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을 통한 영의 성장(왕님 말씀을 들은 소감)
지난번 왕님께서 한국어 예배 말씀에서 무도나 총기 훈련을 통해 악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도나 총기 훈련을 통해 어떻게 심령의 악, 타락성을 제거할 수 있을까 나름 이해를 해 봅니다.
일단 무도나 총기 훈련은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왜 왕님은 그러한 훈련을 시키려고 애를 쓰실까요?
왕님이 우리를 위험에 빠트려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그러한 길로 왜 인도하실까요?
많은 식구님들이 총기 소유에 대한 이해를 하기 어렵고 또한 그러한 훈련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원리는 타락성을 벗고서야 창조본성을 회복해서 복귀가 이루어진다고 배웠습니다.
바로 이런 복귀원리에 의한 말씀을 왕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칼을 다룰 때 자기의 기존 습관이나 버릇으로 대하면 그 칼이 자기를 베어 다치게 됩니다.
총기도 기존 습관이나 버릇대로 다루면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생명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도 기존 습관이나 버릇대로 운전하면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가장 무서운 도구, 즉 칼이나 총기보다 더 무서운 무기라고 했습니다.
타락성이란 바로 이 감정을 다스리고 주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입장을 떠나 자기중심하고 발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의 발산이 자녀에게 했을 때 이는 자녀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영적인 상처가 된다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님 말씀을 통하여 철저히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무엇을 부정해야 할까요?
바로 기존 사상이나 생각, 관념, 습관, 버릇을 부정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왕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무도나 총기 훈련을 통해서 과거 기존 습관이나 버릇을 먼저 버리지 않으면 검이나 총이 나를 다치거나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전에 먼저 자기 부정, 즉 기존 습관이나 버릇을 버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타락성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타락성을 철저히 부정하고 없애지 않고서는 절대 복귀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낡을 건물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신앙자는 누구나 자기의 기존 사상이나 생각, 관념, 습관 등을 철저히 버리고 난 뒤에 말씀을 통한 자신을 새로 정립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왕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중심한 감정으로 자녀들에게 잔소리하거나 야단하면 평생 자녀에게 영적인 상처가 될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자기중심한 사상과 감정으로 살아가면 우리는 천일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 자녀도 평생 남을 상처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무도나 총기 훈련을 통해 실체적으로 그러한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그릇된 습관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왜 나를 죄악으로 끌고 가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일국 문화는 과거 타락한 세계의 사상이나 습관이 아닌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의 세계입니다.
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타락성에 젖어 있는 나는 많은 거부감과 반발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님께서 무도나 총기 훈련을 통해서 외적인 평화군과 평화경찰이 되는 것도 훈련시키시지만, 내적으로 타락한 문화에 젖어 있던 우리의 그릇된 사탄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여 그것을 절대 부정하고 버리고 새로운 천일국 문화를 배워 나가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탄, 천사장이 만들어 놓은 문화권에서 살아왔던 우리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절대 부정하고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천일국의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익혀서 천일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무도 훈련이나 총기 훈련을 통해 내가 외적으로 강해져서 자기와 이웃을 지키고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내적인 세계에까지 천일국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죽어야 할 나는 바로 타락한 생활과 습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타락성이 점철된 나입니다.
죽으면 살리라 했습니다.
사는 것은 창조본연의 내가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천일국 백성으로 거듭난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나를 죽이지 않고는 절대 새로운 나를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저런 역설적인 말씀을 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고서는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고, 새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말씀도 바로 이런 맥락의 말씀이 아닌가 느껴봅니다.
자기를 부정하라고 그토록 강조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왕님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들으니 은혜가 충만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왕님
아버님과 왕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영혼이 되게 하심을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왕님의 설교 말씀 중에서
그러니까 이런 미묘한 세계에서 자기 발전뿐만 아니라 자기를 없애는 것을 배워야 돼요.
평화군 경찰은 그냥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악한 내용들을 없애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주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나이다.
이 말씀이 왜 무도하고 연결돼 있느냐?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죄 덩어리인 내가 들어갈 수 있어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죄 덩어리인 나, 거짓된 나, 음란의 마음을 품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죄가 많은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내가 없어야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죽고자 하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평화군 평화경찰은 나와 다른 생명들을 보호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나를 보호하고 이웃도 나의 몸을 보호하는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목숨을 걸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평화군 경찰 훈련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무도 훈련이 아주 영적입니다.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면서 나는 살아있다고 하면서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22:37, 마가복음 12:29-31, 누가복음 10:27, 신명기 6:4-5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도구인 검이 우리의 스승도 됩니다.
검을 잘못 다루면 내가 잘려 나갑니다.
총기도 잘못 다루어 실수하면 나 자신이 다칩니다,
자동차도 잘못 다루어 사고가 나면 다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을 주관하지 못하면 내 심령이 손상됩니다.
총도 검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자신 말입니다.
검도, 총도, 자동차도 모두 도구입니다.
도구를 잘 주관해야 하는 것이 주인인 인간이 해야 할 책임입니다.
도구가 두려워 피하는 것은 주관성을 상실하게 되고 스스로 강해질 수 없습니다.
검도나 총기 훈련을 통해 나쁜 습관들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환경을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이웃도 보호할 수 있는 평화군 평화경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도나 총기 훈련을 통해 자기 나쁜 습관을 없애고 새로운 기술을 터득하여 더 강한 나를 만들어 평화군 평화경찰이 되어야 합니다.
천일국에서는 선한 백성들, 선한 사람들이 파워를 주관해야 돼요.
천일국 백성이 실체적 파워로 주관하지 않으면 천사장의 주관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훈련을 많이 하면 무책임한 몸이 책임적인 몸이 돼요.
무책임한 행동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 됩니다.
훈련을 통해 무책임한 행동들 걷어내고 책임감 있는 행동들, 올바른 동작들을 하면 위험성이 거의 없어요.
총기 소유 훈련 시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 반드시 자기가 확인해야 합니다.
설사 예수님이 총알이 없다고 해도 반드시 자기가 책임지고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