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자연 만물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원리를 통해 자연을 만드신 목적이 바로 인간을 위한 것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실체세계의 창조에 있어서 언제나 주체세계를 위해 대상세계를 먼저 만드신 하나님의 순서에 의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자연 만물을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많은 성인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당부했고 아버님도 그렇게 강조를 하셨습니다.
지금 왕님께서 또다시 우리에게 자연 속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왜 우리에게 자연 속으로 가라고 말씀하실까요?
자연은 바로 우리 모태, 어머니와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도 흙으로 우리의 육신을 빚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체가 되게 하셨다고 쓰여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연에서 잉태되고 태어나서 자라고 활동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즉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문명사회는 점점 자연과 멀어지는 생활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저 하늘에 별이 있는지, 달이 떴는지, 달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모습도 보기가 어렵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도화지 삼아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지 쳐다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무엇 때문에 바쁠까요?
이유야 다양하지만 그렇게 여유 없이 살고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
우리는 그렇게 환경의 주관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체인 내가 환경에 역 주관을 받아 타락의 길을 가고 있는 현주소가 아닐런지요?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픈 심정으로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 자연을 만드셨습니다.
즉 인간을 위하여 이 자연 만물 세계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자연을 통해 인간을 사랑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연은 참주인(하나님의 아들딸들)을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언젠가 자연 속에서 자기들을 무시하고 버려두었다고 슬퍼하는 나뭇잎들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들을 보아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저를 향해 탄식하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창조본연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저를 향해 원망의 눈총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만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나타나길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들을 보아주고 가치를 인정해주고 이쁘다고 칭찬해 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체인 인간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은 것입니다.
자연 만물들이 참만물의 날을 만들어 주신 아버님께 얼마나 감사할까요?
자연은 제3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제2의 하나님이 되려면 그 자연과 교감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휼하여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만드시기 위한 하늘의 수고와 정성을 느끼는 우리가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맛있는 밥을 정성껏 짓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억겁의 세월 정성을 들여 지어놓은 사랑의 증표가 자연입니다.
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낀다면 우리의 영혼은 철저히 죽었다는 것이겠지요.
바울은 말했지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그렇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입니다.
유신론이니 무신론이니 논쟁이 다 부질없는 탁상공론입니다.
꽃 하나를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풀 한포기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자는 그런 논쟁을 초월해 있습니다.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 속에서 천태만상의 조화, 변화무쌍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보십시요.
유무신론 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자연은 하나님의 사랑 덩어리 자체입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도 왕님도 자연 속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휼하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휼하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감화되어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는 그 어떠한 악의 세력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빛은 어둠을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하나님의 아들딸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느끼고 체휼할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품속, 자연입니다.
아버님과 왕님은 우리가 자연 속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휼하길 바라십니다.
하나님과 관계 맺기를 바라십니다.
그 무한하신 사랑에 품기길 바라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게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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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 온 성경을 보면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알아요? 그것은 점장이들이 점하는 것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사실의 내용을 판단하고 전후사정을 가려내려면 힘이 들기에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선집 20권 271쪽)
인간은 주체와 대상, 즉 상대적인 쌍으로 지은 바 되었고, 또 인간을 위하여 있는 온 만물세계도 사랑의 원리 아래 조화를 이루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이상을 실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세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특히 자라나는 아담과 해와에게 있어서는 사랑의 교과서요, 사랑의 진수가 무진장으로 진열된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선집 135권 12쪽)
맨 처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아담과 해와도 하나님의 보호권내에서 어렸을 적부터 자라 올라감에 따라서 점점 커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피조세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피조세계를 통해 교육해 나오는 것입니다. 피조세계가 움직이는 모든 것은 우리 인간 시조, 본래의 조상이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교재였습니다. 완성된 아담과 해와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 표본이요, 하나의 박물관이었다 하는 사실을 알아야만 됩니다. (선집 137권 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