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은 창조본연의 개념이 아니다.

무지개 | 20170426070813


   선과 악은 창조본연의 개념이 아니다.

선과 악이란 창조원리에는 없는 개념인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즉 악이란 하나님이 애초부터 창조하신 본성이 아닌 타락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입니다.
원리강론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선이라고 하고 사탄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배치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악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선과 악의 개념은 상반된 개념으로 타락으로 인하여 선과 악의 개념이 정립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해서 잘못되지 않았다면 선이나 악의 개념이 없이 창조원리에 입각한 개념만 존재했을 것입니다. 
선과 악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창조본연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이미 타락으로 인해 선과 악의 개념이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타락과 관계없는 자연 만물 세계에 대해서 조차 선과 악의 개념으로 분석하는 오류를 흔히 범합니다. 

예를 들어 뻐꾸기는 뱁새의 둥지에 탁란을 합니다.  뻐꾸기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도 못하고 또 새끼를 양육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뻐꾸기 알은 뱁새 알과 나란히 어미 뱁새가 부화를 시켜줍니다. 문제는 나란히 뱁새 새끼와 같이 부화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뻐꾸기 새끼가 더 크고 힘이 세어 둥지 안의 뱁새 새끼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버립니다. 
빌어먹는 주제에 배은망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부분 그런 것을 보고 저 나쁜 뻐꾸기 새끼 봐라 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 역시 창조원리에 의한 자연 생태계의 다양성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먹이사슬, 
토끼가 풀을 뜯어 먹고,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고, 호랑이가 늑대를 잡아먹는다고 그 행위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선과 악의 관점에서 분석을 시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닭을 잡아다 목을 비틀거나 잘라서 털을 벗기고 배를 갈라 창자를 빼내고 요리를 하는 사람더러 잔인한 사람으로 평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것은 동물과 인간에 있어서 먹이사슬로 창조원리에 입각한 행위입니다. 

즉 하나님이 부여하신 만물을 주관하는 주관권을 행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닭 잡는 자를 잔인한 사람으로 평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은 남이 잡아서 요리해주는 것을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는 것입니다. 남의 손에 피를 묻힌 댓가로 자신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이는 달리 말씀드리면 스스로의 주관권을 남에게 의지하는 종의 근성(타락성)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 그릇된 선악의 개념이 이렇게 창조본연의 길을 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닭을 죽이는 것이 악이라면 닭을 먹는 것도 당연히 악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살생이 악, 죄라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동물을 죽이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생명체가 아니란 말입니까?  
식물을 죽이는 것은 살생이 아닙니까?

이렇게 창조원리를 잘 알지 못하면 육식을 하는 것은 악이고, 채식을 하는 것은 선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광물을 섭취하는 것은 악이 아닙니까?
광물도 엄연한 생명체로 인식을 해야 하며 그렇다면 물을 마시는 것도 악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위하여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큰 목적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은 창조원리입니다. 
그것은 악이 아니라 위하여 살게 되어 있는 천륜이요, 창조세계의 질서와 조화입니다.

또한 욕망을 죄악시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 세계에서는 흔히 금욕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욕망을 부여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욕망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여 욕망을 버리기 위해 필사적인 수행의 길을 가기도 합니다. 

우리 원리에서는 타락성도 본성이라고 가르칩니다. 
타락성은 근본적으로 본성입니다. 다만 그 본성을 인간이 잘못 사용하여 타락성이 된 것이지 타락성 자체가 악성으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본인이 기고한 왜 타락성이 본성인가? 참조 )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H0A2/11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일반화되어 있을까요?
바로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창조원리를 잘 알지 못하고 선과 악의 개념이 형성되어 그 개념에 의해 분석 판단하는 습관이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창조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 선악의 개념을 잘못 적용하여 악이 아닌 것도 악으로 규정하고 선이 아닌 것도 선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악이 아닌 것을 악으로 판단 분석을 하여 죄악시하면 나의 심령은 늘 악과 상대성을 띠어 쓸데없는 심령의 낭비로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창조본연의 세계와는 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이 아닌 것도 선으로 인식을 하여 고집을 부리면 맹목적인 신앙에 빠져 이 또한 창조본연의 세계와는 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복귀 과정에 있는 우리 타락한 인간은 더욱더 악을 적대시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핍박하고 욕하고 음해하는 자를 악인으로 취급해서는 나 자신이 복귀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입장에서 이해를 해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원수처럼 나타난 자가 오히려 나를 중생 부활시키기 위해 탕감을 하게 해주는 영생의 은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탕감을 치르지 않고서는 복귀의 길을 갈 수 없는 나에게 상대는 죄를 지으면서도 나를 탕감하게 해주기 때문에 먼저 감사하고 상대가 죄를 짓는 데에 대해 불쌍히 여기며 안타까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벨적인 사람은 가인적인 사람을 악으로만 대하지 말고 끝까지 사랑해서 회개하고 반성하게 해서 하늘 앞에 세워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기고한 아벨의 길 참조)

http://cafe.daum.net/rainbowKINGDOM/Gve8/2

이것이 진정한 복귀의 길이며 선악의 분립 생활일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상대성을 띠면 내가 악이 되고 맙니다. 악도 선으로 대할 수 있어야 악을 극복하고 진정한 선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선악의 개념을 확실히 정립하지 못하고서는 완전한 선악의 분립은 요원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복귀의 길은 내 심령 속에서 선악의 개념을 점점 지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복귀는 악을 분립하고 창조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가는 노정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부활할수록 선악의 개념은 나의 심령에서 점점 적어질 것입니다.
내 심령 속에 선악의 개념을 점점 지우고 창조본연의 모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원리강론

Ⅲ. 목적성으로 본 선과 악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이미 창조원리(創造原理) 중 ‘창조본연의 가치’에서 논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목적성으로 본 선악(善惡)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조성하였더라면, 그들은 선의 세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써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제 그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흔히 죄(罪)라고 생각하는 욕망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창조본성(創造本性)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목적(創造目的)은 기쁨에 있고 기쁨은 욕망을 채울 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동시에 기쁨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살고자 하는 욕망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도,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복귀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간사회의 유지와 그 발전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의 욕망은 창조본성이기 때문에, 이 성품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선(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탄의 뜻을 목적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악(惡)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 악한 세상도 예수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 놓으면 선한 것으로 복귀되어 지상천국(地上天國)이 이루어진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Ⅱ) 이러한 원리로 보아 자명해지는 것이다.
(원리강론 94-95쪽)