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어둠을 이기려면...
누구나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빛이 어둠을 이기려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먼저 빛의 크기만큼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빛 에너지의 크기만큼 밝힐 수 있지 작은 에너지의 빛이 무한한 공간을 밝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빛이 밝게 빛나려면 빛을 발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공기가 있어야 빛이 빛으로서 밝게 빛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구 대기 속에서 빛이 빛으로 밝게 빛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절대공간에서는 빛은 그냥 투과하기 때문에 빛은 빛이 아닌 어둠으로 통과만 할 뿐입니다.
절대공간에서는 빛이 작용할 수 있는 매개체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빛은 까만 종이로만 가려도 쉽게 차단되어 버립니다.
소리는 차단하기가 어렵지만 빛은 아주 간단히 쉽게 차단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빛도 작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빛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이동하고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빛도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주어져야 이동하거나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는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빛이지만 빛도 역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 빠른 빛도 대우주 공간에서는 수십억년, 수백억년을 달려야 하는 느림보일 뿐입니다.
교훈
우리가 빛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나름 생각해 봅니다.
첫째, 빛은 자기 질량만큼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분한 욕심을 부릴 필요없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효도하고 충성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어주신 달란트만큼 잘 가꾸고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겠지요.
남과 비교하여 상대적 빈곤이나 감소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딧불만한 빛이라도 내가 밝힐 수 있는 공간을 밝히고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시기할 것도 없고 질투할 것도 없고, 더구나 사랑의 감소감도 느낄 필요가 없으니 자기 위치를 떠나는 타락의 길로 갈 일이 없겠지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삶을 깨달아 충실히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 빛이 밝게 빛나려면 공기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듯 우리가 빛된 삶을 살아가려면 상대성을 띨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상대기준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매개체 아니겠습니까?
나와 상대성을 띨 수 있는 상대와 잘 수수작용하여야 하겠지요.
나 자신이 뭇사람 모두에게 빛이 되어 줄 수는 없겠지요.
내 주어진 관계 속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대를 만들어 잘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은혜와 기쁜이 넘쳐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간 상대기준이 조성되는 자, 즉 서로 공감이 되는 자와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지 공감이 안되면 결국 은혜나 기쁨이 없는 어둠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는 바로 까만 종이로 서로 간에 빛을 차단한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어찌보면 서로 간에 까만 종이로 빛을 차단하는 벽을 만드는 일은 피해야 하겠지요.
마지막, 빛도 작용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들의 관계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신을 통해서 서로 잘 사랑하라고 하신 것 아닌가요?
주어진 관계 속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당신과 사랑의 관계로 발전시키라고 하신 것 아닌가요?
부여해주신 시간과 관계(공간)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대신체로 사랑을 주고 받을 것이냐가 문제 아닐까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휼하고 하나님을 사랑해 드릴 수 있는 나로 성장 발전시켜 영원히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라고, 영원한 빛이 되라고 창조해 주신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