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숭배(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우상 숭배다)
지난번 왕님께서 우상 숭배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이에 본인은 우상 숭배에 대해 제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왕님께서 우상 숭배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주셨습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도 같은 맥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늘을 저버리고 다른 무엇을 숭상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우상인 것입니다.(말씀) '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아버지이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 있으면 바로 우상 숭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 외에 딴 중심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다른 무엇을 쫓아 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천사의 문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동으로 천사의 문화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즉 종(천사)의 문화와 문명권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첫째 계명으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다른 무엇보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들이 만드는 문화는 하나님의 것을 흉내내지만 결국 다 거짓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상 숭배를 하게 되면 거짓된 천사의 문화를 쫓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방 신을 섬기게 된 것도 바로 하나님이 아닌 가짜 신들을 섬기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 왕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간이 주관해야 할 천사(종)를 신으로 알고 숭배하는 것입니다.
즉 천사가 만들어 놓은 문화 문명 속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장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종인 천사를 사랑하고 종의 문화를 사랑하고 종의 자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니 그릇된 것입니다.
(본인이 기고한 사탄의 정체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12
그래서 메시아는 종의 자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시고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당연히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살고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전 본인이 기고한 참상 숭배 참고 바랍니다.)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wtW/5
그래서 왕님께서는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려면 진정한 회개를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나의 생각, 사고방식, 사상이 바뀌고 영계까지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나, 하나님께 집중하는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입장에 의한,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에 의한,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님은 근본적으로 성령으로 회개하는 나 자신이 되어야 진정으로 회개한 모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여 회개하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 수많은 십자가 노정을 가시고, 죽음의 노정을 가시면서도 사랑과 은총을 베푸신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 칠사부활의 노정, 팔단 완성하신 노정 등을 깨달았을 때 아버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모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진정한 회개는 나를 중심한 것이 아닌 성령에 힘입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지 않은 자기 중심적 회개는 나는 잘못했구나 하는 식의 또 하나의 자기 중심한 사상이나 사고방식을 형성하여 더 큰 우상 숭배에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리나 말씀을 공부해도 결국 자기중심한 사고로 정립이 되게 될 때는 더욱 완고한 사람이 되고 편협적이고 왜곡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아버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섭리하실 때에도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아버님 그것은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안됩니다" 하는 불신의 모습을 보였습니까? 아버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고 원리를 배웠지만 그 아버님께 배운 원리 말씀으로 아버님을 평가하고 거역하는 길을 수없이 갔었습니다. 말씀으로 달라진 내가 되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을 놓고 섭리하시는 아버님 앞에 절대 순종 복종하지 못하는 거만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왕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자기중심한 회개와 반성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멀게 하고 더 큰 우상에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 근본적인 회개는 나를 중심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성령에 힘입어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 봅니다.
우리가 회개를 통해 지엽적인 것을 고치고 바로잡아도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나 사상,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더 큰 잘못된 사상의 틀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헌 술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 술을 부으면 새 술도 헌 술에 섞여 절대 새 술맛이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버님도 절대 자기부정을 한 터 위에서 복귀가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하신 것 같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완전 부정, 절대 자기 부정의 터 위에서 복귀섭리, 즉 재창조섭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자기부정, 절대 자기부정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령을 입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비로소 참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평소(십자가 전)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잡으러 온 로마 병정의 귀를 짜르다 오히려 사탄이라는 책망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드로더러 당신을 사랑하는지 물었을 때 베드로는 당당히 사랑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정하셨습니다. 오히려 닭이 울기 전에 세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지적하셨습니다.
