만이 아닌 하나님(성부)과 남편(성자, 아담)과 아내(성신, 해와) 셋이 3위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이전에 기고한 삼위일체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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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형의 하나님의 정자 씨는 아담을 통해 실체 정자 씨가 되고 해와의 자궁에 착지하여 성장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서로 사랑을 할 때 하나님의 무형의 정자 씨가 뿌려질 수 있는 기대를 쌓아서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성령의 사랑 가운데서 사랑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앞서 기고한 본체론적 입장에서 분석한 본향 땅의 의미 참조)
물론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인해 영적으로 사탄의 정자 씨가 뿌려져 후손이 태어남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천사의 혈통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원리를 통해 배워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근본 본향과 본향 땅은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이며, 실체적인 본향과 본향 땅은 아버지의 뼛속과 엄마의 자궁인 것입니다. (말씀 참조)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근본 본향과 본향 땅인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향 땅을 찾으라는 것은 이러한 본향 땅의 뜻을 깨달아 그 가치를 찾아서 이루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근본 복귀는 하나님의 심정(본향)을 찾고 하나님의 사랑(본향 땅)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맹세에서 본향 땅을 찾아 본연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창건하라고 했습니다.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창건하는 것 역시 바로 본향 땅의 참의미를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근본 본향은 하나님의 심정이요, 근본 본향 땅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가 남자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는 여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실체적인 본향은 아버지의 뼛속이고 실체적인 본향 땅은 어머니의 자궁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룬 한 남자와 여자는 근본 본향과 본향 땅인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어 가정에서 천국을 창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가정에서 천국을 창건하여 참사랑으로 살아 완성 실체(생령체)가 되어 영원한 본향 땅인 영계에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영계가 곧 본체적 실체세계(무형실체세계)인 것이며 아버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속으로 신성 복중이며 천궁이라고 하셨습니다.
지상 생활은 바로 하나님의 품속(영계, 천궁)에 들어가기 위한 사랑의 훈련 기간인 셈입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에서 왔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의 품속(천궁=신성 복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지상에서는 사망이요, 영계에서는 새로운 탄생, 즉 생령체로서의 탄생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은 본향(하나님의 심정)에서 출발하여 본향
땅에서 살다가 다시 본향(신성 복중)으로 돌아가 본향 땅(영계)을 일구며 사는 여정인 것입니다.
그 본향 땅(영계)은 하나님의 참사랑의 세계, 신성 복중(愛中) 세계이므로 참사랑이 없는 자는 들어갈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즉
신인애 일체이상을 이룬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본향 땅(천궁=신성 복중=영계=천국)입니다.
결론적으로 정리를 해 보면
근본 본향은 하나님의 심정이고 근본 본향 땅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실체세계에서 본향은 아버지 뼛속이며 본향 땅은 어머니 자궁이고, 진정으로 본향의 이상이 실현 되는 곳은 지상을 거쳐 입성하는 본체세계인 영계인 것입니다.
그 영계가 하나님의 사랑의 품속인 신성 복중(신성 자궁)으로 최종 안착하는 본향 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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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그러므로 이 지상에서의 생활은 사랑의 호흡을 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기 위한 모든 사랑의 훈련입니다. 사랑의 자극에 세포가 백 퍼센트 적응할 수 있는 훈련 기반을 준비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사랑이 공기입니다. 사랑세계에 태어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것은 무엇이냐?
이 우주 자궁에서, 신성(神性) 자궁에 태어나는 거예요.
신성 복중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신성 복중. 하나님의 성품을 신성이라고 그러지요?
우리가 신성 복중에, 하나님 가운데 태어난다 그 말이라구요. (선집 122권 328쪽)
모든 원소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이 연결되는 그곳을 본향 땅으로 해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어디냐 하면 남녀의 생식기라구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디서 시작하느냐? 아담 해와의 생명과 사랑과 양심과 혈통의 뿌리인 하나님은 틀림없이 종적인 입장에서 횡적인 자리의 아담 해와, 이들의 형상 성상이 하나된 가운데에 쏙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아담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의 결혼식인 거예요. (258권 78쪽)
<천성경>
사랑의 중심은 하나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생성 이전부터 있는 유일적이요 영원적이며 불변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심정의 흐름입니다. 내적인 심정이 외적으로 흐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본질은 심정입니다.