평소 베드로는 자기 중심한 예수님에 대한 우상을 갖고 따르던 자였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셨을 때의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우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우상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산산조각이 나자 그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다시 이전의 어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죄를 깨닫고 로마에 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릴 수 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의 성령을 받았을 때 비로소 참된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제자가 되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아버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절대 아버님이 세워 주신 대신자 상속자를 받들어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을 아버님 앞에 수없이 맹세했지만 결국 아버님이 성화하시자 모두 베드로처럼 아버님을 배신하고 거역하는 길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아버님의 성령으로 진정한 회개를 하는 자만 아버님 앞에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의 모습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성령을 힘입어 회개한 것을 이전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참고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7
<말씀>
사탄을 중심삼고 자기 자신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 타락입니다.(선집 238쪽)
<세계 경전>
우상숭배와 물본주의
문자 그대로 형상을 섬기는 우상숭배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을
대체한 거짓 가치에 맹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꾸란에서 우상은 악령과 사탄으로 간주되며, 이들을 숭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적이다. 성서에서 우상은
인간의 가공물이며 신성을 표상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는 물질주의의 한 형태이며 역으로 인간의 권력이나 부에 대한 잘못된
의존도 우상숭배의 한 형태다. 우상숭배를 보다 영적인 개념으로 보면 이기주의와 세속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잘못된 실재와 연결되면
우리를 참된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성서의 금송아지 이야기는 주신제 의식에 따른 우상숭배를 기술한 것이다.
20세기에 민족주의, 인종주의, 특히 물질주의 우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문선명 선생은 물질주의를 현대의 우상숭배라고 명백히 지적하고 하나님의 가장 큰 ‘골칫거리’의 하나로
간주한다. 이 주제에 대한 문선명 선생의 고전적 경전의 가르침에 대한 현대적 가르침이다.
말씀
선집
우상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을 저버리고 다른 무엇을 숭상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문명이라는 우상 아래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은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물질을 우상화하고 그 문명의 노예가 되어, 자기의 생명의 중심이 어디 있으며 자기가 갈 방향과 위치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있으며, 하늘을 찾아가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리는 옛날 아합왕에게 사로잡힌 이스라엘 무리와 같습니다. (6.31.
1959.03.15)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마음을 중심삼아야 하는데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지도 않는 물질주의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교육 현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전부 물질문명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고 훌륭한 이 마음을 눈에 보이는 돈 때문에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는 마음이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도
없다고 부정하는 자리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19.287,
1968.03.10)
지금까지 인류역사가 뭐냐 하면, 이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진리세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무슨 주의니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신본주의입니다. 신본주의가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본주의가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물본주의가 떨어져 나왔습니다. 전부 갈라놓은 것입니다. 전부 갈라놓고 죽여 버렸습니다. 없애버렸습니다. 이것만
남았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사람에게는 물질이 있고, 마음이 있고, 영(靈)이 있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는 물질이 있고, 인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신이 같이 하나 되었어야 할 텐데, 하나 못 된 것입니다. 이것만 하려니 사람에게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필요하고,
인본주의도 필요하고, 물본주의도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전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종교는 이런 것을 포괄한 하나의 자리에서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추어 가지고 전체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연결돼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문화의 수준과 정도가 높으니,
물질보다 인간이 높고 인간보다 하나님이 높으니, 전부 하나님께 지배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배받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신본주의를
중심삼고 인간을 무시했습니다. (인간을) 무시하니 휴머니즘이 나온 것입니다. 또, 지금은 휴머니즘을 중심삼고 신본주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이 휴머니즘도 물질을 중심삼고 전부 떨어져 내려 가고 있습니다. 인본주의자들은 돈이면 전부라는 것입니다. 사람이고 뭣이고
인간이고 뭐 가치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제일이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질주의세계에서 살아보고 ‘물질이 만능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하다. 인간 본성을 찾아야 되겠다’ 고 지금 그러고 있는 현실입니다. 부딪치게 되니 지금은 다시 인간을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전부
물질을 중요시하고 돈 벌다 보니, 공산주의가 와서 공산주의 좋다고 해서 전부 해줘보니, 아무것도 아니고 일하나마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이기 때문에 ‘아이구, 인간이 무엇이냐’ 하며 도리어 모든 것이 파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부가 세금으로 빼앗아 가지, 뭐 전부 나라가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인간이 뭐냐? 인간을 찾아보자. 아이고, 그러려니
신이 다시 필요하다’ 이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그럴 수 있는 경계선에 들어왔습니다. 요즘 미국 청년들이
그러잖아요? 히피, 이피, 별의 별 놀음 다 해보고 종교를 찾아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사람이 무엇이냐? 인간의 가치가 뭐냐?’ 그리하여
종교를 다시 찾아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103.227-228,
1979.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