중략
그런데 신은 어떻게 우주와 인간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심정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심정이 있는 곳에서만 생명이 나타날 수 있으며, 생명이 있는 곳에 발전 운동(창조)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천성경 1570쪽)
본향 땅의 근본이 뭐라구? 「생식기입니다.」 손대오! 「생식기입 니다.」 왜 생식기야? 본향 땅에서 본향의 조상이 되라는 거예요. 거기에 사랑의 씨를 심어 가지고 아들, 하늘의 백성을 바쳐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568권 152쪽)
본래 절대자 하나님은 어떻게 시작됐겠어요? 왕창 한꺼번에 후닥닥 뛰쳐나와 태어났겠어요? 그거 궁금하지 않아요?
중략
하나님이 생겨났겠나, 그냥 그대로 있었겠나? 그 문제를 대하려면 논리적 배경을 갖춰야 됩니다.
윤박사! 어떻게 생겨났겠어? 물리학 박사님이 그것 알아야 되잖아? 박사님이 그렇게 얼굴 가리면 창피하잖아? 통일교인도 할 수 없이 '자연히 계신다' 하겠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발전해 나와야 됩니다.(천성경 62쪽)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사랑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우주의 근본은 어떻게 이뤄졌느냐? 사랑의 씨앗이 있어 그것이 상대를 중심삼고 흡수하다 보니 하나님 자체가 성상과 형상으로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되어 있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형성되어 있습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받은 여러분의 생명의 씨, 한 세포가 커 나와서 지금 여러분이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그렇게 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눈이 생겨나고 코가 생겨나고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딱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천성경 1569쪽)
사랑은 심정의 흐름입니다. 내적인 심정이 외적으로 흐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본질은 심정입니다. 이러한 신이 바로 존재론적으로 다룬 우주 생성의 근본 원인인 통일적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 근본 원인에서의 우주의 생성이 바로 하나님의 우주창조였음은 재언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 천성경 1570쪽)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인간의 영원한 본향은 가정
가정, 가정은 좋은 곳입니다. 왜 좋습니까?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누나 오빠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동생이 있어서 좋은 곳이며, 친척이 있어서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향 땅, 즉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보다도 고향을 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을 좋아하면서, 대한민국에 살고 싶어 하면서, 또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그리워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고향입니다, 고향!
그러면 고향은 어떤 곳입니까? 자기의 심정을 사방으로, 입체적으로 몽땅 끌어올려 놓는 곳입니다.
그 심정은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얽어매는 것입니다. 위로는 어머니 아버지가 얽어매고, 좌우로는 부부의 인연이 얽어매고, 아래로는 아들 딸, 친척이 입체적인 사랑으로 꽁꽁 얽어매고 있는 곳이 본향의 심정입니다.
사람은 참사랑을 중심삼고 행복의 기점을 최고로 바라보기 때문에 본향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향은 어디일까요? 이 지구성에서 하나님의 본향 땅은 어디일 것 같습니까? 이거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이 땅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점을 반드시 마련했을 것인데, 그 기점이 어디겠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 기점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 나오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정을 마련할 수 있는 본향의 기점이 될 수 있는 곳은 어디겠습니까? 딴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짜 아버지로 아는 아들이 있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 독생자가 있는 곳입니다. 또한 그러한 딸이 있는 곳입니다. 그 아들딸이 결혼을 해서 완전한 가정을 이루는 곳입니다. (23-151, 1969.5.18)
그러면 그 본향 땅에는 누가 계셔야 되겠습니까?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계셔야 되고, 형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거기에는 같이 살고 싶은데 일순간만이 아니고, 영원히 같이 살더라도 싫증이 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오늘날 종교에서 지향하는 천국인 것입니다. ( 23-81,1969.5.11)
출처: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sMv/14
오늘날 우리가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고향에는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어서 언제나 나를 이끌어 주고, 또한 내가 언제 어느 때 찾아가더라도 나를 옛날과 같이 맞아 주고,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 어려운 사정을 동정하며 위로해 주고, 나를 기쁘게 맞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모하던 당시의 심정은 없어지고 도리어 탄식의 조건들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향 땅에는 반드시 맞아 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23-80, 1969.5.11)
<통일사상>
심정은 하나님의 속성 특히 성상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으로서, 사랑을 통해서 기쁘고자 하는 정적인 충동이다.(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